길 위에서 안전하고 싶다는 권리로서의 안전운임제
올해 6월과 11월, 두 차례 이어진 화물연대 총파업이 정부의 강경 대응에 맞서다 끝내 막을 내렸습니다. 화물연대 총파업의 주요 논점은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과 품목 확대’였는데요. 안전운임제란 임금노동자의 ‘최저임금제’와 같이, 화물차 기사들의 최저 운임을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이는 화물차 기사들이 낮은 운임 때문에 과로, 과적, 과속의 위험에 내몰리지 않도록 2020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화물 운송은 화물의 주인인 화주에서, 운송사, 화물차주 즉 화물 기사까지 이어지는 수직적 구조 속에서 돌아갑니다. 먼저 화주는 운송사에 화물 운송을 의뢰하며 운송료를 지불합니다. 운송사는 받은 운송료에서 수수료를 가져갑니다. 이후 운송사는 화물 기사에게 화물 운송을 맡기며 남은 운송료를 운임으로 지급합니다. 다시 말해 화주가 처음 지급하는 운송료가 하청 단계를 거치며 줄어들어 결국 화물 기사의 몫으로 떨어지는 운임이 적어지는 것이지요.(경향신문. 22.12.05.)
또 많은 경우 화물 기사는 계약서상 화주와 운송사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라 간접 고용된 개인사업자 혹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로 분류되곤 합니다. 이때 화물 기사는 노동자가 갖는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에서 배제될 수 있습니다. 더하여 개인사업자로 분류된 화물 기사는 스스로 화물차와 기름값을 마련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적은 운임을 받으며 매달 고정된 금액을 지출해야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한겨레, 22.12.08.)
따라서 화물 기사들은 적은 운임으로 적정 수익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이, 더 빨리 화물을 옮기다 보니 길 위에서의 위험에 쉽게 노출됩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를 지속해서 추진하고 적용 품목을 확대하길 요구한 것입니다.
제도 밖으로 내몰리는 위험, ‘위험의 외주화’
물론 우리 사회 속 다방면의 산업에서 위험의 소지는 항상 있어왔습니다. 특히 1960년대부터 한국 사회가 고도 성장을 거치며 다양한 분야의 제조업체가 등장했는데요. 무엇보다도 생산과 효율이 우선되던 당시 분위기 속에서 노동자들의 안전은 뒤로 밀려나곤 했습니다. 이후 한국 산업의 안전 및 보건 수준이 크게 향상되어 산업재해율이 꾸준히 낮아져 1995년에는 0.99%로 나타났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며 한국의 노동시장은 급격하게 변화했습니다.(DBR, 22.03.) 경제침체 앞에서 대규모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등 ‘노동의 유연화’가 진행되었고, 그에 따라 기피되는 노동은 보다 불안정한 위치의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원·하청 이중구조가 만연해졌습니다. 학자들은 위험이 예상되는 노동을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로 떠넘기는 현상을 ‘위험의 외주화’라고 일컫기도 합니다.(문화과학, 2021)
위험의 외주화는 화물 운송 사례 외에도 우리 사회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현상입니다. 지난 2016년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김군’은 서울메트로 소속이 아니라 스크린도어 외주 업체 노동자였습니다. 또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목숨을 잃은 김용균 역시 서부발전본부 소속이 아닌 연료운전 외주 업체 노동자였습니다. 2021년 국회에서 열린 산업재해 청문회 자료에 따르면 건설, 택배, 제조업 분야에서 산업재해가 자주 발생한 9개 회사에서 2016년부터 2020까지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의 82.5%가 하청 노동자였습니다.(시사저널, 21.02.22.)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산업재해를 방지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 올 초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최근까지도 유사한 사고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더하여 위험의 외주화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더욱 복잡한 현상을 보입니다. 정보통신기술 발전과 디지털 인프라 확장은 온라인 플랫폼을 활성화했고, 산업을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노동시장의 형태도 변화한 것인데요. 플랫폼을 통한 노동시장은 대개 플랫폼이 소비자와 노동자 사이를 중개하며, 노동자는 연결된 노동을 수행하는 형태로 구성됩니다. 이러한 플랫폼 노동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새롭게 형성된 노동시장 때문에 노동 시간, 환경, 임금에 적절한 기준을 세울 법과 제도가 부재한 상태이고, 많은 경우 화물 기사와 같이 개인사업자로 분류되어 각자도생하도록 합니다. 그에 따라 점차 확장되는 플랫폼 노동이 더욱 안전하게 이어지기 위해서는 기존의 노동시장과 산업재해에 대한 개념을 다시금 정의해야 하는 상황입니다.(민주주의 이슈와 전망, 2018)
쪼개지는 노동에도 윤리와 권리는 있다
사실 위험의 외주화를 둘러싼 이야기는 이전부터 수면 위로 떠 올랐던 주제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매일 같이 산업재해가 일어나고 있고, 이를 나타내는 산업재해율도 오랜 시간 큰 진척을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곧 아직까지 노동자의 안전과 위험은 산업 성장, 효율, 그리고 자본 앞에서 부수적인 피해일뿐,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 현실을 뜻합니다.
전주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은 오늘날 발생하는 위험의 외주화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위험’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을 보호해줄 법과 제도가 부재한 노동자, 산업의 수직 구조 맨 밑에 위치한 노동자, 불안정하기에 더 많이 일해야 하는 노동자에게는 단지 노동의 정도가 가중되는 것이 아니라 권리와 권한에 있어서 중층적인 배제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산업재해 예방 및 보상과 관련된 법과 제도적 장치가 있다는 것은 노동자와 위험이 공적으로 인정받는 기제가 되며, 반대의 경우는 노동자 개인에게 모든 책임이 전가됩니다. 따라서 그는 더이상 산업에서 나타나는 위험은 기계 장치와 인간 사이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 부재 사이에서 존재한다고 설명합니다.(문화과학, 2021)
우리 사회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오래된 말을 교묘하게 피해 법과 제도에 적용되지 않는 위험한 노동시장을 양산하며 산업을 지탱할 노동력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오직 산업의 발전을 위해 쪼개지는 노동시장에서는 당연하게도 사회적 윤리와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회의 모든 노동자가 안전할 권리는 정부와 국가가 수행해야 할 과제입니다. 근로기준법에도, 산업안전보건법에도, 한국이 가입한 국제노동기구의 노동기본권에서도 채택한 내용입니다. 따라서 정부와 국가는 사회적 안전망으로부터 취약한 노동에도 동등한 권리가 주어질 수 있도록 더욱 적극적으로 법과 제도를 확장하고 구체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와 정부의 해묵은 과제는 불법 딱지와 같은 일방적인 방안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해에는 눈앞에 놓인 문제를 깊이 관철하는 움직임을 볼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코멘트
3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가장 큰 믿음이 낙수효과인데요, 결국에는 아래로 내려가고 내려가는 과정에서 결국 그 끝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다들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현 정부 인사들이 제발 이 글을 읽고 교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위험의 외주화' 속에서 '쪼개지는 노동'.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비용일 뿐이네요. 화물연대의 파업 이후, 정부의 지지도가 높아지는 것을 보면..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의 여건이 더 나아지기는 어렵겠다 싶습니다. 사회운동이 한동안 '노동'을 충분히 이야기 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현 시대에 적합한 노동의 권리에 대해 논의를 해나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