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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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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억] 참사와 함께 살아가기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래?” 이것은 내 기억 속에 찌꺼기처럼 남은 문장.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참사가 일어난 지는 꼬박 2년이 지났었고, 검고 촌스럽기로 유명했던 우리 학교 교복, 내 재킷에는 노란 리본 배지가 매달려 있었다. 누가 내게 저런 말을 했었는지는 사실 기억나지 않는다. 블러처리 된 영상을 보는 것처럼 흐린 얼굴의 누군가가 내게 저 말을 건넨다. 어쩌면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짓고 빻던 동창일 수도, 너희가 지금 뭘 할 수 있느냐며 공부나 하라던 선생일 수도 있을 것이다. 기억 속에 찌꺼기처럼 남은 문장은 언젠가부터 새로운 질문이 되어 나를 두드린다. 언제까지 이렇게 슬퍼야만 하느냐고, 언제쯤이 되어서야 4월의 한가운데에서 시간이 종종 멈추는 일을 그만할 수 있느냐고. 오랫동안 나를 두드리는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아니 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자꾸만 참사의 순간으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으니까. 그렇지만 오늘에서야 짧은 대답을 하고자 한다. 참사가 일어난 뒤 몇 년간은 참사 자체에서 오는 비통함도 있었지만, 참사로 인해 생긴 슬픔과 애통, 분노의 감정들에 자꾸만 어떤 의도가 있다는 듯 덧씌워 비난하는 말들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입에 담기는커녕 생각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말들을 쏟아내는 이들을 보면서 그들과 내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공포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더욱 피부에 와닿는 공포는 그런 상황을 목격하며 ‘언제까지 슬퍼할 거야.’ 하며 점잖은 체를 하는 이들이었다. 언제까지라니, 우리가 제대로 슬퍼할 수 있었던 순간도 없었는데. 참사가 일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란 리본을 다 떼겠다느니, 노란 리본을 이용한다느니 하던 기억들은 모두 휘발된 채 멈춰있을 수 없다며, 산 사람은 살아야 함을 운운하는 이들을 보며 막막한 심정으로 자문했다.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는 여전히 참사와 함께 살아가는 법에 대해 모르고 있다고. 자크 데리다는 애도는 어떤 순간을 두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상실된 대상을 떠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치 유령처럼 존재하지 않지만, 그 존재를 문득 느낄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애도의 대상으로부터 멀어져, 이들을 잊고 살아가는 순간부터 우리는 애도에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실패한 애도의 부채는 파도처럼 우리에게 밀려온다. 그것이 분노나 원망의 이름을 빌리는지, 혹은 감당할 수 없는 무력감이라는 이름을 달고 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반드시 돌아와 우리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참사 앞에서 너무나 빨리 애도를 거두어 왔다. 심지어는 ‘애도 기간’이라는 이름으로 제대로 된 시작도 전에 끝을 정해두기도 했다. 이 또한 우습고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리석은 짓의 결과는 늘 참사로부터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들의 상처로 귀결된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날 선 비판을 지껄인 주제에 나 역시 지난 몇 년간 참사와 오롯이 함께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4월 16일이 되면 버릇처럼 착잡한 마음을 끄적이고, 시간이 멈춘 듯한 하루를 보냈지만, 마치 그날의 의식처럼, 연례행사처럼 지나갔을 뿐이다. 10년이 지났다. 이제는 언제까지 할 것이냐 비아냥거리는 이들도 떠난 참사의 자리에서 여전히 애도의 부채와 맞서는 이들이 있다. 우리는 참사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몇 년이 더 지나고 나면 이 슬픔과 비통함을 오롯이 아로새길 수 있을까. 대답을 하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도 나는 여전히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기억의 잔재에 남아있던, 이 오랜 질문의 원본에는 이제야 답할 수 있겠다. 우리는 더 많이 기억하고, 더 많이 이야기하고, 더 많이 슬퍼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참사에 온전한 애도를 보내고, 언젠가 이 참사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4.16 세월호 참사
2024.04.12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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