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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늙어 죽을 수 있을까?'라는 말이 90년대생의 슬로건이 된 것 같아요. 너무나도 자주 벌어지는 사회적 재난 앞에서 청년들에게 미래를 꿈꾸라는 말이 폭력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계속해서 사회를 일궈갈 청년들이 무사히 살아갈 수 있게, 긴 호흡으로 삶을 향유할 수 있게 보다 든든한 국가와 사회가 바탕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본문 마지막의 '참사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우리 사회에 사회적인 참사가 계속 일어나는데요. 그들에 대한 비난과 혐오의 말도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보상금만 주고 털어내려는 존재로 보는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해야 하는 사람으로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적어주신 내용 중 애도는 연결을 인지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들의 일 말고 우리의 일로 참사를 애도할 수 있는 제반조건들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수많은 참사를 보며 자라 기성세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지금, 저 자신은 사회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반성해보고 있습니다. 무기력감 속에서 끊임없이 책임감을 다시 꺼내며 살아가려 합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조례 일부개정안 전반적인 내용에 공감합니다. 이번 참사 초반에 논쟁거리가 되었던 것이 '주최'가 없는 행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 였던 것 같은데요. 이런 사항에 대한 언급도 있네요.

그런데 '시민의 책무'가 어떤 내용일지 궁금합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어떻게 행동하고, 위급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한다는 내용일까요?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조례 제정을 통해 확실하게 관리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례 제정으로 모든 것을 막을 수는 없을텐데 하는 걱정도 드네요.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에 분명 빈틈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기성국가-기성정치-기성사회를 거부하고, 각자의 이야기를 산발적으로나마 꺼내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퇴진이 추모’라는 구호는 이 모든 과정과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 이 말에 매우 공감합니다.

사상자에 관한 뉴스를 보다가 악성댓글 때문에 댓글창을 닫아두었다는 마지막 줄을 본 적이 있습니다. 눈앞이 어두워지고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최성용 님의 글에 매우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