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에게 무임승차에 대해 묻다
제목 : 노인에게 무임승차에 대해 묻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쏘아올린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 공약으로 연이은 설전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노인회는 이준석 대표에게 “개혁신당 대표가 아니라, 패륜아 집단에 망나니 짓" 이라며 비판한 바 있다. 이에 이준석 대표는 “4호선 무임승차자 대부분은 경마장역에서 내린다"며 맞받아쳤다.
이준석 대표가 무임승차를 두고 연이은 설전을 하는 와중에 국민의힘은 경로당 주 7일 점심 제공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해당 공약에 이준석 대표는 “매표 행위 밖에 못하냐"라며 비판했다. 노인들 환심 사려는 공약 밖에 못하냐는 비판이다.
노인회와 입다툼하고, 국민의힘과 각을 세우느라 이준석 대표가 연일 바빠 보인다. 대립 각을 세우는 와중에 노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이에 노인들을 대상으로 몇 가지 질문을 하며 무임승차 논쟁에 대해서 물어봤다. 처음에는 주변에 아는 노인분들을 대상으로 하려고 했으나, 아는 사람은 정제된 답변을 해줄 것 같았다. 날것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처음보는 노인을 찾아 지하철로 향했다. 장소는 이준석 대표가 언급한 4호선과 길이가 가장 긴 1호선으로 정했다.
처음보는 노인들에게 갑자기 다가가서 물어보는 게 처음에는 어색했으나, 몇 몇 노인분들이 “입이 심심했다.”며 답변해 주셨다. 물론 일부는 거절했다. 시간은 저녁대였다. 대화는 노약자석 앞과 승강장 의자에서 이뤄졌다. 질문은 무임승차와 노인 시선에서 바라본 지하철 등 평소 궁금한 내용이었다. 외부 게재를 허락해 준 한 분과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했다.
—
Q. 현재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
현재 76세다. 젊어서 서울에 올라왔다. 계속 서울에 살고 있다. 자식들은 지방에 살고 있다.
Q. 처음 노약자석에 앉았을 때가 언제인지 기억하시는지 궁금하다.
언제 처음 앉았는지는 기억 안난다. 노인 대우 받는 나이 되자마자 앉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앉기 싫었다. 노인이 됐다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았다. 그게 싫었다. 뭐 나이차면 다 노인인 건 맞는데(웃음), 뭔가 심리적으로 거부하는 게 있었다. “난 아직 팔팔해.” “마음만은 청춘이다”, 이런거. 젊은 사람이 보면 나잇값 못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랬었다. 젊은 분도 지금은 이해 못하시겠지만, 나중에 나이 들면 내가 무슨 말 하는 건지 이해하실거다. 그러다 결국 언젠가부터 앉았다.
Q. 결국 앉게 되신 이유가 궁금하다.
별거 없다. 다리가 아팠다. 오래도록 서서 갈 자신이 없었다. 나이들면 온 몸이 쑤시다. 아픈데 장사 없다고, 이제 노약자 석 그런거 상관없이 앉는다. 마음도 몸이 따라줘야 하는 거고, 청춘도 몸이 따라줘야 한다. 무릎 쑤시면 자연히 무릎이 굽혀지고, 다리에 힘이 빠지고, 앉을 곳을 찾게 된다. 예전에는 노약자석에 자리가 있었는데, 요즘은 노약자석에 자리도 없다. 내 앞에 더 굽고 나이든 것 같은 사람이 보이면, 비켜줘야 하나 싶은 때도 있다. 나라가 나이들었다던데, 진짜인 걸 실감한다.
Q. 젊은 사람들도 내 앞에 노인이 있으면 비켜줘야 하는 생각이 든다. 노인들도 같은 생각을 한다니 놀랍다. 노인들 사이에서도 젊은 노인, 나이든 노인 구분이 있는 건가?
그런거 없다. 다만 가끔 싸잡아 놓고 다 노인이라고 하는 게 맞나? 라는 생각은 든다. 지금 65세 이상이면 다 노인 아닌가. 내 나이가 76이다. 올해 65살 된 사람이랑 나랑 같은 노인인거다. 11살 차이가 나는데.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요즘 말하는 세대 차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나? 오산이다. 아픈 곳도 다르고, 몸 상태도, 마음 상태 다 다르다. 젊은 분도 11살 차이 나는 더 젊은 혹은 더 나이든 사람과 같은 세대라고 하면 맞다고 보나? 젊은 사람들도 차이가 있듯, 우리도 차이가 있다.
