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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소네트 2024> 연극
<셰익스피어 소네트 2024> 연극
06.23.24
이번 연도 첫 연극으로 <셰익스피어 소네트 2024>를 보게 되었다. 벌써 일 년의 반이 지난 시점에서의 첫 연극이라니, 시간이 참 빨리 간다. 오랜만에 연극을 보러 가서 설레는 마음 가득 앉고 안산으로 갔다. 연극을 예매하면서도 신기했던 건, 걸어가면서 연극이 진행된다는 점과 연극의 시작과 끝이 다르다는 점이다. 보통 연극은 앉아서 무대를 바라보기 때문에 걸어가는 방식이 독특하게 다가왔다. 또 실내 공연장이 아닌, 야외를 장소로 삼았다는 점도 새로웠다.
일기예보에는 비가 75% 확률로 온다는 소식에 걱정과 기대로 뒤섞인 상태로 안산을 향해 갔다.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 구름을 조금만 눌러도 비가 내릴 것 같았다. 고잔역에서 천천히 걸어가, 출발 장소인 안산산업역사박물관 입구에 도착했다. 처음에 도착했을 때 살짝 당황스러웠다. 정말 이 나무 밑에서 모이는 게 맞겠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이 아무도 안 오길래 더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메시지에 보낸 사진과 같은 장소였고, 작은 노란 천막이 있어서 그곳에서 기다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연극은 한 명 또는 두 명을 위한 연극이었다. 동행할 배우 한 분과 관객은 한 명에서 두 명이라니. 이런 연극은 진짜 처음이다.
연극은 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 시작해 안산올림픽기념관 체육관에서 끝났다. 배우님은 연기를 하시기보다는 나레이션으로 상황을 묘사하고 설명해 주셨다. 연극은 생명안전공원이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세월호참사 5주기에 생명안전공원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세월호참사 9주기에는 안산시민들의 반대가 컸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지금 세월호참사 10주기에는 생명안전공원을 기다리고 있다. 연극을 진행해 주신 배우님은 생명안전공원은 애도할 수 있는 공간, 슬퍼해도 괜찮은 공간, 느끼는 감정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공간, 나를 마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모두를 위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꺼번에 사라진 304명을 증명하고 실재할 수 있게 하는 공간이라고 했다. 공원의 가장 중요한 장소를 ‘봉안당’이라 한다. 빛과 그림자,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는 공간이다. 대부분 삶과 죽음을 분리하지만, 죽음도 삶의 일부이다. 삶의 일부인 죽음을 우리는 떼어놓고 있지만, 어쩌면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간단한 공원의 설명이 끝나고 우리는 배우분을 따라 길을 걸었다.
(스피커에서 들리는 소리를 영상으로 담아보았는데, 영상첨부가 안 되어서... 아쉽게 올리지는 못했어요...)
걷다 보니, 메아리처럼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한 스피커에서 여러 명의 목소리가 겹쳐서 들리고, 애타게 누군가의 이름을 부리고 있다. 다양한 감정과 톤으로 이름을 부르는 걸 들으니,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꼈다. 이름이 불리고 있다는 것. 그건 그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이 공원이 이들을 존재하게 해주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왜 304명의 이름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 이러한 질문들이 계속 들었다.
