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보증금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임차인 울리는 주거 문제야말로 '사회 문제'
“주거 문제는 사회 문제”라는 외침이 여전히 필요한 사회   김지선 나눔과 미래-성북주거복지센터 활동가   서울살이 10년, 8번의 이사 학업을 위해 서울로 간다는 기쁨도 잠시, 서울에서 1인 가구로 방을 구해 사는 것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보증금이 저렴한 편이고 식사도 해결할 수 있어 덜컥 계약해버린 반지하 하숙집은, 여름에 벽면 가득 곰팡이가 피는 위험한 공간이었다. 보증금 없이 월세만 내도 거주할 수 있어 선택하게 된 원룸텔은 잠을 자는 것 외 다른 생활은 상상하기 어려운 비좁고 어두운 곳이었다. 첫 전셋집이었던 투룸 빌라 역시 자고 나면 머리맡에 곰팡이가 생기는 공간이었다. 좀 더 나은 주거환경을 찾아 이사에 이사를 거듭하다 보니, 지난 10여 년 동안 8번의 이사를 경험했다.   주거 정책의 제안과 개선 활동 :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주거분과 이는 나만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었다. 우리 사회에서 독립하여 살아가는, 또는 독립을 고민하는 청년 다수가 겪는 문제였다. 그만큼 주거 문제를 향한 관심을 넘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하려는 청년들이 많았다. 이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서울시의 청년참여 기구(거버넌스)인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의 주거분과였다. 서울청년 정책네트워크는 사회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겪어 온 청년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기반해 새로운 정책을 제안하거나 기존의 정책을 개선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 ‘청년월세지원사업’, ‘청년주거상담센터’와 같은 정책들이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를 통해 제안되었다.   주거 정책의 전달 활동 : 주거복지센터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주거분과가 주거 문제와 관련된 의제를 설정하고 정책을 제안 또는 개선하는 일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주거복지 센터는 정책의 전달체계로서 각종 주거서비스를 제공하고 주거 문제 해결에 필요한 자원을 조직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 당사자와의 상담과 사례관리를 기반으로, 문제를 겪는 가구의 특성과 상황에 맞는 주거 정책 정보의 제공과 연계, 주거 위기에 처한 가구를 위한 주거비 지원, 주거 정책 접근성을 높이고 자원을 연계하기 위한 지역사회 네트워크 구축에 힘쓸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주거권을 옹호하기 위한 각종 활동에도 참여한다. 한편, 필자가 소속된 사단법인 나눔과미래는 서울 성북과 종로 지역의 주거복지센터를 위탁 운영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주거권이 시민들의 당연한 권리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만성적 주거불안에 노출된 시민들 지난 5여 년 동안의 활동을 통해 주거의 어려움을 겪는 다양한 시민들을 만나면서 많은 이들이 임대차 계약부터 퇴거 후 이사의 전 과정 에서 만성적 주거불안에 시달리고 있음을 느꼈다. 임대인과 공인중개사에 비해 임차인이 가진 정보와 권한이 부족해 불리한 계약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도 않았는데 임대인이 퇴거 요구를 하지는 않을까, 이러한 주거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 나 혼자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밖의 수많은 주거불안이 시민들 삶에 내재해 있었다. 2022년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전세사기’는 오랜 시간 반복되고 축적되어 온 우리 사회의 만성적 주거 문제가 말 그대로 ‘폭발’한 것이었다.   “주거 문제는 사회 문제”라는 외침이 여전히 필요한 사회 시민들의 겪고 있는 여러 층위의 주거불안을 한 번에 다 나열하기 어려운 만큼, 이를 해소하는 방법 역시 하나의 글에 담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많은 시민이 공통으로 말하는 주거불안 중, “주거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이 나에게 있고, 나 혼자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어보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주거 문제는 해결을 위해 사회적 노력이 필요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을까? 이번 전세사기에 대한 행정과 의회의 대응을 살펴보면, 아직도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민의 주거불안이 임차인과 임대인이 가진 정보와 권력의 차이, 주택임대차보호법·최저주거기준을 포함한 법적 기준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상황, 공공임대주택 공급보다는 대출에 의존하는 정책, 주택 형태(다세대, 다가구, 아파트 등)와 점유 상태(임차, 자가소유 등)에 따른 주거환경의 격차 등을 포함하는 사회구조적 측면에서 발생하고, 그렇기에 공공이 주거 문제에 대해 책임지고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외침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필요함을 간절히 깨달았다. 주거불안을 일으키는 구조적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주거 문제는 사회 문제”라는 대전제에 대한 공감과 설득이 필요하다. 그 필요성을 깊이 새기며, 오늘도 주거 문제 당사자들을 만나는 현장에서 ‘혼자가 아니다’,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보자’ 마음을 전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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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평화시장에서 시작된 '걸크러시'? 이소선 여사와 노동자들
진짜 센 언니들   박미경 전태일재단 기획실장 확실히 걸크러시가 대세인가보다. 윤석열 대통령의 집안도 그렇다는데, 문제는 공사 구분이다. 아무튼, 국정을 뒤흔든 진짜 여전사들이 있다. 이소선과 청계피복노동조합의 여성들이다.  이소선이 뿌린 씨앗사회운동가 이소선은 1929년생으로 지금 살아계시면 94세다.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에서 노동조건 개선과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의 실현을 위해 분신 항거한 전태일이 이소선의 아들이다. ‘내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루어주세요’라는 아들의 유언으로 이소선은 나이 마흔하나에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고령사회라는 지금이야 마흔하나를 많은 나이라고 하지는 않지만, 그때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이십 중반이었다. 당시의 사회적 시선으로 이소선은 그저 못 배우고 돈없고 나이 많은 아줌마였다. 더욱이 팔자까지 드세어 아들을 앞세운…이소선은 사회적 편견에 주눅 들지 않고 나섰다. 나아가 자신처럼 노동 운동과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을 보듬고 일으켜 세웠다. 이소선은 생전 아들의 죽음 직후 ‘거액의 보상금과 이권을 물리친 게 가장 잘했던 일’이라고 했다. 노동청과 평화시장 업주들이 전태일의 장례식을 빨리 치르라며 돈이 한가득 든 큰 보스톤백을 가져왔는데, 가방을 열어 돈을 공중에 뿌렸다. 대단한 결단력이며 자신의 분노와 슬픔을 표현하는 데 거침이 없는 분이었다.1970년부터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7월 노동자투쟁이 있기까지, 투쟁의 현장에서 이소선은 경찰 앞에서 “나부터 잡아가라”며 소리치며 버티고 섰다. 노동조합 활동으로 또 민주화운동으로 이소선은 4번 구속돼 옥살이를 3년 했으며 구류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이 결과 이소선의 표현대로 “독재정권 놈들”은 물러났다. 아카시아회가 맺은 열매이소선의 강단과 결기로 전태일 죽음 이후 보름 만에 설립된 청계피복노동조합원의 초창기 조직 확대사업의 일등공신은 여성노동자들의 소모임이었다. 