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태원은 모두에게 어떤 곳이 될까
캠페인을 끝내며
9월 27일, 글을 시작하기 전 이태원 거리에 카메라와 함께 답사를 나왔다. 금요일이기에 다소 사람이 몰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거리는 한산했고 내가 기억해온 활기 넘치는 상가가 가득했던 거리에는 임대인을 구하는 종이만이 남아 많은 이들에게 쓸쓸한 단상을 남기고 있었다.
사실 이태원은 코로나로 전국이 통제되었던 시절 전부터 꺾여가고 있었다. 문화거리를 불온한 이들이 배회하는 장소라고, 젊은이들이 일탈을 벌이는 장소라고,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물건이 유통되는 장소라고, 손가락질 하던 이들의 소원대로 거리의 상권은 다양한 이유로 무너졌다. 거리에 큰 상처를 남긴 첫 문제는 코로나였고, 다음으로 발생한 문제는 이태원 참사. 두 사건이 짧은 숨으로 연달아 발생하면서 많은 상인들의 숨통을 조였고 이제는 아무도 생기 넘치는 젊음의 거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태원을 떠올리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이태원은 살아날 수 있을까. 이 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발자국씩 내딛으며 거리의 미래를 상상해봤다.
역사에서 나와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참사 당시의 거리였다. 참사가 발생한 장소는 1번 출구에서 불과 몇 걸음 걸어가지 않아도 바로 도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당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었을까. 역사와 바로 연결된 곳, 세계음식거리의 초입부에 속하는 골목, 짧게만 생각 해봐도 많은 인파가 있었으리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27일 당일, 유달리 거리 주변에서 순찰하는 경찰차들이 눈에 띄었다. 3번 출구 앞에 보이는 작은 파출소가 이 거리의 모든 치안 업무를 담당할 수 있는 걸까.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날만큼은 파출소 인근을 기웃거리고 싶지 않았다.
길을 건너 3번 출구 근처로 갔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건 커피숍에 붙어있는 임대문의 딱지였다. 축제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근방은 공실이 된 건물로 가득했다. 참사의 시간을 이겨내기에 2년의 시간은 아직 모자란 건지. 이 조용한 건물들을 보고 과거 평일 낮, 사람으로 가득한 이태원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거리의 페인팅을 싫어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할렘가의 문화가 아니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런 자유로움이 거리의 특색을 만들어준다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태원은 애초에 이런 도시였다. 이 건물은 3번 출구를 따라 내려가면 보이는 건물이다. 이태원 앤틱 가구거리 초입에 바로 보이는 건물, 이태원하면 문화, 술, 음식으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겠지만 이태원에는 꽤 오래전부터 앤틱 가구거리가 있었다.
앤틱 가구거리도 예전처럼 활기가 넘치지는 않았지만 내가 갔던 날 축제가 있어서인지 상인들은 거리에 물건을 진열해놓고 오랜만에 밖에서 많은 이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거리에 진열된 수많은 가구, 도기, 그림 액자, 그리고 이 물건들을 구경하기 위해 찾아온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 앤틱 가구라는 개념 자체가 인기가 없어진 세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닐까.
앤틱 가구거리를 둘러보고서는 이태원 시장에 잠깐 들렀다. 예전에는 여기 시장도 사람들이 자주 들르는 코스 중 하나였는데, 요즘에는 해방촌 신흥시장이 젊은 인구 사이에서 핫 플레이스가 되어서인지 유달리 한산해보였다.
옷을 구경하러 다니던 수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거리에는 이 근방이 익숙한 현지인들만이 남았고 외부인의 발길은 끊겼다. 옷을 인터넷으로 가장 많이 사는 젊은 세대에게 건물 지하에 내려가 가게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옷을 사라고 한다면, 아마 아무도 쉽게 하려고 하지 않겠지.
