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정치를 꿈꾸는 캠페이너들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선거제도 개혁은 끝없이 소환해야 할 문제의식인 것 같습니다. 최근 "국회의원 정원, 늘려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논의가 이루어지고, 4월 1일, '[해보자! 시민대토론] “국회의원 수, 늘려? 말어?” – 국회의원 적정 정수 논의를 위한 시민 패널 토론 '공론장 행사가 열리는 것을 보니, 다시 '비례대표제' 이야기를 다시 꺼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2024정치개혁공동행동'이 2월 22일에 진행한 '“선거제 개편, 어디까지 왔고 어디로 가야하나?” 선거법 발의안 분석 및 평가 토론회'에서도 이야기가 되었네요. (아래의 글은 2020년 총선 이후 작성했던 메모입니다.)
# 연동형비례대표제의 도입은 보수양당정치체제로 인해 배제되고 몫 없는 사람들의 실질적 대의가 어려운 조건을 타개하기 위한 제도 변형의 시도였다.
#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에 의한 민주적인 다당제로 진전하고자 하는 힘은 미래통합당(현 국민의 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 창당에 의한 양당정치체제의 회귀의 힘으로 인해 2020 총선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달성하지 못했다.
# 비례위성정당에 대한 인정은 ‘우리 편이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진영론 정치’와 맞닿아 있다.
# 비례위성정당의 성공은 양당정치체제로의 회귀를 의미하며, 이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더 깊은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은 것이다.
# 제도정치현실주의에 입각한 선거실리주의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고, 이는 비례위성정당의 성립에 기여하는 동시에 소수진보정당에 여러 의미로 유해한 것이 되었다. 제도정치현실주의는 현실의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라는 인식 속에서 민주주의 제도로서의 의회, 선거 등의 범주를 정치의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이해하는 관점이다. 이러한 인식에서 사회운동이나 시민참여 등은 민주주의의 외부나 부차적인 것으로, 사회구조의 변형은 이상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선거실리주의는 선거에서 이기는 것만이 정치의 전부인 것으로 여기는 관점이다. 선거실리주의는 제도정치현실주의 극단적인 한 형태인 셈이다.
# 선거실리주의에서는 선거 승리가 모든 것을 정당화 한다. 내부적인 성찰은 없다. 승리와 패배에 대해서만 이야기 할 뿐, 민주주의의 훼손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 연동형비례대표제가 불완전하게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위성정당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통합당은 위성정당을 추진함으로써 반민주적인 선택을 했고, 이를 용인한 선관위 역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물론 꼼수에 대한 꼼수 대응을 한 민주당 역시 그 다음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물론 특정한 선거제도 자체가 민주주의를 항상 담보하고 있다고 말 할 수는 없다. 논의의 초점은 한국의 시공간적 맥락에서 오랜 시간을 걸려 만들어낸 민주주의의 심화를 위한 제도 변형의 정치적 실천이 선거실리주의적 진영론 정치로 인해 무위로 돌아가게 된 것에 있다.
# 몇몇 진보정당들의 비례위성정당에로의 참여 시도는 양당정치체제를 대체하는 제3의 대안적 가능성으로서의 독자적 정치세력이라는 자신들의 위치성을 무너뜨리는 일이 되었다. 당원들의 내부적 반발로 인한 내파, 혹은 동력 약화의 힘이 작동했을 것이다. 진보정당들의 위성정당에의 참여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당 차원에서의 제도정치현실주의적 압력 속에서 이루어지는 당의 리더 및 후보들의 ‘선거실리주의’라 표현할 수 있다. 물론 선거를 통한 국회의원의 당선 그 자체는 대의민주주의에의 실질적 참여를 전제로 한다면 불가피할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달성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의 가치/정체성/방향과 대립되는 선거지상주의는 당의 근간을 흔들게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대안적인 미래를 지향하는 소수진보정당에게서 더욱 그러하다. 선거를 통한 당선을 중요하게 여기는 선거 전략들은 당내의 민주적 절차를 적절하게 거쳐야만 필요불가결한 제도정치현실주의로 위치되어 힘을 얻거나, 당의 내홍을 최소화 할 수 있다.
