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49
람시 비회원

이미 심각한 기후위기의 상황에서 각 국가들의 합의와 각각의 실천에 따른 전지구적 탄소중립의 실현은 필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이는 어떤 입장인지를 가리지 않고 공통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방향성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제 속에서 경제성장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 하에 탄소를 발생시키는 산업을 지속하며 탄소를 줄이는 과학기술개발을 통해 중립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관점들이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이는 탄소배출은 계속 늘어오거나 유지되고 있고, 탄소를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요원하고, 개발되더라도 그럴 시간이 우리에게 더이상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자본주의적 성장주의 그 자체가 자연과 환경의 적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인간의 욕망에 따른 생산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에 따른 민주적 통제의 생산의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무분별한 생산을 제약하고, 공공적 활용을 전제하는 생산의 범위를 늘리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개인의 소유를 부정할 수는 없고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공공재, 공유재의 범위를 넓혀나가며 공존과 지속가능성을 지향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성장 없는 번영의 길과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국가간의 합의만으로도 어려울 것입니다. 이는 생태적 전환을 염원하며 경제 및 사회 활동을 하는 주체들의 공동체의 형성을 통해 좀더 가능한 것이 됩니다. 그것은 사회적경제라는 이름 하에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의 모습으로 추진될 수도 있는 것이며, 커먼즈 활동일 수도 있으며, 환경운동의 모습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장지상주의의 삶이 아닌 다른 대안적 삶이 가능하다는 새로운 공동체의 모델과 사례를 제시하고 그것의 영향력이 확대 될 때 우린느 성장 없는 번영의 사회, 탄소중립의 전지구적 실현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이러한 정치/운동에 전제되어야 할 관점들이 있습니다. 인간과 자연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입니다. 서구적 이분법에 따르면 인간과 자연, 남성과 여성 등은 대립쌍으로 여겨지며 전자가 우선되며 후자는 부차적이거나 적대적인 것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두 쌍들은 전체의 일부입니다. 인간은 은 인간 외의 것을 자연이라 부르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은 인간은 자연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인간/남성이 지배하는 자연/여성의 구조적 표현은 가부장제입니다. 가부장제는 남성생계부양자가족이라는 제도를 통해 자본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됩니다.(현재는 남성생계부양자가족형태는 약하되고 맞벌이가 기본이 되었지만 더많은 월급과 더 나은 조건의 남성과 여전히 사적 영역에서의 재생산노동이 강제되는 여성이라는 경향성은 작동하고 있습니다.) 결국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는 자본주의, 산업주의와 연관되어 자연과 여성을 착취하는 제도가 됩니다. 생태적 전환을 위해서는 가부장제적 자본주의 혹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에 반대하고, 다양한 성이 함께 공동의 필요에 따른 삶을 지향할 필요가 있는 셈입니다. 이는 당연하게도 자연에 대한 책임을 인간의 윤리 안에 넣어 인식을 확산해야 한다는 주장과 조응합니다.

깊은 분석에 따라 엄밀하게 작성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관점에서의 논의와 주장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써보고자 하였습니다.

다이 비회원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있어, 불필요한 자원들이 너무 많이 소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원을 절약하자는 극단적인 제안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필요가 아닌 과시에 의해 낭비되는 자원을 막자는 의견을 내고 싶습니다. 어떤 단기적인 유행을 위해 자원이 소비되는 현상 같은 것들을 조금만 자제하자는 것이지요.

단비 비회원

규제가 기후환경 악화를 늦출 수 있는 조금 더 빠른 길이 되겠다는 생각은 듭니다만, 궁극적으로 '자연에 대한 책임을 인간윤리' 중 하나로 보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윤확대를 맹목적으로 좇는 자본주의 하에서 어떻게 자연을 '개발대상'으로 보지 않을 수 있을지...가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긴 합니다. 고민을 늘어놓긴 했지만..결국 체제를 뒤엎으려는 것보다는 규제가 우선이 될 수밖에 없겠네요.

