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2023년 맞나요?
행정대집행, 철거용역. 생소하지 않은 단어들입니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삶의 터전 혹은 직장 혹은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이 투쟁하고, 그에 반하는 입장과 대립하는 구도 또한 익숙한 그림일 겁니다. 그런데 지난 8월 8일,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아카데미극장 앞에서는 조금 다른 모습이 연출되었습니다.
극장 철거 행정 절차의 수순으로 내부 역사 자료를 이전하기 위해 원주시 공무원들이 극장을 찾았습니다. 아카데미의 친구들 범시민연대(이하 아친)는 현수막을 들고 극장 앞에 서서 행정 절차의 위법성과 소통의 부재를 지적했습니다. 이후 진입을 위해 공무원들이 아친이 든 현수막 틈을 파고들며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원주시청 공무원들은 민방위 조끼를 입은 상태였습니다.
[자막뉴스] "빨리 덤벼들어, 덤벼들어!" 남자 공무원들 급히 호출하더니 (원주MBC뉴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상황
정책토론회를 청구할 시민 권리를 실현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반 시간 간담회 후 철거를 통보받았던 사람들이 여전히 극장을 지키기 위해 문 앞을 막아섰습니다. 행정 절차에 대한 문제 제기도 해소되지 않았고 문화재청장이 ‘등록 문화재 지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발언했음에도 급하게 철거를 진행하려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원주 아카데미극장 철거가 왜 위법이냐고요?
해소되지 않은 수많은 갈등의 고리가 늘어져 있었습니다. 이를 또 한 번 무시하고 무력을 동원하면서 원주시는 자가당착에 빠집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노후한 극장 건물을 철거하겠다면서 그 건물의 유리문으로 시민을 밀치는 행위를 했으니 말입니다. 원주시청 문화예술과장이 후배 공무원들에게 “덤벼들라”며 몸싸움을 부추기는 모습이 뉴스에 기록되었습니다. 아마도, 이 일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아카데미극장의 출입구는 유리로 되어있습니다. 충돌 상황에서 사람들은 유리문과 공무원 무리 사이에 끼게 되었고 ‘유리 깨지면 사람 다친다’는 비명이 곳곳에서 나왔지만, 원주시 측은 경찰이 나서 중재할 때까지 진입 시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일 사태는 우선, 시가 철수하며 일단락되었지만, 직후 원주시가 용역을 고용한 행정대집행을 진행하겠다며 엄포를 놓으면서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습니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지역사회는 물론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이 아연실색했습니다. 또한 원주시가 아카데미극장 앞 시민들과의 대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각 부서의 남자 직원’들을 소집하는 청사 내 안내방송을 했던 사실까지 밝혀지며 충격에 충격을 더했습니다. 문제가 된 안내 방송을 지시한 책임자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미궁의 지휘탑은 본래 업무에서 벗어나는 상황에 일선 공무원들을 동원하는 것도 모자라 ‘민방위’ 의복을 갖춘 채 일반 시민과 충돌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올 만하죠.
순간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슨 군사작전 펼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과도하게 반응하는지...”라고.
한 팀장은 “공직에 투신한 이후 외부에서 공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청내 방송을 통해 직원들에게 현장 이동을 요청한 것은 처음 본다”란 반응을 보였다.
[2023.08.13] 우려되는 원주시정의 정치화(?) (심규정)
원주시소상공인연합회(회장 안승남)는 10일 ‘아카데미극장 철거와 보존! 충돌 없는 해결 방법은 없었는가?’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안 회장은 “지난 8월 8일에 일어난 원주시와 아카데미극장 보존 측의 충돌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라며 “막다른 유리문으로 시민들을 몰아세우는 모습은 우리가 기대했던 원주시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연합회는 “시정의 운영에 다른 의견을 가지는 시민은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라면서도 “다른 의견을 대화와 민주적 절차에 따라 해결해 가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라고 강조했다.
