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위원장 인터뷰 ② 참사 향한 '2차 가해'…곳곳에서 쏟아지는 화살
<이태원참사 2주기>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위원장을 만나다 ② 참사 향한 '2차 가해'…곳곳에서 쏟아지는 화살 공동취재: 최혜정 김한별 ■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족, 생존자를 향한 '2차 가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잘못된 거짓 정보는 계속해 퍼지고 모욕적인 막말과 혐오성 발언이 댓글 창에 쏟아진다. 이들의 가슴을 찢어놓는 이들은 누구일까. 우리는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이 '2차 가해'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또, 이들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 참사를 향한 '2차 가해' 논란? 정치권부터 반성해야  -저는 기사를 보면 댓글을 항상 읽게 되더라고요. 이 기사에 어떤 댓글이 달렸나. 지난 1주기에 유족들이 언론사에 댓글을 막아달라고 먼저 요청하기도 했잖아요. 2차 가해성 댓글이 여전히 달리는 것 같아요. 저는 이 일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고쳐야 될 부분이 이거라고 생각했어요. 굉장히 큰 병폐예요. 정치인들이나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서 이 병폐를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댓글로 2차 가해를 하는 사람들이요. 어떠한 의지와 인식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왜곡된 정보를 가지고 가스라이팅이 되어서 하는 거예요. 물론 완전하게 그 사람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이태원에 갔던 애들이 잘못이지 왜 정부를 탓하냐. 걔네들이 무지해서 그런 거 아니냐' 이런 것들이요.  제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래. 이 부분이 잘못됐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내서 그 말을 한 사람들을 스스로 부끄럽게 만들 거다'라고 결심했어요. 그게 얼마나 부끄러운 행동인지 그런 말을 한 게 얼마나 부끄러운가를 깨닫게 해 줄 거야 하는 각오를 가졌는데 그만큼 생각이 없이 댓글을 달고 2차 가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생각 없이 2차 가해를 하게끔 만드는 사람들이 정치권이에요. 많은 국회의원들이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언론을 통해 생각 없이 메시지를 던지고, 그걸 받아들인 사람들이 결국 그 메시지로 남을 공격하거든요.  저는 그런 모습들을 너무 많이 봤어요. 정치인부터 반성해야 해요. 자기들이 만들어내는 걸 깨닫지 못하는 거죠. 원인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얼마나 이런 사회적 부분에 관심이 많아서 찾아보고, 모든 것에 자기의 주관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이런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거의 뉴스에 나오는 거 보고 '야, 아니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거거든요.  언론 매체나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주는가를 그들 스스로 깨달아야 되는데, 그게 안 되면 이건 고쳐지지 않아요. 2차 가해는 완전히 정치적인 논리에 빠져서 하는 거란 말이에요. '참 비열한 사람들이다.' 2차 가해를 정말 고치기 위해서는 법적인 제도를 두고도 별로 의미가 없다고 봐요. 그러면 또 언론의 자유를 막니 안 막니 그런 얘기가 나오잖아요. 그런 것보다는 먼저 정치권이나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잘못한 거다. 우리의 말이 정말 조심성 없었고 그렇게 깊은 판단을 하고 말하지 못한 것들이 여파가 크게 작용해서 2차 가해로 가는 모습도 있었다' 이렇게 반성하고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정치권에서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그걸 보고 고칠 거 아닙니까. 2차 가해를 한 사람들한테 무조건 ‘너의 잘못이니까 너희가 고쳐’라고 해버리면 소용없어요.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치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죠. 정치권 발언으로 국민 여론이 휩쓸리는 것도 사실이에요. 일부에서 '유족의 활동이 정치적이다' 발언해 버리고 그때부터 정치적, 폭동으로 몰리고 낙인이 찍히더라고요. 지금까지 역사가 그래 왔어요. 세월호 때도 마찬가지고 모든 게 그래요. 정치인들의 이야기가 모든 사람들한테 전파가 되죠. '특조위를 할 필요 없다, 세금 낭비다, 이걸 왜 하냐' 다 정치인들이 하는 이야기예요.  그리고 유가족들이 돈을 원한다? 모든 게 정치인들 입에서 나오고 확산이 됩니다. 일반 국민들이 그대로 받아들이죠. 국민들에게 잘못된 왜곡된 정보를 주지 않으면 일반 시민들이 그렇게 할 이유가 없어요. 뭘 알아야지 판단하죠.  ○ 정치인들에게 '공감'을 호소한다 -저는 그게 굉장히 크다고 생각해요. 2차 가해의 발생이나 근본 원인이 정치인의 당리당략이나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있다고 봐요.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가장 지탄받아야 되고요. 그런 사람은 배지를 달면 안 되는 사람들이죠. 제가 항상 그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공감 능력이 없는 정치인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고요.  예를 들어서, 정말 이태원 참사가 밉고 인정을 못하는 거라면 다른 참사 유가족들에게는 손을 내밀어야죠. 많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게요. 그것은 공감능력이 없다는 거예요.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불행이고, 그런 사람들은 절대 정치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공감 능력이 없는 국회의원들 정말 많이 봤어요.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정치를 하지? 저는 그게 굉장히 잘못됐고, 불행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삭발하고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할 때 많은 국회의원들이 찾아왔지만 참 공감 능력 없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속으로도 이런 사람들이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여야를 떠나서 그런 마음을 많이 느꼈거든요.  그런데, 반대로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이런 사람들이 정치를 해야 그래도 국민들이 믿음을 가지고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어떤 정당이나 정치인들은 공감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많이 노력해요. 저는 그런 분위기가 정치계에서는 좀 있어야 되지 않는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단계 한 단계씩 도약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거고. 