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을 넘어, 사회에 대한 객관적 지식은 가능한가?
사회에 관한 객관적 지식을 다루기 위해서는 '사실'만을 다뤄야 하고 가치를 담고 있는 의견은 개인의 자유의지 영역에 둬야 한다며, '주관적인 가치로부터 분리된 객관적 사실의 추구를 통해 객관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에 만만치 않게 지식의 ‘경험적 사실이나 사실판단이 이론이나 가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관점에 따라 사회와 관련해서는 객관성을 말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렇다면 사회에 대한 지식주장, 더 나아가 사회과학에서는 어떻게 객관성을 확보하여 '옳음'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을 넘어, 사회에 대한 객관적 지식은 어떻게 가능할지 (사회)과학철학/방법론의 관점에서 좀더 깊이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이는 의견이 아닌 사실에 대한 서술만이 팩트를 체크 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좁고 엄격하게 말하는 팩테체크의 관점보다는, 의견의 경우에는 의견에 전제 되어 있는 사실들의 '맥락'을 파악하여 '팩트'가 아닌 '트루스'를 종합적으로, 맥락적으로 체크를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팩트체커들의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 글은 이기홍의 2015년 논문 [사회과학에서 가치와 객관성]의 논의를 요약 및 재정리하여 쓴 것으로, 2021년 12월 6일에 다른 곳에 업로드했던 글의 상당 부분을 재업로드 한 것입니다. 더불어 이 글의 모든 인용은 해당 논문에서의 인용입니다. I. 팩트지상주의의 근원, 가치자유과학과학과 가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객관적 사실(정확하게는 ‘경험’)과 주관적 믿음을 엄격하게 구별하는 경험론의 전통”(퍼트남)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견해는 '경험(적 사실)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이기 때문에 경험적으로 진위를 검증할 수 있는 과학적 지식의 기초이지만, 가치판단은 주관적이이기 때문에 편향이나 오류를 낳고 검증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이 견해에서 가치 주장은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과학 지식의 객관성을 훼손하고 편향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것은 당신의 주관일 뿐이니 팩트를 가져오라'는 강력한 힘을 가지는 일상에서의 상식적 표현은 이와 연결되어 있을 것입니다.이러한 관점을 ‘가치자유과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과학의 추구는 실증주의의 중심적 특징이기도 합니다. 물론 가치자유과학은 연구문제를 선택하거나 연구결과를 활용할 때 가치가 개입한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막스 베버는 물 자체(객체)는 알 수 없고, 인간은 인간의 인식만을 알 수 있을 뿐이라는 신칸트주의에 입각하여 “경험적 사실 확인과 실천적 가치판단의 분리”를 주장하며, 가치연관성은 경험적 연구 대상의 선택과 구성을 위한 학문적 관심에 대한 철학적 해석으로 위치시키고, 연구는 가치자유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관점을 정립하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베버의 논의에 따라 사회과학은 사실만을 다루며 행위결과에 대한 조건적 예측을 정식화 하는 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행위 목표는 정당화 할 수 없으며, 과학적 지식은 정치적 도덕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퍼져나가게 됩니다. 베버에게서 가치판단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이처럼 베버의 가치자유과학은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가치의 이분법'을 함의하게 됩니다.(논리)실증주의 과학철학 또한 경험적 사실이 이론과 가치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며, “이론들을 창조적으로 고안하는 ‘발견의 맥락'과 이론들의 진위를 검사하는 ‘정당화의 맥락'을 구분"하여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그 가설이나 이론을 평가하는 정당화의 과정은 엄격한 논리, 통제된 경험적 시험, 치밀한 검증/반증 등을 통하여 주관적 요소들의 개입을 배제함으로써 과학지식의 진위를 확인하고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한 것입니다.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이러한 관점의 문제는 무엇일까요?II. 과학은 가치와 분리할 수 없다.가치자유과학, 주류사회과학, 팩트만이 맞다고 하는 주장들이 지식주장의 기초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경험적 사실’일 것입니다. 경험적 사실은 ‘인간에 의해 경험 된 것에 대한 서술’입니다. 