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아홉 살’ 아빠를 돌보는 딸… 이 청년에겐 보호자가 없다
서울 성북구 ‘최고 높은 곳’에 사는 부녀. 강하라(31) 씨의 하루는 아빠를 기다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강성종(60) 씨는 아홉 살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가졌다. 하라 씨는 스물여섯 살이던 2019년부터 아버지 돌봄을 전담했다. 기자는 지난 14일부터 1박 2일 동안 이들의 일상에 동행했다.(관련기사 : <‘아빠는 아홉 살’… 돌봄청년 하라 씨와 함께한 1박 2일>) 이들은 4년째 상속재산분할 소송을 진행 중이다. 2020년 할머니가 숨을 거두자 친척들은 소송을 걸었다. 할머니가 부녀에게 물려준 언덕배기의 집 때문이었다. 믿었던 가족들에 대한 배신감보다 당장 변호사 비용을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안 그래도 레슨실 월세도 3개월째 밀리고 있는데 상황이 계속 악화되는 것 같아요.” 집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집이 재산으로 잡혀 있어 장애수당도 받을 수 없다. “아빠는 하우스푸어예요. 지적장애인은 가난했을 때 가장 혜택을 많이 줘요. 차상위계층, 기초생활수급자로 살면 연금이라도 나오고 뭐라도 받거든요. 근데 겸업은 안 돼요. ‘딱 100만 원(장애수당)으로 살든가, 일을 해서 100만 원을 벌든가’예요. 밸런스 게임처럼.” 하라 씨의 월 수입이 100만 원이 안 되는 달도 있다. 그런 때는 하라 씨의 노동시간이 더 늘어나기 마련. 하루 14시간씩 일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마케팅 외주를 받거나, 레슨실이 있는 건물 3층에서 사장님 일을 도와주고 알바비를 받는 식이다. “잠을 많이 못 자고 밥을 잘 못 먹거든요. 과로하고 그러니까 호르몬 리듬이 완전 깨졌어요. 그러면서 자궁근종이 생겼어요. 그때 알았어요. 잘 먹고 잘 자야 되는 거구나. 그런데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가 저한테 굉장히 어려운 과제인 거예요.” 과로는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났다. 그는 지난 2월 혈복강 수술을 받았다. 난소 근처에 있던 물혹이 터지면서 간까지 피가 차버렸다. “수술 마치고 제가 비몽사몽할 때, 의사 선생님이 아빠한테 수술 과정을 설명을 했나 봐요. 그런데 아빠는 저한테 그 내용을 전달 못해줬어요. 며칠 뒤에 간호사 선생님한테 여쭤보니까 수술하면서 왼쪽 난소를 절제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하라 씨에게도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비혼을 생각했던 하라 씨가 처음으로 결혼을 해야 할까 고민했던 계기이기도 하다. 아빠는 아픈 딸을 위해 미역국을 끓여줬다. 하라 씨는 그때부터 성종 씨가 “아빠 역할을 해주려고 노력했다”고 기억했다. 수술 이후 자궁내막증 치료제를 매일 먹는다. 담당 의사는 평생 약을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 약물에는 부작용이 있다. 그중 하나가 뼈가 약해진다는 것이다. 기타 레슨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하라 씨에게는 치명적이다. 완경 시기 여성들과 비슷한 골밀도 수치. 그는 올해 골감소증 진단을 받았다. 기타를 두 시간 넘게 잡고 있으면 손이 뻐근해지기 시작한다. “제가 아프거나 다쳤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이나 사람들이랑 소통을 계속해 둬야 해요. 혹시나 아빠나 제가 무슨 일이 생겨서 움직이지 못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하려고요.” 하라 씨는 이날도 장애인가족지원센터로부터 ‘장애인 일자리’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면접에 앞서 준비해야 할 서류들을 전달받았다. 서류를 준비하고 이력서를 작성하는 것도 하라 씨의 몫이다. 성종 씨는 지난해 한 중학교에서 청소 노동자로 9개월간 근무했다. 하루 4시간 근무에 월급은 약 100만 원. 아파트에서 3개월간 경비 일을 한 적도 있었다. 다만 장애인 일자리는 같은 곳에서 근무를 연장할 수 없다. 정해진 기간이 만료되면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형태다. 성종 씨의 꿈은 카페 창업이다. 매일 커피를 직접 내려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것이 그의 즐거움이다.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취득했지만, 중년 장애인인 그가 취업할 수 있는 카페는 없었다. “제가 복지 사각지대에 놓였다고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신체 활동에 문제는 없지만, 일상적인 은행이나 관공서, 병원을 혼자 가지 못합니다. 늘 제가 일하는 시간을 빼서 함께 다녀와야 했습니다. 저도 일하고 쉴 수 있도록 활동지원서비스를 원했지만, 심사 내용을 보면 모두 신체장애인에 맞춰져 있었습니다.”(2024. 10. 29. 국제돌봄의날 기념 증언대회, 강하라 씨 발언문 일부) 강종 씨가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은 딱 하나. 보호자 1인을 동반한 지하철 무료 탑승이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주차를 했다가 과태료를 물기도 했다. 지적장애인은 주차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나마 지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과태로의 절반을 감면해줬다. 하라 씨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러한 혜택(?)조차 받지 못했을 것이다. 성종 씨가 장애 판정을 받을 수 있었던 건 하라 씨 덕분이었다. 2019년 하라 씨가 아빠 성종 씨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한글 공부도 같이 시작했다. 당시 아빠는 ‘안녕하세요’도 읽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하라 씨는 학습이 더딘 아빠와 병원으로 향했다. 지적장애 판정 검사를 받기 위해서였다. “그 과정도 되게 힘들었어요. 아빠가 글을 못 읽으니까 제가 언어치료 검사, TCI 검사, 기질검사 문항을 다 읽어 줬거든요. 200문항이 넘는 걸 세 시간 동안 다 읽어줬어요.” 검사 결과는 중증 수준의 지적장애. 등급으로 구분하면 2급이었다. 하라 씨는 아빠가 학습을 하기 위해 천 번이 넘는 학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종 씨에게는 활동지원 서비스가 제공되지는 않는다. “국민연금공단에서 오셔서 질문을 해요. 근데 질문이 ‘혼자 샤워할 수 있는가’, ‘혼자 밥을 먹는가’, ‘외출해서 길을 찾을 수 있는가’ 이런 거예요. 그러니까 모든 질문은 신체 장애인에게 맞춰져 있더라구요. 아니면 지적장애 1급에만 해당되는 거죠.사실 저희 아빠는 이미 천 번을 반복하고 학습해서 (질문 속 행동들을 혼자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거든요. 그래서 안 된대요. 떨어졌어요, 심사에서.” 활동지원사가 없으니 그 자리를 채우는 건 24시간 하라 씨의 몫이다. 오전 9시에 출근하고 오후 6시에 퇴근하는 직장을 가질 수도 없다.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도 사치다. 그나마 집과 가까운 곳에서 기타 레슨 수업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장애인가족지원센터나 지역 복지센터에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다. 취업을 위한 면접장이나 병원에 동행하는 서비스 등이다. 다만 이러한 복지 역시 누리는 것도 쉽지 않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자립을 위해 한 장애인복지관에 언어치료를 신청했는데, 4년 전쯤에 400번대 대기표를 받았습니다. 2년 전쯤에는 200번대였으며, 최근에 전화해보니 언어치료 선생님이 퇴사를 하셔서 공석이라 언어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무엇보다 아동 지적장애에 비해 성인 지적장애는 기회가 더 적습니다. 인지치료나 언어치료를 신청해도 아동이 우선이기에 기회도 없고, 치료받을 수 있는 곳도 없었습니다.”(2024. 10. 29. 국제돌봄의날 기념 증언대회, 강하라 씨 발언문 일부) 국가의 ‘돌봄’은 부족했다. 국가의 빈자리는 오롯이 딸 하라 씨의 인생을 ‘갈아넣어’ 채워야 한다. “지적장애는 원래 티가 잘 안 나요. 특히 아빠는 2급인데도 (사회성이) 많이 개발된 거고. 근데 약간 어수룩하죠. 눈치가 없다기보다는 상황 판단 능력이 빠르지 않은 거예요. 물건을 떨어뜨리면 주워야 되는데, 그걸 인식하기까지가 시간이 걸리는 거예요.” 성종 씨는 살갑고 정 많은 사람이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일은 손수 만든 커피 나누기.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도 기자에게 커피를 권했다. 그날 하루 동안 그가 주는 커피를 이미 넉 잔이나 마신 뒤였다. 자기가 내린 커피는 마셔도 잠이 잘 온다며 능숙하게 회유(?)하기도 했다. “괜찮아요. 이거는 마셔도 잠 잘 오는 커피야.” 그의 ‘남다른’ 사회성은 하라 씨와 할머니의 도움으로 길러진 듯했다. 오랫동안 두 사람은 성종 씨에게 ‘할 수 있어’, ‘괜찮아’ 하는 격려를 보내왔고, 그것이 그에게 도전할 수 있는 힘이 됐다. 하라 씨의 인생에도 그런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는 ‘보호자’가 있었을까. 기자의 질문에 그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살면서 보호자가 있었다고 느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나마 떠오르는 건… 할머니?” 침묵 끝에 이야기가 이어졌다. 하라 씨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양육자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아빠 성종 씨는 아홉 살 딸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건설 현장에서 돈을 벌었다. 하라 씨는 일찍 어른이 됐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막내고모의 미용실에서 일하며 용돈을 벌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사교육 한번 받지 못했다. 이러한 성장기는 그의 가치관에도 영향을 줬다. “제가 태어난 것에 대해 원망한 적도 많았어요. 삶이 너무 힘드니까. 왜 나를 낳기만 하고 제대로 키우지도 않았지? 그런 생각. 그러다 보면 내가 훗날 가정을 이루고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자신이 양육자로서, 배우자로서 괜찮은 사람인가 하는 고민은 하라 씨를 괴롭혔다. 편부 가정이라는 점, 아버지가 지적장애인이라는 점, 아버지를 부양해야 한다는 점 역시 그에게는 ‘결점’처럼 느껴졌다. 다만 유년기의 기억이 언제나 괴로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아빠 성종 씨의 역할이 컸다. “아빠를 계속 돌볼 수 있는 건 과거의 기억 덕분인 것 같아요. 아빠는 주 6일, 7일 근무하면서도 쉬는 날마다 저 데리고 공원에 나가서 놀아줬거든요. 그 기억 속에 아빠가 너무 행복하게 웃고 있어요. 일 때문에 힘들어도 저를 정말 사랑하니까 그랬던 거잖아요.그런 게 (지금 제가 아빠를) 부양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인 것 같아요. 아빠가 잘 살아남았으면 좋겠어요.” 하라 씨는 자정이 돼서야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거실 텔레비전에서는 CTS 기독교 방송 소리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작은방 미닫이문 틈으로는 드라마 소리가 들렸다. 성종 씨는 또 동시에 태블릿PC로 유튜브 영상을 보기도 했다. 하라 씨가 이불 속에 누울 때까지, TV 에서 흘러나오는 찬송가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여행 가고 싶더라고요. 사람이 없는 곳으로요. 오히려 혼자 있을 때 세상이 조금 더 자극적이에요. 너무 바쁘면 나뭇잎이 흔들리는 걸 느낄 수가 없어요. 저는 그 버드나무가 바람에 이렇게 흔들리면서 사르륵거리는 걸 좋아하는데….” ‘아홉 살’ 아빠를 돌본 지 5년. 하라 씨에게는 미래를 그리는 일은 사치스럽다. 일상을 버텨내는 것만으로 버겁다. 그는 차라리 회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빠도, 빚도, 잿빛 미래도 없는 곳으로. 하라 씨는 잠에 빠진 뒤에야 ‘자기만의 방’으로 들어갔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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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아홉 살’… 돌봄청년 하라 씨와 함께한 1박 2일
