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는 누가 죽인 걸까요?
2023.06.20
출처: 영화 ‘다음 소희’
올해 2월 8일에 개봉한 영화 ‘다음 소희’는 2017년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특성화고의 어느 여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을 다룬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발단이 되어 특성화고 현장실습의 폐해가 사회 전반에 공분을 사게 되고 급기야 법까지 개정이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다음 소희’의 실제 사건인 2017년 홍수연 님의 죽음에 이어 같은 해 11월 제주의 한 음료제조업체 공장에서 현장실습 중이던 이민호 님이 목과 몸통이 제조 적재기 프레스에 눌려 사고 발생 열흘 만에 숨을 거뒀고, 2021년 10월, 전남 여수의 한 요트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홍정운 님이 업체 대표의 지시로 잠수 자격증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잠수작업에 나섰다가 바다에 빠져 숨졌습니다. 이렇듯 현장학습 중에 목숨을 잃는 사태가 계속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육계가 문제야! 특성화고등학교의 목적이 취업률이야, 교육이야?
특성화고등학교의 현장실습제도는 박정희 정부 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산업교육진흥법을 제정하면서 1973년부터 직업계고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도입되었습니다. 이렇게 현장실습제도는 산업체 인력 수급의 목적으로 시작되었고, 현장실습제도가 변화해 온 과정에서도 교육적 쟁점보다는 산업체의 필요와 취업률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무리한 취업률 목표치를 제시하며 학교를 압박했고, 목표치 미달학교 통폐합 계획까지 내놓았습니다. 지금도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특성화고는 여전히 취업률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위탁 연구보고서(2022),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인권개선 방안마련 실태조사」에서는 대부분의 특성화고 교육과정이 현장실습으로 인해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고등학교 3학년에 편성된 전문 심화과목을 현장실습 참여 학생들은 못 듣게 되어 수업 결손이 생겨 심각한 학습권 침해가 일어나고 있고, 모든 교육과정이 자격증 취득으로 잠식되어 있는 실정이라고 보고했습니다. 또한 ‘직업교육훈련촉진법’에서는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매년 현장실습 실태조사를 시행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제대로된 실태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위탁 연구보고서(2020), 「청소년 노동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는 많은 현장실습생들이 실질적으로 교과에서 배운 내용을 확인하고 해당 업종에 필요한 숙련을 실습을 통해 익힌다기보다는 그와 관련한 단순 업무를 수행하므로 전문적인 기술을 습득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보고했습니다.
4월 29일, 직업교육바로세우기시민행동 발기인대회가 열렸습니다. 전국 86개 단체와 개인 149명이 자발적으로 모여 ‘현장실습 페지, 직업교육정상화’를 선언했습니다. 발기인 참가자들은 “현장실습이 교육이 아니라 노동착취이며 그 현장에 교육은 없다”며 정부를 향해 “현장실습을 폐지하라’는 촉구를 했습니다.(2023.04.30. 한국NGO신문)
👷노동시장이 문제야! 매년 산업재해 희생자가 나오잖아. 현장실습생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거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도 산업재해현황(2023.03.02)」에서는 2022년 한 해동안 사망자수는 2,223명(전년 동기 대비 6.9% 증가), 재해자수는 130,348명(전년 동기 대비 6.2% 증가)로 집계되었습니다. 이것은 매일 평균 6명의 노동자가 일을 하다가 죽는 일이 발생하는 비극적인 한국 노동 현장의 민낯입니다.
영화 ‘다음 소희’의 실제 주인공인 고 홍수연 님은 자신의 전공과 거리가 먼 LG유플러스의 하청업체인 LB유넷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가 SAVE부서 일명 ‘해지방어부서’에 배치되어 상품을 해지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는 동시에 상품까지 판매해야 하는 과중한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일반 성인들도 채우기 힘든 ‘콜수’와 ‘상품 판매 목표 실적’을 강요 받으며 야근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실습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인센티브 지급을 미루었습니다.
