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저 사람이 먼저 때렸어요! 정당방위가 인정되려면?

2023.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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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齊法)’은 법과 멀어진 대중들이 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된 법이 무엇인지 토론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출처: UnsplashMaxim Hopman

 서현역 흉기 난동, 신림동 칼부림, 신림동 성폭행 사건. 불특정한 대상을 상대로 한 묻지마 범죄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모두 위험한 물건을 사용한 공격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에 불안을 느낀 시민들은 방검복, 호신용 스프레이 등 호신용품을 구매하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호신용품을 사용하여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은 합법일까요?

 우리 형법은 제21조 1항에서 “현재의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하여 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벌하지 아니한다.”라고 하여 정당방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정당방위가 인정되면 위법성이 조각되어(=없어져) 범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흉기를 들고 위협하는 상대방을 방어하는 행위는 어디까지 정당방위로 허용될까요?  법 조항은 굉장히 간단해서 부당한 침해가 있는 경우의 모든 방위행위가 정당방위로 인정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형법은 정당방위가 성립하기 위해선 세 가지 조건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실제 판례를 보면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경우는 굉장히 드뭅니다. 

 법은 일상언어로 규정됩니다. 그렇기에 개별적인 사례에 법을 적용할 때는 법의 해석이 필요하고, 법의 입법 취지에 맞게 해석해야 합니다. 정당방위도 굉장히 간단히 쓰인 법문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고, 올바르게 법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관심과 활발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본 글에서는 정당방위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을 설명하고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은 판례를 소개하여 여러분이 어느 정도까지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정당방위 성립요건

 범죄가 성립하려면 구성요건 해당성, 위법성, 유책성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법익을 침해하는 부당한 행위를 방어하기 위한 정당방위는 위법성이 조각되어 범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위법성 조각 사유 중 하나인 정당방위는 범죄의 성립과 연관이 있으므로 정당방위인지 판단할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정당방위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은 ‘객관적 방위상황, 방위행위, 상당한 이유’로 구성됩니다. 

 객관적 방위상황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위협하는 부당한 침해 상황을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사람의 공격 행위가 있는 경우 객관적 방위상황이 성립합니다. 그러나 공격 행위처럼 위법한 행위가 있는 경우에만 방위상황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형법상 ‘행위’이기만 하면 방위상황이 성립하는데요, 예를 들어 소중한 물건을 의자 위에 두었는데 이를 모르고 의자에 앉으려는 사람을 밀친 경우도 객관적 방위상황에 속하게 됩니다. 

 이러한 방위상황에는 현재성이 있어야 합니다. 법익의 침해가 직접 임박하거나 방금 막 시작되거나 아직도 계속되는 상태일 경우에만 정당방위가 성립하게 됩니다. 즉 방위행위가 늦어지면 방위가 더 이상 불가능하거나 매우 힘든 상황이 되었을 때부터 침해가 종료되었을 때까지만 현재성이 인정되어 객관적 방위상황이 성립합니다. 과거의 공격이나 장래에 예상되는 공격에 대하여는 정당방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방위행위는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 즉 방위 의사를 가지고 방어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때 방위행위의 상대방은 법익을 침해하는 공격자만 해당합니다. 공격자 이외 제삼자의 법익을 침해하면 안 됩니다. 방위행위는 침해에 대한 수비적인 방어 행위와 적극적으로 반격을 가하는 반격 방어 모두 인정됩니다. 

 마지막으로 정당방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상당한 이유를 따지는 것은 침해 행위에 대한 방위가 현실적으로 필요한지, 사회윤리적으로 지나친 정도가 아닌지 검토하는 단계입니다. 방위에 사실상 필요한 행위로 인정되면 공격으로 침해되는 법익과 방위행위로 침해되는 법익을 비교할 필요 없이 방위에 필요한 모든 행위는 허용됩니다. 즉 효과적인 방어를 위해 모든 수단의 사용이 원칙적으로 가능합니다. 그러나 보호 방위로 충분한데도 공격 방위를 할 경우에는 공격 방위의 필요성, 즉 상당한 이유가 인정되지 않습니다. 방위의 필요성을 초과한 경우에는 과잉방위가 되어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습니다. 