제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항상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맨날 죽자 사자 싸움박질만 할 게 아니라 입으로만 국민을 위한다고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우리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정치가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그런 것들을 자성해야 합니다.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니잖아요. 말 한마디가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영향력이 있는 사람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가요?  아픔을 가진 국민들한테 위로의 이야기 한마디 하는 것. 영향력 있는 사람이 와서 그런 위로를 많이 하면 다른 사람들도 보고 저렇게 해야 되는구나 생각할 거 아니에요. 그걸 못하게 막으면 사회가 메말라갈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 이슈만을 먹고 산다? 언론은 언론다워야 -참사를 대하는 언론의 태도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그동안 지내오면서 언론에 대해 느꼈던 것은 언론은 이슈를 먹고사는 집단이라는 겁니다.  저는 그런 판단이 들더라고요. ‘이슈가 없는 곳은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이게 과연 맞는 건가? 언론은 장사가 아니잖아요. 뭔가를 팔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대한민국의 언론도 고민해 봐야 될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저희가 작년 봄, 여름 오기 직전에 한 3개월 동안 완전히 언론에서 외면당한 적이 있었어요. 기사가 단 한 줄도 안 나왔어요. 3개월 동안. 완전히 소통이 막혔던 시점이 있었어요.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이슈화를 시키지 않는 거예요.  우리를 자극하고 나서면 이슈화가 되잖아요. 아무런 자극도 없고 말도 안 하고 완전히 외면해 버린 거예요. 기사 한 줄 안 나오는 숨이 탁탁 막히는 그런 시기들이 있었어요. 그때 제가 작정을 했죠. 어떤 언론이든, 어떤 인터뷰든 무조건 하겠다고.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그때 느꼈어요.  그때 너무 답답해서 한 매체를 찾아갔는데, '왜 한 줄도 보도 안 해주냐' 그러니까 '이슈가 없다'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구나, 한계구나라는 걸 많이 느꼈거든요. 그 이후로 언론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어요.  우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좋든 싫든 어쩔 수 없이 이슈를 만들어야 되겠다고 그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어떻게든 이슈를 만들어야겠다. 우리 필요에 의해서 할 수밖에 없잖아요. 욕을 하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아무 소용없는 현실이라 어떻게든 이슈를 만들어야겠구나 고민을 계속했던 거죠.  그 연장선상에 삼보일배도 있었고 오체투지도 있었던 거예요.  유가족들이 처절하게 몸을 던져야만 언론에 나가는 거예요. 노출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족들을 설득한 거죠. 물론 그렇게 하니까 언론에 많이 노출이 되긴 하더라고요.  서글픈 마음이 있었어요. 언론이 이슈를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사회에 변화를 주는 역할을 해야 된다고 봐요. 꾸준하게요. 저는 그 꾸준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슈가 있든 없든 어떤 상황에 대해 꾸준하게 돌아보고 짚어보고 확인하고. 현시점에 여기는 어떤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는데 또 여기는 어떤가. 계속 되짚고 되짚어보고. 이런 것들을 꾸준히 해야 사람들한테 각인도 시켜주고 거기에서 변화하려고 노력되어지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건데, 그때 반짝하는 그거 하면 딱 끝이잖아요.  그러면 멈춰버려요. 없어져버리는 거예요. 언론으로서의 어떤 기능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허덕이고, 민생이 얼마나 힘들고 아픈데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게 뭐 하는 짓인가. 언론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절대적으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언론도 있겠죠. 그러나 전부 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 전부가 그래요. 이슈가 되니까. 이슈를 먹기 위해 모두가 매달려서 그것만 하는 거예요. 언론들이 반성을 해야 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MBC 라디오 <시선 집중>에 굉장히 감사한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주 우리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유일하게 보내는 매체 프로그램이었어요. 특별법 통과되기 전까지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전하겠다고 했어요. 꾸준히 목소리를 내보내줘서 그것만 듣는 분들도 있다고 들었어요.  처음에는 유가족들이 방송을 엄청 부담스러워했어요. "내가 무슨 방송에다가 이야기를 해" 걱정하고 있었는데, 진솔하게 있는 이야기 그대로 하면 된다고 해서 힘들어하면서도 했어요. 그래도 나가서 또 다들 잘하더라고요.  연말에 시선집중이 상을 받았어요. 유가족 이야기를 듣는 이 프로그램 때문에 상을 받아서 작가님들이 우리 분향소에 찾아왔더라고요. 음료수랑 잔뜩 사 와가지고. 참 고맙죠. 그 꾸준함. 꾸준하게 목소리를 내주고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굉장히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언론이 해야 될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태원 참사가 끝났으면 더 이상 안 해도 괜찮지만 끝나지 않았어요. 사안이 진행 중일 때는 언론들이 계속 꾸준하게 이야기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게 언론의 역할이 아닌가.  참 이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게 너무 많아요. 너무 많은 걸 깨닫고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돼서 차라리 모를 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웃음)  ○ "저희는 연대의 마음을 바랍니다." -이태원 참사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각, 사회의 시각에 대해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저희가 시민들한테 무슨 당부를 드리겠습니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단지 이런 건 있습니다. 저희는 항상 연대해 주길 바래요. 저희의 마음은 항상.  사실 별들의집 공간에 이전하고 난 뒤에 시민들이 그렇게 많이 찾아오지는 않거든요. 분향소에 있을 때는 시민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다가 여기 오니까 발걸음이 뚝 끊기는 거예요. 