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사과 없는 대통령의 말… “정치적 무책임 몸에 뱄다”
윤석열 대통령은 7일 대통령실에서 약 140분간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회견을 앞두고 회견 시간이나 분야·개수 등 제한 없이 모든 사안에 대해 답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국정 브리핑에 앞서 머리 숙여 사과했다. 이어진 기자회견 자리에서는 26개의 질문을 받았다. 대통령실이 강조했던 것처럼 앞선 기자회견과 비교했을 때 더 오랜 시간, 더 많은 질문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반전 없는 맹탕 회견’, ‘자충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2022년 6월 53%를 기록했던 지지율은 임기 절반 만에 17%(8일 기준)까지 하락했다. 지난 2년 반 대통령은 어떤 말을 했을까. 또 그의 말은 우리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6일 예술사회학 연구자인 이라영 문화평론가(이하 ‘이라영 작가’)를 만났다.  그는 <말을 부수는 말>,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 <타락한 저항>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그는 ‘권력의 말’을 해체하고 정확한 언어로 현실을 문제를 꼬집는 데 주목했다. “용산으로 대통령실 옮길 때 그랬잖아요. 제왕적 대통령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 이전한다고. 그런 핑계를 댔는데 이후에 거부권을 얼마나 남발했어요? 군사독재 이후로 이보다 더 제왕적 대통령이 있었나 싶을 정도인데.”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대통령실 이전을 공식화했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겠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윤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 강화”를 앞세웠다. 그러나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 평가 이유에서 ‘소통 미흡’은 3순위 안에 번번이 들었다. “이번 정부 들어서 소수자의 목소리는 완전히 묵살됐어요. 특히 참사 유가족들의 목소리요. 참사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과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있어서 정치가 실종됐다는 거죠.” 이라영 작가는 참사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권력의 성격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묵살(默殺)의 ‘살(殺)’이 살인(殺人)의 ‘살(殺)’과 같다”며, “묵살은 정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력의 행위이기도 한데, 이를 참사 유가족에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참사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지적은 처음 나온 게 아니다. 지난달 25일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를 마주하는 질문들’ 포럼에 참석한 최성용 성공회대 연구원(국제문화연구학과 박사 수료)은 이렇게 말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애도를 두고 ‘정치 편향적이다’라면서 분향소를 철거하거나 강제로 이전시킬 수 없죠. 우리가 어떤 리본을 하나 다는 것도 눈치를 봐야 되고, 리본 문구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고. 이거는 애도가 아니죠. 권력 행위죠.” 그는 “참사 대신 사고라 명명하고, 희생자의 영정 사진과 위패가 없는 합동분향소가 설치됐다, 정부의 애도는 다분히 형식적이었고 그 내용이 텅 비어 있었다”며, “참사 피해자의 존재를 없애고 침묵시켰다”고 비판했다. 2022년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서 158명이 사망했다.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참사 74일 만에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 지자체, 소방 등 각 기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이들의 부정확한 상황판단과 전파 지연, 협조 부실, 구호 조치 지연 등이 참사 원인이라고 밝혔다. 책임자들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됐으나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만 유죄를 받았다.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관련자들은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권력자들이 ‘법적인 문제는 없다’는 말을 남용하면서 정치적 무책임이 몸에 밴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는 그냥 거대한 사법기관만 (남아) 있는 거죠. 사회 정의는 법적인 유무죄 안에 갇히는 게 아니잖아요. 