경험은 인간의 지각에 의해 인지된 것을 말하며, 경험적 사실은 인간에 의해 인지된 경험을 인간의 사유에 입각하여 서술한 것입니다. 이는 객관적 지식의 기초로서의 경험이라는 관념이 인간중심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1] “경험의 이론 적재성 명제” “해석되지 않은 경험이란 있을 수 없으며 모든 경험은 ‘이론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이론 의존적' 또는 ‘이론 적재적'”이다. “경험의 의미나 내용은 … 인식 주체가 지각 정보를 해석하여 구성하는 것이며, 따라서 해석에 동원하는 ‘주관적인' 가정이나 이론이나 가치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2] “이론의 경험적 미결정성 명제" “‘주관적인 이론'을 (덜 주관적인) 경험에 의해 시험한다고 하더라도 … 간단하게 이론을 검증하거나 반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가적인 가정들의 조절을 통해 대체로 방어할 수 있다. 즉 “경험이 이론의 진위를 결정하지 않는다"  이처럼 경험은, 그리고 경험에 의해 서술된 사실은 더더욱, 가치와 이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확실성을 완전히 보증해주는 만능키로서의 특정한 과학적 방법 같은 것은 없으며, 과학자들은 과학에서의 이론의 정합성을 확인하기 위해 경험증거들과의 일치의 정확성, 내적 및 외적 일관성, 적용 범위의 광범성, 단순성 및 결실성 등의 평가 기준들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며, 이는 이 기준들이 “규칙이 아니라 가치로 기능"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토마스 쿤)  뿐만 아니라 “이론 선택은 기본적으로 정교하고 복잡한 가치판단의 사안"이며 이는 과학적 방법의 선택 및 적용과 뗄 수 없도록 연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입각하여 주관적인 경험을 다룰 것입니다. 가치자유과학의 관점을 가진 이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믿을만한 지식을 여전히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과학은 가치로부터 분리할 수 없습니다. 자유, 평등, 공정, 정직, 개방, 비판 등의 사회적 가치 없이는 과학이 성립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과학은 특히 세계의 객체들에 대한 인간의 통제와 유물론적 전략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내장하고 있으며, 그 가치는 경험 자료의 선택과 이론 구성의 길잡이”(lacey, 1999)라는 점에서, 과학과 가치는 분리하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지식에 대한 신뢰 자체가 가치관련적이라는 것입니다. III. 사회적 사실 또한 가치와 분리할 수 없다. 지식주장이 사회적인 것에 대해서 이루어진다면 자연과학에서보다 더 복잡해질 것입니다. 사회적인 것들은 의미와 의도를 내포하며 가치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특정한 사회연구에서 배제하기 어려운(배제해서도 안되는) 실업, 양극화, 불평등, 주류경제학의 ‘합리적 행위' 등과 같은 단어들은 단어 그 자체가 부정적인/긍정적인 가치평가를 내재하고 있습니다. 정의, 공정, 범죄 등 수많은 단어들이 개별적인 서술의 층위에서도 평가와 서술은 혼재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연도 그렇지만) 사회적인 것에 대한 서술은 가치자유적/가치배제적일 수 없습니다. 즉 “사실과 가치의 복합"일 수밖에 없습니다. “개념들을 가치 자유적 언어로 … 분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철학자의 환상일 뿐”입니다.(Gorski, 2013) 이러한 상황은 사회에 대한 지식주장이 객관적일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가치자유과학은 중립적 어휘를 사용한다거나 외국어를 차용한다거나 기술적 신조어를 고안하는 등의 대응을 합니다. 그리고 가치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량화 전략’을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여러 시도에 의한 겉보기에 가치중립적인 정보는 항상 ‘그래서 어쨌다는 것이냐’는 판단과 평가가 요청됩니다. 가치는 주관적이라며 그토록 배제하고자 하는데, 정말 가치관련적이면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아래는 나치 치하에 이루어진 일에 대한 서술입니다.  나라의 인구가 줄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학살당했다  어떤 서술이 가장 적합 할까요? 네 번째 서술이 가장 가치관련적이지만, 동시에 더 많은 진리를 제공하며, 가장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위의 세 진술은 가치중립적으로 표현된 듯 하지만 잘못된 이해를 가져옵니다. 가치배제적 서술은 글의 의미를 납작하게 만들어버리며 핵심을 회피하게 됩니다. 로이 바스카가 제시한 이 유명한 사례는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적 분리가 불가능하며, 주관적인 사실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가치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사회적인 것의 접근에서 가치의 배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가치판단에서 자유로운 사실판단은 없다. 