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사건을 보며: 우리 사회 전체의 반성
미국에서 유행하는 음모론 중에 “렙틸리언(Reptilian, 도마뱀 인간)”이라는 게 있다. 도마뱀 인간들이 정재계를 장악하려고 남몰래 활약 중이라는 이야기인데, 이것을 꽤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파충류 같이 생긴 마크 저커버그가 그 대표자이고 그 외에도 여러 기업인과 정치인(특히 민주당 인사)들이 파충류 인간이라고 한다. 게중에는 도마뱀 인간의 낌새가 난다는 이유로 자기 자식을 죽인 남성도 있다고 하는데, 특별히 정신이상이나 질환의 징후는 없고, 진짜로 지구를 위해 자식을 죽인 일종의 사상범 같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관련기사 Peolple.2023.10.13.) 이런 음모론을 한데 모은 거대 각성 지도(Great-Awakening-map)라는 것도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자들이자 거대한 음모론 단체인 큐아넌(QAnon)이 만든 음모론 지도인데, 이들은 이를 음모론 모음이 아니라 진정한 “세계의 모습”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거대한 음모들 뒤에는 그림자 정부가 도사리고 있으며, 이들은 어린이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생명력을 연장시키려 한다. 개신교적인 하나님을 믿으며 티벳불교적 명상으로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서 진실을 보고 세상을 구원할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탓에 이들은 다문화주의나 세계주의, 평등주의를 음모라고 생각하고 백인우월적인 생각을 한다. (큐아넌의 거대각성지도. 지금 여러 방송, 유튜브 등에서 거론되는 거의 모든 음모론이 집대성되어 있다. 이 지도의 한글 버전은 여기에서.) 이런 걸 대체 왜 믿을까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정신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경우도 있고, 기술의 발달로 인해 개인에게 주어지는 정보의 양은 점점 증가하는데 그 확실성이나 명확성, 규칙성 같은 것을 찾는 게 점점 힘들어져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통제하기 힘든 상황에 처하면 사소한 것이라도 자신이 통제할 것을 자꾸 찾아 안정감을 얻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운동선수들의 징크스가 대표적인데, 어떤 이들에게는 음모론이 그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음모론이 이 세상을 설명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음과 진실됨을 같은 것으로 착각하게 되면 큐아넌 같은 단체로 발전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도 이런 음모론 신봉자들이 꽤 있는데 최근에 자주 나오는 단체 중에서는 뉴라이트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뉴라이트라는 것도 일종의 음모론 신봉이요 확증 편향 같은 것인데, 거기에 더하여 기득권에 대한 옹호와 아부, 역사적 정당성과 인류 도덕성에 대한 훼손, 역사적 피해자에 대한 가해적 행위라는 점에서 큐아넌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역겨운 단체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는 뉴라이트를 그냥 비난하면 되는 것일까? 해방된지 어언 80년인데 친일이냐 반일이냐를 가지고 싸우게 만드는 정부를 욕하면 끝일까? 아니다. 저런 자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세상, 공론장에서 위안부와 징용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자들이 활개치도록 열어준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이 먼저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고 촛불‘혁명’을 하고 케이 컬처를 세상에 퍼트리고 있다고 자랑을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1945년을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윤 모 씨와 그 일당만의 잘못이 아니다. 김형석이라는 자는 물론이고 이런 일을 가능하게 만든 정당과 윤 아무개 일당은, 우리 모두가 불확실성과 예외성 때문에 세상에 대한 관찰과 의심, 사색을 포기한 댓가다. 속된 말로 설명하면 세상일을 알아보고 생각하기 귀찮아서 두뇌를 외주 준 댓가다. 이런 걸 한자어로 반지성주의라 한다. 관찰과 의심, 사색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 사는 일이 시급한 사람들이 이것까지 하면서 살기는 너무 힘들다. 하지만 반지성주의는 파시즘의 시작이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이 문제를 지적하며 진실되지 않은 것을 가치 있는 것이라 우기는 사람들과 싸우고 있다. 내가 직접 나설 수 없다면 이들을 돕자. 우리가 반지성주의를 버리지 않으면 제2의 김형석, 제3의 김형석은 계속 출몰할 것이다. 렙틸리언 믿는다고 비웃을 때가 아니다. 그들을 비판하는 우리는 괜찮은지도 돌아보자!