그걸 굉장히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유족들이 많았어요.  이렇게 그냥 우리 잊혀지는 거 아니야? 이런 마음을 가지는 분들이 많았는데. 제가 그때마다 가족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시민들한테 우리의 슬픔이나 아픔을 강요해선 안 된다' 예요. 아픔과 슬픔을 자꾸 공유해 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시민 스스로가 이태원 참사를 기억해야겠다, 이 사람들과 아픔을 함께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있었을 때만 가능하다. 절대 억지로 해서 되어지는 일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항상 해요. 도로 앞길에 수많은 인파가 왔다 갔다 해도 여기에 들어올 것 같으냐, 그렇지 않다. 마음이 가야 되겠다고 하는 사람만 오는 거지. 지나가다가 여기 기억의 공간이 있는데 한번 가볼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는 거죠. 전혀. 그걸 서운해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말해요. 왜냐하면 나 역시도 마찬가지니까요.  예를 들어, 전쟁기념관 앞을 지나가는데 여기 들어가서 한번 구경해야지. 이렇게 한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있겠어요? 내가 오늘은 전쟁기념관에 가봐야지 하고 마음을 먹어야만 가지는 거지. 그 앞을 지나간다고 다 가지는 않으니까요.  저는 시민 분들이 불현듯 한 번씩 생각날 때가 있어서 언론 매체를 통해서든 어디서든 이태원 참사가 생각날 때, 그때만이라도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생각해요. 먹고살기도 힘든데 어떻게 이걸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매체를 통해서나 또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이야기가 한 번씩 떠오를 때가 있을 거예요. 그때 왜곡된 정보 말고 정확한 정보를 좀 알려고 하는 노력을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요. 정확한 이태원 참사의 진실을 알고자 해 줬으면 좋겠다는 게 제 바람이에요. 그래야만 많이 위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태원참사 2주기>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위원장을 만나다 ① 2년이 지났지만…참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② 참사 향한 ‘2차 가해’...곳곳에서 쏟아지는 화살③ 공감과 연대로 더욱 강해진 우리④ 딸을 위해 투사가 된 아버지  *순으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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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위원장 인터뷰 ① 2년이 지났지만…참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
<이태원참사 2주기>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위원장을 만나다  ① 2년이 지났지만…참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                  공동취재: 최혜정 김한별 <10. 29 이태원 참사> 2주기가 다가온다. 2주기를 앞둔 지금, 유가족들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또,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지난 9일, 서울 중구 부림빌딩에 마련된 임시 기억·소통 공간 '별들의집' 에서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위원장을 만났다.  ■ 다시 돌아온 10월, '참사 2주기' 맞는 유가족 -어느새 10월이 됐네요. 언젠가 "우리에게 10월은 굉장히 아프고 시린 달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들은 적 있어요. 참사 2주기를 맞는 마음.. 어떠실까요?   10월은 유가족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달이에요. 사실 1년 중 너무나 좋은 한 달이잖아요.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고, 밖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고요. 이렇게 좋은 한 달이 우리한테는 굉장히 아프게 다가오는 달이라 너무 서글프기도 하죠. 놀러 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우리는 집 안에만 있고요.  10월을 기억하면서 슬퍼하고 아파하는 게 너무 비참한 거예요. 그래서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고 우리도 밖으로 나오자. 나와서 뭔가 하고 사람들한테 10월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라도 하자. 그런 마음으로 10월을 보내고 있어요. 지난주부터 <시민들과 주말걷기> 행사를 시작했는데, 만나서 함께하다 보면 웃을 수도 있고 참 좋은 것 같아요.   -1주기와 2주기가 다르게 느껴지는 점도 있을까요?   많이 다르죠. 1주기 때는 10월이 돌아오는 것이 두려웠어요. '10월을 어떻게 보내지? 어떻게 해야 되지?' 10월 29일이 다가올수록 당시 기억들이 자꾸 되살아나기 시작하니까 많이 힘들더라고요. 그때는 오로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서만 견디려고 했었는데 올해 10월은 달라요. 우리가 해야 될 목표가 뚜렷해졌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될지가 명확해졌으니까요.  아이들의 모든 꿈과 희망이 다 날아간 것에 대해서 '왜 그렇게 되었을까'에 대한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오로지 그것만이 목적이에요. 아이들이 자기들의 잘못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항간의 이야기를 없애주는 것. '너희 잘못이 아니야. 국가와 정부가 잘못해서 만들어진 참사야. 너희들은 정말 억울하게 희생된 아이들이야' 라는 것들을 밝히기 위한 것이요. 그래야 아이들의 명예가 고스란히 살아날 수 있으니까요.  ■ 특별법 통과부터 특조위 출범까지... 유족이 전하는 숨겨진 뒷 이야기 ○ '이태원 참사 특별법' 국회 통과…긴박했던 순간들 -먼저 이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얼마 전,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했어요. 여기까지 오는데, 우여곡절이 참 많았지요. 특별법 통과 목표가 지난해 12월이었는데, 올 5월에야 통과 됐더라고요? 야당 단독으로 통과됐지만, 일단 법안이 통과됐어요. 특별법이 통과되는 시점에서 참 묘한 일이 있었어요. 우리가 1년 동안 특별법 통과를 위해 길거리를 헤매고 목소리를 내고 몸을 다 던지는 고행을 했는데, 눈 하나 깜짝 안 했고 완전히 외면하고 거부해버렸었잖아요. 굉장한 절망감과 상실감에 빠져 있었거든요. 아이들한테 '우리가 법안을 만들어서 올렸어' 했는데, 거부당하니까 어찌할 줄 모르겠는 거야. 이 막막한 심정을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했어요. 유가족들이 절망감 때문에 포기할까 봐 걱정이 됐어요.  재의요구권이 거부돼 다시 국회로 돌아오면 여당 국회의원들 찾아가서 '찬성표를 많이 확보해서 다시 거부권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 설득하고 희망을 주려고 했어요. 