근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되면서, 윤리라는 세계가 없어져버렸어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으면 참사가 발생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진실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묻히고 만다. 이라영 작가는 “이러한 권력의 무책임으로 결국 시민들이 희생된다”며, 사회의 고통을 방치하는 권력자들에게 “정치적 책임의 회복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성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는 또 있다. 지난달 1일 국군의 날에 열린 대규모 퍼레이드다. 그는 2년 연속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진행했다. 군은 이날 다양한 군 장비와 병력 등을 선보였다. “국군의 날이라고 퍼레이드를 하면서 정작 억울하게 죽은 군인에 대해서는 덮으려고 하고 밝히지도 않아요. 군 사기를 걱정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죠. 정부는 군 사기를 걱정하지 않아요. 권력의 안위를 걱정하는 거죠.” 윤 대통령은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했다. 그는 ‘선제 타격’, ‘압도적 전쟁 준비’, ‘확전 각오’ 등 전시 상황에 강력하게 대응할 것을 강조했다. 이라영 작가는 이러한 권력이 결국 국민들에게 ‘집단적 불안’을 조장해 사회 부정의를 가렸다고 꼬집었다. “사회를 전시 분위기로 몰고 가면서 차별을 더 강화하고 있어요. ‘지금 전쟁 나게 생겼는데,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어디 있어?’ 하면서 (다른 문제들을) 사소화시키는 거죠.” 권력자의 외면과 차별로 결국 ‘사과’가 사라진 세계가 도래했다.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단계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참사나 사고가 발생해도 누구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 여기에서 이상한 ‘말’이 탄생한다. “권력자들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인정할 수는 없는데 사과를 해야 하는 자리에 섰어요. 그때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유감입니다’ 이렇게 말해요. 사과하기 싫으니까 에둘러서. 이게 그냥 공직자들의 언어가 돼버린 것 같아요.” 유감(遺憾)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 이라영 작가는 권력자가 타인의 마음을 ‘섭섭’하게 만들어놓고, 자신이 도리어 유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사회에서 문해력에 문제가 있는 건 다름 아닌 ‘권력 집단’이라고 말했다. “언어는 그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쓰면 그냥 그 사회에 그냥 굳어지는 거잖아요. 그러면 점점 사람들이 ‘유감입니다’를 사과의 언어로 이해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정말 우리 사회의 언어를 망치고, 문해력을 교란시키는 주범이 누구인가 하면 결국 ‘권력집단’이에요.” 교육부는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성 소수자’ 용어를 삭제하고,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노동자’를 ‘근로자’로 변경했다. 이에 당시 인권위는 “우리 사회의 인권 담론을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자는 노동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말이라면, 근로자는 조금 더 사용자의 입장에서 수동성이 부각됩니다. 이를 굳이 바꾸려고 하는 이유가 뭐겠어요. 노동자의 주체성, 독립성을 약화시키려고 하는 거죠.” 말을 바꾼다는 건 단순히 글자를 바꾸는 게 아니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권력자들은 이를 활용해 차별을 강화하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반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권력 집단의 말은 보수적이다. 그들이 활용했던 말과 언어를 지속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사회적 소수자, 피해자 등은 자신의 상황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끊임없이 찾는다. 기존의 문화에서는 너무 평범한 말이라고 해도, 차별이나 비하의 의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저는 권력의 위치가 잘 드러나지 않는 표현들을 경계해요. 예를 들면 젠더 ‘갈등’이라는 말을 하려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젠더들의 관계가 모두 평등해야 성립할 수 있어요.그런데 ‘젠더 권력’, ‘젠더 폭력’, ‘젠더 차별’ 이렇게 사용하는 게 더 정확한 상황에서, 뭉뚱그려 ‘젠더 갈등’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러면 말에 권력의 위치가 드러나지 않거든요. 지역 ‘갈등’도 그렇고요. 저는 권력이 행하는 차별과 폭력을 순화해주고 싶지 않아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세우며,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고 표명했다. 이라영 작가는 이러한 정부 아래 ‘여성혐오 범죄’가 어떻게 인정될 수 있겠냐고 탄식했다. 구조적 성차별 없다고 했으니 여성혐오는 검증될 수도, 인정될 수도 없다. 