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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 밖 가설건축물은 괜찮다? 위험천만 이주노동자 주거권
[22대 총선] 여기, 주거 정책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있어요!
2024 총선주거권연대 연속기고
네 번째, ‘집이 아닌 곳’에 사는 이주노동자 이야기
노동, 빈곤, 종교, 청년, 주거시민단체 등은 부동산 정책만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무분별한 부동산 규제 완화를 저지하고 주거불평등 심판, 온전한 주거권 실현을 위해 ‘2024 총선주거권연대’를 출범하였습니다. ‘2024 총선주거권연대’는 주거권 역행 후보 선정, 주거 분야 공약 평가 활동에 이어 주거 정책에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속기고를 진행합니다.
벌써 3년 전이다. 2020년 12월 경기도 포천 한 농장 기숙사로 쓰는 비닐하우스에서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 속헹씨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비전문취업비자(E-9)를 받고 입국해 고용노동부가 지정 알선한 농장 기숙사에서 사망한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개인적으로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무거웠던 건 2016년, 아니 훨씬 전부터 많은 인권활동가들이 이런 비극을 경고했기 때문이다.
2016년 12월 14일 김삼화 당시 국민의당 의원,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익법재단 공감,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함께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이주여성 농업노동자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 보고회’를 개최했다. 이날 농업 분야 이주노동자 주거환경을 다룬 영상물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가 상영됐고, 고용노동부 또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1년이 지난 2017년 12월 22일, 고용노동부는 ‘농업 분야 외국인노동자 근로환경 개선방안’ 대책을 발표했다.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사용하는 사업장은 신규 외국인력 배정을 중단(‘18.4월 배정 시부터)하고, 기 제공된 사업장은 자율개선기간 내 숙소를 개선하지 않은 경우 외국인 노동자 사업장 변경을 허용(‘18.2월 고시개정 예정)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더 이상 정식건축물이 아닌 가설건축물 기숙사 제공이 금지된다는 소식에 시민사회 단체들은 환영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고용노동부는 비닐하우스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 기숙사 제공에 대해서는 계속 허용했다. 2019년 1월 15일 외국인고용법 개정으로 ‘사용자가 외국인근로자에게 기숙사를 제공하는 경우에는 근로기준법 제100조에서 정하는 기준을 준수하고, 건강과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라는 규정(법 제22조의 2 제1항)이 신설되었지만, 건강과 안전을 지킬 수 없는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의 기숙사 제공은 계속 허용되었다. 제도개선과 법개정이 이루어졌음에도 속헹씨 사망을 막아내지 못했다.
속헹씨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고용노동부는 부랴부랴 2020년 12월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아래와 같은 방침을 발표했다.
“농촌 등에서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조립식 패널 등 가설건축물을 주거시설로 이용하는 등 근로자의 안전과 인권침해 등이 우려됨에 따라 앞으로는 농축산업 외국인근로자의 주거시설 개선을 위해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에는 고용허가를 불허하기로 결정(제28차 외국인력정책위원회(’20. 12. 23.))하였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처럼 소중한 생명을 잃고서야 대책을 발표했지만, 이런 의문이 남는다. 이제 이주노동자의 주거권 문제는 모두 해결된 것일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The devil is in the detail’라는 말처럼 비닐하우스 밖에 있는 가설건축물, 지자체에 신고가 된 임시숙소 등 가설건축물은 이번 대책에도 빠졌다. 결국 이주노동자는 위험천만한 기숙사에서 계속 거주할 수 밖에 없다.
세계인권선언 제25조는 모든 사람이 “의식주, 의료 및 필요한 사회복지를 포함하여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 수준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고 천명하고 있다. 한국이 1978년 기압한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 제5조에서도 ‘(d)기타의 민권’에서 ‘(iii)주거에 대한 권리’를 명시한다.
인종과 국적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주거에 대한 평등하게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사회보장에 관한 국내법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주거권에 대한 언급이 없다.
고용허가제도는 외국인이 4년 10개월 동안 임시적으로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일을 하도록 하는 제도로 고용노동부가 사업장 알선부터 변경까지 독점하고 있다. 한시적 합법노동자인 이주노동자에게 주거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사용자에게만 떠넘길 문제도 아니다. 적절한 기숙사를 제공한 사용자에게 외국인 고용을 허가하고, 기숙사 설치 및 운영에 대한 예산을 국가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
22대 국회에서는 이주노동자가 기숙사에서 사망하는 이런 비극을 막아내도록 디테일을 살려 제대로 된 입법이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이 글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이주노동팀장, 최정규 변호사가 작성하였습니다.
주거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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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택한 청소년들에게 ‘집’을 달라
[22대 총선] 여기, 주거 정책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있어요!
2024 총선주거권연대 연속기고
세 번째, 거리를 택한 청소년들의 이야기
노동, 빈곤, 종교, 청년, 주거시민단체 등은 부동산 정책만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무분별한 부동산 규제 완화를 저지하고 주거불평등 심판, 온전한 주거권 실현을 위해 ‘2024 총선주거권연대’를 출범하였습니다. ‘2024 총선주거권연대’는 주거권 역행 후보 선정, 주거 분야 공약 평가 활동에 이어 주거 정책에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속기고를 진행합니다.
청소년 시기에 집을 나와 거리에서 생활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오늘의 잠잘 곳을 마련하고자 노력해야 하고 안정적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매일의 쓸 돈을 마련해야 하는 생활. 늘 불안하고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는 거리가,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낫다고 판단할 때 청소년들은 거리로 나온다. 반대로 얘기하면 그들은 집에서 거부당하거나 생존을 위해 돌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오늘의 잠잘 곳 마련을 위해 친구집, 여관방, 피씨방, 찜질방 그도 안되면 거리를 택하는 그들은 “홈리스 유스(Homeless Youth)”이다.
