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청년 니트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방향에 대한 소고

2023.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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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정치, 사회운동, 청년 등과 관련한 글을 씁니다.

‘니트’는 “Not currently engaged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줄임말로, 의무 교육을 끝낸 뒤에도 진학도 취직도 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니트 청년은 2020년 기준 37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 할 수 있을까?

청년들의 일자리가 줄고 니트가 늘어나는 것은, 경제 성장이 둔화되거나 경제 위기가 발생하는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구조적 차원의 양극화 또한 중요한 원인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강의 기적 속에서 유일하게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 된 부국이라는 자화자찬 이면의 니트가 증가하는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후자의 관점에서 보면 ‘분배 혹은 재분배’, 평등한 관계 형성의 문제가 중요해진다. 이에 더해 부동산의 소유에 의한 부의 양극화 또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어떻게 분석을 하든 구조적인 문제의 급진적 변형은 ‘노사정 대타협’과 같은 큰 정치적 지형 변화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수행할 수 있는 정책의 차원을 넘어선다. 제도정치와 사회운동의 연결, 그리고 시민의 지지와 압력의 결합 등 복합적인 정치적 실천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1) 구조적 차원의 문제의 해결 방향성과 모순되지 않는 관점에서 문제들을 완화하는 소극적인(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정책을 추진하거나, (2) 국가 전체 차원의 구조적 차원의 문제의 해결 방향성의 맹아를 보여 줄 수 적극적인/실험적인 정책들을 펼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실행하고자 하는 정책이 구조적 차원의 문제의 해결 방향성과 상충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정책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정책 대상에 도움이 되지만 구조적 차원의 문제 해결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서울시의 사례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사회적 경제 영역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정책들, 청년 일자리와 관련해서는 사회적 경제 영역과 밀접하게 연관된 뉴딜 일자리 사업을 실행하는 등, 구조적 차원의 문제 해결을 위한 맹아를 보여주는 실험적인 정책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책은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면이 있다. 꼭 이 사례가 아니더라도 후자와 같은 식의 정책들에 힘을 쏟는 것은 구체적인 실천들을 모아 총체적인 정치적 비전을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는 주로 양적 차원에서의 평가들과 조응하며, 후자는 질적 차원에서의 평가들과 조응한다.  



성장-대량소비와 관련되는 자본-노동의 모델들이 만약에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혁명이 아니면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질 정도로 한계에 봉착한 것이라면(4차산업혁명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이야기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성의 공동체 사회, 욕망이 아닌 필요에 입각한 생산 및 소비라는 패러다임 전환을 추구하거나, 사회적 경제의 발전이라는 비전에 입각하여, 공공영역에서 사회적 노동을 수행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일련의 청년 집단들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한 실험이 될 수 있다. 어떻게 해도 정답을 찾기 어려운 성장-대량소비라는 기준으로서의 ‘질 좋은 일자리’의 창출보다는, 사회의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며 노동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관점에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확보하기 쉽지 않은 더 많은 부가 일자리를 만들까? 부는 이미 많다. 부가 선순환 되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않을까? 뿐만 아니라 끝없는 경제성장은 환경을 파괴하고 그것은 더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증명되고 있다. 

자본주의 외부로 나아가 대안공동체를 만들어 행복하게 사는 유목민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방)정부의 정책에 입각하여 사회적 경제 영역의 발전시키는 차원에서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 혹은 완화하고자 하는 시도가 ‘자립성’이라는 기준을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다면 청년들로 하여금 또 다른 가능성들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좋은 집과 많은 소비’가 아니라 ‘함께 모여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행복’의 가능성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이는 기존의 노동시장에서의 경쟁 완화, 청년 니트의 감소와 연관될 수 있다. 그리고 쉽지 않겠지만 그러한 가치들이 국가 차원에서의 문화 변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가 된다면 더욱 자립성이 높아지고 경쟁이 완화되는 상황을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공공성과 대안공동체를 지향하는 방향성은 특히 ‘지역’이라는 범주와 친화성이 높다는 점에서 더더욱 지방정부 차원에서 실험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 같다. 

청년 니트는 대체로 학교와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청년으로 정의된다. 청년 니트는 헬조선에서 마상을 입고 적극적인 사회적 삶을 뒤로하고 고립에 처한 존재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정부의 정책들은 대체로 적극성, 주도성을 지닌 대상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기 쉽기 때문에 청년 니트의 ‘발굴’이라는 표현이 주로 쓰이게 되는 것 같다. 돌아다니면서 강제로 끌어내지 않는 이상 ‘발굴’은 쉽지 않다. 안정된 집, 결혼 및 육아,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돈 많이 버는 직장이라는 ‘정상 루트’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압박은 많은 청년들을 강제로 니트로 만들어 버린다. ‘비정상’은 곧 소외이고 불행이 되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모든 청년들의 정상 루트로의 진입이라는 생각은 실현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대안적인 삶의 방식으로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정책 실험을 통해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추진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새롭게 믿고 기댈만한 것이라면, 청년 니트들이 다시 행동에 나서도록 하는 중요한 제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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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자살률 1위, 심각한 청년 우울증, 낮은 지니계수, 노인 빈곤률이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끝없는 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환경, 노력으로만 극복하기엔 너무 큰 격차, 이를 공고하게 하는 부의 되물림과 제도, 그로 인한 박탈감. 뫼비우스의 띠 같아요. 그런데도 이권다툼만 지속하고 있는 정치권이 답답할 따름입니다.

청년들에게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에 동감합니다. 사회적경제 영역의 경우 이미 지역 내/지역 간 상호협력 네트워크와 주니어 지원체계를 꾸준히 구축해왔죠. 지방 약화와 청년 일자리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지방정부의 입장에서 사회적경제 영역과의 연계는 그저 실험적인 시도가 아니라 매력적인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청년 세대의 문제가 다뤄지는 방식에서 '노력하지 않는다', '편한 것만 추구한다'는 시각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문제가 동일하지만 청년 세대의 문제도 본질은 '사회가 불평등 해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 발생했다' 아닐까요? "함께 모여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행복"이 이뤄지기 위한 조건은 어떤 것들이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