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진실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시민의 힘으로 사실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이는 제가 K.F.C.(Korean Factcheckers’ Community)의 오거나이저로 활동하며 끊임없이 고민했던 질문입니다. 이번 글에선 제가 이 물음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보고 느꼈던 점들을 공유해드리고자 합니다.
사람 셋이 전부였던 시작
K.F.C.는 시민팩트체크 커뮤니티입니다. 허위로 의심되는 정보들을 찾거나 제보받고, 구체적인 근거 자료들을 통해 허위 여부를 검증합니다. 기존 언론의 팩트체크와 다른 점이 있다면 K.F.C.에서는 시민이 직접 팩트체크를 진행한다는 점입니다. 언론인이나 전문가가 아닌, 다양한 배경을 지닌 시민이 팩트체커가 되어 활동합니다.
2023년 6월, 팩트체크 저널리즘의 침체에 문제의식을 느낀 시민들이 모이며 K.F.C.는 시작되었습니다. 팩트체크 활동 경험이 있으신 임동준 활동가님이 시민 주도로 팩트체크를 해보자는 제안을 주셨고, 이에 정기훈 활동가님과 제가 합류한 것인데요. 당시에는 외부 기관이나 단체의 지원도, 장기적인 목표나 비전도, 활동 거점으로 삼을 플랫폼도 없이 오직 사람 셋이 전부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팩트체크 방법론 스터디만 진행한 채 셋이 번갈아가며 콘텐츠를 쓰는 것부터 출발했습니다.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K.F.C.에 성장의 계기가 찾아옵니다. 노무현시민센터의 시민 모임 지원 사업에 K.F.C.가 선정된 것인데요. 이를 바탕으로 팩트체크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을 모아 교육을 진행하고 함께 팩트체크를 진행하는 시민팩트체커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과정이 순조로웠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팩트체크를 향한 관심을 확인하고 역량 있는 시민팩트체커들을 확보하는 성과도 거두면서 커뮤니티의 안정성을 다졌습니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K.F.C.의 운영과 활동을 협업하고 있는 사회적협동조합 빠띠가 국제팩트체크네트워크(IFCN)의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현재도 K.F.C.는 다양한 교육과 모임, 전문가 특강 등을 진행하며 운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4년 11월 12일 기준으로 K.F.C.에는 47명의 시민팩트체커가 활동하고 있고, 54건의 팩트체크 콘텐츠가 발행되었으며, 4만 6천여 회의 누적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숫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시민팩트체커들의 관심과 열정, 능력이 모여 커뮤니티의 잠재력을 한껏 높이고 있습니다.
‘시민’이기에 가질 수 있는 가능성
약 50명에 달하는 시민팩트체커들과 함께 커뮤니티를 운영해온 시간은 시민팩트체크만의 고유한 가능성을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언론인과 전문 팩트체커에 비해 부족한 점도 물론 있었지만, 오직 시민팩트체커만이 품은 강점도 분명하게 드러났는데요. 그중에서도 유독 독립성과 다양성이 돋보였습니다.
독립성은 팩트체크의 핵심입니다. 진실을 확인하고자 하는 활동인 만큼 외압과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것이 요구됩니다. 특정 기관, 조직과 관계없이 시민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시민팩트체크는 기성 언론에 비해 독립성을 확보하기가 훨씬 용이합니다. 아래는 K.F.C.의 팩트체크 결과물 중 정치 인사의 발언을 검증한 사례들인데요. 위에서부터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전 의원의 발언을 검증한 것입니다. 이처럼 K.F.C.에서는 이념이나 정당에 상관없이이 다양한 정치인사를 대상으로 팩트체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민팩트체크의 독립성은 비정파성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언론에 의한 팩트체크는 아무래도 언론에 대한, 또는 전문 팩트체커에 대한 팩트체크는 어려울 수 있는데요. K.F.C.에서는 국내 언론과 팩트체커 역시 검증의 대상으로 삼은 바 있습니다. “국내언론이 연이어 보도한 ‘푸틴 심정지설’, BBC는 보도 안 했다?”는 주장을 검증했던 사례와 “역대 모든 대선 이후 선거는 대선 결과를 따라갔다?”는 김준일 시사평론가의 주장을 검증했던 사례인데요. 특히 팩트체크 전문 언론인 뉴스톱의 전 대표였던 김준일 평론가의 발언을 검증했던 사례는 전문 팩트체커 역시 시민팩트체크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독립성만큼 두드러지는 시민팩트체크의 특징은 다양성입니다. 다양한 배경의 시민들이 모여 진행하다보니 팩트체크의 주제나 검증 대상을 찾는 플랫폼 역시 다양한데요. K.F.C.에서는 기성 팩트체크의 주요 주제였던 정치, 사회, 경제 외의 분야를 다루거나, 전통적인 허위정보 유포 경로였던 유력 인사의 발언이나 기성 언론 보도가 아닌 다른 플랫폼에서의 허위의심정보를 검증한 사례가 많습니다.
“기침 한 번에 2kcal가 소모된다?”라는 허위의심정보를 검증했던 사례는 특이하게도 의학 분야의 팩트체크였습니다. 이 내용이 유통됐던 플랫폼 역시 한국의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로, 기존의 팩트체크에서는 그간 주목하지 않았던 플랫폼이었습니다. “일본 기자가 기자회견에서 이강인을 공격했다?”는 주장을 검증했던 사례 역시 기성 팩트체크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스포츠 분야의 팩트체크였습니다. 해당 주장은 최근 허위정보의 주요 진원지로 꼽히는 숏폼 플랫폼 중 하나인 유튜브 쇼츠를 통해 퍼졌는데요. 이처럼 허위정보의 분야와 유통 경로가 날로 복잡해지고 있는 지금, 시민팩트체커들의 다양성은 그 자체로 효과적인 대응이 될 수 있습니다.