Q. 현재 65세를 기준으로 노인으로 보는게 너무 젊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모르겠다. 사람마다 다르지 않겠나. 아까도 말했듯 처음 노인 나이 됐을 때, 난 나 자신을 노인이라고 생각 안 했다. 돌이켜보면, 노인 나이 됐을 때 뭔가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노인이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걸 받아들이기 싫어서 노인인 걸 받아들이기 싫었던 것 같다. 그러다 몸이 안 따라주니 노인인 걸 받아 들였다. 지하철에서 오래 서 있기도 힘드니까, 노약자석도 앉고, 경로당도 가고, 혜택도 받고 그랬다. 노인이 되면 신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게 확실히 줄어든다. 그런데 요즘 65세가 신체적으로 무언가를 하기 어려운 나이인가 싶기는 하다.
Q. 혜택 얘기가 나와서 묻자면, 요즘 무임승차 폐지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없어지면 당연히 불편하다. 줬다 뺐는 거 아닌가. 애초에 없었다면 모를까, 있던 걸 없앴다고 하니 당연히 기분 나쁠 수밖에 없다. 이건 누구라도 그럴거다. 신문 보니까 적자도 심하고, 지역 편차도 있다고 하던데. 어쩔 수 없는 부분이야 있겠지만, 그걸 전부 노인들 탓으로 돌리는 것 같다.
물론 노인이 돈을 안 내고 지하철을 타니까, 그 만큼 돈이 안 갇혀서 적자라고 할 수도 있을 거다. 노인들한테 돈을 받으면 그 만큼 돈이 걷히니 당연히 적자도 줄어들 거다. 하지만, 우리가 나이 먹고 싶어서 먹은 게 아니지 않나? 시간이 지난 거고, 노인이 된 거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 살면서 세금을 안 낸 것도 아니고. 내면서 살았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내면서 살았다.
이유야 있겠지만, 듣기에 노인이 공짜로 타서 적자다라고 몰아가는 것 같다. 마치 지하철만 무임승차 하는 게 아니라, 삶 자체를 무임승차 한 거라고 보는 건가 싶다.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물론 내 전 세대도 그렇고, 지금 젊은 분도 그렇지 않을 거다. 젊은 분들도 세금 내지 않나. 지금 태어나지 않았지만 향후 태어날 사람들은 지금 젊은 분이 어떻게 살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 열심히 살고 계시지 않나. 우리도 그랬다. 그걸 조금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Q. 삶 자체를 무임승차 하는 것으로 본다는 말씀이 조금 깊게 다가오는 것 같다.
살면서 별의 별 일을 다했다. 나 뿐만이 아니라, 내 나이대 사람들 모두 그랬다.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가 그랬다. 네거 내거 따지자는 건 아니지만, 지금의 지하철을 만들 수 있었던 건 나 같은 세대 노인들이 일해서, 세금 내고 그랬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젊은 분 같은 시대랑 우리 시대랑은 다르다. 그것은 안다. 하지만 우리의 땀이 있어서 지금의 사회가 있고, 시설이 있는 거다.
물론 나 덕분에 있었으니 당연히 누려야지 이건 아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혜택은 젊은 분들이 낸 세금 덕분이다. 우리가 만들었다면, 젊은 사람들은 발전시켰다. 노인되서 무조건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노인들도 있던데, 그건 잘못 된 거다. 우리랑은 다른 시대에서 더욱 부담 되는 게 사실일 거다. 그 점에선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조율 해야 할 문제지, 한 세대 전체를 싸잡아서 원인으로 규정 짓는 건 아니다.
Q. 젊은 사람들과 노인들 간의 차이가 있다. 차이야 당연한 거지만, 문제는 그걸 어떻게 조율해야 하는지 서로 답이 없다는 점 같다. 그러다보니 서로가 옳다고 주장만 하고, 갈등으로 번지는 게 아닌가 싶다.
답은 나도 모른다. (웃음). 나이 든 다고 다 아는 게 아니니까. 배운 거라야 젊은 사람들이 훨씬 많이 배우지 않나. 난 고등학교도 안 나왔다. (웃음). 그때는 안 나와도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이런 차이를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세금 냈으니까 당연히 받아야 돼, 앞으로 세금 부담되니까 안돼.” 이런 게 아니라 오래도록 이야기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서로 이기려고 대화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려고 대화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다. 살다보니 ‘져주는 게' 이기는 거더라.