묘도 비회원

세계 상위 10% 부자라고 하면 멀게 느껴졌는데 우리돈 1억 이상의 재산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한국이 결코 환경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크게 느끼게 됩니다.
글을 읽으면서 결국은 ‘인간’이 어떻게 욕망을 다스릴 것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Amy 비회원

현 체제를 바꾸기는 당장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당장 연말부터 자본주의를 철폐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기후위기는 우리 코앞에 다가와 있는 문제입니다. 빠르게 변화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자연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규제를 강화하고, 기업들도 경영에 당장 반영하도록 하는 일도 중요해 보입니다.

도란 비회원

자연을 ‘개발 대상’과 ‘인간 맘대로 다룰 수 있는 재료’로 보는 시각이 없어져야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도록 부추기는 현 체제를 돌아보고 바꾸어야 합니다. 냉장고 하나로는 부족해, 김치 냉장고는 필수야, 와인냉장고를 사야 잘 사는 사람이지, 라고 공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안됩니다.

빠띠 비회원

지금까지의 논의들을 살펴 보면 투표 상으로는 [1] ‘기후위기와 노동권’(7표), [2] ‘개발도상국과 빈곤국가가 입는 피해’(5표), [3] ‘어린이들이 입는 피해’(4표)가 좀더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고민돼요/잘 모르겠어요'(6표)가 2위라는 것입니다.

댓글을 살펴 봤을 때

[1] 기후위기와의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개발 동학의 직접적인 관련성에 따라 체제 전환과 노동자의 조건 변화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성의 제기
[2] 선진국의 탄소배출로 인해 피해를 받는 개발도상국과 빈곤국이라는 기후불평등 속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전지구적 대응 체계를 마련할 필요성의 제기
[3]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의 직접적 당사자로서의 어린이(청(소)년)

등으로 문제의식이 구체화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고민돼요/잘 모르겠어요'가 높게 나타나는 것은 우선시되는 것을 선택하기 어렵고 새로운 문제틀이 필요하다는 인식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범지구적 차원에서의 기후위기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과 ‘전지구적 차원의 새로운 생태적 경제성장 시스템의 마련이 필요’하다는 점은 전반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관점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 토의 콘텐츠에서의 투표를 활용한 논의의 틀을 넘어 생각해봐야 할 새로운/다양한 초점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다양한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우선시 되는 것을 선택하기가 어렵다. 혹은 그렇게 접근해서는 안된다.

[2] 인간중심의 관점에서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 결과의 차원에서 우선성에 대한 논의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중심으로 접근할 것인가 자연 중심으로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2-1]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2-2] 인간의 생존을 위한다는 것이 실제로는 일부의 인간을 위한 접근은 아닌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2-2-1] 기후 난민 문제도 고민되어야 한다.
[2-3] 다양한 영역에서의 결과로서의 피해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원인과 가해에 초점을 두고 접근할 필요가 있음

[3] 전방위적인 논의는 피상적이게 될 수 있기 때문에 포커스를 좁혀 논의 할 필요가 있다.
[3-1] 구체적인 대안과 즉각적인 실천에 대한 필요성의 제기

이러한 논의에 따르면 기후위기의 다양한 영역에서의 결과로서의 피해에 대한 우선적인 대응을 고려하기보다는, 기후위기를 발생시키는 원인과 가해는 무엇인지에 대한 파악 속에서 그 원인을 소거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실천이 무엇인지를 심층적으로 논의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투표 결과와 논의에 따르면 ‘기후위기의 원인을 소거하고 기후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전지구적인 경제개발 체제의 생태적 전환’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위한 심층적 논의가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오원석 비회원

특정 국가는 특정 국가의 체제에 따라 관리되고 운영되지만 전지구적인 관리와 책임은 소홀한 것 같습니다. 더 많이 사용했다면 더 많이 책임을 져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