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공론장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 진단과 대안> 포럼 후기
주최 : 공공상생연대기금, 사회적협동조합빠띠, 소셜 코리아, 랩2050, 솔라시
1. 포럼 후기 - 여섯 전문가에게 듣는 한국 사회 공론장의 문제와 대안
세상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적어도 ‘문제가 많다’는 데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그 문제들은 제대로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뉴스를 보면 세상은 문제투성이인데, 포털 기사를 열어보면 덧글이 더 문제투성이다. 분명히 세상에 똑똑한 전문가가 많다는데 세상을 안 바꾸는 건지 못 바꾸는 건지 잘 모르겠다. 다음 아고라, 청와대 국민청원, 촛불혁명 등 사람들이 직접 참여해서 세상을 바꾼 사례들이 있지만, 이제는 이런 사례들도 잘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종합해보면, 우리 사회는 시민들이 함께 토의하고 숙의하며 대안을 찾는 제대로 된 공론장이 부족하다. 이런 문제 의식을 가지고,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공론장에 대해 관심을 가진 시민들이 6월 22일 모여 세상을 바꾸는 공론장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각 발제자의 발제문을 더 자세히 보고 싶다면 발제문 제목을 눌러 읽을 수 있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 연구실에 갇힌 교수연구자들,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것인가?
남 교수는 ‘왜 교수가 공론장에 나서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했다. 크게 두 가지 이유를 제시했는데, 첫 번째로 교수가 너무 바쁘다. 행정 업무와 여러 프로젝트들로 인해 이미 바쁜 교수들이 세상의 문제에 대해 따로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두 번째로, 특정 사회 문제에 대해 교수가 이야기하면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히기도 한다. 이외에도 발제문에서는 세상과 소통하려는 의지와 관련 컨텐츠가 있어도 플랫폼이 마땅하지 않다는 점 등의 문제도 있다.
최영재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 포털-언론 생태계의 비극: 스타트업 대안공론장의 모색
최영재 교수는 우선 포털은 뉴스 상품 시장터이지 언론이 아님을 명확히 하였다. 때문에 포털의 뉴스는 탈 맥락화하고 혐오가 재확산되는 등, ‘정책적 사고’의 반대인 ‘포털적 사고’의 결과가 나타난다고 보았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정책 의제를 생산하는 대안적인 포털 공론장이 필요하다.
이연대 북저널리즘 CEO - 사용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콘텐츠와 커뮤니티 : 스타트업은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조직이다. 미디어 스타트업은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이연대 북저널리즘 대표는 오늘날 이전보다 훨씬 많은 정보가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이를 잘 선별하고 정제하여 사람들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어려운 내용을 잘 풀어 설명해야 사람들이 읽는다. 또한 북저널리즘의 통계에 따르면 서비스에서 덧글을 한 번이라도 남긴 이용자의 재결제율이 그렇지 않은 이용자보다 6%가 높은 만큼, 사람들의 공론장 참여 경험을 늘려야 한다.
서혜빈 한겨례신문 선임연구위원 - 특명: 학계 존재감 키우기 프로젝트
서혜빈 한겨례신문 선임연구위원은 약 1년간 학문의 대중화를 목표로 좋은 연구가 사회에 확산될 수 있는 콘텐츠 사업을 진행해 보았다. 대중과 연구자들이 연결되어 대중은 연구자들의 질 좋은 연구를 알고 습득할 수 있었고, 연구자는 대중과의 소통이 가능한 윈윈 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 구성원이 아니면 논문 원문에 접근하지 못하는 접근성 문제, 그리고 학계 자체가 사회와 소통할 의지가 없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여러 학습 연구에 공개적으로 접근 가능한 오픈 엑세스 운동과 학계에서 대중과 소통을 위한 방법들이 시행되어야 한다.