풀밭 속에서 걷다가, 강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가족들이 함께 산책하러 나오기도, 애인과 운동하러 나오기도, 반려견과 걷는 사람들도 있었다. 신호등도 지나고, 학교도 지나고, 아파트도 지나 체육관에 도착했다. 일상이 무대인 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한참을 걸어서 도착한 곳은 체육관이다. 텅 빈 체육관에는 책상과 의자뿐이다. 책상에는 시와 간단한 안내가 붙여져 있고, 시가 스피커로 낭송된다. 낭송이 끝난 다음에는 연극을 관람하는 우리가 읽어야 했다. 그다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이 시를 읽는 게 스피커로 틀어졌다. 도돌이표 노래하듯, 계속 반복되고 마지막에는 낭송하는 우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관람자는 연극에서 배제되어 있기 마련인데, 관람자 또한 연극에 포함이 되는 게 색달랐다. 시의 내용은 배우자가 처음에 생명안전공원을 설명했었을 때 쓴 표현이 들어간다. 시의 제목은 나무이고, 내용은 모두의 복음자리이던 나무가 베이게 되는 것에 대한 감정과 생각이 담겨 있다. 시는 모두에게 이로웠던 나무를 베어 넘기려는 나무꾼과 그러한 나무꾼을 말리지 않는 우리에 대해서 의문을 제시한다. 마지막에는 추억을 지키기 위해서는 밑동만 남았을지언정, 끌어안으라고 한다
나에게 이 시에서 가리키는 나무는 304명의 희생자 같았다. 누군가에게 보금자리가 되어주기도 하고, 누군가와 함께 웃고 웃었을 사람들이었다.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없지만, 그들을 추억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끌어안고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공간이 생명안전공원이라고 들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사, 죽음, 어둠, 그림자를 멀리하고 불미스럽다고 여긴다. 하지만 죽음은 삶의 일부라는 것. 결국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연극은 1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연극치고는 짧았지만, 큰 여운이 남는 연극이다. 색다른 장소와 장치의 역할과 의미가 궁금해지고, 시가 계속 맴돈다.
연극 소개는 이 링크를 타고 가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ieum.or.kr/user/show/view.do?idx=1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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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국제 심포지움] 세월호참사 10년, 진실 책임 생명 안전을 말하다
[4.16 국제 심포지움] 세월호참사 10년, 진실 책임 생명 안전을 말하다
국제 심포지움 개최
4.16재단, 세월호참사 10주기위원회, 참여사회연구소는 세월호참사 10주기를 맞아 6월 20부터 21일간 4.16 국제심포지움을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움은 국내외 재난참사 이후의 양상을 비롯하여 세월호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것과 사회의 변화 등을 살펴보고 생명과 안전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자리이다. 시민과 함께 걸어온 1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걸어갈 시간을 함께 계획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개최하게 되었다.
국제 심포지움 1일차 일정 6.20 (목)
- 개회
박승렬 4.16재단 이사장, 세월호참사 10주기위원회 공동상임위원장
김종기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세월호참사 10주기위원회 공동상임위원장
오혜란 4.16연대 공동대표
- 기조발제 재난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
더글러스 러미스 오키나와 국제대학 교수, 래디컬 데모크라시 저자
박래군 4.16재단 운영위원장
- 세션 1 재난 참사 피해자의 권리보장 현황과 과제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센터장
박희정 인권기록센터 ‘사이’ 기록활동가
김민환 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학 부교수
시모무라 세이지 아카시 육교 압사 참사 유가족
앤 에이어 힐즈버러 참사 생존자, 집단 트라우마 센터 공동센터장
- 세션 2 애도와 기억의 공동체의 현재와 미래
정원옥 문화과학사 문화사회연구소 대표이사
이태호 세월호참사 10주기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옐레나 왓킨스 911테러 참사 유가족, 집단 트라우마 센터 공동센터장
강희숙 조선대학교글로벌인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인문학연구원 재난이문학연구사업단장