끈을 놓지 말라고 포기하기는 이르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고. 유가족들은 절망감에 빠져있고, 저도 기진맥진 탈진한 상태에서 집에 멍하니 있었어요. 그런데 전화가 온 거예요. 지금 특별법 관련해서 여야가 합의를 하려고 한다. -갑자기요? 그때가 언제였어요? 지난 5월이었죠. 굉장히 생뚱맞았어요. 처음엔 신뢰 못 했어요. 계속 그래왔으니까. 협상만 하다가 서로 안 맞으면 어그러지는 식이었으니까요.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와 영수회담 할 때 말을 잘못한 게 있었어요. 법리를 잘못 해석하더라고요.  '영장 청구권'과 '영장 청구 요구권'은 완전히 다른 사항이거든요. 특별법에는 영장 청구 요구권이 들어있었어요. 대통령은 영장 청구권이 들어있어서 위헌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는 거예요. 영장 청구는 오로지 대한민국에서 검사만 할 수 있는 권한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특별법에 있는 일반 민간인 특조위원들이 그 자격을 갖는다는 것은 위헌이고 안 된다는 거죠. 그게 아니거든요.  영장 청구 요구권은 검사한테 우리가 요구를 하는 거예요. 검찰에 '영장 청구를 해주세요' 라고 요청하는 거란 말이에요. 검사가 판단을 해서 '이거 가지고는 안 돼!'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리고 검사가 '오케이' 하더라도 판사한테 영장 청구를 해야 된단 말이에요. 그런데 판사가 '아니야' 하면 또 안 되는 거예요. 우리가 요구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에요.  대통령이 전혀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하는 걸 보고 저 실수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통령이 영장 청구 요구권을 비롯한 독소 조항만 없애주면 특별법에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으니 그 부분으로 물고 늘어지자. 이걸 삭제시키면 특별법 통과시켜 줄 것인지 강하게 정부 여당에 푸시하자고 했죠. 그런 상황 과정 속에서 여야 협상을 다시 한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의아했어요. 이게 뭘까?  믿을 수가 없으니 좀 지켜보자. 그런데, 한 30분 있다가 다시 전화가 온 거예요. 여당에서 요구하는 조항이 있다. 우리가 만약에 요구를 받으면 통과시켜주겠다고 한다고.  조항이 뭐냐 물었죠. 아까 말한 대통령이 실수한 부분 ① 해당 조항을 빼 달라. ② 특조위 기간을 (1년+3개월 연장) 9개월+3개월 연장으로 해 달라. ③ 특조위원장 추천을 여야 합의로 하자. 이 3가지 조항을 이야기했어요.  급하게 운영위원들과 대책회의가 줌 회의를 통해 논의하고 결정을 했었어요. 판단했을 때 '대통령이 실수한 부분은 없어도 큰 관계없다, 오케이 그거는 빼줄게.' 그런데, 기간은 1년+3개월 연장도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무조건 1년은 지켜야 된다고 했죠.   특조위원장 자리는 여야 합의로 해서 하자고 제의했는데, 합의는 애매모호한 거예요. '합의가 아닌 협의로 하라'고 했어요. 협의는 기한이 있어요. 계속 논의하다가 기한이 넘어가면 그냥 할 수 있어요. 그래서 협의로 하자고 전달한 거죠.  반신반의했어요. 그런데, 한 1시간 있다가 전화가 왔는데 받아들이겠다는 거야. 우리가 얘기한 것들을요. 깜짝 놀랐어요. 전혀 기대도 안 하고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유가족들이 오케이만 하면 바로 여야 원내대표가 기자회견하고 발표할 거라는 거예요. 고민할 시간이 길지 않았어요. 1시간 정도밖에 안 됐어요.  그 시간이 저한테는 가시방석이었죠. 모든 유가족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들을 수도 없고, 설명을 들을 수도 없고, 오로지 내가 판단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그 무거운 짐이 나한테 온 거예요. 그런데, 머리를 딱 비우고 딱 이것만 생각했어요. '내 아이를 위해서 어떻게 선택하는 게 가장 바람직할 것인가' 그것만 생각했어요. 어떤 선택이 가장 현명하고 바람직한 선택일까.  삭제한 조항은 특조위 활동을 하는 데 크게 지장이 있는 항목들은 아니라고 판단되었고, 지금 법안 통과시키지 못하면 앞으로를 장담할 수 있을까, 입법이 어떻게 될지, 정치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고민하다 전화했죠. 오케이. 그리고 잘못되면 모든 책임에 대한 돌은 내가 맞겠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 정세가 보이잖아요. 상황이 점점 눈에 보이면서 이때 특별법 통과 안 됐으면 큰일 날 뻔했겠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법이 통과 안 됐으면 사실 이 공간으로 오지도 못했어요. 분향소에 계속 있었어야 했어요. 지난여름 얼마나 폭염에 시달렸습니까? 만약 그랬다면 우리가 어떻게 견뎠을까요.  이게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했냐면, 이번에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무죄를 선고받았잖아요. 만약 법이 통과 안 된 시점이었다면 모두 다 절망에 빠졌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에게 특조위가 있잖아요. 그게 굉장히 큰 위안이 되는 거예요. ‘그래. 무죄받았어? 알았어. 특조위에서 조사해서 더 큰 죄를 받게 할 거야.’ 그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요. ○ 경찰은 유죄, 구청은 무죄? '엇갈린 판결'   -아, 그렇죠. 얼마 전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의 1심이 있었어요. 박 구청장은 무죄, 이 전 서장은 금고 선고받았더라고요. 유족들이 법원 앞에서 울부짖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어요. 네. 유족들은 박희영 구청장에게 형사적 책임을 떠나서 구청장으로서의 정치적 책임을 묻고 싶은 거예요. 자신의 지자체에서 일어난 사고잖아요. 지자체장으로서의 책임이 전혀 없다는 거예요. 책임을 느끼고 구청장직에서 물러나야 맞는 이치인 거죠. 그런데, 너무나 당당하게 직을 수행하는 걸 보고 우리는 조롱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사람은 정권의 실세 라인이에요. '방탄하는구나'라고 느꼈거든요. 재판 과정에서도 똑같았어요. 유족들은 재판하는 중에도 굉장히 많이 분노하고 느꼈어요.  -위원장님은 전 재판과정을 직접 지켜보셨잖아요?      네. 검사가 제대로 역할을 안 하는 거 같았어요. 판사가 몇 번이나 증거 자료 좀 확보해 와라 해도 안 하는 거예요. 판결이 쉽지 않겠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예상을 깨고 징역 7년을 구형했어요. 깜짝 놀랐어요. 웬일로 7년을 구형하지? 의아했는데 무죄가 나왔어요.  간극이 너무 크잖아요. 이건 형식적인 언론 플레이다. 보여주기 위한 거다. 검찰은 열심히 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이구나 생각해서 그때 굉장히 분노했거든요. 어떤 판단과 기준을 가지고 검찰이 징역 7년을 구형했고, 판사가 판단했을 때는 죄가 안 된다는 것인지.  징역 7년과 무죄는 하늘과 땅 차이거든요. 계속 인터뷰하면서 검찰이 항소하고 제대로 다퉈주지 않으면 스스로를 부끄러워해야 되고 스스로의 무능을 인정해야 될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7일에 항소를 했어요.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릴 텐데 안 할 수 없죠. 항소 시작되면 특조위 조사하고 병행해서 가게 될 텐데 다들 도망갈 길이 없을 것이다 생각합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솔직히 밉고 괘씸한 건 있지만 그렇다고 없는 죄를 씌우고 싶지는 않아요. 