윤형중 LAB2050대표 - 정책과 사회 문제는 어떻게 만날까
윤형중 LAB2050대표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들에 대해서, 공론장에서 제대로 다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점부터 지적하였다. 대통령 수능 발언에 대한 대안, 전세사기에 대한 대안 등 제대로 된 대안이 나오고 있지 않았고, 문제가 더 심각해지기 이전 제 시기에 공론장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공론장에서 다뤄질 수 있는 의제는 제한적이고, 그나마 다뤄지는 의제도 대안 논의 없이 소비되기 때문이다. 정책과 사회 문제가 만나려면 공론장의 상태를 진단하고 문제 제기하는 시민들이 늘어야 하고,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적극 공론장에 참여해야 한다.
김연수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이사 - 시민의 힘을 모으는 ‘디지털 시민 광장'을 향해
김연수 빠띠 이사는 광우병 시위를 시민들이 조직하고 참여할 수 있던 장소로서의 ‘디지털 시민 광장’의 순기능을 강조했다. 광우병 사태에 대한 의견과 찬반을 넘어, 시민들이 응집하고 직접 행동 가능할 수 있었던 디지털 광장 ‘아고라’의 기능을 ‘빠띠’에서 재현하고자 한다. 빠띠에서는 다양한 사안에 대한 토론은 물론이고,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한 투표, 유기견 보호 등에 대한 캠페인 진행 등 디지털 공론장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빠띠의 여러 장소와 기능들을 통해 시민들이나 시민단체, 비영리 조직 등의 주체가 더 많이 만나고 서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활동 생태계가 조성되길 기대한다.
발제자들의 발제 하나 하나 정말 중요하고 인상 깊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았던 내용은 학계와 사회의 단절이다. 개인 경험을 하나 이야기하자면, 2월달에 대학원을 졸업한 이유로 내 석사 논문을 내 학교 홈페이지에서 열람할 수 없다. 당장 논문 자체에 대한 접근성만 하더라도 매우 폐쇄적이고, 대학원생으로 지내면서도 따로 활동하지 않는 이상 사회와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전공과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수업과 학교 내의 프로젝트만으로는 사회와 소통하기 어려웠다. 물론 현장에서 나왔던 몇 분의 비판대로 꼭 모든 학계와 모든 이론이 사회와 접할 이유는 없지만, 국제 정치에 대한 내용만 하더라도 뉴스에 간단하게라도 실리면 대중의 이해를 크게 늘릴 수 있는 이론들이 있는데 대중과 완전 괴리되어 있는 것이 아쉽다. 논문의 접근성을 늘리기 위한 환경 조성을 위해 학계의 노력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2. 학계에서 바라보는 공론장의 역할
2-1.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 정책을 얘기하는 공간
앞서 발제자들의 다양한 발제들이 훌륭했음에도, 지금까지의 공론장의 한계를 떠올리며 세상을 바꾸는 공론장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공론장의 필요성과 역할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고자, 두 가지 정치학적 연구 사례를 소개하며 공론장을 통한 숙의가 정책 변화에 왜 중요한지 설명하고자 한다.
첫 번째 연구는 촉법소년 연령 정책에 관한 정책분석 연구다[1]. 촉법소년 상한 연령을 만14세에서 만13세로 하향하는 것이 범죄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여론이 79%이고, 실제로 법무부에서도 작년 10월부터 촉법소년 연령을 하향하는 형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촉법소년 상한 연령을 하향하려는 움직임은 2017년부터 있었는데, 왜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답은 정치적 상황과 전문가들의 반대 의견 때문이다.
