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제 해결의 삼위일체, 연구활동가
이 행사에는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에 나선 분들의 연구계획 발표(연구 버전의 데모데이)가 예정돼 있고, 이 발제문은 사회 문제 해결에 있어 연구활동가와 정책 연구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느냐를 다루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에 나선 분들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연구활동가들의 문제 해결 플랫폼이자, 민간 싱크탱크 LAB2050에서 일하고 있는 윤형중입니다.  먼저 연구활동가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나이오트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액티브 리서치’(active research)로 개념화하듯, LAB2050은 연구활동가(activist researcher)를 ‘연구와 현장의 경계를 넘나들며 해법을 모색하고 실행을 도모하는 주체’로 개념화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감이 안 잡힐 수 있는데요. 그림을 하나 소개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가 개선되거나 해결되는 과정엔 반드시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그 세 가지는 바로 연구, 활동, 공론화입니다. 어떻게 이리 단정적으로 말하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입니다. 모든 문제의 개선 과정엔 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윤상 나이오트 대표께서 사례로 제시한 가습기 살균제의 사례만 봐도 그렇습니다. 원인 미상의 소아 폐질환 환자들이 매년 봄마다 응급실로 왔고 그 중 다수가 사망하는 사례가 되풀이되자 소아과 의사들이 연구에 나섰습니다. 이렇게 문제를 발견하고 바로 연구에 착수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의 문제에선 지난한 활동과 공론화 이후에 연구가 시작됩니다. 연구를 통해 원인을 밝혀내고 대안을 도출해 내더라도 그걸 현실에 적용하기까지 또 다시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문제가 있는 가습기 살균제를 팔지 못하도록 해야 하고, 제조 기업들에게 책임을 묻고 피해 보상을 받아야 합니다.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법률적 근거와 정책을 만들기도 해야 하고, 궁극적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기업이 소비자의 안전에 각별한 책임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일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레 되지 않습니다. 과학적인 연구 결과를 두고도 여러 반박과 다른 해석이 나오기 때문에 논쟁을 벌여야 했고요. 많은 사람들에게 이게 중요한 문제라고 알리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안의 경우엔 피해자들과 유가족들과 연대한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그 역할을 했고, 정치권도 뒤늦게나마 나서서 진상 조사를 진행하고, 정책을 마련했습니다. 어떤가요? 분명 이 과정엔 연구도 있고, 활동도 있었으며 공론화도 있었습니다.   베버리지 리포트와 연구활동가   현대 복지국가 수립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베버리지 리포트 역시 사전과 사후에 오랜 기간 연구와 활동, 공론화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윌리엄 베버리지가 젊은 시절인 1909년, 베아트리스 웹의 빈곤 연구 조사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었고, 그가 베버리지 리포트를 낸 시기는 1942년이었죠. 베아트리스 웹이 주도적으로 활동한 영국의 싱크탱크 페이비언협회(Fabian Society)는 단순히 연구자들이 모인 집단이 아니었습니다. 현장 조사를 중시하는 연구자들의 모임이었고, 베아트리스 웹은 직접 현장노동자의 노동 현장으로 뛰어들어 조사를 하곤 했죠. 베아트리스가 1909년 발간한 소수파 보고서(minority report)의 핵심 내용이 1942년 베버리지 리포트에 담기기까지, 또 베버리지 리포트에 대한 논쟁의 결과 전쟁 영웅인 처칠의 보수당 정부가 실각하고 노동당 정부가 탄생하기까지 역동적인 공론화와 정책화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오늘날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구조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불평등과 기후위기 뿐 아니라, 현안인 전세사기와 보육과 요양의 문제, 가계부채와 연금과 의료 분야의 누적된 문제들을 조금이나마 개선하려는 과정엔 활동과 연구, 공론화가 있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 문제의 해결 과정엔 ‘학계의 체계적인 연구가 개입한 적이 없었다’, ‘시민단체의 조직적인 활동이 없었다’, ‘언론이 집중적으로 조명한 적이 없었다’ 등의 문제 제기 말이죠. 사안마다 학계와 시민사회,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한 적도 있었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연구와 활동, 공론화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 세 가지는 문제 해결 과정에 빠지지 않는 한 묶음과 같기 때문이죠. 