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사회 불평등과 부의 상관 관계를 좇아 - 『불평등을 넘어』 [신동주의 도서 추천]
경제를 얘기함에 있어 ‘불평등’은 빠질 수 없는 주제 중 하나이다.  혹자는 경제 성장 속에서 불평등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며 무시하기도 하지만, 진보 경제학자들은 ‘경제 성장’의 강박과 통념을 넘어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 방법을 찾기 위해 불평등을 연구하고 있다. ▲ 앤서니 B. 앳킨슨 ⒸNiccolò Caranti <불평등을 넘어>의 저자 앤서니 B. 앳킨슨도 불평등을 연구한 경제학자 중 한 명이다. 경제 불평등에 관심 있는 자라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유명한 사것이다. 매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었으며, ‘21세기 자본’을 쓴 피케티 연구에 큰 영향을 준 학자이기도 하다. ▲ 평생을 부의 분배와 불평등 관계 분석에 바친 앳킨슨의 역작 『불평등을 넘어』 ⓒ성찰과성장 불평등 지수 중 하나인 ‘앳킨슨 지수’도 그가 만든 것이다. 앳킨슨 지수는 ‘균등분배의 전제 하에서 지금의 사회후생수준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평균소득이 얼마인가를 주관적으로 판단하고 그것과 한 나라의 1인당 평균소득을 비교하여 그 비율을 따져보는 것’이다(출처: 기획재정부 시사경제용어사전). ▲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연구, ‘불평등’ Ⓒ성찰과성장 <불평등을 넘어>는 앳킨슨의 저서 중 거의 유일하게 번역된 책이자 세상을 떠나기 전에 쓴 마지막 대중서이다. 2015년에 번역된 이 책은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현실을 잘 분석했다. 불평등을 나타내기 위한 데이터는 2013년도에서 멈춰있지만, 최신 데이터를 추가한다고 해서 그래프의 추이에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2015년이나 2024년이나 소득이 한쪽으로 몰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득은 근로소득과 사업소득, 금융소득, 임대소득 등을 포함한 것이다. <불평등을 넘어>가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책의 1/3을 할애하여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15가지의 제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안들 중 눈에 띄는 것을 조금 언급해보자면, ‘경쟁 정책에 분배적인 측면을 도입하고, 노동조합을 보장하는 법적 체계를 만들며, 다양한 사회적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사회경제협의회를 만들 것’, ‘기업과 부동산에 대한 투자지분을 보유하며 국부펀드를 운영하는 공공 투자기관을 설립할 것’, ‘최근 시세로 평가된 부동산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비례적인 재산세 또는 누진적인 재산세를 시행할 것’, ‘기존 사회적 보호제도를 보완하는 나라별 참여소득을 도입할 것’이 있다. ▲ 앳킨스가 제안한 대안 중 하나. ‘나라별 참여소득을 도입할 것’. Ⓒ성찰과성장 상위 계층이 싫어할만한 내용만 잔뜩 있다. 이 제안들에 반대하는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러한 소득재분배 정책들은 ‘경제적인 생산을 줄이고 결국 하위 계층의 소득까지 줄일 것’이라고 말이다. 부유한 이들의 돈이 ‘생산’으로 흘러들어 간다면야, 이 주장이 틀리지 않을 수 있다. 부유층이 벌어들인 돈을 기업에 투자하고, 투자 받은 기업이 일자리를 늘리고, 새로 고용된 사람들이 임금을 받고, 그 임금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구입하는 선순환이 이뤄진다면 말이다.  이를 한 단어로 ‘낙수효과’라고 한다. 낙수효과의 논리가 맞다면, 부유한 이들의 돈을 빼앗는 소득재분배 정책들은 결국 하위 계층의 소득을 줄이게 될 것이다. ▲ 일부 경제학자는 ‘낙수효과’ 이상에 빠져 있다 Ⓒ성찰과성장 그런데 부유한 이들 중 정말 기업의 미래 가치를 보고 생산적인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부동산과 금융상품의 시세 차익으로 돈을 벌려는 이들이 더 많지 않을까? 생산적인 기업에 투자를 한다고 할 지라도 ‘고용없는 성장’과 저임금의 불완전한 일자리만 증가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처럼, 부유층의 투자가 하위계층의 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논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정치’다. 부유한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하위 계층보다 매우 크다.부유층은 자신의 소득과 자산을 늘리기 위해 끊임없이 로비하고, 언론을 주무르며, 자신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 경제적 불평등은 권력의 불평등으로 나타난다. Ⓒ성찰과성장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아 생산이 증가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부유층의 소득과 자산이 증가한다는 것은 그외 사람들(즉, 중하위 계층)의 소득과 자산이 감소함을 의미한다. 여기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면 어떻게 될까? 부유한 이들의 정치력은 더욱 커지고 불평등의 악순환은 지속될 것이다. 이것이 경제적 불평등의 가장 무서운 점이다. 열심히 일하느라 정치에 관심을 가질 시간과 힘이 없는 우리 모르게 그들은 돈을 통해 정치력을 강화한다. 자신들을 위한 정책을 마치 우리들을 위한 정책인 것처럼 속여 여론을 만들고 정책을 통과시키려 한다(최근 나타난 종부세 폐지와 상속세 완화 움직임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 종부세 관련 기사 Ⓒ다음 뉴스 갈무리 그래서 부유하지 않고 평범한 우리는 ‘불평등’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부유한 이들에게 당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하더라도 알고 당하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 경제 불평등과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다. Ⓒ성찰과성장 정치 얘기를 하다 보니 길어졌다. 이 책은 직접적으로 불평등과 정치의 연관관계에 대해 얘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위 계급이 말하는 불평등과 관련된 논리 비판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일반적인 경제 신문에서 주장하는 논리들을 비판하는 힘을 기르고 싶은 이들에게 <불평등을 넘어> 일독을 추천한다. 작성: 신동주편집: 박배민기획: 성찰과성장 - 민주주의 학습 놀이터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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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만이 아니라, 최고임금도 생각해야 합니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갈등 지난 7월 2일, 최저임금 차등 적용 안이 부결됐다. 찬성 11표, 반대 15표, 무효 1표였다. 참석 인원은 근로자위원 9명,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 등 총 27명이었다. 내년도에도 모든 업종의 최저임금이 동일하게 적용되게 됐다. 차등 적용 부결 후, 현재는 2025년도 최저임금 결정으로 의제가 넘어갔다. 노동계는 시간당 1만 1,200원을 제시했고, 경영계는 9,870원을 제시했다. 2024년 최저 시급은 9,860원이다. 노동계는 1,340원 인상을, 경영계는 10원 인상을 말하는 꼴이다. 최저임금 결정은 이번에도 첨예하게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노동계는 “고물가로 너무 힘들다, 최저임금 올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경영계는 “더 올렸다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무너진다.”고 말하고 있다. 모두 일리가 있다. 노동자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나 모두 고군분투하는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과 소득 불평등 문제 최저임금 논쟁에서 빠지지 않는 이슈는 소득 불평등이다. 노동계도 최저임금 인상 이유로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를 말한다. 최저임금은 바닥 값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바닥 값을 증가시켜 소득 수준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바닥을 높이면 그 위에 올라있는 모든 사람이 영향을 받는다. 문재인 정부 주요 정책이었던 ‘소득 주도 성장' 역시, 바닥 값을 끌어올려 전반적 소득 수준을 향상시키겠다는 것이었다. 한편, 바닥 값을 올리는 게 소득 불평등 감소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바닥이 올라가면 그 위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동시에 올라가게 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의 급여도 동시에 올라간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임금 종사자 중, 대기업 정규직 종사자 비율은 약 11%다. 통계청이 지난 2월에 발표한, ‘2022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보수) 결과'를 보면, 대기업은 평균 591만 원을 벌었고, 중소기업은 286만 원을 벌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2배 이상이다. 상장 중견기업도 급여는 대기업의 60% 수준이다. 대기업의 경우 복지와 성과급이 중소기업에 비해 푸짐하다. 성과급을 자사 주식으로 주는 경우도 있다. 반면, 중소기업은 성과급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영 상황이 안 좋다면, 급여마저 밀릴 위기에 처한다. 중소기업이 “지불 능력을 고려해 최저임금을 고려해 달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바닥과 천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신성장경제연구소 최병천 소장은 책,『좋은 불평등』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비판했다. 비판 핵심은 문재인 정부가 바닥을 잘못 설정했다는 것이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경제적 하층 선정을 잘못했다며, “하층은 누구인가? 이 질문이 가장 중요하다. 결론부터 말해, 하층은 노인이다. 하층은 저임금 노동자가 아니다. 노인 소득을 끌어올리면 불평등은 줄어든다.”1)며 노인 소득 증진을 주장했다. 그는 “불평등을 직관적으로 정의하면 '하층 소득 대비 상층 소득의 격차'다. 불평등에 대한 중립적 표현은 '격차' 그 자체다.”1)라고 말했다. 노인의 소득을 올려야 한다고 한 이유도, 소득 없는 노인에게 소득이 생겨야 상층과의 격차가 줄어든다고 봤기 때문이다. 경제적 바닥을 제대로 산정해 끌어올려야 상층과의 격차가 줄어든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바닥을 올려도 천장이 무한정 뚫려 있다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끝없이 올라가는 소득을 제한하는 천장이 없다면, 불평등 심화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바닥만 생각해선 안 된다. 천장도 생각해야 한다. 바닥 올리기 만이 아니라, 천장 제한도 생각해야 한다. 최저임금만이 아니라, 최고임금도 생각해야 한다. 바닥이 올라가고, 천장이 내려올 때 격차가 줄어들 수 있다. 먼저 바닥과 천장의 높이부터 확인해 보자. CEO와 직원의 급여차, 미국 272배, 한국 129배,  0.01%와 최저임금 소득자 비교 시 2,100배 차이 세계 불평등 연구소(World Inequility Lab)가 발표한 2022년 세계 불평등 보고서(World Inequiliry Report 2022)에 따르면, 하위 50%는 전 세계 부의 2%를 차지한 반면, 상위 1%는 38%를 차지했다. 급여(Income)에서도 차이가 났다. 상위 10% 이상이 급여의 71%를 차지한 반면, 하위 50%는 8%만을 차지했다.2) 이는 급여 격차가 불평등을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하게 해준다. 미국 총 노동연맹(AFO-CIO)이 발표한, 2022 Excutive-Paywatch에 따르면, 2022년 기준 S&P 500 기업 CEO의 평균 보상액은 1,670만 달러(한화 약 231억 원)였다. S&P 500 기업 CEO들의 평균 급여는 직원 평균 급여에 272배에 달했다.3) 지난 10년 동안 그들의 급여는 5백만 달러 상승했다. 2015년 기준 미국 내 상위 0.01%의 평균 소득은 3,160만 달러였다. 이는 당시 미국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들의 연평균 소득의 2,100배에 달하는 수치다.4) 미 경제정책 연구소(EPI, Economic Policy Institute)는 “지난 32년 동안, 국내 일반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13.7% 증가한 데 반해, CEO들의 평균 임금은 1,1167% 상승했다.”고 말했다. 또한, 미국 내 CEO의 평균 급여는 일반 근로자(Typical workers)에 320배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급여 차는 소득 불평등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EPI는 "미국 상위 1% 소득 가구의 약 3분의 2는 기업 경영진의 급여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즉, 기업 경영진의 높은 급여가 소득 불평등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상황은 한국도 다르지 않다. 2019년 국내 200대 기업의 직원과 CEO의 급여 차는 최대 129배였다. 30배 이상 나는 기업도 상당했다. 엔씨소프트, E1, SK네트웍스, CJ제일제당, 금호석유화학, LG전자 등이 30배 이상 차이가 났다. 한국 조사는 대기업 중심 결과다. 중소, 중견 기업에 비해 급여를 많이 받는 대기업 내부에서도 최대 129배의 차이가 난다면, 일반 중소기업 근로자와 대기업 CEO의 임금을 비교할 경우 미국처럼 300배 가량 차이날지 모른다. 가히 슈퍼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슈퍼 경영자의 슈퍼 소득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을 통해 ‘슈퍼 경영자'의 등장을 말했다. 그가 말하는 슈퍼 경영자는 “노동의 대가로 역사상 전례가 없을 정도의 극히 높은 보수를 받는 최고위 경영자들"5)이다. 그는 슈퍼 경영자들의 등장이 불평등과 관련 깊다 말한다. 그는 “소득세 신고에 나타난 소득과 기업의 보수 기록을 연결시킨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2000~2010년에 소득계층 상위 0.1퍼센트의 대다수가 최고위 경영자들로 구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중략) 이런 의미에서 미국의 새로운 불평등은 ‘슈퍼스타' 보다 ‘슈퍼 경영자'의 등장과 훨씬 더 관련이 높았다.”5)고 말했다. 