[2023.08.13] 급발진이 빚은 아카데미극장 사태 충돌...대화와 타협 목소리 높아 (원주신문)
사건 이후 원주시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많은 곳에서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장에 동원되었던 공무원이 익명으로나마 목소리를 보태기도 했습니다. ‘지난 반년 동안 원주의 아고라에는 시민은 있었지만, 그 목소리를 들어줄 공직자들은 보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의 글에서 옮겨온 문장입니다. 권익위원회의 권고조차 무시하고 시정정책토론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원주시 내부에서도 자정의 목소리가 새어 나옵니다. 취임 직후 줄곧 시민과의 소통을 강조한 원강수 시장은 이런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소통하겠다며 원주시청 7층에 있던 시장실을 3억여 원을 들여 1층으로 이전했지만, 시민들의 목소리에 진정 귀 기울이는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이날 오전 10시 20분경, 시청 건물 전체에 방송이 송출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아카데미극장과 관련하여 시민과 대치 중이니 남성 직원은 민방위복을 입고 극장 앞으로 집결하라는 것이 었습니다. 극장과 관련해 의견 충돌이 있다는 것은 알았으나, 내막에는 관심이 없었고, 나와 상관없는 것에 동원되는구나 하는 마음이 우선이었습니다.
하지만 부름을 받고 현장에 가보니 시민은 고작 십수 명에 불과하였고,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 온 공무원은 열 배가 넘었습니다.
[2023.08.20] 시청 말단 공무원의 눈에 비친 아카데미극장 앞 충돌 (익명의 원주시청 공무원)
아카데미 극장을 지키겠다는 시민 몇몇을 몰아내자고 전시상태도 아닌데 공무원들에게 민방위복까지 입혀 동원했다고 한다. 원강수 시정이 시민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생각이 다른 시민은 타도의 대상이란 말인가.
[2023.08.21] 패거리 정치와 십상시들 (최혁진 전 청와대 비서관)
그들이 싸우는 법, 문화
아카데미를 지키고 싶은 사람들, 아친 범시민연대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생업을 가진 시민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직장인, 자영업자, 학생, 주부, 어린이까지. 각자의 상황과 위치는 다르지만, 아카데미극장의 가치를 믿는다는 공통점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매일 극장 맞은편에 텐트를 펼치고 극장을 바라봅니다. 각자가 보탤 수 있는 만큼 텐트에 머무르면서 극장을 지키는 것입니다.
[M/V] Wonju Academy Rap - 아카데미의 친구들
(위 링크를 누르면 시민들이 직접 가사를 쓴 ‘아카데미 랩’ 뮤직비디오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 상영, 토크 프로그램, 보이는 라디오 강연 등 다양한 행사를 직접 기획하며 극장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무기는 ‘문화’입니다. 아카데미극장의 문화적 가치를 미래세대에 물려주고 싶다는 마음에 지키려는 것입니다. 시민들이 나서서 지키려는 장소가 정말 보존 가치가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걸까요? 원주시만 모르는 아카데미극장의 보존 가치는 여러 문화예술인의 연대로 인해 점점 더, 다양한 색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대구에서만 작업을 해오다 원주에 강의하러 갔다가 ‘원주아카데미극장’을 알게 됐다. 낡고 오래된 극장이었지만 지역민의 모금 활동을 통해 보존 사업으로 연결된다는 점이 매우 신기하고 부러웠다”며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철거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이 작품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2023.08.16] “원주아카데미극장 철거 위기 소식에 영화화”…김현정 영화감독 ‘유령극’ (대구일보)
원주에서 90년대를 지낸 세대라면 누구나 알고있는 원주의 대표 단관극장 아카데미, 문화극장, 원주극장, 군인극장 까지. 대표적인 원주의 여가문화활동을 책임지고 있던 우리의 추억이 사라져간다. 이제 남아있는 단 하나의 단관극장인 '아카데미 극장'. 아카데미극장이 담고있는 의미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 올 것 인가 고민해 봤다.