과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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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에 이승만 기념관?…또 아른 거리는 이승만의 그림자👻
영화 <건국전쟁>과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는 움직임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우선 <건국전쟁>은 2024년 2월에 개봉한 영화입니다. ‘이승만 대통령과 건국 1세대들의 희생과 투쟁을 조명한 작품’이라는 설명이지만 역사 왜곡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항상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극명하게 갈리는 의견 대립이 펼쳐지죠. 이승만은 확실히 ‘건국의 아버지’라는 칭송과 ‘민간인 학살자’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는 기이한 인물입니다. 한국 근현대사의 특이점 같은 인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인물이기에 기념관(어떤 뜻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하기 위하여 세운 건물)을 조성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들끓을 수밖에 없죠.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인물을 기리는 것이라는 주장과 민간인 학살, 독재 집권 등의 과오를 미화하는 움직임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습니다. 기념관 건립을 환영하며 부지나 비용을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기념관 사업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선 사람들도 있습니다.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승만기념관 부지로 거론한 서울 송현광장에 시민단체들이 모여 기념관 건립을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은 4.19를 촉발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함께 송현광장을 시민의 공간으로 지키겠다던 약속을 1년 새 뒤엎은 오세훈 서울시장을 직격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등 15개 단체는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 녹지광장 입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세훈 서울시장과 윤석열 정부는 헌법을 부정하고 국격을 훼손하는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즉각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현광장에 이승만기념관? 광주 금남로에 전두환기념관 짓는 것" (오마이뉴스 24.03.15)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기념 공간이 없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강원도 고성과 서울 종로의 이화장 내에 기념관이 있습니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온라인 기념관도 쉽게 찾을 수 있는데요. 구경하다 보니 다른 ‘독립운동가’들에 비해 훨씬 큰 기념사업회의 규모와 방대한 자료가 인상깊습니다. 아무튼, 기념관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서울시 내 새로운 이승만 기념관 건립이 이야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세훈 시장의 말대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일까요? 오 시장은 지난 23일 서울시의회 시정질문에서 이승만 기념관 부지와 관련해 “지금 현재로선 가능성이 제일 높게 논의되는 데가 송현동 공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송현녹지광장에는 ‘이건희 미술관’ 외에 다른 시설물을 짓지 않겠다고 밝혔던 것을 뒤엎는 말이다. 오 시장은 “이승만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것이 공론화 혹은 공감대 형성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당시엔 이런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 시장이 언급한 영화는 ‘건국전쟁’이라는 이승만 찬양 일색 다큐다. [사설] 서울 한복판 시민 쉼터에 ‘이승만 기념관’ 짓겠다니 (한겨레 24.02.27)  ‘국민적 공감대’, 확인해 보죠 🎤🤔 오세훈 시장이 말한 것처럼 영화 <건국전쟁>의 상영이 이승만 기념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는지 궁금해지는데요. 몇몇 언론에서 건립 예정지로 언급된 송현광장에서 시민들을 만나 취재를 해봤습니다. 결과를 보면 의견은 분분한 편입니다. ‘국민적 공감대’라는 단어를 너무 섣불리 언급한 것은 아닌가 싶네요. 성북구 한 중학교에서 문화체험 동아리 학생들과 공원을 찾은 30대 교사 이찬혁씨는 “이건희 기증관과 이승만 기념관이 들어선다고 알고 있어, 의미 있는 장소가 될 것 같아 아이들과 함께 나왔다”며 “이렇게 넓은 개방 녹지가 있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근처 학교에 다니는 10대 학생들은 광장에 기념관이 생긴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서도 “여기 말고 전국 어디에도 (기념관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대 여성 박모씨는 “지금은 조용히 쉬기 좋은 도심 공터인데, 기념관이 생기면 우파의 집회 장소가 돼 시끄러워질까 걱정된다”고 밝혔다. “녹지 자체로 좋아” “이승만 기념관 환영”…‘개방 2년 송현광장’ 활용안 물어보니 (경향신문 24.04.15) 어린 딸과 함께 방문한 40대 김아무개씨는 "이승만이 이순신이나 세종대왕처럼 전국민에게 불호가 없는 사람도 아니고, 한쪽 진영을 대변하는 정치인 아닌가"라며 "(건립추진위원회가) 사유지를 매입해 세우는 것도 아니고, 모든 시민들에게 열린 공유지를 합의도 없이 쓴다는 건 반발만 부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아지와 함께 산책 중이던 30대 여성 최아무개씨는 "정치에 관심은 없다"면서도 "(시야가) 탁 트여 매력적인 곳인데 이미 있는 건물을 활용하는 것도 아니고, 새로 건립한다면 싫다"고 고개를 저었다. 다만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반기는 시민도 있었다. 등산복 차림의 70대 남성 두 명은 "이승만 기념관 건립은 절대적으로 찬성한다. 무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경복궁 옆에 이승만 기념관? 시민들은 "시대착오적" (오마이뉴스 24.02.26)  알 수 없는 오세훈의 마음😵 도시를 계획하고 정비하는 일은 여러 요인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서 신중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들어가는 비용이 절대 적지 않고, 그 비용이 모두 시민들의 세금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죠. 