죄가 없는 사람을 밉다고 무조건 넣어야 된다? 이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만약에 죄가 없더라도 그 사람이 정치적으로, 행정적으로 책임이 있다면 직을 물러나야 된다고 생각해요.  형사적인 책임을 떠나서 말도 안 되고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번 판결이 주는 의미, 무죄에 대한 그 의미가 '일을 안 하면 아무 문제가 안 생긴다' 예요. 이 사람들은 아무 일도 안 했어, 인파 관리도 안 하고,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그러니까 무죄인 거야. 그런데, 일을 했던 사람, 무언가를 한 사람, 경찰이든 뭐든 뭘 했던 사람들은 유죄 판결을 받고 책임을 져야 되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가 하는 거죠. 이런 메시지가 공무원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한번 고민해 봐야 될 부분이에요. '나 일 안 할래. 가만히 있으면 아무 죄도 안 되는데 괜히 나서 가지고 책임지라고 처벌받으면 나만 손해지. 왜 해?' 이런 메시지를 던질 수 있죠. 이건 잘못됐고 부적절한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 책임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전혀 없죠. 외국 언론들도 참 이해할 수 없다고 해요. 159명 사망자. 얼핏 듣기로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사망자가 많은 참사라 들었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성수대교 붕괴됐을 때, 국무총리, 국토부 장관 다 그만뒀어요. 그 사람들이 대교 만들 때 무슨 책임이 있었겠어요? 없어요. 그렇지만 여파라는 게 있기 때문이죠.  관료들이 있는 이유가요. 그런 상황 생기면 대통령이 그만둬야 돼요. 하지만, 대통령이 그만둘 수 없죠. 국가에 혼란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국무총리, 장관이 있는 거예요. 대통령을 대신해  책임지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아무도 책임을 안 져요. 그러면 책임은 대통령한테 계속 가 있는 거예요. 사라지지 않는 거죠. 우여곡절을 겪었던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하고, 참사 22개월 만인 9월 비로소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송기춘 위원장의 약속처럼 특조위는 희생자와 유족들의 원을 풀어줄 수 있을까. 특조위가 조사하고 밝혀야 할 과제들을 하나씩 꼼꼼히 짚어본다. ■ "진상규명, 이제 시작" 특조위 출범과 해결 과제 -지난 9월 23일,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했어요. 수사를 위한 별도의 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유가족 측 입장이었잖아요?   특수부 수사 때부터 부실 수사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정부가 방탄하고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들을 알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조사할 수 있는 기구가 없으면 아무것도 밝힐 수 없다고  생각하고 여기에 목매달았던 거죠. 얼마 뒤면,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의 선고 나올 텐데 사실 기대가 없어요. 검찰에서 김  청장은 불기소해야 된다고 1년 동안 방탄을 했어요. 죄가 없다. 수사심의위에서 기소 의견이 나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기소했는데 금고 5년을 선고했어요. 불기소해야 된다고 떠들더니 금고 5년을 때린다? 말이 앞뒤가 안 맞는 거잖아요.  박희영 구청장 재판과 똑같이 기대치가 없어요. 겉보기로만 해놓고 직접 선고는 전혀 다른 각도로 나올 확률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팔 걷어붙이고 하지 않으면 그냥 덮여 버리고 말 거다, 진실을 밝힐 수가 없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또 한 가지, 특조위에 대해서 정부 여당이 무용론을 많이 주장했거든요. 세금 낭비니 어쩌니. 국정조사나 특수본에서 다 했는데 왜 또 하냐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잖아요. 그런 시각으로 국민들도 보고 있어요. 특조위에서 무언가를 밝혀내지 못하면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어떤 재난 참사가 발생했을 때 영원히 특조위를 꾸릴 수 없을 거예요. 무용론이 되어버리고 말 거예요. 그래서 엄청난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되는 겁니다. ○ 특조위가 반드시 밝혀야 할 과제들 -유가족은 특조위에 '1호 진상규명 조사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어떤 내용이 담겨있나요?  (*진상규명은 특조위의 자체 직권조사, 유가족 등 관련자 신청으로 이뤄지는 신청 조사로 나뉨.)  유가협 차원에서 공통된 과제예요. 모든 가족의 공통된 의문점을 1호로 접수한 거고요. 11월쯤 2주기가 끝난 후에는 각 가족 개개인들이 가진 의문점에 대한 진상 조사 신청을 할 거예요.     -추가 신청은 개별적으로 하나요? 네. 희생자들마다 의문점이 달라요. 처한 상황이 다르고 개개인의 기록은 다르니까요. 어떤 유가족은 내 아이는 계속 살아 있었다, 체온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의문이 드는 것들을 찾아봐 달라고 하는 부분이 있겠죠. 사망자 시신이 소방 기록에 빠져 있는 경우도 있고요.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어요. 그때 당시 영상이 굉장히 많이 돌아다녔는데. 길에 아이들이 시신이 눕혀져 있는 게 있어요. 7~8명 정도. 그런데, 하의 탈의를 시켰어요. 얼굴만 옷으로 덮어놓은 게 있었어요. 너무나 의아했던 부분이죠. 하의 탈의를 왜 시켰지? 누워 있다가 생존한 애도 있어요. 자기가 기절해서 누워 있는데 너무 추워서 깼대요. 그런데, 옷이 다 면도칼로 찢어져 벗겨져 있었다는 거예요. 그 옷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어요. 대체 왜 이유가 뭐지? 왜 그렇게 했지? 의문이 드는 거죠. 보통 시신을 그렇게 방치하지 않거든요. 덮어 놓아야 맞는 건데.  또 사진 찍는 걸 제재하지 않았어요. 보통 제재해야 되는 거예요. 경찰도 한 명 서 있었어요. 그렇게 두면 안 되거든요. 미스터리인 거죠.  계속 유류품도 조사했었잖아요. 만약, 마약이 발견되거나 연루됨이 나타나면 아이들을 그 매개체로 삼기 위한 게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참사 발생 초반에 SNS에 잘못된 정보가 많이 돌았어요. 클럽에서 마약 하다가 사고가 났다, 클럽에서 화재가 있었다.   모든 게 왜곡되어 퍼진 거예요. 희생자 159명 중 단 한 명이라도 마약을 가지고 있었거나 연루됐으면 모두가 마약 사범으로 매도 돼버릴 수 있었죠. 이런 사진이 아마 증거 자료가 되었을 거예요. 나중에 가족들 만나서 이야기해보니까 정말 성실한 아이들 밖에 없는 거예요. 이태원에 그냥 구경 갔던 애들이에요. 핼로윈을 체험하고 싶어 왔던 애들. 한편으로 참 다행이라고 안도했어요.  우리가 의문점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게 악몽 같은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잖아요? 경찰들이 와서 희생자들 유류품을 다 뒤졌어요. 마약 관련된 게 있나 없나 계속 찾고 있었던 거예요. 마약을 한 흔적이 있나 없나. 만약 희생자 중 한 명이라도 마약을 소지하고 있거나 마약과 연루된 무언가가 있었으면 다 뒤집어 씌웠을 거예요. 