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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참사의 기억을 담습니다
10·29 이태원참사의 기억을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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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참사 기록보존활동, '이태원 기억 담기'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참사현장은 유가족들에게 트라우마 그 자체입니다. 참사의 공간은 애도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참사 이후, 많은 시민들이 참사현장을 찾고 있어요. 이태원역 1번 출구부터 해밀턴호텔 옆 골목을 따라 가벽까지 추모포스트잇과 추모물품이 가득했습니다. 지역 주민과 자원활동가는 작년 12월 말부터 2만 5천여 점의 조화를 비롯해 추모물품을 정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 12월 23일, 유족과 지역주민, 지역상인, 시민대책회의가 함께 ‘희생자의 온전한 추모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장 및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연 후,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피해자권리위원회가 공간을 관리해왔습니다.
수많은 메시지를 모두 수거하고 분류하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2023년 3월 11일부터 문화연대는 피해자권리위원회와 함께 시민들이 참여하는 기록보존활동 '이태원 기억 담기'를 시작하였습니다. 활동 소식을 듣고 부산에서 찾아온 한 참여자는 야외 공간에 놓인 추모물들은 금방 훼손되기 쉽상인데, “조금만 방심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같은 추모 기록을 조금이라도 붙잡기 위한” 우리 활동에 딱 맞는 이름이라고 후기를 남기기도 했지요.
△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참사 이후, 많은 시민들이 참사현장을 찾아 추모메시지와 추모물품을 남겨주었다.
기록보존활동 ‘이태원 기억 담기'는 크게 추모메시지 수거 작업, 추모메시지 분류 및 보존 작업, 현장 정비 활동, 추모메시지 공론화 활동으로 구성됩니다. 먼저 현장을 찾아 추모메시지를 수거해요. 많은 시민들이 남겨준 추모메시지를 보존하려는 게 첫번째 목적이고요. 가득 찬 벽에 새로운 추모메시지가 붙을 수 있게 여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게 두번째 목적입니다. 아카이빙 작업 시엔 몇 가지 규칙을 따라, 메시지를 1차 분류합니다. 그리고 장기보존을 위해 메시지를 고정하고, 제습제와 함께 서류상자에 보관합니다. 현장 정비 활동 시엔 음식, 술, 꽃 등 추모물품을 수거하고 주변을 청소합니다. 또, 추모메시지를 남길 수 있게 필요 물품(포스트잇, 펜, 테이프 등)도 마련해두죠.
△ 기억과 안전의 길에서 추모메시지를 수거하는 자원활동가들
△ 2023년 10월 현재까지 수거한 메시지는 십수만장에 달한다.
기록보존활동에는 연구자, 시인, 음악가, 대학생, 다큐멘터리 감독, 문화공간 운영자, 고등학교 교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평소 다른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발하게 활동해왔던 참여자도 있지만, 이 활동을 통해 참사가 주는 무력감을 이겨낸 참여자도 있어요.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활동가나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 참여자 뿐만 아니라, 주변 상인과 지나가는 시민도 이 공간에 책임감을 느끼며 함께 공간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참사 현장 바로 옆에 있는 편의점 상인은 자원활동가들이 찾을 때마다, 분류 작업할 공간을 내어주고 마실 음료도 선물해주셔요. 바람이 드셌던 어느 날에는 참사 현장을 지나가던 한 시민이 흩날리는 포스트잇을 모아 서울시청 앞 시민분향소까지 손수 가져다준 일도 있었어요. 국가의 방기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추모메시지와 사회적 애도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기억과 안전의 길'에는 참사 현장에 있었던 생존자와 구조자, 그리고 희생자의 유가족과 지인을 비롯해 다양한 시민들이 방문하여 포스트잇에 추모의 말을 남겨주고 있습니다. 추모메시지에는 추모와 애도를 비롯해 미안함, 자책감, 무력감,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이 뒤엉켜있어요. 희생자와 참사 현장에 대한 기억이 담겨있기도 하지요. 추모메시지를 작성한 사람들은 희생자가 겪었을 고통과 유가족의 상실에 공감하며, 타인의 삶을 상상하기도 합니다. 희생자의 사라진 미래를 안타까워하며, 사회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반성하기고 국가의 책임을 묻기도 합니다. 잊지 않겠노라고 되뇌이고, 가만히 있지 않고 행동에 나서겠노라고 다짐하기도 합니다.
메시지를 살펴보면, 떠난 이들을 추모하는 관용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를 비롯해 "미안하다"는 말이 참 많습니다. 정말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사과하지 않고, 정작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고 있는 사람들이 떠난 이들에게 사과하고 있죠. 왜 살아남은 우리만 사과해야 하는 걸까, 이런 메시지를 볼 때마다 슬픔과 동시에 분노를 느껴요.
아래에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와 구조자가 작성한 메시지를 소개합니다. 이 메시지들엔 참사 현장의 풍경을 비롯해 희생자의 마지막 기억과 생존자의 트라우마, 다짐이 담겨있어요. 특히 구조자들의 메시지에서 재난대응시스템의 공백, 그리고 이들이 느꼈던 무력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족, 지인을 비롯하여 희생자의 지인들이 그들을 호명하는 메시지는 우리의 마음을 강하게 울립니다. 여기에는 생전에 함께하며 느꼈던 행복감과 희생자가 떠나며 겪게 된 상실감, 슬픔 등 세상 모든 진한 감정들이 녹아 있습니다. 비록 일부 미디어와 시민들이 희생자를 비난하고 왜곡된 이미지를 덧씌운다 할지라도, 희생자들 역시 우리와 같은 공동체에서 살아왔던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추모메시지는 알려주고 있습니다.
한편,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작성된 메시지도 2할 이상이나 됩니다. 이는 인도네시아, 미국, 일본, 중국, 우크라이나 등 다양한 국적을 지닌 사람들이 추모현장을 찾아 주고 있음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이태원이 다양성을 품고 있는 공간이었음을, 그리고 외국인 희생자도 이곳에 있었음을 기억하게 하지요.
안전사회를 위해, 우리는 기억하고 또 기록해야 합니다
사회적 애도를 위해 아직 해야 할 일은, 정리되지 않은 추모메시지만큼 쌓여 있습니다. 책임자들은 형식적인 사과만 늘어놓고 있으며, 국회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됐지만 아직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지요.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는 기억하고, 또 기록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기록은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함께 기억할지의 문제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참사현장에 발걸음한 시민들이 남겨준 추모와 애도의 메시지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아 안전사회를 위한 기틀을 마련할 수 있길 바랍니다.
글쓴이 _ 문화연대 박이현 활동가 | 앞산의 불을 끄는 일만큼, 너른 삶의 터를 다지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는 활동가. 잠든 감각을 깨우고, 마음과 마음을 잇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씨앗을 심고 있다.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을 비롯해,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다양한 문화/예술 실천을 도모하는 한편 청소노동자의 스포츠권을 위해 운동으로 노동운동하고 있다.
이태원 기억 담기 | 매달 2회씩 정기적으로 모여 이태원역 1번출구 앞 '기억과 안전의 길'에서 추모메시지를 수거하고, 이를 아카이빙 및 공론화하는 활동을 진행하는 시민 모임. http://bit.ly/remember_1029에서 참가신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