위 두 개 그림 1, 2는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 자본에서 제시한 1929년과 2007년의 미국 내 최상위층의 소득 구성 표다.5) 그림 1은 1929년의 소득을, 그림 2는 2007년의 소득을 보여준다. 소득 상위 1%~0.1%(P99~99,9)의 소득을 보면, 1929년에는 자본소득(Capital income)이 노동소득(Labour income)을 앞지르고 있다. 반면, 2007년에는 노동소득(Labour income)이 자본소득(Capital income)을 앞질렀다. 피케티는 이 변화가 “대기업 최고위 경영자들이 받는 보수의 급상승으로 주로 설명된다.” 라며 불평등과 CEO의 높은 보상의 연관성을 설명한다.5) 물론 이 보수에는 급여 만이 아니라, 상여금, 성과급, 스톡옵션 등이 포함됐다. 샘 피지게티, 최고임금(Maximum wage) 제안. “세후 소득 기준, 10배 못 넘게 하자.” 미국 정책 연구소(Institute for Policy Studies) 특별위원 샘 피지게티(Sam pizzigati)는 최고 임금(Maximum wage)의 필요성을 말한다. 그가 제시하는 최고 임금은 최저임금과 연동되고, 급여 상한액은 최저임금보다 세후 10배로 제한된다.4) 또한, 그 이상의 소득이 발생하면 100% 연방 소득세율 적용하고, 거둬들인 세금을 소득 재분배에 쓰자고 제안한다. 그는 속도 제한이 없는 임금을 비판하며, 최고임금이 그 제한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과하면 엉망이 되는 법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 실상을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기에 과함을 방지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둔다. (중략) 하지만 우리가 모든 것에 제한을 가하지는 않는다. 개인 소득은 제한하지 않는다.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되는 '속도'에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그래서 부자들은 더 부유해졌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부자로 말이다.”4) 그림 3은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제시한 1910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의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표다. 총소득 상위 1%가 차지하는 몫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을 보면 1929년 즈음 상위 1%가 차지하는 소득 비율이 20%까지 올라갔다가, 1940년부터 낮아지더니, 1970년대에는 8% 미만으로 내려갔다.5) 천장이 내려온 것이다. 이 변화는 소득세율 증가와 연관이 있다. 그림 4는 1900년에서 2013년까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의 소득세 최고 세율을 나타낸 표다. 1940~1950년의 미국 연방 소득세율은 약 94%에 달했다. 그리고 1980년을 기점으로 소득세 최고세율은 점점 하락해 현재 4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피케티는 1980년대의 불평등 증가를 소득세율과 연관 지어 설명한다. 소득세율 변화에 따라 소득 불평등이 변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최고세율이 가장 크게 인하된 국가는 국민소득에서 최고 소득자가 차지하는 비율, 특히 대기업 최고위 경영진의 급여가 가장 크게 증가한 국가다.”5) 라고 말한다. 샘 피지게티의 주장과 피케티의 통계를 결합해 생각해 보면, ‘뚫린 천장으로 한 없이 올라가는 최상위 층의 소득을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가 실질적 소득 불평등 해소에 필요함을 생각할 수 있다. 그 방안으로 최고임금과 소득세율 개선이 실질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어렵다. 국내에서 실패했던 최고임금 도입 최고임금 정책 마련 시도가 국내에서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의당은 “임금불평등 해결을 위해 최고 임금을 도입하겠다."라며 “최고 임금제" 도입을 주장했다. 정의당은은 “국회의원 보수 최저임금에 5배 제한, 공공기관 보수 최저임금 7배 제한, 민간기업은 최저임금에 30배 제한"하겠다고 공약했다. 물론 실패했다. 그 뒤 최고임금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소득 격차만 중요해서가 아니다 샘 피지게티는 “최저임금과 최고임금이 ‘둘 다' 존재하는 세상은 가장 취약한 사회계층을 착취하려는 강한 동기가 약화되다가 마침내 사라질 것이다.”4)라고 주장한다. 또한, 최고임금이 도입되면 “음지에서 고생하는 (최저임금을 받는) 이 노동자들이 사회의 조명을 받으며, 최상위 소득을 최하위 소득과 연동시키는 사회에서는 그런 노동자들의 복지를 증진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4)고 주장한다. 필수노동 돌봄, 최저임금이 최고임금 표준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개인적으로 최근 본 눈에 들어온 정의가 있었다. “표준은 원래 '바닥'(floor) 값으로 설정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것이 천장 값이나 경제적 최적점으로 해석되기 일쑤다.”6) 라는 관점이었다. 바닥이 천장이 되고, 경제적 최적점으로 여겨지는 직종이 상당히 많다. 대표적으로 돌봄노동이다. 돌봄 노동은 필수 노동이다. 돌봄 노동 종사자는 장애인 활동 지원사, 요양보호사, 아이돌보미, 사회복지사 등이다. 국내 돌봄 노동 종사자는 140만 명으로 추산된다. 2022년 기준, 전체 임금노동자 2,200만 명 중 6.4%를 차지하는 비중이다. 이들 대부분은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었다. 그들에겐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다. 만성적인 저임금으로 해당 분야 종사자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8년 뒤에는 71만 명가량 모자랄 전망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게 유지하게 해주는 사람들이다. 만약, 이들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혁신가 없이 살 수 있지만, 메인테이너 없이는 일주일도 살지 못한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아이폰, 갤럭시, 유튜브, 배달 앱, 당일 배송 등은 우리에게 즐길 거리와 볼거리를 선사해 준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서 이런 것들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누리는 이것들을 더 누리게 해주는 걸 ‘혁신'이라고 말한다. 2021년 발표된 포춘 500대 기업 중, 가장 많은 연봉을 받은 CEO Top10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람과 회사들이 많다. 테슬라, 애플, 엔비디아, 넷플릭스, 블리자드, 마이크로소프트 등등이다. 이들은 모두 전에 없던 서비스와 제품을 세상에 내놓으며 혁신가라고 불린다. 언론과 사회, 시민들의 눈도 모두 이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우리는 이 시선을 돌려야 한다. 엄청난 혁신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현재같은 엄청난 수익을 줘도 되는가에 의문을 던짐과 동시에, 그들의 혁신이 과연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지와 그 혁신이 우리 삶을 유지시켜 주는 것인지 의문을 던져야 한다. “러셀과 빈셀은 언론과 학계의 관심이 온통 혁신가, 발명가, 기업가에 쏠려 있지만, 실제로 사람들의 생활과 안전과 건강에 더 많이 기여하는 것은 메인테이너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천재적 혁신가 없이도 근근이 살아갈 수 있지만 성실한 메인테이너 없이는 일주일도 버틸 수 없다. 하지만 혁신가가 앞에서 주목받고 지원받고 성공하는 동안 메인테이너는 뒤에 남겨지고 잊히고 사라지기 마련이다.”7) 개인적으로 일부 소수에게 엄청난 부가 집중되는 것도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삶에 반드시 필요한 영역들이 정말 소규모 부로 연명하고 있는 것도 잘못 됐다고 생각한다. 소득이 가치는 아니지만, 우리가 어디에 집중하는지는 보여준다 최저임금 때만이라도, 다른 걸 보자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6・ 7월이 되면 항상 조금 안타깝다. 단순 임금 결정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 노동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또한, 여전히 최저임금이 오른 만큼만 오르는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노동과 사람들이 주목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가장 힘든 사람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샘 피지게티는 최고임금이 도입되면,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잊혔지만, 우리 삶을 유지해 주는 사람들이 주목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최고임금이 그들의 복지 증진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소득이 가치는 아니지만, 우리는 소득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가치 부여한다. 누군가의 높은 소득은 우리 사회가 “그들은 그럴만해"라며 가치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가치 부여가 피케티가 말한 슈퍼 경영자와 그들의 소득을 ‘암묵적으로' 정당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 가치 있는 직업과, 가치 없는 직업의 차별이 발생하는 게 아닐까 싶다. 부디,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시기만이라도 우리 사회가 어디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만이 아니라, 직업 가치에 대한 불평등 역시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참고 자료※ 1) 『좋은 불평등』 (최병천/ 메디치/ 2022) p.109, 203 2) World Inequility Report 2022 (World Inequility Lab / 2022) 3) Executive-Paywatch (AFO-CIO / 2022) 4) 『최고 임금』 (샘 피지게티/ 루아크/ 2018) p.5, 6, 23, 41, 42, 45, 46 5)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김영사/ 2014) p. 362, 363, 364, 380, 609 6) 『자연자본주의』 (폴포큰 등/ 공존/ 2011) p.523 7) 『사람의 자리』 (전치형/ 이음/ 2019) p.72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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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불평등과 경제민주화의 방향 및 과제
   ○ 본 발표문은 현재 한국 경제의 불평등 상황은 사회갈등과 분열을 낳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임을 밝히고, 이러한 경제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회찬의원이 의정활동에서 보여주었듯이 대자본과 보수정치에 의한 ‘반동적 레토릭’에 적극 대응하는 <경제민주화 정치>가 필요함을 주장하고자 한다. “미국 정치에서 불평등이 공화당 집권 시기에 더 심해졌고 민주당 집권 시기에 완화되었다는 주장(제임스 길리건, 2012,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교양인)을 한국 정치에 그대로 대입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경제적 힘을 정치적 힘이 통제해야 한다는 믿음’(셰리 버먼, 2010, <정치가 우선한다>, 후마니타스)은 한국 정치세력도 깊게 성찰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민생정치가 국민들의 고단한 삶을 개선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제불평등에 관한 논의는 오래된 미래이다. 즉,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등에 의해 발생하는 경제불평등과 ‘부익부 빈익빈’은 구조적인 사회문제이다. 그리고 세계적 차원에서 1980년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기술진보, 경제권력의 정치권력화는 경제불평등을 더욱 더 심화시켰다. 또한, 경제불평등은 노동 부담의 가중, 생태계위기, 출산의 계급화 등 다양한 차원의 사회적 해결과제를 동반한다. ○ 따라서 본 발표문은 본질적으로 ‘부익부 빈익빈’ 경제구조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기술진보’와 ‘신자유주의 세계화’, ‘지역불균등 발전’에 대해 ‘노동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대응하기 위한 국가적, 시민적 차원의 대안적 실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선, 노동시장에서의 1차 분배와 재분배를 통해 경제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한 효과적인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많은 사회경제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시장원리주의 경제시스템에 대응해 ‘사회연대경제’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회적경제 조직’의 확산을 촉진해야 한다. 또한, 여전히 ‘파이를 키워야 한다.’거나 ‘낙수효과’를 주장하며 ‘자본의 이윤추구를 도와야 한다.’는 ‘성장 이데올로기’와 보수정치에 토대를 둔 ‘불평등 이데올로기’, ‘개인 능력주의’에 대응하는 진보정치, 경제민주화 정치를 강화해야 한다. ○ 본 발표문은 구체적으로 한국사회의 경제불평등에 대한 논의를 통해 IMF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발전주의적 신자유주의화’ 정책이 경제불평등을 심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즉, 자유화, 규제완화, 민영화를 통해 자본소득분배율을 지지해주고 ‘임금 없는 성장’을 용인한 결과이다. 그 결과 소득불평등을 넘어 갈수록 부자들이 늘어나는 자산불평등 사회가 되었다. “그런데 2010년 이후 노동소득분배율의 가파른 상승을 이끈 것은 관리자 직종, 특히 비정규직 관리자 직종의 임금상승이었다.(아래 그림 참조) 즉, 2010년 이후 노동소득분배율 현상은 전통적인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착시현상이다. 