이 글을 쓰기 위해선 컴퓨터인 하드웨어와 워드프로그램인 소프트웨어가 다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원리입니다. 눈 밝은 분들은 조금 전 제기한 의문들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셨을텐데요. 바로 연구와 활동, 공론화를 주로 담당하는 세 주체입니다.   그 세 주체는 바로 연구자, 활동가, 공론자입니다. 연구자들이 속한 분야는 학계이고, 활동가들이 모인 진지는 시민단체, 비영리단체 등의 시민사회입니다. 공론자는 과거 기성 언론매체들에서 최근 소셜미디어, 개인 블로그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엔서 등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서로 단절된 학계와 시민사회, 미디어   그렇다면 이 세 주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제 역할을 잘 하고 있을까요? 각 영역이 워낙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요. 제가 이 세상의 학계, 시민사회, 미디어가 ‘총체적인 실패’라고 단정할 만큼 무모하진 않습니다. 다만, 이렇게는 평가할 수 있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세 가지 요소인 연구, 활동, 공론화가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야 하는데요. 각 영역 간 교류가 부족하고, 심지어는 영역 내에서도 단절과 분절의 양상이 심각합니다. 또한, 연구, 활동, 공론화의 공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연구자, 활동가, 공론자의 재정적 기반이 취약하고요. 취약한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선 해당 영역 내에서 주류의 문법을 따라야 하는데요. 현재 각 영역의 주류 문법은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와 활동, 공론화의 연계와 협업이 아니죠.  그래서 ‘연구활동가’(activist researcher)를 주목했습니다. 연구활동가란 LAB2050이 2018년 서울시 청년허브로부터 위탁 받아 수행한 <아시아 다음세대 연구자 교류・협력 플랫폼 구축방안 연구>를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한 개념입니다. 새로운 개념은 아니고요. 서구 학계에서 제시된 activist research라는 개념의 주체성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비슷한 표현으론 현장 기반 연구자, 실천지식 연구자 등이 있습니다. 사실 표현은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연구와 활동, 공론화의 연계와 협업을 촉진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죠.  이 정도 설명을 들으면 이런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연구도, 활동도, 공론화도 하나하나가 쉽지 않은 일인데, 이 세 가지를 모두 잘 해야 하는가라는 오해 말이죠. 이 세 가지에 모두 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단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세 가지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단 의미에 가깝습니다. 이미 각 영역엔 그런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연구자, 활동하는 의제를 체계화하고 연구를 통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찾아내려는 활동가, 문제 개선에 도움이 되는 보도가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저널리스트들이 바로 그런 연구활동가들이죠. 문제는 이들이 각 영역에서 온당한 인정을 받지 못하며 때로는 외롭게 활동과 연구, 공론화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죠. 결국 연구활동가는 문제 해결에 필요한 세 가지를 조화롭게 연계하는 삼위일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액션 리서치를 위한 세 가지 제언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연구에 나선 분들은 이미 활동과 공론화를 염두에 둔 연구활동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 가지 제언을 드리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첫째는 연구와 활동, 공론화를 하나의 일체로 본다면 연구의 끝은 활동과 공론화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연구의 사전 사후와 중간중간에도 활동과 공론화는 무시로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어떤 하나의 연구를 기획해 시작한 이후에 보고서나 논문이 완성되면 내가 할 일이 끝났다고 여길 수 있는데요.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액션 리서치)의 목적은 논문 출간이 아닌, 사회 문제 해결이었잖아요. 따라서 연구 결과물이 나오면 그때부터 활동과 공론화는 더욱 활발해져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후속 연구의 주제들을 발견할 수도 있고요. 둘째는 문제에 대한 분석만큼 대안에 대한 심도 있는 모색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연구들이 사회 문제에 대한 진단과 분석을 심도 있게 하는 반면에 대안을 단편적으로 모색하는데 그칩니다. 