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방사능 오염수 방류에 대한 정부와 정치의 몹쓸 짓
7월 12일 윤석열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리투아니아에 방문하던 중 한일정상회담이 열렸다. 여기서 윤 대통령은 방사능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계획대로 방류의 전 과정이 이행되는지에 대한 모니터링 정보를 실시간 우리측과 공유하고, 방류에 대한 점검 과정에 우리 전문가도 참여토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방사성 물질의 농도가 기준치를 초과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 방류를 중단하고 우리측에 그 사실을 바로 알려달라"고 덧붙였다. 정치의 목적은 문제 해결이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방사능 오염수 배출을 막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이 정치다. 일본의 정치와 한국의 정치가 그렇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애초부터 오염수를 해결하기 위한 생각이 없었다. 후쿠시마산 식재료를 먹어서 응원하자는 부흥운동을 했던 걸로 봐선. 그리고 지금은 방류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일본 정부가 아무도 모르게 방류한다면 막을 방법이 없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방사능 오염수에 대해 가지는 입장은 무엇인가?  거름망으로 바닷물에 방류된 오염 물질을 거르면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해진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일단 스위스 산맥 이름 같은 거름망 기술 ‘알프스’든 방사능 오염수든 덮어두고 상식적인 접근을 먼저 해보자. 사람은 아가미로 호흡하며 바닷물에 살지 않는다. 사람은 바닷물이 깨끗하든 더럽든 바닷물을 원래 마시지 않는다. 사람은 바닷물이 아닌 물을 마시며 생존해 왔다. 바닷물을 마시면 탈수 현상에 걸린다. 사람이 먹는 것은 해산물이다. 해양 생물들은 바닷물에 떠다니는 플랑크톤을 먹고 다른 바다 생물들을 먹으며 생존한다. 먹이 사슬 상위 포식자인 인간은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네 정치권은 국민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였는가. 국민의힘 우리바다지키기 TF는 웨이드 앨리슨 옥스퍼드 명예교수를 초빙했다. 앨리슨 교수는 방사능 오염수를 몇 번이고 마실 수 있다는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도움 되는 이야기는 1도 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각 지역마다 방사능 오염수 방류 괴담이라며 현수막을 걸었다. 국민의힘 의원은 노량진 수산 시장 수조에 담긴 바닷물을 마시는 현대 예술을 보이기도 했다. 6월 15일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노량진 수산시장을 방문해 생선 많이 먹자는 캠페인을 했다. 방사능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면 이런 행동들은 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정치권의 행동과 달리 국민들은 적극적인 반대 의지를 몸소 보이거나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다들 알아서 먼저 하고 있었다. 지난 6월 21일 통영 이순신공원 앞바다에서 약 350여 척의 어선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을 규탄하는 해상시위를 펼쳤다. 전남 완도에서도 200여 척의 어선이 해상 시위를 했다. 그리고 수산물에 대한 불안이 확산되며 학교나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방사능 측정 장비를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휴대용 측정기는 표면 오염도 측정에 쓰이기 때문에 방사능 누적에 대해선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도 한다. 국민들은 있지만 정부는 없다. 소금 사재기가 보도되었다. 살면서 처음 보는 모습이다. 소금 주문이 폭증해 한두 달 치가 밀려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해양수산부는 주문 물량은 늘었지만 소비자 1명이 많이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사재기로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소금 가격 폭등은 생산 면적 감소와 날씨 영향이라며 방사능 우려와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나는 살아오면서 마트에서 소금 수급 문제로 제한 판매하는 걸 처음으로 봤다.  해양수산부 페이스북을 통해 해수부가 방사능 오염수 불안으로 인한 소비심리 진작을 위해 캠페인 수준의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필요할 수 있는 일이다. 단, 여기에 앞서 방사능 방류에 대한 반대 입장은 내놓았을까? 하다못해 일본 측에 항의 서한이라도 보냈을까? 공무원 집단이라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정부의 압박에 그러지 못했을까? 왜 이렇게 다들 수동적인 태도만 취하는 건가. 방사능 오염수 일일 브리핑에 대한 페이스북 게시물도 업로드했다. 내용은 충격적이다. 한국 정부 기관이 이런 내용을 발표했다는 걸 두 눈 뜨고 믿을 수 없다. 정부와 정치가 보여주는 모습이 개인과 집단이 보여주는 행동보다 못하다. 모두, 각자도생의 길에 놓여있다.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권과 정부는 일본 정부에 항의는커녕 일본 정부가 해야 할 오염수 방류 관련 일일 브리핑을 자처하고 있다. 6월 26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일일 브리핑에서 박구연 국무1차장은 오염수 방류가 아닌 고체화 등 다른 대안이 없냐는 질문에 대해 과거 4년 동안 논란이 된 사안이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현재 방류 방식이 과학적 선례와 안전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판단돼 확정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가 오염수 방류에 대해 합리화하며 내놓을 입장이 한국 정부 인사 입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암담하다.  국제원자력기구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국제 안전기준에 부합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국민의힘은 국제사회의 중추 국가로서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추 국가라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반대 입장을 강력히 피력하는 게 국제 해양 안전을 위해 중요한 태도 아닌가. 겸허하다는 의미는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태도다.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연구와 국제적인 공동관리를 위해 설립된 기구다. 원자력 발전소 폭발로 인해 발생한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해 ‘감놔라 배놔라’ 할 자격 없는 기구다. 그들이 내놓은 보고서에 책임이 없다는 문구를 적어 냈다. 7일 한국 정부는 일본 근접 공해상 8개 지점에서 방사능 모니터링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눈에 보이지도, 걸러지지도 않는 방사능 물질이 모니터링을 실시하면 바다에 떠다니는 걸 막을 수 있나? 그 물질들을 해양 생물들이 섭취하는 걸 막을 수 있나? 그 해양 생물들이 우리네 식탁에 오르지 않도록 막을 수 있나? 처음부터 방류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가용한 방법을 총동원한다면 될 일을. 모니터링하려고 앉아있다니 답답하다. 방사능 오염수 방류가 안전에 큰 문제 없다는 주장을 하는 많은 전문가들과 정치권 인사들이 있는데, 방사능 오염수를 눈으로 본 적 있는지 묻고 싶다.