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는 비정한 데가 있다. 입으로는 선한 것을 이야기하면서도 속으로는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며 계산을 하고, 수많은 생명이 죽어가는 것도 그저 숫자로만 보고 넘긴다. 누군가 친절을 베풀면 그를 배신하려 들고, 누군가 예의를 차리면 그를 우습게 여기려 든다. 개개인의 일에서도 이런 측면이 있는데, 외교는 오죽하랴! 미얀마의 민주화운동,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튀르키예의 강진을 보면서 무엇이 이득이고 무엇이 손해인지를 따지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경상도 말로 ‘천지빼까리’다. 물론 외교라는 것에는 늘 고공에서 줄을 타는 것 같은 위태로움이 존재한다고 하니 냉정한 손익계산을 무시할 수야 없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으면 살짝 지치는 마음이 들고 너무 심하면 저것들이 언제 사람되나 싶은 마음도 든다.
그런데, 이 비정한 현실 속에서 국민 누구도 해달라고 한 적 없는데, 피해자가 가해자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제발 좀 친하게 지내자고, 당신들이 뭐라시던 우리는 모든 피해를 잊고 당신을 위해 살겠다고 우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 지금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보이는 태도가 바로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납작 엎드려 우리가 가진 것을 다 긁어가쇼 하고 읍소를 하면 할 수록, 그 읍소를 받는 사람들이 고마워할 리는 만무하다. 도리어 더 내놓으라고 할 것이다. 이것 또한 현실의 비정함이다.
2022년 광복절, 윤 대통령은 일본을 두고 ‘함께 힘을 합쳐야 하는 이웃’이라고 했다. (MBC.2022.08.15.) 대체 광복절에 굳이 이런 소리를 해야하는 이유가 뭐였을까? 이런 말을 듣고 가장 좋아한 것은 미국이다. 미국의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수석부차관보는 “윤 대통령의 이런 접근법이 잘 관리되고 일본이 윤 대통령의 선의에 상응하는 조치를 한다면 그것은 동북아시아의 안보 역학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일본은 이런 말을 듣고 뭐라고 반응했을까? 닛케이아시아(日経アジア) 신문은 한일관계를 잘 풀고 싶으면 윤 대통령이 해결책을 찾아서 들고 오라고 말했고(비지니스포스트.2022.08.18.), 산케이신문은 한국이 먼저 보여주는 것도 없는데 관계 개선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産経新聞.2022.08.20.) 한국 국민들은 생각지도 못한 카운터 펀치를 얻어맞은 것이다.
그러더니만, 금년 삼일절에는 더 뒤집어지는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연합뉴스.2023.03.01.)
유관순 기념관에서 진행된 이 행사에서,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과거사 왜곡에 관한 이야기는 한줄도 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온 나라가 시끄러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삼일절이 뭔지는 알고 온 걸까?”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당연히 찬사를 보냈고(서울신문.2023.03.02.) 일본에선 대꾸도 안 했다. 일본에게 침략을 당했던 중국에선 윤 대통령의 기념사에 대해 ‘이례적인 아첨‘이며 ’외교정책이 몽유병 상태‘라고 말했다. (Globaltimes.2023.03.02.) 물론 중국의 이러한 날선 반응에는 미국에 대한 견제도 들어있지만, 같은 피침략국으로서 한국이 해선 안 되는 말을 했음을 분명히 밝힌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며칠 후, 나는 깨달았다. 이 날의 기념사가 강제징용 배상금의 한국 기업 대납을 위한 빌드업이었음을.
세상에 어떤 나라에서 피해자가 자기 돈으로 피해에 대해 보상하고 배상을 한다는 말인가! 어떤 피해자가 제대로 된 사과도 보상도 없는데 가해자에게 손을 내밀며 잘 지내보자, 과거는 다 잊으마 한다는 말인가! 비참할 따름이다. 심지어 요미우리와의 인터뷰에서는 정권이 바뀌어도 일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도대체 어느 나라 대통령인가?
