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24년 이태원 2주기, 잘 지내고 계신가요?
    1.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이란    22년 10월 30일 일요일 새벽 4시 30분. 평소와 다르게 알람 없이 1시간 일찍 눈이 떠졌다. 이날은 아침 6시 출근이었다. 그래서 전날 9시에 평소보다 일찍 취침했다. 일어난 김에 눈을 비비고 산책이나 갈까하며 폰을 봤는데 웬 부재중 전화가 30통이나 와있었다. 마지막 전화는 엄마로부터 1시간 전이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큰일이 났음을 짐작 할 수 있었다.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자마자 엄마는 흥분된 목소리로 ‘야! 너 어디야! 이태원 간거 아니지? 정말 다행이다!’하며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별일 없는데..’라고 말하며 부모님을 안심시킨 후 전화를 끊었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이태원’, ‘압사사고’ 등의 이야기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흥분된 목소리에서 뭔가 큰일이 난 것임은 분명했다.  그날 새벽의 인터넷은 온통 이태원 참사 이야기뿐이었다. 많은 사건 사고를 봐왔지만 ‘압사사고’라는 건 태어나 처음봤다. 무려 159명이 사망한 너무나 큰 대형 참사였다. 사진으로 본 이태원의 모습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이태원의 엄청난 인파와 압사사고로 인한 심정지 환자들을 심폐소생술하는 의료진과 시민들의 모습이 너무나 참혹하고 안타까웠다. 이후 사망자들의 부모들이 속속 이태원에 도착하여 울부짖는 모습을 봤다. 한순간에 이 세상의 전부였던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은 얼마나 비참하고 허무할까. 놀러간다는 아들, 딸의 목소리가 마지막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나는 그제야 부모님의 심정이 이해가 됐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통화해보니 엄마는 통화가 계속 안 되자 고향인 창원에서 차를 타고 올라오려고 하셨다고 한다. 혹시나 이태원에 갔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30통의 전화를 걸며, 살았을지 죽었을지 모르는 나를 걱정하는 마음과 불안함으로 밤을 지새웠을 부모님께 죄송스러웠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집을 나서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그 뒤로 부모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 헌신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사망자의 대부분이 젊은 20~30대라고 한다.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많은 청춘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부모들의 마음은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내가 참사 피해자의 부모라면, 과연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자식을 둔 부모님의 마음을 처음 절절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날이었다.  출근하는 내내 정신이 없었고 마음이 아팠다. 또한 지금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유가족들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공감과 위로가 되기를 기도하며 직장에 도착했다. ‘힘들겠지만, 부디 잘 견뎌주기를’라고.                                        <  이태원 합동 분향소, 사진 출처 - 23.02.05 네이버포토 뉴스 > 2. 살아서도 죽어서도 마음 편할일 없는    이태원 참사 사건이 발생하고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사망자들을 향한 여러 말들이었다. ‘놀러가서 죽었는데 왜 추모를 해?’, '세월호 때랑 마찬가지로 장사하는거 아니냐?', ‘놀러간 애들 왜 보상해줘야 되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도 아닌데, 왜 희생자로 표현해야 되나?’ 등의 비난이 난무했다. 모든 국민이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애도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들을 비난하고 혐오하는 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자식을 잃은 것만으로도 힘든 상황을 보내고 있을 사람들이다. 위로는 못해 줄 망정 비난은 삼가해야 되는 게 아닌가. 2차 가해를 가하는 사람들에게 분노가 차올랐다. 만약에 내가 저 상황에서 저런 말을 들었다면 참을 수 있을까? 지금 마음은 결코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아마 제정신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까지 우리 사회가 양극화된 사고와 생각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정부가 해주는 보상이든 경제적 지원이든 뭐가 됐든 가장 중요한 것은 유가족들의 아픔을 감싸주고 위로하며, 생존자들의 육체적, 정신적 치료와 사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정부는 사고 직후 바로 다음날 바로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어떠한 질문도 요구도 받지 않겠다는 자세로 보였다. 이후 장례식비(천오백만원)와 위로금(천만원) 등을 지원한다고 구체적으로 발표했다. 그 후 국민들의 비난과 오해는 더 거세졌고 ‘죽은 자식들을 핑계로 돈 뜯어내는 것이 아니냐’는 말은 더 강하게 증폭됐다. 사망자들과 유가족, 생존자들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제대로 된 애도와 위로, 치료와 보상을 받기도 전에 많은 비난과 질책을 받아야 했다. 도대체 무엇을 잘못 했길래?그로 인해 더욱더 고립과 단절되는 생존자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누구 하나 진심어린 위로와 도움 없이 그들은 결국 스스로 정부와 세상을 상대로 진상규명과 대처를 위한 긴 싸움을 이어나가야 했다.   3.