따라서 ‘여성혐오 범죄’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잇달아 발생하는 교제폭력, 교제살인, 여성혐오 폭행 사건 등은 모두 개인화된다. 즉, 별난 가해자가 저지른 기행으로 둔갑되는 것이다. 국민 대다수 역시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17%라는 지지율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윤석열 정부는 민심을 얻지 못했다. 탄핵론에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이라영 작가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천 개입 정황이 이렇게 나와도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같은 분위기가 형성 안 되잖아요. 왜냐하면 별다른 대안이 없어 보이니까요. 이쪽을 끌어내리면 또 누구를 앉힐까. 잘 모르겠어요. 이게 사람들을 되게 절망적이고 무력한 시민으로 만드는 것 같아요.” 이라영 작가는 “정치가 고통을 외면하는 세상”에 돌파구는 결국 연대라고 강조했다. 한 사람의 목소리는 쉽게 묻힐 수 있어도, 여럿이라면 권력에 견줄 ‘힘’을 만들 수 있다. “인간이 품은 모방 욕구는 아름다움을 복제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무엇을 복제할 것인가. 권력화된 아름다움인가 분배하는 아름다움인가. 아름다움과 선함에 대한 동경이 나 이외의 타자와 동등하게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연결될 수는 없을까.” – <말을 부수는 말>(이라영, 한겨레출판, 2022) 중에서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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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참사를 되돌아보는 한 사람의 이야기
Intro. 글을 쓰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그들이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이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참사와 분리되어 자연스러운 망각의 흐름 속에서 그 날을 잊어갔던 것이 최근 나의 모습이었다. 참사가 큰 일이었다는 사실을 이성적 판단으로 알 수는 있었지만, 마음 깊은 곳의 진심으로 알지는 못하였다고 느꼈다. 그렇기에 참사에 대한 이미지와 감정이 내면에 뿌리내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태원 참사 관련 다큐를 찾아서 시청하였고, 이태원특별법 관련 입안 자료들을 프린트하여 읽어보았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아 무작정 2일간 “참사” 키워드에 관련된 장소를 다녀왔다. 평소 관심이 있던 삼풍 백화점 참사, 세월호 참사 관련하여 추모장소를 방문하였다. 이태원 참사 관련 장소는 방문하지 못하였다. 이유는 체력의 한계 때문에...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길 바란다. 참사의 당사자들만큼 사건에 대하여 깊은 진심으로 말하기에 부족하겠으나 알량한 마음으로 느낀 바에 대하여 글을 써내려본다. 마음 한 켠의 무심함을 반성하며 사람들 곁으로 나아가는 여정으로 봐주면 좋겠다. 첫 여정, 삼풍백화점 참사 위령탑 첫 방문 장소는 93년 삼풍 백화점 참사 위령탑이다. 양재시민의숲으로 들어가 다양한 위령탑을 지나 깊숙이 자리한 삼풍 참사 위령탑을 발견할 수 있었다. 탑 뒤로는 유가족들이 놓은 꽃들이 있었고, 주위에 새겨진 글씨들을 읽었다. 참고로 위령탑은 실제 참사 장소와 멀리 떨어져 있다. 참사 장소는 현재 아크로비스타라는 아파트가 들어서서 그 당시의 현장을 경험하기 어렵다. 당시에는 참사를 대하는 방식이 많이 부족하였다고 생각이 되었다. 현재 우리가 참사를 대하는 자세는 이때보다 많이 발전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어디쯤 와있을까. 둘 여정, 단원고 4.16 기억교실 단원고 4.16 기억교실의 모습이다. 교실에 붙여진 대학교 진학 포스터가 마치 고등학교 학창시절로 시계를 돌린 듯한 느낌을 주었다. 참고로 글을 쓰는 본인은 97년생으로, 학년은 차이가 나지만 참사의 희생자들과 동갑내기이다. 단원고 416 기억교실은 세월호 희생자 학생들의 교실을 기술적으로 최대한 보존하여 옮겨둔 것이었는데, 책상 위 추모의 글들을 하나씩 읽어보며 깊은 한숨이 쉬어졌다. 어떤 감정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왼쪽 손목에 차고 다니는 세월호 팔찌에 새겨진 REMEMBER, 기억해야 한다는 말의 무게가 느껴졌다. 이들이 살아있었다면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서 존재하였을까.  학생들을 추모하며 사람들이 적어둔 글을 읽어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누구든 죽음 앞에 서면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기를 바라게 된다는 것이다. 죽음 이후의 세계는 죽은 자들의 몫일진데, 그렇다면 우리들은 산 자들의 세계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을 마주한다. 단원고 416 기억교실에서 본 ‘기억하고 기록하고 행동하라’는 문구를 곱씹어본다. 어떻게 하면 망각해가고 무심해져가는 사람들에게 더욱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셋 여정, 다시 그날로. 2022년 10월 29일의 나는 캠핑장에 있었다. 