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과 포용성 사이에서, 스포츠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2023.09.01
지난 6월 2일, 트랜스젠더 여성인 나화린 선수가 강원도민체육대회 사이클 부문에 출전하여 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트랜스젠더 선수가 공식 대회에 나오는 것은 한국 체육계에선 처음 있는 일이었죠. 경기 후 진행된 언론사 인터뷰에서 나화린 선수는 트랜스젠더 여성으로서 다른 여성 선수들보다 유리한 조건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는데요. 그럼에도 여성부 경기에 출전한 것은 트랜스젠더 선수들의 여성부 출전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리고, 별다른 대안 없이 트랜스젠더의 출전을 제한하고만 있는 스포츠계의 대응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BBC뉴스코리아.2023.07.05.)
지난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역도 선수 로렐 허버드, 호르몬 치료를 받으며 미국 NCAA 대회에서 우승한 수영 선수 리아 토머스 등, 여성부 경기에 출전하는 트랜스젠더 선수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트랜스젠더 선수들의 여성부 출전은 큰 사회적 논쟁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선수들을 포용하면서도 공정한 경쟁이란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서, 앞으로의 스포츠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출처 : 픽사베이
► 스포츠 분야의 이분법적 젠더 구분
이러한 논쟁의 기반에는 오랜 기간 경쟁 스포츠의 기본틀이 되었던 이분법적 성별 구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스포츠는 성별 이분법이 철저하게 관철되는 영역 중 하나입니다. 특히 경쟁 스포츠의 경우, 대다수 종목에서 여성과 남성의 무대가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고 당연한 풍경이죠.
하지만 이 당연한 풍경은 젠더 이분법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스스로를 두 성별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논바이너리(nonbinary)로 정체화하는 이들은 경쟁에 참여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부분적으로 포기하고 이분법적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야 하죠. 일례로 지난 도쿄 올림픽에 미국 대표로 출전한 스케이트보드 선수 알라나 스미스는 스스로를 논바이너리라고 밝히는데요. 스미스는 여자부 종목에 참여했으나, “they/them”이라는 대명사가 적혀진 스케이트보드와 함께 정체성을 표명했습니다.(NBC뉴스.2021.07.28.)
여성과 남성의 스포츠를 분리하는 이유는 원론적으로 여성이 스포츠에서 배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접적인 경쟁이 이루어지는 스포츠라는 장에 여성이 자유롭게 참여하기 위해선 여성들만의 스포츠 공간이 별도로 필요하다는 관점인데요. 경쟁 스포츠는 긴 시간 여성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남성의 것이라 여겨졌고, 실제로도 남성에게 독점되어 왔습니다. 종목 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의 종목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신체적 기량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하죠. 남성과의 경쟁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여성 스포츠는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발전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두 가지 성별로 분리된 운영 자체가 스포츠에 대한 남성의 헤게모니를 지속시킨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완고한 이분법적 성별 분리에는 생물학적으로 남성의 신체가 여성의 신체보다 우월하다는 전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제가 결과적으로 여성에게 득보다 해가 될 수도 있다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요컨대 ‘열등’한 여성의 스포츠 접근권을 보호하는 것이 그 의도와는 다르게 여성을 2등 선수로 보는 시각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죠. (트랜스젠더의 스포츠 접근권에 관한 윤리적 고찰 박성주, 2020)
► 성별 검사
또한, 이러한 성별 이분법이 현실과 불화하는 지점들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통념과 달리, 현실에서 인간의 성별은 스펙트럼으로 존재합니다. 인터섹스, 젠더퀴어, 안드로겐 과다증과 같은 개념이 드러내는 것처럼, 통상적인 여성 또는 남성의 범주에 안정적으로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스포츠가 성별분리를 성공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이처럼 애매한 영역에 서서 경계를 흐리고 있는 사람들을 판단할 기준이 필요하겠지요.
