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와 '실수로'의 문제 -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
철수는 평소 민수를 싫어했습니다. 어느 날 철수가 길을 가다가 민수네 집 앞을 지나가게 되었고, 갑자기 화가 난 철수는 야구공을 던져 민수네 집의 유리창을 깼습니다.
영희는 친구와 야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영희는 날아오는 야구공을 배트로 정확히 맞췄고, 빠른 속도의 타구가 마침 옆에 있던 민지네 집의 유리창을 깼습니다.
위의 두 상황은 모두 한 행위자가 타인의 집 유리창을 깬 상황입니다. 여러분은 철수와 영희 중 누구의 행위가 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대부분 철수의 행위라고 답하실 겁니다. 어째서 철수의 행위가 더 큰 잘못인 걸까요? 유리창이 깨졌다는 결과는 똑같은데 말이죠. 답은 간단합니다. 철수는 '일부러' 했고 영희는 '실수로'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똑같은 행위로 인해 똑같은 결과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행위의 고의성에 따라 이를 달리 평가합니다.
특정 행위에 대해 처벌해야 하는 법에서는 당연히 고의성의 문제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형법 제13조는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자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행위가 범죄임을 몰랐다면 벌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결국 고의가 아니었다면 처벌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고의성에 따라 행위에 대한 처벌 여부가 결정될 수도 있으니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죠. 하지만 현실에서 고의와 과실을 구별하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렇다 보니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들이나 정치인들을 둘러싼 의혹에서 고의성이 있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법조인도 아닌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법에 한해서는 어렵지만 중요한 쟁점일수록 시민이 직접 고민하고 토론하여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법리의 핵심에 해당하는 쟁점들이 어려운 이유는 높은 수준의 배경지식이 요구돼서가 아니라, ‘정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하지만 정답이 없는 문제의 결론을 소수의 결정권자가 정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요? 다양한 시민이 논쟁에 참여하고 최선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칠 때 가장 민주적인 결론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본 글에서는 누구나 고의성 판단 문제에 관한 논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고의성 판단 문제의 핵심 쟁점인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을 설명하고, 이를 둘러싼 법학계의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고의와 과실
법에서 고의는 ‘객관적 구성요건요소에 대한 인식과 의사’를 의미합니다. ‘구성요건’이라는 표현이 생소하실 것 같습니다. 구성요건은 법에 적혀 있는 범죄의 유형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살인죄 조항에서 “사람을 살해하는 행위”가 살인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합니다. 바로 이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실제 행동을 ‘객관적 구성요건요소’라 합니다. 자신의 행동이 객관적 구성요건요소에 해당하는 것임을 인식하고 있는 동시에 구성요건요소에 해당하는 행동을 하겠다는 의사가 있어야 고의가 성립합니다. 쉽게 말해서, 자신의 행위가 범죄임을 알면서 범죄 행위를 하는 것을 고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의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죽이겠다’도 고의이고, ‘누군가 죽어도 어쩔 수 없다’도 고의이지만, 둘은 분명 단계의 차이가 존재하죠. 이 중 가장 낮은 단계의 고의를 미필적 고의라고 합니다.
미필적 고의란 행위자가 ‘객관적 구성요건의 실현을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인식하고, 또한 그것을 감수하는 의사를 표명한 정도의 고의 형태’를 말합니다. 정의가 매우 복잡한데, 쉽게 설명하면 ‘자신의 행동이 범죄가 될 수 있음을 알고, 그 결과도 감수하겠다’ 정도의 태도입니다. 행위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의도적으로 추구한 것이 아니기에 가장 약한 고의가 됩니다. 그렇다보니 미필적 고의는 고의와 과실의 경계에 있는데요. 특히 인식 있는 과실과의 구분이 문제시됩니다. 과실은 행위자의 부주의로 인하여 원치 않았던 결과를 야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과실은 고의에 비해 불법 및 책임의 정도가 낮습니다. 따라서 항상 처벌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처벌 규정이 있을 때만 처벌됩니다. 인식 있는 과실이란 행위자가 ‘객관적 구성요건 실현을 단순히 가능한 것으로 인식하였으나 결과발생의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의사가 전혀 없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역시 정의가 매우 복잡한데, 쉽게 말해 ‘자신의 행동이 범죄가 될 가능성을 인식했지만, 결과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정도의 의미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어쩔 수 없지’는 미필적 고의, ‘그럴 수도 있지, 근데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는 인식 있는 과실입니다.