교회 형, 누나들과 함께 고기도 구워 먹고 담소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가을 사진도 찍고, 분위기도 즐기며 말이다. 다음 날 아침에 깨어나서 교회 형이 “어제 밤에 이태원에서 큰 일이 있었던 거 같은데?” 하는 말로 운을 떼었던 것이 처음 참사에 대한 인지였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지는 것을 지켜보았고, 뉴스 댓글에 있던 링크를 통해 모자이크되지 않았던 원본 동영상을 접하며 숨막힘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교회로 돌아가 예배를 드렸고, 하루가 저물었다. 그해 11월 이태원을 방문하였고, 다음 해 9월 즈음 이태원을 방문하였다. 무슨 마음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무언가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2024년 10월의 나를 생각해본다. 요즘의 나는 무심했던 것 같다. 간간히 관련 뉴스를 접하며 알량하게 분노하고 지켜보는 사람이었을 뿐, 실상은 굉장히 무심했던 것 같다.  마무리하며 이태원 참사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어려웠다. 이태원 참사에 대하여 마음이 많이 멀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망각의 커브를 자연스레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와 동년배, 혹은 같은 나잇대에 속하는 이들이 죽었음에도... 나는 무심하게 살았던 것 같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있고 관심 있었다는 듯이 글을 쓰는 것이 죽은 이들을 기만하는 일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찾아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솔직한 마음이다. 참사라는 개념에 접근하는 여정을 통하여 다양한 질문들을 해보았다. 우리가 참사를 대하는 태도는 어디쯤 와 있을지, 산 자들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당장 답을 내리지 못할 것들일지라도 질문을 던져본다. 앞으로의 삶에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나의 추모의 방식이 될 것 같다. 그 이후에야 무심했던 나의 마음 한켠을 용서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의 삶과 별개로, 이 사회가 참사가 던지는 질문에 대하여 알찬 답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동일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p.s. 최근 뉴스를 통해, 이태원 참사 최고 책임자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뉴스를 접했다. 위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떳떳한 답일까 곱씹어본다. 양심적인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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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메모리얼과 세월호 기억교실, 이태원 참사, 아픔을 기억하는 명징한 방법
미국 뉴욕의 경제 중심 월가(Wall Street)에는 꼭 가 봐야 하는 곳이 있다. 즐거운 곳은 아니다. 오히려 가슴 아픈 곳. 바로 9/11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 WTC) 메모리얼 & 뮤지엄이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은 가장 공포스러운 곳이 되었다. 미국 경제의 상징건물이었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거짓말처럼 차례로 무너졌다. 납치된 항공기가 쌍둥이 빌딩을 뚫고 무너뜨리는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이 세기의 대폭발 테러는 90여 개국 2,800~3,500여 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낳았다.  지금 이곳에는 9/11 메모리얼 & 뮤지엄이 자리하고 있다. 그 안에는 WTC의 마지막 기둥과 파편, 당시 희생자들이 지나갔을 계단의 일부와 건물의 한 면 등이 테러의 상흔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참사의 흔적인 먼지가루들이 시간이 멈춘 듯 보존된 상점의 옷 위에 여전히 가라앉아 있다.  9/11 메모리얼 & 뮤지엄 안에는, 카메라에 담을 수 없게 된 구역이 있다. 당시 사건을 재현한 역사관이다. 이곳에서는 아픔을 세세히 기억하고 명징히 드러내 밝힌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직접 느낄 수 있다.  9/11 사건이 터진 8시부터 분단위로 세계무역센터의 상황, 대통령 및 정부 대응, 경찰 대응, 소방관 대응 등 전과정이 디테일하고도 일목요연하게 전시되어 있다. 그날의 언론보도, 뉴스 상황, 주변인들의 반응 등의 영상들은 우리가 바로 그 날에 들어간 듯 생생하게 녹화되었다.  유치원에 참여 중이던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사건 소식을 접하고 급히 자리를 뜨는 모습부터, 일사천리로 대응이 진행되는 과정과 뉴욕 및 주변 도시 각지에서 경찰과 소방관, 응급 의료진들이 모여든 지도까지. 뿐만 아니라, 신고가 들어온 시각과 당시 전화로 신고하고 대응하는 음성 녹음도 그대로 들을 수 있다. 