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놈입니다 근데 이제 비정규직을 곁들인...
캠페인즈 미디어를 통해 직접 캠페이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어마무시하게 큰 방송국 사옥 어딘가의 사무실에, 평균보다 작은 몸(?)을 집어넣고 일하는 노동자입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방송작가'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방송국놈' 쯤 됩니다.   ‘작가’란 칭호로 불리긴 하지만, 저는 늘 글 쓰는 일을 부끄러워합니다. 글재주가 없음은 물론, 방송작가란 직업은 수려하고 짜임새 있는 글을 쓰는 진짜 ‘작가’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에요. 다만, 생각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곳의 일을 일러바칠 수는 있을 것 같아(?) 나를 골리고 간 친구의 행동을 담임선생님 앞에서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는 아이의 마음으로 방송작가가 살아가는 법을 슬쩍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 제 직업을 (불가피하게) 이야기할 때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어요.   "그럼 연예인 많이 봐요?!"     굳이 답을 하자면 그렇습니다. 당연합니다. 방송국이니까요. 연예인들이 '일'을 하러 옵니다. 연예인들을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기보단 "아, 저 사람도 일하러 왔구나" 싶어요. 모든 분들이 그러하듯 회사는 저의 일터고, 그 곳이 방송국일 뿐입니다. 평범한 회사라고 생각하며 ‘일’을 하고 있지만, 결국 ‘방송국’이라는 이 환경과 장소가 특수한 상황을 만들어내긴 하더라고요. 방송작가의 고용 형태를 설명할 때면, 어느새 4년차(!)가 된 지금도 순간 눈을 굴리고 멈칫하게 되는 순간이 있을 정도로 꽤나 애를 먹습니다.    -   회사는 하나지만, 셀 수 없이 많은 형태의 일이 있는 이 곳의 직업들은 크게 '앞'과 '뒤'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의 대표적인 직업들은 흔히들 생각하시는 아나운서, 기자, 각 국의 국장들을 비롯한 데스크(최종 책임 라인)들입니다. ‘뒤’의 직업들은 ‘앞’직업들을 제외한 모든 직업입니다. 각 프로그램의 카메라 담당 스탭, 영상취재 담당 기자와 VJ, AD, 조연출, 디자이너, 편집자, 그리고 저를 비롯한 방송작가들 등등이요. 그리고 예상하셨듯, '앞'과 '뒤'의 기준은 '카메라'입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카메라 앞보단 뒤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뒤'에 있는 이들의 약 80%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이는 저의 체감상 수치이고, 자세한 수치는 알지 못하지만 비정규직(프리랜서) 노동자의 비율이 그만큼 예상보다 많다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   방송작가인 저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흔히들 방송작가면 방송국에 소속이 되어 정규직 형태로 일을 한다고 생각하실 텐데요. 외주업체 같은 프로덕션에 소속되어 직원으로 일을 하는 방송작가가 아닌 이상, 방송작가의 90% 이상은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방송국의 특수한 상황들, 일하는 방식들을 생각하면 이러한 형태가 아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소수의 레귤러(정규•정기 편성) 프로그램을 제외하곤, 프로그램 런칭과 폐지가 흔한 일이고요. 세월호 참사나 10.29 참사 등 사회적인 사건사고로 인해 뉴스 위주로 편성이 잡힐 때엔 준비된 프로그램들이 방송되지 못할 때도 있고요. 시기에 따라 며칠, 혹은 몇 주 방송되고 마는 특집성 프로그램(ex. 명절 특집, 창사 특집 등)과 프로젝트성 프로그램(ex. 선거방송)들도 있기에 '방송일'의 특성상, 변동성이 매우 크죠.   일하는 상황도, 사람도, 사람의 구성도 너무나 많이 변하기에 모든 이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기엔 무리가 있지요. 때문에 몸 담는 회사가 같아도 계약 형태와 조건, 단위, 기간 등 모든 게 천차만별입니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크지 않은 보도국(뉴스) 프로그램의 작가들은 정규직인 것이냐 물으실 수도 있겠는데요. 대답부터 드리자면 아닙니다. 파일럿(테스트용) 프로그램이 좋은 반응을 얻어 레귤러 프로그램이 된다면 작가들은 정규직으로 다시 계약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이것 역시 아닙니다.   -   글쎄요, 저도 방송작가로서 몇 해 째 살고 있지만 잘 모르겠어요.      보도국 작가들 역시 '방송작가'라서 그냥 비정규직이 된 것일까요? 레귤러 프로그램 작가들은 정규직인 본사 PD와 똑같은 시간에 출근해 똑같은 사무실에 앉아, 똑같이 일을 하고, 야근하며 머리를 쥐어뜯다 퇴근하는데(물론 비정규직이기에 야근 수당은 없습니다) PD는 정규직이고 작가는 비정규직인,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법카로 밥 먹고 싶지만 법카따위 나오지 않아 나의 작고 소중한 월급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휴가 한 번 쉽게 낼 수 없는, 초과근무 수당은 그야말로 '판타지'에 가까운, 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사소하고 선명한 불합리함들은 어디에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하나둘씩 늘어가는 물음에 저는 명쾌한 대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저 역시 이러한 고용 사항에 대해 회사 측으로부터 어떠한 명확한 설명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방송작가가 되고 싶었고, 되고 보니 비정규직이었고, 여전히 저의 일을 사랑하기에 그저 하고 있을 뿐입니다.  어떻게 불합리함까지 사랑하겠어요, 방송작가란 저의 일을 사랑하는 거죠.   퇴근 후 터져나온 한숨에 일을 마친 개운함보다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불안과 현타가 더 크게 섞여나오는 어느 날엔, 제 직업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 가야 할까요? 쓰라림을 삼키고, 외사랑임을 인정하며 또 하루 살아갈까요? 저는 제 일을 좀 더 오-래, 건강하고 현명하게 사랑하고 싶은데 말이에요.     'Loving clumsy of you' 제가 좋아하는 문장입니다. 서툰 당신을 사랑한다는 뜻이에요. 혹은 서투름마저 사랑한다는 뜻일 수도 있고요. 오늘도 서툴고 치열하게 노동 현장의 앞과 뒤, 옆에서 일하는 여러분을 같은 노동자로서 아주 많이 응원합니다. 여러분이 사랑하시는 그 일이, 지독한 외사랑은 아니길 바라면서요.
노동권
·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