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이태원 참사] 참사를 되돌아보는 한 사람의 이야기

2024.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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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환경, 데이터, 행정과 정책에 관심이 많은 백수입니다. '당연하다'고 말하는 일에 '왜 그러냐고' 한 번 쯤은 물어보고 싶습니다. 잘 쓰고 잘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Intro.

글을 쓰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그들이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이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참사와 분리되어 자연스러운 망각의 흐름 속에서 그 날을 잊어갔던 것이 최근 나의 모습이었다. 참사가 큰 일이었다는 사실을 이성적 판단으로 알 수는 있었지만, 마음 깊은 곳의 진심으로 알지는 못하였다고 느꼈다. 그렇기에 참사에 대한 이미지와 감정이 내면에 뿌리내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태원 참사 관련 다큐를 찾아서 시청하였고, 이태원특별법 관련 입안 자료들을 프린트하여 읽어보았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아 무작정 2일간 “참사” 키워드에 관련된 장소를 다녀왔다. 평소 관심이 있던 삼풍 백화점 참사, 세월호 참사 관련하여 추모장소를 방문하였다. 이태원 참사 관련 장소는 방문하지 못하였다. 이유는 체력의 한계 때문에...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길 바란다. 참사의 당사자들만큼 사건에 대하여 깊은 진심으로 말하기에 부족하겠으나 알량한 마음으로 느낀 바에 대하여 글을 써내려본다. 마음 한 켠의 무심함을 반성하며 사람들 곁으로 나아가는 여정으로 봐주면 좋겠다.

첫 여정, 삼풍백화점 참사 위령탑

첫 방문 장소는 93년 삼풍 백화점 참사 위령탑이다. 양재시민의숲으로 들어가 다양한 위령탑을 지나 깊숙이 자리한 삼풍 참사 위령탑을 발견할 수 있었다. 탑 뒤로는 유가족들이 놓은 꽃들이 있었고, 주위에 새겨진 글씨들을 읽었다. 참고로 위령탑은 실제 참사 장소와 멀리 떨어져 있다. 참사 장소는 현재 아크로비스타라는 아파트가 들어서서 그 당시의 현장을 경험하기 어렵다. 당시에는 참사를 대하는 방식이 많이 부족하였다고 생각이 되었다. 현재 우리가 참사를 대하는 자세는 이때보다 많이 발전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어디쯤 와있을까.

둘 여정, 단원고 4.16 기억교실

단원고 4.16 기억교실의 모습이다. 교실에 붙여진 대학교 진학 포스터가 마치 고등학교 학창시절로 시계를 돌린 듯한 느낌을 주었다. 참고로 글을 쓰는 본인은 97년생으로, 학년은 차이가 나지만 참사의 희생자들과 동갑내기이다. 단원고 416 기억교실은 세월호 희생자 학생들의 교실을 기술적으로 최대한 보존하여 옮겨둔 것이었는데, 책상 위 추모의 글들을 하나씩 읽어보며 깊은 한숨이 쉬어졌다. 어떤 감정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왼쪽 손목에 차고 다니는 세월호 팔찌에 새겨진 REMEMBER, 기억해야 한다는 말의 무게가 느껴졌다. 이들이 살아있었다면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서 존재하였을까. 

학생들을 추모하며 사람들이 적어둔 글을 읽어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누구든 죽음 앞에 서면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기를 바라게 된다는 것이다. 죽음 이후의 세계는 죽은 자들의 몫일진데, 그렇다면 우리들은 산 자들의 세계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을 마주한다. 단원고 416 기억교실에서 본 ‘기억하고 기록하고 행동하라는 문구를 곱씹어본다. 어떻게 하면 망각해가고 무심해져가는 사람들에게 더욱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셋 여정, 다시 그날로.

2022년 10월 29일의 나는 캠핑장에 있었다. 교회 형, 누나들과 함께 고기도 구워 먹고 담소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가을 사진도 찍고, 분위기도 즐기며 말이다. 다음 날 아침에 깨어나서 교회 형이 “어제 밤에 이태원에서 큰 일이 있었던 거 같은데?” 하는 말로 운을 떼었던 것이 처음 참사에 대한 인지였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지는 것을 지켜보았고, 뉴스 댓글에 있던 링크를 통해 모자이크되지 않았던 원본 동영상을 접하며 숨막힘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교회로 돌아가 예배를 드렸고, 하루가 저물었다.

그해 11월 이태원을 방문하였고, 다음 해 9월 즈음 이태원을 방문하였다. 무슨 마음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무언가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2024년 10월의 나를 생각해본다. 요즘의 나는 무심했던 것 같다. 간간히 관련 뉴스를 접하며 알량하게 분노하고 지켜보는 사람이었을 뿐, 실상은 굉장히 무심했던 것 같다. 

마무리하며

이태원 참사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어려웠다. 이태원 참사에 대하여 마음이 많이 멀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망각의 커브를 자연스레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와 동년배, 혹은 같은 나잇대에 속하는 이들이 죽었음에도... 나는 무심하게 살았던 것 같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있고 관심 있었다는 듯이 글을 쓰는 것이 죽은 이들을 기만하는 일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찾아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솔직한 마음이다.

참사라는 개념에 접근하는 여정을 통하여 다양한 질문들을 해보았다. 우리가 참사를 대하는 태도는 어디쯤 와 있을지, 산 자들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당장 답을 내리지 못할 것들일지라도 질문을 던져본다. 앞으로의 삶에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나의 추모의 방식이 될 것 같다. 그 이후에야 무심했던 나의 마음 한켠을 용서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의 삶과 별개로, 이 사회가 참사가 던지는 질문에 대하여 알찬 답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동일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p.s. 최근 뉴스를 통해, 이태원 참사 최고 책임자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뉴스를 접했다. 위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떳떳한 답일까 곱씹어본다. 양심적인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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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 공간이 가지는 의미가 분명히 있다는 걸 읽으면서 느꼈는데요. 이런 공간이 조금 더 보편적인 공간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네요. 2022년 10월 29일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 것 같아요. 아무래도 심리적으로 느낀 충격이 컸기 때문에 기억에 남아서 그런 거겠죠. 그런 기억들이 참사를 잊히지 않도록 만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삼풍참사위령탑은 처음 봤습니다. 이태원참사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기억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글, 감사합니다.

저 또한 읽으면서 생각을 돌아보게 되네요. 사람의 망각은 굉장히 빠르기에... 자칫 잘못하면 금방 잊겠구나... 하는 무서움도 듭니다. 덕분에 저도 한번 더 기억하고, 한번 더 추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