물론 연구가 대개 하나의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대안 모색에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보통 연구의 주제가 ‘문제의 원인에 대한 가설’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대안을 제대로 모색하려면 ‘문제의 원인에 대한 가설 검증’만큼 대안이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 다각도로 모색하고 분석하고, 검증해야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라면 대안에 대한 모색도 심도 있게 이뤄져야 합니다. 하나의 연구로 어렵다면, 후속 연구를 통해 대안을 제대로 모색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셋째는 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대안 중에 가장 강력한 수단이 정책이니, 너무 당연한 얘기일 수 있는데요. 현실에선 우리 정치 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도 정책의 중요성이 과소평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예산과 법규의 창의적 조합’인 정책을 면밀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에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던 정책에 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하고요. 대안으로서의 정책도 심도 있게 살펴봐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가 정책으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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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공론장] 정책과 사회 문제는 어떻게 만날까
사회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과 대안 마련을 위해 노력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공론장이 원활히 작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주요한 공론장의 일원인 학계와 언론의 역할을 중심으로 그동안의 노력과 성과, 한계 그리고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을 되짚어보고자 합니다. 공론장 참가신청하기 ?https://url.kr/25tlg9  윤형중 LAB2050 대표 다주택 갭투기 전세사기가 처음 화제가 된 시기는 2019년, 이른바 강서구 화곡동 강씨 사건으로 알려진 사건이었다. (한창 주택 가격이 오르는 시점인데도 전세사기가 횡행했다.) 그리고 2022년, 전세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전세사기의 피해는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정부도 대응하기 시작했다. ‘안심 앱’을 만들어 악성 임대인을 조회하고, 임대인의 세금 체납 등을 확인하도록 하는 정책이 발표되었다. 사후 약방문과 같은 미온적 대응이 아닐 수 없었다. 전세사기가 다시 심각한 사안이 된 시점은 올해 2월부터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5월부터는 국회에서 특별법이 논의되었다. 완고했던 정부도 우선매수권, 대환대출, 조세채권 안분 등 이전에 반대했던 정책들을 내놓기도 했다. 사람이 더 죽었기 때문이다. 특별법이 통과되기까지 시간이 꽤 지연되었다. 전세보증금 반환채권 공공 매입, 최우선변제금 보전 등의 대안을 두고 여야 간 이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전세사기란 사회 문제는 이를 다루는 각종 정책과 올해 5월이 돼서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5월에도 정치 공론장의 핵심 의제가 전세사기가 되지는 못 했다. 민주당의 돈 봉투 사건,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설화,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자 논란 등으로 전세 사기는 우선 순위에밀려난 의제가 되어버렸다.  ‘민간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회계가 불투명하다’, ‘원장들이 자금을 유용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된 문제였다. 사실 이 문제는 개인의 비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보육의 질이 떨어지는 아주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원장들이 수익을 추구할수록, 또 돈을 유용할수록 아이들을 위해 사용할 재원을 줄어들기 때문. 인건비와 식재료 비용을 최대한 줄이려는 유인이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가 언제 공론화 되었을까. 2018년 ‘정치하는엄마들’이란 시민단체가 비리 유치원의 명단을 공개하는 운동을 벌였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이미 이 문제를 알고 있던 주체는 많았다. 2016년 경기도교육청, 2017년 국무조정실도 감사를 통해 사립 유치원의 비리를 알고는 있었다. 