낮은 빌딩들 사이 가파른 1차선 좁은 길을 버스가 올라갔다. 서울 성북구 ‘최고 높은 곳’에 강하라(31) 씨가 살고 있다. 아홉 살 지능의 아버지 강성종(60) 씨와 단둘이. 기자는 지난 14일부터 이틀간 두 사람과 함께했다. 갈색 벽돌이 겹겹이 쌓인 양옥 주택.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철문 옆에서 나뭇가지를 치고 있던 강성종 씨를 만났다. 그는 반갑게 미소를 지었다. 반쯤 감긴 눈이 아이처럼 반짝였다. 하라 씨는 줄곧 아빠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성종 씨가 케이크를 포크로 찍는 순간 하라 씨가 입을 열었다. “아빠, 기자님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어?” 하라 씨는 아빠에게 ‘매너’와 ‘주도성’을 가르치고 있다. 성종 씨는 기자가 사간 케이크를 입에 넣으며 멋쩍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우리 딸은 꼭 표현을 하라고 해요.” 지난 10일은 아빠 성종 씨의 생일이었다. 하라 씨에겐 1년에 한 번 때 맞춰 축하하는 것도 버겁다. 적게는 하루 12시간, 많게는 14시간씩 일을 하면, 밤 10시가 훌쩍 지난다. 지적장애인 아버지를 부양하고, 3000만 원이나 되는 빚을 갚으려면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 “작년에 너무 힘들어서 심리상담을 받았는데, ‘딸 연습’을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빠를 돌보기 시작한 지 4년째였던 지난해. 하라 씨는 휴식이 절실했다. 일과 간병의 굴레는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때 만난 심리상담사가 은인이었다. 그는 하라 씨가 보호자의 역할만 하고 있다며, ‘딸 역할 해보기’를 권했다. 아빠를 통제하고 책임만 지는 게 아니라, 어리광도 부리고 부탁도 해보라는 거였다. 하라 씨가 아버지 돌봄을 전담한 건 2019년부터다. 그전까지는 성종 씨의 노모, 즉 하라 씨의 할머니가 아들과 손녀를 돌봤다. 할머니 건강이 악화되면서 요양을 위해 시골로 가셨고, 이듬해 돌아가셨다. 집에는 단출한 두 식구만 남았다. 처음엔 각자 생활비를 벌었다. 성종 씨는 일용직 건설 노동자로, 하라 씨는 기타 레슨과 각종 아르바이트로. 넉넉한 형편은 아니어도 마주 앉아 밥을 먹을 여유는 있었다. 아빠에게 집안일을 가르치고, 한글 공부도 시작했다. 그때는 ‘그래도’ 견딜 만했다. 불행은 예고 없이 닥쳐왔다. 지적장애인 성종 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30여 년간 일용직 노동자로 생계를 유지했다. 긴 세월 ‘막노동’에 몸이 버티지 못했다. 어깨와 무릎의 연골이 찢어졌다. 허리 디스크도 두 군데가 돌출됐다. 그때부터 지적장애인 아빠를 돌보는 건 온전히 하라 씨 몫이 됐다. “기자님, 여기부터가 진짜 영케어러의 일상이에요.” 영케어러(Young-carer).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이나 청년을 가리키는 말. 하라 씨는 ‘진짜 일상’을 보여주겠다고 예고했다. 그는 자세를 고쳐 앉아 성종 씨를 마주 봤다. 오늘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연체된 보험료였다. 성종 씨가 5개월간 미납한 보험료는 82만 3770원. 하라 씨는 절반씩 부담하자고 제안했다. 돈 이야기에 성종 씨이 표정이 굳었다. “아빠가 지금까지 치료받는다고 병원비 많이 썼잖아. 그동안 낸 돈 일부 환급도 받고, 앞으로 나갈 치료비도 생각하면 (보험) 부활 시켜야 돼.” “돈 없어. 놔둬.” “보험 없앨 거야? 그럼 아빠 아프거나 다치면 수술도 못 받아. 100만 원 낼 거, 300만 원 내야 될 수도 있어. 자전거 타다 넘어지면 수술 못 받는다고. 아빠 나이 더 많아져서 보험 들려고 하면 보험료도 더 비싸져. 지금 빨리 반반 내자.” 부녀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하라 씨는 알아듣기 쉬운 말로 설명하려고 애썼다. 성종 씨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돈이 없는데 어떻게 돈을 내냐는 식이었다. 하라 씨는 대안을 제시했다. 두 달치 미납금만 먼저 해결하자는 것. 성종 씨가 입으로 쩝 소리를 내며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어떻게 하면 된다고?” 타협 뒤에는 해결할 숙제가 생겼다. 은행 애플리케이션에 들어가 계좌이체를 하는 것이다. 하라 씨는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직접 계좌이체 화면에 접속할 때까지 기다린다. 성종 씨의 손가락이 핸드폰 액정 위에서 방황했다. 서른 번 넘게 해 본 일이지만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오늘은 제 일정이 여유로워서 괜찮아요. 만약 제가 퇴근하고 밤 9시, 10시 돼서 들어왔는데 이런 일들을 밤에 또 해요, 그러면 일이 끝나지가 않는 거죠.” 성종 씨가 계좌이체를 하는 데 걸린 시간 30분. 아빠가 핸드폰을 쥐고 분투하는 동안, 하라 씨는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한다. 성종 씨가 포기하려는 타이밍에 약간의 힌트를 주고 응원을 하는 요령도 생겼다. 출근하기도 전에 하라 씨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날은 아빠를 헬스장에 바래다주고 레슨실로 가는 일정이 남아 있었다. 성종 씨는 오전에 10분 운동하고 왔다며 헬스장 가기를 거부했다. 하라 씨는 능숙하게 아빠를 회유(?)했다. 성종 씨가 운동하는 모습을 취재하면 좋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성종 씨는 그제야 나갈 채비를 했다. 한 손에는 그가 직접 내린 커피를 챙겼다. 헬스장에 있는 트레이너 선생님에게 줄 선물이다. 부녀의 걷는 모습은 참 재미있다. 토끼와 거북이 같달까. 하라 씨가 잰걸음으로 빠르게 앞서 걸으면, 성종 씨는 뒤에서 느릿느릿 주변을 둘러보며 걷는다. 하라 씨는 이동 중에도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에게 이동 시간은 장애인가족지원센터, 기타 레슨생, 레슨실 사장님과 연락하는 시간이다.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한숨을 쉬며 성종 씨를 재촉하기도 한다. 역시나 한 쪽 귀에는 전화기를 대고서. 성종 씨는 딸의 한숨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고등학교 동창들과 있었던 일화를 기자에게 들려줬다. 그는 지난 2월 서울 숭인동에 있는 진형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곳은 평생교육시설로, 학급 평균 연령이 67세에 달한다. 동년배들이 대학에 진학한 이야기, 87세 초고령 학생 이야기가 뉴스에 보도된 일은 그의 자랑거리다. “아빠, 나 기자님이랑 레슨실 가 있을 테니까 운동 마치고 7시까지 레슨실로 와. 너무 일찍 오지 말고. 알았지?” 성종 씨는 운동에 흥미가 없는지 헬스장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5분 동안 자리를 세 번이나 옮겼다. 처음에는 트레드밀, 다음에는 상체, 다음에는 하체.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헬스장에는 장애인 재활을 돕는 트레이너 선생님이 있다고 해서 등록했다. 그것도 하라 씨의 역할이 컸다. 국제구호개발 단체인 월드비전에서 ‘자기계발비’ 지원을 받았다. 언덕배기 집에 살면서 고도비만에 관절까지 좋지 않은 아빠를 위한 일이었다. PT 20회를 끊고 남은 돈은 언어치료, 인지치료, 재활치료비로 쓰인다. 남은 돈은 이제 겨우 10만 원 남짓이다. 하라 씨가 헬스장으로, 여러 치료센터로 아빠를 보내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가 지금 어디 있는지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 아빠는 동묘 앞 벼룩시장을 즐겨 찾았다. 성종 씨는 고장 난 데스크톱, 노트북, 모니터, CD 등을 ‘바가지를 쓰고’ 비싼 값에 사온다. 그리고 작은 방에 숨겨둔다. 아빠의 ‘보물’을 찾아내 고장난 것을 골라 버리는 일은 하라 씨의 몫이다. 심지어 아빠가 밖에 나가서 며칠 동안 돌아오지 않은 적도 있었다. 하라 씨는 그를 “어딘가에 꽂히면 완전히 몰두한다”고 설명했다. 그 때문에 실종신고를 몇 번 하기도 했다. 지능이 7~9세 수준인 아빠가 밖에서 사고라도 당할까봐 늘 노심초사한다. 다행히 성종 씨는 지인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내가 미혼모도 아닌데 왜 이렇게 해야 할까, 그런 생각도 들고, 평범한 가정이 너무 부러운 시기도 있었고…. 그냥 그런 평범한 것들이 좀 부러웠던 거 같아요. 지금은 부러워하진 않아요. 소용이 없으니까.” 하라 씨는 헬스장에 아빠를 데려다 놓고 레슨실로 향했다. 지하철로 네 역 떨어진 곳에 있는 3층짜리 건물. 그곳에 하라 씨의 레슨실이 있다. 이날은 두 타임만 소화하면 퇴근할 수 있는, 비교적 여유로운 일정이었다. 저녁 6시를 조금 넘기자, 갑자기 레슨실 안으로 성종 씨가 들어왔다. 하라 씨는 눈을 질끈 감았다. 수강생에게 복습하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아빠를 데리고 나갔다. 레슨실 옆 빈 공간에서 성종 씨는 한글 공부를 했다. 3층에 있는 학원 아르바이트생에게 지도를 부탁한 것이다. 하라 씨의 일상은 늘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하라 씨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돌아와 기타 레슨을 이어갔다. “저녁식사는 보통 3층에 계신 학원 사장님이랑 같이 해결해요. 제 사정을 생각해주시는 고마운 분이죠.” 하라 씨는 식비를 쓰지 않는다. 웬만하면 3층 학원 사장님이 끼니를 때울 때 숟가락 하나 더 올려 같이 먹는 식이다. 혹은 운영하는 블로그에 협찬을 해준 식당에서 해결한다. “사람들은 제가 ‘돈미새(돈에 미친 사람)’인 줄 알아요. 근데 상관없었어요. 저는 먹고살려고 하는 거니까.” 레슨이 끝났다. 레슨실 한쪽에 있는 테이블에, 밑반찬 세 개뿐인 조촐한 저녁상이 차려졌다. 성종 씨는 자연스레 식사를 시작했다. 하라 씨는 이날도 쉽게 숟가락을 들 수 없었다. 아직 할 일이 남았다. 하라 씨는 또 다른 일을 준비하고 있다. 기타 레슨만으로는 생계 유지가 어려웠다. 기타 레슨은 수능시험 직후, 학교 방학 기간, 새해, 졸업 시즌 등이 성수기다.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면 수입을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성종 씨 돌봄 비용에 레슨실 월세와 관리비, 병원비, 공과금 등을 내면 남는 게 없었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하라 씨를 ‘돈미새’로 만든 결정타는 다름 아닌 친척들이 날렸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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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살인 청년’ 강도영 씨 가석방으로 출소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 19화]
‘간병살인’ 청년으로 알려진 강도영(가명) 씨가 만기 약 9개월을 앞두고 7월 30일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강 씨는 뇌출혈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홀로 돌보다 생활고에 시달려 끝내 부친을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지난 2021년 5월 구속됐다. 강 씨는 살인 고의가 없었다며 유기치사를 주장했으나, 1심-2심 재판부는 모두 존속살해 혐의를 적용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강도영 씨의 사연은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2021년 11월부터 진행한 프로젝트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관련 기사 보기 – “쌀 사먹게 2만원만.. 22세 청년 간병인의 비극적 살인] 강 씨의 부친 고 강영식(가명. 당시 56세) 씨는 지난 2020년 9월 목욕탕에서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강영식 씨는 응급 수술을 받고 의식을 찾았지만, 사지 마비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다. 콧줄을 통한 경관급식으로 식사를 했고, 대소변 처리 역시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강영식 씨는 뇌출혈 전문병원과 요양병원에서 약 8개월 치료를 받았으나 건강은 회복되지 않았다. 간병비 포함 치료비 약 2000만 원이 아들 강도영 씨에게 청구됐다. 입대를 위해 대학 휴학 상태였던 강 씨(당시 22세)에겐 돈이 없었다. 강 씨의 삼촌이 직장에서 퇴직금을 중간정산 받아 치료비를 댔다. 강영식 씨는 계속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으나, 아들 강도영은 더는 돈을 구할 수 없었다. 강도영 씨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어머니와 헤어졌다. 엄마의 거주지는 물론 생사도 모른다. 강 씨는 2022년 4월 23일 아버지를 퇴원시켜 집에서 홀로 돌봤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을 내고 살던 집의 월세는 아버지 입원 직후부터 밀리기 시작했다. 도시가스, 인터넷, 휴대폰이 요금 미납으로 차례대로 끊겼다. 강 씨는 “쌀 사먹게 2만 원만 빌려달라”는 문자메시지를 지인에게 보내는 처지가 됐다. 결국 강 씨는 5월 초부터 아버지를 안방에 방치했다. 아버지의 시신은 5월 7일 안방에서 발견됐다. 강도영 씨는 집에서 체포돼 구속됐다. <셜록> 보도 이후 많은 시민이 돌봄과 간병 살인, 특히 ‘영 케어러(young carer)’ 문제에 관심을 갖고 ‘강도영 구명운동’에 나섰다. 당시 김부겸 국무총리와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공개 사과를 하고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이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영 케어러 실태조사에 나서는 등 관련 대책 정비에 나서기도 했다. [관련 기사 보기 – ‘강도영 선처 6천명 탄원.. 총리, 장관, 대선후보도 관심] 구속된 강도영 씨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밝힌 시민도 많았다. 특히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은 2021년 11월부터 월 1회 강 씨를 면회하며 심리, 생활지원을 해왔다. 전태일의 여동생 전순옥 전 국회의원은 구치소와 교도소에서 강도영 씨를 수차례 직접 만나는 등 강 씨가 ‘전태일-이소선 장학재단’ 제1호 장학생으로 선발되는 데 힘을 보탰다. “강도영 씨의 사연을 처음 접했을 때 ‘타인의 도움이 없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하는 감정이 먼저 들었다. 오빠 전태일도 22세 때 사망했는데, 오빠 생각도 많이 났다. 오빠가 외로웠을 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런 생각도 많이 했다. 강도영 씨가 사회에서 잘 적응해 살 수 있도록 계속 힘을 보탤 생각이다.” 전순옥 전 의원이 지난 7월 말 <셜록>과의 통화에서 한 이야기다. 출소한 강도영 씨는 고향 대구광역시의 한 친구 집에서 머물고 있다. 곧 살아갈 집을 마련해 독립할 예정이다. <셜록> 역시 강도영 씨의 생활을 지원할 예정이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나이듦에 친절한 경험은 어떻게 기획될까?