오히려 이러한 관리직만의 빠른 임금 상승은 한국경제의 또 하나의 주요한 경제불평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 이러한 경제불평등 심화 과정은 자본생산성 하향 정체화 및 산업전환 지체, 좋은 일자리 감소, 정규직-비정규직 차별 확대, 자영업 노동의 빈곤화, 지역불균등발전 심화와 지역 일자리 질 악화 등 경제발전의 악순환 구조를 낳았다. ○ 노동자 세력 등 사회경제 약자들의 정치세력화 미흡과 사회연대전략 부재, 보수정치 세력의 경제불평등 극복에 대한 무관심, 진보정치 세력의 미진한 정치세력화는 경제불평등이 구조적인 사회갈등 요인이자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 “20대의 정규직 비중은 2003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데, 이는 노동시장 첫 진입이 비정규직으로 점점 고착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갈등을 유발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자산의 격차를 비롯하여 소득의 격차 등 경제적 격차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제성장 및 사회 통합에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세율 구간 조정 및 세율 조정 등을 통해 정부가 자산 격차를 완화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 본 발표문은 경제불평등의 극복을 위해서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에 따른 노동시장에서의 1차 분배(노동소득분배율 개선, 최저임금 및 단체교섭 확대 등) 및 재분배(교육 및 훈련 등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재정정책, 조세정책) 정책, 적극적 통화정책, 시장구조 개혁정책(독과점 규제 강화 및 사회적경제 기업 활성화) 등 정부의 경제정책 필요성이 크다고 주장하며 경제민주화 정책과제를 제기한다. ○ 이러한 정부 정책을 통해 생산/분배 과정에서 노동자 등 모든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가 확대되고 자조 능력이 강화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한국 사회내 빈곤층 해소를 넘어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지향함으로서 경제구조를 개혁하고 개혁된 경제구조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고자 하는 목표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 끝으로 본 발표문은 이상과 현실의 통합적, 실천적 인식을 강조했다. “모든 건전한 인간의 행동과 사상은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자유의지론과 결정론 사이의 균형 위에 서야 한다. 사건의 인과적 전개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절대적 현실주의자는 현실을 변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전적으로 부인한다. 인과적 전개를 부정하는 절대적 이상주의자는 자신이 변경코자 하는 현실과 그 변경방법을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이상주의의 결점은 순진함이다. 현실주의자의 결점은 황폐함이다.”  박창규 노회찬재단 노회찬비전포럼 운영위원장 발표 전문은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코멘트 달고 도서 '나는 얼마짜리입니까' 이벤트 응모하기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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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은행, 돈을 생산하는 특권을 가지다 [이 달의 추천 도서 - 화폐의 비밀]
우리는 생활에서 매일 화폐를 사용하지만, 화폐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흐르며, 무슨 역할을 하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화폐는 ‘중립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구입할 때 필요한 시장 가격을 표시하는 역할만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는 어디에서 왔을까. 보통 화폐는 각 국가 중앙은행이 찍어내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 중앙은행이 찍어내는 화폐는 전체 화폐량의 5%밖에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화폐는 민간은행의 대출을 통해 만들어진다. 중앙은행 계좌에 일정 부분만 저축해놓으면 민간은행은 화폐를 만들어낼 수 있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이를 ‘신용창조’라고 부른다. △ 실상 중앙은행이 찍어내는 화폐는 전체 화폐량의 5%밖에 되지 않는다. ⓒ성찰과성장 그런데 대출에는 항상 ‘금리’라는 비용이 따른다. 민간은행은 가계와 기업에게 대출을 해주면서 금리를 요구한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든다. 첫번째, 화폐로 민간은행이 돈을 버는 것이 옳은가?  화폐는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모두에게 필요한 것으로, 공공성을 지닌 중립적인 존재여야 하는데, 화폐 창조는 민간은행의 대출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민간은행이 대출을 내주고 금리로 돈을 벌고 있다.  심지어 은행은 그 수가 많지 않아서 단합하면 더 높은 금리를 가계 및 기업에 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공공성을 지닌 존재를 통해 ‘민간은행’이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 수 있는 시스템이 이치에 맞는 것일까? △ 민간은행은 화폐를 생산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성찰과성장 두 번째, 화폐가 대출을 통해 만들어진다면 전체 화폐량은 부족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예를 들어 연 이자가 10%라고 할 때 1년간 우리나라 전체 대출이 총 1,000만 원이라고 가정하자.  1년 후 갚아야 한다면, 1년 후에는 시중에 1,100만 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전체 대출이 1,000만 원이기 때문에 시중에는 1,000만 원밖에 없다. 100만 원을 구하려면 추가적인 대출이 있어야 한다.  추가 대출로 만들어진 화폐로 남은 100만 원을 채워야 한다. △ 경제 성장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성찰과성장 사람들이 계속 돈을 빌려야 경제가 굴러가는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이 시스템이 유지되려면 경제는 끊임없이 성장해야 하고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해야 한다.  경제가 앞으로도 성장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사람들이 대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책은 국가가 낮은 경제성장률을 걱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률 비교 ⓒKDI 경제전망(2024.5.16) 갈무리 공공재(화폐)를 활용하여 민간은행이 우리의 노동력을 흡수하고(윈리금을 갚기 위해 사람들은 열심히 일한다), 충분히 많은 것들을 만들어냈음에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며, 국가는 분배가 어찌 되든 성장만 추구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특정 집단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중립적이라고 믿어왔던 화폐 시스템이 관여되어 있다. 이것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다. 흥미롭지 않은가? △ 화폐 시스템은 공평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성찰과성장 화폐가 그렇게까지 불평등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니! 이 주장이 논리적으로 맞는 것인지 의심하는 독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필자도 처음에는 ‘정말인가?’하고 의심을 했지만 읽을수록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현재 필자는 화폐 시스템만으로 그러한 불합리한 상황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충분히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21년에 번역, 출간된 책임에도 벌써 절판되었다는 사실이다. 역자에게 추가 인쇄 여부를 물어보았으나 더 이상 인쇄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너무나 아쉬운 상황이다. 관심이 있는 분은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것으로 하자. 일상 속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학습 놀이터'성찰과성장'작성: 신동주편집 : 박배민성찰과성장.com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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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노동분배 방식 상상하기 [처음 읽는 공동자원체제]
"임금 노동 외에 돈을 버는 방법이 없을까?" 성찰과성장은 '노동시장 너머 새로운 대안 제시하기'라는 주제 아래 3편 연재를 통해, 기존 노동시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노동 구조를 상상해 보고자 한다. 이 연재는 전통적인 노동시장의 구조와 내재된 문제점을 진단하고, 지속 가능한 노동의 형태를 모색한다. 들어가며 필자는 1편(당신은 왜 일 하나요)에서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고 그 과정에서 노동소외를 겪는다고 말했다. 노동소외는 '일'을 임금 획득을 위한 도구로만 취급하게 만든다. 이번 2편에서는 '일'을 임금 획득 수단이 아닌, 우리의 창의성을 발현하고 자아실현을 하는 과정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 '노동 분배 방식' 차원에서 말해보려고 한다. 여기서 노동 분배 방식이란 모든 인간이 노동을 한다고 전제하고 분야별로 얼마나 많은 인원이 어떤 일을 할지 결정하는 방식을 말한다. 조금 어렵게 느껴지지만 일단 천천히 글을 읽어보자.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어떤 과정을 겪으면서 일을 선택하게 되는지 생각해보자. 고등학생 시기 우리는 (부모님이 원하는) 돈을 많이 벌고 안정적인 직업을 얻기 위해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입학하려고 한다. 시기마다 인기 있는 직업이 다른데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직업 중 하나가 의사다. 공부 꽤나 하는 친구들은 최상위권 대학 합격을 포기하고 의대에 들어간다고 한다.  ▲  대한민국 최근 10년간 대학 진학률 ⓒ 성찰과성장 올해 초 1,343명이 의대를 가기 위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합격을 포기했다(김승직, 2024). 의대 외에도 교사, 소프트웨어 개발자, 컴퓨터 공학자 등 수입이 안정적이거나 4차산업혁명 시대에 인기 있는 업종들도 학생들 사이에서 뜨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본인의 재능, 흥미가 직업선택의 기준이 아니라 '안정적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느냐'가 기준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대학을 입학한 뒤 우리는 대학생활 2년~4년동안 취업준비를 한다. 높은 학점을 유지하고 수많은 스펙을 쌓는 그 모든 고생은 오로지 임금이 높은 기업에 들어가기 위함이다.   ▲  오로지 ‘임금’ 만을 위해 운영되는 자본주의 체제의 교육 ⓒ성찰과성장 왜 임금을 기준으로 직업을 선택하는가? 당연히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다. 반복적으로 말해왔듯 생산수단이 없는 우리는 임금이 없으면 먹고 살 수 없다. 그리고 임금이 많을수록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렇게 '일'은 임금 획득을 위한 도구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일의 내용, 일의 질이 아니라 '임금'이라는 노동 가격에 맞춰 일자리를 선택하고 기업에 선택되는 것.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노동 분배 방식이다. 자본주의의 노동 분배 방식 자본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데, 여기서는 온라인 백과사전의 내용을 인용하여 간단히 말해보자. 다음 백과사전에서는 자본주의를 "이윤의 획득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하는 경제활동"으로 정의하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자본이 상품유통 과정이나 고리대금업의 과정에서 이윤을 창출해 내는 기업조직이 아니라 생산과정에서 부가가치의 형태로 이윤을 창출해 내는 기업이 사회적 생산의 주류를 이루는 기업사회"라고 정의한다. 전자의 해석에 따르면 15~16세기 중상주의가 나타날 때부터 자본주의 사회라고 볼 수 있고, 후자의 해석에 따르면 산업혁명이 일어난 18세기부터 자본주의 사회라고 볼 수 있다. 필자는 후자의 시각에서 자본주의를 말할 것이다. 직장인에게 '노동소외'를 느끼게 하는 이 구조, 사장 밑에서 일해야만 하는 구조가 산업혁명 이후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거대한 기계가 만들어지자 그것을 소유한 사장(자본가)들은 단순 노동을 할 수많은 사람들을 고용했다. 고용된 사람들은 국가나 지주에게 토지(공용지)를 빼앗겨 생산수단을 잃거나, 대규모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과의 경쟁에서 진 수공업 장인들이었다. 그렇게 형성된 자본가-임금노동자의 고용관계는 일의 내용이 바뀌었을 뿐, 지금까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주류) 경제학적으로 표현하면 자본가-임금노동자의 관계는 노동시장에서의 수요자와 공급자 간 관계라고 볼 수 있다. 노동시장에서 수요자는 자본가이며, 공급자는 임금노동자이다. 그리고 노동의 가격은 임금으로 표현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노동시장에서 노동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분배된다. ▲  산업별 노동시장에서 노동수요와 노동공급에 의해 임금이 결정되면 사람들은 임금을 보고 어떤 산업에서 일 할지 결정하고 기업들은 결정된 임금에 맞춰 얼마나 고용할지 결정한다. ⓒ 성찰과성장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산업이 농업, 자동차산업, IT 3가지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하자. 각 산업은 노동시장을 따로 갖고 있다. 노동시장은 노동공급자, 노동수요자, 임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주류)경제학에서 사용하는 그래프로 표현하면 위와 같다.