작년 5월, 오세훈 시장은 '정원도시 서울'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서울 도심 속 어디든 5분 안에 정원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프로젝트의 전략을 ‘비움’, ‘연결’, ‘생태’, ‘감성’ 네 가지로 꼽으면서 도심 내 녹지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당시에는 송현광장에 다른 건축물을 짓는 것에 완고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었는데요. 영화 <건국전쟁>에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인지, 비워두겠다던 송현광장에 이승만 기념관 건립 추진 이야기가 나오니 시민들은 당혹스러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작년 말, 서울시와 이승만기념사업회가 함께 진행한 비공식 회의 당시부터 오세훈 시장이 기념관 건립에 적극적이었다는 보도를 보니 정말 오세훈의 마음을 알 수 없는 지경이죠.  조우석 문화평론가(전 KBS이사•중앙일보 기자)가 11월21일 '스카이데일리'에 쓴 칼럼에 따르면 비공개 회담에 함께한 안보길 뉴데일리 회장은 '오 시장이 자기가 한 말을 번복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지만 실은 송현동 부지에 이승만 기념관 건립에 적극적이었다'고 전했다. 오 시장은 이날 이승만기념관추진위에 여론 조성을 요청하며 "시민들 사이에서 이승만기념관이 들어서야 송현동 부지가 더 멋진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지지해 주는 여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 “이승만기념관 확정 없다”지만 오세훈은 "여론 모아달라” 요청 (법보신문 23.11.21)  대한경제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가 발주한 송현광장 마스터플랜 용역 계획에서 우선 이승만 기념관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제 막 계약을 체결한 단계이므로 얼마든지 계획에 기념관 건립이 포함될 수 있는 상태로 보입니다. 17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달 말 ‘송현동 부지 통합 마스터플랜 수립’ 용역 계약을 이화건축사사무소와 체결했다. 마스터플랜은 용역기간 6개월을 거쳐 늦어도 10월까지 수립될 예정이다. 송현공원ㆍ이건희기증관 조성사업 시동…이승만기념관은 일단 제외 (대한경제 24.04.17) 오 시장은 “당시 송현광장을 비우는 디자인으로 하겠다고 말한 취지는 송현광장 부지의 담을 철거하니 시민들이 개방감을 즐기는 모습이 좋아 보였기 때문”이라면서 “두 건물을 합쳐도 전체 광장의 5분의 1 정도에 해당하며, 한가운데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양옆에 들어선다. 즉, 가운데 서면 개방감은 유지된다”고 말했다. ‘열린송현광장’이라더니…오세훈 “이승만기념관 지어도 개방감” (한겨레 24.02.27)  기념관보다 더 필요한 건 ‘광장’일지도 몰라요🙏 종로구 송현동에 위치한 송현광장은 오랜 세월 방치되었다가 시민의 품으로 돌아와, 도심 속 녹지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이미 이건희 미술관 건립 계획으로 광장이 폐쇄될 기간이 만만치 않게 길게 예정되어 있는데요. 또 다른 건축물을 세우기 위해 오랫동안 닫혀있어야 한다면 광장의 의미는 어떻게 될까요? 과연 ‘경관이 다 가려지지는 않으므로’ 괜찮을까요? 광장은 본래 개방된 넓은 공간으로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지금 서울에 있는 광장들은 어떤 이유로 사용이 제한되거나, 열린 광장 ‘닫힘’ 상태가 예정된 것 같습니다. 도시 꾸미기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면, 시민을 위해 한없이 열린 공간을 마련해 두는 것도 괜찮을 텐데요. 특정 인물을 기리고 그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공간이 어쩌면 지금 대한민국에 더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승만 기념관에서 비롯된 논쟁은 곧잘 대한민국의 건국 역사와 양극화된 이념 갈등, 무자비한 혐오로 이어지곤 합니다. 그래서 더욱, 지금 필요한 건 기념관보다는 광장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던 시민들이 4·19 혁명을 이끌었던 1960년으로부터 64년이 흘렀습니다. 강산이 여섯 번 바뀌어도 여전히 우리 곁에 남은 이념 갈등과 근현대사의 아픔이 조금 서글퍼지는 4월입니다.  💁‍♀️이승만 기념관 건립,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함께 읽어보면 좋은 기사📌 ▪️ 4.19혁명 64주년…“송현공원 이승만기념관 안돼” (KBS 24.04.19)  ▪️ “4·19에 ‘이승만 띄우기’라니”···용산전쟁기념관 ‘건국전쟁’ 감독 특강 주최에 반발 (경향신문 24.04.11)  ▪️ 혁신파크부터 송현광장까지 “공공부지 개발, 시민 결정권 강화해야” (경향신문 24.03.05)
과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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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빚진 사람들 : 관동 대지진 학살 100주년과 윤미향 의원
간토 대지진 학살 100주년 추도행사에 참석한 윤미향 의원이 조총련과 모종의 연결 고리가 있다는 식의 보도가 쏟아졌는데요. 요지는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것입니다. 윤미향 의원의 방일 추도행사가 심각한 문제가 될 사안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윤미향 의원 입장은 윤미향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직접 기재한 내용에 따른 것입니다. - 윤미향 의원 페이스북 : <간토학살 100주기 추도사업 활동 보고>와 <간토학살 100주기 추도사업 관련 입장문2> 1. 간토대지진(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1923년 9월 1일 간토 대지진으로 인한 천재지변 속에서 조선인이 내란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수많은 조선인을 학살한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식민 지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2. 추도행사 참석 경위? 윤미향 의원 페이스북 <간토학살 100주기 추도사업 활동 보고>와 <간토학살 100주기 추도사업 관련 입장문2>에 따르면, 윤 의원은 추도사업 추진위원회로부터 국회의원들에게 추도행사 참여 요청이 와서 참석했다고 밝혔습니다. 윤 의원은 8월 31일, 9월 1일 간토학살 관련 행사에 모두 참석했다고 밝혔습니다.  *9월 1일 간토학살 100주기를 맞이해 한국에서 간토학살 100주기 추도사업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50여 개 단체가 있다고 합니다. 3. 행사 일정? 8월 31일, 윤미향 의원은 사이타마현 요리이쵸에 쇼주인 절, 구학영 희생자 묘소에서 한국과 해외에서 온 시민사회, 문화예술인들이 함께하는 위령제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저녁에는 도쿄 시내에서 간토 학살 중국인, 조선인 희생자를 추도하는 집회 한국 민예총, 100주기 추도사업 추진위원회와 참석했다고 합니다.  9월 1일에는 도쿄 요코아미초공원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진행된 일본 일조협회 도쿄도연합회 등으로 조직된 실행위원회 주최의 집회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그 후, 일본 평화포럼, 도쿄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과 시민사회단체, 동포단체로 구성된 간토대진재 조선인 희생자 추도실행위원회 주최의 조선인 희생자 추도집회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조총련이 실행위원회로 참가하긴 했었다고 합니다. 