📚관련 판례

 정당방위의 성립요건만 살펴보면 쉽게 인정받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 판례는 쉽게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장래에 반복될 위험이 있는 지속적인 공격에 대한 방위행위에 대한 판례를 살펴볼까요? 술만 마시면 구타하는 남편을 살해한 경우 또는 의붓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해온 A가 의붓아버지가 잠든 사이에 식칼로 심장을 찔러 살해한 경우가 있습니다. 판례는 이 경우 공격의 현재성과 방위의사는 인정하였으나 상당성이 결여되어 정당방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대법원 1992.12.22. 선고 92도2540)

 서로 시비가 붙어 싸우는 경우는 어떨까요?  A가 먼저 B의 뺨을 때려서 화가 난 B가 A를 구타하며 싸움이 난 경우 판례는 싸움행위가 상대방에 대하여 방어행위인 동시에 공격 행위가 된다고 보아 정당방위는 물론 과잉방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즉 방위행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 1993.8.24. 선고 92도1329) C가 D에게 갑자기 폭행을 당해 서로 멱살을 잡고 싸워 주위 사람들이 제지하였으나 C가 D에게 대항하기 위해 깨진 병으로 D를 찌를 듯이 겨누어 대항한 경우에는 정당방위가 성립할까요? 판례는 맨손으로 공격하는 D에 대하여 위험한 물건인 깨진 병을 가지고 대항하는 것은 사회 통념상 그 정도를 초과한 방어행위로 상당성이 결여되었다고 보아 정당방위는 물론 과잉방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대법원 1991.5.28. 선고 91도80)

 한편 정당방위가 인정된 판례도 있습니다. 외관상 격투를 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한쪽 당사자가 일방적으로 공격을 가하고 상대방은 소극적 방어 한도 내에서 자신을 보호하다가 이를 벗어나기 위한 저항의 수단으로 물리력을 행사한 경우에 판례는 정당방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1999.10.12. 선고 99도3377)

 판례를 살펴보면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고, 상당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며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사용하는 상당성의 개념은 상당히 모호합니다. 상당성에는 사회윤리적 제한이 포함되기 때문인데요, 사실 어느 정도까지 사회윤리적으로 타당한지 판단하는 것은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비슷한 상황에서도 정당방위가 인정되기도, 인정되지 않기도 합니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법무부의 태도

 최근 묻지마 강력범죄가 자주 발생하여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범죄를 예방하고 법익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정당방위가 적절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8월 7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대검찰청에 ‘폭력사범 검거 과정 등에서 정당방위, 정당행위 등 적극 사용’을 지시하였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법령과 판례에 따르면 흉악범을 제압하는 과정에서의 정당한 물리력 행사는 정당행위, 정당방위 등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 위법성 조각 사유에 충분히 해당한다며, 검찰에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피해가 갈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에서의 물리력 행사에 대해 경찰 및 일반시민의 정당행위, 정당방위 등 위법성 조각 사유와 양형 사유를 더욱 적극적으로 검토하여 적용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정당방위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과 관련 판례, 법무부의 태도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어떤 요건을 더 강화하고 구체화해야 할지 논의해 볼 차례입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토론으로 정당방위에 대한 법리적 해석이 더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임은 분명합니다. 정당방위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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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ㅇ난감' 이라는 드라마 보다가 '정당방위'에 대해 떠올라서 자세한 내용을 검색하게 됐네요. "2012년 자신의 집 건물 외벽을 타고 침입을 시도하던 A 씨의 쇠파이프를 빼앗아 들고, 집 안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A 씨의 머리에 내리쳐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된 B 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법률신문 라는 사례만 봐도 대한민국 법이 피해자를 지키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먼저 배에 칼을 맞거나 머리가 깨져야 방어행위가 인정된다는건지..ㅋㅋ 어이가 없네요. 미국에서는 집으로 침입한 강도를 총으로 사살한 사건에 대해 정당방위로 바로 인정해주던데요.

평소에 엄청 궁금해하던 내용인데 자세하고 쉽게 알려줘서 좋았습니다. 아무 정보없이 당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알고 있으면 대응하는데 도움이 될거 같습니다.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용품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가장 안전한 대비같아요.
법이 다른 내용으로 바뀐다해도 결국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면 바꾸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최말자님의 성폭력 자기방어 사건 재심 요청이 떠오르네요. '상당한 이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상당한 이유가 있었는지'를 판단할 때 실제로 어떻게 판단이 이뤄지는지 궁금하네요.
한국에서 정당방위가 잘 인정되지 않는다는 사회적 통념이 있는데요. 정말로 그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그런데 이건 상황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아, 면밀한 논의들이 자주 이루어지고 반영이 되면 좋겠습니다.
정당방위와 과잉방위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례들을 보니까 모두 90년대 판결들인데 그 사이에 사회적 인식이 바뀐 것 같기도 하고요.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조항이 사실상 판사의 재량에 따라 결정하게끔 만드는 요소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