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중된 자들이 만든 광장, 새 민주주의로 향할까 🕯️
꺼진뉴스 다시보자 vol. 20
이번 호는 2024년 폴라리스 레터의 마지막 호입니다. 꺼뉴다보 20호에서 소개하는 모든 기사들은 12.3 내란 사태를 다룹니다. 연말이 연말 같지 않고, 연초가 연초 같지 않습니다. 내란이 철저히 준비된 과정과 그 엄중성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으며, 사태를 무마하기 위한 시도들에 대응하고 새로운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무기한의 과제를 맞게 되었습니다. 2024년과 2025년에 걸친 이 겨울은 참 이상야릇한 미완의 시간으로 남을 듯합니다.
과제의 무게와 장기성을 고려하여, 읽기와 리터러시의 필요를 놓치지 않으며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이와 같은 취지에서 12.3 내란 사태의 타임라인을 잘 정리한 두 링크를 꺼뉴다보 20호와 함께 공유합니다. 한겨레가 정리한 12.3 내란 모의, 집행 타임라인과 독립언론네트워크가 아카이브하고 있는 12.3 내란 사태 이후 정국 전개입니다. 뉴스 외에는 그 좋아하던 것들조차도 보지 않게 되었다는 지금과 앞으로에 도움이 될 기록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제주항공 7C2216편 사고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표하며, 부상자들의 회복과 명백한 진상규명 및 수습을 기원합니다.
1. 사건과 구조: ‘극우 유튜버’처럼…왜 대통령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사로잡혔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2월 12일 담화에서 비상계엄을 결심하게 된 배경 중 하나로 선관위에 대한 국정원의 보안 점검을 꼽았다. 극우 유튜버의 부정선거 음모론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재료를 대통령도 언급했다. 그러나 이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라기보다 부정선거 음모론이 확산하는 데 권력의 의지가 투영된 흔적에 가깝다.✍🏻 이효상 기자, <경향신문>
12월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보여준 극우 유튜브에 심취한 노인과 같은 모습에 충격을 받으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당일 담화에서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명분으로 선거관리위원회 해킹, 시스템 부실 의혹을 골자로 하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높은 비중을 할애하여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경향신문>의 기사는 부정선거를 증명하고자 대통령실과 국정원이 선거관리위원회에 가해온 외압과 부정선거 음모론의 불가능성을 소상하게 밝힙니다.
윤 대통령은 음모론에 빠져 사리분별을 못하는, 그런 불쌍한 사람이 아닙니다. 국가기관, 여당, 극우 유튜버와 사업자들과 조직적으로 음모론을 생산하고 관철하려 시도한 핵심 이해관계자입니다. 계엄 시도 무산 후에도 ‘계엄 당일 민주당 지지자들에 막혀 국회 출입을 못했다’는 나경원 의원, 남태령 트랙터 시위에 대해 ‘폭력적 난동으로 몽둥이가 답’이라 한 윤상현 의원의 발언과 같이 내란을 무마하기 위한 여론공작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가짜뉴스와 선동에 대해 촉각을 세우는 동시에, 망가진 언론 지형과 자유를 되살리기 위해 필요한 노력들에 대한 논의도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와 같은 취지에서 경향신문의 기사와 곁들여 윤 대통령과 여당, 극우 유튜버들의 음모론과 여론 장악 시도에 대한 몇가지 읽을거리들을 함께 부칩니다. 한겨레21은 윤석열 대통령의 12.12 담화 내용과 극우 유튜버 방송의 유사성을 중심으로 한 윤 정권의 극우 유튜버 의존 및 공생 관계를 다룹니다. 뉴스타파는 윤 대통령의 후보자 시절부터 지금까지 부정선거 음모론 생산과 여론 공작에 관여하고 있는 조직의 실체와, 여당 유력 정치인들의 관여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5개 언론사가 합작한 언론장악 카르텔 추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명박-박근혜 시절 불법 지원으로 성장한 보수단체가 윤 정권의 여론 공세에 함께하고 있음을 밝힌 한겨레의 보도도 함께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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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피니언: 87년 체제 너머 저 낮은 곳, 응답하라 정치야
2024년 윤석열 탄핵집회의 양상은 비슷하되 다르다. 무엇보다 구성원이 달라졌다. 민주화 투쟁을 경험한 기성세대의 참여는 여전했지만, 이번에는 촛불 대신 아이돌 응원봉을 든 젊은이가, 여성이 시위대의 다수를 차지했다. 성소수자의 깃발이 곳곳에서 나부꼈고 장애인도, 외국인도 드물지 않았다. 수많은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자가 함께했으리라. 중산층 시민이라는 범주로는 포괄되지 않는 이들, 87년 체제가 제대로 대변하지 않는 이들이다. 삶의 위기가 이들을 광장으로 불러냈다. 정치가 응답할 차례다.✍🏻 조형근 사회학자, <한겨레21>
지난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불과 11일 전 내란 사태로 위기에 처했던 한국의 민주주의는 시민의 힘으로 회복하여 세계의 주목을 받았으나 윤석열의 수사 불참석, 국민의힘의 미온적 대응 등 풀어야 할 과제는 많습니다.