왜 그래프가 저렇게 그려지는지 설명해 보자면, 우선 공급자 입장에서 노동 공급자는 산업의 임금이 올라가면 그 산업에 고용되려고 노력하고, 반대로 임금이 떨어지면 임금이 더 높은 다른 산업을 찾으려고 한다.즉 임금이 높아질수록 노동공급자는 증가한다. 노동수요자인 기업은 아무도 일하려하지 않을 때 임금을 높게 제시하고, 누구나 일하려고 할 때는 임금을 낮게 제시한다(사실 경제학 이론상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수요는 좀 더 복잡하게 결정되지만, 여기서는 간편하게 가정하겠다). 즉 노동자의 공급이 적어질수록 기업들이 제시하는 임금은 높아진다. 기업들의 수요와 노동자들의 공급을 합하여 표현한 것이 위의 그래프이다. 두 그래프가 만나는 지점, 즉 서로 원하는 임금이 동일해질 때 고용관계가 발생한다.이렇게 각 산업의 노동시장에서 임금이 결정되면 사람들은 임금을 보고 어떤 산업에서 일할지 결정한다. 과거 자동차 산업이 잘 나갔을 때 농업보다 자동차 산업의 임금이 높았고, 그 결과 자동차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농업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많아졌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IT 산업의 임금이 높아지자 이제 사람들은 IT 업계에서 일하려고 한다. 물론 이들이 모두 고용되느냐는 별개이다. 기업은 자신이 지불하려는 비용에 맞추어 고용 인원을 결정한다. 그렇게 시장에서 정해진 임금에 따라 노동이 분배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노동분배 방식이다.노동시장에서 임금으로 일을 분배한다는 것에는 중요한 전제가 숨어있다. 모든 사람은 동등한 위치에 있으며, 따라서 모든 사람의 노동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동일하다는 것은 어떤 '신분'인지와 관계없이 모든 노동을 동일하게 취급한다는 의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평등한' 방식으로 노동시장에서 노동을 분배한다. 자본주의 이전의 노동 분배 방법 그렇다면 자본주의 이전에는 노동이 어떻게 분배되었을까? 기본적으로는 '신분'에 따라 노동을 분배하였다. 조선시대로 돌아가보자. 조선시대에는 양인과 천민이라는 신분이 있었다. 시기에 따라 정도는 다르지만 천민은 육체노동을 해야만 하는 존재였고, 양인도 양반이 아닌 이상 농사를 짓고 세를 바쳐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과거시험을 통해 관료가 된 사람과 왕은 육체노동보다는 나라를 다스리고 정책을 만드는 정신노동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권력을 가지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양반도 생겨났다. 양반은 (넓은 의미에서) 양인 중 하나지만, 재력과 정치력을 보았을 때 당시 하나의 계급이었다고 볼 수 있다(유승원, 2007). 이러한 신분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노동이 동일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천민은 양인이 하는 일을 할 수 없고 양인은 천민이 하는 일을 할 수 없다(하지 않는다). 사람의 신분에 따라 할 수 있는 노동이 다르므로 '모든 사람의 노동이 동일하다'고 가정하는 노동시장은 존재할 수 없다. 한편, 조선시대 농민 사이에는 마을을 중심으로 협동과 협력의 문화가 있었다. 조선 후기 이앙법(모내기)이 보급된 이후로 보편적 마을 문화로 정착된 두레는 협동과 협력의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동 노동 조직이라고 볼 수 있다(최순규, 2021). 이앙법은 모판에서 모를 따로 싹을 틔운 뒤 논에 옮겨 심는 방식인데, 한 가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농민들은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마을 공동노동 조직인 두레를 만들었다. 또 조선 후기 마을 단위의 공동납체제가 만들어지면서 세금 납부를 위한 마을 단위 공동 경작지가 탄생하였는데, 공동 경작지를 운영하기 위해서라도 공동 노동 조직이 필요했다(최순규, 2021). 당시에는 교통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하여, 외부의 자원과 노동력을 끌어올 수 없었기 때문에 서로의 노동을 나누고 함께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두레는 구성원 간의 수평적 관계를 추구하였고, 구성원의 노동을 분배할 뿐만 아니라 마을 단위의 자치기구 역할도 하였다.  ▲  과거에는 신분과 공동체가 노동을 분배하였다면 지금은 노동시장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성찰과성장  정리하면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는 신분과 공동체가 구성원의 노동을 분배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노동 분배의 방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화되었다. 조선시대의 신분제는 임진왜란 당시 노비들이 의병 활동으로 공을 세워 면천의 특권을 누리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후 재정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양곡을 바치는 대가로 신분을 상승해 주는 납속책을 강화하면서 면책 받은 노비의 숫자가 늘어났다.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신분을 사고 파는 지경에 이르고, 노비의 봉기가 자주 발생하면서 신분의 의미가 점차 희미해졌다. 1886년 고종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노비세습제를 폐지하였고, 동학농민운동 이후 1984년 갑오개혁에서는 신분제 자체가 폐지되었다(필진네트워크, 2006).한편 새로운 문물, 특히 철도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했다.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면서 설치한 철도는 조선사람의 노동을 착취하고 자원을 수탈하는 수단이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이동을 자유롭게 해주는 교통수단이 되기도 했다.또한 1910년대 일제가 진행한 토지조사사업은 지주에게 '배타적 소유권'을 승인함으로써 지주가 농민들의 경작권(본래 땅을 경작할 수 있는 권리는 토지를 소유하는 권리와 별개로 존재하였다. 땅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거기서 경작하고 있는 농민들을 토지 소유자가 마음대로 내쫒을 수 없었다)을 무시할 수 있도록 했으며 마을 공동 토지도 개인이 소유하도록 하여 마을 공동체를 파괴시키는 데 영향을 주었다(조수진, 2022). 토지라는 주된 생산수단을 빼앗긴 농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도시로 이동했다. 마을 공동체는 사라져버렸다. ▲  토지의 소유권과 경작권을 구별해 생각해보자. ⓒ성찰과성장    조선시대 신분제 폐지와 마을공동체의 축소는 새로운 노동 분배 방식을 요구했다. 일제강점기에는 폭력과 수탈, 과도한 노동 착취 방식으로 노동이 분배되었으나 해방된 후 한반도 남쪽에 위치한 대한민국은 자본주의를 선택하면서 (비록 국가가 노동을 강제 동원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노동시장이 대부분의 노동을 분배하게 되었다. 새로운 방식에 대한 상상 신분제 그리고 다소 폐쇄적인 마을 공동체에 의한 노동 분배 방식은 자유롭고, 평등하고, 민주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우리 세대가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과거의 방식에서 한 가지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함께 마음과 힘을 합하는 것, 바로 협동이다. 협동을 통해 일을 분배한다는 것은 동등한 위치에서 어떤 일을 할지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임금이 아닌 민주적인 논의 과정을 통해 각 구성원의 일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협동'이라는 단어가 너무 구시대적이고 진부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양극화가 심화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협동은 과거보다 더 필요한 가치가 된다. 부유한 이들은 금융과 부동산으로 더 많은 돈을 끌어모으지만, 애초에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난해진다. 국가가 가난한 이들을 충분히 지원해주지 못한다면, 남은 것은 서로의 얼마 없는 자원과 능력을 모아 함께 살아가는 방법뿐이다. ▲  노동시장이 없어진다면 어떤 사회가 될까?ⓒ 성찰과성장  물론 우리는 협동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끝없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느라 주변을 돌보지 못한다. 또한 능력주의는 가난한 자를 '실패한 자'로 낙인찍는다. 사람들은 노동시장에서 실패한 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에만 매몰되어 있다.하지만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상위 1%가 되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 SKY 입학생의 절반 이상이 고소득 가정 출신이라는 사실은 이제 너무 유명해서 사례로 넣을 필요도 없다(박지원, 이정한, 2021).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 주변 도움없이 홀로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면 홀로 남아도 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필자는 협동의 가치를 한번 고민해보는 것을 추천한다.한편 '협동'과 함께 추구해야 할 가치는 '자율성'이다. 자율성이란 "독립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개인의 감각. 즉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 또는 다른 사람의 통제로부터의 독립"(다음 백과사전)을 말한다. 이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직장인은 '일'에 대한 자율성을 회사에 빼앗겼다고 볼 수 있다. 일을 하면서 행복하고 싶다면 우리는 일에 대한 자율성을 되찾아와야 한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  당신의 일은 자율적인가? ⓒ 성찰과성장  '협동'과 '자율성'의 가치를 모두 추구하면서 일할 수 있다면 노동하는 시간이 더이상 지금처럼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다. 협동을 통해 혼자 하지 못했던 일을 해내고, 상사의 명령이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논의를 통해 일을 나누며, 자율성을 가지고 하고 싶은 노동을 한다면 일하는 시간이 오히려 보람차고 행복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 정말 그것이 가능할까? ▲  우리나라에선 아직 낯설지만, 협동조합은 국제연맹(ICA)도 존재한다. ⓒ성찰과성장  우리는 '법적으로' 그러한 조직을 만들 수 있다. 바로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의 모든 조합원은 동등한 위치에서 논의와 협력을 통해 자신의 일을 결정할 수 있다. 아쉬운 부분은 협동조합은 아직 비주류이며, 일반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모든 조합원의 협력과 협동을 통해 운영하는 방식'이 오·남용되기도 한다. 또한 협동조합은 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충분히 만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업과 불안정한 일자리로 삶이 파괴된 사람들을 달래주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그래도 희망은 있다. 임금노동자를 고용해서 상품을 생산하는 자본주의적 방식도 처음 등장할 때부터 전면적으로 도입된 것은 아니었다. 조금씩, 서서히 만들어졌다. 협동조합 방식이 일방적 기업 방식보다 인간의 삶에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증명해낼 때, 협동조합이 주류가 될 수 있다. 나오며 임금을 기준으로 일을 결정하는 것에 우리는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임금 중심 노동 분배' 방식에서 빠져나오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어렵게 대기업에 들어간 청년이 1~2년 만에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어렵사리 입사했다가 퇴사하고 구직 포기자가 된 청년이 증가하고 있다. ▲  니트청년은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성찰과성장  필자는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노동 분배 방식에 대한 새로운 저항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 이상 임금을 위해 일하고 싶지 않다는 저항. 하지만 저항만으로는 답을 구할 수 없다. 저항을 넘어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앞서 '협동조합'을 제시했지만 이것은 대안의 일부일 뿐이다.다음 편에서는 협동조합을 포함해, 더 큰 대안에 대해 얘기해본다. 참고문헌 필진네트워크, "[필진] 120년 전 오늘, 노비세습제 폐지되다", 한겨레, 2006.02.06. 김창수, "[라이프&경제] 아는 만큼 달라지는 학자금 준비", 한국교육신문, 2023.05.15. 김승직, "1343명 의대 가려고 SKY 합격도 포기…최근 5년 내 최고", 2024.01.22. 유승원, "조선시대 '양반' 계급의 탄생에 대한 시론", 역사비평, 2007 최순규, "조선 후기 두레 공동체에 나타난 평화적 성격에 대한 재조명", 신학과 학문, 2(2012), 2021 조수진, "빼앗긴 커먼즈, 되찾는다면'… 마을목장으로 상상하는 미래", 제주투데이, 2022.08.02. 박지원·이정한, "강남구 '107' vs 도봉구 '2'… 부자동네 서울대 싹쓸이 [연중기획-끊어진 계층이동 사다리]", 세계일보, 2021.05.19.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배달해드립니다 - 창작그룹 '성찰과성장'글 작성 및 편집 : 신동주, 박배민성찰과성장.com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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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의 뜻을 지우는, 유한양행 이사진의 위인설관(爲人設官)