역사적으로 여성 스포츠에서 생물학적 성별을 검증하는 일이 중요해진 것은, 이른바 “젠더 사기”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즉 남자 선수나 인터섹스 선수들이 메달을 따기 위해 여성부 대회에 참여하는 것을 막고자 했던 것인데요. 이러한 목적에서 여성부 출전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성별 감정 테스트가 시작된 것이 1930년도입니다.(특집기고: 스포츠 분야 트랜스젠더 배제(Trans-Exclusion)에 대한 “페미니즘” 담론 이타니 사토코, 2020)
모든 여성부 출전 선수를 대상으로 한 의무적 성별 감정 제도는 20세기 말 선수들의 인권과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비판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경우에 검사를 선별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권한은 여전히 남아있었고, 현재까지도 일부 여성 선수들은 성별 검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스포츠계는 눈에 보이는 신체적 특징, 염색체, 호르몬 등의 다양한 기준과 방법을 동원하여 생물학적 성별을 검증해 왔습니다.
► 현재의 규정은 어떠할까?
오늘날 문제시되는 것은 DSD(differences of sexual development: 성 발달의 다름(차이), 이 맥락에서는 여성이지만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경우를 일컫습니다) 선수 및 트랜스젠더 선수의 경우입니다. 이들은 여성부 경기 출전 자격을 얻기 위해 자신이 여성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2010년대 이후로 국제스포츠계는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그 조건으로 두고 있죠.
먼저 올림픽위원회가 2015년 발표한 합의성명서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여성 선수들은 대회 전 12개월 이상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10nmol/L 이하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때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증명해야 하는 의무는 여성 부문에 출전하는 트랜스젠더 선수들에게만 있어, 남성 부문에 출전하는 트랜스젠더 선수의 경우 다른 조건 없이 즉시 출전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한편, 세계육상(World Athletics)은 올해 3월 31일부로 남성으로 사춘기를 보낸 트랜스젠더의 여성부 경기 출전을 금지했습니다. 이와 함께 DSD 선수와 관련한 규정도 강화되어, 이제 여성부 출전 선수들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최소 24개월 동안 2.5nmol/L 이하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는 세계수영연맹(World Aquatics)이 2022년 발표한 규정과 거의 같습니다. 다만 세계수영연맹에서는 “출생시 성별과 다른 성 정체성을 가진” 선수들을 위한 별도의 경쟁부문인 오픈 카테고리를 신설할 계획도 함께 발표했는데요. 이는 2023년 10월 치러질 베를린 수영 월드컵에서부터 시행됩니다.(스포츠조선.2023.08.17.)
BBC에 따르면 새로 발표된 세계육상의 규정은 총 13명의 육상 선수에게 영향을 끼칩니다.(한국일보.2023.03.24.) 즉, 13명의 선수들이 약물 치료 등을 통해 인위적으로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낮춰야 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육상 선수 캐스터 세메냐는 의료적 개입을 거부하여 출전권을 잃은 대표적인 DSD 선수입니다. 세메냐는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후 성별 논란에 휩싸여 성별 감정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 결과가 정확히 밝혀진 적은 없으나 언론에 의해 일반 여성에 비해 3배 이상의 테스토스테론 분비량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의 규정으로서는 문제가 없었고, 이후로도 세메냐는 올림픽에서 2개의 금메달을 목에 거는 등 대단한 활약을 펼쳤으나, 세계육상이 DSD 관련 규정을 강화함에 따라 출전 자격을 잃었습니다.(SBS.2022.05.24.)