청소년들은 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청소년들이 탈가정한 이유를 살펴보면, 집에선 인간답게 살 수 없었기 때문에 그 환경에서 탈출한 경우가 많다. 말 그대로 “가정을 탈출”한 것이다.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2021년 위기청소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집을 나오게 된 이유'(복수응답)에서 ‘가족과의 갈등'(69.5%)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 안에는 부모로부터의 학대도 있고, 쫓겨난 경우 등이 숨어있기도 하다.
한국사회의 아동학대 문제는 심각하다. 우리는 뉴스에서 주로 학대로 인한 끔찍한 영아 사망 사건들을 접하게 되는데 실제로 아동학대 피해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연령대는 13-15세로 중학생 시기이다. 학대는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유아기부터 지속되어 오는 경우가 많다. 중학생 나이가 되었을 때 학대 피해 아동은 더이상 참지 않고 생존을 위해 가정을 탈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탈가정 청소년의 문제를 “청소년 비행”의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아동학대” 문제의 연장선에서 바라봐야 하며 청소년 개인의 일탈행동이 아닌, 가정의 불화와 부모의 학대, 학대에서 아동을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아동학대 피해 상황에서 주변에 의해 발견된 아동은 부모로부터 분리되어 위탁가정이나 시설보호체계로 들어가게 된다. 시설에서 자라 성인이 된다면 자립준비청년이 된다. 그렇게 시설과 같은 국가가 정한 보호체계 안에 있어야만 지금의 자립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시설을 이용하지 않거나 못하는 청소년이 거리에 나오게 된다면 보호체계의 사각지대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왜 시설로 가지 않는가?
거리로 나온 청소년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은 “청소년 쉼터”이다. 쉼터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이 시설을 가지 않고 거리에 남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쉼터에 가면 우선 친권자에게 연락을 하게 되어 있다. 미성년은 친권자의 동의 없이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도망쳐 나오거나 부모에게 연락하고 싶지 않은 청소년들은 자연히 쉼터를 피하게 된다.
또한 집단생활인 시설은 각종 규제와 규율이 엄격할 수 밖에 없다. 개인의 시간과 공간이 허락되지 않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시설을 피하게 되는 청소년들이 생겨난다. 쉼터들은 청소년의 개인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이전의 문제가 되었던 행동들로 인해 쉼터로부터 거부당하는 청소년들도 많다.
여기서 “시설”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시설 외에 “여러 명이 공동으로 집단생활을 하는 곳”하면 어떤 곳이 떠오르는가? 군대, 교도소 같은 곳이다. 시설은 그런 곳이다. 전쟁 이후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 많을 경우, 그들을 모두 모아 한 곳에서 숙식을 하도록 만든 것이 시설이다. 몇몇 해외 복지국가에서는 더이상 시설에서의 집단적 보호를 금하고 있다. 물론 아동 경우도 시설에서 성장하는 것을 지양하고 가정적 환경에서 자라도록 하고 있다. “아동 탈시설” 정책이 이미 보편화 된 것이다. 한국사회는 장애인의 탈시설 정책이 가장 진전된 상태이나 아동 청소년의 경우 여전히 시설에서의 보호가 가장 보편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최근 시설 보호가 종료되어 자립한 청년들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 사실 이들의 문제는 18세에 갑자기 자립을 지원하는 정책만이 아니라, 시설의 보호 자체를 다른 대안으로 바꿔야 해결되는 문제인 것이다.
거리 청소년들이 시설에 가지 않는 것은 그들이 특별히 자유로운 영혼들이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당연한 욕구인 것이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냐?
현재 한국사회는 장애인들이 더 이상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독립 주거에서 살도록 하는 정책 기조를 바탕으로 활동지원사들이 이들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노숙인의 자립에 시설에서의 보호가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주거우선지원(Housing First)” 정책을 펼치고 있다. 자립이 준비되면 주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주택을 가장 먼저 제공해야 자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청소년도 마찬가지다. 시설에 들어가라 하지 말고 지역사회에서 살수 있도록 해야 하며, 자립을 먼저 하라고 하지 말고 주거를 먼저 제공해야 한다. 장애인과 노숙인에게 지역사회에서 혼자 살거나 주거’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듯이, 청소년에게도 “지역사회에 주거”를 제공하되 “촘촘한 삶의 지원”이 당연히 병행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이 가정에 있거나 시설에 있는 경우만을 상상한다. 최근 아동복지법이 바뀌면서 시설에서 중도퇴소한 청소년도 자립을 지원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일부지만 거리에 있는 청소년들에게도 정책적 혜택이 돌아가리라 기대하였으나, 정부는 아동복지시설에서 타 관할시설(소년원, 치료시설 등)로 옮겨져서 중도퇴소한 청소년만을 그 대상으로 삼았다. 청소년이 시설도, 가정도 아닌 거리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정책 대안이다. 청소년은 성인의 보호 하에 있어야 한다는 전제는 현재 엄연히 존재하는 “거리의 청소년”들을 부정하는 것이며 그들의 존재를 보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오히려 청소년들을 위험에 몰아넣고 있다.
답은 이미 정해져있다. 가정도 시설도 아니라면, 집을 주는 것! 그리고 이들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원이 함께 되는 것! 그리고 이 사회가 미성년인 청소년이 독립된 주거를 가질 수 없다는 오래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많은 청소년의 문제는 해결점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유원선(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 활동가)님이 작성했습니다.
주거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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