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CTeC컨퍼런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숙의
TICTeC Conference(이하, 틱텍 컨퍼런스)는 시민이 공공 시설 문제를 신고하고 정부가 이를 신속하게 정비하는 오픈 플랫폼 ‘픽스마이스트리트(FIX MY STREET)'로 잘 알려진 공익 개발자 그룹 ‘마이소사이어티(mySociety)’가 주최하는 글로벌 시민 기술 컨퍼런스입니다. 2019년에 시작해 시민 기술의 다양한 활동 사례, 리서치,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장으로 자리잡은 틱택 컨퍼런스는 올해 6월 12일과 13일 이틀에 걸쳐 런던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올해는 ‘위협받는 기후, AI 및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거대한 글로벌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 기술이 발전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가 55개 세션에 걸쳐 진행되었는데요.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크루들도 온라인으로 참여해 글로벌 시민 기술의 동향과 국내외 사례, 현장 경험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참여한 크루들이 틱택 컨퍼런스의 주요 내용과 인사이트, 그리고 빠띠와의 활동 접점을 엮어 소개하려고 합니다.  빠띠는 시민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디지털 플랫폼 데모스X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질문으로부터 출발한 생각이 디지털 플랫폼에 모여 제안, 투표 그리고 대화의 형태로 널리 퍼져나가길 바라고 있죠. 이 과정에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파트너들도 함께 참여합니다.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전문가 집단, 시민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는 정치/정책 관계자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렇게 우리 사회의 여러 구성원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과정을 데모스X에서는 ‘숙의'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숙의는 말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문제는 하나지만 시민의 의견과 생각은 정말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문제 해결의 과정에 연관되어 있는 이해당사자들도 많습니다. 이러한 현실로 인해 한국 사회에서는 민주주의를 위한 숙의 과정에 여전히 많은 도전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데모스X팀 크루들은 이번 틱텍 컨퍼런스에 참여했습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숙의' 세션을 통해 시민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숙의의 사례들을 만나봤습니다.    발제 1: 효과적인 참여를 위한 대규모 온라인 참여와 시민회의의 결합 첫 번째 발표는 독일 베르텔스만 재단의 Forum Against Fakes 사례였습니다. 베르텔스만 재단은 독일의 연방 내무부와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언론사와 함께 허위 정보에 대한 정책 실행 방안을 모색하는 시민회의를 진행합니다. 통상적으로 시민회의는 오프라인 현장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명확한 조건이 존재합니다. 시민회의가 효과가 있으려면 가시성, 신뢰성 그리고 많은 사람의 참여가 필수죠. 그리고 단점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현장 참여자가 무작위로 골라지고, 적극적인 참여 의사가 있는 시민이어도 참여할 수 없는 문턱이 생기죠. 그래서 베르텔스만 재단은 기존의 시민회의에 온라인 참여를 결합합니다. 그럼 시민회의 현장 참여자보다 훨씬 더 많은 시민이 함께할 수 있고, 자연스레 더 강한 정치적 신뢰성을 가지게 됩니다. 이날 발표자였던 Stefan Roch는 시민회의와 온라인 참여의 결합을 Zipper Participation으로 소개했습니다. 두 개의 참여 방식을 평행적으로 결합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역할과 단계가 있다고 설명했죠. 전체 과정은 3단계로 나뉘는데,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의 시민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단계에서의 온라인 참여에서는 시민들의 제안과 아이디어를 모으고 그룹화합니다. 이렇게 정리된 의견들은 첫 번째 오프라인 시민회의 토론의 재료로 사용되죠. 각 단계가 진행되면서 시민들의 토론과 투표로 제안들이 구체화되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10개 제안과 28개의 조치로 정리됩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마지막엔 가중치를 부여한 투표를 통해 상위 제안을 도출합니다. 