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이태원 참사] 타인과 나,나와 타인 2

2024.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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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탐험가

 그녀는 참으로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다.
4호선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역’에서 지하철이 멈췄다.
어제까지만 해도 문이 열리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먼저 내리기 위해 서로에서 몸을 바싹 붙이고 밀어댄다. 매일 같은 출근길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열치가 서기 직전 어떤 긴장감이 느껴진다. 누가 먼저 내릴 것인가. 누가 먼저 저 문 자리를 선점할 것인가. 
매일이 그랬고, 어제도 그랬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열차가 역에 들어서고 멈추기 직전의 언제나 같은 긴장감. 열차가 멈추고 문이 열렸을 때 우리는 모두 느꼈다. 누가 먼저 내릴 것인가. 
그것은 내가 먼저 내리기 위해 긴장감이 아니었다. 먼저 내릴 사람에게 한 순간을 물러서 주겠다는 긴장감이었다. 이것은 아주 찰나였지만 그녀는 마치 영화 속에서 한 순간이 슬로우모션으로 보여지는 것처럼, 그 순간이 아주 천천히 그러나 아주 깊게 인지되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좀 더 아름다운 말로 포장하자면 ‘양보’라는 단어를 쓸 수 있겠지만, 그녀가 느낀, 그 곳에 있던 모두가 느낀 그 찰나는 ‘공포’였다. 여기서 먼저 나가려고 어제처럼 타인에게 몸을 바싹 붙였다가, 그들을 밀고 내 걸음을 옮겼다가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하는 공포였다. 이태원 사고가 있고 다음날 그녀에게 가장 선명하게 다가온 것은 출근길 아침, 그 찰나가 주었던 ‘집단의 공포’였다. 그곳에 있는 그 어느 누구와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모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음을 왠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것은 내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은 감각처럼 오래오래 자신에게 붙어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어제의 사고를 떠올렸고, 모두가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꼈으면, 그것이 모두를 멈짓하게 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서로에게서 일정한 거리를 두었고, 그러기 위해 발걸음을 늦쳤으며 처음으로 어떤 짜증이나 경쟁심 없이 그 문을 통과해 5호선을 향해 걸었다. 
그 후로 매일 그 역에 설 때마다 과연 오늘은 어떨까 그녀는 설레였다. 얼마간은 그런 현상이 지속되었다. 그러고 언제나처럼 그런 사고가 있었느냐는 듯 사람들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럴 때 일수록 그녀는 점차 문에서 더 멀리서, 더 뒤에서, 더 느리게 내리려 노력했다.

언젠가는 심폐소생술을 배우고자 했던 게으른 결심도 당장 행동에 옮겼다. 한 번도 배우지 않은 심폐소생술을 누군가에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지극히 소심하고 자신이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 겁이 많았다. ‘정말 긴급하고 위급한 상황이라면 당연히 할 거라는’ 막연학 믿음을 생기지도 않을 뿐더라, 아무런 힘이 없었다. 며칠 전 봤던 그 거리 위 누워있던 많은 사람들. 그들을 향해 간절히 심폐소생술을 하던 누군가들의 모습이 결코 자신의 모습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그것이 너무 부끄럽고 한심했다. 그래서 그녀는 심폐소생술을 배웠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심폐소생술을 해보자는 강사의 말로 수업은 시작되었다. 그녀는 나름 영화에서 봤던, 드라마에서 봤던 그것을 해 보았지만, 그녀의 손바닥 아래 누워있던 인형을 살릴 수는 없었다. 그것이 인형이기에 너무 다행인 일이었다. 압박을 하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적당한 속도로 압박을 주어야 인형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그때 처음 알았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그녀는 타인들 속에 있었다. 동료들을 만나 일을 하러 갈 때도, 기다리는 친구를 만나러 카페에 갈 때도, 하루를 마치고 가족이 있는 집으로 갈 때도 그녀는 항상 타인들 속에 있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보다도, 고민을 나누는 친구들보다도, 가장 느긋해질 수 있는 가족들보다도 그녀 가까이에 있던 것은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어떤 고민을 가진지 짐작할 수 없는, 어떤 느긋함을 공유하는지 알 수 없는 누군지 모를 타인이었다. 
그렇게 깨닫고 나니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타인들에 자꾸만 눈이 갔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그들이 분명 누군가에게는 ‘동료’이자, ‘친구’이자, ‘가족’이라는 것을 낯설게 깨달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만약, 그녀에게, 우리에게 어떤 불행한 사건이 벌어진다면 그녀의 동료보다, 친구보다, 가족보다 조금 더 높은 가능성으로 먼저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줄, 그녀가 손을 내밀어줄, 그녀를 위해 간절한 몸짓으로 심폐소생술을 해줄, 그녀가 간절한 맘으로 심폐소생술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이들이었다. 
그녀에게 더 이상의 ‘진정한 타인’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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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참사 이후에 출퇴근길에 사람이 많은 지하철을 타는 걸 피하게 되더라고요. 문 가까이에 서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의 마음 어딘가에도 그런 불안이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무의식 속에 많은 사람들에게 참사가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