벽에 설치된 공중전화를 들면 관람자가 직접 그 다급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항공기가 첫번째 건물을 통과해 폭파되고, 두번째 항공기가 두번째 건물을 통과한 뒤,  각 건물의 몇번째 층 희생자가 전화를 걸었는지, 또 그 목소리도 확인 가능하며, 건물이 무너진 뒤 희생자를 구하기 위해 애썼던 혹은 목숨을 잃은 영웅들에 대한 기록도 남아 있다. 무엇보다 충격을 금치 못하는 생존자들의 증언도 하나도 남김없이 주워 담았다.  다른 한편으로 납치된 항공기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영상, 음성 등 모든 자료들이 총동원되었다. 테러범이 공항 출입을 하는 CCTV 영상 기록. 테러범들이 조종실을 침입하여 나누던 대화도 녹음된 음성과 번역된 문자로 귀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일촉즉발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채로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메세지나 음성 녹음을 남긴 항공기 안의 희생자들의 목소리와 문자 내용도 확인하게 된다.  “비행기에 조금 문제가 생겼어. 별 일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사랑해. 다른 가족들에게도 사랑한다고 전해 줘.”  “비행기가 납치된 것 같아. 여보, 사랑해. 아들에게도 사랑한다고 전해 줘.” 그날의 행적은 사소한 것까지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남겨 놓았다. 불탄 소방차, 희생자의 구두, 가방 등. 몇 시 몇 분 몇 초라는 시각까지도. 당시 희생자들의 가족들을 위한 멘탈 치료도 이루어진 걸 볼 수 있다.  이것으로 끝일까. 기억은 왜 필요한가. 그것은 두번 다시 동일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쩌면 그 다음일 것이다.  9/11 메모리얼 & 뮤지엄은 당시 사건 기록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 후 정부가 어떻게 사건을 규명하고, 무너진 세계무역센터를 다시 일으켜 세웠는지, 또 기업들은 어떻게 사회적 재난에 기부로 마음을 보탰는지 보게 된다. 사건의 원인 규명 과정, 재건 과정, 새로이 지어가는 세계무역센터의 타임랩스 영상.  지나는 길 한쪽 벽에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금언이 적혀 있다.  “시간의 기억에서 당신을 지우는 날은 없을 것이다. - 베르길리우스” 이 문구는 묘하게 기시감을 준다. 바로 얼마 전 10주기를 맞이한 세월호 참사 기억식, 4월 16일에 이와 비슷한 문구를 똑같이 되새겨 본 적이 있다.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미국의 재난에 대응하는 방법, 기억하는 방법을 보자니 세월호 참사의 기억관 및 기억교실이 사뭇 안타깝게 느껴진다. 당시의 상황 및 원인 규명, 정부, 해경, 언론의 대응, 희생자들의 유품이나 가족들의 아픔 등. 우리는 그 어떤 것도 명확하게 드러난 게 없고, 드러내려 하지 않고, 심지어 대통령이 그 시각 무엇을 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국가 재난 사건에서, 단지 책임자를 찾자는 것 이상으로,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소소하다 못해 참담하다. 희생자들의 가족들만이 세월호 참사 기록단을 만들고 운영하며, 그 날을 기억하려 애쓴다. 국가도, 기업도, 사회도 그 기억을 되새기기 위해 과연 얼마나 노력했을까. 몇 해 뒤 일어난 이태원 참사 역시, 그 연장선 상에서 변화가 없음을 보여준다. 아직도 참사의 대응에 대한 논란만 존재할 뿐이다. (연합뉴스_ 장보인 기자_"기동대 있었다면 이태원참사 피해 최소화" 경찰들 진술) 심지어 2024년 6월 문을 연 이태원 참사 임시 추모 공간 ‘별들의 집’ 도 11월에는 재개발로 인해 자리를 비워야 한다. (뉴시스 홍연우 기자 ‘시한부’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 석달 후엔 어디로 가야하나) 사회적 재난의 기억들이, 매 순간 잊혀지고 반복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망각으로 가는 순간,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어떻게 예방 혹은 재건해야 할지, 여전히 망연자실한 상태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가슴 아픈 기억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고 사회적으로 함께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월호 참사 가족단이 이룩한 것들도 우리는 아직 잘 모르고 있다. 그들이 있었기에 기억 교실이 남아 있고, 이태원 참사 희생자 가족을 위로할 수 있고, 법률들을 만들 수 있었다. 그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재건했는지 더불어 기록하고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매번 일어나는 재난에 늘 같은 방식으로 흐지부지 지나쳐 버린다면, 우린 그 참사에서 배운 것이 하나도 없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그 희생자가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지점에서 9/11 메모리얼과 뮤지엄의 기억 재생 방법과 그 대처는 우리의 아픔과 참사를 기록하는 방법에 대한 힌트를 줄지도 모른다. 반복되어선 안되는 역사는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말처럼 결코 시간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서는 안된다.  
