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 지하차도 참사, 자연재해는 없다
기상재해가 인재로 불리는 이유
*대체텍스트 있음
애도의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사람을 살리고 싶어 자연을 살려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태풍, 홍수, 가뭄, 산사태, 낙뢰 등의 자연현상은 인간을 만날 때만 재해로 일컬어집니다. 자연의 현상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인간과 충돌하지 않으려면 인간의 행동양식을 자연에 맞춰야 하지 않을까 고민합니다. 저에게 기후위기는 자연을 살려야 하는 절박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자연의 뜻풀이에는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저절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자연을 해하는 성장으로 계속된 ‘힘’을 가하는 상황에서 기후위기의 피해는 인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잦아지는 기상재해는 인간 생활의 탄소배출량과 연결되어 있고, 어쩌다 우연히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 일어나는 일이 되고 있습니다. 인류세가 왔다고도 하죠. 그렇게 천 년에 한 번 올까 하는 폭우를 마주했습니다.
작년 8월 초, 인천 침수 피해로 시작해서 서울 침수 피해로 뉴스 헤드라인이 바뀌어 가던 여름이었습니다. 도시 곳곳이 물에 잠기면서 안일한 예방책이 드러났고, 불평등한 피해 상황을 목격했습니다. 무심코 버렸던 쓰레기와 담배꽁초로 인해 하수구 물길이 막혀 피해는 커졌습니다. 건축법 제정 당시 불법이었던 지하층 거주가 1976년 합법화되면서 반지하 주택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침수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조명되지도 못하고 스러져가는 작은 생명들이 있었습니다.
하나의 사건에는 복합적인 문제들이 얽혀있습니다. 나의 삶은 타인의 노동 위에 있고 타인의 노동에 기대야만 살아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후위기 대응에는 모든 주체의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어떤 것과 연결되어 있고, 어떤 것을 주목해야 할지 개략적으로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먼저 이상기후가 잦아지는 원인에 대해서 지구가열화의 이름을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만들어내는 구조는 가려져 있습니다. 정치하는 노동자들은 탄소중립·기후위기 대응 예산을 삭감하고, 온실가스 효과가 증폭되는 이동수단인 공항을 증설하고, 재생에너지 확대에 비민주이고 소극적이며, 친자본반기후 정책 노동을 합니다. 저는 이 노동에는 기대어 살아가기 두렵습니다.
또한 비수도권의 재난은 수도권의 재난과 같지 않았습니다. 충남, 충북, 경북, 전북, 경남, 대전 등의 지역에서 공공시설 피해, 사유시설 피해, 농경지 침수 등이 있었습니다. 비수도권의 환경은 재난을 대비하는 자원이 부족합니다. 사람이 부족하고, 시설이 부족하고, 정보가 부족했습니다. 언론의 주목도 부족했습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재난 상황에서 그 격차만큼 피해가 증가했습니다. 수도권 중심주의를 해체하고, 지방소멸위기 대책을 세워나가는 것은 재난 피해 대책 속도 차이를 줄여나가는 일과 연결되어 있을 것입니다.
작년 수도권 집중 호우에는 서울시의 중대재해 안전 관리 업무를 전담하는 안전총괄실 책임자 실장과 국장 자리가 공백이었습니다. 올해에는 비 예보가 봄철부터 시민들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했는데 행정적 대비가 부족했습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재난관리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아 피해가 컸습니다. 도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으로부터 하천 범람 위험성을 통보 받고도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도로 통제가 되지 않았고, 도 내부에서 상향 보고가 되지 않았습니다. 환경부의 제방관리시스템 또한 재난을 대비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수문이 닫혀 마을이 잠기고, 배수펌프장이 없고, 빗물저류시설이 없어 피해가 커졌습니다.
물길을 다루지 못했고, 인간에 의해 갇힌 비인간동물이 물에 잠겨 죽었습니다. 닭, 오리 등의 비인간동물 830,000명(命)이 죽었습니다. 비인간동물의 입장에서는 재산 피해가 아니었습니다. 대규모 밀집 공장식 축산 동물들은 갇혀 있었고, 시설 안팎에서의 예정된 죽음이었습니다.
긴급재난문자의 “대비하세요”, “주의하세요” 말은 대응책이 될 수 없습니다. 시민에게 책임을 지우는 긴급재난문자는 최선일 수 없습니다. 폭염에 대비하라는 말은 폭염에 대비할 수 있는 공공시설이 있어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흑인 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 폭염 사망자가 더 많습니다. 더위를 피할 공간이 없고,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대비책을 제시하라는 요구를 해야 합니다.
지난해 폭우 이후, 건축 관련 법령 개정 등을 통해 반지하 주택 건축을 제한하고, 서울시는 반지하 주거 개선 대책을 시행했습니다. 그러나 실효성을 의심받고 있습니다. 반지하 거주자에게 물을 일시적으로 막는 차수판 설치를 무료로 시행했지만 소극적인 홍보로 저조한 설치율을 보였습니다. 안전을 위하는 일은 시민이 정보를 알고 선택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필수 설치해야 하는 일입니다. 저는 기후위기 대응과 안전을 만들어가는 노동과 일자리를 확대할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생명을 살리고 싶습니다. 준비를 해서 피해를 최소화 해나가고 싶습니다. 산을 튼튼하게, 흙을 튼튼하게, 지반을 튼튼하게, 바다를 건강하게, 음식을 건강하게, 삶의 전반을 자연스러움으로 전환해가고 싶습니다. 호우로 인한 참사와 침수 피해는 갑작스럽고 어쩔 수 없었던 특별 상황이 아닐 겁니다. 예견되어 왔고, 앞으로도 예견되어 있습니다. 이분법적인 대책을 넘어서 연결을 살리는 방향의 고민들을 함께 해나가고 싶습니다. 다양성과 연결되는 유기체로 살고 싶은 소망과 함께, 온생명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마칩니다.
*희생의 크기에 따라 주목이 달라지는 현상을 우려합니다. 재해로 인해 피해를 받은 모든 생명을 애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