*1편 '유한양행 창업 이야기, 유일한 정신에 대해'와 이어 지는 콘텐츠 입니다. 위인설관(爲人設官) : 사람을 위해 벼슬 자리를 일부러 만듦. 3월 15일 주주총회의 안건, 회장과 부회장직 신설 유한양행은 지난 2월 14일, 주주총회 소집 공고를 냈다. 한 개 안건이 논란이 됐다. 정관 변경 건이었다. 현재 유한양행 정관 33조 2항을 변경한다는 것이다. 기존 정관 제33조 2항에는 “이사회 결의로 이사 중에서, 사장, 부사장, 전무이사, 상무이사를 선임할 수 있다.”로 되어 있다. 이를 “이사회 결의로서 회장, 부회장,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를 선임할 수 있다.”로 바꾸자는 내용이었다. 회장과 부회장직 신설이었다. 이는 곧 이사회에서 결정만 하면, 회장, 부회장을 선임할 수 있다는 말이다. 28년 전에 없어진 회장직을 다시 살리는 이유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고, 이것이 유한양행을 사유화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됐다. 직전 회장은 연만희 유한양행 고문이었고, 당시엔 정관에 회장・부회장도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28년이 지나서 다시 기한조차 명시되지 않은 회장?부회장직 신설하는 저의에 대한 의문 속에서, 이는 수년 간 착실하게 준비된 된 것이라는 목소리기 나왔다. 그 시작은 2022년, 유일링 고(故)유일한 박사 손녀의 유한재단 이사 퇴출이었다. 쫓겨난 고(故)유일한 박사의 손녀 유일링(유은영), 견제와 균형 붕괴의 초석 고(故)유일한 박사의 유산은 기업 소유와 경영의 분리이자,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기 위해, 고(故)유일한 박사는 1969년 친아들을 유한양행 경영으로부터 손 떼게 했으며, 경영권을 전문경영인에게 넘겼다.  자식들에게 유한양행 주식을 1주도 남기지 않음으로써 주식을 통한 경영권 소유를 방지했다. 또한, 모든 주식을 교육기금에 기부하며 자식들은 이 기금 관리에만 힘쓰게 했다. 이 기금은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이며, 그의 자식들은 이곳 경영에만 참여할 수 있다.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이 유한양행 대주주라는 점에서,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은 유한양행 결정에 ‘반대표를 행사할 수 있다.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하는 이유다. 견제와 균형을 위해선 유한재단 이사진의 역할이 중요하다. 의사결정은 그들 몫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2년 1월 유일링 이사는 유한재단 이사로 재선임 되지 않았다. 임기 만료가 이유였다. 당시 유일링 이사를 포함해 4명의 임기가 종료 시점이었지만, 유일링 이사만 재선임되지 않았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스스로를 기업가가 아닌 교육자라고 말했던 만큼, 유한재단은 유일한 박사의 정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차원에서 그의 유일한 손녀인 유일링 이사가 이사직에 재선임되지 않은 건 당시 큰 논란이었다. 또한,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을 이어야 한다는 면에서 그의 후손이 유한재단에 남아야 한다는 시각이 강했다. 당시 유한재단 이사진들은 “유일링 이사가 미국에 있어서 재단 업무를 보기 어렵다" 고 말했다. 해임된 유한재단의 이시진은 전, 현직 유한양행 관계자로 채워졌다. 현재 유한재단 이사진 중 유한양행 전・현직 관계자는 5명 이상이다. 조욱제 (현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 이정희(전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 송두영(전 유한양행 재무팀 이사), 김성섭(전 유한크로록스 대표이사・사장), 정수길(전 쉬랑프라우 대표이사・사장). 유한크로록스는 유한양행의 가족회사이며, 쉬랑프라우는 유한양행의 합작 회사다. 유한재단 이사진이 전, 현직 유한양행 관계자와 가족회사, 합작회사 인원들로 채워졌다는 면에서 고(故)유일한 박사가 말했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은 무너진 것과 진배없다. 유한양행 경영진과 이사회를 견제하기 위해선, 대주주가 견제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대주주인 유한재단에 유한양행과의 특수 이해관계가 없어야 한다. 공익법인의 설립ㆍ운영에 관한 법률 5조 5항에서는 공익 법인의 현역 이사진 중 특수관계인을 5분의 1 이상 둘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단을 통한 기업 지배 방지를 위해서다. 특수관계인인 유일링 이사가 2022년 축출되고, 유한양행 관계자로 채워졌다. 유한재단의 유한양행 견제 능력에 의문이 드는 이유다. 한편, 유일링 이사는 유한학원 이사진에서도 해임될 뻔했다. 2023년의 일이다. 당시, 유한학원 이사진 중 유한공고 이사진들이 막아줘서 가까스로 이사직을 유지한 바 있다. 고(故)유일한 박사 지우기 논란과 이사진의 기업 사유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유한양행 임직원  “유일한 박사님은 경영과 소유를 분리했고, 사회환원을 말했다.”  “회장 부회장 직제 신설로, 기업 사유화 안 돼" 주주 소집 공지가 올라온 2월 14일 이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서는 유한양행 직원들의 게시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현 경영진들이 유한양행을 사유화하려고 한다는 비판이었다. 직원들은 유한양행 경영진의 비리와 경영 판단 오류, 이정희 전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의 채용 비리와 부하 직원 전 부인과 재혼하는 등 도덕성 문제들을 알리고, 부디 3월 15일 주주총회에서 반대 투표 해 줄 것을 요청했다. 유한양행 임직원의 평균 근속연수는 12년 8개월이다. 남성은 13년 9개월, 여성은 9년 7개월이다. 이는 국내 제약 바이오사 평균 근속연수가 5.25년인 것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또한, 국내 200대 기업 평균 근속연수인 9.45년보다도 높은 수치다. 근속연수 측면에서 직원들의 애사심이 높다는 걸 추측할 수 있다. 또한, 트럭시위는 전체 임직원 중 6분의 1에 해당하는 300명이 자발적으로 모금해서 이루어진 시위였다. 540만 원가량을 모아서 진행한 시위다. 높은 근속연수의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시위까지 벌인다는 면에서, 유한양행 직원들이 회장・부회장직 신설에 큰 우려를 하고 있고, 큰 사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한양행 주주총회, 95% 찬성으로 회장・부회장직 신설 통과 3월 15일 열린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직접 한국에 방문했다.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주주총회에서 "오늘 하고 싶은 말은 할아버지의 뜻과 정신이야말로 회사가 나아가야 할 가이드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모든 건 이를 따라 얼마나 정직하고 거버넌스(지배구조)에 도움이 되는가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의 반대 의사 표명에도 의결권 행사자 68% 중 95%의 찬성으로 모든 안건은 원안대로 통과됐다. 회장, 부회장직이 신설되고, 이사회는 회장과 부회장을 임명할 수 있게 됐다. 회장, 부회장에 누가 임명되느냐가 벌써 주목받고 있다. 이정희와 조욱제 이사 모두 자신들은 “안 한다. 명예를 건다.”고 말했다. 회장을 안 할 거면, 이사회 의장은 왜 계속 하나.  “이미 경영진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이정희 현 유한양행 이사장은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으로 총 6년 임기를 마치고, 돌연 기타비상무이사로 등재해 3년간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 자리를 맡았다. 전문경영인 6년 이후 회사를 떠나는 것이 관행인 가운데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3월 15일 주주총회에서 또다시 3년 연임을 안건으로 올려 통과시켰다. 합계 12년을 이사회 의장 자리에 있는 셈이다. 이정희 현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이 유한양행 대표로 재직하던 시절, 이미 일감 몰아주기와 채용비리가 있었다. 조욱제 현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이 자기 아들을 유한양행 관계사에 취업 압력을 넣었고, 또한, 유한양행 주력 제품 판매 대리점 대표의 아들을 유한양행 2022년 공채에 뽑으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었다. 해당 내용은 국민신문고에 접수되어 드러났지만, 조욱제 대표는 “지시한 바 없다"고 반박한 바 있다. 반면, 압력을 받았다는 A씨는 “조 대표의 압력이 없었다면, 학점 2점대 사람을 뽑지도 않는다.”고 반박했다. 유한양행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는 “유력 병원장이나 정부 관계자 자녀, 기관장 자녀 등이 채용된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며 “대주주인 유한재단이 ‘경영과 소유를 분리한다’는 원칙으로 주주권 행사를 사실상 하지 않는 바람에 경영진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모습에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대표,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이석연 전 법제처장 등 ‘유한을 사랑하는 시민사회 인사 대표'들은 “유한양행은 국민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아름다운 기업 문화의 상징”이라며 “(유한양행 경영진은) 유일한 박사의 창립 이념과 기업가 정신을 잊지 않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사람을 신뢰한 고(故)유일한 박사 고(故)유일한 박사는 “한 사람을 믿고 영입하면 그 사람과 거의 일생 동안 함께 일할 생각을 가지는 편이었다.” “그래서 창업 시기의 직원들이 20년, 30년 오랫동안 유한양행을 지키는 것을 보게 된다.”*  이정희 현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은 1978년에 유한양행에 입사했고 2015년에 대표이사・사장으로 취임했다. 조욱제 현 유한양행 대표는 1987년에 유한양행에 입사했고, 2021년에  대표이사・사장으로 취임했다.  이정희 의장은 45년 동안 유한양행에 재직했고, 조욱제 대표는 37년간 재직했다. 모두 신입부터 시작해 전문경영인까지 올라간 사람들이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구축했던, 체제의 증인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더더욱 고(故)유일한 박사가 만들고 추구했던 정신을 추구해야 한다. 현재의 의혹들과 경영 행태 어디에 유일한 정신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기업의 생명은 신용이다.”** 라고 말했다. 현 이정희 이사회 의장과 조욱제 대표는 직원들에게 신용을 잃었다. 고(故)유일한 박사,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나라 기업 지배구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독립성이다. 이사회 독립성은 경영진을 객관적으로 감시 할 수 있는가다. 독립성 없는 지배구조는 한 두 사람이 기업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만든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만든 유한양행의 지배구조는 경영과 소유의 분리했고,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했다. 한두 사람의 결정으로 기업이 움직이고, 사익 추구의 도구로 전락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국내 최초로 종업원주주제를 채택한 것도, 국민에게 시장가의 7분의 1 수준으로 주식 공개를 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기업의 주인은 누구이냐는 물음에, 고(故)유일한 박사의 답변은 “국민과 종업원”이었다. 이 체제를 위해 균형과 견제를 제도화한 것이, 그의 유산이다. 이 유산을 유지를 위해 그에 걸맞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했고, 그 때문에 자식에게도 그 자리를 물려주지 않은 것이다. Ⓒ 한량, 서울시 동작구에 위치한 유한양행 본사 그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선 위인설관(爲人設官)이 아니라, 위관택인(爲官擇人)**** 해야 한다. 현재 유한양행 이사진의 행동은 위인설관(爲人設官)이다. 당장 필요도 없는 회장과 부회장직을 추후 필요하니까 만든다는 논리는 오히려 의심만 키울 뿐이다. 오히려 고(故)유일한 박사의 정신을 가장 잘 계승하고, 유한양행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위관택인(爲官擇人) 해야 한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유한양행의 로고로 버드나무를 택했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모진 행태에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끈질기고, 무성하게 대성하기 바란다는 뜻이 담겨있다. 고(故)유일한 박사의 정신이 정말 무성하게 대성했으면 좋겠다. Ⓒ 한량, 유한대학교 내에 있던 버드나무 * ⟪유일한 평전⟫ (조성기/ 작은씨앗/ 2005) p.237, 289 ** ⟪위대한 선각자 유일한⟫ (김윤섭, 최상후/ 유한양행) p.23 *** ⟪유일한을 기억하다⟫ (민석기/ 중앙북스/ 2015) p.44 **** 위관택인(爲官擇人) : 관직을 위하여 인재를 택함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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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 창업 이야기, 유일한 정신에 대해