노동조합에 뿌리를 둔 첫 번째 소모임의 이름은 아카시아회였다. 여기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자긍심을 갖게 되고 자신이 일하는 노동 현장의 문제에 대해 스스로 문제를 찾고 고쳐 나가는 실천 활동을 했다. 아카시아회는 꽃송이가 주렁주렁 달리는 것처럼 번창해서 백합, 무궁화, 레몬, 장미 등의 소모임도 자꾸 생겨났다. 이 영향으로 남성노동자들의 소모임도 탄생하게 된다. 어여쁜 이름의 소모임 출신의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조합 간부로 성장하게 된다. 당시는 합법적인 노동조합 활동은 고사하고 어떤 집단행동도 용납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배움에 목마른 청계 노동자들이 소중하게 여겼던 노동교실을 지키기 위해 농성에 들어가고 또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정부와 사업주에 맞선 투쟁에 온몸을 던졌다.1977년의 이소선 석방과 노동교실 반환을 요구하는 투쟁에서 전태일의 여동생 전순옥과 열일곱의 임미경은 죽기를 각오하고 4층에서 뛰어내리려 했다. 이때 임미경은 자해를 하며 “제2의 전태일은 여자가 될 거야! 내가 죽을 거야!”라고 외쳤다. 당시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경찰의 욕설과 폭력은 기본값이었으나 청계노조 여성노동자들은 배로 되갚아주었다. ‘빨갱이년’이라고 하면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냐 몽둥이냐’고 대들고. ‘반성하고 머리를 숙이라’라고 쥐어박으면 의자나 책상 위의 기물을 던지며 강단지게 저항했다. ▲ 2020년 10월 3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 분신 40주기를 기리는 '2010 전태일의 꿈' 추모 문화제 및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에서 "하나되어 승리하자"며 발언하는 이소선 ⓒ 전태일재단  진짜 걸크러시는 노동의 연대로부터이소선과 청계피복여성노동자들을 여전사라고 호명하는 것은 투쟁력 때문만은 아니다. 사랑도 세게 했다. 누군가 이소선을 천재라고 했는데, 인간에 대한 열렬한 사랑에서 비롯된 천재성을 가졌다는 뜻이다. 함께하는 노동자들에게 단결하면 이길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이소선은 한때 한자리에 있으려 하지도 않는 양 노총을 자신의 앞으로 끌어다 앉혔다. 사랑의 상상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청계피복노동조합 여성노동자들 소모임의 원천은 우정이다. 한창 뛰어놀고 배워야 할 나이에 공장에 나와 일을 하던 어린 여성노동자들은 친구가 되어 마음을 나누고 위로하면서 친밀한 우정을 나눴다. 노동조합 활동과 투쟁은 하면서 서로에 대한 책임이 더해져 우정 이상의 운명적 우정이 돼버렸다. 지난해 연말, 전태일재단은 여성사업단을 만들었다. 극단적인 양극 화시대에 노동은 희망의 주어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또한 불안정노동은 여성 노동이기도 하다. 센 언니들이 나서야 할 때다. 이소선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인 2011년,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타워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던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러 가고 싶어 했다. 기력이 좀 있을 때였던 2008년 기륭전자노조 단식투쟁 때는 현장을 찾아 “살아서 싸우자”고 했다. 전태일재단 여성사업단은 이소선처럼 어렵게 일하고 싸우는 현장으로 찾아가 손을 맞잡으려 한다. 또 청계피복노동조합의 아카시아회처럼 여성 활동가들이 마음을 나누고 위로하면서 서로의 성장에 힘을 나누는 우정과 환대의 시공간을 열고자 한다. 진짜 걸크러시로 어지러운 국정을 바로 세우는 데 보탬(?)이 되고 새로운 희망의 판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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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때문에 나를 자른다고요?" 다가올 ‘AI 기술실업’에 맞서 지켜야 할 것은?