저녁에는 마에다 아키라 도쿄 조케대학교 교수, 이타가키 류타 도지사대학 교수, 김성재 일본기독교협의회 총간사, 봉선화 니시쟈키 마사오 이사, 제88대 법무부장관 히라오카 히데오 변호사, 재일조선인희생자 추도사업실행위원회가 주최한 추도 행사에 참가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일본 국회의원, 일본 시민, 재일동포 등이 참가했다고 합니다. *입헌민주당(곤도 쇼이치 중의원 의원), 사민당(핫토리 간사장), 공산당, 사회대중당(다카라 테츠미 의원) 등 여러 일본 국회의원 윤미향 의원이 밝힌 내용에 따르면 조총련 이외에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참가한 추도 행사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총련은 참가 단체 중 하나일 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총련 주도, 주최의 행사로 말하는 것은 틀렸습니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총련이 문제인가? 윤미향 의원은 추도사업 추진위원회로부터 추도행사 참여 요청이 와서 참석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므로 조총련이 참여 요청을 한 것이 아니기에 윤미향 의원과 조총련을 연결시키는 건 무리입니다. 또한, 윤미향 의원은 조총련을 만나러 갈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일어나는 과거사 해결을 위한 활동은 일본인과 재일 동포들, 총련과 일본 시민단체들, 일본 국회의원들이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내 총련의 활동은 일반적인 것으로 보는 게 적절해 보입니다. 5.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통일부는 윤미향 의원이 조총련 행사 참석과 관련, 통일부에 사전 접촉 신고를 한 바 없어 남북교류협력법 사전 접촉 신고 위반에 해당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국민의힘은 윤미향 의원 제명을 요구하며 징계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국민의힘 이종배 서울시의원은 윤미향 의원이 반국가단체 행사에 사전 신고 없이 참여해 조총련 구성원을 만났다며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고 합니다. 윤미향 의원은 “추모 일정은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전 접촉 의무 대상 요건에 성립되지 않을뿐더러 사후적으로 접촉 행위도 없었다.”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납북교류협력법에 따르면, 북한 주민 접촉은 북한 주민을 남북 교류 협력 또는 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정보나 메시지를 주고받는 행위를 말하고, 북한 주민과 직.간접적으로 의사를 교환하는 경우에 접촉 신고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방일 행사에서 총련 관계자를 만날 의도나 계획이 없었고 정보나 메시지를 주고받는 접촉을 할 이유도 없어 접촉 신고 대상이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또한, 과태료 부과에 대해서 통일부 사전신고는 접촉 대상자의 성명, 나이, 거주지, 소속 및 직위, 접촉인과의 관계, 접촉 목적, 접촉 경위, 접촉 예정 일시 및 장소, 방법, 3년 이내 접촉 경험 등을 구체적으로 신고하도록 규정한다고 설명하며 위와 동일한 이유로 과태료 부과 대상도 아니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6. 계속되는 딴죽걸기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 주최한 추념 행사에 가지 않았다는 딴죽에 대해서 윤미향 의원은 민단의 추념식 초청을 받지 못했고 알지도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윤미향 의원은 간토 학살 관련 방일 활동 협조를 외교부에 공식적으로 요청했지만 주일 한국 대사관과 대한민국 재외동포청의 후원으로 개최한 민단 행사를 알리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참석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참석할 수 없었던 걸로 보는 게 적절합니다. 한일의원연맹에 가입하지 않은 것도 트집 잡고 있습니다. 윤미향 의원은 30년의 일본 관련 활동을 통해 한일의원연맹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며 의원 연맹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낸 게 없다는 의견을 비췄습니다. 그리고, 오타니 마사오(정인각)의 손자 정진석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회장으로 있는 한일의원연맹에 같이 할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또한, 방일 일정 관련 국민 세금이 들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습니다. 윤미향 의원은 “정확하게, 제가 지원받은 것은 주일 대사관의 일본 입국 수속 시 도움과 공항에서 숙소까지 차량 지원(20분 소요)”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번 방일 일정은 국회의원 윤리 실천규범에 따라 공식적으로 국회사무처에 신고 후 수행한 국회의원의 직무상 국외 활동이며, 재외공관의 업무협조지원도 국회사무처가 업무협조 범위 내에서 수행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윤미향 의원이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년 추도행사 참석에 대해 한국 여당과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다나카 노부유키씨의 한마디가 인상적입니다.(그는  교과서네트워크 구마모토의 사무국장이며 구마모토시 국제교류관에서 9.1 관동대지진 100년-조선인 중국인 할살을 기억하는 집회를 주최한 실행위원 중 한 명입니다.) “일본 언론에서도 도쿄 집회의 의미를 알리는 보도가 많았습니다. 여기에 왜 한국의 국회의원이 참여하면 안 되죠?” 윤미향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간토학살 100주기 추도사업 관련 입장문을 내며 반박해왔습니다. 그의 마지막 문장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방일에 저 혼자만 가서 참으로 죄송합니다.” 우리는 윤미향 의원뿐 아니라 독립운동가와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에게 많은 빚을 졌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윤미향 의원 방일 추모행사 참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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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는 빨갱이?
