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나의 세번째 자취방, 벽지를 하나씩 떼어보다 충격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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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불평등 심판, 온전한 주거권 실현을 위해 2024 총선주거권연대가 주거 정책에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더 안전한 살 곳을 바라는 캠페이너들의 이야기를 모읍니다.


[22대 총선] 여기, 주거 정책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있어요!
2024 총선주거권연대 연속기고
두 번째, 월세살이 청년의 이야기

노동, 빈곤, 종교, 청년, 주거시민단체 등은 부동산 정책만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무분별한 부동산 규제 완화를 저지하고 주거불평등 심판, 온전한 주거권 실현을 위해 ‘2024 총선주거권연대’를 출범하였습니다. ‘2024 총선주거권연대’는 주거권 역행 후보 선정, 주거 분야 공약 평가 활동에 이어 주거 정책에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속기고를 진행합니다.

서울 사는 월세살이 공연예술가의 옥탑방, 공연을 하기 위해 집을 꾸민 모습.
민달팽이유니온


평생 월세사는 사람, 평생 전세사는 사람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사는 공연예술가입니다. 현재 옥탑방에서 월세로 거주하며 연극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연극을 하게 된 이유는 연습실을 빌릴 돈도 공연장 대관을 할 돈도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옥탑에서 먹고 자면서 종종 워크숍, 연습, 공연을 합니다. 작업과 생활을 하는 만큼 이 곳은 애정을 가지고 가꾸는 공간입니다.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총 세 번 자취방을 옮겼습니다. 이전의 집에서 불편하고 부당한 상황도 마주했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이곳은 거쳐 갈 집일 뿐이고, 언젠가 살기 좋은 ‘진짜 내 집’을 가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것들을 미뤄왔습니다. ‘언젠가 내 집을 가지게 된다면 그때 열심히 꾸며야지’라는 생각으로 인테리어도 하지 않고 제대로 된 가구도 사지 않았습니다.

공연 일을 하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이후, 이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절대 혼자 힘으로 서울에 집을 살 수 없을 거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치솟는 매매가를 보면서 일반 직장을 다니는 사람도 사기 어려운 집을, 적은 수입을 가진 프리랜서인 제가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자리를 잡는다고 해도 그럴 것입니다.

아마 저는 평생을 세입자로 살 것입니다. 그래서 제 소유의 집이 아니더라도, 인테리어를 하고, 작업과 공연 공간으로 꾸미며 작당 모의를 하고 있습니다.

평생을 세입자로 살 것 같으니, 이에 맞는 생활 방식을 찾아야겠다는 저의 결심과는 달리, 세입자에 대한 정부의 관심은 저조합니다. 부동산 중심입니다. 집은 그저 재물로 여겨집니다. 집값 상승과 하락에 대한 이야기, 재개발과 이에 따른 이익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정부는 부동산 규제 완화에 나서고 있습니다. ‘실거주 의무 유예’와 ‘1기 신도시 특별법’ 등이 통과되는 것을 보면 그러합니다. 집을 소유할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익을 가질 수 있게 하느냐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월세와 전세는 자가를 소유하기 전까지의 임시 상태로 보는 듯합니다.

그러나 통계청의 ‘2022년 주택소유통계’에서 국민 주택 보유 현황을 보면, 유주택자 비율은 국민 평균 30.6퍼센트에 불과하며, 20~30대는 8.8퍼센트에 그칩니다. 국민 중 70퍼센트가량의 사람들이 집을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평생 월세 사는 사람도, 평생 전세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논의는 언제 이루어질까요.


내가 거쳐온 자취방

저의 첫 자취방은 주택을 개조한 다세대주택이었습니다. 4평이었고, 침대와 옷걸이, 작은 책상을 놓고 나면 아주 좁은 바닥 공간만 남는 곳이었습니다. 빨래건조대를 놓으면 그 공간마저 사라졌습니다. 방이 너무 작아 답답한 나머지, 집에서는 잠만 자고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카페나 도서관에서 보냈습니다.

