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타인과 나,나와 타인 2
 그녀는 참으로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다.4호선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역’에서 지하철이 멈췄다.어제까지만 해도 문이 열리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먼저 내리기 위해 서로에서 몸을 바싹 붙이고 밀어댄다. 매일 같은 출근길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열치가 서기 직전 어떤 긴장감이 느껴진다. 누가 먼저 내릴 것인가. 누가 먼저 저 문 자리를 선점할 것인가. 매일이 그랬고, 어제도 그랬다.그런데 오늘은 달랐다.열차가 역에 들어서고 멈추기 직전의 언제나 같은 긴장감. 열차가 멈추고 문이 열렸을 때 우리는 모두 느꼈다. 누가 먼저 내릴 것인가. 그것은 내가 먼저 내리기 위해 긴장감이 아니었다. 먼저 내릴 사람에게 한 순간을 물러서 주겠다는 긴장감이었다. 이것은 아주 찰나였지만 그녀는 마치 영화 속에서 한 순간이 슬로우모션으로 보여지는 것처럼, 그 순간이 아주 천천히 그러나 아주 깊게 인지되었다.그것은 두려움이었다. 좀 더 아름다운 말로 포장하자면 ‘양보’라는 단어를 쓸 수 있겠지만, 그녀가 느낀, 그 곳에 있던 모두가 느낀 그 찰나는 ‘공포’였다. 여기서 먼저 나가려고 어제처럼 타인에게 몸을 바싹 붙였다가, 그들을 밀고 내 걸음을 옮겼다가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하는 공포였다. 이태원 사고가 있고 다음날 그녀에게 가장 선명하게 다가온 것은 출근길 아침, 그 찰나가 주었던 ‘집단의 공포’였다. 그곳에 있는 그 어느 누구와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모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음을 왠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것은 내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은 감각처럼 오래오래 자신에게 붙어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어제의 사고를 떠올렸고, 모두가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꼈으면, 그것이 모두를 멈짓하게 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서로에게서 일정한 거리를 두었고, 그러기 위해 발걸음을 늦쳤으며 처음으로 어떤 짜증이나 경쟁심 없이 그 문을 통과해 5호선을 향해 걸었다. 그 후로 매일 그 역에 설 때마다 과연 오늘은 어떨까 그녀는 설레였다. 얼마간은 그런 현상이 지속되었다. 그러고 언제나처럼 그런 사고가 있었느냐는 듯 사람들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럴 때 일수록 그녀는 점차 문에서 더 멀리서, 더 뒤에서, 더 느리게 내리려 노력했다. 언젠가는 심폐소생술을 배우고자 했던 게으른 결심도 당장 행동에 옮겼다. 한 번도 배우지 않은 심폐소생술을 누군가에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지극히 소심하고 자신이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 겁이 많았다. ‘정말 긴급하고 위급한 상황이라면 당연히 할 거라는’ 막연학 믿음을 생기지도 않을 뿐더라, 아무런 힘이 없었다. 며칠 전 봤던 그 거리 위 누워있던 많은 사람들. 그들을 향해 간절히 심폐소생술을 하던 누군가들의 모습이 결코 자신의 모습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그것이 너무 부끄럽고 한심했다. 그래서 그녀는 심폐소생술을 배웠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심폐소생술을 해보자는 강사의 말로 수업은 시작되었다. 그녀는 나름 영화에서 봤던, 드라마에서 봤던 그것을 해 보았지만, 그녀의 손바닥 아래 누워있던 인형을 살릴 수는 없었다. 그것이 인형이기에 너무 다행인 일이었다. 압박을 하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적당한 속도로 압박을 주어야 인형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그때 처음 알았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그녀는 타인들 속에 있었다. 동료들을 만나 일을 하러 갈 때도, 기다리는 친구를 만나러 카페에 갈 때도, 하루를 마치고 가족이 있는 집으로 갈 때도 그녀는 항상 타인들 속에 있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보다도, 고민을 나누는 친구들보다도, 가장 느긋해질 수 있는 가족들보다도 그녀 가까이에 있던 것은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어떤 고민을 가진지 짐작할 수 없는, 어떤 느긋함을 공유하는지 알 수 없는 누군지 모를 타인이었다. 그렇게 깨닫고 나니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타인들에 자꾸만 눈이 갔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그들이 분명 누군가에게는 ‘동료’이자, ‘친구’이자, ‘가족’이라는 것을 낯설게 깨달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만약, 그녀에게, 우리에게 어떤 불행한 사건이 벌어진다면 그녀의 동료보다, 친구보다, 가족보다 조금 더 높은 가능성으로 먼저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줄, 그녀가 손을 내밀어줄, 그녀를 위해 간절한 몸짓으로 심폐소생술을 해줄, 그녀가 간절한 맘으로 심폐소생술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이들이었다. 그녀에게 더 이상의 ‘진정한 타인’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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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타인과 나,나와 타인