이게 마약 때문에 생긴 사건이라고. -참사 원인에 많은 의문들 중 대통령실 용산 이전도 영향이 있다, 지적하는 의견도 있잖아요? 특조위 조사에서 나올 거예요. 참사 전과 후, 그 후 대처. 이렇게 세 가지.  참사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데, 용산 이전이 굉장히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어요. 청와대에서 용산 이전할 때 충분한 기간을 가지지 않았어요. 집을 이사하더라도 충분히 준비를 갖춰주고 이사를 해야 하는 게 마땅한데, 대통령 집무실을 졸속으로 이전할 수 없는 거죠. 공간만 이전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가장 핵심적으로 잘못된 것은 대통령실이 이전하면 대통령 경호의 문제가 따르는 거예요. 청와대에 있을 때는 그 역할을 종로경찰서가 했어요. 오랜 시간 동안 청와대에 있었기때문에 종로경찰서가 모든 노하우를 다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용산으로 와버렸어요. 용산경찰서는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는 거예요. 옮기기 전에 예상해서 인력을 보충시켜 준다든가 용산서에서 충분히 할 수 있게끔 만들어놓고 진행해야 됐어요.  가장 1순위가 대통령 경호란 말이에요. 그런데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가버렸어요. 용산경찰서는요. 재판 과정에서도 증언했지만 대통령실이 이전하면서 업무량이 1.5배가 늘었대요. 능력도 안 되는데 대통령 경호에 대통령실 앞 집회까지 경호하려니까 일정 외 업무량이 늘어나고 견딜 수가 없잖아요. 너무 힘들어서 인원 보충을 해달라고 계속 요청했는데 그것도 안 됐다. 재판관이 '대통령실을 이전한 것이 참사에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하냐' 물었더니 그 사람이 '그런 것 같다'고 이야기했거든요. 집회 때문에 발생된 거다, 집회만 없어서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집회가 없는 나라는 민주공화국이 아니에요. 보수 정권이 집권하든 진보진영이 집권하든 집회는 항상 있을 수밖에 없는 건데, 그게 문제라고 하면 공산국가죠. 모든 국민들도 알고 대통령실도 알고 있어요. 그걸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 고민하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못했다는 게 얼마나 무능한 일인지 근본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거다 이야기를 하거든요. 용산서 담당 과장이 재판 나와서 증언할 때 그런 이야기를 했었어요. 자기들은 이태원의 인파 관리에 대한 것들을 지시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상부에서 참사가 발생했을 때, 빨리 가서 인파 관리하고 구조하라고 했으면 30분이면 갔다는 거예요. 그만큼 대기를 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아무런 지시를 받은 게 없다는 거죠.       아이들이 압사당한 채, 길에서 기절해 있는 상태로 무려 50분을 멈춰 있었단 말이에요. 심각한 상황을 인지했으면 빨리 경찰을 보내서 구조 활동을 시켰어야 되는데.. 그러면 많은 아이들이 살 수 있었어요. 지시하면 30분 갈 수 있는 거리인데 아무런 지시를 안 했어요. 참 한심하고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용산으로 대통령실 이전한 게 영향을 안 끼쳤다고 볼 수가 없는 거예요. 당연히 영향을 끼쳤다고 봐요. 김광호 서울청장이 국정조사에서도 이야기했고, 법정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그곳에 경찰 병력이 한 160명인가 140명인가 이렇게 있었다. 예전보다도 훨씬 많은 경찰 병력이 있었다고 했거든요. 경찰 병력 중 50명은 마약 수사대 병력이었어요. 나머지는 각기 다른 역할을 하고 있었어요. 범죄, 성추행 사건 등에 배치 돼 있었고, 인파 관리를 위한 병력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만약, 정보 경찰이 있었으면 사태 심각성을 보고 빨리 전파해서 구조해야 된다고 했을 텐데, 정보 경찰조차 한 명도 없었단 말이에요.   마약 수사대 병력은 사법경찰이란 말이에요. 아무도 경찰인 줄 몰라요. 사법 경찰들이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은 듣지를 않아요. 왜냐하면 경찰이라는 것을 인지 못하니까. 이 사람들은 과연 참사가 벌어지고 수습되는 동안에 거기서 뭘 하고 있었느냐가 핵심인데,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어요. 국정조사에서 증인으로도 채택 안 됐고, 특수 수사에서도 조사가 안 됐고, 이 사람들만 이상하게 빠져나가 있어요. 아무런 증언도 확보가 안 돼 있잖아요, 가장 핵심이 인물들인데. 그래서 이번 특조위에는 꼭 그걸 밝혀야 된다고 하고 있어요.  국정조사 때 이야기 나왔던 게 마약 수사대는 한 팀이 5명으로 수사하는데, 당시 50명. 10개 팀이 투입이 돼 있었던 거예요. 이 사람들이 생생히 현장을 목격을 하고 있었는데. 상부로부터 인파 관리를 해야 된다, 뭘 해야 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거예요. 자기 직무에만 충실하라고. 경찰 특성상 마약 수사를 하고 있잖아요? 살인사건이 나도 개입 못해요. 그게 경찰의 특성이고요. 직무를 팽개치고 다른 걸 하잖아요? 그럼 징계 대상인 거예요. 눈앞에서 그런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과연 사람이라면 그걸 그냥 보고만 있었을까요. 틀림없이 상부에 보고했을 것이다. '지금 심각하다. 이거 어떻게 처리해야 되냐' 상부에서 뭐라고 지시했느냐가 핵심이에요.  마약 수사대 팀장들이 지켜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이거 도저히 안 되겠다.' 자기들끼리 회의를 했대요. 그 자리에서. 그래서 마약 수사대 조끼를 갈아입고 그때부터 구조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고.. 그때는 이미 골든타임이 지난 상태예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어느 장소에서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보고를 했는지 이게 굉장히 중요한 핵심이에요. 그리고 누구한테 지시를 보고를 했고 누구한테 지시를 받았느냐 이게 굉장히 큰 핵심 중의 핵심이라 할 수 있죠. -참사가 벌어진 이후, 상황 대처 문제도 지적하고 싶다고요? 제가 오전 12시쯤 현장에 갔는데 그때까지도 도로 통제가 안 되어 있었어요. 살아있는 아이들이 119에 실려서 응급실로 가야 되는데 못 가는 거죠. 도로에 사람이 꽉 차있는데.. 이건 그냥 길에서 죽으라는 거예요.   또 한 가지 짚고 싶었던 것은. 당시에 응급환자를 보내기 위해서 병원 응급실에 연락했는데 안 받았다는 거예요. 그것도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재난 상황이에요. 전시 상태 같은 상황이라고요. '받을 수 있다, 없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무조건 받아야 되는 거죠. 선택적으로 우리 병원은 안 돼?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이 제도도 분명히 고쳐야 되는 부분이죠. 전시 상태에 준하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는 무조건 가까운 병원 어디든 응급실은 무조건 가야 되는 거예요. 이게 가장 최우선적으로 되어야 되는데, 너무나 부실하고 어이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겉포장은 선진국이라고 해놓고 실상은 완전히 후진국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분명히 살 수 있는 아이들도 많았는데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에 굉장히 분노하는 지점이고요. 