4.16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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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어떻게 ‘참사 공화국’이 되었나
대한민국은 어떻게 ‘참사 공화국’이 되었나 참사들로 보는 국가와 정부의 역할과 재난에 대한 접근법 이야기 대한민국, ‘참사 공화국’ 작금의 대한민국은 사실 ‘참사 공화국’ 이라고 해야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그럴 정도로 참사가 많이 일어나는 나라이고, 국가와 정부는 그럴 때마다 그 현장에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요즘 들어 크고작은 사고와 사건이 줄지어 일어나고, ‘참사’라고 불러야 하는 규모의 재난들 또한 적지않게 일어나고 있다. 수많은 참사가 일어났다. 문민정부 시절 일어난 서해 페리호 참사, 박근혜 정부 당시 일어난 세월호 참사, 문재인 정부 시절 일어난 광주 참사, 그리고 작금의 윤석열 정부 들어 일어난 10.29 이태원 참사와 바로 직전에 일어난 화성 참사까지,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참사’로 얼룩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하인리히 법칙’ 이라는 법칙이 있다. ‘1:29:300의 법칙’ 이라고도 불리는데, 1개의 참사가 일어나기 이전에 29건의 큰 사고가 일어나고, 그 이전에 300건의 작은 사고가 발생한다는, 역으로 이야기하면 300개의 작은 사고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29건의 큰 사고가 일어나고, 그것을 무시하면 결국 큰 참사로 이어진다는 법칙이다. 이 하인리히 법칙은 2014년 4월 16일, 304명이 목숨을 잃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고 크고 작은 해운사고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음을 입증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1993년 일어난 서해 페리호 사건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다시 수많은 해운사고들을 방조한, 그리고 규제를 완화한 결과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형 해운사고는 대개 20년을 주기로 일어난다는, ‘대형 해운사고 20년 주기의 법칙’까지 더해져 대한민국 정부와 국가의 부재를 규탄하는 수많은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1993년 서해 페리호 참사와 2014년 세월호 참사는 20년 조금 넘는 간격을 두고 벌어졌기 때문에, 그리고 참사의 양상이 비슷했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는 서해 페리호 참사의 반복이라는 언급들도 등장했다. 참사에 무심한 국가와 정부 그리고 세월호 참사 이후, 또 수많은 참사들이 일어났다. 2021년 광주광역시 학동에서 철거중인 건물이 쓰러져 버스를 덮친 광주 참사, 2022년 159명이 목숨을 잃은 10.29 이태원 참사, 그리고 지난 6월 24일 화성의 배터리 제조 공장 아리셀에서 일어난 화재가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성 참사까지,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 참사의 시계는 빠르게 돌아갔다. 특히 2020년대 들어 참사라고 할 수 있는 사건만 3건이 일어났다. 심지어 이번 화성 참사는 재난 발생 이틀 전인 22일에도 해당 공장에서 리튬 배터리가 폭발해 화재가 발생했으나, 사측에서 노동자들을 상대로 입단속을 시켰다는 정황이 나왔다. 그 말은 한국 사회와 국가, 정부가 크고 작은 사고와 사건들에 대해 무심하고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각기 참사들은 한국 사회의 치부를 찔렀다. 먼저 세월호 참사가 정부 주도의 해운산업에 대한 규제완화와 불법에 대한 눈감아주기, 사고 상황에서 국가의 부재를 폭로했다면, 광주 참사는 철거와 재개발에서 일어나는 불법과 부실공사 등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 그리고 이태원 참사가 컨트롤 타워의 부재, 치안의 부재, 공권력의 사유화 등을 알렸고, 이번에 일어난 화성 참사는 재난이 예상됨에도 무시한 것, 사고 상황에서 매뉴얼의 부재와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얼마나 열악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일하는지에 대해 폭로했다. 이러한 참사가 전하는 메시지들을 모아보면, 재난 상황에서 컨트롤 타워의 부재와 불법에 대한 눈감아주기, 규제 완화 등으로 종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한번 종합해보면 국가의 부재라고 할 수 있는 ‘부작위성(unterlassung)’, 그리고 재난의 책임을 국가나 정부가 지지 않는다는 ‘외부화(out-sourcing)’ 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부작위성은 재난이 일어날 수 있거나, 재난이 일어난 상황에서 국가가 책임을 방조하거나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세월호 참사에서 국가는 이미 사고 위험성이 있는 상황에서 불량 선박인 세월호의 출항을 허가했고, 재난 상황에서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당시 재난의 컨트롤 타워인 박근혜 정부는 7시간 동안 부재했고,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기로 했다”는 말로 책임을 해경에게 전가했다. 