국내 ‘유일한 정신’ 지난 3월 15일, 유한양행 본사에서 주주총회가 열렸다. 여느 때보다 이목이 쏠렸다. 직원들은 주주총회 안건에 반발해 트럭시위를 벌였고, 유한양행 창업자 고(故)유일한 박사의 손녀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미국에서 직접와서 주주총회 안건에 반대 의사를 표했다. 주주총회는 주식회사가 1년에 한 번 주주들에게 회사 주요 사항들을 의결하고,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자리다. 배당금, 이사회 이사 선임, 최고경영자(CEO) 선임 등 주요 사항들을 결정한다. 금번 주주총회에서는 유한양행 정관변경이 핵심이었다. 이 정관 변경이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이었던, 경영과 소유의 분리 원칙을 위반하는 초석이라는 의심이 나온다. 유한양행 직원들의 주주총회 반대 트럭시위에는 “유일한 박사님께서는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 일가족 그 누구도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으셨다.”고 쓰여있었다. 유한양행 이사진이 그 뜻을 파괴하고, 필요도 없는 사람을 임명하기 위해 직책을 만들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한양행, 창업자의 뜻을 계승하기에 존경받는 기업 유한양행은 고(故)유일한 박사가 창업한 제약회사다. 22022년 기준 매출액 약 1조 8천 억원, 영업이익 약 360억 원으로 국내 제약회사 1위다. 또한,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제약회사 부문에 20년 연속 1위로 선정됐다. 유한양행이 존경받는 이유는 국내 1위 제약회사여서가 아니다. 창업자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을 계승하고,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의 삶과 경영 철학은 이익이 아닌, 사회에 있었다. 때문에 그를 사회사업가라고 부른다. 고(故)유일한 박사와 같은 뜻은 현재까지도 국내에 전혀 없다. 고(故)유일한 박사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하여야 한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생전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하여야 한다.”* 라며 “이윤의 추구는 기업 성장을 위한 필수 선행조건이지만 기업가 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한 수단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자신의 신념과 말을 행동으로 옮겼다.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신념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교육기금에 기부한 것으로 실천했다. 그는 생전 재산 중 양복 세 벌과 구두 두 켤레를 제외하고 모두 사회에 환원했다. 자식들에게도 재산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1963년 9월에는 연세대학교에 1만 2천 주를 기부했고, 5천 주는 보건장학회에 기부했다.**  또한, “유한양행 주식 14만 941주는 전부 한국 사회 및 교육발전을 위한 기금에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유언대로 14만 941주의 주식은 교육기금에 기부됐으며, 현재는 ‘유한재단’과 ‘학교법인 유한학원’의 재산으로 남아 있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교육에 힘쓴 이유는, 일제강점기 해방 직후 나라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실제 그는 생전 자신을 경영인보다 교육가라고 말했다. “그가 외국으로 나가서 입국할 때 출입국 신청서 직업란에는 언제나 ‘Educator(교육자)’라는 영문 글자가 쓰여 있었다.”**  세 학교는 유한양행 주식 배당금을 통해 교육, 장학, 사회복지 사업을 하고 있다. 유한재단은 목적 사업비 90%가 유한양행 주식 배당금에서 나온다. 유한재단은 2022년 유한양행 주식 배당금으로 총 43억 8천 4백 5십 9만 7천 원을 받았고, 배당금으로 장학사업과 사회복지사업, 교육사업, 재해구호 사업 등을 하고 있다. 유한대학교 전경 Ⓒ 한량 고(故)유일한 박사 “기업은 개인 것이 아니라, 종업원과 국민의 것" 장학사업에만 몰두했다면, 고(故)유일한 박사가 여전히 존경받고, 직원들이 나서서 트럭시위까지 벌이 진 않을 것이다. 그는 유한양행이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민과 종업원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한양행의 첫  주식상장 시에 이를 실천했다. 유한양행은 주식상장으로 “창업 이래 10년간 이어져 온 기업의 개인 경영이 막을 내리고 새롭게 법인체제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것은 그 당시 한국 상황에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가장 획기적인 건 주식상장의 가격과 배분에 있었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국내 최초로 ‘종업원 주주제'를 실시했다. 종업원 주주제란, 종업원이 회사 주식을 특별한 목적이나 방법으로 소유하는 제도를 말한다. 종업원의 애사심을 증진이 주목적이었고, 최근에는 근로자의 재산형성으로 촉진제의 하나로 인식된다. 실제 국내 대기업은 종업원에게 회사 주식을 상여금으로 주기도 한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종업원 주주제’를 통해, 회사 주인이 개인이 아님을 말했다. 이를 위해 “종업원들에게도 액면가 10퍼센트 정도의 가격으로 주식을 골고루 분배해주었다.”** 주주 자본주의 하에서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고 인식된다. 그 차원에서 보더라도, 회사 주식을 종업원들에게 값싸게 분배했다는 건, 의미가 있다. 한 개인이 회사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종업원 주주들과 함께 경영한다는 의미다. 한편, 고(故)유일한 박사는 국민 역시 싼 값에 유한양행 주식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주식상장 당시 시장가의 7분의 1 수준으로 주식 가격을 책정했다. 연만희 전 유한양행 고문은 고(故)유일한 박사와 주식 가격 책정 일화를 소개한 바 있다. 연만희 고문은 유일한 박사가 당시 주식 가격을 100원으로 책정했는데, 이는 당시 시장 가격인 600~700원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이라며 만류했다. 그러자 유일한 박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큰소리로) 내가 돈 벌려고 주식을 상장하는 줄 알아요? 상장하는 이유는 유한이 한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 국민의 것이기도 하기에 공개하려는 것입니다. 도대체 정신이 있는 겁니까? 당장 여기서 나가시오.”*** 유한양행 주식 상장은 당시 우리나라에 만연했던 부정부패에도 합리적으로 경영되고, 민주적으로 경영된다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당시 “사회는 어디를 보아도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이에 유일한 가사는 이러한 사회 풍조에 도전하기라도 하듯 유한양행이 합리적으로 경영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주식 공개를 결정"**한 것이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정치권의 불법자금을 지원 요청을 단칼에 거절하고, 그에 따라 강력한 세무조사를 받았다는 건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또한, 세무조사에서 장부가 너무 깨끗하고, 세금을 정직하게 낸 것만 증명되어 모범 납세자로 도리어 상을 받은 건 더욱 유명하다. 현재 유한양행의 주요 대주주로는 유한재단, 국민연금, 유한양행, 유한학원이 있다. 유한재단 15.7%, 국민연금 10.1%, 유한양행 8.5%, 유한학원 7.7%이다. 회사가 개인 소유와 사익 추구의 도구가 아니란 걸 보여주고, 체계화하기 위해 고(故)유일한 박사는 일가족이 유한양행 경영에 참여할 수 없도록 했고, 이를 위해 유한양행 주식 단 1주도 자식들에게 남기지 않았다. 1969년에는 자신의 큰아들마저도 유한양행에서 내보냈다. 현재도 유한양행 이사진 중 그의 후손은 없다. 경영권도 전문경영인에게 양도했다.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국내에서 드문 전문경영인체제를 도입한 것이다. 고(故)유일한 박사, 기업 소유와 경영의 분리 강조, 전문경영인체제 도입 유일한 박사는 제 44대 주주총회에서 회사 경영권을 조권순 당시 전무에게 넘겼다. 회사 소유와 경영의 분리 이념을 완성한 것이다. 출처 : ⟪나라 사랑의 참 기업인⟫ (유한양행/ 1995) p.335 고(故)유일한 박사는 제44대 주주총회에서 회사 경영권을 당시 전무였던 조권순에게 양도했다. 이때부터 회사 내부에서 승진을 거듭해 사장직에 오르는 건 유한양행의 관행이 됐다. 또한, 그 임기조차 3년 중임제로 최대 6년까지만 할 수 있다. 그렇게 임기를 마친 사람들은 회사를 떠나는 게 관행이었다. 그것이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을 이어가던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고(故)유일한 박사의 유산을 사유화하는 유한양행 이사진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은 기업이 개인의 사익 추구 도구가 아니며, 기업의 이익이 사회를 위해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시스템 마련이 고(故)유일한 박사의 업적이다. 이 업적이 당대 사회 분위기와 정반대되고, 아무도 생각지 못했었다는 점이 그가 존경받는 이유다. 경영과 소유의 분리는 우리나라 지배구조에서 더욱 보기 드물다. 오히려 창업자 일가의 경영권을 강화하는 움직임이 더욱 강하다. 정치권 역시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비합리적” 이라며 소유와 경영의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이런데, 독재정권 당시 모든 걸 추진했던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다음 글에서는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어떻게 무너져갔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3월 15일에 진행된 유한양행 주주총회를 자세히 살펴보며, 유일한 정신이 어떻게 무너져 갔는지 살펴볼 것이다. *2편 '창업자의 뜻을 지우는, 유한양행 이사진의 위인설관(爲人設官)' * ⟪위대한 선각자 유일한 박사⟫ (김윤섭, 최상후/ (주)유한양행) p.23, 25 ** ⟪유일한 평전⟫ (조성기/ 작은씨앗/ 2005) p.237, 308, 309, 312, 314 *** ⟪유일한을 기억하다⟫ (민석기/ 중앙북스/ 2015) p.44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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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일하나요 [처음 읽는 공동자원체제]
"임금 노동 외에 돈을 버는 방법이 없을까?" 성찰과성장은 '노동시장 너머 새로운 대안 제시하기'라는 주제 아래 3편 연재를 통해, 기존 노동시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노동 구조를 상상해보고자 한다. 이 연재는 전통적인 노동시장의 구조와 내재된 문제점을 진단하고, 지속 가능한 노동의 형태를 모색한다. 들어가며 이 글은 ‘왜 우리가 하루 24시간 중 8시간 이상을 원치 않은 곳에서 원치 않은 일을 하며 살아가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으로 시작되었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강제적으로 일을 하는 이유는 말 그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려받은 자산이 있다면 ‘먹고사니즘’에 대한 고민이 덜 하겠지만 자산이 없는 사람은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어떤 일을 하고 돈을 벌지 결정한다. 그리고 그 중 약 80%는 누군가의 밑에서 임금을 받으면서 살아간다(2024년 1월 기준 비임금근로자는 22.7%, 임금근로자는 77.3%이다). ▲ 우리나라는 임금근로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성찰과성장 강제적인 일 직장인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누군가의 밑에서 일을 하게 되면 그 일은 강한 강제성을 띌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 ‘누군가’는 우리가 흔히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으로, 이들은 직원을 항상 감시하고 통제하려 한다.  사무직으로 일했던 본인의 경험을 꺼내보자. 사장(또는 관리자)은 심심할 때마다 사무실로 조용히 들어와 돌아다녔으며(일을 제대로 하는지 감시하기 위해 온 것처럼 느껴졌다), 언젠가는 오래 쉬는 직원이 많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20분 이상 자리에서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 사장의 ‘꼼꼼한’ 감시는 필요악일까? ⓒ성찰과성장 사장의 ‘꼼꼼한’ 지시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 구성원의 의욕을 꺾는데 영향을 끼쳤는데, 그 지시를 유발한 장본인(너무 많이 쉬고, 꼼수를 부려서 일을 안하던 사람)들이 그 후에도 태도를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지시를 지키는 사람은 기존에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던 직원들이었고 이들은 괜히 회사에 대해 없던 불만만 품게 되었다. 사장의 감시와 통제는 수익을 얻기 위한, 그리고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위임을 안다. 하지만 이 행위 때문에 회사에서 8시간 이상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직장인은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더라도 노동 의욕이 꺾이기 마련이다. 거기다 직장인이 회사에서 만들어낸 모든 생산물은 사장이 소유(정확하게는 회사가 소유하는 것이지만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장은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하기 때문에 일에서 느끼는 효능감은 점차 사라진다.  그럼에도 직장인은 회사를 그만둘 수 없다. 그저 매월 통장에 급여가 입금되는 것을 바라보며 산다. 일을 그만두면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 시대별 가구 평균 근로소득 대비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 비율 ⓒ성찰과성장 외환위기 이후 불안정일자리가 확대되고 부동산 가격이 임금을 저축하는 것으로는 구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아짐에 따라 직장인의 비애가 더욱 심해졌다.  특히 부동산 가격 상승은 가계부채를 높이는 데 영향을 주었다(박대근, 최우주, 2015). 통계청 데이터(주택매매가격지수, 아파트 규모별 매매 실거래 평균가격 등)를 활용하여 구한 수도권 85㎡ 아파트의 매매 가격은 2000년 1억 3천 6백만 원으로 2000년 근로자가구의 월 평균 근로소득 200만원의 68배 정도 되는 가격이었으나, 2022년에는 6억 2천만 원으로, 2022년 월 평균 근로소득 470만 원의 132배 정도 되는 가격으로 올랐다. (참고로 2022년 서울 85㎡ 아파트 가격은 가구 월 평균 근로소득의 230배이다) ▲ 가계의 월 평균 근로소득을 전부 모아도 서울 아파트를 구입하려면 19년이 걸린다. ⓒ성찰과성장 근로소득의 절반을 부동산 구입을 위해서만 저축한다고 가정해도 2022년 기준으로 22년을 모아야 수도권 아파트 한 채를 겨우 구입할 수 있다.  이는 아파트 구입을 위해서는 사실상 부채를 져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근로소득 470만 원이 평균값이라는 것을 잊지말자. 소득분위의 60%는 평균 근로소득에 미치지 못한다. 대부분 사람은 자가구입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세로라도 살기 위해 부채를 지니고 거주할 곳을 얻는다.  과거 경제성장 시기 직장인은 자유시간을 위해 직장생활을 버텼지만 지금의 직장인은 부채를 갚기 위해 직장생활을 버틴다(장훈교, 2019). ▲ 가계 대출의 위험을 알리는 뉴스 (가계대출 '1086조' 7개월 연속 증가..경제위기 뇌관 '빚폭탄' 터지나 - [핫이슈PLAY] MBC뉴스 2023년 11월 9일) ⓒMBC 뉴스 유튜브 갈무리 사장이 된다면? 필자가 직장인이었을 때 겪었던 일들, 그리고 주변 직장인 지인의 생각들을 종합하여 알게된 것은 많은 직장인은 (당연하게도) 출퇴근을 싫어하고, (생각보다) 회사에 애정이 없으며, 회사가 성장하든 말든 자신의 일자리와 임금에 타격을 줄 정도가 아니라면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사장의 자녀로 아버지 밑에서 일하고 있는 또 다른 지인의 생각과 행동은 완전 다르다. 그는 업계 특성상 하루에 12시간을 근무하며 간혹 일이 몰렸을 때는 밤 12시까지 일하기도 하고, 일요일이나 연휴 때도 출근 한다(이 업계에서 대부분 그렇게 일한다).  