이 정보의 공개를 청구하고, 집요하게 명단 공개를 요구한 ‘정치하는엄마들’이 있었기에 사립유치원의 비리가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다루는 대안, 다시 말해 정책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미온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에듀파인’, 투명한 회계시스템의 도입이 정책으로 제시되었다.  사립유치원 비리의 문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첫째는 원장들의 일탈적 비위만이 쟁점이 될 게 아니라, 공적 재원으로 운영되는 보육시설이 ‘이윤의 원리’로 운영되는 문제 전반이 핵심 의제가 되었어야 했다. 이로 인해 보육의 질이 떨어지고, 종사자의 처우가 열악한 문제가 지속됐다. 둘째는 좀 더 포괄적인 대안, 근본적인 정책을 논의해야 했다. 회계시스템 도입은 미온적인 대응이다. 이 기회에 공공 보육체계를 전향적으로 강화했어야 했다. 2018년에 공공 보육체계를 대폭 확충했다면 그 이후 합계출산율의 대폭 하락도 일부 방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노란봉투법 얘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사실 노란봉투법 자체가 조금 어렵다. 쉽게 얘기하자면 합법적인 파업의 범위가 제한돼서 쟁의행위가 쉽게 불법화되고, 손해배상 청구는 노동자를 압박하고 노조를 파괴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었는데, 이를 막자는 것이 노란봉투법이다.  노란봉투법이 다루는 쟁의행위에 뒤따르는 손해배상, 가처분의 문제가 공론화된 시기는 딱 세 번이 있었다. 첫 번째는 2003년 두산중공업의 노동자 배달호씨가 월급마저 가압류되자 분신 사망한 때다. 두 번째는 2013년 쌍용차 노조가 국가와 회사로부터 47억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오고, 이 뉴스를 보던 세 아이의 엄마 배춘환씨가 노란봉투에 4만 7천원을 담아 시사주간지에 보낸 시기다. 세 번째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이 일어났던 2022년이다. 매번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거나 죽어나가야 공론화가 되었다. 그리고 공론화가 된 시기에 정책이 제대로 논의되고 입법화가 되지 못하면 같은 문제가 반복 되었고, 다시 사람이 죽기 전까지 정책적 개입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다룬 사례들을 보면 우리의 공론장은 어딘가 참 이상하다. 사회 문제와 정책이 좀처럼 만나지 않는다.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가 논란이 된 것처럼 누군가를 탓하는 의제는 쉽게 공론화되지만, 이런 의제가 정책적 논의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지엽 말단의 논의만 하다가 여론의 관심사는 다른 의제로 옮겨 가버린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다. 일단 근본적으로 공론장의 연료는 인간의 관심이고, 관심이란 한정된 자원이다. 한 번에 많은 의제들이 깊이 있게 논의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공론화되지 않은 의제는 또 정치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도 않는다. 이처럼 공론장 자체의 한계가 이미 존재한다. 따라서 공론장의 핵심 의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관심 가지고, 이를 조정하려는 움직임들이 필요하다.  또한 웬만해선 대안을 다루지 않는 공론장 특유의 문화도 한 몫 한다. 우리의 공론장은 매우 뜨겁지만, 누군가의 잘못, 또 그 잘못에 대한 각계 각층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다룬 뒤에 정책과 대안 논의 없이 다른 의제로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 공론장의 상태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늘어야 한다. 지금 공론장의 핵심 의제가 무엇인지, 그 의제가 중요한 것인지, 그 의제에 대한 대안이 논의되고 있는지 등을 관심 갖는 이들이 늘어나야만 한다. 당연히 언론이 그 역할을 하는 중요 주체이지만, 언론만으론 부족하다. 많은 이들이 참여해야 한다.  또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이들과 그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연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노란봉투법을 예로 들면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룬 ‘손잡고’란 시민단체가 있었고, 법학자들이 손배 관련 법률의 문제점들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심지어 보건학자들은 손배를 겪은 노동자들의 신체, 정신 건강 상태를 진단해 논문을 쓰기도 했다. 활동가와 연구자의 협업, 또 연구하는 활동가, 활동하는 연구자들의 역할로 이런 문제들이 공론화되고, 한번 공론화되었을 때 대안 논의로까지 밀고 나가는 동력이 생겼다.  지금까지 살펴봤듯 그냥 놔두면 공론장에서 사회 문제와 정책은 잘 만나지 않는다. 문제가 심각해져서 사람이 죽거나, 비극적인 일이 발생해야 간혹 정책과 만날 뿐이다. 이런 구조를 바꾸려면 이런 상황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하고, 연구자와 활동가, 저널리스트의 체계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그래야 공론장은 사회 문제와 정책이 만나도록 주선할 것이고, 세상을 바꾸는 공론장도 가능할 것이다. 
공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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