손현종과 성진기는 촉법소년 연령 정책에 대한 연구에서 킹던(Kingdon)의 정책의 창 모형을 활용했다. 킹던은 정책 문제의 흐름, 정책 대안의 흐름, 정치의 흐름이 전부 맞아야 정책의 창이 열려 정책이 결정되고 집행된다고 보았다. 촉법 소년 정책에 대한 경우, 언론의 보도량이나 보도 방향이 촉법소년 상한 연령을 하향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정책 문제의 흐름을 가지고 있었고, 2017년부터 정치인들이 촉법소년 상한 연령을 하향하려는 정책 대안의 흐름이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의 집권과 민주당이 다수당인 시기 등이 2017년부터 지속적으로 존재했으며, 무엇보다 촉법소년 상한 연령을 하향하는 것이 범죄 예방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전문가들의 반대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오며 정치의 흐름이 맞물리지 않았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대한 찬반은 존재할 수 있겠으나, 내가 실제로 촉법소년에 대해 글(1편/2편)을 쓰고 덧글 반응을 살펴보며 체감한 것은 촉법소년의 나이 구간에 대해서도 대중 사이에서 혼동이 있었으며, 관련 신문 기사들 역시 제대로 된 연구 근거가 없이 감정에 호소하여 촉법소년 여론을 주도하고 있었다. 서혜빈 연구원의 말대로 모든 논문이 대중에게 읽힐 필요가 없고, 남기정 교수님 말대로 학계가 사회 문제에 나서기 어려울 때가 많지만, 특정 사회 문제가 대두되어 정책 문제의 흐름이 형성되었을 때 학계가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공론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2-2. 여론의 변화를 주도해 정책 논의를 이끄는 공론장
두 번째 연구는 정책 대상의 유형에 따라 어떤 정책이 형성되는지에 대한 연구다[2]. 이 연구에 따르면 중장기적인 공론장의 역할과 단기적인 공론장의 역할이 모두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선행연구들을 토대로 정책의 대상이 되는 집단인 정책 대상 집단을 사회적 이미지가 긍정인가 부정인가, 정치 권력이 긍정인가 부정인가에 따라 네 가지로 분류하여 정책 대상 집단의 속성에 따라 어떤 정책이 만들어지는지 보았다. 연구 결과,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는 정책 대상 집단에게는 비용을 부과하거나 규제를 가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정책 대상별 사회적 인식을 조사한 <그림1>을 보면, 미혼모나 빈곤층, 실업자, 동성애자 등 사회적 약자 집단 중 일부가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사례에 대입해 생각해보면, 차별금지법이 입법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도 성소수자에 대해 아직까지 남아있는 사회의 부정적인 시각의 영향이 있다. 공론장의 역할은 단순히 특정 정책 대상 집단이 긍정적이어야 한다 / 부정적이여야 한다를 넘어, 왜 긍정적이고 부정적인지를 같이 이야기해보고, 필요하다면 특정 정책 대상 집단들에 대해 필요한 인식 개선을 통해 필요한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때와 반대로 사회에서 정책 대상 집단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는 경우에는 혜택을 부과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실행되지만,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종교인을 대상으로 하는 ‘소득세법’의 경우 오히려 세금이라는 형태의 비용을 부과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정책 대상 집단의 이미지보다 당시의 강력한 여론이 입법에 더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이는 기존의 사회에 뿌리잡은 인식을 넘어, 특정 사회 이슈에 대해 공론장의 노력에 따라, 활동가들의 활동에 따라, 전문가들의 소통에 따라 세상을 바꿀 입법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빠띠를 포함한 여러 공론장의 활성화을 지지하고 기대하는 이유다.
<참고문헌>
[1]손현종, 성진기.(2023).촉법소년 연령 정책에 관한 정책분석과 시사점 연구 - Kingdon의 정책 흐름 모형 중심으로 -.범죄수사학연구,9(1),111-132.
[2]김은경, 곽진영. (2018). 정책유형과 정책대상집단에 따른 입법과정 분석 : 정책의제설정 단계를 중심으로. 의정논총, 13(1), 233-263.
코멘트
5이런 자리가 다양한 시민들과 함께 자주 열리면 좋을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슬렁 좋은 감상평 감사합니다..!!
시민 참여로 사회 문제가 해결되고 사회가 조금씩 변화하는 사례가 줄어드는 것이 아쉽네요.
한편으로는 수많은 예산을 들여 진행했던 정부 주도의 공론화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조금 시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한번 짚어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왜, 어떤 기제로 공론장이 우리에게 필요한지, 어떤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지 참고문헌, 연구내용으로 이어주셔서 알기 명확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