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정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사회    이태원 사건에 관한 뉴스와 다큐를 면밀히 살펴보니 이 사건은 분명한 고위공직자들의 실수로 인해 일어난 사건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코로나로 2년 만에 열리는 이태원 거리에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라는 경고가 3~5일부터 계속 나왔다. 그러나 행정안전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와 용산구청장, 경찰청장 등의 고위공직자들은 ‘사람이 좀 더 많이 모일 뿐, 언제나 안전했다’라는 말로 방관 했다. 22년 10월 29일 당일 6시부터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오후 6시 30분부터 밤 10시 11분까지 총 11건의 압사를 언급한 112 신고가 접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질서 정리 및 통제를 위한 경찰기동대 파견은 없었다.  저녁 10시 15분. 압사사고가 터저자 정부와 경찰은 그때부터 부랴부랴 기동대를 파견하기 시작했다. 대통령부터 행정안전부 장관, 경찰서장, 용산구청장 등 고위공직자들은 모두 사건이 터진 뒤에 심각성을 인지하고 11시 넘어 현장에 도착했다. 무방비, 무능력 대응의 정부에 젊고 젊은 청춘 159명이 사망했다. 많은 인력이 필요 없이 일방통행만 했어도 사고가 일어나지 않지 않았을까. 이렇게 좁은 골목에 많은 사람이 모일 거라고 언론, 뉴스 등에서 수차례 경고했지만, 왜 미리 경찰을 배치하지 않았을까. 도대체 정부와 경찰들은 사전에 뭘 했고 왜 대비책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았는가.  이태원 참사 이후 다음날 그들은 언론 브리핑에서 미리 인력을 배치했고 할 일을 다했다고 말하며 책임을 회피했다. 대통령, 행정안전부, 경찰청장, 용산구청장 등 어느 누구도 진심어린 사과를 한 사람은 없었다. 위로금과 장례비 등의 금전적인 보상만 있을 뿐, 그들은 이후 현장 방문도, 유가족도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국민을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돌봐야 할 대통령은 이태원 사망자 49제에도 참석하지 않고 크리스마스 행사에 갔다고 한다. 유가족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대통령의 진심어린 사과와 정부의 책임있는 자세가 아닐까. 그러나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서 살고 있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재난 상황 속에서 고위층들의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정책과 대비로 인해 억울하게 피해입는 사례들이 앞으로 더욱더 많아질 것 같아 두렵다. 국민으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안전한 사회는 더 이상 오지 않는 걸까? 그리고 그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더 나아가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국민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나가야 할까?     4. 참사 2주년, 부디 잘 지내시기를  다가오는 24년 10월 29일은 이태원 참사 2주년이 된다.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이태원 참사의 문제가 뚜렷하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노력 끝에 특별법은 만들어졌지만 책임자의 사퇴는 물론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정부의 무관심과 사람들의 비난속에서 생존자들은 점점 더 세상밖으로 나오기를 꺼려하고 있다. 유가족은 한 생명이 떠난 것이 슬프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이 나라의 잘못된 대응과 책임회피가 그들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기지 않았을까.  이태원 참사를 돌이켜보며 나의 삶에서 중요한게 무엇인지, 또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걸어갈 것인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고민해본다. 또한 그동안의 여러 사회적 문제에 무관심한 것도 반성했다. 나는 언제 약자의 편에 한 번이라도 서준적이 있었던가. 아니, 조그만 위로라도 건낸적이 있었던가.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크다. 또한 당장에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딱히 없다는 것에 무기력함이 들기도 한다.  이태원 2주기, 그때의 참사를 떠올리며 유가족들이 겪었을 아픔을 생각해본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고통. 제대로된 사과와 위로받지 못한 아픔과 서러움. 온갖 비난과 욕설을 들어야 했던 비통함과 억울함. 아직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실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부디 이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내셨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응원하고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어두컴컴한 새벽이 가고 아침이 오듯, 유가족에게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과 마음 한편에 안정과 평화와 오는 동시에 떠난 청춘들이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편안하고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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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0주기, 공감과 연대의 세상을 꿈꾸며