간단한 판례를 하나 볼까요? 학생들의 가두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의무경찰이 직진해 오는 택시에게 좌회전 지시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운전자는 계속 직진하여 의무경찰의 30cm 전방에 택시를 세운 후 의무경찰에게 항의했습니다. 의무경찰이 이유를 설명하던 중 화가 난 운전자가 갑자기 좌회전을 했고, 택시 범퍼 부분으로 의무경찰의 무릎을 들이받았습니다. 대법원은 당시의 상황과 운전자의 경력 등을 고려했을 때, 택시 운전자가 의무경찰과 부딪칠 것임을 알면서도 좌회전을 행했다는 점에서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만약 택시와 의무경찰 사이의 거리가 더 멀었고, 운전자가 의무경찰이 알아서 피할 수 있으리라 판단할 만한 상황이었다면 미필적 고의가 아닌 인식 있는 과실로 보았을 것입니다. 이렇듯 미필적 고의의 여부는 행위자의 진술뿐 아니라 행위의 구체적인 형태와 당시 상황 등을 바탕으로 만약 보통의 사람이라면 어떻게 생각했을지를 고려하여 판단합니다.
주요한 학설들
위의 설명을 보면서 느끼셨겠지만,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의 구분은 매우 모호합니다. 그러나 둘의 구분선이 사실상 고의성의 판단 기준이다 보니 그간 학계에서는 다양한 기준을 제시해 둘을 명확히 구분하고자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용인설, 무관심설, 가능성설, 개연성설, 감수설이 있습니다. 간단한 예시 문장들과 함께 각 학설을 살펴보겠습니다.
용인설은 행위자가 범죄 결과의 발생을 내심 승낙(= 용인)하여 흔쾌히 받아들일 때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는 학설입니다. 만약 행위자가 결과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 경우에는 인식 있는 과실이 됩니다. 현재 한국 대법원의 판례가 따르고 있는 학설로, 한국 법학계의 다수설이기도 합니다. 위에서 소개한 판례 역시 용인설에 근거하여 내려진 판결입니다.
이 행동으로 사람이 죽어도 괜찮아! (미필적 고의)
이 행동으로 사람이 죽지는 않았으면 좋겠군… (인식 있는 과실)
무관심설은 행위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부수적인 결과에 대해 무관심한 경우에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는 학설입니다. 반면 그러한 부수적 결과를 바라지 않은 경우에는 인식 있는 과실로 봅니다. 단순한 용인을 넘어 결과에 대한 가차 없는 무관심의 표현이 있어야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보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행동으로 사람이 죽든 말든 관심 없어. (미필적 고의)
이 행동으로 사람이 죽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인식 있는 과실)
가능성설은 행위자가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행위를 한 경우에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는 학설입니다. 가능성을 아예 인식하지 못했다면 과실이 됩니다. 가능성설에서는 가능성에 대한 인식만이 문제가 될 뿐, 행위자가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고려되지 않습니다.
이 행동으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군. (미필적 고의)
이 행동으로 사람이 죽을 리가 없지. (인식 있는 과실)
개연성설은 행위자가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개연성을 인식하면 미필적 고의가 성립한다는 학설입니다. 개연성까지는 아니고 단순한 가능성만을 인식한 경우에는 인식 있는 과실이 됩니다. 결과에 대한 행위자의 정서적 태도가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가능성설과 비슷하지만, 결과 발생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판단하는지가 중시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이 행동으로 사람이 죽을 거야. (미필적 고의)
이 행동으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지만, 그럴 일은 없겠지. (인식 있는 과실)
감수설은 행위자가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했으나, 자신의 목표를 위해 이를 감수하고자 할 경우에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는 학설입니다. 결과를 감수하고자 하는 의사가 없거나, 결과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 경우에는 인식 있는 과실이 됩니다. 감수설은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다양한 국가의 통설이기도 합니다.
이 행동으로 사람이 죽어도 어쩔 수 없어. (미필적 고의)
이 행동으로 사람이 설마 죽기야 하겠어? (인식 있는 과실)
지금까지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의 구별 문제에 대해 간단히 살펴봤습니다. 이제 어떤 기준이 가장 적절한지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자유로운 토론을 충분히 거쳐 정해진 결론이 최선에 가깝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저희가 소개한 견해 중 선택하셔도 좋고, 새로운 주장을 해주셔도 좋습니다. 댓글을 통해 여러분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눠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