연대와 실천이라는 다음 걸음
시민팩트체크는 분명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허위정보에 대응하기엔 아직 미약한데요. 지금까지의 성과만큼이나 앞으로의 발전 방향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오거나이저로서 고민해온 K.F.C.의 방향성은 바로 연대와 실천입니다.
K.F.C.의 첫 번째 지향점은 연대입니다. 작년, 한국의 서울에서 ‘글로벌팩트 10’ 행사가 열렸습니다. 글로벌팩트는 전 세계의 팩트체커들이 모여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연대하는 국제 행사인데요. 팩트체커에게는 이와 같은 연대가 무척 중요합니다. 오늘날 허위정보의 위협은 특정 지역, 국가를 넘어섭니다. 디지털 통신이 발전하면서 허위정보의 유포 경로는 더 복잡하고 촘촘해졌고, 그 속도 또한 빨라졌습니다. 또한 허위정보를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시도가 늘어났고, 진실을 찾으려는 팩트체크에 대한 외압도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검증 난이도가 높아지고 압박이 거세짐에 따라 팩트체커 간의 협력과 상호 지지가 중요해지게 된 것입니다. K.F.C. 역시 이러한 상황 변화에 연대로 대응하고자 합니다.
팩트체커 간의 연대 이상으로 K.F.C.가 중시하는 것은 바로 시민사회와의 연대입니다. 시민사회는 팩트체크가 필요하고, 팩트체크는 시민사회가 필요합니다. 허위정보의 확산과 영향이 그 어느 때보다 광범위해진 이 시대에 허위정보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은 없습니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주체들 역시 허위정보의 영향을 받아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고, 크나큰 사회적 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시민사회가 팩트체크를 필요로 하는 이유입니다. 팩트체크, 특히 시민팩트체크 역시 시민사회를 필요로 합니다. 팩트체크의 궁극적인 목표는 허위정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더 나아가 이를 악용하려는 시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팩트체크 결과를 사회 전역에 확산할 수 있는 채널이 필요하고, 확인된 진실을 바탕으로 허위정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시민적, 사회적 실천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K.F.C.는 미디어, 시민단체, 학계, 그리고 팩트체크에 관심 있는 시민 모두와 연대하여 허위정보에 대한 대응력을 키워나가고자 합니다.
연대와 더불어 실천 역시 중요한 지향점입니다. 팩트체크의 의미는 허위정보에 대한 실질적인 대응으로부터 나옵니다. 이를 위해서는 콘텐츠의 생산을 넘어 더욱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시민 차원에서 허위정보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의구심이 드는 분도 계실 것 같은데요. 그런 분들을 위해 사례 하나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K.F.C.에서 “태국 국왕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조롱한 적이 있다?”는 주장에 대한 팩트체크를 진행했었는데요. 검증 결과 해당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 K.F.C.는 해당 주장이 유포됐던 유튜브 측에 영상을 차단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유튜브에서 이 요청을 받아들여 현재는 해당 영상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처럼 시민팩트체크가 허위정보의 성공적인 차단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흔치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시민 차원의 실천이 허위정보의 피해를 줄일 수 있음은 분명합니다. K.F.C.는 허위정보가 유통된 디지털 플랫폼에 차단을 요구하는 것에 더해 허위정보를 발언한 인사에게 정정을 요구하거나, 허위정보가 유통되고 있는 경로에 역으로 팩트체크 콘텐츠를 공유하는 등의 직접적인 행동을 이어 나가고자 합니다.
K.F.C.는 왜 단체(Group)가 아닌 공동체(Community)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을까요? 팩트체크가 특정 단체의 전문적인 기술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를 이루는 모든 구성원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랜 역사 동안 진실을 조작하고, 왜곡하고, 통제하는 권력은 소수가 독점해 왔습니다. 왕, 독재자, 미디어, 엘리트, 인플루언서가 진실을 좌지우지하곤 했습니다. 모든 시민이 함께하는 시민팩트체크야말로 시민이 진실의 주권을 되찾을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며, 어쩌면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K.F.C.는 시민팩트체크가 문화로서, 또는 시민성으로서 자리 잡은 사회, 그렇기에 시민이 진실의 주체인 사회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코멘트
2올려주시는 팩트체크 글들을 보며 K.F.C.의 활동을 응원하고 있었는데요, 이렇게 경험을 쭉 적어 주시니 더 생생하게 함께 돌아보는 느낌이 납니다.
팩트체크를 누군가에게 맡겨두지 않고, 시민이 직접 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직접 보여주고 계시네요.
K.F.C의 팩트체크 결과로, 허위조작영상이 유튜브에서 차단된 사례도 있었군요!
앞으로도 응원하며 함께하겠습니다.
시민이 진실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독립적이고 창의적으로 팩트체크를 진행하는 모습이 정말 멋지네요. 특히 허위정보가 넘쳐나는 요즘, 시민의 참여는 진실을 지키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을 거예요. K.F.C.처럼 시민과 사회가 함께 연대하고 실천해 나간다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 #팩트체크 #시민참여 #함께하는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