고 홍수연 님의 아버지 홍순성 님은 “실습생이기 때문에, 싼 임금으로 가장 힘든 부서에 보낸 것이라며 “회사가 실습생을 몇개월 동안 써먹고, 버려도 되는 소모품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2023.02.20. CLIEN)
국가인권위원회 위탁 연구보고서(2020), 「청소년 노동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 현장실습 과정에서 산재사고를 경험한 비율은 26.3%였고, 산재사고에 대한 위험을 인식한 비율은 20.6%로 나타났습니다. 산재사고의 위험을 인식한 21명에게 산재사고 위험을 느낀 가장 큰 이유에 대해 질문한 결과 ‘노후화된 작업시설 등 업무 환경이 안전하지 않아서’가 38.1%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적정 인원 부족 등 과중한 업무 부담 때문에’(33.3%), ‘충분한 직무・안전 교육 없이 실무에 투입되어서’(28.6%) 등의 순으로 응답했습니다.
⚖️법과 제도가 문제야! 이번에 법개정으로 충분할까? 근본적인 법적 대안이 절실해!
영화 ‘다음 소희’가 개봉된 그 달 27일에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1년동안 계류 중에 있었던 ‘직업교육훈련촉진법 개정안(일명, 다음 소희 방지법)’이 교육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하였고, 드디어 이 법이 4월 30일에 국회를 통과해 현장실습생에게 일부만 적용되고 있었던 근로기준법 조항을 확대·적용하게 되었습니다.
직업교육 촉진법 개정안은 구체적으로 ▷근로기준법상 강제근로 금지 ▷중간착취 재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및 발생시 조치 ▷기능습득자의 보호 등의 근로기준법 규정을 현장실습 제도에도 준용하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근로기준법상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도 담겨 있습니다.
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교육위원은 “실제 법안 심사에서는 반복되는 현장실습생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보다는 사후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중점적으로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2023.03.02. 헤럴드경제)
국가인권위원회 위탁 연구보고서(2022),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인권개선 방안마련 실태조사」에서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는 교육과정의 일환이라지만 정작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등 교육관계법에서는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직업교육을 목적으로 한 고등학교에 대한 정의 역시 법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만큼 한국의 직업교육, 현장실습제도는 개념적‧제도적 뒷받침 없이 산업적 필요에 따라 도구적으로 활용되어온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에서는직업교육훈련촉진법 개정을 넘어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에 대한 노동자성 인정과 노동법 전면 적용을 촉구하였습니다.(2023.02.28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 보도자료)
😬사회적 편견과 인식이 문제야! 우리 사회를 곪아 터지게 하는 뿌리깊은 학력 차별은 철퇴를 맞아야 해!
공현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는 「현장실습의 대안은 학력 차별 금지」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2023.05.19. 프레시안)
“한국 사회는 '대학도 못 간' 중졸·고졸 청소년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과 삶의 문제에는 놀랍도록 무관심하다. 직업계고 학생들이 마주하는 차별과 불평등, 졸업 후 노동 현실도 그리 개선되지 않는다. …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서 직업계고를 천시하고 학력·학벌에 따른 차별을 당연시하는 현실 탓이다. 대기업-정규직의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안정적 삶이 보장되지 않고 차별과 불평등이 극심한 노동 구조 때문이다. 졸업 직후에 취업하지 못하면 구직의 기회가 대폭 줄어드는, 실패와 시행착오를 인정 않는 문화와 사고방식 때문이다.”
강문식 민주노총 전북본부 정책국장은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특성화고 진학이 갖는 사회적 낙인을 견뎌왔을 고 홍수연 님의 좌절을, 그래서 이곳에서마저 밀려나면 이 사회에는 더이상 나의 자리가 없을지 모른다고 느꼈을 그 절망을 떠올려 달라고 호소했습니다.(2023.04.12. 교육희망)
국가인권위원회 위탁 연구보고서(2020), 「청소년 노동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 면접조사 분석 결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조직문화와 학력 차별 등으로 인해 신체적․정신적으로 안녕하지 못했다. “너 어디 대학 나왔어?”하고 아무렇지 않게 묻는 대학 중심 사회에서 특성화고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늘 의식해야 하고, “고졸이 해봤자”라며 무시당한 경험에서 학생들은 자신감을 잃고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소희는 누가 죽인 걸까요? ‘다음 소희’가 나오지 않으려면 어떤 문제를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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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12내부에서 산업재해를 나와도 고발조치 못하는 시민들이 있어요
표현의자유를 보장하되 부패한 기업들 조사해야합니다!