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한다는 것은 지구가 있고 나서 처음 발생하는 대형사고다. 한번 방류되면 후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 아무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일본 정부와 국제원자력기구 그리고 한국 윤석열 정부는 이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된다.      정치는 일상이고, 우리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관심을 가져도 이 모양이니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더 처참할 것이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일본이 자랑하는 다핵종제거설비 알프스는 국제원자력기구로부터 실제 성능 검증을 한 번도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보도했다. *오마이뉴스는 정부가 유튜브를 통해 후쿠시마 오염수 안전 광고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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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외교 vs 굴욕외교? 한일정상회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난 7일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의 ‘셔틀외교’가 12년 만에 복원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가치외교’를 내세워 일본과 안보, 경제, 글로벌 이슈 등을 협력해나갈 것을 밝혔는데요. 이번 회담을 계기로 ‘양국의 미래 지향적 협력 관계가 확고해졌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대통령이 일본에 저자세로 나가며 통 큰 양보를 한 데 비해 얻은 게 별로 없다는 ‘굴욕외교’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저는 이번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외교는 양면게임’이라고 했던 퍼트넘 교수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로버트 퍼트넘은 외교는 ‘국가 간 협상인 외부게임’과 ‘국내정치인 내부게임이 동시에 진행되는 양면게임’이라고 말했는데요.   흔히 외교는 국가와 국가 간 협상이라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국내 구성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대외협상에 성공해도 국회, 기업, 시민단체 등 복잡하게 얽힌 국내 이해관계를 풀어내지 못한다면, 정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동안 한일관계가 진전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5년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 국회, 시민사회의 동의 없이 이뤄진 대표적인 협상이었으니까요. 이번 한일정상회담도 이런 측면에서 우려되는 지점이 많은데요. 국내 구성원들을 충분히 설득하려는 노력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입니다. 평가가 엇갈리는 이번 한일정상회담 관련 주요 쟁점들을 정리해봤습니다.  1. 과거사 문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1998년 10월 발표된 한일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비롯해 역사인식에 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말씀드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라는 한일 공동선언의 표현 대신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위로의 말을 전했는데요. “당시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이 대단히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다만 이는 정부를 대변한 것이 아닌 총리 개인의 의견이라며 선을 그었는데요. 과거사 관련 자신의 발언에 대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말로 명확히 이해해도 되느냐"는 언론의 질문에 "일본 총리 자격이 아니라 '사견(私見)'이다"고 답변했습니다. 이는 일본 내 극우파 지지기반층을 의식해 정부를 대변하진 않았으나 한국 내 여론을 의식해 윤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로 분석됩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 여야 정치권, 일본 언론은 각각의 입장을 표명했는데요. 1) 시민단체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일본 과거사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 추구를 위해 610개 시민단체들의 결성체인데요.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입장문을 통해 "일본의 '호응'은 고사하고, 한마디의 사과 표명도 없는 '빈 손' 회담이었다. 다시 한번 윤석열정권 깡통외교의 실체가 드러났다"고 혹평했습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일제강제동원 관련해 기시다 총리의  "당시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일하게 된 많은 분들이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게 된 데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는 발언을 두고는 ‘교활한 물 타기 발언’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는 한일 정상회담을 규탄하거나 환영하는 집회가 동시에 열리기도 했는데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정의기억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이번 한일 정상회담이 '굴욕외교'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5가지 현안에 대한 입장이 분명히 정리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건너편에는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한일정상회담을 환영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는데요, “기시다 총리의 방한을 환영하고 그동안 얼어붙은 한일관계가 풀리기를 기대한다며, 일본과 군사동맹 구축을 통해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 여야 정치권 여야도 극명한 입장차이를 드러냈는데요. 국민의힘은 “한일관계가 진일보했다”고 호평한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공허 그 자체”라고 평가 절하했습니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양 정상은 지난 3월 합의했던 안보협력 분야와 화이트리스트 원상회복, 정식출범을 앞두고 있는 한일미래파트너십기금 등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며 "한일 간 우호적인 '셔틀외교'로 미래지향적이고 발전적인 한일관계의 새 장이 열렸다"고 치켜세웠습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한일관계 정상화가 본궤도에 오르게 되었다.”며,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오염수 방류 문제 외에도 반도체 공급망의 구축, 첨단산업에 관한 공동연구,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등 많은 생산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과거사에 대해선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죄와 반성이 없었다는 점을 아쉬워하는 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 전향적 해법을 제시했을 때 보다 진전된 입장표명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날로 심각해지는 북핵 위기 앞에서 이제 두 세대에 걸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보편적 인권 문제인 대한민국 역사를 철저히 무시하고 굴욕외교를 계속하겠다며 밀어붙이는 대통령의 입장이 충실히 반영됐다"며, 국민 앞에서 일본 입장을 대변하는 윤 대통령의 모습을 보는 국민은 참으로 참담하고 허망하다"고 논평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일본에 식민침략에 대한 면죄부 발언을 줬다”며 강하게 비판했는데요. “강제동원 배상 재검토는 언급조차 없었다. 