‘AI 기술실업’에 맞서 지켜야 할 것   고아침1) AI윤리레터2) 필진, AI 연구자   AI발 기술실업의 본격화 지난해 말 KB국민은행이 콜센터 협력업체를 줄이면서 상담사 240여 명이 해고 위기에 몰렸다.3) 인공지능(AI) 상담이 늘고 콜센터 콜수가 줄었다는 이유다. AI 시스템 도입에 따른 기술실업의 전개 방식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골자는 이렇다. 1) 기존 상담사 업무를 (일부) 자동화하는 AI 시스템을 도입한다. AI 시스템 위주로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고 상담원 연결은 어렵게끔 한다. 2) 콜 수가 줄어들었으므로 상담사 인력을 감축한다. 향후 AI 자동화가 예상되는 분야일수록 인력 충원을 삼간다. 3) 상담사의 상담 기록을 언어 데이터 삼아 AI 시스템을 개선한다. 상담사의 데이터 제공은 평가와 연동하여 거부하기 어렵게 한다.   AI 자동화를 매개로 하는 불안정노동 확산 속에서 노동자는 이중의 불이익을 당한다. 우선 자동화 도입의 영향으로 일자리를 잃거나 노동이 불안정해진다. 위 사례에서 상담사들은 노동조합과 여론의 압박 덕에 고용승계가 되었지만, 급여 조건이나 근무환경이 악화하였다.4) 한편, AI 시스템 구축에 활용되는 데이터를 노동자가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그 수혜를 입는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시스템을 도입한 고용주다. AI 시스템 오작동의 불편이 소비자 및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것은 덤이다.   생성형 AI 기술의 부상과 자동화 도입의 유행 속에서 기술실업도 잦아지고 있다. 언어 학습 서비스 듀오링고는 생성형 AI 도입을 추진하는 가운데 올해 초 계약직 직원 약 10%를 해고했다.5) 드롭박스, IBM, 구글 등 테크업체들이 경쟁하듯 AI 도입을 명목으로 대량 해고를 감행하는 가운데, AI 기술을 만드는 노동 또한 위태로운 것은 마찬가지다.6)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은 호주 데이터 라벨링 업체 에펜에 ‘전략적 검토’를 이유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7) 수천 명의 하청 근로자가 영향을 받으리라는 것이 알파벳 노동조합의 의견이다.   AI의 일자리 대체는 필연적인가? 인간에 준하거나 인간을 능가하는 AI가 등장하여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것이 기정사실인 듯한 분위기 속에서 기술실업 소식은 더욱 자주 들려올 것이다. 기술실업은 정말로 어쩔 수 없는 흐름일까? 여기에는 AI 기술 발전에 대한 상당한 낙관론, 기술이 등장한 이상 노동력 대체는 불가피하다는 기술결정론적 가정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 두 가정 모두 비판적 거리를 두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2022년 한 승객은 에어캐나다 웹사이트에 적용된 챗봇에 할인 규정을 문의했다가 챗봇이 지어낸 잘못된 규정을 안내받아, 예정에 없던 비싼 비행깃삯을 냈다. 그는 민사 소송을 냈고, 항공사는 보상 명령을 받았다. 8) 생성형 AI에 기반한 자동화는 언제나 오류의 가능성을 가지며, 언제 어디서 오류가 나타날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불확실한 기술을 믿고 기존 인력을 대체하는 것은 현명한 판단일까. 에어캐나다는 결국 해당 챗봇을 웹사이트에서 제거했다. 위와 같은 오류는 생성형 AI 기술이 절대적 정확성보다는 통계적인 그럴싸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이른바 ‘환각 hallucination’ 현상이다. 기술 발전을 낙관하는 이들은 ‘앞으로 AI 환각 문제가 해결되면···’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곧잘 구사하지만, 현재 기술 패러다임에서 그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데이터를 학습해 인간이 쓴 것 같은 글을 생성하거나 복잡한 자료 속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AI 기술을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지만, ‘자동화’의 복음은 언제나 얼마간의 과장광고와 함께 찾아온다. 식당 키오스크나 소셜미디어 필터링 알고리즘처럼, 겉보기에 그럴싸한 자동화 기술이 실제로는 뒤에서 인간 노동의 보조를 받아야만 작동하는 ‘가짜 자동화’는 기술의 역사에서 곧잘 찾아볼 수 있다.9) 기술적 성취를 과대포장하고 인간의 노동을 비가시화하는 경향은 노동자의 지위를 약화하고 자본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한다.   