# 민주당은 양당정치체제의 보수-진보 이분법에서 자신을 진보로 위치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양당과 구별되는 진보정당의 성장에 적대적이다. 진보정당이 민주진보연합의 하위 파트너일 때에만 (거짓) 자율성이 용인된다. 민주당은 제3의 대안으로서의 가능성이라는 싹들을 제거했다는 점에서 지난 총선의 수혜자이기도 하다. 정의당의 의원수 최소화, 다른 소수진보정당들의 존립 근거의 약화라는 이중의 의미에서 그러하다. 그리고 시민사회, 몇몇 소수진보정당들의 참여 등의 외부적 조건에서 책임을 분산시키면서 선거실리주의적 경향의 실질적 발현으로서의 비례위성정당을 가능한 한 정당화시키면서 출범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일정부분 명분을 얻었다는 점에서 수혜자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은 양당정치체제로의 실질적 회귀라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 연동형비례대표제가 도입 된 지난 총선에서 정의당이 큰 수혜자가 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거대 양당의 비례위성정당의 등장으로 인해 무위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례위성정당의 비참여 및 독자노선은 민주당 2중대가 아닌 제3의 대안정치세력으로서의 위치성을 확고히 하는 정당한 선택이었다. 다른 소수진보정당들이 안타깝게도 대체로 참여 노선을 지향했기 때문에 더욱 돋보이게 되었다. 선거실리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정신승리로 보이겠지만 말이다. 물론 이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인해 가장 큰 수혜가 기대되는 상황에다가 제도 추진의 핵심주체였기 때문에 비례위성정당에 참여할 수 없는 조건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당이 앞으로 제3의 대안정치세력으로서의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민주진보연합 노선 사이에서 갈팡질팡 한다면 실리도 명분도 얻지 못하고 이도저도 아니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봤을 때 여전히 그런 갈팡질팡의 상황인 것 같다.
# 민주당과 진보정당 사이에서 진동하는 층과, 진보정당들 사이에서 진동하는 진보정치 적극 지지층이라는 각기 다른 방향이 있을 것이다. 정의당의 경우에는 전자의 방향에서 민주진보연합노선을 주로 택했었다.(문재인 정부의 개혁 성공을 위해 정의당을 지지해달라는 발언이나 "민주 20 대 정의 30 비율로 전략적 정당투표 해달라"는 요청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는 ‘상식’(으로 알려진 것)에 기반하여 무정형의 대중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대의민주주의적 대중정당론과 조응하는 제도정치현실주의에 입각한 선거실리주의 전략이다. 이러한 인식은 민주당과 정의당 사이에 있는 유권자들의 인식을 단일선상에 놓고 평면화 하여 단순하게 인식하는 실증주의적 관점이다. 양당정치체제에서의 선거실리주의가 현실정치의 거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된다면 이러한 부당한 도식화는 분명히 현실적으로 큰 힘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유일한 사실인 것처럼 인식된다. 하지만 그 큰 힘은 사회를 거의 변화시키지 못하는 자기충족적인 힘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진보연합으로 종속되지 않고, 양당정치체제 내에서의 선거실리주의로 환원되지 않으면서도, 피억압 대중에게 광범하게 호소할 수 있는 대안적 정치를 창안해 내는 것이 바로 진보정치의 중요한 일부이자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적이지 않은 이상주의라고 평가하더라도 말이다.
# 무정형의 유권자 혹은 대중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다수의 개인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과 거의 같은 말이 된다. 다른 층위에서 적극 지지층 혹은 활동가들의 정치적 주체화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현실과 이상의 간극으로 인해 민주당과 진보정당 사이에서 진동하는 활동가들의 정치적 주체화를 위한 실천이 필요하다. 이는 대안적인 정치적 실천을 실제로 벌여나갈 수 있는 진보정치 정치인 및 활동가들의 임파워먼트를 의미한다.
# 양당정치체제를 넘어서는 제3의 대안정치세력으로서의 진보정당을 지향한다면, 메시지, 즉 비전과 대안, 그리고 구체적인 정책 변화에 대한 담대한 제안들이 있어야 한다. 이는 기존의 프레임으로는 정확하게 포착할 수 없는 복잡한 현실의 문제를 직관적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이를테면 판을 새로 조직할 수 있는 ‘판갈이’, ‘무상의료! 무상급식’ 등이 상징적 사례들이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탄소중립'을 위한 ‘그린뉴딜’, LH,대장동 사례에서와 같은 개발 카르텔 문제의 해결, 젠더 문제의 해결 등을 위한 사회의 구조 및 제도 변형과 관련되어야 할 것이다.
