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는 과도한 PC?] 글의 댓글에 달리는 여러 선생님들의 의견을 읽어보면 PC와 미디어 상업예술의 관계가 한층 복잡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이미 여러곳에서 이번 <인어공주>의 영화적 요소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PC에 굉장히 친화적이고 지지하는 트위터 이용자분들 중 몇몇도 배우가 아닌 감독을 비판하기도 하더군요.
저 역시 작품에 PC요소를 입힐 때 무엇보다 감독 및 연출진과 배우의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영화는 아니지만,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2>가 큰실패를 겪은 이유 역시 연출의 실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라오어2와 라오어3으로 파트를 나눠서 플레이어의 감정이입을 제대로 관리했으면 어땠을지...)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인어공주> 영화가 ‘아쉬웠다’라던가, ‘흥행에 실패했다’라고 말할 자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같은 자유를 누리면서 동시에 책임을 상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상 콘텐츠로서 <인어공주>는 분명 원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향후 어떤 인종, 실력의 배우가 연기하든 ‘원작’으로서의 <인어공주>는 영원히 보존되면 보존되지 다른 버전의 <인어공주>에 의해 삭제당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원작을 ‘훼손’하는 게 애초에 아닌 셈입니다. 단지 ‘원작의 다른 버전’을 만들었을 뿐입니다.
이에 대해 ‘아이들이 원작을 찾는다구요.’라는 글을 보았습니다만, 바로 그때, ‘아이들’과 ‘우리(성인)’를 분리할 단계가 된 성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원작으로서의 <인어공주>가 분명히 있고, 그럼에도 이번에 ‘다른’ <인어공주>를 디즈니에서 왜 제작해 상영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게 성인들의 역할이 아닐까요? 이번 디즈니의 <인어공주>는 이런 맥락에서 ‘어두운 피부’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그러니 배우의 실력이나 감독의 연출을 아쉬워할 때 ‘흑인 배우’를 끌어들였다는 부분을 탓하는 건 애초 영화의 제작 목표를 오인하거나 부인한 결과로밖에 안 비출 것 같아 우려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만약 백인 금발 남성이 홍길동을 연기하든, 중국인이 슈퍼맨을 연기하든, 이미 인터넷이 널리 퍼진 현대 사회에서 누구도 ‘원작’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원작’을 잊지 않을 것이고, 누구도 원작을 훼손했다고 주장하기는 곤란합니다. 원작은 원작대로 영원히 영광의 자리에 남을 테니까요. 그 어느 ‘아류작’도 ‘원작’을 존경했으면 존경했지 삭제시키고자 제작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흑인이 캐스팅된 그것 하나만으로 박수를 치실 필요도, 영화의 모든 라인과 연출이 망가진 이유를 흑인 배우 캐스팅에 전부 갖다 붙일 필요도 없습니다. 애초에 이 <다른 버전>의 영화는 원작의 가치를 잘 알기 때문에 <다른> 버전을 제작해보았을 뿐이니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무조건 박수를 치실 필요가 없고, ‘다르다’는 이유로 영화의 여러 흠을 비판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글이 길어지는데, 이번 <다른 인어공주>를 비판할 때 그 기준을 <원작 인어공주>로 삼으시는 것 자체가 영화의 기획 의도와는 어긋나는 논지의 비판입니다. 못 만들었다면 그냥 배우의 실력과 감독 및 연출진의 실력 탓입니다. 애초 '원작의 다른 버전'을 기획했으니 '원작과는 다른 인종'이라서-는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영화의 기획 의도를 오인하지 않는다면요).
흑인 인권을 옹호하는 글에 항상 달리는 댓글이 있습니다. 정작 흑인들도 한국인들을 향한 혐오를 남발한다는 게 그 내용이죠. 실제로 많은 뉴스에서 이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코로나19 이후 아시안 혐오가 증가하고 있는 건 분명 문제입니다.
하지만 ‘흑인도 아시안을 혐오하니 우리도 흑인 존중할 이유가 없다-’라는 결론은 지나치게 섣부른 선택이거니와, 결국은 백인만이 승리하는 논리로 빠지게 됩니다.
기득권 바깥에 사는 사람들 간의 갈등은 점차 심해지는 와중에 세계화는 더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의 가속과 함께 어쩌면 우리는 보다 이른 시기 내 이웃으로 흑인이나 동남아인들을 두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상호존중의 담론을 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담론의 형성에는 무엇보다 미디어의 힘이 큽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원작의 다른 버전>들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훗날 아이들이 ‘다름에 대한 존중과 거부감 사이를 다루는 방법’을 익히게 됩니다. 그것을 다루지 못했을 때 피해는 고스란히 미래 세대(아이들)가 봅니다. 이런 맥락에서 PC와 미디어 상업예술의 진흥은 미래세대의 '돌봄'과도 연결된 문제입니다.
그러니 ‘기업’의 책임은 미래세대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디금부터라도 ‘다름’에 대한 존중의 담론을 형성해나가는 것에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미디어 '상업'예술에서 '상업'의 측면, 즉 소비자가 돈을 내고 소비하는 측면을 감안해 이번 주제와 연결하자면, 우리는 '보다 올바르고, 따라서 더 안전한 미래'를 만드려는 기업에 투자해야 합니다. 상업예술의 '상업'에는 이런 측면도 있으리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을 애매한 글이지만 이것 하나만 기억해주세요. <원작의 다른 버전>은 <원작>을 해칠 의도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해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애초 기획 의도를 왜곡해 퍼뜨리는 담론의 탓일 겁니다.
코멘트
5인어공주를 두고 다양한 논의들이 나오고 있네요. 읽으면서 매번 배우게 됩니다. 미디어스에 실린 윤광은 문화평론가의 글(링크)을 이 토론과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원작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공감되네요. 사실 저도 인어공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할까 고민이 되었었는데, 글을 읽고 좀 더 정리가 되는 것 같네요.
내용에 공감합니다. 다크나이트도 리부트하고 여러 영화가 만화를 원작하으로 하지만 다른 버전을 만들어냈습니다. 상업영화이기에 비판받을 지점이 있기는 하지만, 다양한 시도를 무작정 비판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인상적인 접근입니다. 특히 본인이 어떤 의견을 지녔는지와 상관없이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평과 작품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을 명확히 분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내용에 대한 댓글은 아니지만.. 다른 토론글, 그 토론글의 댓글들에 이어 새로운 토론글을 작성해 주시니 따라가며 읽으니 이해가 더 풍성해지는 것 같습니다. 공론장에서의 토론의 좋은 사례인 것 같습니다. 항상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