4.16 국제 심포지움 중 1일차 오후 1시부터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되었다. 기조발제는 세월호참사 10년 후와 안전을 외면하는 국가를 넘기 위하여라는 주제로 두 발제자의 발표가 진행되었다. 기조발제에서 더글러스 러미스님의 말씀 중 “We have a life to live in equal”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점심식사 시간을 가진 뒤, 세션 1과 세션 2가 진행되었다. 세션 1은 재난 참사 피해자의 권리보장 현황과 과제에 대해 발제했다. 총 5발제 중 2발제는 국외 재난 참사, 3발제는 국내 재난 참사로 다양한 사례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첫 번째로는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센터장 유해정님의 세월호참사 피해자 운동과 재난 피해자의 권리에 대한 발제가 진행되었다. 유해정님은 세월호참사 전과 후로 대한민국의 재난참사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세월호참사 전에는 개개인 혹은 지역으로 범위가 작았다면, 세월호참사 이후에는 전국민적 범위로 커졌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가장 큰 이유로는 생중계로 전달되었다는 점을 짚으셨다. 재난참사가 전국민적인 트라우마로 커지면서 재난참사를 바라보고 해결하는 데 있어서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실종자가 아닌 미수습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국가가 수습을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피해지역이라는 단어가 생성되기도 했고, 피해구제가 아닌 피해자권리보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다. 전국적인 움직임은 재난피해자권리센터를 만드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재난피해자권리센터는 세월호참사를 넘어서서, 국내 9 재난참사 피해자와 함께하고 있다. 현재까지 센터에서는 피해자 권리 개념화, 피해자 권리 매뉴얼 작성, 재난피해자 지원, 재난피해자권리인식교육 등 다양한 곳에서 활약을 보인다.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시작되긴 했지만, 아직 보장받지 못하는 권리들이 있고, 8번째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 후퇴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앞으로 보장받지 못한 피해자 권리와 퇴보하고 있는 현상을 되돌리기 위해서 힘을 쓴다고 하셨다.
세월호참사 이후부터 기록활동을 하게 된 인권기록센터 ‘사이’ 기록활동가 박희정님이 두 번째로 발제했다. 박희정님은 10년간 세월호 유가족들의 활동을 정리하고 활동으로 인한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활동은 크게 세 파트로 나눌 수 있다.
- 시민과 피해자
세월호참사 초반에는 서명운동, 진실버스, 도보행진으로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은 시민과 대면하면서 시민-유가족의 결속력이 높아졌다. 특히 광화문 세월호 농성 천막을 중심으로 결속력은 급속하게 단단해졌다.
- 문화예술활동과 피해자
문화예술활동은 다양한 벽들을 허무는데 기여했다. 416공방은 함께 만들고 대화를 하면서 유가족들이 마음을 열고, 다시 사회로 나올 수 있는 계기가 만들었다. 또한 대화는 생존자가족과 유가족간의 관계가 개선하기도 했다. 노란리본연극단과 416합창으로 시민들을 만나게 되면서 피해자다움 즉, 피해자는 슬퍼야하고 우울해야하고 화나 있어야는 선입견을 깼다. 416목공협동조합은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목공품을 만들고 판매하면서 참사를 기억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꿈숲학교, 전시회 등 다양한 활동들을 이어나가고 있다.
- 기록하는 피해자
참사 초기부터 정부는 세월호참사에 대한 기록을 없애려는 행동들을 해왔기 때문에, 유가족들은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자료실을 만들어서 세월호참사와 관련된 기록들을 보관하고 있다. 처음에는 기록을 보관하기 위해서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쌓아놓는 기록이 아닌 읽히는 기록”을 만들고 싶다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그렇게 재난피해자의 기록이 담긴 책, 「502번의 금요일」이 출판되기도 했다.
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학 부교수 김민환님은 기억공간의 달라진 형태와 생명안전공원의 형성 과정에 대해 발표해주셨다. 세월호참사 전의 기억공간은 정해진 장소에서 일시적으로 기억한다는 의미와 가까웠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기억공간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전과 같은 방식의 기억공간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많은 고비를 거쳐야 했다. 부지 선정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세월호 추모공원 건립 계획이 확정되어서, 추모공원에 대한 워크샵이 진행되었다. 워크샵에서는 추모공원에 대한 시민 지침서를 만들었고, 거의 대부분의 의견이 반영이 되었다. 건립 계획은 확정되었지만, 안산시와 약속한 10주기 건립이 지켜지지 않았다. 김민환님은 생명안전공원 건립이 잘 이루어지길 바라며, 계속 힘을 쏟는다고 하셨다.
세션 1의 마지막 두 발제는 국외 재난참사 유가족과 생존자의 이야기다. 아카시 참사 유가족 시모무라 세이지님과 힐즈버러 참사 생존자 앤 에이어님이 이번 국제 심포지움을 위해 먼 발걸음을 해주셨다.