공동 발표자였던 Dr. Dominik Hierlemann은 발표를 마무리하며 여러 시사점을 던졌습니다. Zipper Participation을 통해 유의미한 시민참여 숫자를 확보했고 독일 연방정부에 정치적 영향력을 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이런 과정을 보도하는 미디어가 늘어나면서 더 큰 차원의 공적 토론이 오가는 중이라고도 밝혔죠. 하지만 여전히 고민은 남아있다고 합니다. 온라인 참여가 넓어지고 길어질수록 시스템을 관리하는 데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특히 외부의 정치적 공격과 허위 정보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합니다.    발제 2: 평화를 증진하는 시민 기술: 분쟁의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얻은 교훈 두 번째 발표는 영국의 Build Up 사례였습니다. 발표자로 나선 Helena Puig Larrauri는 3가지 사례를 통해 분쟁 지역에서 숙의를 위한 시민기술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소개했습니다.  첫 번째 사례는 서아프리카의 부르키나 파소입니다. 이곳에서는 허위 정보와 악성루머를 어떻게 다룰지에 대해 약 일주일 동안 온라인 시민참여 플랫폼인 Pol.is를 통해 공적 대화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는 표현의 자유처럼 극명하게 갈리는 주제도 있었지만, 디지털 교육처럼 의견 합치가 잘되는 주제도 있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사례로는 서아프리카의 기니비사우를 소개했습니다. 기니비사우에는 지역 분쟁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는 모니터링 그룹이 있습니다. 활동가들이 취합한 정보는 PDF 파일 형식의 보고서로 제작되어 지방정부에 시민 의견으로 전달되었죠. 하지만 이러한 활동은 큰 비용과 먼 거리로 인해 자주 수행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Build Up은 왓츠앱 채널을 개설하고 정보를 정리한 후, 시민이 왓츠앱에서 분쟁에 대한 정보를 물어보면 답을 확인할 수 있게 했습니다. 더 나아가 Pol.is를 이용하여 지방정부가 보고서를 읽고 어떤 대안을 마련하면 좋을지 물어보는 의견 수렴도 진행했습니다. 마지막 사례로는 수단을 소개했습니다. 수단은 오랜 내전을 겪고 있는 북아프리카 국가입니다. 현재는 두 군부가 평화 협상을 진행 중이고, 시민들은 그 협상 테이블에 시민들의 의견도 개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이를 위해 시민이 참여하는 대규모 컨퍼런스를 계획합니다. 사전에 왓츠앱 채널을 구독하면 컨퍼런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대중의 의견이 필요한 질문을 Pol.is에 업로드한 후, 왓츠앱 구독자들에게 발송합니다. 이러한 과정으로 시민들은 평화 협상 과정에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게 됩니다. Helena Puig Larrauri는 발표를 마무리 하며 모든 과정이 정말 힘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분쟁 지역은 비민주적인 상황에 놓여 있고, 디지털 기술에 익숙지 않은 시민들이 많았기 때문이죠. 특히 모두가 익숙한 페이스북 또는 왓츠앱 대신 새로운 플랫폼에서 대화를 나누게끔 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Helena는 인상 깊은 질문을 컨퍼런스 참여자들에게 던졌습니다. “기존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어떻게 숙의와 토론이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까? 어떤 디지털 공간이 갈등 사회에서 숙의를 촉진할 수 있을까?”라고요. 지구 반대편, 우리에겐 낯선 국가에서의 경험이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 던지는 뼈아픈 질문이었습니다.    발제 3: 디지털 참여와 시민 배심원단의 결합으로 기후 변화와 지역 여행에 관한 포괄적 권고안 만들기 세 번째 발제는 영국의 사례였습니다. 2023년 Shared Future는 영국의 랭커스터에서 지역 기후 참여 프로그램의 하나로 커뮤니티 탐험, 시민참여 플랫폼 Pol.is 그리고 시민 배심원단으로 구성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시민들에게 던졌던 질문은 "랭커스터 지역의 주민으로서 어떻게 하면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동시에 배출량을 줄일 수 있을까요?" 였습니다. 전체 프로젝트는 해당 이슈를 구체화하면서 시작합니다. 2020년 랭커스터 환경 시민 배심원단에서 나왔던 주제를 선정합니다. 이어서 Pol.is를 통해 지역의 교통 문제에 대한 의견을 시민들로부터 받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시민 배심원단으로 활동했던 활동가를 교육해 지역사회 주민들을 인터뷰하는 커뮤니티 탐험가를 배치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Pol.is를 통해 모인 주민 의견과 커뮤니티 탐험가들이 모은 주민 의견이 시민 배심원단 워크숍에서 소개되고 숙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발표자였던 Rowan Harris는 프로젝트를 통해 배우게 된 점을 소개했습니다. 첫 번째는 Pol.is를 통한 주민 의견 수렴이 꼭 대표성을 지니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소셜 미디어나 기술 접근성이 낮은 주민들을 1대1로 찾아가서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제안이었죠. 