일본의 독도 침탈에 대해서도 한마디 언급을 못 했고, 우리의 외교적·군사적 자주권을 일본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종속시킨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한국정상회담은 “‘물잔은 너만 채우라’는 일본 측의 암묵적 요구에 그대로 따른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는 셔틀 외교 복원이라고 자랑하지만 ‘빵셔틀 외교’ 같다는 국민 일각의 자조적 힐난에 귀기울여야 한다” 며 지적했습니다.  3) 일본 언론 일본 언론은 이번 한일정상회담에 대해 대체적으로 긍정적입니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한일관계가 호전되어 협력해나갈 것을 기대하고 있는데요. 다만 강제징용에 대한 니시다 총리의 발언에 대해서는 입장이 엇갈렸습니다.   대표 보수언론인 산케이 신문은 “징용에 대해서는 애초에 일본 측이 사과하거나 배상금을 지급할 이유가 없다. 세계 2차대전 당시 많은 나라에서 시행한 노동동원에 불과하고 임금도 지급했다. 역사적 사실에 반하는 누명을 쓴 일본이야말로 피해자인데 총리의 발언은 가해자라는 인상을 심어준다. 주객이 전도된 잘못된 발언으로 매우 유감스럽다”고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는데요. 반면, 대표 진보언론인  아사히 신문은 “과거사 문제는 국민 정서와 정체성과 관련된 민감한 주제다. 조약이나 협정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공감을 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과거를 직시하는 자세를 계속해서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외에 요미우리 신문은 “기시다 총리의 유감 표명은 윤 대통령의 정치 결단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한국 내 반발을 완화하려는 의도가 있다"며, "총리는 상대 입장을 배려하는 것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도쿄신문은 “‘마음이 아프다’는 총리의 표현은 그 어느 때보다 감정이 담긴 표현으로 한국 내에서 환영하는 목소리가 많다. 다만 우회적인 표현이 많았다. 보다 직접적으로 반성과 사죄를 보여줌으로써 자국 내 비판을 받을 각오로 대일관계 개선에 나선 윤 대통령의 기개에 부응해야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습니다.  2.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윤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한국 전문가들의 현장 시찰단 파견에 합의했다”고 밝혔는데요. 하야시 요시야마 일본 외무상은 “한국 전문가 현지 시찰단 파견, 국장급 협의 등의 기회를 통해 오염수 해양 방류의 안전성에 대한 한국의 이해가 깊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시찰단이 오염수의 안전성을 평가하거나 확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해 ‘보여주기식’이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는데요. 실제로 작년 3월 대만도 후쿠시마에 8명의 조사단을 파견했지만, 도쿄전력의 안내에 따라 설명을 듣는 수준에 머물렀고, 짧은 기간에 일정을 소화해야 해서 ‘형식적’이었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우리 시찰단도 현장 점검을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고 실제 체류 기간도 이틀밖에 안되기 때문에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큰데요. 이 때문에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순 없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자칫 일본에 ‘오염수 방류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데요. 지난 2019년 4월 우리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가 타당하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새로운 쟁점을 제기하며’ 다시 WTO에 제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인데요. 그 새로운 쟁점이 이번 시찰단 파견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분위기 속에서 일본이 이러한 조치를 바로 취하진 않겠지만 언제든 갈등이 불거질 수 있는 잠재적 현안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정부는 2018년 WTO 1심에서 일본에 패소한 바 있습니다. 수입을 규제하는 잠정조치의 적법성을 놓고 다퉜는데, ‘합리적 기간 안에 특정 요건이 충족되면 수입 규제를 해제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었습니다. WTO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따졌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일본의 손을 들어줬는데요. 때문에 해당 부분을 두고 WTO 상소기구에서 다루게 되면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입니다.   3. 한미일 공조에 대한 기대와 우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릴 ‘한미일 정상회담’으로 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있는데요. 이에 대해 북한의 핵무기 고도 발달과 안보 위협으로 ‘한미일 공조는 불가피하다는 입장’과 ‘동북아 신냉전 구도가 형성될 지도 모르는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SNS를 통해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한다”며 “우리는 ‘자유롭고 개방되고 안전한 인도태평양’을 발전시키고자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 계속 협력할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서울과 도쿄가 긴밀해질수록 미국의 미사일 방어 역량도 강해진다”며 “이는 (선순환으로 이어져) 북한과 중국의 군사적 움직임을 살피는 동맹의 능력을 키울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반면, 중국의 관영 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한국과 일본을 ‘기묘한 침실 파트너’라고 비유하며 비판했습니다. 미국의 대중국 봉쇄 요구에 한국과 일본이 부응한 것이라며 회담 성과를 깎아내렸는데요. “한일 양국이 갑자기 가까워진 것은 두 나라 우파 정당(국민의힘과 자민당)이 이념을 공유하기 때문”이라며, 윤석열 정부와 보수 진영이 권력을 잃으면 바뀔 수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일본과의 관계가 개선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여러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인데요. 무엇보다 국내 구성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 대통령의 행보가 우려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취임 1년이 다 돼가도록 야당 대표와 단 한 차례의 만남도 갖지 않는 모습, 국내 언론과의 소통은 원천 차단한 채,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만 지속하고 있는 점, 공론화 과정 없이 국가의 중대한 의사결정을 강행하는 모습 등이 그렇습니다. 일본에게 보여준 것만큼, 국내 정치에서도 그러한 양보와 타협, 소통의 자세를 취해나가면 좋을텐데요.  여러분은 이번 한일정상회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여러분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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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정상회담 총평: 기억할 수 있는 건 모두 잊었다오