가치 배제의 시도는 또 다른 가치를 적재하는 것이다.”(이기홍, 2015)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사회과학적 설명은 다른 설명에 대해 ‘비판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과학 지식은 평가적, 규범적, 도덕적 판단을 포함하는 사실과 가치의 혼합물"인 것입니다. 이를테면 특정한 사회구조/사회제도/사회문화가 발생시키는 문제에 대한 연구는 그것에 대한 비판일 수밖에 없으며, 그 비판의 함의는 변형의 필요성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IV.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가치? 사실이 상대적일 수 있고, 가치가 객관적일 수 있다.사실은 인간의 인식 밖에 객관적으로 물 자체나 현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경험'을 통해 사유 속에 포착하여 개념적으로 구성할 때 ‘사실'이 됩니다. 사실은 인간의 인식 외부의 객체를 포착하여 재생산한 사회적 구성물인 것입니다. 사실은 이론에 의존하고 가치에 의해 구성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가 경험적 사실이 가치판단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관련'과 '구성', 그로 인한 '제약'이 '결정'의 의미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식은 인간의 주체적이도 능동적인 활동의 생산물이지만 그 객체와의 상호작용에서 획득하는 지각에 근거하고 지각의 안내를 받는다. 객체들은 그것들에 대한 주체의 지각을 매개로 경험적 인식의 방향과 내용과 경계를 한정한다.”(이기홍, 2015) 현실에서 사실과 가치는 완전히 분리하여 한 가지를 배제할 수 없지만, 이는 두 가지가 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치가 사실에 기초하여 형성되고, 사실이 가치에 의해 일부 구성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지식이 가치관련적이라는 것은 모든 지식이 똑같이 타당하다는 '판단적 상대주의'로만 이해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믿음은 같은 대상에 대한 조금씩 다른 인식들의 관계 형성 속에서 사회적으로 생산된다는 '인식적 상대주의'로 이해 될 수도 있습니다. 지식의 대상에 대한 인식론적 상대주의는 가치를 배제할 수 없는 인간의 인식/경험/이론에 기초한 객관적 지식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사실이 가치관련적이어서 주관적이더라도, 인간의 인식 밖의 객체의 성질에 준거하고자 하는 사실적 서술들의 사회적 생산 속에서 가치는 객관성을 확보하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가치판단은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판단에 기초합니다. ‘x에 관해 무엇이 참인가?’와 ‘x에 관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는 논리적으로 독립적인 질문이 아니며, 동등한 질문입니다. 참이지만 믿지 않는다거나 참이 아니지만 믿는 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주장이 됩니다.(콜리어, 2010) 사실도 가치도 주관적 인식에 기초합니다. 사실과 가치는 둘 다 “외부세계와 인간의 상호작용 형태"이며, “경험적 증거에 대한 주관적 해석"입니다.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은 둘 다 정확하거나 그릇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과 가치는 객관과 주관의 상이한 영역에 속하는 범주가 아니라, 주관의 영역 안에서 상대적으로 잠정적으로 구별되는, 그리고 인간의 인식의 변화와 발전에 따라 경계가 변화하는 계기들일 뿐이다.” “사실과 가치의 문제는 우리가 특정한 대상이나 사태를 이해하고 경험하는 … 상호작용하는 방식의 문제"이다.(노양진, 2005) 가치자유과학의 사실-가치 이분법의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이분법은 가치 논의를 자의적인 것, 권력과 독단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가치 문제에 대한 합리적 토의를 봉쇄합니다. “토론의 방해자"이자 “사유의 방해자"로 기능하는 것입니다.(퍼트남, 2010) “과학은 가치를 배제(해야)한다는 이상 자체로 가치판단"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V. 사회에 대한 지식주장이 객관적일 수 있는가?지금까지의 논의에 따라 사실과 가치가 분리 불가능하고, 가치도 객관성을 가질 수 있다면, 사회과학이 가치관련적이라는 사실이 사회과학의 객관성을 부인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객관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1] 존재론적 객관성존재론적 객관성은 “객체가 인식 주체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근대 이후 철학자들은 존재론을 형이상학이라 배책하고 인식론으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자연)과학은 인간의 인식 외부의 과학의 대상으로서의 객체를 상정하고 그것에 대해 탐구하지 않으면 객관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 작업해오고 있습니다. 