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정치위기, 그리고 기후정치
기후위기가 닥쳤습니다. 비상사태입니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폭우, 홍수, 산사태, 태풍, 해일, 폭염, 가뭄, 산불, 한파 등이 그 증거입니다. 지구의 기후가 위기에 처한 것, 그래서 온 인류와 뭇 생명이 멸종 위기로 치닫게 된 이유는 단순명료합니다. 지구의 기온이 급격히 상승했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기온은 그동안 완만히 상승했습니다. 가장 최근(!)의 빙하기에서 간빙기로 넘어오는 약 1만 년 동안 지구의 기온은 약 4℃ 정도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지난 100년 동안에는 지구의 기온이 약 1℃ 상승했습니다.
인간도 체온이 약간 상승하면 이상과 불편을 느끼고 급격히 상승하면 고열과 오한 등에 시달리며 목숨이 위태로워집니다. 온 인류와 뭇 생명이 사는 하나의 커다란 생명체인 지구도 마찬가지입니다. 급격한 기온 상승으로 지구가 아픈 상태, 그래서 지구별의 생명체들이 죽음의 위협으로 접어든 단계가 바로 기후위기입니다.
기후위기
기후위기의 주범은 휘황찬란한 산업발전의 대가로 내뿜은 온실가스입니다. 지구 대기에 펼쳐진 이산화탄소와 메탄 같은 탄소 물질이, 태양에너지를 받아서 달궈진 지구가 다시 지구 밖으로 열을 내뱉는 것을 방해하면서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는데, 이 기체들이 지구를 마치 거대한 온실처럼 만든다고 해서 온실가스라 부릅니다. 요컨대 기후위기를 막이려면 온실가스를 줄이고 없애야 합니다.
그래서 세계 195개 국가들은 2015년에 ‘파리협정’을 맺었습니다.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하로 막고, 더 나아가 온도 상승 폭을 1.5℃ 이하로 막기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각 나라의 정부는 5년마다 국가 결정 기여(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출하고 검증받는 과정을 반복해야 합니다. 이 협약의 종료 기한은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12월 3일에 파리협정을 발효했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탄소중립이란 온실가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탄소의 배출량과 감소량을 합쳐서, 즉 더하고 빼기 해서 ‘0’으로 만들겠다는 말입니다. (참 어려운 말들 쓰죠?)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석탄발전을 중단하는 것입니다. 모든 에너지원 중에서 석탄발전이 내뿜는 온실가스가 가장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전세계에서 진행 중인 석탄발전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특히 OECD 국가들을 향해 탈석탄을 선언하고 2030년까지 석탄발전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정치위기
그렇다면 파리협정에 가입한, OECD 회원국인 대한민국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온실가스 배출 세계 11위, OECD 국가 중 5위(2017년 기준)를 자랑하는 ‘기후악당’ 국가인 대한민국은 석탄발전을 줄일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에너지 중에서 석탄발전에 의존하는 비율이 44%(2022년 기준)로 가장 높은데, 현재 60여 개의 석탄화력발전소가 가동 중이고 강릉과 삼척에는 각각 2개씩, 총 4개의 석탄화력발전소를 새로 짓고 있습니다. 이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들은 모두 민간 투자를 받아 건설 중인데,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선언한 우리 정부는 이를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보다 못한 시민들이 ‘신규석탄발전중단법(탈석탄법)’을 직접 만들어서 국회에 청원을 넣었습니다. 건설 중인 석탄화력발전소를 중단하고 앞으로 석탄발전은 금지한다는 내용입니다. 2022년 8월 31일 동의를 받기 시작한 이 청원은 한 달이 채 안 된 같은 해 9월 29일에 청원 요건인 5만 명의 동의를 얻는데 성공했습니다. 정부가 법적 근거가 없다고 하니 시민들이 직접 그 근거를 마련할 방법을 마련해준 것입니다. 그 사이 9월 24일에는 약 3만여 명의 시민들의 서울 시내에 모여 기후행진을 벌였습니다. 이제 ‘탈석탄’하고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게 되었을까요?
국회는 웬일인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4개월이 넘게 지난 올해 2월 14일이 되어서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청원소위원회를 열어 겨우 심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 강릉과 삼척의 석탄화력발전소 1개씩은 불을 붙이고 시험 운행을 시작했고요. 법적 근거가 없다는 말에서, 이미 운행이 시작됐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바꾸려는 걸까요?
기후정치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전 지구와 온 인류와 뭇 생명의 생존이 걸린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의 역할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루빨리 어떻게 석탄발전을 그만둘 것인지 대책을 세워야 하고,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신공항 건설’ 같은 토건 사업도 포기해야 합니다. 이미 닥쳐온 기후위기는 불평등하게도 가장 약한 사람과 뭇 생명부터 죽이기 시작합니다. 이들을 어떻게 보호할지 대안을 내놔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기후위기 대응은 말뿐인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유치한 말싸움과 괜한 자존심 대결을 펼치다가도, 석탄산업과 토건산업의 이익 앞에서는 한마음 한뜻으로 애국자가 된 것 마냥 찬성하고 통과시켜주니까요. 기후위기는 다름 아닌 정치위기이며, 정치위기가 기후위기를 더 빠르고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바꿔서 생각해볼까요? 정치를 바꾸면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습니다. 2022년에 주간지 <시사인>은 ‘최초의 ‘기후정치 세력’, 핵심 유권자 집단 될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습니다. 이 기사에서 조사 응답자의 38.8%는 “이번 대선에서 나와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기후위기 해결에 앞장서는 후보가 있다면 지지하겠다”고 응답했고, 36.8%는 “다른 어떤 공약보다 기후위기 공약이 중요하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들이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얼마나 유의미한 유권자 집단이 되었는지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동료 인간 열 명 중 서너 명이 기후불평등을 인식하고 바꿔나가는, 기후정치의 주인공으로 거듭난다면… 전 지구와 온 인류와 뭇 생명의 공생 기간이 조금 더 늘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제민'불평등한 서울을 평등한 서울로 만드는' 녹색당 서울시당에서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아! 위에 조사의 응답자 중에 15.8%는 기후위기를 잘 해결할 정당으로 ‘녹색당’을 꼽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