두 번째 자취방은 연식이 있는 오피스텔이었습니다. 대로변과 지상으로 다니는 지하철역 바로 옆에 지어져서, 아침부터 밤까지 지하철과 도로 소음 때문에 창문을 열 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창문 새시에는 시꺼먼 먼지가 묻어있었습니다. 또, 집 안에 세탁기가 없어 오피스텔 5층에 있는 공용 세탁기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넓은 평수에 만족하고 살고 있습니다만, 여러 문제가 있습니다. 집을 구할 때는 몰랐던 곰팡내가 진동합니다. 에어컨 위쪽에 곰팡이가 펴있어서 곰팡이 제거제를 뿌렸는데 벽지가 녹아내렸습니다. 벽지를 하나씩 떼어보니 이미 그 자리에는 벽지가 4겹 정도 붙어있었습니다. 곰팡이가 생길 때마다 제거하지 않고 위에 벽지를 덧붙인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알고 보니 집의 벽지는 전부 두꺼운 단열 벽지였습니다. 벽지는 제대로 시공이 된 것이 아니라, 기존 벽지 위에 단열 벽지를 붙여놓은 상태였고 중간중간 제대로 밀착되지 않아 붕 떠 있었습니다. 단열 벽지를 살짝 떼서 들춰보니 안쪽에는 곰팡이가 가득했습니다. 아마 곰팡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벽지 위로 올라오지 않도록 단열벽지로 막아버린 듯했습니다. 이를 집주인에게 말하고 벽지 시공을 다시 해달라고 하자, 거부하며 벽지를 떼지 말라며, 어떤 집에 가든 벽지 뒤에는 곰팡이가 가득하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임대주택의 품질 문제는 개인이 잘 알아보지 못한 책임 혹은 돈을 모아 더 비싼 집으로 가면 해결되는 문제로 여겨집니다. 분쟁 상황 또한 자취하면 한번은 겪게 될 통과의례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는 세입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로,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넘겨서는 안 됩니다. 임대주택은 잠깐 거쳐 가는 공간이 아닙니다. 세입자 또한 잠깐 머무르는 상태가 아닙니다. 여건상 돈을 모아서 더 좋은 집으로 갈 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가능한 여건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집을 원합니다. 따라서 민간임대주택의 품질 기준을 도입하고, 세입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평생 세입자여도 안전하고 건강하게

집이 세입자의 건강, 안전, 생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행법상 최저주거기준 외에 사람이 살기 적합한 집을 판단하는 기준이 부재합니다. 최저주거기준은 가구원수 당 바닥면적과 부엌 등 필수시설만을 나열하고 있을 뿐이며, 그 면적도 매우 비좁습니다. 적절한 주거에는 더 많은 요소들이 필요합니다. 위생·환경·안전·에너지효율 등 구체적인 임대주택의 품질기준을 도입해 주십시오. 또한 기준 충족 여부 관리, 정보 제공을 위해 모든 민간임대주택에 등록의무를 부여해 주십시오.

세입자를 나쁜 위생과 부당한 상황에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국가는 취약한 주거 상황을 현장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분쟁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세입자를 보호해야 합니다. 주택의 상태를 관리하고 감독할 공적 조직이 필요합니다. 지자체마다 주택임대차 감독 행정을 담당할 주거감독관 제도를 도입해 주십시오.

평생 월세 사는 사람도, 평생 전세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평생을 세입자로 살 것입니다. 저 또한 언젠가 살기 좋은 ‘진짜 집’에 살게 될 것을 꿈꾸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가를 소유하는 것만이 주거에서의 최종 목표가 아닙니다. 월셋집도, 전셋집도 소중한 나의 공간입니다. 세입자와 임대주택은 미완의 존재이자 공간이 아니기에, 세입자인 상태에서도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게 권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 글은 박혜연(서울 사는 공연 예술가, 월세살이 청년)님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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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떠나는 청년의 비중이 높은 것도 어쩌면 집값이 크다고 보아요. 평생 세입자 신분을 전전하다 치솟는 집값, 보증금 그리고 월세에 변두리로 밀리는 경우가 많지요.

저 역시나 월세에서 전세로 들어왔지만 언제 나갈 지 모인 돈이 떼이지 않고 이사갈 때 돌려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지만, 불안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아요. 이런 고민을 잡아 줄 제도가 너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