어제의 하늘 빛 오늘 또 푸르고 / 어제의 하늘 빛 오늘 또 밝아도 / 어제는 어제, 지난 건 꿈이라오 / 눈짓도 몸짓도 다정한 음성도 / 기억할 수 있는 건 모두 잊었다오  -임선경 작사, 최종혁 작곡, 윤시내 노래 <어제는 어제(1980)> 2023년 5월 7일,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수상과 한국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일본 정상이 한국에 온 것은 12년만이다. 알려진 바로는 윤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한미 정상회담을 할 때 일본에 만나자고 의견을 보내서 시작된 회담이라고 한다. 뭐, 무엇이 되었건 안 만나는 것보다야 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많은 언론이 12년만의 셔틀외교라는 점에 대해 나름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겠지. 한일관계도 물론 좋아지는 게 나빠지는 것보다야 좋을 것이다. 문제는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좋아지느냐다. 마음 아픈 과거를 잊어야 미래로 간다? 불과 며칠 전 한국에서는 주어와 관련하여 영문법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 있었는데, 내용은 이것이었다. "유럽은 지난 100년 동안 여러 번의 전쟁을 경험했지만 전쟁 중인 국가들은 미래를 위해 협력할 방법을 찾았습니다,"라고 윤석열 대통령은 말했다. "저는 100년 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 무언가를 절대적으로 하지 말라고 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100년 전 우리의 역사 때문에 용서를 위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정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 설득력 면에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Europe has experienced several wars for the past 100 years and despite that, warring countries have found ways to cooperate for the future,” he said. “I can’t accept the notion that because of what happened 100 years ago, something is absolutely impossible [to do] and that they [Japanese] must kneel [for forgiveness] because of our history 100 years ago. And this is an issue that requires decision. … In terms of persuasion, I believe I did my best.” (The Washington Post.2023.04.24.) 독일의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1913~1992) 수상이 유대인 사망자들의 위령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일은 물론 참으로 역사적인 일이고 소중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본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한 적은 없다. 혹 누군가가 일본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했다손 쳐도 그것이 진짜 무릎을 꿇으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사과를 하라는 것이다.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그런 면에서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는 사람이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한국에서 있었던 한일회담에서도 별다를 것 없이 똑같이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5월 7일 정상회담 자리에서 “양국이 과거사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으면 미래 협력을 위해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다는 인식에서는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겨레.2023.05.07.). 윤 대통령은 이런 류의 이야기를 2023년 들어서 계속 반복하고 있다. 과거를 이야기하면 미래로 못 나아가는 걸까? 좋다 싫다 이전에 이해가 안 간다. 기시다 수상은 식민지 시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私自身、当時、厳しい環境のもとで多数の方々が大変苦しい、そして悲しい思いをされたことに心が痛む思いです 저 스스로는, 당시 엄혹한 환경 하에서 다수의 분들이 매우 힘들고, 그리고 슬픈 생각을 하셨다는 점에 마음이 아픕니다. 일본에서는 이 발언이 꽤 화제가 되었다. 이런 걸 사과이며 역사 인식의 진일보라고 칭찬해주는 한국의 보수언론이나 일본의 진보언론도 문제지만, 일본의 우익, 극우 언론에서는 기시다 수상의 역사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발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무로타니 카츠미(室谷克実)라는 저널리스트는 “내년 한국 총선거나 2027 대선에서 보수파가 지면 한국은 완전히 좌익정권이 된다. 보수파인 윤 정권을 도와야 한다. 이번 서비스는 한국의 여론을 대상으로써는 나쁘지 않다”라 평했고 (夕刊フジ.2023.05.08.) 자민당의 시게키 토시미츠(茂木敏充) 간사장은 “한국측의 적극적인 대응에 맞추어, 일한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라 평했다 (産経新聞.2023.05.08.). 혹 기시다 수상의 발언을 좋은 쪽으로 해석하려고 아무리 기를 쓴 들, 일본 안에서 이런 평가가 나온다면 이것을 진정한 사과라고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이다.  남기정 서울대 교수는 이 발언을 두고 “본질을 회피하는 발언”이며  “식민지 시기 있었던 사실에 대한 인정과 책임, 사죄는 없었다”고 평가하고 “일본 정부의 이전 입장을 확인하는 정도”라고 평가했다 (경향신문.2023.05.07.). ‘마음이 아프다’는 이미 고인이 된 아베 신조를 포함해 일본의 전 총리들이 계속 해오던 말이다. 아무 변화가 없는 것이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역시 이 발언에 대해 “외교적인 자리에 나와서 개인적으로 가슴 아프다고 하는 건 책임 회피를 위한 ‘물타기’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경향신문.2023.05.07.)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도 "기시다 총리 개인적으로는 (피해자들에게) '위로를 더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냉정히 보면 '사죄와 반성'이 한마디도 안 나왔다"고 평가하면서 "(기시다 총리가) 사견임을 전제로 얘기했단 점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은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뉴스1.2023.05.07.) 그런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은 곧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담에 참석하면서 원폭 위령비에 참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 일본과 관련해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뉴스가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다. 그렇게 안전하면 방류하지 말고 갖고 있으면 될텐데 왜 이렇게 기를 쓰고 방류를 하려는 걸까? 