1 1950년대를 이야기할 때 빼놓으면 안 되는 인물이 하나 있다. 육군 특무부대장 김창룡(金昌龍, 1920~1956). 호는 옥도(玉島), 창씨개명 당시의 이름은 타마시마 소오류우(玉島昌龍). 함경남도 영흥에서 태어나 1940년 일본 관동군 헌병 보조원이 되었다. 이후 일본의 첩보원이 된 그는 1943년부터 2년 동안 중국에서 활동하던 중국, 조선의 비밀 항일 단체 50여 개를 적발해 검거했다. 일본이 패전한 후 고향으로 도망쳤다 체포된 그는 당시 이북에 진주하던 북한군과 소련군에게 두 차례나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모두 탈출했고, 1946년에 결국 월남했다. 이남에서 국군 정보요원으로 활약한 그는 소련군 장교를 찾아내 추방하는 데에도 공을 세웠다. 이후 남로당 색출, 여순사건 진압에도 엄청난 활약을 했는데 남로당 출신의 소령 박정희(朴正熙)를 검거해 심문한 것도 바로 김창룡이다. (박정희는 정보국장 백선엽 대령에 의해 곧 풀려난다.) 1949년 인민해방군 사건, 1950년 김수임 사건에서도 늘 그는 큰 활약을 했다. 한국전쟁에서 서울이 수복된 후에는 이승만의 반대파들을 공산당으로 몰아 숙청하는 공을 세워 이승만의 총애를 받았는데, 군과 정부의 조직을 무시하고 이승만에게 직통 보고를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을 정도였다. 이승만의 총애를 등에 업고 거만하게 행동하던 그는 결국 1956년 1월 30일, 대령 허태영, 대령 이진영, 소령 안정수, 중위 허병익 등에 의해 암살을 당해 사망했다. 김창룡이 사망하자 이승만은 직접 적십자병원으로 달려갈 정도였고, 그의 장례는 대한민국 최초의 국군장으로 치러졌다. 이승만은 그를 중장으로 추서했고, 그의 장례식이 있던 2월 3일, 이승만은 그 날 하루동안 전군에 조기를 게양하게 하고 모든 군인들의 음주와 가무를 금지했다. 김창룡은 국군묘지에 안장되었는데, 그의 묘주명(묘비 앞면에 쓰는 글)은 이승만이 직접 썼고, 그의 송덕비에 세겨진 묘갈명은 서울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이병도(李丙燾, 1896~1989)가 썼다. 조국 치안의 중책을 띠고 반역 분자 적발에 귀재의 영명을 날리던 고 육군특무대장 김창룡 중장은 4289년 1월 30일 출근 도중에 돌연 괴한의 저격을 입어 불행히도 순직하였다. 이 참변을 듣고 뉘 아니 놀래고 슬퍼하랴. 아! 이런 변이 있을까 나라의 큰 손실이구나. 함이 이구동성의 외침이었다.  그는 본시 영흥 출생으로 80년(단기 4280년. 1947년)에 육사를 마치고 그 후 육군본부 정보국 방첩 과장에 취임하여 이래 누차 숙군을 단행하여 군의 육성발전에 이바지하였다. 특히 동란 중에는 군검 경합동수사본부장으로 맹활동을 개시하여 간첩, 오열(五列), 부역자 기타를 검거 처단함이 근 2만 5천 명, 전시 방첩의 특수임무를 달성하였다. 84년 육군특무부대장에 부임하여서는 더욱 헌신적 노력과 탁월한 지휘로써 국가 및 군사 안전보장에 기여하였다. 그 중요한 적발만으로도 85년 대통령 암살음모의 김시현 사건, 87년 남도부 등의 대남유격대사건, 88년 대통령 암살 음모자 김재호 일당을 미연에 일망타진한 그것이다. 그는 이렇듯 나라에 유공하였다. 그 사람됨이 총명하고 부지런하고 또 불타는 조국애와 책임감은 공사를 엄별하여 직무에 진수하더니 급기야 그 직무에 죽고 말았다. 아! 그는 죽었으나 그 흘린 피는 전투에 흘린 그 이상의 고귀한 피였고 그 혼은 길이 호국의 신이 될 것이다. 그의 생년은 단기 4253년 11월 23일 향년은 37세로서 순직과 동시에 육군 중장에 승진되었다. 단기 4289년 2월 3일 문학박사 이병도 지음 (민족문제연구소.<심판받을 김창룡 중장의 송공비>, 신현복) 김창룡과 함께 숙군 작업을 했던 김안일(金安一, 1917~2014)은 김창룡에 대해 반공 이념보다 개인적인 복수심을 위해 일했다고 평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김창룡이 이승만에게 내민 공산주의 활동의 증거는 그저 ‘내가 안다’, ‘내 친구라서 안다’ 수준이었고 이승만은 그런 그를 늘 믿었다고 한다. 김해진의 증언에 따르면 공산당과 관련이 있으면 부모형제랑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도 일단 체포하였고 죽기 직전 무렵에는 ‘고추가 빨갛다’, ‘여자들의 치마가 빨간 색이다’ 같은 것에 집착하면서 이런 것을 공산당과 엮으려고 해 웃지못할 해프닝이 많이 벌어졌다고 증언했다.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50년대편 3권』, 인물과사상사, 2004) 2 사실 소위 ‘자유주의 진영’이라 불렸던 나라들에서 이런 식의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1950년대 초중반 미국을 휩쓸었던 매카시즘(McCarthyism)이 미국 공화당 상원 의원 조지프 매카시(Joseph Raymond McCarthy, 1908~1957)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가 잘 아는 미키마우스의 아버지 월트 디즈니(Walt Disney, 1901~1966)도 조지프 매카시의 공산당 색출에 적극 동조했고, 훗날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일개 무명배우에 지나지 않았던 로널드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 1911~2004)도 미국 배우 조합을 만들어 영화계의 공산당 색출에 핏대를 올렸다. 매카시는 공산주의자 느낌이 나는 인물이 있으면 그를 청문회에 세우고 공산주의자로 몰아가며 대중의 관심을 모았다. 그러면 그 다음날 언론은 청문회에 선 사람을 공산주의자라고 확정해 보도하는 식이었다. 여기에는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쫓겨난 치엔쒸에썬(錢學森전학삼, 1911~2009) 박사도 있었다. 그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 JPL연구소의 공동 창립자 중 한 명으로 당시 우주공학, 로켓엔진기술의 최우수 인재 중 하나라 불리던 사람이었다. 2차 대전 중에는 직접 독일로 가서 독일의 우수한 과학자들을 포섭해 미국으로 데려오는 공을 세우기도 했고, 우주비행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하다. 1950년, 중국에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공산당으로 몰려 FBI의 감시를 받았던 그를 구명하기 위해 동료 과학자들이 부단히도 애를 썼지만 당시 정치권은 그 목소리를 무시했다. 