특조위에서 꼭 이걸 밝혀내야 된다고 유족들은 강조하고 있어요.   -또 하나의 의문, 희생자들 가족 인계까지의 과정 초기부터 공통된 의혹들이 있어요. 제가 현장을 갔을 때 이태원 골목 옆 빈 상가에 아이들 시선이 쭉 눕혀져 있었어요. 거기서 아이를 발견했어요. 그런데, 경찰이 못 들어가게 막는 거예요. '내가 부모인데, 왜 못 들어가게 하냐' 그랬더니 '여기 다 치료 중이라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리면 안 됩니다'라고 했어요. 그래서 방해되면 안 되지 하고 나왔는데 나중에 보니까 다 시신들이었어요.  왜 부모인데도 못 가게 막았나 굉장히 화가 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아이의 손을 한 번 잡아보지도 못하는 상태로 그렇게.. 부모들이 찾아왔는데도 인계해주지 않고 계속 놔두고. 우리 아이 같은 경우는 다목적 체육관에 들어가 있었는데, 신원 확인도 되었고 내가 사실관계 확인하면 인계해주면 되는 걸 안 하고 의정부로 보냈더라고요. 의정부 가서 찾았거든요.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예요. 도대체 그 이유가 뭡니까? 거리로, 외곽으로 보낸 이유가. 세월호 참사 이후에 재난 대응 시스템을 만드는 데 1조가 넘는 돈을 들여서 만들어놨단 말이에요. 완전 무용지물이에요. 그 많은 돈을 들여 만들어놨던 게 아무 쓸모가 없고 하나도 쓰지를 못했어요. 너무 답답하고 갑갑한 거죠.  -9대 과제에 담긴 유족들의 추가 요구사항은 무엇인가요? 9대 과제 8번은 피해자 지원 체계의 부분인데요. 참사 초기에 정부로부터 피해자로서의 권리를 하나도 받은 게 없이 방치돼 버리니 그런 문제를 지적을 하는 거죠. 처음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피해자의 권리라는 게 당연히 있다는 걸 인지하기 시작했던 거고. 당연한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리를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시스템, 상황 그리고 주위에서 우리를 억누르게 했던 유가족다움에 대한 이야기들 때문에 위축이 되는 것이 있었어요. 2차 가해도 근본적으로 우리가 되짚어봐야 될 사회적인 병폐이고 한 두 사람의 문제가 되는 게 아니죠. 특조위에 이런 2차 가해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요.   -특조위 출범 날, 유족들이 그곳을 찾았죠. 송기춘 위원장이 "유족과 희생자의 한을 꼭 풀어주겠다" 말을 했어요. 어떻게 해야 '한'이 진정으로 풀릴 수 있을까요?  가지고 있는 한은 유족들 마다 다를 거예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참사가 국가의 책임이라는 것만 밝혀주면 좋겠어요. 그래야 아이들의 명예가 회복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무질서했다, 자기들이 잘못했다 또는 왜 거기를 갔느냐' 이런 왜곡된 시선에 묻혀버리면 영원히 그냥 하지 말아야 될 짓을 했던 아이들로 낙인이 찍혀버리는 거예요. 그것만큼은 해명하고 싶어요.  열심히 일상을 살아왔던 아이들이에요. 단 한 번의 휴식을 위해서 갔던 곳에서 엄청난 일을 당해버린 거잖아요. 도대체 왜 아이들에 책임이 있냐는 거죠. 사람은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휴식할 권리도 있는데. 열심히 일은 해야 되고 휴식은 하면 안 된다? 그런 문제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제가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나요. '이태원을 관광특구에서 해제시켜라' 왜 관광특구를 만들어 놓고 와서는 안 되는 공간처럼 이야기를 하느냐고 너무나 이율배반적인 거 아니냐고. 관광특구로 지정한 건 오라고 하는 거잖아요. 왜 여기를 갔느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왜 하는 걸까요.   <이태원참사 2주기>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위원장을 만나다 ① 2년이 지났지만…참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② 참사 향한 ‘2차 가해’...곳곳에서 쏟아지는 화살③ 공감과 연대로 더욱 강해진 우리④ 딸을 위해 투사가 된 아버지  *순으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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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지난 2년의 시간, 당신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나는 평소에 서울시청 앞 광장을 자주 지나다닌다. 서점을 갈 때나 청계천을 걸을 때, 성당에 갈 때도 산책할 겸 탁 트여있는 광장을 한 바퀴 빙 둘러서 가곤 한다. 지난 시간, 그곳에 참사 합동 분향소가 마련돼 있었을 때도 그랬다.  나는 인터뷰를 이유로 참사 유가족 분들과 생존자 분들을 몇 번 뵌 적이 있었다. 그래서 분향소 앞을 지날 때면 언젠가 만났던 분들이 계신지, 그들이 나의 얼굴을 잘 기억 못하실지언정 인사라도 드릴까하여 주위를 둘러보곤 했다. 보라색 옷을 입은 이들의 얼굴을 한 번씩 바라보는 건 버릇이 됐었다.  그런데, 하나 솔직하게 고백할 것이 있다. 나는 그렇게나 많이 분향소 앞을 지나갔는데, 단 한 번도 분향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  영정이 마련되지 않은 분향소에서 분향을 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많은 영정 사진들이 놓여있는 분향소는 똑바로 마주보기가 어려웠다. 그 앞을 지날 때면 고개가 자동적으로 푹 숙여졌고 땅만 보면서 걸었다. 몸을 옆으로 돌려 몇 발자국만 가면 바로 분향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힘들었다. 마주하기 힘들면 길을 돌아갔으면 될 것인데, 그건 또 싫었다.   영정 앞에 꽃 한 송이를 못 올리고 향로에 향을 한번 못 피웠지만. 나는 그 앞을 지나고 싶었다. 대신 그때마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추모를 하곤 했다. 영정들 앞을 지날 땐 일부러 걸음을 늦추었고, 마음속으로 그들을 위한 기도를 했다. 형식을 제대로 못 갖추었지만 마음은 진심이었다.   아직도 이런 나의 행동과 감정을 세분화해서 자세히 설명하긴 어렵다. 그저 그 앞에선 자꾸 눈물이 나곤 했고, 하나로 단정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들이 가슴속에서 솟구쳐 올라왔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이태원 참사, 우리는 잊지 않았다  지난 5월 초,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순간, 내 입에선 “드디어...” 라는 말이 튀어나왔고 머릿속에선 유족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참사 이후 약 1년 6개월만.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가. 그들은 지금 어떤 마음이실지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참사가 발생한 날부터 내가 언론을 통해 보았거나 직, 간접적으로 보고 느낀 것을 다시 떠올려봤다. 참사 당일의 그 충격적인 장면, 수많은 희생자들, 생존자와 유가족들의 눈물, 울분과 분노, 고통, 기나긴 투쟁의 시간. 정부 기관과 정치권에서 벌어진 공방까지. 이 기억들은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참사에 대한 감정을 한번쯤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참사를 주제로 글을 하나 썼었다. 