지역 사회 복지 서비스와 할머니의 라이프스타일 사이에 분명한 공백이 있음을 느꼈을 때,  할머니의 삶의 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저에게도 우연이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보통의 손녀와 다르지 않았어요. 명절 때 찾아봬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주기적으로 전화를 하는 보통의 손녀 그리고 보통의 조부모님. 그들의 삶이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아닌, 한 사람의 '노년'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은 성적 때문에 기숙사 심사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함께 살게 되었을 때부터였습니다.   하루 종일 TV를 보시고 할 일이 없다고 하시면서 화투 치러 오라는 전화만 기다리시는 할머니. 가족들이 찾은 노인 복지관은 교통이 불편하고.. 저러다가 건강이 나빠지시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요. 방학 기간이 있어서 아쉽긴 했지만, 그나마 가까운 치매안심센터를 등록해 드렸어요. 만약 할머니에게 가족이 없었다면 치매 안심 센터의 존재를 알기는 어려우셨을거에요.    저는 지역 사회의 복지 서비스와 할머니의 라이프스타일 사이에 분명한 공백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오히려 동네 분들과의 화투 놀이와 지역 시장의 뜨게방이 할머니의 시간을 보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도요. 관심은 일로 이어져, 지역 사회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직접 기획한 고령친화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은 신경 쓰이는 문제가 되었고, 어떻게 할머니와 같은 노년의 일상 공백을 채울 수 있을지, 그 역할은 누가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고 싶어져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지역사회계속거주(Aging In Place)를 지향한다고 하지만..글쎄요 🧐  Aging In Place란 “노인이 거주하기를 희망하는 집 또는 장소에서 거주하면서 친숙한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적절한 지원과 보호를 받으면서 좋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이윤경 외, 2017). 고령자의 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함에 따라 최근 고령화 정책은 고령자들의 활동성을 유지하며 그들이 살아왔던 지역사회에 지속해서 거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들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노인의 83.8%는 건강할 때 현재 집에서 거주하기를 원했고, 56.5%는 거동이 불편해져도 재가 서비스를 받으며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계속 살기를 원한다는 주거 욕구에 부합합니다. (노인실태조사, 2020)   또한 사회적 측면에서 대두되고 있는 연금고갈,의료비 증가, 돌봄 인력 감소 등의 공적 부담과 사회복지 및 공립요양시설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함에 따른 문제 등의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연숙 외 4, 2021; 김미숙 외 5, 2003)   즉, AIP는 노인의 자립적이고 자율적인 생활을 보장해 주고 시설보호보다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대안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AIP를 위한 고령친화 서비스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김효심, 이용재(2019)의 연구에서는 건강 및 기능 상태가 경증 임에도 지역사회에 계속 거주하지 못하고 시설에 입소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고, 등급 외 노인의 경우 필요한 지역사회 돌봄 서비스를 적절히 이용하지 못해서 장기 요양 인정자로 상태가 악화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습니다.  앞으로 장기요양등급 외, 시설 외, 고령친화 서비스 확대와 지원강화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고령자에게 필요한 AIP는 조금 더 적극적인 차원이에요.   박지환(2017)은 고령자가 이미 살고 있는 곳에서 돌봄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AIP의 소극적 차원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며, 적극적 차원은 고령자가 의료와 복지의 대상만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구성하는 정당한 주체로서 활동하는 것이라고 제시했습니다.   고령자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일정한 자리를 확보하고 적절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생활환경을 구축하여 고령자가 겪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경제적 문제를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조기에 파악함으로써, 고령자에게 적절한 시점에 필요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노인 입장에서 지역 사회에 계속 거주하고 싶게 하는, AIP 지속 영향 요인 연구를 살펴봐도(현다운 외 2명, 2022) *공식 돌봄에서는 물질지원과 일상생활 지원을 받지 않은 경우, *비공식 돌봄에서 정서 지원을 받은 경우 지속 거주의 가능성이 높음을 밝혔습니다.  * 공식돌봄은 기초연금 등의 물질적 서비스부터 장기요양보험을 통한 방문요양, 방문간호, 주야간보호 등의 여러 가지 서비스와 복지관, 보건소등기관을통한서비스를 통합한 돌봄을 의미함* 비공식돌봄은 가족, 친지, 이웃 및 친구 등 사적 관계망을 통한 돌봄을 의미함  박인권 외 2, (2023)의 고령층과 청년층의 지역 사회 삶의 질을 높이는 요인 연구에서는, 지역 내 이웃 간 신뢰가 높고 자주 연락하는 등 사회적 관계가 원만하고 교류가 잘 이루어질수록 고령자 개인 삶의 만족도가 높게 나타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지역사회에서 계속 거주하기 위해서는 건강을 유지하는 ‘예방적인 접근'이 필수적이며 노년의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에는 사회적 관계 맺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상생활 유지에 필요한 지원이나 정서적 돌봄에 대한 지원이 이뤄진다면 노인들은 지역 사회에서, 살던 곳에서 늙어가는 것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김영란, 2014)  즉, 고령 친화적인 지역 사회 환경을 위해서는 사회의 관계 형성과 고령자 참여 환경을 조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각 지역 사회에서 누가, 어떻게, 어떠한 노력을 할 것인지 실행 단계의 논의도 필요하죠.  이미 진행되고 있는 고령친화 프로젝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어요.  고령자 참여형 공동 창조 / 리빙랩 / 노인 참여 프로그램 / 노인 일자리 사업 / 노인 돌봄 공동체 / 협동조합 등.. 다양한 이름과 지원 체계를 통해 이미 지역 사회의 돌봄 공백을 메꾸어주고 있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사업의 형태는 도시 재생, 지역 발전, 노인 일자리 사업, 등 다양한 범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령친화적인 경험이 의도적으로 또는 자연스럽게 기획되고 진행되었다는 점입니다.  * 이하 고령친화 프로젝트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해요. 지역사회에서 이루어지며 고령자들의 삶의 질을 단기적으로 직접적으로 제고하는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됨은 물론, 고령자가 직접 참여하는 형태로 고령자의 활동 범위를 넓히고 사회참여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Aging In Place 환경 구축에 실질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공공의 영역에서 제공하기 어려운 작은 규모의 서비스를 노인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며, 노인들의 요구를 공공기관에서 만들어서 제공해 주는 수동적인 방식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를 요구하거나 서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방식을 취하게 됩니다.  프로젝트가 이뤄지는 일련의 과정을 고령친화 '서비스' 관점으로 뜯어보면 어떨까요?  “서비스들이 시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디자인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떤 대상에서 어떤 서비스가 어떤 방식으로 전달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해보아야 할 때이다."_커뮤니티케어와 리빙랩의 즐거운 만남_한국리빙랩네트워크_포럼 정리문_팽한솔(전 서울특별시 서울의료원 시민공감서비스디자인센터 팀장  고령자와 함께하는 프로젝트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노인 정서/심리에 맞추어 설계하고 만족도를 높이고 소통하는 접점에서 노하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홍보하고 참여시키고 지속적인 동기를 부여하였는지도 중요합니다. 돌봄 가족, 돌봄 종사자 등 이해관계자 간의 교류나 역할 조정의 순간도 있었을거에요. 이 모든 과정이 전문성을 발휘하여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그 자체로 연구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보지 않은 시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습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고령화 이슈 해결을 위해 다양한 시도와 실험이 효율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예를 들어 A팀이 2023년 10월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 는 문제점을 도출하고 어떤 시도를 해봤다면, 2024년에 같은 관심사를 가진 B팀의 시작점은, A팀의 시도가 끝난 지점에서부터 힌트를 얻어 발전 된 해결책을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비슷한 수준의 고민과 시도가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고령친화적인 서비스 제공 경험과 지식을 체계화하고 서로 나누며, 고령자의 특성과 욕구를 파악해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의 리빙랩은 아직 초기 단계이다. 단발적이고 독립적으로 성공한 사례는 간혹 있지만,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지 않고 있다.” _한양대학교 Linc+사업단 박성수 교수(사회혁신 전담)  고령친화 프로젝트는 그 가능성에 비해, 현재까지 이루어진 사례들의 기획-운영 경험 등이 축적되거나 공유되지 않고 이벤트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일어나는 일이지만, 인력/시간 부족, 지원 사업 행정 업무, 지역 간 특이성의 이유, 연구 인력 부족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각 지역 간 서로의 선사례가 되기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연구를 통해서라면 정리되고 조명되고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연구를 진짜 이루어내고 확장되는 꿈을 마음껏 꿔본다면,  첫째, 해당 지역/사례 내에서만 일어났던 고령친화적인 서비스 제공 경험이 다른 지역 내에서 활용됩니다. 둘째, 다수의 고령친화 프로젝트에서 성공/실패 요인을 추출하여 다른 사례에도 적용할 수 있는 시나리오와 가이드 라인으로 개발합니다. 셋째, 지역을 막론하고 일반화된 고령친화 커뮤니티(공동체)/서비스 모델로 개발 할수 있습니다. 넷째, 효과성을 검증하고 근거도 확보해야 하니, 고령친화 경험 디자인 지표로도 발전시켜야 합니다.   더 나아가, 지역 그룹/프로젝트 간 커뮤니티 플랫폼을 만들어 연결성과 확장성을 가지고 상호 간 지속적인 독려를 하며 고령화 사회 이슈를 해결해 가기를 기대합니다. 이 과정에서 지역 기반 기획자, 종사자, 이해관계자 역할의 중요성이 조망되기를 바랍니다. 고령친화 커리어 커뮤니티 1기를 운영해 보니 이러한 연결이 필요하며,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역사회 계속거주, Aging In Place, 고령친화 공동체, 서비스 등.. 이러한 개념을 막론하고 고령자에게 좋은 경험은 무엇일지 생각해 봅니다. 적어도 정책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만 기획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역 사회 서비스를 이용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노년의 정서와 자존감이 고려되고 지켜지는 문화가 형성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해 나이듦에 친절해지기를.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번 컨퍼런스를 통해 (과분하게) 얻은 연구 활동가라는 이름을 꼭 지켜내고 싶은 김의현입니다. 극극초보 연구자의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선행 조사, 근거, 논리 등 모두 부족함을 압니다. 연구 계획의 과정이 쉽지 않더라고요.. :) 하지만 제가 포기하지 않는 한, 앞으로 조금씩 꾸준히 발전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저는 고령친화적인 관점을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일에도 관심이 많아요.그래서 나이듦에 친절한 영감, 고령친화 라이프스타일 뉴스레터를 시작했습니다. '나이듦은 나와 먼 일이 아니야'라고 느끼고 계신다면 구독 해두셔도 좋을거예요. 앞으로 이 연구의 진행 과정도 공유하려고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참고문헌] 강현철, 최조순. (2019). 지역자산을 활용한 커뮤니티케어 운영에 관한 탐색적 연구. 한국지적정보학회지, 21(1), 39-54, 10.46416/JKCIA.2019.04.21.1.39 김미숙 외 5, 고령화사회의 사회경제적 문제와 정책대응방안:OECD국가의 경험을 중심으로,2003,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효심, 이용재. (2019). 노인장기요양 등급인정자와 등급 외자의 지역사회복지서비스 이용 실태분석. 디지털융복합연구, 17(11), 29-37. 박인권, 정하림, 강다은. (2023). 사회적 약자 집단별 삶의 만족도 지역 간 격차와 지역 역량 요인 : 청년층과 고령층 비교. 한국지역개발학회지, 35(1), 29-54. 박지환. (2017). 고령자를 위한 고령자에 의한 장소 만들기- 오사카시 히토하나센터(ひと花センター)의 사례 -. 비교일본학, 40, 1-30. 이윤경·강은나·김세진·변재관. 2017. 「노인의 지역사회 계속 거주(Aging in place)를 위한 장기요양제도 개 편 방안」. 세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연숙, 전은정, 조승연 and 박민아. (2021). 가족동거 고령가구의 맞춤형 주택개조 거주 후 평가 연구. 한국공간디자인학회 논문집, 16(8), 483-498. 현다운, 박윤정, 남일성. (2022). 충분한 사회적(공식/비공식) 돌봄은 노인의 AIP를 지속시키는가?. 한국복지패널 학술대회 논문집, 15(0), 93-115. 우리 동네 문제 내 손으로 해결 '주민주도형 리빙랩' 뜬다 http://www.lifein.news/news/articleView.html?idxno=15069  커뮤니티케어와 리빙랩의 즐거운 만남_한국리빙랩네트워크_포럼 정리문 http://www.livinglabs.kr/knoll/home/board/downloadFile.do?key=126 
2024년 줄어드는 가정폭력 상담소 , 점점 늘어나는 가정폭력 사건!