두 번째로 주민이 응답할 질문을 짜는 것에 매우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고 합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자유'에 관련된 질문에 사람들은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했습니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민주주의 틱택 컨퍼런스를 통해 숙의를 위한 시민 참여의 다양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간 빠띠가 만들어왔던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숙의를 이미 다양한 국가에서 많은 단체들이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죠.  컨퍼런스의 다양한 사례처럼 빠띠의 디지털 플랫폼 데모스X에서도 온오프라인 시민 참여의 장을 열고 있습니다. 일상의 질문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시민제안과 투표, 다수의 시민이 한곳에 모여 토론하는 시민회의 그리고 삼삼오오 동네에 모여 소소한 대화를 이어가는 시민대화까지. 데모스X를 통해 누구나 안전하고 즐겁게 시민으로서 자기 의견을 이야기 나눌 수 있습니다. 일상의 문제를 질문하고 해결 방안을 제안하며 다른 생각을 가진 많은 시민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곳. 디지털 기술을 통해 더 많은 시민이 숙의에 참여할 기회를 얻는 곳. 빠띠가 꿈꾸는 민주주의는 데모스X에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글 | 김태환 빠띠 데모스X팀 크루 변화를 만드는 질문과 대화, 사람을 모으는 시민 대화 플랫폼 demosx.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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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정] 안전한 이별은 정말 여성만의 문제일까요?
들어가며 지난 여성운동의 노력으로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호주제 폐지부터 불법 촬영 법률 제정까지 여성운동을 통해 여성의 인권에 대한 제도와 인식은 긍정적으로 변화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새로운 여성혐오 문제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현상이 있습니다. 바로 친밀한 관계(연인, 부부) 간에 일어나는 폭력(신체 폭력, 언어폭력, 폭행, 성폭력, 강간 등) 문제입니다. 데이트폭력, 스토킹 등의 문제로 대표되는 친밀한 관계 폭력은 여성의 건강을 침해하고 일상의 불안감을 높이는 주요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친밀한 남성이 죽인 여성은 최소 138명입니다. 19시간에 1명의 여성이 살해되거나 살해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범죄의 동기로 “(피해 여성이) 이혼이나 결별을 요구하거나 가해자의 재결합 및 만남 요구를 거부해서”가 1위를 차지하죠. 그만큼 친밀한 관계 내에서 여성의 ‘거부 의사'는 살해를 정당화하는 주요 이유가 됩니다. 2022년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이후 스토킹 범죄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지고 있으나, 여전히 여성의 교제는 안전하지 않습니다. 경찰청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스토킹 범죄 신고 건수는 2만 9565건으로  전년 신고 대비 2배 이상 증가한 수치입니다. 스토킹 처벌을 위한 관련 법과 제도는 발전하지만, 여성이 느끼는 일상의 불안감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제 20~30대 여성들은 “안전한 이별"을 일상의 권리로 인식합니다. 젠더 폭력을 일상에서 여실히 체감하는 것이죠. 그런데 문득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왜 남성들은 “안전한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까요? 남성들에게 “안전한 이별은" 상관없는 문제일까요?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은 왜 남성의 문제로 연결되지 않을까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문제가 일어날까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한 사전 탐구가 필요합니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은 왜 일어날까요?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우선 원인부터 살펴봤습니다. 크게 4가지 영역을 꼽을 수 있는데요. 