그리고 글벗 친구들에게 공유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한 자리에 모인 날, 우리는 참사에 대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누군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글을 읽었는데 그 날의 기억이 나는 바람에 눈물이 나서 힘들었다고 했고, 누군가는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벌어진 일이었는데 남 일 같지 않고 아직까지 가슴이 먹힌다고 했다. 누군가는 생각에 잠겨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1년 반 가량 지난 시점이었지만, 모두가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참사가 벌어진 뒤 처음 뉴스를 보았던 그 순간을. 잠 못 들고 밤새 TV만 지켜본 그 순간을. 그때 자신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도 마치 어제 일인 것처럼 또렷하게 기억했다. 잠시 희미해져 있었을 뿐이지, 다들 잊지 않고 있었다. 바로 내 곁에 있는 가족, 친구, 지인의 일이 아니었을지라도. 우리가 가진 슬픔의 무게가 그때나 지금이나 동등하게 무거움을 확인했다.  우리 뿐 일까. 다른 이들은 어떨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그동안 참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는지, 어떻게 슬픔을 달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혹여 사는 것이 바빠서, 시간이 지나서 자연스레 기억이 희미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도 어쩌면 우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사회의 시선에 대하여   나는 일 때문에 뉴스 기사를 많이 읽는다. 그리고 기사를 읽고 나서 항상 밑에 달린 댓글을 훑어본다. 이것을 보면 여론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는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기도 하니까.  처음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을 즈음, 기사마다 애도, 추모하는 댓글들이 많이 달렸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분위기가 달라졌다. 매섭고 차가운 비난과 혐오가 섞인 악성 댓글의 비중만 더 높아져갔다.  ‘남의 나라 귀신놀이가 뭐가 좋다고..’ ‘놀다 죽었는데 왜’ (댓글들을 다들 많이 접해보았을 테니, 이 정도까지만 적겠다. 댓글을 굳이 그대로 다 옮겨 적고 싶지 않다.) 희생자와 생존자들을 향해 쏟아지는 조롱과 희롱 섞인 말들은 읽는 나조차 괴롭게 했다. 청춘들이 핼로윈을 즐기러 간 것이 나쁜 것인가. 나도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에 친구들과 이태원에서 핼로윈 파티를 즐긴 적이 있다. 그런데, 이런 사고가 발생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땐 괜찮았는데 이 날은 왜 그랬을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문제가 뭐였는지에 대해서 악플 쓰기 전에 생각은 해 보았을까.  유족을 향한 악성댓글도 마찬가지였다. 아픈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말이 너무 많았다. 이들의 움직임을 정치적 행동이라 단정 지으며 비난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유족들이 왜 국회에 가고,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 왜 그렇게 긴 시간 투쟁할 수밖에 없었는지 제대로 알까. 그들의 눈을 마주 보고 심정을 이해하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우리 사회 일부가 너무 냉담하고 매정하다고 느낀다. 아픈 가슴에 자꾸 비수를 꽂는 것. ‘남의 일이고 내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참사나 대형사고가 발생했을 때마다 항상 유족들은 목소리를 높여왔다. 슬픔과 울분, 고통이 담긴 목소리. 외면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외쳐왔던 목소리들. 이 목소리들은 우리 사회가 좀 더 안전할 수 있게, 나와 당신이 좀 더 안전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목소리와 우리가 전혀 관계없다고 할 수 있는 걸까. 내 일이 아니다, 내가 알 바 아니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걸까.  사람의 생각과 마음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한다. 모두 같지 않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부디 이들을 향한 폭력적인 시선들은 거두어주시면 좋겠다.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조금 더 따뜻해지면 좋겠다. 첫발 뗀 특조위에게 바란다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9월 23일 출범했다. 글을 쓰는 바로 오늘이다. ‘지각 출범’이라는 딱지 붙어 버린 늦고도 아주 늦은 출범이다. 지난 5월,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공포된 지 30일 째인 6월 20일까지 특조위 구성이 끝났어야 했는데, 넉 달이란 시간을 넘겼다. 이것도 유족의 간곡한 호소문이 전달된 후에야 진행되었다. 왜 항상 그들을 끝까지 내몰고 나서야 일이 추진되는 것일까. 국가의 의무가 무엇인지, 이들에게 갖추어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특조위원들과 유가족들의 만남이 있었다고 한다. 기사를 통해 전해진 이야기를 보니, 일부 유족들은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 눈물에 얼마나 오랜 기다림이 담겨있었겠나.  1년의 시간이 주어졌다. 특조위가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라는 숙제를 잘 해내주기를 바란다. “희생자와 유족들의 원이 풀릴 수 있도록 하겠다.” 고 송기춘 위원장이 말했다. 그 약속이 반드시 지켜지기를 바란다. 글을 마무리하며  시간이라는 것은 참 빠르게 지나간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2년 가까이 됐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참사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잊혀 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억은 잠시 희미해졌을 뿐이지 지워지지 않는 것임을 알았다.  이 글을 쓰면서 유족들의 모습이 많이 생각났다. 고립되고 외면당하면서 엄청난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힘겨웠을지, 어떤 마음으로 버티어 왔을지 생각해 보니 글을 쓰는 내내 눈물이 났다. 그들에게 너무 외로워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바로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곁에서 많이 이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것은 사실이니까.  또, 나는 처음에 자기 고백을 했는데, 글을 써 내려가면서 계속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조만간 ‘별들의 집’을 찾을 예정이다. 그곳에서 빚진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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