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에 이런 대화는 할 수 있어야 (2024 한국의 대화 참여 후기)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모습은 어때야할까?  '한국의 대화', 신청과정부터 태도를 고민하게 만드는 제목이었다.  ‘나는 대화를 잘 나눌 수 있는 사람인가?’ 걱정 되기도 하고, 지위를 얻어내거나 지켜내기 위한 일방적 입장, 혐오와 조장하는 발언이 온라인 세상을 도배하고 있는 요즈음.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과연 대화라는 것을 나눌 수는 있을지. 한편으로는 막연한 걱정도 들었다. ‘나와 마주하게 될 누군가는 어떤 사람일까? 혹여나 상대가 강한 입장으로 설득하려 든다면 나도 맞불을 놔볼까? 아니지. 대화의 자리인 만큼 이번엔 다양한 관점과 경험을 수용하는 자세로 참여를 해봐야겠다.’ 상상 속의 대화의 현장은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당췌 종잡을 수 없었다. 그만큼 ‘대화’라는 것이 낯선, 건강한 대화를 경험하기 쉽지 않은 세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토론에 앞서, 갈등의 요소가 다분한 10가지의 질문을 만났다. 당연히 '그렇다', '아니다'로 귀결할 수 없는 질문들에 홀로 곰곰이 생각하고 답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인공지능', '친환경에너지', '노키즈존', '노조파업' 등 쟁점이 되는 입장과 질문들을 뉴스나 언론을 통해 다양하게 접했지만, 그 사안에 대해 생각보다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고, 스스로도 정리되지 않은 입장에 '그렇다', '아니다' 선택을 내려야 했던 상황이 낯설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데 앞서, ‘나는 이렇게 생각해’ 입장을 정하고 ‘그럼에도 이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우선순위를 세워보는 시간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어도 충분히 수용할 여지를 만들어내는 시간이었다. ‘나와 대화를 나누게 될 사람은 어떤 입장을 가진 사람일까?’ 너무 궁금한 나머지, 오프닝 설명을 집중해서 듣지 못했지만, 화면 너머로 보이는 참여자 분들의 표정이 좋으셔서 한편으로 안심하며 소그룹방으로 이동했다.  “아니, 저희 둘이 배정되는게 맞아요?”   내 앞에 나타난 사람은 ‘청년문제를 고민하는 단체에서 함께 활동하는 동료’ 였다. 각자가 활동하는 지역이 달라,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같은 방향을 향해 함께 고민을 나눠왔던 사람이었기에, 서로 다른 응답을 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아는 사이였기에 편안했지만, 아는 사이이기에 더욱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노키즈존이 어린이에 대한 차별일까요? 🙍🏻‍♀️그렇다 🙍🏻‍♂️아니다 -역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아니다 🙍🏻‍♂️그렇다 -인공지능기술이 인류의 미래에 위협이 될까요? 🙍🏻‍♀️그렇다 🙍🏻‍♂️아니다 지정 질문에 대해 놀랍게도 응답한 방향이 달랐다. 응답 결과만 놓고 보면, 우린 만날 일이 없는 사이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알기 전에 우린 이미 서로 관계를 맺어버렸고, 그렇기에 서로의 답이 다르다는 사실에 대해 더욱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었다.  우리의 대화의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내가 아이 이기에 들어올 수 없다는 말은 차별의 요소가 된다고 생각해요. 잘못된 부모의 행동에 따른 피해로 노키즈존을 선택하게 된다면, 그건 아이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어른들의 문제인거죠. 그렇지만 뜨거운 음식을 먹는 음식점 등 위험한 장소는 제한하는게 맞다고 봐요” “가게를 운영하는 지인의 말을 들으면 원도심 등의 시설은 낙후되어 있는데, 이를 아이들도 맘껏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마련하기엔 비용이나 관리여력의 부족도 크고, 혹여나 다치게 된다면 보상을 넘어서서 큰 사고를 당할 위험을 막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다면.. 노키즈존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은 용어인 것 같아요.” “노키즈존을 선택한 모든 곳이 이러한 관계성을 고려하고 단어를 붙였을까요? 같은 이름이지만 그 취지는 모두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른 개념이 퍼진다면 이것과 노키즈 존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까요? 그 대안이 자영업자와 아이 모두를 보호해줄 수 있다면, 노키즈존을  쉽게 붙이진 않을 것 같아요”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달랐으나, 서로 지켜내고자 하는 바는 동일했다. 우선순위로 둔 대상과 가치에 따른 차이였다. 1시간 여 남짓의 대화를 돌아보면,  ’그러한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저도 말씀하셨던 지점에 대해 동의해요’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동의한 지점을 바탕으로 한 대안, 해결책은 무엇일지 함께 토론했다. 질문을 거듭할 수록, 각자의 경험과 우선되는 가치, 기준을 더욱 편안하고 자유롭게 꺼내어 갔다. 서로가 달라서 다행이고, 달라서 충분했던 시간이었다.  대화를 마치고, 함께 활동하는 단체의 동료들에게 “’한국의 대화’에서 우리 둘이 매칭되었다. 우리가 다른 답을 했더라, 근데 또 그 이유는 유사하더라”며 함께 짧은 소회를 남겼다. 그에 대해 동료들이 그 상황을 즐겁게 반기고, 나눴던 이야기를 궁금해했다. ‘다름’이 즐겁고 유쾌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경험한 시간이었다. 다음 번에 질문들을 뽑아서, 다함께 나눠보자는 이야기도 나눴다. 낯선 사람과 서로의 관점을 공유하지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돌이켜보면 관계가 있는 사람이었기에 한번 더 생각하며 말할 수 있었고, 그간의 신뢰가 있기에 더욱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 ’좋은 게 좋은거지’라며 납작한 관계를 지향하는 흐름 속에, 그래도 ‘우리 사이라면, 개인적 고민을 넘어서서 이런 이야기 정도는 나눌 수 있어야지’라는 이야기들이 널리 퍼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댓글이 아닌, 내가 만난 사람, 함께 나눈 대화로 만든 생각을 신뢰할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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