한겨레21 칼럼은 2024년 윤석열 탄핵집회의 구성원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삶의 위기가 이들을 불러냈다고” 말하며, 촛불시위의 계보를 설명하기 위해 1987년 체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87년 체제는 군부독재에 맞선 6월 항쟁의 승리로 만들어졌지만, 당시 민중과 재야 (민중운동, 시민사회)를 배제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기도 했습니다. 대통령 직선제, 5년 단임제, 소선거구제를 골자로 하는 제도는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불평등 구조를 고착화하고 양당 독점 정치로 이어졌습니다. 형식적 민주주의는 진전됐지만,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배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 이어져 왔습니다.
칼럼은 87년 체제가 이런 한계를 안고 반복되는 정치적 위기와 국민적 실망 속에서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번 탄핵과 광장의 목소리는 그 연장선에 있다고 말합니다. 기존의 체제가 대변하지 못했던 젊은 세대, 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광장으로 나섰고, 그들은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닌 근본적인 체제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탄핵 이후 올 민주주의는 더 포용적이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야 할테지요. 개헌 논의와 정치개혁, 그리고 배제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체제 구축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87년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도래하길 바라면서, 칼럼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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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터뷰: 장혜영·박지현 “2030 여성 새로운 정치 만들어갈 주체… ‘나중에’ 정치 멈춰라”
"20대 남성들이 왜 계엄 사태에도 불구하고 광장에 나오지 않았는가는 기본적인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을 갖추는 데 실패한 것이다. 또, 반대로 2030 여성들이 많이 나왔으니까 여성들이 훌륭하다는 방식의 이야기는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이다. 그 평가의 주체는 20대 여성 자신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권력층이 그때그때 자기의 입맛에 맞게 어떤 때는 20대 여성을 칭찬하고, 어떤 때는 20대 남성을 호명하면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윤석열 탄핵이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윤석열 탄핵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회복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신다인 기자, <여성신문>
‘여성들이 정말 많이 나왔네’ 탄핵소추안 가결 촉구를 위한 집회가 이어지던 12월 초엔 어렴풋한 짐작이었습니다. 집회가 거듭되며 짐작은 데이터로 증명됐습니다. 2030 여성은 민주주의를 이끌어가는 주체로 우뚝 섰습니다. 추운 겨울 여성들은 망설임 없이 광장으로 나섰고, 약자와 연대했습니다.
매번 여성을 지우고 외면해 왔던 정치권도 2030 여성을 호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안과 의심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과연 차기 대선에서 정치권이 광장을 지켰던 여성들의 모습을 기억할 것인가 의문이 남습니다. 단순히 청년 여성들이 집회에 많이 나왔다는 사실보다 여성들의 정치적 에너지가 무엇을 성취할 것인지 주목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여성신문은 두 청년 여성정치인에게 정치권이 2030여성이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지 물었습니다. 장혜영 전 정의당 국회의원과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입니다. 이들은 정치권이 젊은 여성들을 기특해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2030 여성이 여느 때보다 주목받는 현 상황에 대한 해석과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지점을 충실히 담아냈습니다. ‘응원봉을 쥔 손이 의사봉을 쥘 수 있게‘ 하려면 어떤 구조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지 짚은 2편까지 이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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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가 남긴 편지
매번 연말은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지만, 올해의 12월은 정말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12월 3일 이후 우리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환호합니다. 여느 때보다 뉴스에 집중하고, 주말엔 방한용품으로 무장한 채 광장으로 나섭니다.
가만히 있어도 피로가 몇 배로 누적되는 요즘 무엇보다 힘이 되는 건 시민 간의 연대입니다. 폴라리스에도 그런 따뜻한 마음을 전달해 주신 독자분들이 계시는데요. 이번 에디터 레터에서는 이슈 딥다이브 9호 <이주노동자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가?>를 읽은 한 독자분이 남겨주신 글을 공유해 드리려 합니다. 정성스러운 피드백을 남겨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표합니다. 따뜻한 연말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2024.12.30.