현재의 AI 기술에서 ‘가짜 자동화’는 어떤 형태를 띨까? 우선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 필요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라벨링하고, 모델 성능을 향상하기 위해 출력 데이터를 필터링하는 수많은 ‘유령 노동자’가 있다.10) 알파벳이 계약 해지한 에펜의 근로자도 여기에 해당하며, 이러한 노동은 남반구의 저임금 노동 인력에 의해 수행되곤 한다. AI 모델은 학습 시점의 데이터에 고정되기 때문에 최근 자료를 반영하려면 데이터 노동을 지속해서 필요로 한다. 더구나 요즘의 거대 생성 모델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의 컴퓨터 자원과 전력을 소모한다. 모델을 구축하는 데도, 모델을 사용하는 데도 막대한 에너지가 쓰이고 모델을 구동하는 데이터 센터가 소모하는 냉각수의 양도 만만치 않아, 생태적 영향 또한 요주의 대상이다. 11) 기술적 진전이 현재의 속도를 언제까지나 유지하리라 섣불리 확신하기 어려운 이유다.   소수만 이득 보는 기술실업, 그에 맞서는 새로운 흐름 AI 기술이 순탄히 발전하여 인간을 대체할 정도의 능력을 갖추더라도, 그 기술을 적용하는 과정은 여러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기술실업 또한 저절로 발생하는 불가피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취하는 구체적 행동에 달려 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를 위해 기술을 도입할 것인가? 모두의 상생과 공영을 위하는 쪽인가, 아니면 노동자의 몫을 없애 기업의 이익을 늘리는 쪽인가? 안타깝게도 현재 보이는 양상은 후자에 가깝다. 하지만 노동자에 적대적인 방향으로 AI 기술이 적용되는 현재의 흐름에 대항하는 움직임 또한 등장하고 있다. 소수 카르텔에게 이권을 가져다주고 다수에게 손해를 끼치는 기술에 저항하는, 일종의 신-러다이트 운동이다. 2023년 미국 작가조합(WGA)과 배우조합(SAGAFTRA)이 각각 진행한 파업은 애초 처우 개선을 두고 시작했으나, 갈수록 생성형 AI 기술이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었다.12) 파업에 참여한 이들은 작가들의 대본이나 배우들의 움직임 등 노동의 결과물이 AI 학습 자료로 쓰이거나, 인간이 창작을 주도하는 대신 AI로 생성한 초안을 수정하는 보조적 역할로 밀려나는 처우 악화를 경계했다. 긴 파업 끝에 각 조합은 합의안을 통해 AI 기술 활용 시 준수해야 할 규범을 이끌어냈다. 작가조합의 합의안에는 AI 생성물에 크레딧을 부여하지 않고, 제작사가 작가에게 AI 사용을 강요할 수 없으며, 대본 등을 AI 학습 데이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3) 배우조합의 경우에는 AI 활용시 명시적 동의 및 알 권리 보장, 고용 축소를 목적으로 하는 AI 활용 금지, 기술 이슈에 관한 정기적 논의에 배우가 참여하는 등의 합의안을 도출했다.4)   프리랜서 노동자인 작가와 배우들이 AI를 매개로 노동권을 약화하고자 한 제작자연합을 상대로 벌인 투쟁은, 인간 노동자와 AI 사이의첫 본격적인 싸움이었던 셈이다. 이를 통해 도출된 구체적인 활용 방식에 관한 합의도 인상적이지만, AI를 업무에 활용하는 데 있어 노동자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는 원칙을 남긴 중요한 선례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생성 AI 기업을 상대로 창작자들이 집단 소송을 제기하는 등 AI의 노동 위협에 대한 저항은 폭넓게 퍼져가는 모양새다. AI 도입이 단지 노동자를 희생양 삼아 비용 절감을 추구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면, 저항의 전선 또한 맹렬히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술 도입이 노동자의 권익을 약화하지 않도록 상생을 실천할 것, 그리고 도입 과정의 논의와 의사결정에 노동자가 참여할 것. 앞으로 마주할 ‘기술실업’의 전망 앞에서 우리 사회가 힘써 지켜야 할 사항들이다.   1) https://scalarvectortensor.net 2) https://ai-ethics.stibee.com 3) 주영재, 「업무만 가르치고 빠져라? AI발 해고 ‘올 것이 왔다’」, 『경향신문』, 2024. 1. 7.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1070900021. 4) 김온새봄, 「국민은행 콜센터노동자들 “AI로 업무강도 높아져···고용불안도 여전”」, 『참여와혁신』, 2024. 2. 