인식과 문화 교육 법과 제도 언론 첫 번째 인식과 문화 영역에서는 통제와 폭력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위계적 남성 문화와 여성을 도구화하는 성차별적 문화로 세분화해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교육 영역에서는 제도적으로 시행하는 인권/성교육의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 제도 특성상 충분한 교육 시간이 주어지지 않고, 상대를 존중하며 관계 맺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교육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또 하나의 분야로 법과 제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폭력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제도와 조치는 미비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제도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언론이 폭력을 보도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가해 사실을 자극적으로 묘사하거나, 사적 관계에서 일어나는 문제 정도로 축소하고 왜곡하는 뉴스나 기사 말이죠. 써놓고 보니 새삼 놀랍습니다. 하나의 사회 문제에 이렇게 많은 분야가 원인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요. 솔직히 말하면 맥이 탁 풀렸습니다. 이렇게 많은 원인이 있는데 연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하지? 연구로 해결이 가능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한숨은 나오지만, 꾹 참고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이 미치는 영향들을 적어봤습니다. 모든 사회문제는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그 이후에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니까요.  이 문제를 연구 주제로 고민하게 됐던 가장 큰 이유가 여성의 일상 불안감이었습니다. 젠더 폭력은 여성의 생명과 정신/신체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뿐더러, 사회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사회적 안전망(경찰, 법 제도)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이렇게 한 번 낮아진 신뢰도를 다시 회복하기까지는 사회적 비용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폭력을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을 통해 유사 범죄가 증가하고, 이것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 문화가 퍼지는 결과를 만들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 들리지 않는 사람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매우 빠르게 번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성의 불안감이 증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폭력의 경험은 한 사람을 다르게 바꾸어 놓습니다. 친밀한 관계에서 폭력을 경험한 여성은 그 이후의 새로운 친밀한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경험합니다. 어쩌면 아예 새로운 관계를 맺기 두려울 수도 있고요. 그런데 관계는 늘 상호적입니다. 친밀한 관계에 놓인 파트너가 불안감을 호소하면 그 영향은 동시에 상대 파트너의 문제가 됩니다. 이것이 여성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남성이 폭력 문제를 심각하게 느껴야 하는 이유입니다. ‘너’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이고, 동시에 ‘나’의 문제니까요. 이 부분에서 연구하고 싶은 주제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깐!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을 연구하기에는 생각보다 정의 내려야 하는 범위가 넓습니다. 우선 ‘친밀한 관계’에도 종류가 많습니다. 친구, 연인, 부부 관계를 생각하면 쉽지만, 가족과 파트너 등등 다양한 인간관계 형태를 고려했을 때 더 구체적으로 범위를 좁혀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연구의 주제 키워드를 ‘교제폭력'으로 수정했습니다. 교제폭력은 데이트 관계에서 발생하는 언어적·정서적·경제적·성적·신체적 폭력을 말합니다. 그럼 왜 데이트폭력 대신 교제폭력으로 설정했을까요?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데이트폭력’이라는 표현은 공권력이 개입하여 처벌해야 할 범죄의 심각성을 희석하여 연인 사이에 발생하는 불미스러운 일로 가볍게 비칠 우려가 있어 ‘교제폭력’으로 용어를 바꿔 사용한다고 합니다. 선행 연구 등 연구를 위한 자료를 찾아보면 ‘데이트폭력'이라는 키워드가 훨씬 더 많이 등장합니다. 다만 제가 하고자 하는 연구는 사회 운동에 기여하는 연구입니다. 어떤 언어로 문제를 부르는지에 따라 그 영향력은 크게 달라지죠. 나름 ‘세상을 구할 연구'를 계획하고 있느니 운동적 의미를 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연구는 여성의 교제폭력으로 인해 겪는 불안감이 남성의 교제 만족도에 어떠한 부정적 영향을 주는지 연구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어떤 연구가 있었을까? 모든 연구는 크게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합니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다 보면 “네가 생각하고 있는 연구는 이미 누군가가 했을 거다"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죠. 