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원주 아카데미극장 철거가 왜 위법이냐고요?

20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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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소비자 아니고, 선명한 효비자 / 흩어진 나의 조각을 모아 빛나는 선물을 만드는 창작자

캠페인즈팀 영상을 통해 직접 캠페이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에 개관하여 올해로 60년째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광주극장은 1935년에 개관했지만 1968년에 화재로 전소되어 재건축했습니다. 따라서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원형이 보존된 국내 최장수 단관극장’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오래된 공간을 재생하여 관광객을 유입시키고 문화자산으로 활용하는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얼마 전까지 외지인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 5곳 중에 ‘이마트 원주점’이 들었을 정도로 문화관광자원이 약세인 원주에게는 보물 같은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아카데미극장이 그런 대우를 받고 있지는 못합니다.

[원주 MBC 뉴스.ZIP] 잘 보존한 단관극장 없애고 주차장 만들겠다는 원주시

아카데미극장의 시간

원주에는 미군이 주둔하면서 임의로 이름 붙인 A, B, C도로가 있었습니다. 정식도로명은 아니지만 원주에 오래 산 사람들은 이 이름을 익숙하게 사용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C도로에 모여있던 단관극장들을 기억합니다. ‘Cinema road’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그곳에는 영화관이 밀집해 있었습니다. 시공관, 문화극장, 원주극장, 군인극장, 그리고 아카데미극장이 모두 C도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둘 극장이 사라졌고 이제 아카데미극장 하나만이 남았습니다.

1963년 ~

  • 아카데미극장 개관

2005년

  • 원주에 멀티플렉스 극장 개관
  • C도로의 단관극장들이 하나둘 폐관하기 시작

2006년

  • 아카데미극장 폐관

2015년

  • 문화극장 철거 (이때 아카데미극장은 원주에 유일하게 남은 단관극장이 되었습니다)

2016년 ~

  • 아카데미극장 보존을 위한 시민 행동 시작

(출처: 원주의 단관극장과 아카데미극장 시민활동 아카이브)

2022년

  • 원주시에서 시설 리모델링과 재생 사업 진행을 위해 아카데미극장을 매입
  • 문화체육관광부의 ‘유휴공간 문화 재생 사업’신청
  • 사업심사위에서 보완사항 검토 요청, 원주시 주관 연구 용역 통해 보완사항 적용
  • 2022년 8월(사업 재검토 전향 시점) 이후 두 차례 더 기회가 있었으나 원주시가 재신청을 하지 않음

과거 멀티플렉스 극장의 영향으로 오래된 단관극장이 문을 닫고 사라지는 일은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시대의 변화였습니다. 하지만 오래되었다고 모두 사라지지는 않죠. 오래된 건물이나 장소가 잘 보존되어 관광자원/문화자원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원주시민들은 마지막 단관극장인 아카데미가 하릴없이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2016년부터 극장 보존을 위한 시민 행동이 시작되었고, 2022년에 시에서 보존을 위해 극장을 매입하면서 결실을 맺는듯 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초 원주시가 극장을 매입한 이유는 극장을 보존하여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함입니다. 2022년 상반기만 해도 연구용역 등을 통해 보존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해 8월, 극장을 매입한 지 1년도 못 되어 보존사업이 철거사업으로 뒤집혔습니다. 이 과정에서 원주시는 공식적인 논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건물이 노후되어 안전성에 문제가 있고 보존 후 유지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건물의 상태는 보존사업을 시작할 때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사실상 달라진 건 시장밖에 없지요. 하지만 그로 인해 원주시가 극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180도 변했습니다.


민선 8기 인수위원회 “문화재 등록에 실패하였음에도”

보존추진위 “문화재 등록 진행하지도 않고서요??”

인수위 “시민 공감대가 크게 형성되어 있지 않고..”

보존위 “네? 원주시 18개 주민자치협의회에서 보존 지지했습니다!”