존재론적 객관성은 확실한 지식주장을 찾고자 하는 과학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지만 그러한 관점에 대한 확인 자체가 과학적 지식 생산의 결과를 저절로 가져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2] 인식론적 객관성많은 사람들은 '객관성은 세계에 대한 정확한 서술과 동일한 것'이라는 관점의 인식론적 객관성을 추구해 왔습니다. 인식론적 객관성은 “주체의 인식이 그 대상 객체를 정확하게 모사하거나 재현함으로써 획득하는 속성"인 것입니다. 이는 “인식과 객체의 상응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존재론적 객관성을 잊고 인식론적 객관성에에만 매달리는 것입니다. 앞서 열심히 살펴본 인간의 경험이나 이론에 기초하여 지식을 생산하고자 하는 관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인식론적 객관성의 확인은 주체의 인식의 영역을 넘어서서 객체의 자기 운동에 개입하는 실천-그 인식에 기초한-을 통해서만 가능"(관찰과 실험 같은!)합니다. 현실에서 인신론적 “객관성은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의 문제이기보다는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재현했다는 주장들을 판단하는 기준에 도달하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절차적 객관성을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주체의 의도적 객관성일 뿐이며 결과에서 객관성을 보증할 수는 없습니다. 존재론적 객관성의 추구에 기초한 인식론적 객관성의 추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물론 그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3] 상호주관성완전한 객관성을 찾기 어렵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상호주관성에서 해답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상호주관성 이외에는 객관성은 없다. 객관성은 지식과 객체의 상응의 문제가아니라 다른 주체들과의 의견 일치의 문제이다”(로티, 1998)“실질적으로 ‘인식의 객관성을 직접 확인하거나 확보할 수 없는 조건에서 상호주관성은 객관성의 이용가능한 최선의 대체물"(Leccy, 1999) 이와 같이 상호주관성을 '불가능한 객관성의 대체물'로 여기기도 하지만 ‘상호주관성’이 반드시 객관성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 나은 객관성으로 나아가는 객관성의 단계적 접근으로서의 상호주관성을 생각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상호주관적이라는 것은 “인식의 절차와 결과를 다른 주체들의 비판적 심사에 개방하고 승인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과학의 진보는 절차적으로 객관적인 연구를 끊임없이 수행함으로써 조금 더 나은 결과에 접근하려고 노력하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결과적 객관성은 이상으로 존재하고, 현실에서는 조금 더 나아져가는 부분적이고 상대적인 과정의 상태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개방과 비판은 과학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객관성은 정도의 문제"가 됩니다. “객관성은 상호주관적 비판의 포용뿐 아니라 그것의 절차와 결과 둘 모두가 비판들에 반응하는 정도에 있는 것"입니다. 과학의 객관성은 경험이나 사실, 이론 등 각 요소의 환원으로는 다다를 수 없지만 각 요소들의 복합적 접근을 통해 좀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입니다.VI. 나가며지금까지의 논의에 따르면 사회에 대한 지식주장에서는, '사실판단과 가치판단 둘 모두에 대한 비판적인 논의'와 '상호주관적이고 사회적인 토의'가 객관성의 확보에 핵심적인 것이 됩니다. 사회과학에서는 지식 주장에 대한 ‘결정적 시험'이 불가능하며, 지속적인 비판과 검증밖에는 지식 주장의 객관성을 확인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사회에 대한 지식주장에서는 ‘상호주관성'의 범위를 과학공동체뿐 아니라 그것을 포함하는 더 광범한 사회로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과학의 민주주의이기도 할 것입니다.팩트지상주의도 문제이지만, 팩트지상주의를 넘어서는 이론적재성에 대한 적절한 인식이, 혹시나 모든 지식주장이 정파적일 수밖에 없다거나, 객관적 지식은 있을 수 없다는 인식으로 과하게 나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이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경험적 인식을 통해 구성된 사실이 가치/이론관련적일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인식하고자 한 그것은 인간으부터 독립된 과학/지식의 대상입니다. 