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년 사이로 편가르기 문화가 너무 심각해진것 같네요.
팬덤정치에 대해 깊이 이해 할 수 있는 칼럼이네요.
"이견을 존중하고 서로 다른 대안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정치의 공간이 줄어들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사회경제적 어젠더가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다." "당원수는 늘어났지만 정당은 되레 허약해졌다. 정당의 이름과 지도부는 집권여부에 상관없이 수시로 바뀌었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일상적으로 꾸려지곤 했다. "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팬덤정치는 정치실패 또는 정치무능이 불러온 현상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비전과 소신을 갖고 팬덤을 이끌어가는 책임의 리더십보다 정치적 이득을 위해 그들의 혐오를 부추기고 그 대가로 권한을 늘려주는 거래의 코트십(courtship)을 추구하는 것을 경계하고, 막아야 한다. "
정당정치가 약화되는 것의 문제의식에 동의가 됩니다. 그것을 시민참여의 증대, 대중정치의 확산, 개인 권한의 확대와 연관시키는 것까지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팬덤정치와 (암묵적으로) 동일시 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가 되네요.
정당정치, 특히 한국의 양당정치체제는 민주주의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에 따라 시민참여가 강조 될 필요가 있고 이는 참여민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주창되고 있습니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시민참여로 해결하면서도 그것이 작동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 글에서 문제로 지적 된 "이견을 존중하고 서로 다른 대안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정치의 공간"의 부재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론장'과 '거버넌스'가 강조되어야 합니다. 시민들이 참여 할 수 있으면서도 정당의 역할을 강조하고, 시민들이 참여하여 이견을 충분히 나누고 대안을 경쟁하는 숙의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즉 대의민주주의로의 회귀가 아니라 숙의민주주의로의 진전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박정희 죽음 이후의 박근혜 팬덤, 노무현 죽음 이후의 문재인 팬덤이라는 분석에 대해 거의 동일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죽은 이의 정치'라는 생각도 해왔었네요. 박근혜와 문재인의 팬덤정치라는 구도는 이제 끝나가지만, '팬덤정치'는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고 있고, 그 팬덤정치가 정치 부족주의의 정치양극화 문제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은 여전한 상황이 아닐까 합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이며 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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