노인도 적당히 받아야 한다. 물론 내가 모르는 노인의 어려움도 있을 거다. 난 뭐 부족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여유롭지도 않다. 때문에 내가 생각했을 때 충분하다고 하는 게, 나보다 어려운 노인에게는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런 점을 찾는 게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또 그런 부분에서 노인들이 버틸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것도 젊은 사람들에게 바라는 점이기도 하다. 주머니 털어서 다 주는 게 아니라, 최소 살 수 있을 정도로 도와주고,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을 인정해 주셨으면 좋겠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은?
재밌었다. 노인이 주저리 주저리 말이 많았다. 나이 들면 원래 말이 많아진다. 근데 말할 기회는 줄어든다. 말할 사람도 줄어든다. 하늘로 올라가던, 땅으로 꺼지던, 하나님 만나러 가던, 부처님 만나러 가던 줄어든다. (웃음) 노인한테 즐거운 시간 만들어 줘서 감사하다. 곧 있으면 설날인데, 새해 복 많이 받으셨으면 좋겠다. 건강이 최고니, 젊어서 건강 잘 챙기시라. 늙어서 챙기면 늦는다. 젊음 잘 즐기셔라. 아무리 즐겨도 더 즐길 걸 하며 후회하니까.
—
어르신은 1호선 지하철 어딘가에서 나와 함께 내려 한 참을 이야기 하시곤, 감사하다고 머리를 숙이고 다시 지하철에 오르셨다. 늦은 저녁이라 자리가 꽤 있었음에도 어르신은 노약자 석에 앉으셨다. 자리가 있는데 굳이 노약자 석에 앉은 이유가 뭘까 잠시 생각했다. 문이 닫히고, 어르신이 탄 지하철이 역을 완전히 통과할 때까지 지켜봤다.
어르신과 인터뷰 한 자리에서 인터뷰 한 내용을 잠시 정리하고, 지하철을 기다렸다. 거의 막차가 된 지하철을 탔다.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집에 가면서 어르신과 인터뷰를 돌이켜 봤다. 몇 년 전에 읽은 책이 떠올랐다. ⟪70세 사망법안, 가결⟫이라는 책이었다.
책은 노인 인구 증가로 인한 사회비용 증가, 고부 갈등 심화, 저출산이 극심한 사회문제로 치닫자 70세 생일을 맞은 사람들은 30일 이내에 사망해야 한다는 법안이 통과된 사회를 그린다. 노인 사망으로 문제를 극단적으로 해결하는 사회를 그린 것이다. 법안이 통과 됐다는 점에서 사회와 정치가 이를 받아들였다는 말이다.
책은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사망을 기다리는 노인, 시어머니를 돌보는 며느리, 은둔형 외톨이, 70세면 죽으니 빨리 정년 퇴직해서 여유를 즐기겠다는 직장인, 일자리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빠져야 내 일자리가 생기니 법안을 환영하는 취준생 등 다양하다. 법안이 통과된 후 한 가정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가는지를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던 책이었다. 인터뷰 이후 그때 책에서 봤던 몇 개 문장이 떠올랐다.
“앞으로 2년 만 더 버티면 돼요. 그 법안 덕분에.”*
“어휴 위에 사람들이 빠져야 우리도 일자리 생기니까 난 완전 찬성!.”*
“우리 세대는 죽을 때까지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기도 힘들다고 그러니까 아빠도 죽을 때까지 일해요.”*
“오래 살아도 되고, 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 것인가"*
“우리의 일은 앞으로가 시작입니다. 오래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회를 반드시 실현해야 합니다.”*
책이 보여주는 젊은 사람들의 모습과 노인들의 모습이 비단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책에서 말하는 갈등은 현재 우니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문제는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책이 가정한 사회처럼 극단적인 사회로 가서는 안 된다. 소설은 소설이기에 현실에서 저런 극단적인 대안이 나오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무언가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정말 점점 극단적으로 가겠다는 조금의 위기의식이 느껴졌다.
어르신의 말처럼 정치의 일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의견을 들고 이기려고 싸우는 게 아니라, 상방된 의견이 만족할 수 있는 선을 찾고, 양보할 수 있는 선이 어디까지인지 찾는 조율의 과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 정치의 모습이 이기기 위한 공약과 정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정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어도, 다수가 만족할 수 있고, 소수가 소외 받지 않는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토론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또, 그 과정에서 나는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고, 상대방에게 어디까지 양보를 요구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0세 사망법안, 가결⟫ (가키야 미우, 왼쪽주머니, 2018) p.350, 375, 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