안녕하세요 글은 처음 써보게 되었는데요 요번에 "빠띠"에서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참여하게 되어서 공유를 해보면 좋을것 같아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일단 저희팀은 "가정폭력 상담소 위치확인 서비스"라는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 했는데요 팀 이름도 "바이올렛 리본"으로 지었는데요 바이올렛 리본 이라는 이름을 짓게 된 이유는 보라색 리본은 암환자와 가정폭력 피해자를 상징하는 리본 이라서 팀 이름을 "바이올렛 리본"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문제인식을 하기 위해서 가정폭력 관련 기사를 찾아 봤는데요 위의 자료 왼쪽 그래프를 보면 2017년에서 2021년으로 갈수록 가정폭력 112 신고가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반대로 오른쪽 에 가정폭력 상담건수 그래프를 보면 점점 상담건수가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그래프가 이렇게 상반된 결과를 보여주는 이유는 가정폭력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이 "감시" 이기 때문 입니다. 특히 코로나가 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가정에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가정폭력은 점점 더 심해지는데 가해자의 감시로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는 하지 못하고 간간히 외출할 때 가정폭력 상담소에 가서 가정폭력 상담을 받는 횟수가 늘어난 것입니다. 이 기사는 최근 5년간 가정폭력사범이 25만명 이나 되지만 구속률은 0.8% 밖에 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가정폭력 신고가 4년간 90만건이 넘게 신고가 되었고 그 중에서 경기도가 28만 건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서울 16만건, 부산 5만건. 경남4만건 대구 4만건 순으로 나타났고 가정폭력 피해자는 남성보다 여성이 4배가 늘어났고 2021년에 비해 2022년에 32% 증가한 가정폭력 사건이 일어났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가정폭력 피해자가 겪는 정신적인 피해를 보여줄 수 있는 기사라고 생각해서 선정 했습니다. 가정폭력 피해자인 자연이와 할머니는 가해자인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 했지만 아빠의 출소일이 다가오자 할머니의 공포심이 극대화 되어 할머니는 미성년자인 자연이의 양육을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결국 자연이는 고등학생 생활 2년간 총 3번의 전학을 갈 수 밖에 없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다가오는 2024년에는 가정폭력 상담소는 줄인다고 발표 했습니다. 내년도 가정폭력 상담소 운영 사업 예산을 올해보다 27.5%나 줄이고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가정폭력 상담소 인원도 9%나 줄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팀 에서는 "경찰청의 최근 6년간 가정폭력 검거 및 조치 현황"을 조사해 봤는데요. 2022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검거 총 인원'과 '불구속 인원이 거의 동일한 그래프를 그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고는 들어오지만 처벌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분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프를 보면 빨간 그래프와 보라색 그래프 사이에 그래프 하나가 빠진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그래프가 빠진것이 아닌 구속인원 입니다.  가정폭력 가해자는 거의 구속이 되지 않는다고 보면 될것 같습니다. "경찰청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조치 현황"을 보면 보호기관으로 가는 가정폭력 피해자가 눈에 띄게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성가족부에서는 3년마다 한번씩 가정폭력 실태조사 연구를 진행 하는 데요 2021년에 가정폭력 실태조사를 연구한 결과를 2022년에 발표한 것을 살펴봤습니다. 배우자/파트너에 의한 폭력 피해 경험 중 통제 피해 경험률이 남녀 모두에게 높게 통계가 나왔으며 가정폭력중 "정서적 폭력"이 가장 높았다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정신적 고통 경험을 좀 더 주의깊게 봤는데요 '심각한 편이다' 라고 대답한 사람들에게서는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 분노"가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가정폭력의 특성중 가정폭력이 "가정 내 대물림"으로 번지는 특성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봤을때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 분노로 인해  가해자는 다시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는 다시 가해자가 되는 사이클이 반복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매우 심각하다' 라고 응답한 사람은 "계속 당시의 생각이 남"이 1위를 차지 하기 때문에  가정폭력 피해자는 피해 당시의 사건이 계속 생각이 나고 그로 인해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과 분노가 또 다른 가정폭력을 낳는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가정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은 남녀모두 가정폭력 피해를 겪지 않은 사람들 보다 아동폭력 가해 경험이 높다고 대답 했습니다. 가정폭력 관련 지원 기관 인지도는 위에서 보는 것처럼 1위가 112, 2위가 가정폭력 상담소로 인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알아야 할 부분은 3위부터 6위 까지를 모두 2위인 가정폭력 상담소에서 연계를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 입니다 그래서 가정폭력 상담소는 가정폭력 피해자의 유일한 해소공간 입니다.(경찰도 가정폭력 상담소를 연계 해줌) 그래서 저희 팀에서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 가정폭력 상담소를 서울시 지도에 표시하고 링크를 걸어서 피해자가 쉽게 가정폭력 상담소 위치를 찾을 수 있도록 돕자는 의견을 냈습니다. (전국은 너무 넓어서 서울로 한정을 했습니다) "공공 데이터 포털"에 접속해서 "서울시 가정폭력 상담소 정보"를 열람해서 서울시에 있는 가정폭력 상담소의 위치를 알아냈습니다. 공공데이터 포털에서 찾아낸 서울시 가정폭력 상담소 위치를 "파이썬"과 "코랩" 이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이런식으로 엑셀자료를 이용해서 지도에 표시를 하고 가정폭력 상담소의 링크를 거는 식으로 완성을 하면 줄어드는 가정폭력 상담소를 피해자들이 잘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들은 가정폭력 피해자를 도울 수 있는 어떤 방법을 가지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제 글은 여기까지 입니다. "본 콘텐츠는 서대문 청년창업센터와 빠띠가 함께한 '데이터기반 청년창업교육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맹탕’ 논란의 다섯번째 국민연금 개혁안, 어떤 내용일까? 📝💸
국민연금이란? 노후에 필요한 소득 보장을 위해 소득이 있을 때 꾸준히 납입하고 국가에서 관리하는 사회보장형 보험입니다.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과 더불어 사회안전망 역할과 목적을 가집니다. 나이가 들어 일을 계속하기 어렵거나 예상치 못한 사고, 질병, 장애를 마주했을 때 매월 연금을 지급하여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국민연금의 특징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사회보험제도와 같이 모든 국민이 가입 대상자이며 강제성이 있습니다. 강제 적용을 하지 않는다면 선택적으로 연금에 가입하거나 개인의 판단에 따라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을 수도 있어, 소득 활동을 하는 모든 국민의 연대와 공동 부담을 전제합니다. 소득 재분배로 사회 통합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동일한 세대의 고소득 계층에서 저소득 계층으로, 미래 세대가 현재의 노인 세대를 지원하는 두 가지 방식을 모두 포함합니다.  지금까지의 개혁안과 변천사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제도는 1889년 독일에서 최초로 시작되었고 현재 170여개 국가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1월 1일, 근로자가 10인 이상 근무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작되었으며 이후 단계적으로 대상을 확대하여 1999년 4월 1일에는 전 국민이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22년 12월 말 기준, 국민연금 수급자는 643만 명을 넘어섰고 가입자도 2,250만 명”입니다. (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 제도가 올해로 36년 차를 향하는 동안 정부는 다섯 차례의 크고 작은 개혁안을 발표해왔습니다. 저출생과 고령화 사회를 맞이하며 국민연금의 소진 예상 시기가 앞당겨지고, 이를 대비하기 위한 개혁의 필요성과 우려가 커진 것입니다. 현재 보험료율은 25년째 9%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2041년부터 적자가 시작되어 2055년에는 국민연금 기금이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재정추계전문위원회는 예측했습니다. (정책브리핑, 2023-01-27) 지난 10월 27일, 국민연금정책과에서 발표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의 주요 핵심은 아래와 같습니다.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 자동안정화 장치 도입 확정기여방식(DC) 전환  각각 순서대로 들여다보면, 연금 지급 시기가 가까워진 중장년층의 보험료율은 더 빠르게, 상대적으로 기간이 길게 남은 청년층은 더 느리게 인상한다는 계획입니다. 자동안정화 장치는 사회 경제적 상황에 맞게 보험료율, 연금 수령액, 수급을 시작하는 연령 등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방안입니다. 점점 더 예측이 어려워지는 미래 시대와 외부 요인에 의한 불확실성에 탄력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마지막으로 확정기여방식(DC)은 기존에 내는 돈과 받는 돈을 미리 정해두는 확정급여방식(DB)과 비교하여 나중에 자신이 낸 보험료에 이자를 더하는 방식으로 변경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경우 재정이 악화되어도 최소한 직접 낸 보험료에 대해서는 이자를 포함해 연금으로 보장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번 개혁안, 적절할까?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험료율과 자금 계획, 지급 방식 등 숫자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한 사안임에도 이번 개혁안에서 방향성 외 구체적인 수치를 찾아보기 어려워 알맹이 없는 개혁안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국민연금 개혁은 여야, 국민 개개인 모두에게 민감한 문제이기에 지난 네 번의 개혁안에서도 명확한 합의점이 도출된 적이 별로 없습니다. 이번 개혁안의 방향성대로면 중장년층의 부담이 지나치게 커져 세대 갈등이 심화될 것을 예상하기도 합니다. 또한 DC형이 도입되면 재정이 어려워져도 내가 낸 돈만큼 받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연금액이 줄어 노후 소득을 보장한다는 취지가 훼손될 수 있습니다.  (YTN, 2023-10-29) 이렇듯 지난하고 복잡한 맥락 속에 연금 개혁은 결국 내년 4월 총선 이후로 미뤄질 전망입니다. 시기가 시기다보니 여야 모두 여론과 표심을 의식해 개혁에 소극적인 상황입니다.  국민연금 제도와 이번 개혁안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은 어떤가요?  아쉬운 점, 동의하는 부분, 기대하는 새로운 방향성 등 댓글을 통해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국민연금과 기타 사회보장 제도가 꼭 필요한 개혁의 시기를 놓치지 않고, 국민 모두의 안전망이 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논의와 합의가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친구를 입양했습니다” 성인 입양, 들어보셨나요?
본 글의 제목은 은서란 작가의 도서,<친구를 입양했습니다 – 피보다 진한 법적 가족 탄생기> 일부를 빌려왔습니다.     국내의 입양은 현재 1) 민법에 의한 일반 양자 입양, 2) 친양자 입양, 그리고 3) 입양특례법에 의한 입양과 같이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됩니다. 입양특례법에 따른 입양은 보호가 필요한 아동, 특히 아동학대로부터 구제해야 하는 경우를 대상으로 합니다. 친양자 입양은 친부모와의 법적 관계를 끊고 양자의 성과 본이 자동으로 양부모의 것으로 변경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일반 입양은 친부모와의 관계를 유지한 채 입양이 이루어지며, 성과 본이 자동으로 변경되지는 않지만 가정법원에 신청을 통해 변경할 수 있습니다. 어떤 입양이든 미성년 자녀를 입양하는 경우 아이가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양육 환경을 보호자가 갖추고 있는지 엄격하게 심사하며 입양 요건과 절차가 까다롭습니다.     그에 비해 성인입양의 경우 일반 양자 입양만 가능하며 조건과 절차 역시 매우 간단합니다. 양자가 될 사람이 성인으로서 가지는 의사 결정권을 존중하기에 당사자 간의 합의와 양자 친부모의 동의가 가장 중요합니다. 입양 조건을 성립하기 위해 양자가 될 사람이 양부모의 친족이나 양부모보다 연장자만 아니면 됩니다. 기존에 대부분의 성인입양은 재혼 가정에서 새로운 양자를 호적에 들이는 절차로 존재해왔습니다. 최근에는 보호종료아동의 성인기 자립과 지원을 위해, 혹은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이성 간 결혼, 출산, 입양 외에는 법적 권리를 보장 받을 수 없기에 동성 친구를 입양하여 생활공동체를 꾸리는 사례가 소개되었습니다.     7,510명. 지난 10년 간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국내외 입양아동 숫자입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와 가정법원을 거치는 미성년자 입양과 달리 성인입양 통계는 보건복지부 · 법무부 · 대법원(법원행정처) 등 관련 부처 어디에서도 관리하고 있지 않아 현재 그 수를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법적으로 친자 관계를 맺는 일반입양은 단지 정서적 소속감이나 서류 상 표기만을 위한 절차는 아닙니다. 서로의 법정 대리인이 된다는 의미는 병원에서 수술 시 요구하는 ‘보호자 동의서’에 서명하거나, 직계비속으로서 1순위 상속인이 되는 상속권리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법적 권리를 근거로, 건강이 악화되거나 판단 능력이 흐려진 노년층의 재산을 갈취하기 위해 성인입양 제도를 악용하는 사건도 있습니다. 같은 제도라도 누가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따라 범죄가 되거나 사회적 안전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은서란 작가의 도서 <친구를 입양했습니다> 추천사에서 장혜영 국회의원은 말합니다. “서란과 어리 가족의 생생한 이야기는 혼인, 출산, 입양이라는 틀 밖에서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수많은 가족들의 존재를 드러낸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인간다운 삶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우리에겐 스스로 원하는 가족을 구성할 권리가 있다.”  여러분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요? 새로운 가족을 꾸리기 위해 누군가를 입양하거나, 내가 입양되는 상상 혹은 경험을 해보셨나요?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된다면 입양이나 결혼이 아닌 다른 선택지가 확장될 수 있을까요? 삶을 살아가는데 가족, 주거공동체, 생활공동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 이번 글을 쓰고 며칠이 지난 8월 8일 수요일 저녁,무아레서점에서 열린 은서란 저자의 북토크에서 서란 님은 이런 이야기도 나눠주셨습니다. "가족 관계에서 기대와 서운함이 없는 관계가 가장 아름다운 거리라고 생각해요. 정말 어렵지만...""(가족 중심 사회를 넘어) 가족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좋은 세상 아닐까요." 앞으로 가족과 공동체에 관한 다채로운 질문과 이야기가 늘어나기를 기대합니다! 함께 읽어볼 글거리  [도서] 친구를 입양했습니다 - 피보다 진한 법적 가족 탄생기, 2023.07.05, 은서란 저자 [도서] 외롭지 않을 권리 - 혼자도 결혼도 아닌 생활동반자, 2020.03.12, 황두영 저자 [도서] 에이징 솔로 - 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어떻게 나이 드는가, 2023.03.31, 김희경 저자 [기사] 친한 친구를 입양해 법적 가족이 됐다, 2022.10.12, 한겨레 서혜미 기자 [기사] 입양 업무 37년 했지만… "성인 입양은 처음 들어요", 2019.11.23, 조선일보 조유진 기자 [논문] 성인입양인의 정체성 형성과정에 대한 맥락-패턴 분석, 2021.10.24, 충남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권지성&최슬기 연구자 [논문] 비혼인 생활공동체의 인권 신장을 위한 시민결합제도 도입방안 연구 - 한국 사회의 변화와 해외 사례 연구를 중심으로, 2017, 국가인권위원회 인권논문 수상집 백시우&진재훈 연구자 [YouTube] 친구를 입양했습니다, 은서란 님 인터뷰 by Creal(씨리얼)
<다른 인어공주>는 <원작 인어공주>를 훼손하지 않습니다.
[인어공주는 과도한 PC?] 글의 댓글에 달리는 여러 선생님들의 의견을 읽어보면 PC와 미디어 상업예술의 관계가 한층 복잡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이미 여러곳에서 이번 <인어공주>의 영화적 요소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PC에 굉장히 친화적이고 지지하는 트위터 이용자분들 중 몇몇도 배우가 아닌 감독을 비판하기도 하더군요.  저 역시 작품에 PC요소를 입힐 때 무엇보다 감독 및 연출진과 배우의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영화는 아니지만,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2>가 큰실패를 겪은 이유 역시 연출의 실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라오어2와 라오어3으로 파트를 나눠서 플레이어의 감정이입을 제대로 관리했으면 어땠을지...)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인어공주> 영화가 ‘아쉬웠다’라던가, ‘흥행에 실패했다’라고 말할 자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같은 자유를 누리면서 동시에 책임을 상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상 콘텐츠로서 <인어공주>는 분명 원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향후 어떤 인종, 실력의 배우가 연기하든 ‘원작’으로서의 <인어공주>는 영원히 보존되면 보존되지 다른 버전의 <인어공주>에 의해 삭제당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원작을 ‘훼손’하는 게 애초에 아닌 셈입니다. 단지 ‘원작의 다른 버전’을 만들었을 뿐입니다.   이에 대해 ‘아이들이 원작을 찾는다구요.’라는 글을 보았습니다만, 바로 그때, ‘아이들’과 ‘우리(성인)’를 분리할 단계가 된 성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원작으로서의 <인어공주>가 분명히 있고, 그럼에도 이번에 ‘다른’ <인어공주>를 디즈니에서 왜 제작해 상영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게 성인들의 역할이 아닐까요? 이번 디즈니의 <인어공주>는 이런 맥락에서 ‘어두운 피부’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그러니 배우의 실력이나 감독의 연출을 아쉬워할 때 ‘흑인 배우’를 끌어들였다는 부분을 탓하는 건 애초 영화의 제작 목표를 오인하거나 부인한 결과로밖에 안 비출 것 같아 우려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만약 백인 금발 남성이 홍길동을 연기하든, 중국인이 슈퍼맨을 연기하든, 이미 인터넷이 널리 퍼진 현대 사회에서 누구도 ‘원작’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원작’을 잊지 않을 것이고, 누구도 원작을 훼손했다고 주장하기는 곤란합니다. 원작은 원작대로 영원히 영광의 자리에 남을 테니까요. 그 어느 ‘아류작’도 ‘원작’을 존경했으면 존경했지 삭제시키고자 제작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흑인이 캐스팅된 그것 하나만으로 박수를 치실 필요도, 영화의 모든 라인과 연출이 망가진 이유를 흑인 배우 캐스팅에 전부 갖다 붙일 필요도 없습니다. 애초에 이 <다른 버전>의 영화는 원작의 가치를 잘 알기 때문에 <다른> 버전을 제작해보았을 뿐이니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무조건 박수를 치실 필요가 없고, ‘다르다’는 이유로 영화의 여러 흠을 비판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글이 길어지는데, 이번 <다른 인어공주>를 비판할 때 그 기준을 <원작 인어공주>로 삼으시는 것 자체가 영화의 기획 의도와는 어긋나는 논지의 비판입니다. 못 만들었다면 그냥 배우의 실력과 감독 및 연출진의 실력 탓입니다. 애초 '원작의 다른 버전'을 기획했으니 '원작과는 다른 인종'이라서-는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영화의 기획 의도를 오인하지 않는다면요).  흑인 인권을 옹호하는 글에 항상 달리는 댓글이 있습니다. 정작 흑인들도 한국인들을 향한 혐오를 남발한다는 게 그 내용이죠. 실제로 많은 뉴스에서 이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코로나19 이후 아시안 혐오가 증가하고 있는 건 분명 문제입니다.  하지만 ‘흑인도 아시안을 혐오하니 우리도 흑인 존중할 이유가 없다-’라는 결론은 지나치게 섣부른 선택이거니와, 결국은 백인만이 승리하는 논리로 빠지게 됩니다. 기득권 바깥에 사는 사람들 간의 갈등은 점차 심해지는 와중에 세계화는 더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의 가속과 함께 어쩌면 우리는 보다 이른 시기 내 이웃으로 흑인이나 동남아인들을 두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상호존중의 담론을 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담론의 형성에는 무엇보다 미디어의 힘이 큽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원작의 다른 버전>들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훗날 아이들이 ‘다름에 대한 존중과 거부감 사이를 다루는 방법’을 익히게 됩니다. 그것을 다루지 못했을 때 피해는 고스란히 미래 세대(아이들)가 봅니다. 이런 맥락에서 PC와 미디어 상업예술의 진흥은 미래세대의 '돌봄'과도 연결된 문제입니다. 그러니 ‘기업’의 책임은 미래세대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디금부터라도 ‘다름’에 대한 존중의 담론을 형성해나가는 것에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미디어 '상업'예술에서 '상업'의 측면, 즉 소비자가 돈을 내고 소비하는 측면을 감안해 이번 주제와 연결하자면, 우리는 '보다 올바르고, 따라서 더 안전한 미래'를 만드려는 기업에 투자해야 합니다. 상업예술의 '상업'에는 이런 측면도 있으리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을 애매한 글이지만 이것 하나만 기억해주세요. <원작의 다른 버전>은 <원작>을 해칠 의도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해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애초 기획 의도를 왜곡해 퍼뜨리는 담론의 탓일 겁니다. 