시모무라 세이지님은 일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재난참사에 대한 대한민국의 활동에 놀라셨다고 한다. 지역 콘서트나 강의를 진행하기는 했지만, 유족들이 모여서 추모식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또한 일본에는 ‘기억의 공간’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한국에서의 활동을 많이 본받아야겠다고 밝히셨다. 시모무라 세이지님은 유족지원과 피해자지원을 위해서 오랫동안 싸워, 유족지원센터를 만들게 되는 과정을 이야기해주셨다. 정부에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된 상태에서 유족지원이 가능하게끔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또한 그를 비롯한 활동가들은 1년간 유족지원에 대한 유가족들의 의견을 취합해 반영했다. 유족지원센터가 건립이 되었지만, 해결할 문제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계속 싸우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발제를 끝내기에 앞서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하기’를 강조했고,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달라고 말씀하셨다.
앤 에이어님은 힐즈버러 참사가 영국에서 어떻게 다루어져 왔는지에 대한 과정에 대해서 설명하셨다. 힐즈버러 참사는 이태원 참사와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이태원 참사처럼 참사피해자의 잘못으로 비난받았고,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었다. 다행히 20주기 추모제에 참여한 의원의 관심을 계기로 참사의 진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 앤 에이어님은 세 가지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1. Be careful what we wish for. Because truth did not make me better.
2. Truth does not bring justice, but without truth there is nothing.
3. Truth is precious for wide well being of society.
진실은 밝혀졌지만, 진실이 바로 정의를 실현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한다. 하지만 진실이 없다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회 전반의 안전을 위해서는 진실이 꼭 필요하다고 하셨다. 앤 에이어님은 집단 트라우마 센터 공동센터 공동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렇듯 피해자권리에 대한 투쟁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이다. 5분의 발제가 끝난 후 토론 및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잠깐의 휴식을 가진 뒤, 세션 2가 진행되었다.
세션 2는 참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애도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로 진행되었다. 911테러 참사 유가족 옐레나 왓킨스님은 온라인으로 발표를 진행했다. 옐레나 왓킨스님은 외국인 유가족으로 정보가 부족해서 참사 당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렇게 옐레나 왓킨스님은 영국 내에 유가족 모임을 진행하게 되었고, 공동체 재난 대응 단체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옐레나 왓킨스님은 미국에서 만들어진 기념관 및 박물관에 유족 물품과 사진을 기부했다고 한다. 그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지만,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했다고 의사를 밝혔다. 옐레나 왓킨스님은 집단 트라우마 센터 공동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문화과학사 문화사회연구소 대표이사 정원옥님의 발제가 있었다. 정원옥님은 비당사자 운동이 세월호참사 이후로 대한민국에서 처음 일어났다고 한다. 세월호참사를 계기로 사회운동의 주변부에 있던 이들이 중심이 되었고 정치에 무관심했던 평범한 사람들이 주체가 되었다. 반면에 혐오 발언이라는 현상도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고 하셨다. 정원옥님은 혐오에 맞서기 위해서는 당사자성을 넓혀야 한다고 했고, 애도와 정동정치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동 : 감정은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인 것이라는 이론 / 그렇기에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이론
마지막으로 이태호님과 강희숙님의 발제가 있었다. 재난이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는 리베카 솔닛의 해석으로 재난의 파괴적인 힘에 대해 이야기했다. 재난으로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졌다.
1일차 4.16 국제 심포지움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1일차와 2일차 국제 심포지움은 유튜브 생방송으로도 진행이 되었으니, 아래 첨부된 영상에 들어가면 볼 수 있다. 이번 국제 심포지움을 계기로 앞으로도 더 많은 장이 있기를 바란다.