누군가 그녀에게 가장 좋았던 시절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등학교 시절이라 답할 것이다. 종종 그녀는 그런 상상의 질문을 떠올리고 답을 내보았는데 그것은 고등학교 시절 이후부터 변함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고등학교 시절을 어떠했는가.  그녀는 용산에 위치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교실 창문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한강이 내려다보이는-지금은 한강이 보이는 위치에 급식실이 들어와 더는 보이지 않지만- 사실상 너무도 낭만적인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학교가 끝나고는 친구들과 가까운 이태원으로 달려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당시 이태원은 가장 최신의 패션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고, 나이키와 뉴발란스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곳이었고, 매장에 안 나오는 라인도 운이 좋으면 만날 수 있었다. 한때 사귀었던 남자친구는 입을 옷이 맘에 안 들면 집에 다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을 정도 였으니 그런 친구가 이태원을 얼마나 수없이 갔을지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은 옷을 사기 위해, 운동화를 구경하기 위해, 토요일이기 때문에, 심심해서 그렇게 이태원을 갔다. 그녀는 커서 이태원에서 꽤 오랜 시간 일을 했다. 매일 이태원을 출근하고, 그 길을 걸어다니고, 퇴근 후 친구도 만나서 맥주도 한 잔하고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때도 종종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의 어떤 순간들을 떠올리곤 했는데 그것은 그녀 스스로에게 값진 행복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그녀에게 힘이 되었다. 의도치 않게 문득 떠오르는 어떤 기억에서 그녀는 행복했고, 그래서 고마웠고, 그래서 웃었다. 그렇게 웃으며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출근길의 고단함도 조금은 줄어드는 거 같았다.  ‘이태원에서 심정지 00명’ 그것은 참으로 거짓말 같았고 그래서 실감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당시 그녀는 집에서 그녀가 좋아하던 프로그램에 심취해 있었고 그래서 그 글자를 보았을 때, 실은 ‘심정지 00명’이라는 글자보다 ‘이태원’이라는 글자에 눈길이 더 갔을지 모른다고 후에 생각했다. 그녀 마음 속 깊은 추억의 근거지인 그곳이 왜 뉴스 속보에 나오는지, 지금 그녀가 그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곳에 가려했던 것도 아니고, 그녀가 아는 누군가가 그곳에 갔을 가능성도 낮다고 생각했지만 눈길이 오래 머물렀던 것은 그곳이 그녀에게 그저 단순한 지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심정지라고 방송에 나올 정도라면 모두가 당연하게 구조되고 당연하게 치료를 받고 회복할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이내 보던 프로그램으로 다시 마음을 돌렸다. 하지만 그녀는 다음날 아침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몇 년 전에는 똑같은 일이 있었는데, 모두가 그곳을 찍고 있고, 뉴스에 나오고 있고 우리가 그 배를 보고 있으니 당연히 모두가 구조될 거라 믿었지만 그 누구도 구조되지 못했던 몇 년 전처럼 그 이태원의 거리에서도 구조될 수 있었던 이들은 너무도 적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건가. 거기엔 가까운 곳에 경찰서가 있는데, 뛰어갈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 소방서가 있었는데, 차로 조금만 가면 큰 병원도 있는데 왜 이런 일은 반복되는가. 전혀 실감할 수 없는 그날을 아무리 생각하고, 정보를 뒤져보고, 읽고 보아도 그것은 실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그녀는 스스로가 이상하다 느껴질 만큼 그날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데,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자신의 빛나는 기억의 공간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오랜 시간이었다. 그녀는 뭔가 해야 했는데 그래서 그들을 ‘기억’하기로 했다. 거기에 있던, 그곳에서 쓰러진 이들은 기억해보기로 했다. 그들과 관련된 기사들을 찾아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마음에 써가며 읽고 또 읽었다. 그곳에서 떠난 이들을 그리워하는 유가족, 친구, 연인들의 인터뷰로 이루어진 그 글들을 읽다보니 처음에 그들은 그녀가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녀이기도 하고, 그녀의 언니이기도 하고, 그녀의 친구이자 그녀의 가족이었다. 가족을 사랑하고, 앞날을 위해 고민하고, 스스로를 응원하며 하루하루를 채우던 그들의 모든 모습이 그녀와 다르지 않았다. 그 누구와도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을 깨닫고 그제 서야 그곳에 있던 이들을 위해, 소중한 이를 그곳에서 잃어버린 이들을 위해 울 수 있었다. 그녀는 이제야 겨우 그들을 ‘애도’하는 한 걸음을 걸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들이 이제는 그녀에게 ‘이태원’만큼이나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갖게 되었다. 그러자 그녀는 뭔가 하고 싶었고, 무언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냥 이렇게 흘러 보내지 않고 무언가를 해야만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 믿기로 한 것이다. 몇 년 전 바다에 가라앉던 배를 바라보기만 하고 안타까워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버린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이 시간들 속에서 그녀가 느끼고 고민하고 생각한 것들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 혼자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지만, 그렇게 더 많은 이들이 같은 생각과 같은 마음으로 무언가를 해낸다면 분명 다음은 조금 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이 글을 쓰며, 또 다음 글을 준비하고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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