(윤 대통령과 요미우리 신문의 인터뷰 일부)
“과거 강제징용과 관련하여, 65년의 협정이나 양국 정부의 조치를 문제로 삼아, 한일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2018년 대법원 판결에 의해, 한일관계가 매우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 즈음의 정치, 외교적인 양국의 입장과 협정에 관한 사법부의 해석 사이의 부분은, 정부가 지혜를 짜내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고, 나는 정치를 시작하기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제3자 변제라고 하는 해결법은 그런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내가 정치를 하기 전에 법률가로서 활동하고 있었을 때에도, 이런 해결책이 합리적이지 않은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강제징용문제로 악화된 한일관계를, 반드시 정상화해 발전시키는 것이, 내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이기도 하다.”
“내가 정치에 발을 들이기 전에도, 강제징용의 해결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 재단의 기금을 통한 해결이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하기도 했고, 또 내가 취임한 이후, 이 부분을 국가안보실과 외교부에서 진행해 왔다. 관계가 있는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고, 이후에 다시 구상권이 행사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검토하여, 이번에 강제징용 해결책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물론, 한일관계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려고 하는 정치 세력도 많다. 그러나 나는 이런 대외관계, 외교관계를 국가의 입장에서, 지속적으로 관철시켜 나가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외교 문제를 국내정치에 끌어들이는 것은, 국익의 차원에서도 온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학생 때 생각한 것은, 일본은 선진국 답고 깨끗하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정직하고 무엇이든 정확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히토츠바시대학 교수의 집에도 초대받아 식사를 했다. 매우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또 나는 일본 음식이 너무 좋다. 모리소바나 우동, 장어덮밥 등을 너무 좋아해서, 지금도 <고독한 미식가>가 한국 텔레비전에 나오면 반드시 본다.”
(読売新聞.2023.03.15.)
그렇다고 일본 정부가 이에 호응하며 고맙다고 해주었는가? 그것도 아니다. 한국정부가 한국 기업에게 돈을 걷어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겠다는 말을 하고 3일 후(9일), 일본의 외무대신(외교부 장관)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는 중의원에서 이렇게 말했다.
“강제노동에 관한 조약” 상의 강제노동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들(개별도항, 모집, 관 알선 등)을 강제노동이라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強制労働に関する条約』上の強制労働には該当しないと考えている。これら(個別渡航、募集、官斡旋など)を強制労働と表現するのは適切ではないと考える (WoWKorea.2023.03.11.)
사실상 일본의 입장에는 아무 변화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요란을 떨며 일본까지 가서 한 정상회담은 또 어땠는가? 한국 국민들에게,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오므라이스 말고 기억에 남는 게 도대체 무엇이 있는가?
일본에서는 한국의 강제징용 대납 결정에 환영한다고 말하면서도 일본의 반도체 소재의 한국 수출 규제 등의 경제/무역 문제에 대해선 가타부타 직답을 피하고, 한국이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 보겠다는 식의 말을 슬그머니 내놓고 있다. (헤럴드경제.2023.03.17.) 결국, 과거사 문제를 협상 카드로 내밀며 저자세로 나갔지만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 일본의 경제산업대신(한국으로 치면 산업 부처의 장관) 니시무라 야스토시의 트위터. 일본 정부가 한국 대상 수출관리를 해제하고 한국도 WTO 제소를 취하하겠다고 보도한 NHK 뉴스를 리트윗하며 이렇게 말했다.
“수출관리조치는 ‘해제’한 것이 아니다. 한국의 WTO 제소 취하를 확인하고 사흘간의 정책 대화를 통해, 세 가지 품목 - 반도체의 소재가 되는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플루이미드, 플루오린화 수소 - 의 수출 관리 체제 운용을 신중하고 꼼꼼하게 확인을 한 후, 일정 정도의 개선을 확인할 수 있으면 운용을 재검토할 것이다. 국가 단위의 대처는 이후 정책대화를 통해 무역관리의 실효성을 다시 확인할 것이다. 한국 측의 자세를 신중하게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그뿐인가?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는 박근혜 정부 시절의 회담을 한국측에서 착실히 이행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NHK.2023.03.16.) 기시다 총리의 말이 사실이냐고 한국 기자들이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물으니, 장관은 자기가 답할 사항이 아니라고 답을 한다. (KBS.2023.03.18.) 외교 사안을 외교부 장관이 답할 수 없다는 게 무슨 말인가? 백번 양보해서 정상회담에서 오간 이야기 전부를 일반에 공개할 수 없다고 쳐도, 일본이 저런 이야기를 한게 사실인지 아닌지 정도를 확인해 주는 이야기를 못 한단 말인가? 논란이 되자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2023.03.22.) 양국의 정상회담 내용을 기억에 의존한다는 말인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결정은 한국 사법부가 인정한 개인 위자료 청구권을 부정하는 것이다. 또 일본 기업의 사죄나 배상 없이 오직 돈에만 집착하는 해결책이어서 피해자의 존엄성 회복이나 식민주의 극복과는 거리가 멀다.”