[2023.04.24] 영화인과 시민들이 말하는 아카데미극장 (씨네21)
물과 불이라는 전혀 다른 원소 사이에서도 사랑과 화합을 그리는 영화가 흥행하는 시점에, 현실에서는 같은 물질로 이루어진 사람 사이에 반목을 거듭하는 일이 이어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물론 생각은 모두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 낸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던가요.
[2023.08.21] 원강수 시장, 시민과 대화하라 (최현숙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
멀리서 본 아카데미극장
극장 주변 지도 모습입니다. 현재 극장 바로 옆에 있는 주차장과 긴 직사각형의 건물의 부지는 원주시청 도시재생과에서 ‘공유문화 플랫폼’으로 개발할 예정입니다. 시에 따르면 영화를 포함한 여러 문화 매체를 즐길 수 있는 건물이 들어선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카데미극장이 선 부지는 원주시청 문화예술과에서 ‘주차장과 야외공연장’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두 부서의 계획을 종합해 보자면 주차장이 있는 곳에 건물을 만들고, 건물이 있는 곳에 주차장을 새로 만들겠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사진 오른쪽에 검게 보이는 곳은 원주천입니다. 원주천변을 따라 이어진 연한 회색 구역이 원주천 주차장이고요. 극장의 전체 면적보다 배로 넓은 주차장이 근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주시는 극장을 철거한 뒤 만들 주차장 20면이 정말 구도심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요?
가까이서 본 아카데미극장
아카데미 극장은 낡았지만 깨끗합니다.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극장은 먼지가 가득하고 곳곳에 거미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극장 보존을 위한 행동을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손수 극장을 닦고 정돈했습니다. 다시 사람들과 만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죠. 그렇게 문이 열린 극장에 더 많은 사람이 찾아왔고, 정원 가꾸기 클래스를 열고 함께 계획을 세워서 살림집 앞의 정원을 가꾸는 프로젝트도 진행했습니다. 내 손으로 땅을 다듬고 나무를 심은 공간이기에 더 애정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2023.10.26] 여름부터 시작되었던 #아카데미정원_만들기 수업의 기록을 공유합니다.
학창 시절 영화를 보러 찾아왔던 관객, 십 수년 만에 열린 극장에서 클래스를 수강했던 청소년. 서로 다른 시대에 극장을 만났던 사람들의 마음이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집니다. 시민 화합의 공간으로, 원주 문화의 상징적인 존재가 된 아카데미극장의 시간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요?
멈춘 공간은 겉으로 보기에는 보잘 것 없고 도시 미관을 해치는 철거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멈춘 공간에서 60년대부터 2000년대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아날로그의 보물상자이며, 진정한 빈티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겨움과 따뜻함이 있다. 또한 경험하지 않은 시절을 마치 기억하는 듯 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어둡고 녹슬고 먼지 쌓인 그 공간이 나에게는 요 근래 보았던 그 어떠한 건물보다 빛나고 따뜻했다.
- <멈춤 공간, 원주 아카데미 극장 기록 사진과 경험> 중에서 -
[+ 아카데미극장 보존행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2023. 5. 19 [원주MBC] 류호정, 아카데미극장 방문.. "보존 방법 찾겠다"
2023. 5. 24 [원주MBC] 아카데미극장 시민자산으로서 미래가치 충분 원주 아카데미극장 보존에 전국 동참…원주시는 철거 고수 / 연합뉴스TV (YonhapnewsTV)
[자막뉴스] 문화로 문화자산 지킨다.. 아카데미 천막 50일 (2023. 7. 25 원주MBC) 2023. 8. 9
[원주MBC] 원주시에 아카데미극장 등록문화재 협조 촉구 2023. 8. 24 [원주MBC] 근대문화유산 보호·활용 법제화.. 아카데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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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5극장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든 시민의 행동을 응원합니다.
원주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군요. 철거를 반대하고 극장을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의 행동과 목소리에 눈 감고 귀 막으면서까지 극장을 철거하고 주차장을 만들어야 할 일인지 원주시의 행동이 정말 의아하고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