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번역가는 최저 시급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요?
프리랜서 번역가는 최저 시급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요?
저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서 아이를 양육하는 한부모입니다. 지금은 프리랜서 번역가로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하고 있지요. 제가 번역하는 만화책·웹툰 분야는 대부분 건당으로 번역료가 책정되고, 시급으로 따지면 평균 7천 원 정도입니다. 아직은 한 달에 30만 원 정도를 받고 있지만, 열심히 지원서도 넣고 작업도 하며 조금씩이나마 근무 시간과 소득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제가 가까운 목표로 잡은 월 평균 소득은 90만 원인데요, 200만 원도 아니고 100만 원도 아니고 90만 원인 이유는, 제가 생계급여 수급자이면서도 근로 능력이 있는 조건부 수급자이기 때문입니다. 근로 능력이 있는 수급자는 월 90만 원 이상의 소득이 있어야 자활 사업에 참여하지 않고도 자격을 유지할 수 있거든요.
시급으로 환산했을 때 적게는 4천 원, 많게는 1만 원 정도를 받으면서 한 달에 90만 원을 벌 바에야, 차라리 최저임금이 보장되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100만 원을 버는 게 낫지 않나 하는 궁금증이 생기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구하려 해도 일터에서 짜주는 일정대로 근무하면서 주말과 야간에도 필수로 나와야 하거나, 아이가 학교에 가기 이전 시간 및 학원이 끝나고 집에 온 이후 시간과 근무 시간이 겹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 혼자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사정을 미리 아르바이트 면접에서 말하고 평일 오전~오후 시간대 근무만 했던 시기도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몇몇 직원들은 저의 사정을 알고 있음에도 ‘저 사람만 힘든 마감과 주말 근무를 안 한다’는 불만의 눈길을 보내더군요. 그래도 제 개인의 사정일 뿐이니 불공평하다고 여기는 것도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저는 그 직원들에게 더 친절하게 대하고 그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서 만회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직원들의 불만은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결국 함께 일하기 어려운 수준의 괴롭힘까지 도달하게 되어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누군가를 돌봐야 해서 취업을 못 하거나 일을 그만둔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돌봄 노동을 하며 근무 조건을 다 충족하는 일자리에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에 공감하실 거예요.
그나마 저는 일본어를 전공했고, 번역 회사에서 일했던 경력도 있어서인지 이력서를 넣었던 몇몇 회사에서 번역일을 제안받아 조금씩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경력이 없거나 짧은 프리랜서 번역가가 받을 수 있는 번역 단가는 심각하게 낮은 상황입니다. 온전히 자판을 치는 시간만 10시간이 넘어도, 제 수중에는 7만 원 정도가 떨어지죠.
다른 번역가보다 번역 속도가 느릴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제가 10시간 정도 자판을 두드려서 번역하는 양은 7,000자 내외입니다. 저도 다른 번역가분들의 번역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번역 관련 사이트에서 하루 평균 4,000~5,000자 정도를 번역하는 것이 보통이라는 글을 봤던 기억이 있어서 그래도 평균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할 뿐이지요. 아무튼 하나의 작업을 위해 10시간을 일한다면 7만 원을 받는 셈입니다.
작성자의 작업 환경
하루에 4,500자를 번역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래도 1자당 25원은 받아야 회사에서 번역했을 당시 수준의 임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 달에 20일 일하면 세전 225만 원을 받는 셈이지요. 회사에 있을 때는 번역과 관련 없는 업무도 있었기에, 일감만 꾸준히 있다면 같은 시간 내에 작업할 수 있는 분량은 회사에서 일할 때보다 훨씬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프리랜서가 받을 수 있는 번역료는 그 절반도 되지 않지요. 심한 경우 문고판 소설 한 권(300페이지 내외)의 번역을 11만 원에 할 수 있겠냐고 제안받았을 정도이니 어마어마하지요?
그럼에도 제가 번역일을 하는 이유는 제가 잘할 수 있는 분야이고, 무엇보다도 집에서 작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학교에 있는 시간, 학원에 있는 시간에 일하며 중간중간 아이를 돌볼 수 있으니까요. 회사에서 9시부터 6시까지 일하는 사람들보다 더 짧은 시간 내에 더 많은 분량을 번역해도, 집에서 편하게 일하면서 교통비도 안 들고 출퇴근 시간도 없으니, 프리랜서는 절반도 되지 않는 급여를 받아 마땅할까요?
새벽에 일어나 아이를 깨워 대충 씻기고, 7시 반이 되기 전에 어린이집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선생님이 출근하시면 아이를 인계하고 부랴부랴 출근하는 아침. 오후 6시가 되자마자 뛰쳐나와도 8시가 넘어서야 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어린이집에 도착하는 저녁. 어쩔 수 없는 야근 때문에 야간연장반이 끝나는 오후 9시 30분 전에 어린이집에 도착할 수 있을지 마음 졸이다 겨우 선생님이 퇴근하시기 전에 도착하며 안도하는 밤. 아마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은 모를 것입니다.