10년 전, 그 날의 나는?   2014년 4월 군대를 전역하니 23살이었습니다. 8월에 학교를 복학해도 됐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습니다. 부모부터 주위에서는 전부 1년 늦게 학교를 들어가는 게 아주 큰 일처럼 말했습니다. 그러나 졸업을 하면 다양한 경험을 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 휴학을 했습니다. 무작정 신문배달, 편의점, 택배, 공장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음악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드럼과 작곡을 배우면서 행복했습니다. 첫 사회 생활이라 힘들기도 했지만, 다시 오지 않을 젊은 시절에 이렇게 살 수 있는 것도 행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2014. 4. 16일 그날도 아침일찍 버스를 타고 공장으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피곤한 몸을 누우며 자려고 하는 순간 버스 TV에서 세월호라는 배가 침몰했다는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제 삶 살아가기도 바빴던 저에게는 세월호 참사의 사건이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무슨 사고가 일어났구나’정도였습니다. 이후에 TV와 언론 보도에 사망자와 유가족들의 모습과 진상규명을 외치는 모습이 계속 나와 그때 조금 심각성을 느꼈습니다. ‘아 이게 보통일이 아니구나’하고 인식은 했지만, 그들이 얼마나 슬플지, 자식을 잃고 가족을 잃은 아픔이 얼마나 큰지는 애석하게도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저조차도 제 것, 제 가족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요즘 시대가 그런 거 일수도 있지만, 세상이 점점 자기 일이 아니면 큰 관심이 없는 개인주의화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구요. 그때 조금이라도 유가족들의 아픔을 공감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저 참사 피해자가 과연 나였으면 어땠을까?’라는 마음이 그때는 왜 들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스러운 마음도 듭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알아서 노란 리본을 메든, 후원금을 전달하든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30대가 되어서 어느 한 계기는 아니지만, 점점 주변과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늦게나마 아픈 사건을 겪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으로 성장해서 다행이고 나름 뿌듯하기도 합니다.     다시는 이런 아픔이 없기를   세월호 참사 가족 중 한 딸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님을 인터뷰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딸의 영정 사진을 보며 딸을 기억하고 우는 모습을 보며 덩달아 많이 슬펐습니다. 부모에겐 자식이 세상의 전부 일텐데, 한 순간에 딸을 잃어버린 슬픔이 얼마나 클지 쉽게 가늠이 안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 치의 예고도 없이 떠나버린 딸이 야속하기도 하고 그리울 것도 같은 그 마음이 조금이라도 공감되어 한편으로 많이 슬프기도 합니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 우리 삶에는 아직도 여러 곳에서 안타까운 죽음이 발생하는 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국가나 정부는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나 피해자들의 보상도 외면하고 있습니다. 또한 혐오와 갖은 욕설로 비방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전부였던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그 아픔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요? 그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것이 그들을 위해 우리가 조금이라도 도움일 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이들을 보며 20,30대를 살아가는 저로서는 그저 지금 이 순간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떠나버린 아이들도 얼마나 하고 싶은 게 많고 이루고 싶은 꿈이 많았을까요. 세월호 10주기를 맞이하여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가는 안전망과 피해자 보상, 진상규명에 대해 다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 아픔과 슬픔이 나 자신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우리는 그런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우리의 일로 생각하며 도와주고 위로해야 합니다.     공감과 연대로 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꿈꾸며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경제 성장이 급속도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여러 장점도 있지만, 너무 빠르게 성장한 부작용이 점점 우리 사회에 계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경제적 빈부격차, 혐오, 성차별, 저출산, 일자리 문제, 인간성 상실, 정신적 질환, 전쟁과 평화, 환경 문제 등등 여러 문제가 많이 나타나 고통 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문제가 해결 되기 위해서는 정부나 국가 뿐만 아니라 우리 시민들이 함께 연대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미 일어난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위로하며 정부와 국가에 의견을 내고 호소해야 합니다. 일어난 모든 사건은 남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사건입니다. 함께 고민하고 저항하며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누군가의 고통이 우리 자신의 고통이 될 수 있다는 연대와 공감의 정신이 어느때 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10주년, 다시 한 번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떠올리며 글을 마칩니다. 하루 빨리 유가족들의 슬픔이 사라지고 마음 한 켠에 여유와 행복이 오기를 기원합니다.
4.16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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