대신에 기존의 연구를 탐구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의 연구 문제를 뾰족하게 다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제폭력'에 대해 어떤 학문 분과에서 어떤 연구를 해왔는지 키워드 중심으로 찾아봤습니다. (교제폭력, 데이트폭력, 불안감, 친밀한관계폭력, 젠더폭력, 관계만족도) 교제폭력을 연구하는 학문 분과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크게 5가지가 있습니다. 여성학: 젠더와 여성에 대한 연구 주제를 전반적으로 다루는 학과입니다. 교제폭력을 연구하기 위한 기초 자료가 가장 많습니다. 법학: 주로 데이트폭력에 대한 처벌 규정과 사례를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교제폭력을 신고하고 가해자 처벌을 위한 법체계를 경유하는 여성의 경험이 담긴 연구자료들이 있습니다. 사회심리학: ‘친밀한 관계'에 대한 정의를 가장 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관계에서의 경험이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 자료가 많습니다. 사회복지학: 세부 연구 분야로 여성복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로 ‘가정폭력'을 중심으로 선행 연구가 많습니다. (보건)간호학: 여성이 경험하는 신체적/정신적 폭력에 주목한 연구가 있습니다. 이렇게 조사하고 보니, 각 학문 분과마다 ‘교제폭력'을 중심으로 특색있는 연구들이 나뉩니다. 여성학과 사회심리학은 제가 하고자 하는 연구를 위해 가장 많은 선행 연구를 참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학습 계획 그럼 앞으로 어떻게 조사를 이어나갈까요? 우선 연구 주제가 ‘관계'에 맞춰져 있는 만큼, 여성과 남성의 친밀한 관계(교제 관계)의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찾아볼 예정입니다. 특히 과거의 경험이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말이죠. 그리고 더 크게 확대해 한 사람의 생애 중 폭력 피해 경험이 추후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도 탐구할 계획입니다. 전반적으로 ‘과거 경험 → 요인 형성 → 현재 관계 형성→ 관계 영향'의 구조에 대해 조사하겠네요. 마무리하며 왜 여성이 겪는 문제는 여성만의 것으로 인식될까요? 우리는 일상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고, 서로 연결되어 사회가 구성되는데 말이죠.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도 변화를 인지하고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연구하려고 합니다. 행동까지 가기 전에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발견하고 알리기 위해서요. 제가 하고자 하는 연구가 세상을 단번에 바꿀 수 없을지라도, 변화를 위한 땔감 또는 성냥불 하나 정도는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참고문헌] “지난해 친밀한 남성이 죽인 여성 최소 138명… 공식 통계도 없다” <여성신문> 2024.3.8 “‘스토킹 범죄 신고’ 2년 연속 최고치 찍나···처벌 강화했는데 왜?” <경향신문> 2023.9.14 한국여성의전화. 데이트폭력 대응을 위한 안내서. 2018 
젠더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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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의 대화] '소외되는 사람들을 위한 더 너른 이야기'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은 남성과 남성성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페미니즘 단체입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노동 분야와 사회적 소수자/약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함께 고민해보았습니다. 진행개요 진행일시 : 2023년 6월 28일(목) 21:30~22:10 진행장소 : 이한열기념관 1층 (서울 신촌역 인근) 함께한 사람들 : 3명 (한, 태이, 곽명진) 대화모임의 계기 시민사회 활동가로서 '노동'이 가지는 의미를 고민해보고 싶었습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들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었습니다. 진행 흐름 사전 영상을 각자 시청했습니다. 진행자가 대화모임의 취지를 소개했습니다. 5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토론했습니다.  토론 정리  [질문 1] 나에게 노동이란 OO다. 한 : 의미와 생계 그 어딘가를 떠도는 일. 태이 : 나에게 노동이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다. 곽명진 : 돈벌이를 위한 것, 내 인생의 가장 큰 줄기 중 하나,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질문 2] "좋은 노동"이란 무엇일까요? 