이와 관련해 며칠 전, 일본 외무성에서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오는 삼중수소량이 한국 고리 원전보다 더 적다는 동영상을 만들었고, 일본의 고노 다로(河野太郎) 디지털상 겸 소비자담당상은 직접 영어로 후쿠시마 원전이 고리원전보다 안전하다고 설명하는 홍보 동영상을 찍었다. 이 와중에 한국 시찰단이 후쿠시마 원전에 가겠다는 결정이 이번 회담에서 나왔다.  기시다 후미오 수상: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에 대한 한국 전문가 현장시찰단의 파견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일본의 총리로서 자국민 그리고 한국 국민의 건강과 해양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는 형식의 방류는 인정하지 않을 것을 (말씀드립니다.) (YTN.2023.05.08.) 이를 두고 외교적 성과라고 자찬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시찰단은 검증단과 다르다. 실제로 효력을 지닌 조치가 없다면 그냥 보고 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에 대해선 양국 모두 아무 말이 없고, 그저 “나쁜 일은 안 합니다” 같은 수준의 말만 하고 있다. 앞으로 실무진에서 어떤 회의를 하겠다는 말도 없다. 황당한 일이다.   최지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시다 총리의 말을 들어보면, 검증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하는 것이고 우리는 시찰만 하고 오는 것으로 읽힌다”고 평가하면서 “자칫 잘못하면 일본의 원자력 오염수 방류를 정당화하는 행위로 시찰단이 오용되고 끝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경향신문.2023.05.07.) 최예용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부위원장도 8일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다른 시각을 수용해서 문제점을 보완하겠다는 자세도 아니고, 그냥 한번 둘러보는 걸 허용하겠다는 식이라 (일본에) 면죄부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라 말하고, 일본측에서 시찰 가능한 날짜(5/23~24)를 지정한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날짜까지 적시한 건 그 날짜에 가능한 사람을 이미 내부적으로 구성해놨다는 의미고, 대개 정부 관련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며 “이 문제를 우려하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에게도 가능성을 타진했을까? 만약 했다 해도 기껏 한두명 형식적으로 넣었든지, 저건 지금 짜고 치는 것”이라고.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2023.05.08.) 미국의 승리?  이번 회담을 두고 블룸버그 통신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The second meeting in two months between leaders of Japan and South Korea after years without a formal summit marks another win for the Biden administration, which has sought to unite the allies to cooperate against North Korea and undercut China’s growing power. 수년 만에 공식 정상회담 없이 두 달 만에 열린 한일 정상의 두 번째 만남은 동맹국들의 대북 공조와 중국의 커지는 힘을 약화시키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또 다른 승리를 의미한다. (Bloomberg.2023.05.07.) 국제 사회의 역학관계가 변화하면서 점점 미국이나 중국 어느 한쪽의 줄에 설 것을 강요받는 분위기가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두 나라간의 군사 충돌을 이야기하면서 그 때 한국이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논하기도 한다. 개인의 일이건 국가의 일이건 미래야 알 수 없는 것이니 대비를 안 할 수야 없을 것이고,이런저런시나리오를상상해보는것도괜찮다고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약소국이 굳이 편짜기를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한미 정상회담의 후속편이다. 미국도 일본도 중국에 대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내비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등을 돌리지도 않았다. 미국도 여전히 첨예한 사안에 대해선 중국에게 양해를 구하고 있고, 두 나라 모두 외교 실무진은 물론 국회의원, 시민단체 차원의 교류를 계속해나가고 있다. 통 큰 외교는 도박이다. 그것도 세끗 짜리 패를 손에 들고 상대의 손에 광땡이 없기를 바라는 식의 도박이다. 무슨 가치인지 명확히 설명도 못하는 가치 외교는 이제 그만하자.
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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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적인 대일외교에 대하여: 강제징용 문제
인간사는 비정한 데가 있다. 입으로는 선한 것을 이야기하면서도 속으로는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며 계산을 하고, 수많은 생명이 죽어가는 것도 그저 숫자로만 보고 넘긴다. 누군가 친절을 베풀면 그를 배신하려 들고, 누군가 예의를 차리면 그를 우습게 여기려 든다. 개개인의 일에서도 이런 측면이 있는데, 외교는 오죽하랴! 미얀마의 민주화운동,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튀르키예의 강진을 보면서 무엇이 이득이고 무엇이 손해인지를 따지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경상도 말로 ‘천지빼까리’다. 물론 외교라는 것에는 늘 고공에서 줄을 타는 것 같은 위태로움이 존재한다고 하니 냉정한 손익계산을 무시할 수야 없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으면 살짝 지치는 마음이 들고 너무 심하면 저것들이 언제 사람되나 싶은 마음도 든다. 그런데, 이 비정한 현실 속에서 국민 누구도 해달라고 한 적 없는데, 피해자가 가해자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제발 좀 친하게 지내자고, 당신들이 뭐라시던 우리는 모든 피해를 잊고 당신을 위해 살겠다고 우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 지금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보이는 태도가 바로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납작 엎드려 우리가 가진 것을 다 긁어가쇼 하고 읍소를 하면 할 수록, 그 읍소를 받는 사람들이 고마워할 리는 만무하다. 도리어 더 내놓으라고 할 것이다. 이것 또한 현실의 비정함이다. 2022년 광복절, 윤 대통령은 일본을 두고 ‘함께 힘을 합쳐야 하는 이웃’이라고 했다. (MBC.2022.08.15.) 대체 광복절에 굳이 이런 소리를 해야하는 이유가 뭐였을까? 이런 말을 듣고 가장 좋아한 것은 미국이다. 미국의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수석부차관보는 “윤 대통령의 이런 접근법이 잘 관리되고 일본이 윤 대통령의 선의에 상응하는 조치를 한다면 그것은 동북아시아의 안보 역학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일본은 이런 말을 듣고 뭐라고 반응했을까? 닛케이아시아(日経アジア) 신문은 한일관계를 잘 풀고 싶으면 윤 대통령이 해결책을 찾아서 들고 오라고 말했고(비지니스포스트.2022.08.18.), 산케이신문은 한국이 먼저 보여주는 것도 없는데 관계 개선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産経新聞.2022.08.20.) 한국 국민들은 생각지도 못한 카운터 펀치를 얻어맞은 것이다. 그러더니만, 금년 삼일절에는 더 뒤집어지는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연합뉴스.2023.03.01.) 