결국 그는 1955년 중국으로 떠났다. 중국으로 간 치엔은 5년 동안 공교육을 정비해 기초학문을 탄탄히 하고, 그 다음 5년 동안은 대학생,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응용학문을 가르치고, 그 다음 5년 동안 실무적인 준비를 마치면 중국도 인공위성을 쏠 수 있다는 계획을 마오쩌둥에게 제시했고 마오는 그를 전폭 지원했다. 지금 중국이 인공위성을 발사하고 핵폭탄을 소유하게 된 것은 모두 치엔의 공로인데 어쩌면 매카시의 공로라고 할 수도 있겠다. 훗날 미중관계가 우호적으로 변하고 미중간 교류가 시작되었을 때 미국에서 치엔을 초청해 우주공학기술에 대한 연구교류를 하려고 했다. 그 때 치엔은 사과부터 하라고 일갈하고 단 한번도 미국에 가지도, 미국 연구자들을 만나지도 않았다. 3 홍범도 장군은 1868년 평양에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났다. 모친은 그를 낳고 얼마 못 가 세상을 떠났고 부친도 그가 아홉 살일 때 세상을 떠났다. 머슴살이를 하며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금강산 신계사에서 출가했다. 홍범도는 신계사 상좌 지담(止潭) 밑에서 처음으로 공부라는 것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비구니였던 부인 이옥구(이옥녀라고도 함)를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환속하여 이옥구의 친정이 있는 함경남도 북청으로 가 살림을 차렸다. 사냥꾼 생활을 하며 명포수로 그 고장에서 이름을 날리던 홍범도의 인생이 바뀐 것은 1895년 을미사변 직후다. 일본인들이 경복궁에 난입해 왕비를 처참하게 살해하고 조선의 정치를 장악해 단발령 등을 시행해 조선 사람 개개인의 삶을 장악하려 했을 때 홍범도도 포수 열 네 명과 의병을 조직했다. 을미의병이 흐지부지된 후에는 홍범도와 14인의 포수들도 흐지부지 해산을 한 것 같다. 그러다가 1907년 정미조약을 계기로 정미의병이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자 그도 수 백 명의 사람들을 모아 다시 거병했다. 어린 시절부터 머슴 생활을 했고 커서는 포수로 사냥을 해 먹고 살았던 홍범도는 기골이 크고 근육질이면서 몸이 매우 민첩했다고 한다. 이때 일본군은 홍범도의 부인 이옥구를 붙잡아 홍범도를 회유하려 했다. 조선군 제3순사대 대장 임재덕(林在德)은 일진회 회원이었는데 이옥구를 붙잡아 간 게 바로 그였다. 이옥구가 말을 듣지 않자 일본군은 이옥구에게 모진 고문을 가했고 이옥구는 직접 혀를 자르며 회유를 거부했다. 결국 말을 못 하게 된 이옥구는 ‘삼수갑산’이라 하는 갑산의 감옥에 이송되었다가 얼마 못가 세상을 떠났다. 1908년 4월의 일이다. 같은 해 6월에는 17세였던 장남 홍양순도 함남 정평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홍범도는 차남 홍용환을 데리고 연해주로 건너갔는데 이곳에서 홍용환도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홍범도는 한동안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다가 1922년에 이인복과 재혼하였다. 이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우리가 비교적 많이 알고 있다. 1920년 봉오동 전투 청산리 대첩에서 큰 공을 세우고 일본의 토벌군을 피해 소련으로 건너간 이야기나 자유시 참변(1921) 같은 이야기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홍범도는 레닌과 트로츠키를 만난 (아마도) 유일한 독립군이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한 고려인 강제 이주 때 지금의 카자흐스탄으로 가 크즐오르다 고려 극장에서 수위장으로 일하다가 1942년 즈음에 사망했다. 명확한 사망시기에 대해서는 1943년설과 1942년설이 있다. 옛날에 공자(孔子)를 두고 ‘안 되는 줄 알면서 하는 놈(是知其不可而爲之者)‘이라 비웃은 이가 있었으나 본시 사람의 길이란 천하를 바라보며 설사 일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을 알아도 옳은 길이면 그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니, 맹자(孟子) 또한 이르기를 넓은 곳에 거하며 바른 자리에 서서 세상을 위한 큰 도를 행함에(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 뜻을 얻으면 사람들과 함께 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혼자서라도 그 길을 가는데(得志與民由之 不得之獨行大道) 부유함과 귀한 자리도 그를 방탕하게 만들지 못하고, 가난과 천함도 그를 흔들지 못하고, 위세와 무력도 그를 굽히게 만들 수 없다 하였으니(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 威武不能屈) 이 말은 곧 홍 장군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세상에 그 누가 조선의 몇 사람이 제국 일본을 상대로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겠는가? 비록 자신이 소 아홉 마리 중에 털 하나에 불과한 작은 존재라 생각할지라도 옳은 길이기에 그 길을 갔을 뿐이다. 일본이 패망하고 일본의 식민지들이 하나하나 독립을 할 때, 홍 장군 같은 이가 없었다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나 조선의 후손들이 이 시대 조선을 바라보며 조선인들은 독립을 원치 않았구나, 독립할 마음이 전혀 없었구나 했을 것이다. 그게 지금 한반도의 두 국가가 독립운동을 한 열사, 지사들에게 진 빚이다. 4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1958~, 육사 37기. 비례대표)이 작년 정기국회 국정감사 중에 뜬금없이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985년 대위로 경기도 북부에 있는 8사단에서 재직할 때, 훈련 중 발사된 박격포에 맞아 숨진 이등병을 두고 불발탄을 밟고 죽었다고 보고해 사건을 조작하고 책임을 회피한 사람이다. 2022년 대통령 소속 진상규명위원회가 유가족의 신청을 받고 이 사실을 밝혔는데 대통령 눈치를 보느라 차마 진상규명위에는 이의를 제기하지도 못하고 이를 보도한 오마이뉴스 측에 대고 명예훼손이니 손해배상이니 운운하며 화풀이를 한 바 있는 비겁한 사람이며 (중앙일보.2023.08.28.) 