'돌봄노동자'의 꿈과 한숨
저는 2018년도부터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몇 가지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습니다. 저를 “아줌마”라고 부르거나, 같이 사는 다 큰 아들방 청소에 온 가족이 쓰는 넓은 화장실 청소까지 다 해야했고, 김장철에는 어르신 집이 사랑방이어서 동네분들이 파, 배추, 무 등을 배달을 시켜 일을 같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힘든 와중에 어르신이 병원에 장기입원을 하셔서 센터를 바꿨는데 거기서는 명절을 앞두고 만두를 300개씩 빚고 ‘4층 빌라의 베란다 바깥 유리창을 닦아달라’고 요구하는 등 파출부인지 요양보호사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저희는 센터에 하소연을 하지만 센터는 어르신이 센터를 옮길까 봐 어르신 편에서만 얘기하고, 요양보호사의 업무태도를 문제 삼아 하루아침에 해고를 통보해오기 일쑤입니다. 코로나19 확산 초장기였던 때에는 확진자의 동선을 다 공개했습니다. 이때, 저는 동선을 보니 시간대는 딱 겹치진 않았지만 마트에 갔던 것이 염려가 되어 ‘예방차원에서 하루 쉬겠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아예 관두라고 하면서 ‘왜 지침을 어기고 그렇게 돌아다니냐’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를 범죄자처럼 몰아갔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었습니다. 요양보호사라고 이렇게 막말을 하고 막 대해도 되는 건지. 태어나서 처음 당해보는 수모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일한 어르신 댁은 몇 달 일한 후에 반지하에서 2층 빌라로 이사를 했는데, 이사 간 집의 화장실이 2개였습니다. 가족이 사용하는 화장실은 제가 청소를 못하겠다고 하니 어르신이 마음에 안 들어하면서 그만뒀으면 하여 그 댁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재가센터입니다. 센터장은 저에게 한 번도 문자나 전화를 하지 않았고, 다른 곳을 연계해달라고 해도 복지사는 어쩔 수 없다는 곤란한 얘기만 반복했습니다.  노인장기요양제도는 올해로 15년째 국가주도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크게는 시설과 재가로 나뉘는데 그 중 재가요양이 거의 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기요양은 국가재정을 가지고 운영함에도 99% 민간이 운영하기 때문에 돈벌이로 전락이 된 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재가요양은 센터마다 시급이 다르고, 요양보호사에 대한 처우도 각기 다릅니다. 재가 방문요양의 가장 큰 어려움은 고용이 불안정하다는 것입니다. 센터와 근로계약을 맺고 임금을 받는 노동자임에도 어르신 또는 그 가족의 사정으로 일이 중단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어르신이 병원에 단기 또는 장기입원을 한다거나, 요양원에 갑자기 입소한다거나, 돌아가신다거나 심지어 요양보호사와 안 맞다고 교체를 요구하시거나 (생각보다 이런 사유가 더 많습니다) 등등 요양보호사 당사자의 사정이 아닌 일로 출근길에 일을 가지 말라는 문자통보를 받거나 ‘내일부터 어르신 댁에 안 나와도 된다’고 통보를 받는 등 하루 아침에 해고 또는 일이 중단되는 경우가 아주 흔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근로기준법에 있는 휴업수당 70% 지급은 방문요양보호사들에게는 꿈같은 일이고, 월 60시간을 채우지 못해 그 달은 4대보험이며, 퇴직금과 장기근속장려금을 못 받는 불이익이 발생합니다. 특히, 코로나 확진시 시설의 장기요양종사자들은 모두 유급처리가 되는 반면 재가요양은 전혀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일이 끊기고 무급처리가 되는 황당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르신이 확진되거나 그 가족이 확진되어 출근을 못한 경우가 다반사였는데요. 길게는 한 달 반을 못나가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답변은 ‘코로나로 인해 출근을 못한 경우는 천재지변이기 때문에 휴업수당을 받을 수 없다’였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어디서 보상을 받을 수 있단 말입니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단에서 부여하는 만3년 근속자에게 주는 장기근속장려금을 받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공단에서는 요양보호사들이 센터를 자주 옮겨 안정적인 케어를 위해 해당 수당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복지부와 공단에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센터를 자주 옮기고 싶어 옮기나요? 퇴직금을 받을 즈음 10개월, 11개월이 되면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잘리게 만들고, 어르신의 사정으로 일이 중단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과연 한 센터에서 3년을 채우기가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장기근속장려금을 3년으로 유지하려거든 센터를 옮겨도 근속을 인정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근속수당의 기준을 만 1년으로 낮춰야 합니다.    또한 월60시간 이하로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법적으로 규제해야 합니다. 현재도 59시간 또는 59.5시간으로 근로계약을 맺는 센터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되면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4대 보험 적용도, 퇴직금도 장기근속장려금도 자격이 되지 않습니다. 관공서 유급휴일의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근로계약상 근로를 하는 요일임에도 빨간날이 끼면 센터에서는 일을 빼버립니다. 그럴 경우 시급처리를 해달라고 해도 센터에서는 ‘근무하지 않았기 때문에 줄 의무가 없다’고 하고, ‘운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휴일수당을 주지 않고 있는 현실입니다. 관공서 유급휴일은 급여의 손실 없이 쉼을 보장받자는 게 도입취지인데 방문요양은 오히려 임금이 줄고 근속수당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데다 나아가 어르신 입장에서는 돌봄을 받을 권리도 빼앗는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최저시급으로 돌봄노동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두, 세 번째 어르신 댁으로 근무지를 이동하는 교통비도 모두 자부담이고, 점심값이 아까워 싼 커피로 떼우기도 합니다. 최저시급이 아니라 돌봄노동에 맞는 임금이 책정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국가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는 전문케어 인력입니다. 특히 재가요양은 1:1케어를 하면서 여러 돌발상황에 대비해야 하며,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을 케어하기 때문에 신체적, 정신적 긴장감도 항상 가지고 있는 직업입니다. 앞서 얘기한 불안정한 고용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재가요양의 시급은 대폭 인상되어야 합니다. 최근 통합돌봄케어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누구든 나이가 들어도 내가 살던 집에서 케어를 받고 생을 마감하길 바랄 것입니다. 이것이 실현가능하기 위해서라도 재가요양보호사들의 고용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고, 전문성을 더욱 키워 더 이상 ‘허드렛일 하는 사람, 호칭을 아무렇게나 불러도 되는 사람, 아무도 보지않기 때문에 성희롱을 막 해도 되는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모두 함께 이런 내용을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1)돌봄은 필수적인 요소임에도 돌봄을 왜 노동으로 인식하지 않을까요? 2)왜 돌봄노동자들을 학력이 짧다고 생각하고 무시하는 경향을 보일까요? 3)돌봄노동의 인식이 변화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4)장기요양보험료를 납부하는 당사자인 국민들은 왜 이 문제에 관심이 없을까요?
'자녀를 살해 후 자살한 끔찍한 악마들'을 위한 변명
글의 가독성을 위해 높임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난하고 무능력한 부모를 잘못 만난 탓으로 죄 없는 어린이가 희생당했다고 비난하는 당시 기사들의 '희생자'담론은 가족 집단동반자살의 원인을 부모의 죄로 사고하는 도덕적 결정론을 초월하지 못한다. 가부장에게 순진무구한 어린이를 잔인하게 죽인 죄인이라는 화살을 돌리는 것은 결국 부권적 개발논리의 허점을 묻지 못하고 가족내부의 폭력성으로 원인을 두는 순환론의 반복에 봉사한다. 희생자담론은 자살의 사회적 원인을 탈정치화한다. 이것은 이웃의 자살을 방조한 세태에 화살을 돌리는 태도와 유사한 한계를 갖는다. 암묵적으로 (가족단위의) 각자도생을 '책임감의 정당화'로써 전제하는 형식의 연민은 동정에 가까울 뿐이며 윤리성을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이정숙, 2017; p361)   "이 사건에 대해 박완서는 에세이를 남겼는데, TV뉴스로 보도된 사건에서 범인이 죽기 전에 소리 내어 한바탕 울었다는 점을 들면서 처자식까지 죽인 비정성을 간단히 극악무도하다고만 단정할 수 없는 사회의 부조리를 겨냥했다.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시 하지 말자는 생각은 모든 서구식 사고방식이 그렇듯이 듣기 좋고 합리적"이지만 우리 사회의 실상이 그런 사고방식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실정에서, 사형수의 자식으로 살아갈 아이들의 혐란한 인생을 그려보았을 때 총을 쏜 것이 그 나름의 부정(父精)이었을 거라는 견해이다. 그리고 그의 심성이 극한으로 몰린 것은 근명과 성실로는 쉽사리 벗어날 수 없는 고질적인 가난 때문임을 짚었다."(이정숙, 2017; p364) 오늘 쓸 글은 쓰기에 있어 다른 글보다 고민이 크다. 가정의 달인 5월에만 잇달아 발생한 이른바 '자녀 살해 후 자살'에 대한 현재 주요 담론에 (어찌보면) 역행하는 논지의 글을 상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 역시 진정한 의미의 가족동반자살은 적어도 아동에게 있어서는 불가능한 현상이라 생각한다. 설사 아동은 아동 나름대로 학교에서 교우관계도 안 좋고, 너무 이른 미디어 유해물을 접해 온 결과 삶이라는 것에 아동 나름의(?) 회의감이 들어 자살의 뜻을 부모와 일치했다고 하더라도, 부모의 책임은 아동의 그같은 죽음욕구가 형성된 과정을 쫒고 아동을 그같은 욕구로부터 잠시 나올 수 있도록 돕는 것에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자녀 살해 후 자살'의 일부 원인에 '가정 문제'나 '가족 갈등'이 포함된다는 사실은 그들 모두가 '경제적 원인'으로 '내몰려 자살한' 이들이 아닐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최아라, 2022). 그런 이유로 '자녀 살해 후 자살'에서 "아동에겐 아무런 선택권도 없었다-"라는 지적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족 집단동반자살'이란 표현과 그 사건에 대한 일반대중의 '온정주의적'인 시각을 금기시하는 현상은 우려스럽다고 생각한다. 늘 그렇듯 많이 부족한 글이 될 것이다. 특히 많은 '자녀 살해 후 자살'은 그 '가해부모'가 자살에 성공한 경우가 많아 그들의 입장을 추론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객관적'으로 표시되는 여러 지표들이 있겠지만, '객관적' 지표들은 그들의 '주관적' 세계를 보여주는데 한계가 있다. 이 글은 한 줄기로 매끄럽게 주제를 논하기보단 단편적인 여러 목차로 이 글이 담고있는 어떤 우려를 최대한 설명해보고자 했다. 필자의 어떤 글보다도 비판적으로 읽어주시길 바란다.   -목차 1. "아동을 부모의 소유물로 보지 말라"는 명령    1-1.  '자녀의 성공'은 어떤 경로를 통해 상상되는가? 2. "내가 죽으면 우리 자녀는 어디로 가나요?" 3.  '실패에 대한 책임'과 '질타의 소비'를 통한 '성공신화'에의 굳건한 봉사    4. 맺으며   1. "아동을 부모의 소유물로 보지 말라"는 명령 이 명령의 내용은 얼핏 보기에 심플하고, 또 너무도 당연하다. 특히 이같은 명령은 "내 자식 훈육을 위해 내가 몇 대 좀 때리겠다는데 왜 말려!"로 대표되는 체벌적 훈육을 문제 삼을 때 핵심이 되는 명령이다. 이같은 체벌은 아동의 '신체, 정신'적 안녕을 가질 권리를 침해하기에 근절될 필요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같은 체벌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아동에 대한 '신체, 정신'적 안녕을 침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대한민국으로 대표되는 '입시 지옥'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미 한참 전인 2009년에 처음 찍어낸 엄기호의 [아무도 남을 돌보지마라]에는 "항상 자녀의 주위를 맴돌며 보살핀다고 해서 '헬리콥터 맘'이라 불리는 중산층 엄마들은 아이를 피트니스 센터에 보내고, [r] 발음을 잘하기 위해 혀 밑을 자르고, 일찍이 성형수술을 시키는 등 아이의 신체 자본 역시 관리한다."(엄기호, 2009; p60)라는 지적이 있었다. 혀 밑을 자르는 사례는 차마 믿을 수 없지만, 그 맥락에 대해서는 모두가 믿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모든 대한민국 부모가 아동을 고문하길 좋아하는 사디스트는 아닐 테고, 부모 역시 이러는 '이유'가 있을 터. 그것은 분명 신자유주의적 경쟁사회로 대표되는, 무한경쟁사회에서 자기 자식이 생존해낼 수 있도록 부모 나름의 '원조'라고 생각된다. 자녀가 성장해 사회에서 성공하느냐 마느냐, 아니 비록 '성공'이 아니더라도 '생존'할 수 있느냐 아니냐의 '책임'이 온전히 한 '가족 단위'에 전가된 무한경쟁사회에서 부모는 자녀의 '삶(놀기, 더 먹기 등)'을 일정 기간 동안 자신의 '소유물'에 둘 필요를 느낄 수밖에 없다. "자식새끼를 '사람되게'하는 책임"이 부모에게 전가된 우리 사회에서 자녀의 실패는 곧 부모의 실패이게 된다. 정리하자면 A)'자기 자녀'가 우리사회에서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생존하기 위해서)는 B)부모의 지원(강제)이 필요한데, C)그 필요한 부모의 지원이 불가능하거나 극히 미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빈곤, 가난, 차별, 계층 억압) D)'부모의 실패'가 곧 '자녀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바, E)이런 상황에서 "자녀를 부모와 독립된 인격체로 보라!"는 명령이 현실적일 수 없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부모의 세계에서 자녀를 자신과 독립된 (운명적)인격체로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자녀를 두고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곧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을 유기하는 것에 다를바 아니다. 적어도 '그들의 세계'에서는 그러하다.  학교폭력이 만연하고, 강남역 살인사건에서부터 부산의 돌려차기남까지 끈질기게 이어지는 여성혐오, 노동자의 끼임사고와 그럼에도 그치지 않는 산업재해, 그 시정에 대한 비웃음, 학교폭력 등. 이같은 현실 앞에서 "자녀를 그러한 삶에 홀로 노출시키는 것과 데려감으로써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그들'의 입장에서 '부모된 도리'는 무엇일까? 1-1. '자녀의 성공'은 어떤 경로를 통해 상상되는가? 그런데 부모가 피치못해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면서까지 바라는 '자녀의 성공'이란 무엇인가? 아니, 애초에 부모는 어떤 경로를 통해 '자녀의 성공'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 상상의 근거나 재료는 누구에 의해 제공되는가? 이렇게 질문을 펼쳐놓았으나 필자는 대답할 수 없다. 