옳고 그름은 그 대상의 성질로부터 규정되는 것이지 인간의 경험이 맘대로 결정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제한적임에도 불구하고 이론/가치에 영향 속에서 과학적 절차/방법에 따라 더 나은 지식주장을 업그레이드 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 과학자 공동체/언론/전문가/시민참여 등과 관련한 개방과 비판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과학은 전문가주의/엘리트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 속에서 발전해 왔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새 이슈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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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증주의와 협약주의의 이분법을 넘어
이 글은 “이기홍, 2019, [사회과학의 철학적 기초], 한울"의 논의에 기초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사회조사방법론’이라는 이름으로 정형화 되어 있는 사회를 분석하는 방법을 다루는 한 흐름은, 실증주의에 입각하여 서술되어 있습니다. 특히 ‘양적 방법’을 다룰 때 더욱 그러합니다. 양적 방법만을 활용하는 것의 한계를 지적하며 ‘질적 방법론'이라는 별도의 연구방법을 이야기 하지만, 양적 방법과 질적 방법의 이분법적 구분 자체의 문제나 두 방법론이 경험주의 철학의 관점을 공유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문제제기 하지 않습니다.근대의 한 축인 ‘과학혁명’의 영향 속에서 철학자들은 (자연)과학의 성과가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철학적으로 정리하고자 하였고, 이는 과학철학으로 불리게 됩니다. 사회과학은 자연의 일부인 인간들, 그리고 인간으로 이루어진 사회 또한 과학적으로 연구 될 수 있다는 믿음 아래에서 성립하였습니다. 그리고 사회에 대한 과학이 가능하다는 생각의 주류는 경험주의-실증주의로 이어져 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지속적으로 같은 결과값을 가지게 되는 반복적인 사건과 사건의 결합으로서의 법칙을 발견할 수 없었고(혹은 어려웠고), 인간의 자유의지/자율성의 독자적인 강조에 입각한 경험주의-실증주의에 대한 비판은 그것을 거의 무너뜨리다시피 하였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과학은 불가능하다'라는 관점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자연객체를 다루는 자연과학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다루는 인문학/철학/해석학의 이분법적 구분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과학’을 애써 부여잡으려고 하는 입장은 자연과학과 철학 사이에서 대안없이 무너진 주류적 관점을 애써 부여잡고 있는 셈입니다. ‘사회조사방법론’의 지속은 이를 상징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많은 방법론에 관한 논의들을 지금도 계속 이어져 오고 있지만, 실증주의를 대체하고 있지는 못한 상황입니다.이 글에서 방대한 (사회)과학철학 논의를 깊게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사회과학 학문들에서 공유되고 있는 실증주의/경험주의, 그리고 그의 대척점에 서 있는 협약주의를 구분하고 두 관점의 난제들의 핵심을 ‘수박겉핥기 정도’로 함께 공유해보고자 작성합니다. 이는 사회를 좀더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유일한 안경’이 아닌 ‘여러 안경들'의 가능성을 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실증주의와 그에 대한 비판 실증주의 (사회)과학철학에 의하면 ‘형식논리적 진술’과 ‘검증할 수 있는 경험적 진술’만이 정당한 지식입니다.(논리실증주의) 이러한 관점에서 경험자료와 관련한 논리적인 보편적 진술을 추구합니다. 실증주의에서 이론적 용어는 관찰가능한 용어로 환원될 수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은 이론적 서술은 비과학적인 것으로 배제됩니다. 실증주의는 논리실증주의, 반증주의를 거쳐 가설연역적 방법, 포괄법칙적 설명모형에 이르게 되며 과학에 대한 표준적 견해, 법칙적 설명의 정통으로 불리게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실증주의에서의 ‘법칙’은 ‘사건과 사건의 결합’으로 여겨지며, 이는 ‘관찰된 규칙성의 서술’입니다. 즉 경험의 귀납적 일반화의 산물인 것입니다. 이러한 실증주의의 관점에서는 경험이 두 가지 특권적 지위를 지니게 됩니다. [1] 경험의 인식론적 특권은 경험이 과학적 지식의 객관적 기초라는 믿음입니다. [2] 경험이 이론적 진위의 심판자라는 믿음 또한 경험의 특권적 지위입니다. 오늘날의 ‘사회조사방법론'이라는 이름으로 공유되고 있는 논의의 대부분은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경험이 유일한 혹은 근본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경험은 ‘인간에 의한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경험은 인간과 분리 될 수 없다는 점에서, 경험주의는 인간중심주의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세상에 있든 없든 과학의 대상인 세계는 존재합니다. 