한 : 정당한 보상이 있으면서도 개인의 삶을 잠식하지 않을 수 있고 또 그것이 단지 한 사람의 밥벌이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에 최소한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노동 태이 :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각자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때 좋은 노동이지 않을까. 그리고 노동의 결과가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되면 제일 좋은 것. 곽명진 : 스스로 존재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노동. 즐거움을 느껴도 좋고 자신만의 자부심을 느껴도 좋고, 각자 일련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면 그게 좋은 노동이라 생각합니다. [질문 3] "디지털 노동"하면 드는 느낌은? 한 : 디지털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생산물이 실질적인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한 물음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 챗GPT의 발달 같은 것을 보면서 노동 해방이 가능하지 않을까. 아니 가능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도 여전히 든다. 태이 : 내 일자리가 없어질까봐 두려움. 동시에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챗GPT 같은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겠다는 기대감. 근데 적응 못한 사람들은 뒤쳐지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걱정. 곽명진 : 디지털 노동 시대에 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미 영미권 출판계에서는 초벌 번역을 하고 있고, 관련 번역가들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한다. 나도 걱정되기도 하고, 기술이 더 발전하면 일에 활용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질문 4] 디지털 기술 발전은 위기일까요 기회일까요? 한 : 둘 다 일거라고 생각. 너무 뻔한 이야기지만 누군가에게는 기회이겠고 누군가에게는 너무 큰 위기일 것이 자명한 현실에, 이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좋을지 같이 이야기 나누는 장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 이를테면 '저작권', '개인정보'라는 개념에 있어서도 엄청난 변화가 있어야할 것이고, 생산물을 분배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노동' 아닌 다른 대안이 모색되어야. 태이 : (위기) 정보와 기술을 자본이 있는 기업/국가가 소유해서 시민들이 상대적으로 노동 영역에서 소외될 수도 있겠다. (기회) 역사적으로 없었던 새로운 노동시장이 열리면서, 인간 미래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곽명진 : 늘 새로운 게 나오면 소외되는 이들이 있고, 배제되는 이들이 있다. 과거 산업혁명은 위기였을까, 기회였을까. 결국 위기나 기회를 만드는 건 기술 발전이 아닌 그걸 사용하는 제도,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함. 우리가 고민해야 할 건 이걸 기회로 만들기 위해, 소외되는 이들이 없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닐지. [질문 5]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의 노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한 : 디지털 기술 발전 자체는 생산성을 높인다거나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다만,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로 인한 소외가 아닐까? 재분배에 대한 소외, 정보접근성에 대한 소외, 노동 가치의 소외. 태이 :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노동이 점점 많아지면서, 몸을 쓰는 노동에 대한 값이 점점 낮아지고, 노동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이미 발생하고 있다. 집청소, 아이돌봄, 배달노동자 등등 곽명진 : 디지털 기술을 생산, 소비, 향유하는 매체는 주로 고가일 것이고, 그렇다면 접근성 자체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 특히 맹목적으로 좇다 보면 뒤처지는 이들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리라 생각함. 기억에 남는 발언 혹은 감상 앞으로는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바뀔 것이다. 이미 웹툰 시장에서는 저작권 관련 논의가 많다.  기술의 발전으로 추가적인 소득이나 가치가 발생할 때, 이것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하다. 몸으로 하는 노동과 신기술 기반의 노동 사이에 의미부여가 달라지면서, 점점 노동의 가치가 극과 극으로 나뉠 수도 있다.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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