얼핏 신자유주의를 욕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싶지만, 신자유주의가 엄습하지 않았던 전근대 사회에서조차 '횟초리'로 표상되는, 자녀의 '인간됨'을 목표로 하는 훈육은 있어오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자녀의 성공'을 부모가 무엇으로 상상하고, 또 어떻게 상상했는지를 논하려면 좀 더 큰 개념을 가져와야 할 필요를 느낀다.  그러나 필자는 부족하여 그러한 논의를 이끌어낼 능력이 안 된다. 해서, 목차 1-1은 질문의 형태로 남겨두고자 한다. 다만, 현재로 한정해 얘기해보자면, 입시지옥의 대척점으로 상징되는 '대안교육' 담론을 논의로 끌어올 필요가 있지 않을까-하고 조심스레 적어본다. 예컨대 대안교육을 폄하하는 이들의 문장이나 표현을 통해 그들이 말하는 성공이란 무엇인지를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또는 대안교육에 들어선 이들이 말하는 성공이란 무엇인가?  2. "내가 죽으면 우리 자녀는 어디로 가나요?" '책임있는 부모'가 자기네 자녀를 살해하지 않고 자기들만 자살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남겨진(버려진) 자녀는 어디로 가는가? 통상 부모를 잃은 미성년 자녀는 '위탁' 또는 '입양'의 기로에 놓인다.  아동의 친척이 남겨진 아동을 맡아 키우는 걸 상상할 수도 있겠으나, 그러한 해법은 우선 여전히 문제를 '가족'의 영역에 남겨두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친척은 이미 아동과 최소 3촌(寸) 사이인지라 거리감이 있으며, 친척이 자기네 자녀를 갖고 있는가는 논외로 치더라도 '빈곤한 부모'의 친척은 높은 확률로 1) 역시 빈곤하거나, 2) 빈곤에 허덕였던 부모를 내버려두었거나, 3) 도움을 요청할 수 없을 정도로 (물적, 심리적) 거리가 긴 친척일 것이다. 이들에게 자녀가 위탁된들 '그들' 부모로서는 자녀를 불행의 구렁텅이에 버려두는 것은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필자가 알기로는 친척에게 남겨진 아동을 위탁해야 할 법적인 의무조차 없다.  "'가정위탁보호제도'는 원가정의 역할을 대신할 대리보호가정에 요보호 아동의 건강한 발달과 성장을 위임하는 공적 계약이며, 이를 가정외보호(out-of-homecare)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가정외보호 형태는 아동양육시설, 아동공동생활가정(그룹홈), 가정위탁으로 나뉜다."(박혜지 외, 2020; p66)  "가정위탁은 크게 아동과 혈연관계가 없는 일반가정위탁, 조부모가 양육하는 대리양육가정위탁, 조부모를 제외한 8촌 이내의 혈족이 돌보는 친인척가정위탁, 2세 이하 또는 학대 피해나 경계선 지능 아동 등 전문적인 보살핌이 필요한 아동을 돌보는 전문가정위탁, 긴급보호조치가 필요한 아동을 돌보는 일시가정위탁보호로 나뉜다."(https://www.newspim.com/news/v...) "가정위탁은 소규모 가정 내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단체생활을 하는 시설위탁보다 가족과 같은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복지부의 아동보호 기본방향도 시설보호보다는 가정위탁 등 가정보호 조치가 원칙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여전히 시설보호가 압도적이다. ... 가정위탁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선 위탁가정 확대가 먼저 이뤄져야 하지만 위탁가정에 대한 지원이 부족해 모집 자체가 쉽지 않다. ... 보호아동을 24시간 내내 돌봐야 하는 위탁가정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 육아비용은 더 불어날 수밖에 없다."(https://www.newspim.com/news/v...) 가정위탁이 그렇다면 시설보호는 어떠한가? 시설 안에서의 경험은 어느 정도 운에 맡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아동의 심리적 고통은 별개로 치더라도 말이다. 중요한 건 시설에서 아동이 나와야 하는 순간, 즉 그들이 '보호종료아동'이 되는 순간에 있다. 비록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자산형성을 장려하는 중앙정부 차원의 제도인 '디딤씨앗통장'이 있지만, "후원자의 후원금에 일방적으로 의존하여 운영되는 한계가 존재한다."(김규리 외, 2021; p29)  경제적 자립을 넘어 "자립준비청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잇따라 발생한 가운데 ... 심리적 자립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https://m.khan.co.kr/national/...)는 지적은 여전히 심리적으로도 많은 지원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읽다보면 느껴지겠지만 목차2의 글은 필자가 논문이나 인터넷 뉴스를 '훑어보아' 정리한 자료로서, 그 내용의 정확성 등을 의심할 여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내용을 훑은 이가 필자가 아닌 '자살로 내몰린 부모'라면, 그 내용이 불안정하거니와 내용의 분위기도 결코 긍정적이지 못하다. (그렇다고 공공이 대놓고 "안심하고 자녀분을 남기고 자살하세요! 남겨진 자녀는 우리가 이러이러한 과정을 통해 안전하고 행복하게 키워드리겠습니다!"라고 광고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자살을 고민 중인 부모가 공공기관에 전화로 남겨진 자신의 자녀가 어떻게 될지 문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살을 국가의 실패로 바라보는 현상황에서 그들은 통치 권력에 포섭되고 싶지 않을 거니까.  즉, 부모에게 있어 남겨진 자녀가 가게 될 어떤 곳도 희망적인 곳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는 곧 부모에게 있어 자녀의 행복한 삶을 상상할 근거가 부재하다는 것이고, 차라리 '지옥'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걱정되는 우려의 근거들만 잔뜩임을 가리킨다.  2023년 4월 12일 고영인, 인재근 의원과 세이브더칠드런 등이 공동주최한 "'개인의 비극' 너머 대안을 묻다" 국제 심포지엄에서 발제자들은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은 남은 자녀가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회안전망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보았"다(https://www.sc.or.kr/news/stor...)라고 말하는 점은 이런 맥락에서 주목해야 한다. 3.  '실패에 대한 책임'과 '질타의 소비'를 통한 '성공신화'에의 굳건한 봉사 '자녀 살해 후 자살'이란 용어는 '가족동반자살'이라는 용어가 '아동 살해 가해자'인 부모를 향해 "얼마나 힘들었으면-"하고 '온정주의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막고자 제안된 용어다. 위 국제 심포지엄 참가자들 중 일부는 "온정주의와 연결되지 않도록 자녀 살해 후 생존(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주면 좋겠다."(https://www.womennews.co.kr/ne...)고 의견을 냈다고 한다. '처벌'이란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을 가리킨다. 처벌이 존재함을 공포하는 것으로 다른 이들이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는 경고의 기능도 겸한다.  상습적 아동학대나 음주, 방임, 또는 가족갈등 등을 원인으로 하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이 아닌 경제적 빈곤 등을 원인으로 하는 자녀 살해 후 자살에서 '잘못'은 곧 '경제적 실패'이다. (필자는 앞의 요인들도 결코 경제적 어려움과 연관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건 생존의 과정에서의 역기능이 아닐까?) 이같은 '경제적 실패'가 '사건'의 형태로 사회에 드러나면 사회구성원이 공유하고(기대고) 있는 '체제'에 의문이 가해진다. "과연 지금의 체제는 잘 작동하고 있는가?" 이 의문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잘못'을 '개인의 잘못'으로 돌려야 한다. 이같은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담론'이라면, 담론의 주조자는 언론이라 할 수 있다.  언론, 특히 신문은 기사의 작성에 있어 작성자의 의도가 개입된다. 작성자의 의도를 반영한 언어로 기사가 작성되고, 그 기사가 대중 사이에 공유되며, 특정 사안에 대한 대중적 차원의 담론이 형성된다. 성소수자 집회를 다루는 기사에서 작성자의 의도로 '에이즈의 확산!'이라던가 하는 언어가 강조되거나 장애인 탈시설 시위를 두고 '일반시민을 볼모로...'와 같은 언어가 대표적 예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의 언론은 '가족동반자살'이라는 언어를 지양하고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언어를 지향하는 것으로 '가해자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자 하는 건 아닐까? 필자는 이 점이 우려스럽다.  이렇게 체제의 결함 또는 모순에 의해 발생한 사건에서 가해자를 개인으로 한정 지어 그 개인에게 대중이 질타하는 것을 '성숙한 시민의 태도'로 생각하는 현상이 확산될수록, 체제를 의심하지 않고 싶어하는(불안을 마주하고 싶어하지 않는) 개인들이 '실패한 개인'을 향한 질타에 참여해 질타를 소비할수록, 제1가해자라 할 수 있는 체제는 손 안 쓰고 코 푸는 격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단지 이런 차원의 우려에서, 필자는 개인을 악마화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령 그 악마가 조주빈이나 조두순이라 하더라도, 필자는 악마들의 서사를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4. 맺으며 변명이지만, 3번 목차의 내용이 좀 마음에 안 든다. 사실 글을 쓰던 도중 필자의 실수로 내용이 전부 삭제되고는 되돌려지지 않아 다시 쓴 결과 내용이 논리적 정합성이나 타당성과 신뢰성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시간에 쫓겨 쓰는지라 더더욱 그런 것 같다.  개인적인 바람으로 캠페인즈에도 <임시저장> 기능이 생겼으면 한다... (실수로 ctrl+z를 누르니 글이 태반이 싹 날아가더군요...) - 필자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의 해결책 중 하나로 '가족단위의 돌봄'을 뛰어넘는 돌봄 체계의 필요를 주장하고 싶다.  '아파트'로 대표되는 이웃과 이웃 간의 단절은 당장 부모가 죽으면 남겨진 자녀를 누가 돌볼지, 아니 애초에 자녀가 남겨졌음을 누가 발견이라도 해낼지 우려하게 만든다. 비단 아동뿐 아니라 돌봄을 받는 장애인이나 노인도 이에 속한다.  돌봄의 책임이 온전히 '가족'에게 있지 않아 가족이 무너지더라도 누군가 다른 이가 아동에 대한 돌봄을 '기꺼이' 이어나갈 수 있다면, 그런 상황에서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용어가 진정으로 의미있는 언어로 작동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 돌봄의 책임이 온전히 가족에게 있다면, 그래서 부모가 자녀의 독립된 인격체를 상상하기 어렵다면, '가족동반자살'이란 용어는 결국 설득력 있는 언어가 아닐까? 어차피 자녀가 실패하든, 부모가 실패하든, '가족'이 실패하는 것은 똑같기 때문에.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중한 의견 주시면 더더욱 감사합니다. -참고 및 인용 1.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엄기호, 2009 2.[1960-70년대 '가족 집단동반자살'을 둘러싼 징후적 불안의 문제], 이정숙, 2017 3.[1950~60년대 한국사회 경제구조 변화와 가족동반자살], 정승화, ? 4.[가정위탁보호가 종료된 청소년들의 자립과정 경험에 대한 질적연구], 박혜지, 이정화, 2020 5.[아동양육시설 보호종료아동이 경험한 디딤씨앗통장의 의미에 관한 질적 사례연구], 김규리,김용회,한창근, 2021. 6.[자녀살해 후 자살에 관한 연구 : 주요일간지를 중심으로], 최아라, 2022 7. 그외 링크로 삽입한 뉴스와 글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싶어도 사용할 수 없는 한국사회
최근 30대 네이버 개발자가 극단적 선택을 한 원인이 ’직장내괴롭힘‘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는데요. ‘고인이 육아휴직 복직 후 차별을 당했다’는 내용의 유족 측 고소장이 접수돼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열심히 근로감독을 해서 법을 지키는 관행을 만들도록 유도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조직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며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법 위반이 확인되면 엄정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겨레. 23.04.20)  <OECD 국가별 출생아 100명당 육아휴직자 수> 한국은 OECD 가운데 출생률이 가장 낮은 나라로(0.78%), 그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육아휴직’입니다. 육아휴직 제도는 1987년 도입돼 올해 36년째를 맞았지만, 성적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실제 한국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2021년 기준 29.3%로 OECD 최하위권을 머물고 있는데요. 물론 한국의 육아휴직 사용자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2010년 72,967명에 불과했던 수가 2021년 17만 3,631명으로 10년 사이 약 10만명 가량 늘었습니다. 그러나 육아휴직이 ‘근로자의 보편적 권리’로 인식되기엔 아직까지 현실과의 괴리가 있는데요. 1.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없는 이유 현재 육아휴직 사용은 주로 공무원, 공공기관, 대기업 노동자에게 편중되어 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육아휴직을 사용한 노동자 대부분이 규모 300명 이상의 기업체 소속되어 있고, 4명 이하 기업에 소속된 비율은 3.2%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1년 육아휴직 사용자의 소속 기업 규모> 또 사용할 수 있다 해도 부당 해고를 겪거나 승진 불이익, 차별 등을 당할까봐 마음 편히 사용할 수 없다는 인식도 있는데요. 실제로 인권위 실태조사에 따르면, 육아휴직 사용자의 70%가 배치와 승진에서, 71%가 보상과 평가에서 차별을 받았다고 답했습니다. [실제 사례] (KBS. 23.03.28) A씨: “임신은 축하하지만 그만두는 것을 한번 생각 해봐라. 배가 불러있는 사람한테 일 시키기 불편하니까 배 부르기 전에 그만둬라.” B씨 : “배치할 만한 부서가 없다. 없는 자리를 만들어줄 수는 없다.” C씨: “임신 후기에 단축 근무를 사용한 직원은 늦게 귀한 애를 가진 거라 쓰게 한 거다.” <육아휴직 사용 불가 이유> 직장분위기나 문화 때문에 신청할 때 눈치가 보인다는 것도 문제인데요. 고용노동부의 조사에 따르면,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사용할 수 없는 직장분위기나 문화 때문’이라는 답변이 49.6%로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그 다음으로 ‘동료 및 관리자의 업무가중’이 23.3%,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서’가 9.3%, 추가인력 고용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이 7.7% 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노동 약자’에게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요. 실제로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56.8%), 5인미만(62.1%), 월 150만원 미만(55%) 근로자의 경우 절반 이상이 출산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고 답했고, 육아휴직과 돌봄휴가 역시 평균보다 더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고 합니다. (직장갑질119) 2. 