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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 비회원

그동안 대통령 사면권을 보면서, 범죄의 경중보다 피의자의 사회적 위치나 능력을 중심으로 사면 처리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즉 사면권을 이용해 사법부를 견제,감시하거나 법의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의 권력 독점을 더욱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따라서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람시 비회원

개인적으로는 일단 바로 의견을 달기에는 어려운 주제인 것 같습니다. 각각 나름의 근거가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도란 비회원

대통령에 의한 특별사면은 전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아니므로 반대합니다.

묘도 비회원

다른 부분은 잘 모르겠지만 치매와 관련해서는 이번 정부의 공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도란 비회원

매캐한 공기와 기름, 알루미늄 가루, 뜨거운 열이 가득한 공장은 몇년 전 저의 일터였습니다. 하루만 있어도 소음에 익숙해지고, 저처럼 말을 많이 하는 보직을 가진 사람은 목이 곧바로 갈라집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보전하기 위해 기계의 속도에 자신을 맞추어야 합니다. 기계의 속도에 맞추지 못하면 바로 크게 다치는 곳이니까요.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기계의 움직임을 돕는 보조장치였습니다. 기계가 더 빨리 생산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안전은 쉽게도 포기되었습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는 온갖 유해물질과 쇳가루가 매일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옵니다. 액체, 기체, 고체, 형태도 다양합니다. 그 폐기물들이 흘러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생산을 위해 당연시됩니다. 그곳에 일주일 정도 들어 있으면 지구도, 물도, 풀도 잊게 됩니다.

기계가 더 빨리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사람과 자연이 위협받고 있는 현장은 우리 삶과 멀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만든 부품은 우리의 자동차로, 컴퓨터로, 핸드폰으로 들어옵니다.

기후와 노동권은 함께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발이나 성장이라는 목표가, 그리고 산업 자체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단디 비회원

예를 들면,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화력석탄발전소 건립을 당장 중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석탄발전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대책과 일자리 전환, 발전 산업의 전환까지 같이 논의하고 실천 방안을 찾아야겠지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후자의 논의를 적절히 다뤄낼 국가적, 사회적 공론장이 부재하다 보니 각자의 주장만 난무하고 실질적인 합의와 전환은 이뤄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합니다.
위기의 시대에 기업과 자본을 위한 기술, 투자로 이 문제를 해결할게 아니라 새로운 노동의 계약 방식과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서 새로운 경로를 만들어내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람시 비회원

2021년 올한해는 미국과 유럽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이상기후에 따른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전지구적인 탄소중립의 실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부터 플라스틱을 적게 쓰자며 빨대와 일회용 플라스틱컵을 쓰지 않는 옳은 실천들은 점점 늘어가고 있지만, 엄청난 탄소를 배출하는 산업이 끝없는 경제성장을 형해 작동하고 있다면 문제의 해결은 요원할 것입니다. 그 산업을 작동하는 것이 자본주의에서의 자본의 이윤추구와 관련이 있다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결국 지구적 차원에서의 탄소중립에 대한 합의하에 국가적 차원에서의 탄소중립을 지향하는 산업 체제의 전환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산업 체제의 전환을 가로막는 요인이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만인 것은 아닙니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해당 산업에 종사하며 임금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삶 또한 중요한 논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산업의 체제 전환은 기존 산업에의 노동자의 실직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노동자들이 실직 상태에서도 더 나은 노동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적극적인 사회안전망 및 교육 제도의 마련, 탄소중립의 친생태적인 노동 체제에서의 노동환경 마련 등을 고민해야 합니다. 새로운 체제는 혁신에 기반하여 더 나은 사회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사회혁신의 차원에서 고민되어야 할 것입니다.

생태주의적이고 노동친화적이고,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사회혁신의 체제 전환이 허망한 단어들의 나열로 남도록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 비전에 구체적인 실험들을 채우고 하나씩 실현해 나갈때만이 우리는 기후위기를 극복할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당사자이기도 한 노동자들이 생태적 체제 전환의 장애물이 아니라 주도세력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비전과 로드맵을 마련할 때에만이 그 가능성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람시 비회원

이미 심각한 기후위기의 상황에서 각 국가들의 합의와 각각의 실천에 따른 전지구적 탄소중립의 실현은 필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이는 어떤 입장인지를 가리지 않고 공통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방향성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제 속에서 경제성장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 하에 탄소를 발생시키는 산업을 지속하며 탄소를 줄이는 과학기술개발을 통해 중립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관점들이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이는 탄소배출은 계속 늘어오거나 유지되고 있고, 탄소를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요원하고, 개발되더라도 그럴 시간이 우리에게 더이상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자본주의적 성장주의 그 자체가 자연과 환경의 적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인간의 욕망에 따른 생산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에 따른 민주적 통제의 생산의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무분별한 생산을 제약하고, 공공적 활용을 전제하는 생산의 범위를 늘리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개인의 소유를 부정할 수는 없고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공공재, 공유재의 범위를 넓혀나가며 공존과 지속가능성을 지향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성장 없는 번영의 길과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국가간의 합의만으로도 어려울 것입니다. 이는 생태적 전환을 염원하며 경제 및 사회 활동을 하는 주체들의 공동체의 형성을 통해 좀더 가능한 것이 됩니다. 그것은 사회적경제라는 이름 하에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의 모습으로 추진될 수도 있는 것이며, 커먼즈 활동일 수도 있으며, 환경운동의 모습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장지상주의의 삶이 아닌 다른 대안적 삶이 가능하다는 새로운 공동체의 모델과 사례를 제시하고 그것의 영향력이 확대 될 때 우린느 성장 없는 번영의 사회, 탄소중립의 전지구적 실현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이러한 정치/운동에 전제되어야 할 관점들이 있습니다. 인간과 자연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입니다. 서구적 이분법에 따르면 인간과 자연, 남성과 여성 등은 대립쌍으로 여겨지며 전자가 우선되며 후자는 부차적이거나 적대적인 것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두 쌍들은 전체의 일부입니다. 인간은 은 인간 외의 것을 자연이라 부르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은 인간은 자연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인간/남성이 지배하는 자연/여성의 구조적 표현은 가부장제입니다. 가부장제는 남성생계부양자가족이라는 제도를 통해 자본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됩니다.(현재는 남성생계부양자가족형태는 약하되고 맞벌이가 기본이 되었지만 더많은 월급과 더 나은 조건의 남성과 여전히 사적 영역에서의 재생산노동이 강제되는 여성이라는 경향성은 작동하고 있습니다.) 결국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는 자본주의, 산업주의와 연관되어 자연과 여성을 착취하는 제도가 됩니다. 생태적 전환을 위해서는 가부장제적 자본주의 혹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에 반대하고, 다양한 성이 함께 공동의 필요에 따른 삶을 지향할 필요가 있는 셈입니다. 이는 당연하게도 자연에 대한 책임을 인간의 윤리 안에 넣어 인식을 확산해야 한다는 주장과 조응합니다.

깊은 분석에 따라 엄밀하게 작성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관점에서의 논의와 주장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써보고자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