보존사업이 중단되기 전 극장의 모습 (출처: 원주의 단관극장과 아카데미극장 시민활동 아카이브)


  • 2022년 10월 문화체육관광부 ‘유휴공간 문화 재생 사업’ 선정됨
  • 원주시의회 김지헌 의원, 원주시 문화예술과에 국비 1차분 15억 원 수용 요청 (사업비 총 60억원 중 ‘23년도 1차분 예산안 국비 15억 원, 도비 4.5억 원, 시비 10.5억 원)


시민행동 연대기에서 알 수 있듯이, 오랜만에 문을 연 아카데미극장은 매월 바쁘게 시민들을 맞이했습니다. 당시에 극장 바로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에 내리면 알록달록하게 단장한 극장이 보였습니다. 누구나 안에 들어가서 곳곳을 구경하고, 시민들이 기획한 전시나 문화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문체부 사업에 선정되어 국비와 도비 예산도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죠. 그런데 원주시가 이를 거부했습니다. 배정된 예산을 거부할 경우 앞으로 신규 사업에 대한 지원에 제약이 생기는 큰 문제가 있음에도 말입니다. 꽤 큰 기회비용까지 들여서 보존사업의 방향을 바꿔야 할 이유가 있던 것일까요? 그렇다면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원주시는 다른 방법을 택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극장에 붙어있던 시민들의 글을 떼어버리고 거대한 현수막으로 극장을 가렸습니다.


(출처: 원주의 단관극장과 아카데미극장 시민활동 아카이브)


문체부 사업 예산도, 시정토론회도, 국민권익위원회 권고까지 모두 ‘거부’

‘아카데미의 친구들(이하 아친)’은 원주시 조례에 따라 시정정책토론회를 청구하기 위해 250명의 성명부 작성하여 제출했습니다. (이름, 주소지, 생년월일, 연락처, 자필 서명 등의 정보 기재) 방법을 찾기 위해 평범한 시민들이 시 조례를 더듬어 가며 대화를 요청한 것입니다. 그런데 원주시는 서명한 사람들의 ‘선거권을 확인하기 위해 주민등록번호 전체와 등록기준지 주소(본적)까지 기재해야 한다’며 청구를 수용하지 않습니다. 주민등록번호 수집은 법령에 명시된 명확한 사유를 근거로 하지 않을 경우 불법행위라는 것이 상식인데도 말이죠. 이후 국민권익위에서도 선거권 여부 확인을 위해 주민등록번호 전체가 필요하지 않으니 시정토론회 청구를 수용하라고 권고했지만, 원주시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국민신문고 질의 결과, 서명부에 '동' 이하의 주소가 있으면 주민등록번호 확인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확인, 시에 전달했다"며 "주민들의 토론 청구권을 막지 말고 수용해달라"고 주장했다.

[2023.03.28] 아카데미 친구들, 원주시에 시장 공개 면담 요청 (강원도민일보)


국민권익위는 보완서류 요청을 취소하라고 권고한 근거로 △원주시장이 행정정보 공동이용 시스템을 통해 성명, 생년월일 등으로 결격사유를 조회하여 선거권이 있는 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점을 들었다. 또 △지방자치법 시행령에 청구인 명부에 기재하는 사항으로 성명, 생년월일, 주소 등을 규정하고 있을 뿐 등록기준지, 주민등록번호는 기재 대상이 아닌 점, △행정은 행정 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고 점을 꼽았다. 

[2023.06.02] 권익위, 원주시의 시정정책토론 청구서류 보완 요청 취소 권고 (원주신문)


8개월간의 묵묵부답, 시민들의 목소리를 철거한 사건, 잘못된 사실의 유포와 철거 유도. 우리는 형식적인 논의가 아닌, 사실을 바탕으로 한 제대로 된 시정토론이 이뤄지길 원한다. 토론을 통해 도출된 아카데미극장 재생의 장단점은 시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또한 이 공론화 과정이 원주시가 결론을 내릴 방법으로 정했던 '시민 설문조사'의 바탕이 되길 바란다. 어떤 결론이 나올지는 우리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이 결정 이후의 갈등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은 안다.

[2023.03.27] 우리가 시정정책토론을 청구한 이유 (아카데미의 친구들 수호대장 이주성)


심재관 상지대 교수는 “아카데미는 수많은 원주 시민들의 집단적 기억 자체이며 그 기억이 거주하는 장소다. 기억을 지우는 도시는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는 인간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신상범 연세대 교수는 “민주주의 선거는 시민 정치참여의 최소한의 방식이며, 이를 넘어 시민들은 지속적으로 정책적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아카데미극장 철거 문제는 시의 독단적 결정이 아닌, 민주적 절차에 따른 시민 숙의 과정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3.04.27] “원주 아카데미극장 보존해야”…전국 교수·연구진 233명 서명 (한겨레)


폭력적인 행정, 충돌의 빌드업

2023년 4월 10일에 원주시장과 아친 측이 만나 대화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나 아친 측 참석자들은 30분 남짓의 시간 동안 “나이가 어떻게 되냐”, “아카데미에서 영화를 본 적 있느냐”는 등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극장과 보존사업에 대한 얘기를 깊이 할 수 없는 시간이었지만 원주시장은 숙고하여 결정하겠다며 자리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4월 11일에 원강수 시장은 극장을 철거하겠다고 발표합니다.