14. https://www.laborpl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288 5) 김서현, 「편의로 소환한 AI에 자리 뺏긴 사람들」, 『메트로신문』, 2024. 1. 15. https://www.metroseoul.co.kr/article/20240115500614. 6) Lakshmi Varanasi, "Big Tech jobs are on the line after Google, IBM, and Dropbox say they're leaning into AI", Business Insider, 2023. 5. 6. https://www.businessinsider.com/dropbox-ibm-google-big-tech-companiesai-in-layoff-memos-2023-5 7) 조재용, 「"챗봇 할인 안내, 항공사 책임" 결정에…에어캐나다, 차액 보상」, 『연합뉴스』, 2024. 2. 16. https://www.yna.co.kr/view/AKR20240216053600009. 8) Astra Taylor, "The Automation Charade", Logic(s) 5, 2018. 8. 1. https://logicmag.io/failure/the-automation-charade/ 9) 이송희일, 「[이송희일의 견문발검] 챗GPT와 디지털 식민지」, 『미디어오늘』, 2023. 2.26.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8715. 10) 곽노필, 「대화 한 번에 ‘생수 한 병씩’…챗GPT의 불편한 진실」, 『한겨레』, 2023. 5. 3. https://www.hani.co.kr/arti/science/technology/1090180.html. 11) 곽노필, 「대화 한 번에 ‘생수 한 병씩’…챗GPT의 불편한 진실」, 『한겨레』, 2023. 5. 3. https://www.hani.co.kr/arti/science/technology/1090180.html. 12) 박재령, 「끝맺은 할리우드 파업이 우리에게 남긴 것」, 『미디어오늘』, 2023. 11. 16.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3842.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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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대신 잡은 피켓, 아나운서의 투쟁기록
  이산하 ubc울산방송 아나운서   2020년 11월 30일, 모든 악몽이 시작됐다. ‘혹시 결혼 계획은 있나?’, ‘(뉴스를 같이 진행하던) 기자 선배가 내려왔으니 같이 내려와야 그림이 좋다’, ‘뉴스를 안 하면 생활이 힘들지 않겠어?’ 이런 것들은 해고 사유가 될 수 없다.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5년 넘게 진심을 다해 일했던 회사를 떠나야 했던 이유조차 모른다. ‘해고’에 대한 나의 대답은 “왜요?”, 예스맨이었던 내가 회사에 처음 제기한 반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팀장의 괴롭힘이 시작됐다. ‘프리랜서에게 업무지시를 않겠다’, ‘누가 이산하 씨랑 친하냐’, ‘나는 말을 섞지 않겠다’, ‘품질이 떨어진다’라는 말도 들었다. 5년여간 매주 해왔던 취재 업무를 시키지 않았고, 동료 아나운서의 휴가로 인한 대타, 코로나 확진자 정보 등 업무 변경사항을 말해주지 않았다. 홈페이지 내 아나운서 소개란에서 삭제하고, 주말당직을 배제하려고도 했다. 이런 팀장의 괴롭힘을 호소했지만, 돌아온 건 또 다른 괴롭힘과 해고였다. 상무는 ‘딸 같아서 그렇다’고 퇴사를 종용했고, 재평가를 하겠다며 뜬금없이 ‘오독 개수를 세겠다’고 했다. 누군가는 정수기에서 물을 뜨고 있던 나를 치고 가기도 했고,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고 걸어 다니라고도 했다. 결국 개편을 이유로, 2021년 4월 2일 해고를 당했다. 그리고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해고통지서는 당연히 받지 못했다.   2021년 11월 15일, 복직 첫 날 ubc울산방송에 2015년 12월 기상캐스터로 입사해,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기상캐스터, 뉴스앵커, 취재기자, 라디오dj, 라디오뉴스, 리포터, 영어아나운서, 사내행사 진행, 주말당직 등 거의 모든 방송 업무를 수행했다.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도 나의 근로자성을 인정해 원직복직 명령을 내렸고, 회사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출근해서 가장 먼저 마주한 현실은 소지품 검사였다. 