제도적 문제와 실효성 현행 남녀고용평등법은 ‘육아휴직을 마친 직원에게 휴직 전과 같은 업무, 또는 같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입은 불이익이 육아휴직 때문이라는 걸 스스로 입증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워서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실제로 2021년 육아휴직 사용 후 보복인사 등으로 불이익을 받은 남양유업 피해자 사례가 밝혀져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특히 부당전보를 지시하는 상사의 녹취록 등 물적증거가 공개되었음에도 노동위원회 구제신청 및 소송에서 패소해 사회적 논란이 됐습니다. 이러한 법적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최근 윤미향 의원은 '육아휴직 복직자 부당전보' 남양유업 피해 방지법을 발의하기도 했는데요. 육아휴직 복직자에 대한 부당전보 판단근거를 확대하고, 불리한 처우의 구체적 기준을 마련해 근로자의 권리 구제를 강화하는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또 현행법은 사업주의 불리한 처우에 대한 판단기준이 모호해 권리구제기관 및 사법기관의 판단이 각각 다르고, 문언상 해석에 혼란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육아휴직 제도 사용으로 차별을 받아도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요.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육아휴직 관련 차별 경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참고 넘어감‘이라 대답한 응답자가 57.8%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사업주의 육아휴직 권리침해 관련 기소의견 송치 건> 간혹 육아휴직 사용 권리침해가 법적인 공방으로 이어진다 해도 방대한 자료를 가진 회사를 상대로 개인이 승소하긴 어렵습니다. 실제로 2020년 육아휴직 사용을 사유로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불리한 처우를 한 사업주에 대한 기소의견 송치 건수는 단 2건에 불과했습니다. 따라서 육아휴직 사용자를 보호하고 사업주를 처벌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외에도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실제로 2020년 육아휴직 부여 저조 사업장으로 의심되거나 출산, 육아휴직 중 부당해고가 의심되는 사업장으로 선정된 수는 총 364개였지만, 이 중 위반사업장으로 판정된 경우는 29개에 그쳤고, 사법처리 건수는 3건에 불과했습니다. 3. 해외 사례 1) 근로자 손해배상 및 보호방안 (육아패널티_국회입법조사처) 스웨덴의 경우, 육아휴직법 제 22조에 따라 법령을 위반한 사업주는 근로자가 입은 모든 형태의 손해나 손실, 그리고 권리 침해에 대해 보상해야 합니다. 특히 근로자가 육아휴직과 관련된 불이익 조치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경우, 불이익을 준 사실이 없거나, 있었다면 반드시 필요한 조치였음을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사업주에게 있음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일랜드도 ‘사업주의 해고조치가 육아휴직 사용에 대한 부당해고였는가’에 대한 증명 의무가 사업주에게 있는데요. 만일 해당 사안이 차별 관련 사안으로 판정되면 근로자는 고용평등법에 따라 복직은 물론 손해배상청구일 이전 6년 기간의 급여에 대해 상한액 제한 없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육아휴직 사용권 보장 (사용권보장_국회입법조사처)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경우, 최소 13주 근속한 근로자의 경우 육아휴직 신청 자격이 있습니다. 근로자는 육아휴직 시작일 최소 2주 전에 사업주에게 서면으로 미리 고지하면 되는데요. 이때 사업주의 별도 승인 없이도 자동으로 사용할 수 있어 원하는 때에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하거나 사업주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됩니다. 스웨덴의 경우도 사업주에게 최소 2개월 전에 육아휴직 시작일을 고지하면 권리를 부여받을 수 있는데요. 마찬가지로 사업주의 승인 없이 요청만으로도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으로 명문화하고 있어 근로자의 자유로운 사용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3) 남성의 육아휴직 의무화 (パパ休暇_厚生労働省) 일본의 경우, 작년 10월부터 ’산후 아빠휴가 제도‘를 시행해 남성의 육아휴직을 의무화하고 있는데요. 아이 출산 후 8주 동안, 한 번에 최대 4주 총 2회까지 사용할 수 있고,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사측은 반드시 휴직 신청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대신 노사합의를 통해 근로자가 육아휴직 중에도 근무할 수 있게 했는데요. 갑자기 중요한 회의에 참여해야 하거나 휴직자가 아니면 대응할 수 없는 업무가 생겼을 때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또 근속기간 1년 이상이라는 요건을 폐지해 정규직뿐 아니라 비정규직도 육아휴직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육아휴직과 출산휴가와 관련해 직원들의 의향을 확인하는 것을 의무화해 제도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2025년까지 남성 육아휴직 비율을 50%, 2030년에는 여성과 같은 85%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는데요. 이를 위해 지난 4월 1일부터는 1000명 이상 대기업의 경우, 매년 홈페이지에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을 공개하도록 의무화해 그동안 ’사용하기 어려운 분위기‘ 때문에 제도를 이용하지 않은 남성들까지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아이 낳고 싶은 나라가 실현되려면.. 그동안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정부에서 많은 정책을 펴왔지만, 한국은 여전히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출생률은 더 낮아지기만 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 중 하나로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싶어도 사용할 수 없는 지금의 현실을 짚어봤는데요. 제도적 문제도 물론 개선돼야겠지만, 육아휴직을 ‘기본적 권리’로 생각하지 않는 인식의 문제와 차별, 괴롭힘, 갑질, 이기주의 등 잘못된 조직문화도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러려면 한국사회의 불평등 양극화 문제, 과도한 경쟁 사회 등도 함께 해결돼야겠지만요. 그렇기 때문에 그간 성장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한국사회가 이제는 성장만큼 ‘파이 분배’와 ‘안전망 구축’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사회가 '육아휴직'을 보편적 권리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그래서 아이 낳고 싶은 나라가 될 수 있길 바라봅니다. 
왜 그녀들은 '우울증 갤러리'에 모였을까 - 인터넷을 통한 인간관계 형성의 욕구
글의 가독성을 위해 높임말을 쓰지 않고 작성합니다. 2023년 4월 16일 오후 2시경 고등학생 A양이 강남 한복판서 SNS라이브를 틀어둔 채 투신자살을 감행했다. 고인은 사망했다. 사건에 대해 많은 이들이 질타와 함께 그 배경에 주목했다. 고인의 자살 배경에 어느 특정 단체, 이른바 '신대방팸'이라는 그룹이 있다- 이들 사이에서 마약과 술, 담배, 그리고 성착취가 만연하고 있었다는 전황이 의심된다- 등. 각종의 제보들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그들이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미성년자들을 '유인'해 성착취, 이른바 '그루밍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지적이 여러 SNS 유저들로부터 제기된다. 이들 신대방팸은 '또 다른 n번방'이라는 이름으로까지 불릴 정도로 이 사건을 아는 자들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거기에 그치는 지적이 아쉽다. 필자가 보기에 이 사건의 핵심은 신대방팸의 그루밍 성폭력이 아니다. 물론 그들은 경찰의 수사를 받아야 하며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면 체포되어 마땅하다. 그러나 첫째로, 설령 저들이 '또 다른 n번방'이라 불릴 정도로 극악무도한 자들이라 한들 그들의 악마성에 대한 고발만이 향후 있을 또 다른 유사 범죄에 대한 예방책으로 작동하기는 힘들다는 점, 둘째로, 신대방팸의 피해 여성과 n번방의 피해 여성은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 셋째로, 이 사건의 본질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과제를 앞으로도 우리가 무시하거나 심지어 냉소적으로 비웃는다면 그 문제는 더할나위 없이 커져 우리 사회의 큰 문제로 길이 작동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어 오늘의 토론글을 준비했다.  -목차 1. 우울증 갤러리와 신대방팸 피해자들에 대해  2. 형성한(된) 현실의 인간관계의 실패(실망, 배신, 봉변, 폭행) 3. 삶에 대한 기대를 상실하고 있는 사람들의 발버둥 4. 맺으며 1. 우울증 갤러리와 신대방팸 피해자들에 대해 우선 가장 먼저 얘기할 점은, 이들은 n번방 피해자들처럼 어떤 속임수에 의해 범죄자와 연결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n번방 범죄자들의 경우 피해자를 협박관계에 놓기 까지의 수단은 크게 세 가지로 1) 경찰 사칭 수법, 2) 해킹 수법, 3) 알바 모집 사기 수법이다(https://femiwiki.com/w/N%EB%B2...). 각 수법의 상세한 방법은 출처를 따라 들어가면 확인할 수 있다. 세 수법의 공통점은 피해자와 범죄자 사이에 '친밀성'이 없으며 어떤 형태로든 피해자의 '약점'을 잡아 '협박' 관계를 만드려는 목적이 있다는 점이다. 피해자들은 협박을 당하기 전까지 범죄자를 알지도 못했고,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으면 싶었지 범죄자와의 관계를 결코 우호적으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신대방팸을 비롯한 이른바 '디시인사이드 : 우울증 갤러리'(이하 울갤)의 여성들은 다르다. 그들 한 명 한 명의 사정은 자세히 모르지만, 적어도 그들은 상당 수가 '자발적으로' 그 커뮤니티에 들어갔고, 그들 중 일부에게(특히 미성년자에게) 신대방팸을 비롯한 여러 남성들이 접근한 결과, 범죄가 발생했다. 이곳 '울갤'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 중 하나다. (가린 건 유저의 닉네임) 울갤에서 활동하는 모든 유저를 '울갤러'러 라고 부르며, 이들 울갤러들은 보통 특별한 방향성이 없는 글을 비주기적으로 올린다. 남자 울갤러는 '남갤러', 여자 울갤러는 '여갤러'라고 불린다. 간혹 '게이들아'라는 호칭도 있으나 이건 실제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건 아니다.   글의 내용은 실제로 자신의 우울을 호소하는 글이 있는가 하면 남자/여자 섹스파트너를 찾는 글이나 아무런 내용도 없는 글(이른바 '뻘글')을 쓰기도 하는 둥 그 글의 내용은 저마다 다르다. 글보다는 제목과는 상관 없는 '짤(이미지)'을 올리는 게시글도 있다. 특히 이 짤 형태의 게시글과 관련해 박가분은 "이러한 '증여'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과 집단적 정체성을 재확인하기도 한다"라고 했다(2013, p62; 강조는 필자). 앞에서 더 전개하겠지만 이 '존재감과 집단적 정체성의 재확인'은 오늘 토론글에서의 중요한 코드다. 울갤러들 중 고정된 닉네임을 가진 이들을 '고닉'이라 부르며 그렇지 않은 이들은 'ㅇㅇ'라는 통일된 닉네임으로 글을 쓰게 된다.  '고닉'들의 반복적인 활동은 익명성이 전제되었던 인터넷 커뮤니티 안에 완전한 익명성을 가지지 않는 '특정인'을 형성한다.  그렇다면 '고닉'과 '고닉' 간의 활동, 예컨대 단순한 대화부터 오프라인 만남 약속(번개)까지의 활동은 곧 '특정인'과 '특정인'간의 행동이 되며, 이는 그 장소만 인터넷으로 할 뿐 실제 현실사회에서의 인간상호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된다. 실제로 울갤에서는 특정 고닉을 지목하거나 호명하는 내용의 글들을 심심치 않게, 아니 사실 굉장히 자주 확인할 수 있다. 위 이미지 '5937413'번 글이 그 예시다.  그런데 그 많고 많은 익명 울갤러들 사이에서 '고닉'으로 포착되고 호명되기 위해서는 그 고닉 당사자가 오랜 기간 또는 자주 울갤에서 활동해야만 한다. 다른 이로부터 00대학교 00학과 김철수로 호명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김철수라는 인물이 00대학교 00학과에 자주 등장 및 교류 또는 최소한 여러 번의 노출이 되어야 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울갤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자주 고닉을 단 채 긴 기간에 걸쳐 다른 고닉들과 교류하며 활동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엔 이번 신대방팸 피해자들도 포함된다.  윗 글이 전부 사실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 형태를 봐야 한다. "데폭(데이트 폭력)", "강제촬영", "사귀다가", "임신'시켜놓고'", "동거", "바람피고" 등이 필자가 지목하는 키워드다.  즉, 울갤에서 고닉들은 단지 짤방이나 뻘글을 쓰는 활동을 넘어 다른 고닉들과 실제 현실사회에서의 관계로 연장해 진입한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이 신대방팸 피해자들과 n번방 피해자들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인데, 전자의 피해자들은 범죄자에게 '약점' 또는 '덜미'를 잡혀 '협박'을 당해 성착취를 당한 게 아니라 그들과의 '관계'에서 '실패', '봉변', '폭행'을 당했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울갤의 여성 피해자들은 다른 고닉과의 관계를 현실관계로까지 끌어들이고자 하였으며, 그 시도로 형성된 현실관계에서 폭행이나 착취를 당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울갤 여성 피해자들의 피해 형태나 다른 일반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데이트 폭력과 같은 피해 형태나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전자는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라는 게 사실상 유일한 차이다. 이름부터가 '우울증 갤러리' 아닌가. 바로 이 점에 주목해 몇몇 이들은 이번 범죄를 '그루밍 성폭력'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필자는 그들 견해에 대해 상당 부분 참고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 전체에 대해 동의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그루밍 성폭력의 개념을 먼저 빠르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2. 형성한(된) 현실의 인간관계의 실패(실망, 배신, 봉변, 폭행)  "'그루밍'에는 의사소통과 사회화 과정이 포함된다. 이것은 범죄자가 성학대를 목적으로 피해자를 준비시키기 위해 신뢰를 얻으려는 의도로, 아동 또는 청소년과 상호작용하고 관심사와 취미를 공유하고 이들에게 정신적 지지와 공감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Davidson and Martellozzo, 2008 ; 출처:엘레나 마르텔로조, 2019, p146)  "양형자문단(2007)에 따르면, 성적 그루밍은 범죄자가 성학대를 목적으로 피해 아동을 준비시키기 위해 상호작용하는 동안의 사회화 과정으로 정의할 수 있는 심각한 약탈적 범죄이다."(2003년 <성범죄법> ; 출처:엘레나 마르텔로조, 2019, p147) - 그러니까, 그루밍 성폭력이란 범죄자가 피해자를 향해 성학대 또는 성착취를 위해 피해자를 "준비시키고" "신뢰를 얻고자" 노력하는 일련의 노력을 통한 성폭력이다. 