천안함전우회 안종민 회장이 SNS에서 이를 지적하자 계정을 차단하고 마치 온 세상이 국회 국방위 간사인 자신을 음해한다는 식으로 말하며 모략이라 말한 바 있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그는 조선일보 칼럼을 통해 안보낙관론과 지도층의 무능이 얼마나 안보에 위협이 되는지 이야기한 바 있다. 안보에 철저한 사람인 양 행동하지만 정작 실상은 강약약강 그 자체인 신 아무개는 중요한 책임은 회피하는 비겁한 태도를 지닌 사람으로 안보를 운운할 자격이 없는 자인데 그것도 모자라 북진통일을 운운하니 참으로 우습기만 하다. (모두가 평화를 노래할 때 '북진통일' 준비하라. 인사이트.2020.06.21.) 자기 휘하의 병사 하나도 제대로 책임을 못 지고 권력에 아부하는 비겁자 주제에 나랏일을 입에 담는 것도 가소로운 일인데, 목숨 바쳐 제국주의와 싸운 투사, 열사를 감히 모욕하는 것은 무슨 주제도 모르는 짓이란 말인가! 이런 이들이 북진통일을 외치는 까닭을 나는 안다. 자신들은 절대 전장에서 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인이 총알받이로 앞장서서 싸울 것이 아니면 비겁한 소인배 주제에 젊은이들 목숨을 자기 손 안의 바둑돌인양 떠들지 말자. 그는 성범죄 피해를 호소하며 잼버리 퇴영을 진행한 한국 스카우트 전북 연맹 단원들을 두고 반 대한민국 카르텔을 운운한 바 있는데(신원식 페이스북) 참으로 가소로운 망동망언이라 할 것이다. 5 그러면 왜 신원식 같은 인물이 망언을 펼치고 현재의 한국 정부와 여당은 이런 인물에게 동조하여 유난을 떨고 흉상을 옮기냐 마냐 하는가? 이들에겐 사실 역사도 전통도 없다. 이들이 숭상하는 것은 오로지 힘, 그것 뿐이다. 그 힘을 가지고 싶어하고 그 힘을 가진 사람을 너무나 사랑한다. 목적도 이유도 없는 맹목적인 사랑은 현실감각을 잃게 만든다. 나는 개인적으로 현실 정치에 있어서 보수란 힘에 대한 숭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권력이든 재력이든 무력이든 완력이든, 현실 정치에서 보수를 칭하는 이들은 힘을 숭상하고 자신들 스스로를 권력 예비 보유자 쯤으로 생각한다. 미국이나 일본, 중국 같은 강대국이 아니면 대부분의 사회에 존재하는 (현실 정치 상의) 보수가 강대국을 숭모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특히나 식민지나 침략을 경험한 사회의 소위 보수라는 자들은 자신들을 침략하고 점령한 집단에 대한 숭상을 보인다. 왜 한국 보수가 성조기를 흔들고 다니는가? 사실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수층이 강대국 미국/일본/중국을 찬양하는 경우는 너무나 많지만 한국 보수 처럼 성조기를 들고 나타나는 집단은 정말 드물긴 하다.) 자신들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사랑해 마지 않던 일본, 자신들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배워야 한다고 외치던 일본! 미국이 사랑해 마지 않는 일본! 대통령이 좋아하는 모리소바, 우동, 장어덮밥의 나라 일본! 오무라이스가 맛있는 나라 일본! 그런 일본에 감히 덤빈 독립군이 그들의 눈에 얼마나 거슬렸을까! 게다가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목하는 전정권(前政權) 씨가 유해를 모셔온 홍범도 장군이니 얼마나 지우고 싶었을까!  6 앞에 이야기한 것이 다소 극단적인 예시처럼 들릴 수도 있겠으나 과거의 이른바 반공이라는 것은 다 이런 식이었다. ‘공산당 같다’, ‘~~에서 태어났다’, ‘정부 정책에 자꾸 의심을 품는다’ 등등. 공산주의와 전체주의도 구분 못 하는 사람들이니 자기들 입맛에 안 맞으면 뻑하면 공산당을 찾는다. 과거 몇 십 년 동안, 그들이 자기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개인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 가짜 간첩을 얼마나 만들어 냈는지는 굳이 하나하나 열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김기춘이 날조하여 고문하고 살해한 재일교포 간첩단, 김아람 양 돌잔치에 모인 일가 친지와 이웃, 친구들을 아람회라는 반정부 간첩단으로 만들어 체포하고 고문했던 전두환 정권 등등등. 인터넷에 김창룡을 검색하면 조갑제(趙甲濟) 등등이 쓴 김창룡 찬양이 넘실거리고, 김창룡의 두 딸(김미경, 김미영)은 부친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면서 자기 부친이 일본군에서 활약한 내용을 책으로 엮어 출판하기도 했다. 그가 박정희를 살려주지 않았다면, 그가 간첩들을 잡아들이지 않았다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었겠냐면서! 이따위 글과 책이 세상에 나와도 아무 문제가 없는 대한민국! 7 역사는 해석의 문제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여 역사란 각자 자기 꼴리는 대로 지껄여도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근거, 즉 사실에 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해석은 그냥 믿음이다. 이것은 무당의 공수를 믿는 것보다 저열한 것이다. 무당이 하는 말은 그러려니 하고 넘기면 그만이지만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 조각을 모아서 이것이 참역사요 진실이라고 우기면 세상에 끼치는 해악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우리 모두 확인하고 있다. 언제까지 믿음을 지식이라고 우길 것인가? 또, 공산주의자면 조선 독립의 공이 사라지는가? 홍범도 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한 박정희는 빨갱이인가? 소련과 수교하고 장군의 유해를 봉환하려고 처음 시도한 노태우는 빨갱이인가? 해군 잠수함에 장군의 이름을 붙인 박근혜 정권과 그 시절 해군은 빨갱이 정권 좌파 군대인가? 실리도 없고 이념도 없고 윤리도덕도 없는 홍범도 장군 모욕 주기는 지금이라도 멈춰야 한다. 김창룡의 후예들이 홍범도 장군을 모욕하는 것이 자유라면, 그런 자유에 대해 우리는 다시 생각해봐도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드는 요즘이다.