유관순 기념관에서 진행된 이 행사에서,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과거사 왜곡에 관한 이야기는 한줄도 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온 나라가 시끄러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삼일절이 뭔지는 알고 온 걸까?”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당연히 찬사를 보냈고(서울신문.2023.03.02.) 일본에선 대꾸도 안 했다. 일본에게 침략을 당했던 중국에선 윤 대통령의 기념사에 대해 ‘이례적인 아첨‘이며 ’외교정책이 몽유병 상태‘라고 말했다. (Globaltimes.2023.03.02.) 물론 중국의 이러한 날선 반응에는 미국에 대한 견제도 들어있지만, 같은 피침략국으로서 한국이 해선 안 되는 말을 했음을 분명히 밝힌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며칠 후, 나는 깨달았다. 이 날의 기념사가 강제징용 배상금의 한국 기업 대납을 위한 빌드업이었음을. 세상에 어떤 나라에서 피해자가 자기 돈으로 피해에 대해 보상하고 배상을 한다는 말인가! 어떤 피해자가 제대로 된 사과도 보상도 없는데 가해자에게 손을 내밀며 잘 지내보자, 과거는 다 잊으마 한다는 말인가! 비참할 따름이다. 심지어 요미우리와의 인터뷰에서는 정권이 바뀌어도 일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도대체 어느 나라 대통령인가? (윤 대통령과 요미우리 신문의 인터뷰 일부) “과거 강제징용과 관련하여, 65년의 협정이나 양국 정부의 조치를 문제로 삼아, 한일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2018년 대법원 판결에 의해, 한일관계가 매우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 즈음의 정치, 외교적인 양국의 입장과 협정에 관한 사법부의 해석 사이의 부분은, 정부가 지혜를 짜내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고, 나는 정치를 시작하기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제3자 변제라고 하는 해결법은 그런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내가 정치를 하기 전에 법률가로서 활동하고 있었을 때에도, 이런 해결책이 합리적이지 않은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강제징용문제로 악화된 한일관계를, 반드시 정상화해 발전시키는 것이, 내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이기도 하다.” “내가 정치에 발을 들이기 전에도, 강제징용의 해결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 재단의 기금을 통한 해결이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하기도 했고, 또 내가 취임한 이후, 이 부분을 국가안보실과 외교부에서 진행해 왔다. 관계가 있는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고, 이후에 다시 구상권이 행사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검토하여, 이번에 강제징용 해결책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물론, 한일관계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려고 하는 정치 세력도 많다. 그러나 나는 이런 대외관계, 외교관계를 국가의 입장에서, 지속적으로 관철시켜 나가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외교 문제를 국내정치에 끌어들이는 것은, 국익의 차원에서도 온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학생 때 생각한 것은, 일본은 선진국 답고 깨끗하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정직하고 무엇이든 정확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히토츠바시대학 교수의 집에도 초대받아 식사를 했다. 매우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또 나는 일본 음식이 너무 좋다. 모리소바나 우동, 장어덮밥 등을 너무 좋아해서, 지금도 <고독한 미식가>가 한국 텔레비전에 나오면 반드시 본다.” (読売新聞.2023.03.15.) 그렇다고 일본 정부가 이에 호응하며 고맙다고 해주었는가? 그것도 아니다. 한국정부가 한국 기업에게 돈을 걷어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겠다는 말을 하고 3일 후(9일), 일본의 외무대신(외교부 장관)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는 중의원에서 이렇게 말했다. “강제노동에 관한 조약” 상의 강제노동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들(개별도항, 모집, 관 알선 등)을 강제노동이라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強制労働に関する条約』上の強制労働には該当しないと考えている。これら(個別渡航、募集、官斡旋など)を強制労働と表現するのは適切ではないと考える (WoWKorea.2023.03.11.) 사실상 일본의 입장에는 아무 변화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요란을 떨며 일본까지 가서 한 정상회담은 또 어땠는가? 한국 국민들에게,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오므라이스 말고 기억에 남는 게 도대체 무엇이 있는가? 일본에서는 한국의 강제징용 대납 결정에 환영한다고 말하면서도 일본의 반도체 소재의 한국 수출 규제 등의 경제/무역 문제에 대해선 가타부타 직답을 피하고, 한국이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 보겠다는 식의 말을 슬그머니 내놓고 있다. (헤럴드경제.2023.03.17.) 결국, 과거사 문제를 협상 카드로 내밀며 저자세로 나갔지만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 일본의 경제산업대신(한국으로 치면 산업 부처의 장관) 니시무라 야스토시의 트위터. 일본 정부가 한국 대상 수출관리를 해제하고 한국도 WTO 제소를 취하하겠다고 보도한 NHK 뉴스를 리트윗하며 이렇게 말했다. “수출관리조치는 ‘해제’한 것이 아니다. 한국의 WTO 제소 취하를 확인하고 사흘간의 정책 대화를 통해, 세 가지 품목 - 반도체의 소재가 되는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플루이미드, 플루오린화 수소 - 의 수출 관리 체제 운용을 신중하고 꼼꼼하게 확인을 한 후, 일정 정도의 개선을 확인할 수 있으면 운용을 재검토할 것이다. 국가 단위의 대처는 이후 정책대화를 통해 무역관리의 실효성을 다시 확인할 것이다. 한국 측의 자세를 신중하게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그뿐인가?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는 박근혜 정부 시절의 회담을 한국측에서 착실히 이행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NHK.2023.03.16.) 기시다 총리의 말이 사실이냐고 한국 기자들이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물으니, 장관은 자기가 답할 사항이 아니라고 답을 한다. (KBS.2023.03.18.) 외교 사안을 외교부 장관이 답할 수 없다는 게 무슨 말인가? 백번 양보해서 정상회담에서 오간 이야기 전부를 일반에 공개할 수 없다고 쳐도, 일본이 저런 이야기를 한게 사실인지 아닌지 정도를 확인해 주는 이야기를 못 한단 말인가? 논란이 되자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2023.03.22.) 양국의 정상회담 내용을 기억에 의존한다는 말인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결정은 한국 사법부가 인정한 개인 위자료 청구권을 부정하는 것이다. 또 일본 기업의 사죄나 배상 없이 오직 돈에만 집착하는 해결책이어서 피해자의 존엄성 회복이나 식민주의 극복과는 거리가 멀다.” 강제동원 진상규명 네트워크 대표 히다 유이치(飛田雄一) 씨의 말이다.  일본 정계에서 2018년에 잠깐 유행했던 말로 ‘밥 논법(ご飯論法)’이라는 게 있다. “아침밥 드셨어요(아침식사 하셨어요)?”라는 질문이 들어왔을 때, 정치인들은 자기가 답하기 곤란하다고 느끼면 “쌀밥은 먹지 않는다”라고 답한다는 것이다. 맥락에 관계 없이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서 논점을 뒤틀고 자신은 논의에서 빠져나가는 수법이다. 