# 독자노선은 ‘제도정치 차원에서 현실성이 없다’는 경험주의적 비판과 ‘현실노선은 변형해야 할 구조로의 종속 및 재생산 경향이 있다’는 구조주의적 비판 사이에서 ‘현실적인 독자노선’이 되어야 한다. 즉 양당정치체제와 구별되면서도 제도정치에서의 실질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대안적 정치를 창안하고 현실화해야 한다. 이 힘든 길이 진보정치의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진보정치의 관점에서 제도정치현실주의는 선거실리주의로 환원되어 이해해서는 안 되며, ‘제도정치를 경유하여 사회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구조 및 제도의 변형을 실질적으로 이뤄낼 수 있는 정치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현실주의 노선의 정립’으로 이해해야 한다. 제도정치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현실주의적 관점은 중요하지만, 사회운동과 대중운동, 시민참여의 증대, 들리지 않던 목소리를 들리게 하고 임파워하는 것,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인 제3의 정치성을 제도정치화 하는 등의 정치적 실천, 즉 현실적이지 않다고 외면받고 있지만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필요한 사회운동정치/시민정치 역시 그만큼 중요하다. 양당정치와 구별되는 진보정치의 중요성은 그곳에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선거에서의 실질적 성과는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일부로 위치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선거실리주의는 수단이 목적으로 전도 된 것이다.
코멘트
2이 글은 지난 총선이 끝난 후에 제가 쓴 글입니다.
연동형비례대표제의 도입은 보수양당정치체제를 넘어 민주적 다당제로 진전하기 위한 힘의 응집체였으나 비례위성정당으로 인해 껍데기만 남았고, 그것은 승리하기만 하면 된다는 결과중심의 선거실리주의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선거 결과는 실질적인 양당제로의 회귀를 의미한다고 봤습니다. 양당제를 넘어서는 제3의 가능성의 실질화로서의 진보정치는 민주진보연합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선거실리주의로 환원되지 않으면서 대중에게 광범하게 호소할 수 있는 대안적 정치를 창안하는 것이 아니고서는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4년이 다 되어가네요. 이번 총선 전에 생각해봐도 그때의 생각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습니다. 위성정당을 만들었던 이들은 여전히 위성정당을 만들고, 위성정당에 참여 했던 이들은 더욱더 적극적으로 위성정당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위성정당에 참여하지 않고 제3지대를 만들겠다는 세력은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은 세력들의 합이었는데 몇일 안되어서 다시 쪼개지고 있고..
보수당과 자유주의정당과는 구별되는 진보정치를 하겠다던 몇몇 진보정당은 적극적으로 위성정당에 함께 하고 있고..
위성정당에 참여하지 않기로 하고 독자적인 길을 가며 ‘옳은 선택(?)’을 한 녹색정의당은 여러 사람과 세력들의 탈당과 내홍 등 수많은 과정을 거치며 활력을 잃어버리고 미래가 불투명하고..
어떤 방향에서 어떤 전략을 짜고, 어떤 전술을 취하든 대부분 선거에 이기기 위한 ‘선거실리주의'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정당, 정파의 승리를 추구한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정치인 개인의 선거실리주의가 정당과 정파를 망치는 경우도 허다하고, 개인이 당선되면 사회를 뒤엎기라가 할 수 있을 것처럼 선거제도 개편을 망치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는 것이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비례위성정당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번 선거를 지나게 되면 거의 제도화 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의 정치체제는 유사다당제+실질적인 양당제이며, 정치양극화, 정치적 부족주의, 팬덤정치 등으로 불리는 정치 문제들을 해결 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지는 방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기면 장땡'이라는 말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데요. 2020년 국회의원 선거가 왜 '이기면 장땡'이 잘못됐는지를 보여준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은 '승자독식의 방식을 벗어나서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하자'는 취지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거대양당은 취지를 포장지로 이용했고,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 구성보다는 결국 본인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나 싶네요.
벌써 4년이 흘러서 내년에 다시 선거가 진행되는데 매번 선거를 치를 때마다 사과하는 거대양당이 꼼수 위성 정당 창당도 언급할지 궁금합니다. 내년 선거에선 '이기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가 퇴출될 수 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