인간의 경험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으며,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경험 그 자체가 객관적인 것이나 사실인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인간은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으며, 현실에서의 과학적 작업은 항상 경험 너머의 것들을 이론적으로 다뤄 왔습니다. 경험 너머의 것을 발견해왔습니다. 경험만이 기준이 된다는 관점은 그러한 경험 너머의 것을 다룰 수 없도록 한다는 점에서 그간의 자연과학의 성공적인 과학적 작업들과 사실상 배치되는 관점이 됩니다. 경험된 것만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암묵적인 ‘경험적 실재론’은 존재론을 부당하게 인간중심의 인식론으로 환원하는 ‘인식적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식주장은 경험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과학은 경험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이론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이론적 서술을 아무리 경험적 서술로 환원하려 해도, ‘조작적 정의'를 해도 그것을 걷어낼 수는 없습니다. 이는 [1] ‘이론의 경험적 미결정성’, [2] ‘경험의 이론의존성’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비판은 실증주의/경험주의에 대한 해석학/협약주의/철학적 비판이 아니라,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과학자들의 작업에 대한 과학철학적 분석에 기초한 비판입니다. 과학자들은 사회조사방법론에서 대체로 전제하는 실증주의적 방법에 기초하여 작업하지 않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연역과 귀납뿐만 아니라 역행추론(탐정이 범인을 찾듯이 가능성을 하나씩 소거하여 답을 찾아나감)을 통해 경험 너머에 존재하는 기제들에 대해 이론적으로 탐구하고, 그것이 실재 하는지를 경험과 관찰, 논리적 검증 등을 통해 해답을 찾아나갑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이 때로는 성공하여 경험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주류 사회과학의 방법론은 이러한 점을 포착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물론 이러한 실증주의에 대한 이론적 비판이, 실증주의적 관점에서의 수많은 연구들이 전혀 의미가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연구들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그러한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진 연구만이 유일한 과학적 지식이라는 말이 옳지 않다는 것이며, 그러한 연구들은 연구의 끝이 아니라 현상에 대한 파악으로써, 그 기층의 구조적 기제로 들어가기 위한 도입부로 여겨야 한다는 점, 그에 따라 생산된 이론적 추론이 실재적인지 아닌지를 검증하는 수많은 도구들중 중요한 일부로 여겨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협약주의와 그에 대한 비판 협약주의는 ‘과학은 협약에 따라 형성된다’는 관점으로, 대체로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로부터 비롯합니다. [1] 과학은 과학자의 창조물/구성물이라는 관점, [2] 과학은 어느정도 주관적이며, 주관성의 원천은 과학자(공동체)라는 관점, [3] 이론의 경험적 미결정성(키트와 어리) 명제 등이 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쿤의 패러다임/정상과학/과학혁명 개념들, 이론의 공약불가능성(과학혁명기의 경합하는 두 패러다임은 비교불가능하다는 의미) 논의등이 협약주의의 전통 아래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을 끝까지 밀어붙이면 파이어아벤트의 ‘방법론적 무정부주의’가 됩니다. 과학이라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과학자가 수행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과학 이론이 공약불가능하다는 것은 상대주의를 의미합니다. 상대주의는 어떤 이론이든 동등하게 의미있다거나, 어떤 이론이든 아무 의미 없다는 관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식의 대상인 외부 세계조차 과학의 이론에 의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은 오류입니다. 그러한 관점은 과학을 확실하지 않은 지식으로 해체해버립니다. 이는 과학에 대한 도구주의적 견해로 이어지게 됩니다. 실재를 실재에 대한 합의로, 진리를 진리에 대한 합의로 대체해 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과학철학자들이나 사회과학자들이 그렇게 보든 말든 과학자들은 과학적 방법을 확실한 지식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믿고 작업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고, 그에 입각하여 전에 보지 못한 수많은 기술들이 개발됩니다.협약주의는 경험의 이론의존성을 지나치게 확대합니다. 