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슬’의 촛불시위에서 ‘다시만난세계’의 응원봉시위로 : 2024 비상계엄 이후 탄핵 시민촛불
2024년 12월 7일, 탄핵을 촉구하기 위해 국회 앞에서 열린 ‘시민촛불’ 집회에는 수십만 명의 시민이 참여했고, 수많은 재미있는 깃발이 등장했습니다. 앞으로도 한동안 매일 이런 풍경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지난 토요일 시민촛불에 참여하며 집회 현장을 돌면서 깃발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인파에 떠밀려 조금씩 이동하며 몇 시간을 돌았지만 모든 깃발을 확인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네요. 바로 아래 링크에서 제가 직접 찍은 100개 이상의 참여 깃발 사진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쉽게 등록 할 수 있으니 다른 분들도 함께 모아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https://campaigns.do/campaigns/1466
정세 분석과 대응 전략은 이미 많은 분들이 다루고 있고 저는 잘 따라가고 있습니다. 저는 집회에 참여하며 느낀 시민들의 주체성과 관련된 단상을 몇 가지 적어보려 합니다. 분석이라기보다는 가벼운 단상들입니다. 😊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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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존 사회운동조직의 필수 역할과 헌신
당연한 일이지만, 야당들, 수많은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의 깃발은 늘 그렇듯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다들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하며 깃발 사진을 찍지는 않았습니다. 찍어야 할 깃발이 너무 많아서...
아직 많은 분들이 충분히 알지 못하는 듯 하지만 2008년, 2016년, 그리고 2024년에도 시민운동과 노동운동 등 사회운동조직들의 물적·인적 기여는 언제나 시민 직접행동에 필수적이었습니다. 사회운동 조직들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시급한 상황마다 시민의 힘을 모아 집단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촉진하고 증폭하는 지원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왔습니다. 현재의 국회 앞 촛불도 평소의 전문성을 발휘하여 일사천리로 잘 진행되도록 준비해 주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널리 알립니다. 이처럼 사회운동은 민주주의의 핵심주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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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참여 깃발을 통해 보는 시민 덕후들의 가시화
수많은 깃발을 살펴보며 느낀 점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번 촛불 시위에서 ‘덕후’들이 시민 주체로 가시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예상치 못하게 등장했다면 ‘새로운 주체’라고 표현했을 테지만, 이미 많은 분이 이러한 주체성의 형성에 대해 알고 계셨을 것 같아 ‘가시화되었다’고 표현했습니다.
이미 SNS에서 많이 공유되며 화제가 되고 있는 듯 하지만.. 위 사진에는 12월 9일 시민촛불에 참여한 깃발 몇 개가 담겨 있습니다. 애니와 게임 등을 포함하는 서브컬처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세계에서 연대하러 온 분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또한 우울한 분들, 집에 있고 싶은 분들, 내향인 등의 정체성이 드러난 깃발을 자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집에서 맘편히 박혀 있을 수 있게 탄핵해야겠다’고 나온 분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향인) 입니다’라는 깃발은 특히 상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100개가 넘는 깃발 사진을 [지도에 모으기 캠페인] "비상계엄 이후 시민참여 현장 사진을 모읍니다"에 등록해 두었으니, 하나씩 확인해 보시고 함께 자료를 추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링크는 글 위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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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참여 깃발을 통해 보는 세대와 시대의 변화
위 사진의 위쪽을 보면 두 개의 ‘의혈’ 깃발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의혈은 ‘의혈중앙’, 즉 중앙대 학생들의 깃발입니다. 자세히 보면, 하나는 ‘민주동문회’, 즉 졸업생 선배들의 깃발이고, 다른 하나는 ‘그냥 학생들’의 깃발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분의 설명에 따르면, 개인이 만들어 동료들과 함께 나왔다고 합니다.
제가 못 본 것일 수도 있지만, 중앙대 학생회 깃발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과거 조직화된 학생운동을 했던 선배들은 졸업 후에도 일이 있을 때마다 모이고 있는 반면, 현재의 조직화된 학생운동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개별화 되었지만 느슨한 형태로 필요에 따라 모이는 주체들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나의 사례로 일반화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 느낀 바를 상징적으로 확인한 장면이었습니다.
위 사진의 아래쪽에는 ‘전대협 동우회’ 깃발과 ‘한총련’ 깃발이 보입니다. 전대협 동우회 깃발은 큰 집회가 열릴 때마다 수십 년간 등장한 익숙한 깃발입니다. 한편,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한총련 깃발이 있는 것을 보고는 기분이 묘했습니다. 색이 약간 바랬지만, 고이 보관되었다가 이번 집회를 위해 꺼내 온 듯 깔끔한 상태였습니다.
이 깃발을 들고 계신 분을 슬쩍 보니 40대 중후반에서 50대 초중반 사이로 보였습니다. 이제 20년 혹은 누군가에게는 30년 전의 일일 수 있겠네요. ‘미국너구리연합 한국지부’ 깃발 옆에 ‘한총련’ 깃발이 있다고 다시 생각하니, 시대의 변화가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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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008, 2016, 2024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시민들의 직접행동, 이어지다
위 사진 위쪽 왼편에는 2008년과 2016년 촛불시위의 주체들과 관련된 사진이 있습니다. 2008년 촛불 시위 당시 ‘다음 아고라’를 중심으로 시민들이 논의하며 자체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이들은 대책회의와는 독립적으로 리더십을 형성하며 시민들의 직접행동을 촉진하고 확산하는데 기여했습니다. 이때 ‘집단지성’이라는 주체 개념이 주목받았으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민주주의의 심화 가능성이 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아고라’뿐 아니라 다음의 안티이명박 카페, 82cook, 소울드레서, 쌍코, 마이클럽, 레몬테라스, 화장발, 촛불소녀, 배운녀자, 유모차부대, 동방신기 팬클럽 등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가 디지털 공간에서의 논의를 기반으로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주로 여성, 청소년, 청년 범주와 관련된 새로운 주체로 여겨졌습니다.