에디터 모래🏖️ 드림
만든 사람들: 푸릇 🌿, 산호 🐠, 모래 🏖️
지난 토요일 탄핵 찬성 집회를 마무리하고 돌아가던 중, 같은 시간에 광화문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에서 참여자 수 과대추산을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 것 같다는 말이 SNS에 돌았었습니다. 동남아계로 추정되는 외국인들이 목에 탄핵 반대 팻말을 걸고 인파 속에 있는 사진과 함께요. 당연히 가짜뉴스(e.g., 사진 자체가 조작되었거나, 자발적으로 시위에 나왔을 경우 등)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만, 이주노동자들이 평소에 처한 삶을 생각하면 이런 단기 알바가 제법 매력적일 수 있겠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돈도 주고,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고, 주말에 진행되며, 위험하지도 않으니까요.
전에 어떤 책에서 '우리는 이주 노동자들을 무시하지만, 이주 노동자들이야말로 그들이 나고 자란 곳에서는 가장 진취적이고 현명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자국의 경제적 지위, 타국에 나갔을 때의 비용과 효익 그리고 자신이 활용 가능한 제도까지 모두 고려해서 판단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곳에서 이방인으로서 살아남겠다 하는 의지와 실행력이 필요하지요. 아무리 그 과정에 브로커가 있다 한들, 결정은 본인 스스로 내린 것 아니겠나요.
자신의 삶을 개혁하고 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을 이 사람들이 과연 이 시위에서 사진이 찍히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지, 이 시위의 맥락을 이해하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치는 흐름이기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단번에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자국에서 있을 때에 비해 정보를 접하는 인프라가 열악할 수밖에 없죠. 한국의 언론사들이 익숙하지도 않고, 일상표현이 아니라 정제된 한국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자국에 한국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는 언론이 없다면, 이들은 자의적으로 판단할 기회마저 박탈당한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결코 우민이 아니었을 이들이 언어적 장벽과 타국의 정치적 맥락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해 우민으로 이용되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주 노동자들이 안전한 환경, 법적인 보호 뿐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고 목소리를 낼 권리마저 잃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석하게도 사랑보다 혐오가 쉽고, 변화보다 관성이 쉽지요. 외부인으로서 한 사회에 녹아들기까지의 하루하루는 사실상 수많은 편견과 배척에 대한 투쟁의 과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와중에 경제 상황도 좋지 않아 보통의 사람들의 삶이 팍팍해지니 이들에게는 추운 겨울이 얼마나 더 지속될 지 걱정도 됩니다. 트럼프의 정치 연설 법칙 중 하나가 최대한 쉽고 과격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하죠.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나, 정치에 대한 관심도가 낮은 사람들을 지지층으로 흡수하는 효과적인 전략 중 하나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레토릭을 사용하는 글은 해석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쉽게 피로감을 유발한다고 해요. 이주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이들이 교육 수준이나 정치적 관심도가 낮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정치적 텍스트는 무조건 쉽고 직관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안 그래도 혐오를 기반으로 한 정서는 통합되기 쉬운데,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마저 쉬우니 얼마나 파급력이 크겠습니까. 그래서 많은 국가의 극우주의 정당들이 저 방법을 택하고는 하지요. 국가를 막론하고 극우 세력이 전에 비해 득세하고, 자국우선주의가 강화되는 현 시점, 이주 노동자들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행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이들의 생존, 더 나아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위해 필요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적는 내내 나도 이주 노동자에 대한 편견이 가득해서 이런 말을 하고있는 것은 아닌지 수도 없이 읽어보게 됩니다. 아무리 제가 이런 저런 말을 늘어놓아봤자 저는 한국인이고 해외에서 살아본 경험이라고는 제도와 기관의 보호를 받는 교환학생으로서의 반년이 전부거든요. 당사자성이 없는 일에 대해 말은 얹는 것은 늘 조심스러워집니다. 응당 그래야 하는 것이구요. 실제 이주노동자들이 보면 허황된 소리고 위선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잔인하게도 현실에서 소수자 당사자만으로 해결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소수자의 목소리는 쉽게 무시되고 짓밟히기 때문입니다. 흑인 인권 운동 시기에도 흑인 운동가보다는 백인 운동가가 더 조명되었고, 여성주의에 대해 논할 때도 여성 운동가들은 조롱당하고 위협당하지만 남성 운동가의 발언은 주목을 받죠. 그래서 공감과 사회적 합의, 연대가 중요한 것 아닐까요. 저도 다른 안건들에 대해서는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이 일에 관해서만은 주류이기에 연대하고 싶어 몇 자 적었습니다. 늘 정성 담긴 뉴스레터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