[2023.04.24] 극장을 지켜라, 철거 발표된 원주 아카데미극장… 그 이후 (씨네21)


강원도 원주시가 올해로 60주년을 맞은 아카데미극장 철거를 발표한 가운데, 시에서 제대로 된 의견 수렴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보존 계획을 뒤집었다는 내부고발이 나왔다. 철거 방침을 미리 정해놓은 뒤, 형식적으로 보존을 주장하는 단체를 만났다는 의혹 제기다. <한겨레21>이 2023년 5월22일 입수한 ‘원주시청 공무원 내부고발 의견서'를 보면, 원주시청에 재직하는 ㄱ씨는 “원주시가 시민의 목소리인 시정정책토론을 반려하고 4월7일 밀실 결재를 통해 일방적으로 보존사업을 변경해 추진했다”고 주장했다. 원주시 쪽은 철거 계획을 발표하기 전날인 4월10일 아카데미극장 보존과 재생을 위한 시민모임인 ‘아카데미 친구들'(아친)과 만나 대화했다고 밝혔는데, ㄱ씨의 주장대로라면 이미 내부적으로 철거 계획을 정해놓고 철거 반대 시민들을 만났다는 의미가 된다.

[2023.05.22] 60살 극장 ‘철거’ 결론 내고 의견수렴…“밀실 결재” 폭로 (한겨레21)


보존사업을 위해 매입했더라도 이후 다른 판단에 의해 매입한 부지의 용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다만 절차는 제대로 밟아야죠. 극장 부지의 용도를 변경하기 위해서는 ‘공유재산심의위원회’ 의결이 필요했습니다.  ‘절차’는 명백히 합리적인 결정을 위해 존재합니다. 기본적으로 의원들은 안건을 미리 파악하고 논의와 표결에 임할 준비를 합니다. 그래서 안건은 회의 개최 최소 7일 전에 미리 공고하는 것이 의무입니다. 그런데 원주시는 개회 하루 전 급하게 아카데미극장 철거 안을 안건에 포함했습니다. 뭐가 그리 급했기에 절차까지 무시하는 걸까요?

[2023.05.24] 60년 역사 ‘아카데미극장’ 허무는 원주시의회, 공고 절차 위반해가며 (한겨레)


절차를 무시한 위법 행정에 대해 일부 의원들이 의회를 보이콧하면서 파행이 이어지자, 의회가 민생의 발목을 잡는다는 식의 비난이 발생했습니다. 극장 철거 안 외에도 처리해야 할 안건들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는 동안 집행부는 이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의장 직권으로 아카데미극장 철거 안을 상정하고 표결을 진행합니다.


특히 절차적 하자 논란을 빚은 아카데미극장 철거 관련 공유재산 변경안은 소관 상임위 심의를 거치지 않고 의장 직권상정 됐다가 표결 끝에 여야 의원 수 대로 찬성 13표, 반대 11표로 통과됐다. 표결에 앞서 여야 의원 3명이 본회의장에 나와 찬반 토론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안건의 절차적 하자와 근대 문화유산으로서 보존될 수 있도록 부결시켜달라고 호소했으나 역부족이었다.

[2023.05.03] '절차적 하자' 논란 원주아카데미극장 철거안 표결로 의회 통과 (연합뉴스)


위의 모든 과정에서 갈등은 커져만 갑니다. 그리하여 지난 8월 8일, 원주는 물론 전국 어디서도 보기 힘든 초유의 사태가 발생합니다. 아카데미극장 앞에서 민방위 조끼를 입은 공무원과 시민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자막뉴스] "빨리 덤벼들어, 덤벼들어!" 남자 공무원들 급히 호출하더니 (원주MBC뉴스)


2편 콘텐츠 이어보기👉원주 아카데미극장 앞에서 벌어진 몸싸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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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원주에 여행을 가게 된다면 아카데미 극장을 꼭 보고 싶습니다. 원주시의 철거 결정에 반대합니다.

도저히 의도를 알 수 없네요. 논의는 물론, 적어도 설득의 과정도 없이 이렇게나 독단적인 행정 처리가 가능하다니요... 극장은 문화와 대화를 만드는 공간이자 공동체이기에 더욱 지켜야 할 공간입니다.

제멋대로 행정이 이렇게 손 쉽게 이뤄질 수 있다니 황당합니다. 원주시장 한 명의 결정으로 문화적 가치가 큰 극장이 사라진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