4.16 국제 심포지움 1일차
4.16 국제 심포지움 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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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식 : 가슴에 노란 리본, 마음에 새긴 약속
2016년 4월 16일에 일어난 세월호참사가 어느덧 10주기를 맞이했다. 10주기 세월호 기억식은 안산 화랑유원지 제3주차장에서 진행되었다. 많은 시민, 유가족분들과 여러 인사들이 기억식에 참석해 주었다.
기억식 순서
식전 공연
이름을 불러주세요
추도사
기억 편지
기억 영상 상영
기억 공연
기억 합창
4.16 안전 문화 창작곡 수상자들의 공연으로 식전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 후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이름을 불러주세요’가 이어졌다.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 김동연 경기도지사, 이민근 안산시장, 김광준 4.16재단 이사장, 고 김수진 아빠 김종민님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은 유가족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하면서 추도사가 시작되었다. 해양수산부 장관은 재해로부터 자유로운 바다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달라지지 않은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책임, 인정, 사과, 재발방지, 의료지원 등 12가지 주요 건고에 대한민국은 응답하지 않고 있다고 말씀했다. 늦어지고 있는 기억공원 건립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자아냈고, 국민의 안전이 뒷전인 현재 대한민국을 지적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함께하겠다고 밝히며 추도사를 마쳤다.
김광준 4.16재단 이사장님과 고 김수진 아빠 김종민님의 추도사에서는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세월호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한다고 하지만, 10.29참사와 오송참사가 잇따라 일어났다. 그러나 현실의 장벽이 높을수록, 함께 힘을 모아 장벽과 부딪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추도사가 끝나고 난 뒤, 97년생 동갑내기 김지애님의 기억 편지 낭송이 있었다. 4.16참사를 겪은 후, 자신의 다짐과 생각을 별이 된 친구들에게 전했다.
“하늘이 맑을 때 너희를 기억하고, 비가 올 때 너희를 기억하고, 별이 많은 날 너희를 기억하고, 꽃이 피면 너희를 기억하며 살아가려고 해. 너희 부모님들 곁에 서서 진실도 밝히고, 책임자도 끝끝내 찾아냈다고. 이제 이 땅에는 무책임한 정부로 인해서 벌어지는 참사는 없게 만들었다고 자랑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줘.”
가수 박창근님의 ‘별되어 내리네’와 ‘미련’을 불러주셨다. 바로 이어서 배우 박원상님의 정호승 시 낭독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널 가슴에 묻으라고 한다
세상에! 너는 언제나 내 가슴에 살아 있는데
어떻게 가슴에 묻을 수 있겠느냐
엄마는 너를 가슴에 묻지 못한다
아빠도 너를 황량한 가슴의 들판에 묻지 못한다.
- 왜 돌아오지 않느냐 정호승 -
마지막으로는 4.16합창단과 시민합창단의 기억 합창으로 기억식을 마무리했다. 기억 합창단의 마지막 노래로 ‘잊지 않을게’를 부르며, 합창단은 노란 비행기를 날렸다. 10년이 지난 지금, 앞으로 10년이 지날 미래에도 노란 비행기처럼 세월호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자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듯,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듯, 진실은 침몰하지 않듯, 세월호참사의 진실이 밝혀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바쁜 와중에도 2000여명의 사람들이 함께 기억하는 시간이었다. 4월은 따뜻하고 꽃이 피는 봄의 시작이지만, 304명이 별이 된 달이기도 하다. 기억하겠다, 잊지 않겠다, 함께 하겠다는 말들이 많이 오갔고,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특별법 제정, 생명안전법 제정과 같은 요구도 잇따라 들렸던 기억식이었다. 기억식에서의 다짐과 약속이 기억식이 끝난 후에도 이어지면 좋겠다.
김지혜님의 편지 중, ‘나는 그저 살아남았고, 살아남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설명한다. 나도 김지혜님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저 나는 운이 좋았기 때문에 살아남았다고 생각한다. 이렇듯이, 세월호참사, 이태원참사, 오송참사는 남의 일이 아니다. 나의 일이다. ‘여전히 단단하지 않은 땅’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신을 위해, 남을 위해, 미래를 위해 참사를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