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사망, 일터안전, 그 일이 내일이 된다
“대한민국 사람들 다 아셔야 됩니다. 내 새끼가 10만 원 벌러 갔다가 죽어서 돌아올 수 있다는 거” - 청년노동자 故이선호 씨의 아버지 이재훈 씨의 발언 중에서 “저도 지금 옆에 지나가는 분들처럼 나의 일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내 일이 되고 말았어요” - 동국제강 산재사망 노동자 故이동우 씨의 아내 권금희 씨의 발언 중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었다는, 뉴스에 짤막하게 다뤄지고 마는 그 일이 사실은 나의 일이었다는 것을 가장 슬픈 방식으로 알게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유족과 지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합니다. 정말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고. 그러나 많은 산재사망 사건에 있어서, 떠나간 이를 온전히 애도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하다가 사고가 났는지, 사고는 왜 발생한건지, 누가 이 죽음을 책임져야 하는지, 노동자를 죽게한 처벌은 누가 어떻게 받아야 하고, 이 죽음은 어떻게 배상받아야 하는지 제대로 규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된 이들은 죽음의 이유를 반드시 밝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와 안전관리자 등 책임을 져야할 주체들은 여러 수단을 동원해 법적이고 도의적인 책임과 비판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은 그렇게 미디어에서 보던 ‘투쟁’을 시작하게 됩니다. ‘재래형 재해’는 민주노총 기관지 <노동과세계>에서 취재를 시작하면서 배운 단어입니다. 이는 말그대로 끼임사고 넘어지거나 떨어지면서 발생하는 재해를 일컫습니다(좋아하진 않지만 직관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후진국형 재해’라고 불린다는 점도 덧붙입니다). 처음 이 단어를 취재 현장에서 들었을 때, 심장이 바닥에 쿵하고 떨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일터에서의 죽음을 설명할 때, 재래형 사고였다고 말하는게, 이렇게까지 자연스럽고 자주 언급되는 게 맞나 하는 충격이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여전히 ‘재래형 재해’란 중대재해를 포함한 직업성 사망, 과로사 등 모든 산재사망을 통틀어봐도 가장 압도적인 발생원인으로 분류되고 있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3년 9월까지의 산업재해 발생현황에 따르면, 중대재해 사망자수 459명 중 399명이 떨어짐, 물체에 맞음, 부딪힘, 끼임, 깔림·뒤집힘, 무너짐 사고로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이 재래형 재해는 최소한의 기초적인 안전장비와 설비만으로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안전요원이 한 명만 있었어도, 보호장치 고리가 하나만 있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죽음이 올해에만 이만큼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바로 그 ‘돈 몇 푼’을 아끼기 위해 빼먹은 안전 장비와 관리감독 부실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고 있는 산재유형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직업병, 과로사, 직장내괴롭힘이나 직장갑질으로 인한 자살 등 수없이 가슴아픈 산재사망이 비일비재한 가운데서도, 우리의 노동 현실은 이렇듯 아주 일차적인 안전 소홀로 인한 노동자의 죽음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한때 경제대국이라고 불리던 대한민국이 져야 하는 사회적 책임을 생각해본다면, 한없이 부끄럽고 끔찍한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지만, 모든 유족들이 투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유족과 지인들이 투쟁을 시작하는데까지 이르기도 쉽지 않습니다. 사망사건 발생 시, 많은 경우 회사측은 유족들에게 진상규명 약속이나 사과 대신 배상금 얘기를 먼저 꺼내며 사건을 은폐·축소하려고 합니다. 다음 단계로 자본과 기업은 유족(지인)에게 다가가려는 노동조합(노조가 없는 경우 노동안전 활동가)들을 격리하거나, 이간질을 하면서 접촉을 방해합니다. 많은 산재사망이 이 과정에서 알려지지 못합니다. 지금껏 사회적으로 알려진 산재사망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이같은 자본의 훼방을 뚫고 투쟁의 길을 나서겠다고 다짐하는 유족들은 말합니다. 다시는 ‘내 일’같이 처참한 ‘내일’은 없어야 한다고. 비상식적인 노동 현실을 폭로하고 고발해야겠다, 일하다가 죽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입니다. 청년노동자 故김용균 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씨가, <혼술남녀> PD였던 故이한빛 씨의 아버지인 이용관 씨가, 평택항에서 일하다 목숨 잃은 故 이선호 씨의 아버지 이재훈 씨가, 동국제강에서 일하다 목숨 잃은 故이동우 씨의 아내인 권금희 씨가, 디엘이앤씨 하청업체에서 건설노동을 하다가 사망한 강보경 씨의 누나와 어머니가 그렇게 세상과 싸우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있습니다. 노동조합은 문제를 문제로 만듭니다. 산재 피해를 사회적 문제로 만들고, 여론화 시키고 법 투쟁으로 끌고가는 핵심적인 주체입니다. 산재사건이 발생하면 자본이 재빠르게 유족과 노조를 갈라놓으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의역 김군 사망사건’을 기억합니다. 2인 1조로 스크린도어 수리를 해야 했지만, 안전인력이 감축되며 혼자서 이 작업을 하다 결국 사고로 사망했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 앞서 3년 전 성수역에서, 9개월전 강남역에서 똑같은 이유로 사망사건이 일어난 것은 알지 못합니다. 똑같은 사고, 똑같은 죽음이지만 원인을 파헤치고, 지하철 안전인력 부재, 안전관리체계의 부재로 쟁점화 한 것은 김군이 민주노총의 노동조합 소속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슬픔을 슬픔으로만 두지 않는 유족의 결단과 일터의 문제를 포착하고 끝까지 바꿔내려는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작지만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빚어진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람보다 이윤을 앞세웠던 자본에 일정정도 부담을 가하고 있고, 계속되는 노동안전 활동은 시민들에게 꾸준히 닿고 있습니다. 안전한 노동을 위해서는 여전히 더 큰 마음이 필요합니다. 세상을 바꿔내는 일은 결코 유족들과 활동가만의 역량으로는 이뤄질 수 없습니다. 계속되는 산업재해는 우리 모두의 오늘입니다. 어떤 내일을 마주할지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손에 달렸습니다. 산재사망도, 일터의 안전도, 그 일은 내 일입니다.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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