강제동원 진상규명 네트워크 대표 히다 유이치(飛田雄一) 씨의 말이다.
일본 정계에서 2018년에 잠깐 유행했던 말로 ‘밥 논법(ご飯論法)’이라는 게 있다. “아침밥 드셨어요(아침식사 하셨어요)?”라는 질문이 들어왔을 때, 정치인들은 자기가 답하기 곤란하다고 느끼면 “쌀밥은 먹지 않는다”라고 답한다는 것이다. 맥락에 관계 없이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서 논점을 뒤틀고 자신은 논의에서 빠져나가는 수법이다. 식민 지배에 대해 배상을 하라는 것은 돈을 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과를 하라는 뜻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대일 외교를 주관하는 자들은 혹시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문제를 개인끼리 술 마시고서 치고 받아서 생기는 술자리 다툼 문제쯤으로 아는 것일까? 그들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이런 결정을 통해 당신들이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영업사원이 되겠다는 말이, 대한민국을 팔아먹겠다는 뜻이었는가? 이완용은 나라 팔아서 돈이라도 챙겼지, 지금 정부는 되려 돈을 주고 나라를 팔아 치우려 하고 있다. 한국의 국민으로서 비참하고 참담한 마음 뿐이다.
한국은 제국주의 피침략국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에 성공한 나라라고 회자된다. 그래서 식민지를 겪었던 수많은 나라에서는 한국의 경험을 배우기 위해 한국의 사례를 공부하고 한국으로 유학을 오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 한국이 이런 굴욕적인 저자세를 보이는 것은 과거 제국주의 시절의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안 좋은 신호를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식민지배를 겪었던 나라들이 자신의 피해를 이야기하려 하면, 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야, 한국을 봐!”
일본인 중에도 강제징용 피해자, 위안부 피해자들이 있다. 우익들이 이번 한국의 자체 배상 소식을 들고 와서 그들에게 “한국을 보라”고 말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도무지 뉴스를 보고 싶지 않은 지금이다.
코멘트
3윤 대통령의 이번 외교도 납득이 안되지만, 보수당의 정권이 들어서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경향이 크다는 점을 생각하게 됩니다. 정치적으로 보수라고 한다면, 민족을 중요하게 여기고 민족에 대한 침략에 더욱 적대하기 마련인데, 우리의 보수는 왜 반대의 성격을 지니는 걸까요? 현실적으로 국제 관계에서 아주 중요한 이점이 있어서 그런거라면 그런 설득이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그런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거 없이 그냥 이면에 개인 혹은 특정 집단의 이속 차릴 일이 있는 걸까요?
이상적으로는 서로간에 생산적인 차원에서 한중일간의 관계가 개선되어 동북아 평화 체제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제국주의적 침탈에 의한 식민지배의 반성이 없이 형식적인 갈등을 줄이는 방향과 동일시 된다면 곤란합니다.
대통령이 외교적으로 어떤 전략을 갖고 계신지 국민들을 설득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생각이냐고 물어보면 화내면서 골방에 숨어드시는 것 같아서요.
한일 정상회담 이후 줄곧 '한국 대통령이 해야할 일로 적절한가'의 관점에서만 생각했었는데요. 다른 제국주의 피침략국이 한국을 어떻게 바라볼 지의 관점으로 생각하니 이번 정상회담, 윤석열 대통령의 대일 외교관이 더 큰 문제라고 느껴집니다. 합당한 비판을 무시하고 제 멋대로 하는 지도자가 어떻게 비춰지는지 트럼프 전 대통령을 통해서 '보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한국 대통령을 통해서 '보여지는 입장'이 되니 미묘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