남성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테스토스테론은 일반적으로 남성에서 10-35nmol/L, 여성에서 2.4nmol/L를 밑도는 수치로 나타납니다.(Science.2023.04.04.) 테스토스테론은 운동 능력과 일정한 관계를 갖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통념과는 달리, 테스토스테론이 운동 능력 상의 이점으로 이어지는가에 대해선 확실한 과학적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트랜스젠더 선수가 시스젠더 여성 선수에 비해 신체적 이점을 갖는지의 여부에 관해서도 그렇습니다. 성전환 수술 전후에 운동능력이 어떠한 변화를 겪는지, 테스토스테론 억제 요법이 선수들의 운동 능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등에 대해서도 아직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요. 때문에 세계육상은 규정 강화에 대해 충분한 과학적인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정해진 차별적인 결정이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는데요. 세계육상 측에서는 트랜스젠더, DSD 선수들과의 경쟁이 공정하다는 것을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도 부족하기 때문에 현재로선 공정성을 우선시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 그런 ‘공정’이 원래는 있었나?
이때의 공정성은 여성 선수들에 대한 공정성을 말합니다. 여성 선수들에 대한 공정성을 포용성(inclusion)에 우선하였다는 것인데요. 풀어서 쓰자면, 세메냐와 같이 높은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가진 선수가 그보다 적은 테스토스테론을 가진 ‘일반’ 여성 선수들과 경쟁하는 것, 또는 사춘기가 지나 성전환을 한 트랜스젠더 여성 선수가 사춘기 이전부터 ‘생물학적’ 여성으로 살아온 선수들과 경쟁하는 것이 공정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공정성은 스포츠 정신의 중요한 일부입니다. 특히 오늘날 엘리트 스포츠는 단순히 여가와 취미의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관여하는 국제적 행사이며, 어마어마한 경제적, 정치적 보상이 따르는 ‘프로’의 무대라는 점에서 공정성의 중요성은 더욱 커집니다.
하지만 동시에, 스포츠의 경쟁이 과연 ‘공정’한 적이 있었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한겨레.2021.07.08.) 선수들은 가장 원초적인 수준에서 모두 다른 신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포츠가 표방하는 공정성이 동일한 신체 조건을 의미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불가능합니다.
신체적 차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각종 사회적, 경제적 특권들을 포함하여, 같은 경기장에서 뛰는 모든 선수들은 서로 다른 조건에서 태어났고, 성장했고, 훈련했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불공정’한 경쟁을 만드는 이런 차이들을 우리는 문제시하거나 비난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트랜스젠더나 DSD 선수의 여성부 출전에 관한 쟁점은 공정성의 프레임을 쓰고 있지만, 사실 ‘정상적’인 시스젠더가 아닌 이들을 얼마나 인정하고 포용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문제로 보이기도 합니다.
오픈리 트랜스젠더로 여성부 대회에 참가하여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로렐 허버드나 리아 토머스와 같은 선수들은 여성의 자리를, 메달을 뺏었다는 비난을 듣곤 합니다. 특히 비수술 트랜스젠더인 토머스에게는 메달을 따기 위해 여성인 척을 한다는 식의 조롱이 쏟아집니다. 그들은 여성부에서 공정하지 않은 경쟁을 했을까요? 트랜스젠더 선수들이 자유롭게 여성부 경쟁에 참여한다면, 여성 선수들은 피해를 입게 될까요? 대다수 여성에 비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선수들은 공정한 경쟁을 위해 스스로의 몸을 바꾸어야 할까요? 앞으로의 체육계는, 성 구분의 틀을 어떻게 수정해 나가야 할까요?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해요!
공정성과 포용성 사이에서, 스포츠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코멘트
6자신이 여성이라고 해도 선천적인 신체의 기능은 남성입니다. 트렌스젠더에 대한 체급을 따로 규정해야 되겠지만 쉽지가 않죠...
이 논의가 안전한 공론장을 추구하는 캠페인즈에 열려서 반갑습니다. 다른 데에서 이 이야기를 언급하며 혐오차별발언이 난무하는 것을 보고 힘들었거든요. 누구든 나답게, 스포츠정신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는 것, 그리고 모든 참여자가 공정하게 겨룰 수 있는 것이 바로 스포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한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