위 사진 위쪽 오른편에는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시위 때 등장한 깃발들이 담겨 있습니다. 민주묘총, 전견련, 범야옹연대, 얼룩말연구회, 트잉여운동연합 등의 깃발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 참여한 시민들은 기존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깃발에 불편함을 느끼고 동일시되길 원하지 않았던 듯 하며, 동시에 자신들을 표현하고 싶어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기존 조직 이름을 유머러스하게 비틀어 새로운 깃발을 만들어 참여했습니다.
2024년의 깃발들은 2016년 깃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정체성을 더욱 솔직하게 표현하면서도 한층 더 재미를 가미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공유한 사진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2016년에도 새롭게 등장한 주체들은 대체로 여성, 청소년, 청년 계층과 관련이 깊었습니다.
제가 갑자기 과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위 사진의 아래쪽에 있는 두 장의 사진 때문입니다.
왼쪽에 있는 ‘다음 아고라’ 깃발 사진은 2024년 12월 7일 찍은 것입니다. 16년 만에 이 깃발을 보니 너무 반가웠습니다. 꼬깃꼬깃 구겨지고 때가 탄 깃발, 그리고 그 깃발을 든 분들과 함께 서 있는 이들의 나이는 16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2008년 ‘다음 아고라’로부터 시작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시민 주체, 즉 ‘집단지성’의 가능성은 2016년을 거쳐 2024년의 ‘시민촛불’ 공간에 있는 수많은 깃발로 진화하여 이어지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오른쪽의 ‘8282’ 깃발이 발견하자마자 느낌이 왔습니다. '82cook'일 것이라고. 검색해 보니 예상이 맞았습니다. 이 깃발을 든 분들을 살펴보니 대체로 30~40대 여성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82cook’은 2008년 촛불시위 당시 쌍코, 소울드레서 등과 함께 인터넷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직접행동에 나선 여성들이라는 새로운 시민주체로 주목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주로 20~30대 여성들이 중심이었던 것으로 아는데, 16년이 지난 2024년에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온 모습을 보니 뭔가 찡한 마음이었습니다.
새로운 시민 주체였던 이들은 이제 기존 주체가 되었고, 새로운 주체들과 함께 민주주의를 위한 직접행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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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파트’와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며 싸우는 덕후들의 응원봉 시위
깃발 사진을 주로 찍었지만, 참여한 분들의 면면을 보면 ‘아이돌 덕질 좀 해봤다’ 하는 분들이 촛불 대신 응원봉을 많이 들고 나왔다는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누가 봐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2030 여성분들이 많이 참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현장이었습니다.
아래 링크의 영상을 보면, 2024년부터는 촛불시위가 아니라 ‘응원봉 시위’로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촛불 대신 응원봉을 흔들며, 민중가요가 아닌 ‘아파트’와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는 이들이 ‘윤석열 탄핵 2024 응원봉 시위’의 핵심주체입니다. 저는 뉴진스 응원봉이 탐났던 차인데, 이번 기회에 정당하게(?) 하나 구매해야 하나 싶습니다.
👉 https://campaigns.do/articles/12692
👉 https://campaigns.do/articles/12701
참여자가 많다 보니 길에 병목현상이 생겼는데, 한 20대 여성분이 나서서 마치 공연장에서 많이 해본 듯 침착한 태도로 응원봉을 흔들며 큰 소리로 길 안내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옆 도로 바닥에는 20 여성분들이 질서 정연하게 앉아 응원봉을 흔드는 모습도 보였는데, 이를 보며 역시 그 누구보다 겨울 노숙에 강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믿음직스러웠습니다.
2008년에도, 2016년에도, 그리고 2024년에도 대규모 시민항쟁에서 두드러지는 시민 주체성은 바로 2030 여성, 청년, 청소년들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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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마무리
내란의 수괴가 마련해 준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한 참여형 교육 워크숍(?) 현장에서, 한국사회의 시민들은 8년 전에도, 그보다 16년 전에도 그랬듯이 디지털 시대의 민주시민으로 거듭나며 임파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언제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자들에 맞서 싸우고 이를 방어할 수 있는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토대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다만 항상 아쉬워하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2016년 촛불이나 2024년 응원봉 시위가 주로 ‘대의민주주의의 원상회복’, ‘87년 체제의 방어’에 그치는 경향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위에서 ‘정치적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한국 사회는 87년 체제 이후 양당제 하에서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 사회적 안전망 구축, 소수자 권리 실현, 기후위기 대응, 그리고 안전사회 구축 등의 내용과 관련된 경제·사회적 민주주의를 발전시키지 못했습니다.ㅤ
새로운 논의의 공간이 열리고 있다 하더라도, 그 공간에 개입하여 더 진전된 방향으로 이끌 힘은 되려 그 어느때보다 약한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그런 힘은 논자들의 주장으로 진전되는 것이 아니라 양당과 구별되는 제3의 대안적 정치세력, 사회운동, 그리고 시민들의 지지가 일정 수준 이상 정렬(얼라인) 될 때 발휘되어 양당을 견인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상황이 좋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가 더 나은 정치 체제가 무엇인지, 한국 정치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사회문제들이 무엇인지 논의하고 이를 확산시키기 위한 일을 계속 해나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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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윤석열 대통령의 6시간 비상계엄, 누가, 어떻게 책임져야 할까요?https://campaigns.do/surveys/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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