주머니까지 확인했고, 모욕감을 느꼈다. 그리고 ‘노동위 판정은 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네가 직원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는 막말과 함께 ‘4시간짜리’ 복직명령서를 줬다. 회사는 하루 4시간 단시간 근무에 계약기간을 1년으로 정하거나 ‘적격성이 부족하면 계약해지’ 등 독소조항이 담긴 차별계약서를 제시했다. 또 내가 가진 능력이나 회사가 갖는 기대치를 봤을 때 “최저 시급만 안 주면 된다”고 했고, 지금까지도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책정한 임금을 지급받고 있다. 처음 통장에 찍힌 금액이 140여만 원이었다. 압박하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실제로 나랑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상무실로 불려가기도 했다.   9년째 작성하지 않은 근로계약서 2022년 12월, 행정법원으로부터 부당해고 확정판결을 받고도 제대로 된 근로계약조차 맺지 못한 채 여전히 끔찍한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오히려 괴롭힘과 고립은 점점 더 심해지는 상황이다. 회사는 지난해 9월, 라디오뉴스를 폐지했고, 12월에는 하나 남았던 날씨 방송마저도 폐지했다. 그리고 1월 5일, 거듭 거부의사를 밝혔지만 이전 업무와는 무관한 편집요원으로 일방적인 부당인사발령을 냈다. 여전히 6시간 단시간 근무일뿐만 아니라, 휴게시간은 30분이라 다른 직원들과의 식사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3년 전, 해고를 당할 때와 마찬가지로 내가 방송을 하지 못하는 명확한 이유조차 듣지 못했다. 무늬만 프리랜서일 때는 정규직처럼 온갖 방송 업무를 다 시키더니 근로자로 인정받은 지금 오히려 ‘회사에 너의 자리는 없다’고만 말한다. ‘자질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너랑 일하기 싫어한다’ 등의 말로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그리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노동부에 진정을 넣으라’는 뻔뻔한 태도와 ‘편집교육을 받지 않으면, 인사위원회를 열어 또 해고할 수 있다’는 보복성 갑질은 나를 거리에서 1인 시위하도록 내몰았다.   2024년 1월 15일, 회사 앞에서 시작된 1인 시위 회사의 과오를 밖으로 드러내는 일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노동자를 부당하게 해고한 상황을 되돌리고 명확한 계약서를 쓰라’는 법적취지를 거스르고 시대에 역행하는 곳, 이 모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방송국이었다. 하지만 방송국은 ‘정의를 말하는 곳’이고, 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용기를 냈다. 방송 노동자들이 근로자성을 인정받자 방송국은 온갖 꼼수를 부리고 있다. 프로그램별로 진행자를 뽑거나 1년 계약직, 운이 좋으면 2년 계약직이 될 수도 있다. 나 역시도 법원에서 근로자성을 인정받았지만, 회사는 ‘말려 죽이기’ 작전을 벌이고 있다. 3년 전 나를 괴롭혔던 팀장은 여전히 팀장 자리에 앉아 있고,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무뎌지지는 않는다. 부당한 상황에 문제를 제기했더니, 나는 아무 곳에도 속할 수 없는 이방인이 되었다. 정규직도 무기 계약직도 아닌 ‘애매한 신분’이라며 노조가입도 거절당했고, 비정규직 동료들은 내가 올린 SNS 게시물에 좋아요조차 누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영하 10도의 추위에도, 비바람이 몰아쳐도 왜 내가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 그 진실은 외면당한 채, ‘돈이 목적일 것이다’, ‘언론플레이다’ 프레임이 씌워진 채 나는 오늘도 버티고 있다. 온전한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차별 없이 일할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다. 진실은 승리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하는 곳은 진실을 말해야 하는 방송국이니까.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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