기본적인 노동 강도가 매우 높음에도 이 지인은 동료 직원보다 더 빠르게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한다. 그는 일이 들어오지 않으면 회사의 안위를 걱정하고, 쉬는 날에도 생산 기계가 잘 돌아가는 지 확인하기 위해 잠시 회사에 다녀오기도 한다.  그의 행동 속 숨겨진 이유는 간단하다. 회사의 자본을 자신의 것이라고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가 돈을 많이 벌어들이고 커질수록 자신이 소유할 자본이 커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고 회사를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 마르크스와 생산수단 ⓒ성찰과성장 직장인과 사장 자녀가 가지는 태도의 근본적인 차이는 생산수단의 소유(예정) 여부이다. 생산수단은 토지, 기계, 설비, 공장, 건물 등 무언가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말한다.  사무직을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사무실, 의자, 책상, 컴퓨터, 소프트웨어, 프린터, 인적네트워크 등도 생산수단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통제와 감시 속에서 일을 하고, 자신이 만들어낸 것을 소유하지 못함에도 ‘직장인 되기’를 선택한 것은 이러한 생산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정리하자면 직장인은 생산수단이 없기 때문에 하루 8시간 이상을 통제와 감시 속에서 일하고, 스스로 창조한 것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상황 즉, ‘자신의 노동을 통제하지 못하는 객관적 조건’을 ‘노동소외’라고 칭했다(최일붕, 2023). 우리는 노동소외로 인해,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노동시간을 ‘임금획득을 위한 시간’으로만 바라보게 된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들지 않은가?  어릴 때부터 우리는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 경쟁하고, 취업 후에도 살아남기 위해 회사의 감시 속에서 발버둥친다.  참고 살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커져가는 빈부격차, 낮아지는 경제성장률, 불안정한 일자리, 나의 노후를 책임지지 않을 것 같은 국가,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압박한다. ▲ 임금노동자는 영원히 고통 받아야 할까? ⓒ성찰과성장 고백하자면 본인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이 압박에서 벗어났다. 먹고 살 고민을 하지 않고 원하는 공부와 활동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고민을 시작했다.  다른 사람도 매일 보람차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 위해 필요한 첫번째 방안은 바로 노동소외를 해소하는 것이다. ▲ 노동소외는 개인의 문제인가, 구조의 문제인가 ⓒ성찰과성장 노동소외를 해소하기 위한 시각에는 크게 두 가지가 존재한다.   첫 번째는 노동소외를 개인의 문제로 보고 개인이 열심히 노력하여 생산수단을 획득함으로써 노동소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시각이다. 이 시각은 직장인 생활이 싫다면 주식, 코인, 파생상품, 부동산 등에 투자해서 자본을 모으고 사업을 차리면 된다고 본다. 이와 관련해 최근 ‘경제적 자유’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된다. 벤 칼슨, 로빈 포웰의 『경제적 자유: 돈의 알고리즘』(2023)에 따르면 경제적 자유는 ‘돈으로 얻는 자유’를 뜻한다.  경제적 자유는 학문적으로 사유재산권을 강조하는 고전적 자유주의 관점과 시민의 도덕적 능력 계발을 강조하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나(황재홍, 조필규, 2015) 요즘 대다수가 사용하는 ‘경제적 자유’는 전자의 관점에 따른 자유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 많은 이가 ‘노동소외’를 겪는다고 해서 당연하게 여기지 말자 ⓒ성찰과성장 두 번째 시각은 노동소외 문제를 구조의 문제로 인식한다. 직장인이 투자를 잘해서 자본을 모으고 사업을 차려 성공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자영업자 중 영세자영업자(고용원 존재 여부 기준)의 비중이 74%인 것을 보면 이를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또한 회사의 성장을 통해 주식 배당금을 받는 이상적인 투자 방식과 다르게 앞에서 말한 주식, 금융상품, 부동산 등 돈을 한번에 많이 버는 투자 방식은 제로섬 게임이다. 누군가 돈을 벌면, 다른 누구는 돈을 잃는다. 따라서 거시적으로 봤을 때 직장인이 사업가가 되는 것은 ‘노동소외’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필자는 노동소외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가 되었든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고용되어 감시 속에서 살아가지 않더라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그런 구조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대다수가 겪는다고 해서 ‘노동소외’ 현상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되며, 노동소외를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오며 필자는 세 편의 글을 통해 노동소외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구조를 모두의 노동이 “생명의 자유로운 발현이 되고 인생의 즐거움”(최일붕, 2023)이 될 수 있는 구조로 바꾸는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2편에서는 노동시장의 의미와 노동시장이 없었던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했는지 짚어보고 능력주의를 넘어서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월요일 아침이 싫은 이유는 ‘일을 해야해서’가 아니라 ‘살기위해 강제로 돈 버는 일을 해야만’하기 때문이다. 단지 개인의 불평불만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부딪쳐야만 하는 객관적인 조건이자 구조의 문제이다. 세상에는 많은 것이 이해 불가 투성이지만, 거기에 한가지 의문을 더해보자. “왜 나는 매일 출근해야 하는 거지?” 참고문헌 박대근, 최우주, 2015, ‘가계부채의 결정요인에 대한 패널자료 분석: 주택가격과 대출심사기준을 중심으로’, 경제연구, 33(1) 최일붕, ‘마르크스주의의 방법 (1) 노동소외(https://wspaper.org/article/29843) 벤 칼슨, 로빈 포웰, 2023, 『경제적 자유: 돈의 알고리즘』, 인사이트엔뷰 황재홍, 조필규, 2015, ‘경제적 자유와 사회정의 신고전적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검토’, 한국경제학보 22(2)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배달해드립니다 - 창작그룹 '성찰과성장' 글 작성 및 편집 : 신동주, 박배민 성찰과성장.com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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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락하는 제화 산업, 노사 상생의 길은?
이 글은 대화 참여자들의 주장을 압축하여 재구성한 것으로 오마이뉴스에 2023년 11월 13일에 발행된 글입니다. 20만원 수제구두 만들면 노동자 6500원, 사장님은? [오마이뉴스 23.11.13] ▲ 성동구 수제화 거리 성동구 성수역 인근에는 수제화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 서울시  성동구 성수역 인근에는 작은 구두상점들이 줄지어 있고 거대한 구두 모양의 조형물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성동구에서 지역 특화사업으로 지원하는 성동 수제화 거리다. 2021년 조사에 따르면, 성동구에는 462개의 신발이나 부품 제조 사업체가 있고, 1985명이 일하고 있다. 엄청나다고 놀랄 일은 아니다. 이 숫자는 매년 눈에 띄게 줄고 있다. 2012년부터 성동구를 비롯해 서울시와 중소기업청 등 여러 기관이 제화산업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지원을 펼쳤지만,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이런 가운데 제화공들의 불만은 2018년에 한 번 크게 터졌다. 수년째 동결된 수제화 공임을 견디다 못해 파업(형식적으로 개인 사업자인 제화공들은 파업권이 없다. 정확한 표현은 '일손 놓기'다-기자 말)을 감행했고, 제화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낮은 임금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이후 전태일재단이 나서 2021년부터 노사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상생위원회가 추진되었고, 올해 9월, 드디어 '제화산업 노사상생발전협의회'가 발족했다.그러나 한국 제화산업의 문제는 하청 업체 내 노사 합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구조의 산물이다. 제화 대기업은 생산비가 싼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고 있고, 복잡한 다단계 유통 구조는 사업주마저 열악하고 위태위태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게다가 개수임금제(구두 제작 개수에 따라 일정 금액을 받는 체계)와 도급제는 기본적인 노동권마저 가로막는다.힘겨운 과정을 거치며 노사가 상생의 해법을 모색하기로 했지만, 갈 길이 멀 뿐만 아니라, 아직 어디로 가야 하는지조차 안갯속이다. 이제 막 상생을 위한 첫발을 뗀 제화업체 대표 2명과 제화공 2명이 제화산업의 어제와 오늘, 미래를 논하기 위해 '대담한 대화'에 나섰다. 이들의 대화가, 새로운 방향을 찾아낼 수 있을까?"구두 하나 만들면 노동자는 6500원, 사장은 7000원"  ▲ 제화산업 노사, 상생의 길은? 제화 노동자와 사장이 상생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대담한 대화에 나섰다. 지난 10월 31일 성수역 인근 성수다방에서 진행한 대담한 대화 ⓒ 임지순    제화 하청업체 사장들은 직접 제화공으로 구두를 만들 때부터 계산하면 모두 40~45년 정도 제화 일을 했다.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지만, 현재 제화산업을 보는 시각은 절망적이다.이종찬(사측. 구뚜슈즈 대표): "직접 구두 만드는 일을 할 때부터 치면 40년 동안 제화 일을 했는데, 바뀐 게 없어요. 원청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같은 하청 업체에 주는 단가만 깎으려고 하고. 원재료 가격은 매년 올라가는데 이걸 반영하는 걸 본사에서는 용납 안 해요. 오히려 계속 깎으려고만 하지. 안 깎아도 공임을 올려 주지 않으면 사실상 깎이는 거예요. 원재료 가격과 인건비는 계속 올라가니까." 경철호(사측. 프리뷰슈즈 대표): "구두 일은 45년 정도 했고, 공장을 맡은 지는 21년 됐어요. 뭐 한때는 벌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 까먹고 있지요. 솔직히 말하면 이 일 그만두고 다른 일 하면서 조금만 벌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아요. (제화공들이) 인건비 올려달라고 하는데, 내가 어느 정도 받으면 올려 주고 싶죠. 구두 하나 만들면 마진으로 3000원, 관리비로 4000원 벌어요. 물론 이것도 모두 똑같이 기계처럼 만들어서 불량이 없는 경우에 그 정도야. 기스(흠집)라도 조금 있으면 죄다 반품이야. 마진 3000원 받는다고 이게 3000원이 아닌 거지. 최소한 마진이 5000원은 넘어야 뭘 쪼개줘도 쪼개주는데... 또 원재료도 딱 맞춰 살 수 없으니까 재고도 많이 쌓이고."제화산업은 다단계 하청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백화점과 같은 대형 유통사와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대기업 원청, 하청 공장, 그리고 제화공의 4단계 구조다. 하청 업체는 원청이 주는 원가 내에서 마진과 제화공 임금을 비롯해 각종 임대료와 원재료비를 감당해야 한다.그렇다고 노동자가 속 편히 월급을 받아 챙기는 것도 아니다. 제화공은 구두 하나를 만들 때마다 공임을 받는 개수임금제에 묶여 있다. 예전에는 기술자가 인정받았지만, 지금은 일하는 기계 같다는 자조가 나온다.이창열(노측. 제화지부 성수분회장): "구두 일은 37년인가 38년 했어요. 처음 이 일 시작할 때만 해도 팀으로 일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3~4명씩 같이 다니다가 사장하고 싸우면 우르르 데리고 나가고. 그러면 사장이 힘드니까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좋지. 기술자들도 인정해 줬고. 그런데 (1997년) IMF 지나면서 싹 바뀌더라고요. 사장님들이 우리를 일하는 기계로밖에 여기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는 월급제가 아니기 때문에, 일이 없으면 돈을 못 받아요. 그래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거나 딴 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박완규(노측. 제화지부 지부장): "16살부터 명동하고 미아리에서 구두 일을 하다가 20살에 성수동에 와서 일했는데, 벌써 35년이 됐네요. (하청 업체 사장님들과) 현장을 오래 겪어왔기 때문에 대표님들 생각이나 처지도 잘 알아요. 구두 일에서 일제 강점기부터 안 바뀌고 있는 게 도급제예요. 제화산업은 개수임금제, 도급제 때문에 노동자들이 뭉치지도 못해요. 공장장 따라서 여러 명이 함께 움직여 다니니까 노동자들끼리 서로 일감 받으려고 라이벌처럼 만들어 놓고. 출퇴근이 있고 월급제 하면 (노동자들에게) 좋은 조건을 만들 수 있지만, 개수임금제, 도급제 때문에 아무것도 안 되는 거예요."  ▲ 제화 하청업체 대표 경철호 프리뷰슈즈 대표(좌)와 이종찬 꾸뚜슈즈 대표(우)는 모두 구두일을 40년 이상 한 제화 하청업체 사장이다. 제화 공장의 해외 이전, 중국산 신발 수입으로 쇠락하는 제화 산업의 현실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 임지순    제화산업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구두 한 켤레에 들어가는 항목별 구성비를 알아야 한다. 사업장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이렇다. 구두 한 켤레의 원가는 보통 5만 원 정도 잡는다. 소비자 가격, 즉 우리가 사는 구두값은 원가의 4배 정도다. 원가 5만 원 중 업체가 이익을 남기는 마진은 3000원이다. 또 구두를 만드는 노동자는 파트별로 1명씩, 총 2명이 붙는다. 이들은 한 켤레를 만들 때마다 6500원 정도 받는다. 품질을 관리하는 업체 사장은 여기에서 관리비 4000원을 받는다. 나머지는 원부자재값이다.대체로 원청이 소비자가의 25%, 즉 원가만큼의 금액을 이익으로 가져가고, 백화점 등 유통업체가 38%를 가져간다. 여기에 한 켤레를 팔 때마다 판매 매니저가 12%를 보수로 받는다. 하청 업체의 마진은 발주 물량이 많으면 더 줄어든다. 예를 들어 200족 이상이 발주되면 마진은 3천 원에서 2천 원으로 떨어진다.  ▲ 구두 한 켤레 당 원가 구성비(추정) 제화산업은 구두를 만들 때마다 공임을 받는 개수임금제다. 구두 한 켤레를 만들면 하청 업체 사장은 마진과 관리비로 7000원을, 제화공은 6500원을 가져간다. 물론 업체와 상품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 대담한 대화  사시사철 일정한 물량이 발주되지 않으니, 월급제를 도입하기도 어렵다. 더 큰 문제는 물량마저도 계속 줄고 있다는 점이다. 원청은 인건비와 재료비가 싼 중국이나 인도네시아로 공장을 옮기고 있고, 이제는 어느 정도 품질을 갖춘 중국산 제화도 밀려들고 있다.물량이 없다 vs. 물량 있으면 일할 사람은 있나?이종찬(사측. 구뚜슈즈 대표): "물량이 부족한 게 현실이에요. 20년 전만 해도 동대문에서 만들어 달라는 물량이 하청 일감보다는 많았어. 그때는 일감이 부족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일감이 없어요." 경철호(사측, 프리뷰슈즈 대표): "동대문은 팔 수 있는 물량이 적으니까 중국에서 대량 수입은 못 하고 우리 같은 공장에 주문했었는데 지금은 거기도 죽었잖아요? 원청에서는 우리하고 단가가 안 맞는다 싶으면 중국으로 생산공장을 옮겨 버려. 계속 일감이 주니까 일하는 사람(제화공들)에게 뭘 해주고 싶어도 어려워요." 박완규(노측. 제화지부 지부장): "사실 물량이 늘어나도 문제 아닌가요? 현장에 가보면 50대 중·후반은 다 다른 곳으로 이직하고 없어요. 주로 건설업으로 옮겨요. 이런 상황에서는 물량이 늘어나도 만들 사람이 없잖아요? 사장님들은 물량이 늘어야 한다시는데, 일할 사람이 없다는 건 고민 안 하고 있어요. 건설 쪽은 하루 8시간 일하면 한 달에 400만 원은 벌어요. 우리가 하루 8시간 일해서 400만 원 벌 수 있어요? 못 벌어요." 이창열(노측. 제화지부 성수분회장):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 정도 일해야 겨우 400만 원 벌 수 있어요. 중노동 해야 그 정도 버는 거예요. 게다가 일 년 내내 일감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일감 없을 때는 수입도 없어요." 박완규: "그 정도 벌 수 있는 게 일 년에 5~6개월밖에 안 돼요. 이때는 우리만 힘든 게 아니라 사장님들도 힘들다는 거 알죠."비교적 젊은(?) 제화공들은 주로 건설업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남은 이들은 대체로 62~63세로, 은퇴를 얼마 남겨놓지 않았다. 사람들은 떠나지만 새로운 사람은 들어오지 않는다. 월급제가 아니니 퇴직금도 일 년에 백만 원 정도로 합의하는 형편이다. 4대 보험은 엄두도 못 낸다. 그나마 노조가 생기면서 성수지역에는 4대 보험에 가입한 사업장이 3곳 생겼다.박완규: "지금은 두 곳이에요. 한 곳은 폐업했어요. 4대 보험에 가입하려면 월급을 정해야 하니까 한 곳은 280만 원, 다른 곳은 230만 원 정도로 합의해서 4대 보험을 납부하고 있어요. 이것도 노조 때문에 겨우 얻어낸 것이니까 아마 (노조가 없는) 다른 지역은 4대 보험 가입한 곳이 거의 없을 거예요." 이창열: "꾸준히 일을 하는 사람은 한 달에 250만 원 정도 벌지만, 나머지는 그것도 힘들어요. 우리 사장님에게 4대 보험 들어달라니까 해주겠대요. 그런데 제화공들이 (가입하러) 안 간대요. 다 늙어서 4대 보험 들어서 뭐 하냐고. 자기부담금조차 아깝다는 거죠."4대 보험 중 자기부담금조차 아까운 제화공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은 노동자들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경철호: "사장들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매일 생각해요. 당장 내일부터라도 안 하고 싶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장들도 아마 99~100% 같은 생각일 거예요. 내가 사장이지만 일하는 사람이랑 똑같이 나와서 똑같이 들어가요. 뼈가 빠지게 일했어요. 이러고 내 한 달 수입이 얼마인지 알아요? 일하는 사람들하고 별반 차이가 없어요. (돈을) 못 가져갈 때도 있고 더 넣어야 할 때도 있어요." 이종찬: "사업주 입장에서는 일이 없다고 비용이 안 나가는 게 아니에요. 고정비는 계속 들어가요. 임대료도 내야 하고, 제화공은 아니지만 월급 주는 직원도 있잖아요."나만의 브랜드 갖고 싶은 이들... '상생'이 힘이 될 수 있을까?  ▲ 제화 노동자 박완규 제화지부 지부장(좌)과 이창열 제화지부 성수분회장(우)은 구두일로 잔뼈가 굵은 노동자다. 이들은 기본적인 노동조건도 보장되지 않는 제화산업의 현실에 분노하지만, 하청업체 사장들도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이해한다. ⓒ 임지순    이런 문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성동구를 비롯해 서울시와 중소벤처기업부 등 여러 기관에서 제화산업을 살리기 위해 지원했다. 그런데 대부분 수제화 거리를 조성하거나 조형물을 만드는 데 투입됐다.과도한 유통 마진을 줄이기 위해 제조업자가 직접 매장을 열 수 있도록 낮은 임대료의 상점도 열었다. 그러나 남의 제품을 베끼지 않는 한, 직접 디자인해서 수량을 맞추기는 어렵고 독자적으로 마케팅을 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원가가 오르고 가격 경쟁력이 생기지 않는다. 몇만 원만 더 주면 백화점에서 브랜드 구두를 살 수 있는데, 왜 노상에서 사겠나?그래도 구두장이들의 꿈은 한결같았다. 원청과 유통업체에 덜 의존하고 나만의 브랜드를 갖춘 구두를 만드는 것. 이들은 그 꿈 때문에 아직 일을 놓지 못한다.이창열: "(수제화 거리에 있는 구두) 가격이 18만 원에서 20만 원 정도예요. 몇만 원 더 주면 백화점에서 사지, 왜 노상에서 사겠어요? 백화점 단가에 맞추니까 안 되죠. 나도 점포 열어서 해보려고 오래 구상해 봤어요. 주위 노동자들이 힘 모아서 월급제도 해보려고. 그런데 사업주가 아니라서 들어가지 못했어요."이종찬: "내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구두 일을 계속 한 건, 내 브랜드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나도 내 브랜드 만들어서 거기 한 번 들어가 보려고 했는데, 어렵더라고요." 경철호: "나는 지금도 내 브랜드를 만드는 게 꿈이에요. 안되면 공동 브랜드라도 만들고 싶어. 4~5개 업체 정도가 힘을 합쳐서. 각자 잘 만들 수 있는 걸로 4~5점씩 모아서 같이 해보는 거예요. 원청에서 지금처럼 일감 받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유지가 어렵다는 판단이에요. 지금은 물량도 줄고 있고 그나마 중국으로 다 빠져나가. 구두 일을 계속한다면, 내 브랜드를 가지고 돌파구를 찾고 싶어요." 박완규: "지금 국내 제화산업이 생각할 수 있는 대책은 딱 3개예요. 첫째 단기적으로는 유통 쪽이 1%만 양보하는 거예요. 그러면 지금의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어요. 둘째는 국내 물량을 중국이나 외국으로 넘기지 않고 유지해 주는 거죠. 그래야 먹고 사니까. 마지막 셋째는 우리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거예요. 지금 제화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복지나 근로조건이 다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돌파구는 찾아야죠."아직은 꿈으로만 남아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화가 끝나고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 방법에서 '우리들의 브랜드'를 만들 방법까지 한참이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단순히 어려운 영세사업장의 살길 찾기가 아니라, 좀 더 사회적인 가치를 담은 도전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세자영업자와 노동자가 손을 잡고, 상생과 나눔의 가치를 담고, 사회와 지역을 연대의 가치로 연결한다면? 우리는 구두를 사면서 사회적 가치까지도 살 수 있지 않을까?물론 갈 길은 산 넘어 산이다. 그러나 이들은 맨 앞의 산 하나쯤은 이미 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일단 '상생'이라는 이름으로, 사장과 노동자가 손을 잡지 않았는가? * 이 글은 참여자들의 대화를 요약하고 재구성한 것입니다. 대화 전문과 제화 산업의 현황 글을 보시려면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십시오. - 대담한 대화 전문보기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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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금융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을까
안녕하세요? 시민36입니다. 최근에 금리가 무척 올랐지요. 금리가 치솟은 가운데 서울 집값이 폭락해서 전세가 아닌 월세 매물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고 하는데요. 하긴, 오른 건 금리뿐만 아니라 식자재를 비롯한 모든 물가도 마찬가지지요. 이렇게 저의 월급 빼고 모든 물가가 오른 상황을 보면서 ‘금융공공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뜬금없나요. 하지만 고금리, 인플레이션과 같은 경제 위기 상황 속에서 금융공공성은 아주 중요한 요소랍니다. ‘금융공공성’이란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나요? 저는 처음 들었을 때 알듯 하면서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애매한 느낌이었는데요. 금융과 공공성을 떼어놓고 보면 이해가 갈 수 있습니다. 금융은 말 그대로 돈, ‘자본’을 융통하고 흐름을 만드는 일을 일컫습니다. 흔하게 생각할 수 있는 은행과 증권뿐만 아니라 보험, 신탁과 같은 신용관리기금 등 돈의 흐름을 포괄하는 큰 범위입니다.  신한, KB국민, 하나은행 등, 우리가 알고 있는 금융기업은 보통 민간기업입니다.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금융이란, 모든 시민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인데 기업은 철저히 이익에 의해 굴러갑니다. 득과 실을 계산하고, 손해 보는 장사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국민의 삶과 금융이 기업의 ‘득’에 기여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금융공공성이 사라진다면, 사실 모두가 아는 결과  아담 맥케이 감독의 ‘빅쇼트’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2006년의 미국의 거대한 금융위기를 야기한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부동산 거품과 더불어 은행의 무책임한 채권발행에 무수한 미국 시민들이 막대한 손해를 본, ‘모기지 사건’이 등장하는데요. 미국의 주택시장을 지탱하는 채권은 사실상 부실 채권이었고, 이로 인해 부동산 거품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으나, 월가와 같은 금융권, 은행 당국이 손해 보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일반인에게 채권을 팔아넘깁니다. 이러한 부동산거품을 눈치챈 사람은 단 네 명의 인물이 주택시장의 주식이 하락할 것에 베팅하여 거액을 투자하고, 결국 승리합니다. 경제용어가 많이 나오지만, 감독의 친절한 설명으로 비교적 쉽게 따라잡을 수 있답니다. 명언도 많이 나오는 영화이니, 언제 한 번 관람해 보길 추천드려요 한국에서도 최근에 금융기업의 이익을 위해 허술한 관리, 이해당사자들과의 유착관계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보는 사례가 있었지요. 바로 론스타 사건입니다. 론스타 사건은 아주 복잡한 사안인데요, 간단히 요약해서 이야기해자면, 미국 투자기업과 한국 금융감독당국이 유착하여 막대한 국부가 유출된 사건입니다.  2003년 한국이 외환위기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을 당시 미국 기업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하고,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이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4.6조 원의 차익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인수 당시부터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 즉 은행을 소유할 수 있는 대주주로서 적격성을 의심 받았고, 결국 론스타가 금융감독원을 속이고 그들과 유착하여 외환은행을 불법으로 지배해왔음이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론스타는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감시, 감독을 이유로 주식 매각결정을 유보하여 더 큰 이익을 보지 못해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면서 6조 원가량을 배상하라고 ISDS(Inverster-State Dispute Settlement, 투자자 - 국가분쟁)를 제기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 2022년 8월 31일, 한국정부가 패소하여 약 3000억원을 배상하게 됐습니다. 패소하게 된 주된 요인은, 론스타와 유착한 정부 관계자, 금융감독원들이 국민보다는 자신들과 론스타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입니다.(BBC NEWS코리아, 2022.09.01) 20년 전 론스타 사태에 책임있는 인물들 중, 현 한덕수 국무총리, 추경호 경제부총리, 김진표의원, 김광림의원 등 익숙한 이름들도 있습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요.  기업의 논리가 아닌 ‘공공의 논리’ 이처럼 금융기관의 이해당사자 유착관계, 부패는 우리 사회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칩니다. 다른 무엇도 아닌, ‘돈’이 오가는 문제기 때문에 금융당국은 기업의 논리가 아닌 공공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단순하게 오프라인 은행점 폐쇄 문제만을 두고 생각해 볼까요? 영업이 잘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점포를 무작위로 폐쇄하면, 긴급대출, 예금상품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전자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층, 장애인 등의 금융접근성이 낮아지게 됩니다.  금융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금융감독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금융감독원은 더욱 철저하게 금융당국을 감시하며 불공정거래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또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2021년, 채용비리와 사모펀드 사태의 핵심 인사인 함영주 부회장이 셀프연임하는 사건이 있었지요. (매일노동뉴스, 2021.03.18) 이러한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이사회, 지주 등 견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는 대안을 생각해야 합니다. 또 어떤 대안이 있을 수 있을까요? 금융공공성 강화를 위한 여러 가지 의견을 제안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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