과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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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유족이 본 대통령 기념사
  저는 4.19 혁명 유가족입니다. 할아버지께서 4.19 혁명에 참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사망 후 수유리에 있는 국립 4.19 민주묘지에 안장되어 계십니다. 2~3년 전부터 유가족 신분으로 기념식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기념식에 참여했는데요. 수유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보는건 이번이 두번째입니다. 작년엔 당선인 신분으로 기념식에 참여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기념식에 참여하다보니 드는 의문이 많아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제63주년 4.19혁명 기념식에서 낭독한 윤석열 대통령의 기념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의회신문 2023.04.19.) 정부는 처음으로 4·19혁명이 전개된 지역 학생들의 학교 기록을 포함하여 현지 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결과 서울, 부산, 대전, 대구, 강원, 전북, 마산 지역에서 주도적 활동을 하신 서른한 분에게 건국포장을 수여하게 됐습니다. 특히, 부산 지역 4·19혁명을 주도했던 부산고등학교의 열한 분의 공적을 확인하고 포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부에서 4.19 혁명을 기억하고 국가차원으로 예우해준 덕분에 살아계신 혁명 참여자와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불굴의 용기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자 분연히 일어섰던 4·19혁명이 63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유민주주의와 국격을 바로 세운 4·19혁명 유공자들을 한 분, 한 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후세에 전할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정치적 의사결정 시스템입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민주주의가 바로 자유민주주의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혁명 열사의 뒤를 따라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히 지켜내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함께 모인 것입니다. 이 짧은 기념사에서 자유민주주의를 4번이나 반복하시다니. 헌법 전문에서는 4.19혁명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ㆍ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또한 4.19혁명 정신이 자유, 민주, 정의이기는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함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헌법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있습니다만,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주장해온 ‘자유시장경제를 위시한 자유민주주의’와는 다른 표현입니다.  독재와 전체주의 체제가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쓴다고 해도 이것은 가짜민주주의입니다. 우리가 피와 땀으로 지켜온 민주주의는 늘 위기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독재와 폭력과 돈에 의한 매수로 도전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독재와 돈에 의한 매수를 언급하셨습니다. 가짜, 돈에 의한 매수처럼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것들을 지칭하셨는데요. ‘세계’라고 표현은 했지만, 이때부터 누군가를 지칭하고 싶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최근 모 정당에서 터진 돈봉투 의혹과 관련된걸까요? 이 기념식의 취지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4·19혁명 열사가 피로써 지켜낸 자유와 민주주의가 사기꾼에 농락당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위의 문장들과 함께 꼭 지칭하고 싶은 대상이 있는 것 같은 문장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기념식에 활용할만한 적절한 단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기념사는 A4용지 두어페이지 분량으로, 이런식으로 마무리 됩니다. 하야한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최근 박민식 보훈처장이 “이승만 기념관 건립, 국가의 정체성 확립하는 일”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월간조선. 2023.04.19.) 자유당 독재정권을 몰아낸 혁명을 기념하는 기념일에 독재자의 기념관을 만들겠다는 기관장과, 이를 옹호하는듯 말해야 할 것을 말하지 않는 대통령. 어떤 생각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반면 같은 날 4.19 혁명 관련한 다른 이야기를 찾아보겠습니다. 정중섭 4.19 혁명희생자유족회장은 기념식 경과보고와 별도 인터뷰를 통해 "미국의 독립혁명이나 프랑스 대혁명처럼 4·19 혁명도 국경일로 지정해 국민적 동의와 공감을 현실화해야 합니다."라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디지털타임스 2023.04.18) 또한 김진표 국회의장은 19일 “4·19혁명 63주년을 맞아 4·19 혁명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권고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동아일보 2023.04.19.) 윤석열 대통령도 이렇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제안, 혁명으로 인한 국민의 자긍심을 고양할 수는 없었을까요?  정리해보면, 제63주년 4.19혁명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기념사를 이 역사 자체를 기리는 것보다는, 본인과 주변의 정치적 행보에 도움이 되는 연습장으로 사용했다는 것에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4.19 혁명은 끌어내려야 할 명확한 대상이 있었던 시민혁명입니다. 대통령과 정부의 입맛에 맞게 역사를 재평가해서는 안됩니다.  *대통령은 보통 4.19 당일 기념식에 참석하지는 않고, 오전에 참배만 하고 돌아갑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부터 대통령 신분까지 기념식에 참여해주신 것에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위 글은 4.19민주혁명회ㆍ4.19혁명희생자유족회ㆍ4.19혁명공로자회와는 별개의 개인 입장임을 밝힙니다.
과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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