시장 밖 거리에서는 저마다의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내가 갔던 당일에는 앤틱&빈티지 축제가, 방문했던 날로부터 며칠 후에는 세계문화음식거리에서 축제가, 그리고 10월 말에는 할로윈 축제가 열릴 것이다. 퍼레이드, 코스튬 파티, 다양한 음식과 음악까지 다들 그간의 불황을 잊고 즐거운 한때를 보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실이 되어버린 상가는 거리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그간 서평을 쓰면서 2년의 시간이 흘렀으니 이제는 과거를 추모하는 형태에서 새롭게 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꾸준히 써왔다. 돌을 던지는 시민들도 바뀌어야 하고, 정부도 언론도 다른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이야기. 이 말은 이태원을 향한 목소리도 다르지 않다. 작년 이맘때쯤 이태원 방문자 수가 코로나 이전의 80% 수준으로 회복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하지만 그 뒤에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 말도 있었다. 이미지 회복은 아직이라는 말,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고 두려워하고 있다. 1년 전에도,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도 말이다.
유튜브에 이태원에 대해 검색을 해보면 이태원 참사 이후 거리에 대한 지적을 하는 내용의 영상들이 여럿 나온다. AED가 부족했다는 지적, 상권의 발달 형상과 안전장치 미흡에 대한 지적, 적은 통제 인원과 이에 대한 한계에 관한 지적까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이태원은 안전하지 않은 곳이라는 인식이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안전이라는 키워드에 대해 다소 미온적으로 대처하거나 다소 무식한 접근 방식으로 대처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속칭 군대식으로 해결한다고 표현하는 문제가 생기면 문제의 원흉을 없애는 방식 같은 경우 말이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다고 이태원 거리에 사람이 모이는 것을 금지하고, 축제를 금지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안전한 거리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더욱이 모색하는 것이 정답 아닐까?
거리를 걷고, 축제를 둘러보고, 사진을 찍다 결국 이태원역 3번 출구로 돌아왔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1번 출구로 가야했고, 나는 이 거리를 떠나기 전에 3번 출구 앞 파출소에 다시금 멈춰 섰다. 파출소 앞 주차장에는 경찰차가 멈춰있는 경우가 없었고 잠깐 들렀다가 나가는 차, 멈췄다가 출발하는 차로 입구부터 정신이 없었다. 이들은 얼마나 바쁜 삶을 살고 있을까. 이들이 이번 축제에도 안전한 이태원을 만들어줄까. 시민들에게는 즐거운 이태원, 활기찬 이태원도 물론 필요하지만 안전하다는 믿음을 주는 이태원이 지금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 3번 출구로 들어가 1번 출구로 나가며 그날의 100m는 얼마나 멀었는가, 다시금 생각해본다.
이 캠페인을 함께한 후 길과 거리에 관심이 생겨 서울의 거리와 관련된 책을 읽고, 또 강연을 듣고 있다. 최근에 들었던 강연은 서울와우북페스티벌에서 들은 <<서울의 골목길에는 산이 보인다>>라는 책을 기반으로 한 서울의 골목길과 산에 대한 강연이었다.
나는 골목길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대로에 기업인들이 생각하는 거리가 그려진다면 골목길에는 시민들이 생각하는 거리가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화가일수록 대로에는 누구나 다 들어갈 수 있는 프렌차이즈가 놓이고 골목길에는 성공을 꿈꾸는 시민들의 가게가 놓인다.
최근 이태원에서 술집보다 카페의 성공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술을 과하게 마시는 문화가 젊은 세대에서 없어지고 있는 점, 신흥시장의 부흥으로 인근 데이트코스라 부를 수 있는 카페들이 얻는 반사이익, 다양한 카페 문화 형성까지 아마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다양한 요소들로 거리가 새로운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상권은 정부가 개입하지 않아도 죽고 살며, 몰락과 발전을 반복한다. 이태원은 잠시 꺾였지만 다시금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공이다. 이제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거리의 이미지가 아닐까. 께름직한 이태원, 안전하지 못한 이태원이 아닌 과거를 이겨낸 새로운 이태원이라는 이미지, 안전한 이태원이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도록 평소부터 축제까지 앞으로도 안전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올해도 이태원 축제가 크게 열린다는데 이번 행사도 부디 안전하게 끝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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