회사에 입사하고 3개월이 지나, 육아기 단축 근로를 이용해 2시간 일찍 퇴근하게 되었을 때는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기도 했습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난이도와 분량의 일을 더 짧은 시간 내에 끝내고 퇴근하면서도 괜히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느낌에 주눅 들긴 했지만요. 그나마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직장 생활은, 스트레스로 인해 생긴 아이의 틱 증상과 급격하게 나빠지는 저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으로 인해 입사 1년을 조금 앞두고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꾸역꾸역 직장을 다녔다면,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제가 출근하는 7시 반 이전부터 저녁 8시까지, 혼자서 시간에 맞춰 학교와 학원을 전전해야 했을 거예요. 그래도 제가 가장이니 무리해서라도 직장을 계속 다녀서 경력과 급여를 올렸어야 생활이 점점 나아지지 않았겠느냐고 묻는다면, 그 말도 맞습니다. 주변에 도움받을 곳 하나 없이 혼자 아이를 양육하면서 직장 생활을 하는 분도 분명히 계실 거예요. 하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저와 아이의 상태는 몰라보게 호전되었기 때문에, 돌이켜 생각해 봐도 그땐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옳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회사를 그만두었을 당시 급하게 구했던 프리랜서 번역일은, 230페이지 내외 만화책 1권을 번역하는 단가가 18만 원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받았던 파일은 이전에 번역하던 사람이 중단한 도서였기에 전 번역자가 기재한 캐릭터의 말투와 용어를 맞추기 위해 시간을 내서 여러 권의 만화책 파일을 읽어야 했습니다. 또 PDF 파일로 받은 만화책 이미지에 있는 모든 말풍선과 글자에 숫자를 써서, 어떤 말풍선이 어떤 문장과 일치하는지 표기해야 했고요.
회사에서 사용했던 익숙한 프로그램이 아니어서 작업에 익숙해지는 시간도 걸렸습니다. 결국 아이를 돌보며 틈틈이 일련의 작업을 해서 일주일 동안 겨우 18만 원을 벌었던 거죠. 그 후 몇 권의 만화책을 더 번역했지만 작업 시간이 조금씩 줄었을 뿐, 제가 받을 수 있었던 돈은 최저 시급의 1/4 수준이었습니다. 일한 시간 대비 단가가 너무 낮아서 그만두려고 한다고 담당자분에게 연락했을 때, 담당자분은 제게 ‘모든 만화책 번역가가 이 정도 금액을 받는다. 그래서 다들 본업이 있지 전업인 사람은 없다. 번역만으로 생활하려는 생각은 접는 게 좋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인터넷에 있던 누군가의 기록을 보니, 2009년에도 만화책 한 권을 18만 원에 번역했다고 되어있더라고요! 정말 놀랍지 않나요? 이런 상황이 비단 저만 겪는 일은 아닐 겁니다. 번역하는 사람들만 겪는 일도 아닐 테고요. 프리랜서는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니까요. 그저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사람이 있을 뿐이지요. 그래도 프리랜서들이 ‘스스로’ 회사에 소속되지 않는 것을 ‘선택’했으니 감수하는 게 맞을까요?
저는 예나 지금이나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나은 선택을 해나가며 살고 있습니다. 저작권 문제 등으로 작업물을 받기 전에는 정확한 난도를 가늠할 수 없기에, 가끔은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어려운 작업임에도 낮은 단가로 일을 받기도 하지요. 그렇게 받은 시급 2천 원, 5천 원 수준의 일을 10시간씩 하고 나면, 가끔은 ‘내가 겨우 이 돈을 받으려고 이 분야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단가가 낮은 일을 아예 안 받을 수도 없지요. 거의 모든 회사에서 비슷한 수준의 단가로 일감을 제공하기도 하고, 아쉬운 소리를 했다가는 소중한 거래처를 잃을지도 모르니까요. 그저 묵묵히 조금이라도 더 일해야 단가를 1원이라도 높일 수 있고, 제가 ‘월 90만 원 이상’의 소득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으니까요.
저를 포함해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어떤 의제를 더 많이 이야기하자고 말해야 할까요? 정치도 경제도 잘 모르는 저는, 어떤 정책을 제안하고 어떤 논의들이 오가야 이런 상황이 더 나아질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나마 조심스럽게 제 이야기를 꺼내 보게 되었습니다. 그저 회사에 소속되어 정규직으로 일하는 분들이 같은 작업을 할 때 걸리는 평균적인 시간만큼이라도 최저 시급을 적용해서, 상식적인 수준의 임금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출퇴근도 안 하고 교통비도 안 들고 얄미운 직장 선배나 동료도 없이 편하게 일하면서……. 제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