원인들 하나하나가 무겁게 느껴져 결국 다 선택하게 되네요. 개별 원인의 문제라기보단,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의 구조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중노동시장의 문제처럼, 현재의 교육체계가 이중교육시장화된 것 같아요. 몇몇 정책 개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거의 항상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힘에 의해 힘없는
사람들이 희생된다.
당연한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가 되길
바라며….
사실 우리 교육제도와 이로인한 학벌주의 사회 그리고 사회적인식 과 이로인한 사법적 차별까지 우리 사회 인간 존중 철학부족과 인식왜곡이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에서 일이 이렇게 될 때까지 어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뭘 했는지, 왜 이렇게 된 건지 찾아다니는 형사에게 교육청 장학사가 '일개 장학사가 뭘 할 수 있겠냐, 이 다음엔 어디로 가실거냐'라고 묻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가장 화가 나면서도 맥이 탁 풀리는 장면이었어요. 학교도 회사도 교육청도... 어디로 가도 풀리기는커녕 더 갑갑해지던 상황은 아마도 너무 많은 문제가 깊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학생 신분이면서도 비정규직 노동자인 현장실습생들은 여러 단위에서 보호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노동현장에서도, 교육현장에서도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현장실습'이라는 표현에 부합하도록 노동력을 착취 당하거나 학생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대응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다음소희라는 영화 제목이 참 슬프고 무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성과로 보는 교육계나 노동시장 모두가 문제이고 법과 제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정비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목숨을 잃어야지만 공론화되고 제도가 변한다는게 너무나 슬픕니다.... 사회 인식은 빠르게 바뀌지 않습니다. 따라서 가능하다면 강제성이 있는 제도를 통해 그 대안을 마련해놓는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선택지에 동의하지만, 그런 차원에서 법과 제도를 골랐습니다.
법이 있어도 제대로된 감시나 처벌이 없다면 법이 큰 의미가 없지 않을까 싶어요. 감시를 하는데 있어선 추가적인 공적 인력이 더 투입되어야 할겁니다. 기업도 법에 맞게 인재를 채용하는 습관과 양심을 가져야 하고요. 솔직히 한번에 고치는건 불가능에 가까울수 있어요. 그러니, 시간이 오래걸려도 하나하나 차근히 고쳐나가면 좋겠습니다.
하나의 원인이 낳은 결과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마련되었지만 오히려 편법적으로 법의 테두리 밖에서 더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고, 특성화고등학교는 전문인력 특성화를 이루는 곳이 아닌 인문계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이 가는 곳으로 인식되어 있으며, 그러한 학생들을 취업률을 높여 학교의 위상을 높이는 도구로 사용하는 교육계도 문제라고 할 수 있지요...비단 이런것들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깔려있는 편견과 인식이 아이들을 안전한 울타리 안에 있지 못하고 위험에 노출시켜버린것 같아 어른으로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내가 당장 손해보는 일이 아니면 소리내어 일어나지 못하는 비겁한 어른들만 있는 사회여서 미안합니다.
결국 교육, 노동, 법/제도, 사회 모두가 문제라는 걸 알게됐네요 ㅠ
사후 처벌 위주가 아닌, 예방할 수 있는 법이 마련되어야 하고, 법과 제도의 변화가 결국 교육과 노동이라는 우리 삶의 영역에까지 영향이 잘 도달해야겠습니다.
학교다닐 시절엔 교육이 문제, 졸업하면 노동시장이 문제. 정말 속상해요...
모두 다 중요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의 학력 차별 문제에 조금 더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한국의 청소년 정책은 대입 위주고 청년 정책은 대학생 위주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