지식의 구성은 개념과 믿음에 의존하지만, 그러한 의존이 그것에 의해 결정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경험의 이론의존성은 경험이 이론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 외부에 있는 객체의 성질에 일관성 있게 영향 받지만 특정한 이론적 관점에 따라 다르게 파악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부정하기 어려운 과학적 방법으로서의 ‘실험'은 이론에 근거하고 이론에 의해 안내 되지만 실험의 결과는 이론이 아니라 객체(지식의 대상)의 성질에 의해서 규정됩니다.지식을 경험/관찰으로 환원할 수 없지만, 이론들에 대해 관찰은 중립적일 수 있습니다. 관찰진술은 과학적 진술의 사실적 기초의 일부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관찰은 직접적인 절차에 의해 공공적으로 시험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객관적이며, 폐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류가능한 것으로 위치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경험이 이론의존적이라는 것은 확실한 지식의 기준이라는 관점에서 경험도 별 소용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중요한 일부중 하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이론의 경험적 미결정성이 과학이 공약불가능하다는 식의 상대주의로 빠져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과학이론의 공약불가능성을 말하면서도, 학자들은 누가 더 맞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논쟁합니다. 누가 더 맞는지 논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같은 대상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식간의 경쟁은 동일한 객체를 다르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입니다. 각기 다른 이론들은 나름대로의 설명력을 각기 가질 수 있으며, 각각 다른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중요 현상들을 더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나은 이론이 됩니다. 뉴턴의 물리학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대체했다고 하지마는 뉴턴의 물리학은 특정 범위 내에서는 여전히 작동하는 설명력이 있는 이론입니다, 상대성 이론은 뉴턴 물리학이 밝힌 것을 포괄하면서 더 나은 설명을 제공하게 된 것인 셈입니다. 패러다임간 비교 및 선택, 이동 및 수용은 가능합니다.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논의처럼 사회성은 과학의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것이 과학이 사회적으로 결정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과학의 사회성이 과학의 객관성을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과학의 대상인 객체의 성질은 인간의 인식이 어떻게 다르건 간에 현존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객관성은 과학의 대상인 객체의 성질을 더욱 잘 드러내는 것에서 확보되는 것입니다.  실증주의와 협약주의의 이분법을 넘어 실증주의와 협약주의는 대립되는 두 관점으로 인식되지만 함께 공유하는 오류가 있습니다. 협약주의는 ‘경험과 이론의 분리’라는 실증주의의 이분법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고 경험주의에서 이론주의로 전환했을 따름입니다. 즉 실증주의와 협약주의는 (주관적) 이론과 (객관적) 경험의 이분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물론 이는 너무 단순한 정리이며, 각각의 세부적인 논의들에서 그렇지 않은 측면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두 관점들이 가리키는 방향이 그러한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험주의와 이론주의의 양 경향은 철학의 분류로 봤을 때 ‘인식론'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인 것입니다. 과학의 인간의 인식 외부의 대상/객체를 다루는 것이라면, 우리는 과학적 지식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기준을 인간의 인식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대상/객체의 성질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인식론의 존재론적 전환) 중간에 끊긴 것처럼 이 글은 여기에서 끝나지만.. 언제 쓸지 모를 다음 글에서는 두 관점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로이 바스카의 과학철학에 대해 짧게 소개해보고자 합니다.(로이 바스카의 논의의 핵심을 빠르게 파악하고 싶으면 “이기홍, 2017, [로이 바스카], 커뮤니케이션북스"를 참조해주세요.)(2021년 11월, 다른 곳에서 썼던 글을 이동/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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