식민 지배에 대해 배상을 하라는 것은 돈을 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과를 하라는 뜻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대일 외교를 주관하는 자들은 혹시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문제를 개인끼리 술 마시고서 치고 받아서 생기는 술자리 다툼 문제쯤으로 아는 것일까? 그들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이런 결정을 통해 당신들이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영업사원이 되겠다는 말이, 대한민국을 팔아먹겠다는 뜻이었는가? 이완용은 나라 팔아서 돈이라도 챙겼지, 지금 정부는 되려 돈을 주고 나라를 팔아 치우려 하고 있다. 한국의 국민으로서 비참하고 참담한 마음 뿐이다. 한국은 제국주의 피침략국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에 성공한 나라라고 회자된다. 그래서 식민지를 겪었던 수많은 나라에서는 한국의 경험을 배우기 위해 한국의 사례를 공부하고 한국으로 유학을 오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 한국이 이런 굴욕적인 저자세를 보이는 것은 과거 제국주의 시절의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안 좋은 신호를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식민지배를 겪었던 나라들이 자신의 피해를 이야기하려 하면, 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야, 한국을 봐!” 일본인 중에도 강제징용 피해자, 위안부 피해자들이 있다. 우익들이 이번 한국의 자체 배상 소식을 들고 와서 그들에게 “한국을 보라”고 말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도무지 뉴스를 보고 싶지 않은 지금이다.
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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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격이 가능한 국가 일본: 우경화에 대한 소고(小考)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세계에 많은 불안을 던져주었습니다. 러시아의 침략으로 인해 독일이 군비를 증가하면서 사실상 재무장을 선언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고 (MBC.2022.06.04.), 이를 계기로 혹시 중국도 타이완과 전쟁을 벌이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동북아시아에 널리 퍼졌습니다. 일본은 북한의 핵실험을 자위대를 ‘반격이 가능’하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의 보통국가화, 지금의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전환려는 시도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많은 사람들, 특히 동북아시아에서는 이를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자위대(지에-타이) 일본국헌법 제9조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이라 할 수 있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는 영구히 이것을 포기한다. 2 전항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육해공군 및 그 외의 전력을 보지保持하지 않는다. 나라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第九条 日本国民は、正義と秩序を基調とする国際平和を誠実に希求し、国権の発動たる戦争と、武力による威嚇又は武力の行使は、国際紛争を解決する手段としては、永久にこれを放棄する。 2 前項の目的を達するため、陸海空軍その他の戦力は、これを保持しない。国の交戦権は、これを認めない。(일본 중의원 - 일본국헌법) 2차세계대전 직후, 일본을 지배했던 연합국 최고사령부(GHQ)는 일본의 체질을 바꾸려고 하였습니다. 여성 참정권을 인정하도록 법을 개정하고, 노동조합을 승인하고 노동쟁의를 인정했으며, 농지를 개혁하고, 재벌을 해체했습니다. 그리고 1947년, 지금 일본의 헌법인 <평화헌법(平和憲法)>을 제정해 일본의 재무장을 법으로 막으려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그 이후 국제 정세는 매우 긴박하게 돌아갔습니다. 1947년에는 독일이 동서로 나뉘어졌고, 1948년에는 조선이 남북으로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는 중국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옮겨가고(국부천대) 중국 공산당이 천안문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선포했습니다. 이른바 냉전의 시작입니다. 이때부터 GHQ의 점령정책은 비군사화/민주화에서 반공/경제부흥으로 바뀌었습니다. 미국은 일본을 자본주의 진영의 일원으로 삼아 중국이 태평양을 바로 건너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반공기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GHQ의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는 한반도로 안심하고 건너가기 위해 일본을 방위할 전력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래서 그해 7월 8일에 만든 것이 경찰예비대(警察予備隊)입니다. 또, 1948년부터는 그 전에 공직에서 추방했던 전범들을 다시 공직으로 불러들이고 소위 좌익이라 분류되는 사람들을 학교, 관공서 등에서 추방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한국전쟁을 위한 군수물자와 자본이 일본으로 쏟아지면서 일본 경제는 부흥을 맞이하게 됩니다. 일본에서는 이를 조선특수(朝鮮特需, 쵸-센토쿠슈)라고 합니다. 일본의 경제발전과 우경화의 발판은 이때 마련되었습니다. 경찰예비대는 1952년 보안대(保安隊, 호안타이)로 이름을 고쳤다가 1954년 자위대(自衛隊, 지에-타이)로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일본의 군대 아닌 군대, 자위대 탄생의 역사입니다. 안보투쟁과 시바 료타로 한국전쟁 중이었던 1951년, 미국과 일본은 일본에서 GHQ와 미군을 철수하고 행정권을 일본 정부에게 인수하기로 하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체결합니다. 이로 인해 일본에서 미군은 철수하지만, 당시 일본 총리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1878~1967)가 미일안전보장조약(소위 ‘안보조약’)을 체결, 주일미군이 탄생하게 됩니다. 일본 안에서는 일본의 야당과 좌익 세력, 반전 세력, 반미 세력을 중심으로 안보조약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집니다. 안보조약을 둘러싸고 다양한 세력이 이에 반대하며 벌어진 반정부 혹은 반미 기조의 일련의 시위를 안보투쟁(安保闘争)이라고 합니다. 요시다 시게루 이후 총리가 된 키시 노부스케(岸信介, 1896~1987)가 이 시위를 야쿠자를 동원해 폭력적으로 진압하면서 시위는 점점 격화되었습니다. 이에 키시 노부스케는 재빠르게 조약을 체결한 후 자리에서 물러나 버립니다. 조약이 이미 체결되고 조약을 주도한 키시 총리가 물러나면서 시위의 규모는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키시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된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1899~1965)와 자민당 정부가 경제 발전을 국정의 핵심으로 삼고 국면을 전환하면서 자민당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정치권(야당)과 시위전선이 분열되게 됩니다. 또 학생 시위가 점점 극렬화되면서 학생 운동 내에서 비행기 납치, 테러, 서로간의 살인 등의 사건이 벌어지고, 이것이 부각되어 보도되면서 학생 운동에 대한 관심도 매우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소설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 1923~1996)가 있습니다. 