그루밍 성폭력 피해자(특히 아동)들이 범죄자의 범죄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거나, 인정함에도 떨어지지 않고 그를 보호하려는 행동을 보이는 건 그의 기획으로 형성된 신뢰관계를 쉽게 떨쳐내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그루밍 성폭력은 비단 온라인에서 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웬디 C. 오티즈(2019)의 [기억의 발굴 (Excavation)]은 실제 오프라인 그루밍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기억을 회고해 출판한 책이다.  그루밍 성폭력의 개념은 상당 부분 울갤에서 일어나는 전반의 성폭력에 적용할 수 있다. 예컨대 '신뢰를 얻으려는 의도'와 '상호작용' 과정은 일단 여성으로 '인증'된 여갤러와 댓글을 통해 끊임없이 교류하는 과정이 그것이라 할 수 있겠다. 여갤러들과 교류하는 모든 남갤러들이 그루밍의 의도를 가지고 있느냐면 그건 아닐 수 있겠지만 이 사건에서 그들의 '의도성'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필자가 보기엔 그렇다.  여갤러로부터 성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의도가 있었든 없었든, 있다손치더라도 그것이 의식적이었든 무의식적이었든, 심지어 (문제가 되는 발언일 수도 있지만) 여갤러 본인도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일종의 교환가치로 활용했다손치더라도, 그 본질은 인간관계의 실패(실망, 배신, 봉변, 폭행)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의도성의 여부는 형벌의 영역에서는 중요하다. 하지만 이 현상 자체에서는 크게 중요하다고 보지 않는 게 필자의 입장이다).  그러니까,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건, 1. 울갤의 여(남)갤러들은 울갤에서의 관계를 통해 현실의 인간관계의 충족을 원했고, 2. 활동 끝에 현실의 인간관계를 형성했으나, 3. 형성한/된 현실의 인간관계가 부정적 결말로 귀결되어 각종의 폭행이나 범죄의 피해자(가해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위 의견은 절대로 피해의 책임성 일부를 여갤러들에게 넘기고자 하는 게 아니다. 당연히 아니다. 단지 울갤러들에게는(또한 모든 우울한 sns이용자들, ex) 우울러, 자해러) 울갤을 비롯한 sns를 통한 현실의 인간관계 형성 욕구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주장하고 싶을 뿐이다.  3. 삶에 대한 기대를 상실하고 있는 사람들의 발버둥 그렇다면 왜 이들은 현실이 아닌 sns를 통해 현실의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싶어할까? 뒤집어 말하면, 왜 이들은 현실을 통해 현실의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싶지 않아 할까?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삶에 대한 기대를 상실하고 있는 사람들'이란 개념을 주장해보고 싶다.  이때 '삶에 대한 기대'란 가난이나 폭행과 같은 사회위험으로부터 벗어날 기대 내지 억만장자가 되는 미래의 어떤 상태나 목표를 뜻하는 게 아니다. 내가 가난하더라도, 내가 다른 이로부터 폭행을 당하더라도 상관 없으니 '굳이' 살아내고 싶은 힘을 제공하는 어떤 동력(動力)에 가까운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차라리 '삶에 대한 의지' 또는 '삶의 의지력' 정도로 표현해도 좋겠으나 그러자면 자칫 '버텨내는 힘' 만으로 해석될 우려가 있다. 하지만 필자는 그 힘에 '삶에 대한 세계관'이라는 개념을 섞어서 '삶에 대한 기대'라는 개념을 주장하고자 한다. 그래야만 왜 그들이 현실의 인간관계로까지 연장하고 싶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필자가 볼 때 울갤러를 포함한 많은 우울한 sns이용자들(이하 우울러들)은, 마치 정치적 성향이 극단적으로 다른 두 사람은 서로가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할 수 있듯이, 현실에서 삶에 대한 기대(동력의 의미로써, 또는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내는 데 힘듦을 경험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인간관계를 끊자니 사람은 누구나 관계의 욕구를 가지지 않는가? 그래서 울갤과 같이 '삶에 대한 세계관'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리라 기대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발적으로' 진입해 어떻게든 그 안으로부터 현실의 인간관계를 형성하고자 노력하고, 그것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앞서 말한 '존재와 집단적 정체성의 재확인'의 필요도 여기에 적용하면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가 경험한 바, 트위터와 같은 SNS에 자신의 자해 사진을 전시하는 많은 '자해러'들은 자신의 자해 사진을 비주기적으로나마 전시한다. 필자는 그 전시의 이유가 자신이 여전히 자해를 한다는 그 사실을 증명하려는 어떤 시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증명의 필요는 자신과 비슷한 '삶에 대한 세계관'을 가진 자들과의 소속감을 잃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 아닐까. "나는 아직 우울하다"- "나는 아직 당신들과 같은 세상에 있다."- "그러니 나를 버리지 말아달라". 그런 게 아닐까. - 다시 돌아와 범위를 더 크게 확대해보자면, 사실 모든 사람들의 sns 등 인터넷을 통한 인간관계 형성의 욕구는 과거와는 달리 자신의 선호에 딱 들어맞는 이를 인터넷에서는 정보를 탐색 및 검토하고 사전에 확인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게 아닐까 한다. 무릇 여기 <캠페인즈>도 상호 채팅의 기능이 없을 뿐이지 '토론'을 통한 인간관계의 체험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아닌가? 단지 울갤은 '삶에 대한 기대를 상실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일 뿐.  4. 맺으며 이제 본 토론글이 나름의 의미를 지닐 수 있도록 처음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필자는 이 글의 처음에 "이 사건의 본질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과제를 앞으로도 우리가 무시하거나 심지어 냉소적으로 비웃는다면 그 문제는 더할나위 없이 커져 우리 사회의 큰 문제로 길이 작동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본 글의 내용과 함께 해당 우려를 목차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A) 인터넷을 통한 '알맞춤' 인간관계 형성의 욕구는 역으로 현실로부터의 인간관계 형성에 문제를 줄 수 있다. B) 인터넷을 통한 '알맞춤' 인간관계 형성만의 추구는 현실에 대한 왜곡된, 또는 극단적 세계관을 고정시킬 수 있다.  C) 인터넷을 통한 '알맞춤' 인간관계 형성 추구'조차의' 실패는 개인의 인간관계 형성의 완전실패로 해석될 여지가 있으며, 이는 자살위험을 극대화할 수 있다.  D) 인터넷을 통한 '알맞춤' 인간관계 형성의 수행에서 특히 여성은 범죄에 보다 더 취약하다.  E) 인터넷을 통한 '알맞춤' 인간관계 형성 시도의 결과로 발생한 피해의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되기 쉽다.  이상으로 목차를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인터넷을 통한 알맞춤 인간관계 형성의 시도를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천정환(2014)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는 비교적 흔한 '실연자살'은 조선시대에는 실연자살이라는 언어로 표상된 흔적을 찾기 힘들며 '연애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19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실연자살자'들이 사회 문제의 원인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지금 책이 없어서 page까지는 기억이...) 이처럼 4월 16일의 A양이나 다른 인터넷 우울러들의 자살사건도 비슷한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즉, 인터넷을 통한 알맞춤 인간관계 형성의 시도를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탄생한 자연스런 새로운 사회적 문제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토론글의 카테고리를 '새로운 이슈 제안'이 아닌 '돌봄, 복지 사각지대 해소'로 붙인 이유는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다. 즉, 인간관계 형성의 시도와 '돌봄'을 같은 맥락의 문제로 보는 것이다. 왜냐면 인터넷을 통한 '알맞춤' 인간관계 형성의 욕구는 일단 현실로부터의 인간관계 형성의 실패를 전제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곳에 돌봄 제도의 역할이 있는 건 아닐까? - 필자의 능력이 부족해 글이 매끄럽지 못하다.  이 글은 다음에 있을 현대사회와 인간관계 형성의 문제, 또는 소속감의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한 발판 작업이다. 다음 글에서는 실제 우리 사회에 어떤 인간관계 형성의 수단들이 제도적, 비제도적으로 존재하는지를 찾아보고 만약 그곳에 문제가 있다면 문제해결을 지향하는 실천적 태도로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토론해보고 싶다. - 부족한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중한 의견 주시면 더더욱 감사드립니다.  -출처 1. 박가분(2013), [일간베스트의 사상] 2. 엘레나 마르텔로조(2019), [온라인 그루밍 성범죄] 3. 천전환(2014), [자살론]
고향사랑기부제, 지역문제 해결의 첫 시작이 될 수 있을까요?
설날 속 '10만원 내고, 13만원 받아가세요' 설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이나 그 외 친척을 만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죠. 저 역시도 기차를 타고 순천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순천역에서 내리자 놀라운 풍경을 마주했습니다. “10만원 내고, 13만원 받아가세요"라는 현수막을 든 사람들이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고향사랑기부금’이라는 내용이 적힌 팜플렛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고향에 기부를 하면 세액공제를 받고 답례품까지 받을 수 있기에 오히려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기에 ‘우리들의 고향에 기부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찾아보니 뉴스에서 설날을 맞아 귀향객들에게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죠. 얼마 전에는 손흥민, 나영석 등 유명한 사람들이 고향사랑기부금으로 고향에 기부했다는 뉴스가 있기도 했었죠.(손흥민·BTS도 동참한 ‘고향사랑기부’…나도 귀성길에? - 중앙일보) 고향사랑기부제이란 정확히 무엇이고, 왜 실시하게 되었을까요? 고향사랑기부제란 무엇일까요? 고향사랑기부제란 ‘개인이 고향에 기부하고 지자체는 이를 모아서 주민복리에 사용하고 지자체는 지역의 특산품을 답례품으로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여기서 고향이란 꼭 내가 태어난 곳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명목상의 의미로 기부자 본인의 주민등록등본 상 거주지를 제외한 지역자치단체 모두가 해당됩니다. 점차 지방소멸의 위기가 심해지고, 지방의 재정자립도가 떨어지는 상황 속에서 관계인구(지역에 살지 않더라도 지역에 관계를 가지고 참여하는 인구)를 통해 지방정부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올해 도입되었습니다. 즉,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역(고향)에 기부를 함으로써 지역에 재원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계를 가지게 되는 효과가 있는 거죠. 고향사랑기부제로 지역에 기부를 할 경우 10만원까지는 100% 새액공제를 받고,기부를 받은 지역에서는 기부금액의 30% 에 해당하는 답례품을 지급하기에 10만원을 내고 13만원을 받아가라고 이야기하는 거죠(10만원 새액공제 + 3만원 답례품). 실제로 일본에서 2008년에 동일한 제도를 도입했고, 현재는 효과적인 방안으로 자리잡아 정부에서의 재원지원보다 더 큰 세금을 벌어들인 지역도 있습니다. 일본에서 고향사랑기부제를 실시한 첫 해에는 81억엔(약 820억 원)만이 모였지만 점차 기부금의 금액이 늘어나며 8320억엔(약 8조원)이 현재는 고향사랑기부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어떻게 제도를 활성화시켰을까요? 국내에서도 일본의 성공 사례를 보며 지방소멸과 지방 재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현재 고향사랑기부제로 기부를 했을 때 10만원까지는 100% 세액공제가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경우도 많고, 작년 9월에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약 80%의 사람들이 제도에 대해 모르고 있다고 답변하기도 했죠. 그렇다면 일본은 어떻게 이 제도를 정착시킬 수 있었을까요? 우선, 다양한 종류의 답례품이 있습니다. 총 40만개가 넘는 답례품이 준비되고 있기에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답례품을 선택해 지역에 기부’를 할 수 있습니다. 각자의 지역별로 특산품을 강조하면서 우리 지역에 기부를 하면 어떤 혜택을 얻는지를 적극적으로 알리기 때문에 시민들은 내가 마치 쇼핑하듯이 기부를 할 지역을 선택하게 되죠. 놀랍게도 단순한 물건 이외에도 템플스테이와 같은 지역의 관광상품도 혜택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민간 플랫폼을 통해 지자체의 종류와 역할을 한 눈에 보기 쉽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고향사랑기부제는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부이기에 내가 어디에 기부를 했을 때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어 기부를 했을 때의 효능감을 알려줄뿐만 아니라 기부의 편의성까지 담보할 수 있었습니다. 지역에 대한 소개부터 다양한 기부 금액별 조합방식까지 알려주면서 시민들은 편하게 기부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렇기에 우리나라에서도 ‘고향사랑e음'이라는 플랫폼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습니다. 어떻게보면 성공한 사례를 보며 비슷하게 시도하고 있다고 봅니다. 아직 제도의 성공에 대해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저는 제도가 가지고 있는 시장성은 점점 더 커지겠다 생각합니다. 고향사랑기부제, 이 시장은 점점 더 커지리라 생각합니다. 한번 상상해봅시다. 아이유가 티비에 나와서 고흥의 유자를 칭찬하면서 고흥에 기부를 하면 겨울마다 유자차를 보내준다고 하면 어떨까요? BTS가 이천의 쌀이 맛있다고 하면서 이천에 기부를 하면 그 누구보다 빠르게 가장 싱싱한 쌀을 받아볼 수 있다고 SNS에 올리면 어떨까요? 인구가 줄어들면서 지역소멸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의 관심과 충분한 재원이 필요합니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지역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첫 번째 시도가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불과 몇 시간 전에 놀라운 뉴스 <'이런 실수…‘고향사랑기부금’ 낸 손흥민, 세액공제 못 받나'.>를 봤습니다. 2023년부터 새액공제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지만 곧 올해부터 새액공제를 할 수 있도록 진행한다고 후속 뉴스가 발표되었죠.... 여러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의미있는 발걸음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