일본 역사 소설계를 풍미했던 시바 료타로는 인물 중심으로 내용을 서술하면서 그 인물에 대해 깊이 빠져들게 하는 다양한 자료 소개와 필력을 통해 일본 내에서는 물론이고 일본 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지금은 너무나도 유명한, 일본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름을 들어봤을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같은 인물은 사실 역사적으로 엄청 큰 역할을 한 것도 아니고 사후에 잊혀졌던 사람이지만 시바 료타로의 소설 『료마가 간다(龍馬が行く)』를 통해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전후 일본에서 지식인들 중에는 일본은 왜 전쟁을 일으켜 일본과 아시아에 재앙을 가져왔는지에 대해 논의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일본 민중들 사이에서는 과거의 전쟁에 대해서 쉬쉬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사바 료타로의 두 편의 소설이 매우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메이지 유신의 과정을 그린 『나는 듯이(翔ぶが如く, 1975~76)』와 러일전쟁을 그린 『언덕 위의 구름(坂の上の雲, 1969~1972)』. 이 두 편의 소설은 이후 일본 대중 사이에서 ‘쇼와 천황은 문제가 있지만 메이지, 다이쇼 천황은 훌륭했다’, ‘천황은 전쟁에 잘못이 없고 군부가 잘못한 것이다’, ‘45년 이전은 나빴고 45년 이후는 선하다’라는 식의 역사 인식을 퍼트리게 됩니다. 미국이 천황에게 전쟁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이런 역사 인식의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천황에 대한 전쟁 책임을 묻지 않은 미국, 미국에 의한 일본 지배, 일본 주도의 전쟁 속에서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 일본의 대중, 대중문화를 통한 새로운 역사 해석 등은 일본 안에서 미국에 대한 뒤틀린 인식과 근현대사 인식을 불러일으킵니다. 우경화? 일본은 전쟁 전에도 매우 잘 살았고 1945년을 전후로 자기들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잠시 경제적으로 힘들긴 했지만 1950년대 이후 다시 경제를 복원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1956년 일본 정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더이상 전후戰後가 아니다(もはや戦後ではない).” 이 말의 원래 뜻은 경제적인 의미에서 전쟁 피해를 복구했다는 뜻이었지만, 사회적으로는 비정상적인 어둠의 시대를 끝내고, 혹은 그것과는 이제 단절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것이며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런 단절은 일본 문화를 거대담론에서 벗어나 자신과 자기 주변에 집중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습니다. 새로운 일본이 탄생하는 과정입니다. 1950년대 이후의 가파른 경제적 성장 속에서 역사나 정치 같은 거시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자신과 자기 주변에 집중하는 풍조가 지배하던 일본에서 갑자기 국민을 외치며 등장한 고이즈미 쥰이치로(小泉純一郎)와 아베 신조오(安倍晋三).  이렇게 생각하면 일본이 최근들어 우경화되었는가 라는 질문은 다소 안 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애초에 좌나 우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그 당사자들이 어떤 특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는가에 대해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의 외국에 대한 보도는 지나치게 한국 중심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에 대한 보도도 마찬가지고요. 어느 정도는 역사적인 경험 때문에 어쩔 수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대부분은 한국이 보고 싶은 보도만을 하고 한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기술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반격이 가능한 국가 일본은 북한을 핑계 삼아 재무장을 하겠다는 말을 종종 합니다. 하지만 북한은 어디까지나 핑계고, 사실은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고 미국의 자국 중심주의로 인한 안보 공백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지요. 최근 일본이 안보문서를 수정해 일본을 ‘반격이 가능한 국가’로 만들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이에 대한 제이크 설리번 미국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은 이렇습니다. "일본은 새로운 국가안보전략, 국가방위전략 및 방위력 정비계획 프로그램의 채택으로,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을 강화하고 방어하기 위한 대담하고 역사적인 조치를 취했다" "방위비 투자를 대폭 늘리겠다는 일본의 목표도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현대화할 것" "새로운 전략은 기시다 총리의 국제 평화와 핵 비확산에 대한 깊은 의지를 강화하고, 일본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이자 G7 개최국으로서 2023년 일본의 리더십 발휘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러시아가 잔혹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를 지지해준 걸 포함해 세계 전역에서 보여준 기시다 총리와 일본의 리더십에 감사한다" "우리와 우리 파트너들이 지속적인 평화와 안정, 번영을 이룰 수 있도록 돕게 될 일본의 역사적인 새 국가 안보 전략에 대해 기시다 총리와 일본 국민들에게 축하한다" (SBS.2022.12.17.) 애초에 일본의 소위 재무장은 미국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고립주의 혹은 자국우선주의가 국제 사회에서 큰 파장을 불러온 것은 사실이지만, 2000년대에 들어선 후 조지 W.부시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대통령들은 모두 이런 기조를 가지고 아시아 문제를 다뤄왔다고 생각합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그것을 대놓고 과격하게 말했을 뿐이고, 나머지 정권들이 크게 달랐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지금 조 바이든 정권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앞의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동북아시아 전략을 복잡하게 계산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은 안보 공백을 불식시키고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하기 위해 자위대의 권한을 증가시키려 합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사이, 시진핑은 자신의 권력을 늘리며 자신의 (위험한?) 꿈을 이루려고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해봅니다.  물론 미시적으로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거시적으로는 하나의 보편적인 원칙을 정권에 상관없이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거의 유일한 외교 정책의 원칙은 이것뿐일지도 모릅니다. 상황에 따라 다양한 외교적 전술을 구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권에 상관 없이 제국주의와 침략, 전쟁, 반인권적 언행에 대해 반대한다는 원칙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무 원칙 없이 정권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외교 전술과 외교 정책이 바뀐다면 그 누구도 한국의 말을 믿지 않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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