그리고 이태원 참사에서 공권력은 그 날 재난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이태원 대신 대통령실이 있는 용산에 대부분이 배치되어 있었고, 윤석열 정부와 경찰은 책임을 애써 피해갔다.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책임자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외부화는 세월호 참사 당시의 박근혜 정부와 이태원 참사 당시의 윤석열 정부가 보인 모습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바로 ‘가만히 있으라’ 라는 말로 말이다. 재난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 정부는 두 참사 모두에서 존재하지 않았고, 기껏해야 뒷수습을 하는 모양새만 보였다. 박근혜 정부는 해경에게, 윤석열 정부는 재난의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사실상 그 아젠다에서 도망을 쳤다. 사령탑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국가 공권력은 우왕좌왕하거나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기 바빴고, 그 책임은 재난, 즉 참사로 이어졌다. 둘 다, 아니 사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참사들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고,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재난들이었다. 국가와 정부가 했어야 할 일 - 진상 규명 규제를 강화하고, 불법을 눈감아주지 않고, 적절하게 치안을 배치하고, 국가가 적극적이었다면, 그리고 재난 예방에 대한 교육이 충실히 이루어지고 거기서 교훈을 얻어 다른 참사를 방지하려는 노력을 했다면 이러한 참사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대한민국은 ‘참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았을수도 있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이후에 사후약방문이나마 이루어진 재난은 기껏해야 광주 참사정도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광주 참사도 사후약방문이라도 하라는 사회적 목소리 때문에 겨우 조사가 이루어진 것이고,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는 사후약방문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정조사는 유명무실했고 겨우 제정된 특별법은 시행령으로 누더기가 되었다. 이태원 참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심지어 아직도 특조위가 제대로 구성되지 않았다. 참사의 진상 규명을 두고, 참사와 그 사회적 여파를 축소하려는 이들은 주로 ‘사고-보상 프레임’을 사용한다. 사고-보상 프레임은 “사고가 일어났고, 피해자들은 보상을 바란다” 라고 재난을 축소해버린다. 이 프레임은 참사가 “왜 일어났는가?”와 “어떻게 일어났는가?” 라는 말을 봉쇄시켜 버린다. 국가와 정부의 실패를 개인적이고 지엽적인 부분으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예컨대 세월호 참사에서는 “죽은 자식을 팔아먹는다” 나 “이미 보상을 받아놓고 더 달라고 한다”며 참사의 피해자들과 유가족을 폄하했고, 논쟁의 여지를 봉쇄해 버렸다. 이태원 참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놀러 갔다 죽었는데 국가와 정부 탓을 한다”(이 말은 세월호 참사부터 유구하게 쓰인 말이다) 는 말로 재난을 일축하려고 했다. 참사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그렇기 때문에 ‘사고-보상 프레임’을 넘어 ‘사건-규명 프레임’으로 재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고, 재난이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환경으로 사건 현장을 만든 것을 넘어 사회의 문제점들이 모여서 터진 ‘총체적 사건’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박명림은 “사태의 궁극적인 진실을 남김없이 ‘알 권리’, 즉 진실권은 정의와 인간 존엄을 위한 기본 권리이며, 치료를 받을 권리 또한 사태의 진실을 정의롭게 판정할 수 있는 진실권과 분리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 사회는 참사로 이름붙여진 사건들에서 제대로 ‘알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고, 사회 구성원들은 공통의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었다. 게다가 정부는 공권력을 이용해 자신과 다른 성향을 가진 사회 구성원들을 ‘적’으로 규정하는, ‘전쟁정치(war politics)’를 사용했다. 사회학자 김동춘 교수가 제안한 전쟁정치 개념은, 국가가 자신에게 반대하는 자국민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마치 적을 다루듯이 하는 것을 일컫는데, 크게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에서 박근혜 정부와 윤석열 정부는 유가족들과 그에 연대하는 이들을 ‘적’으로 규정, 치안 공권력을 통해 마치 ‘토벌’하려고 했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에게 배상 대신 그들을 경찰로 포위하고 물대포와 최루액을 퍼부었고, 윤석열 정부도 이태원 참사의 유가족들을 온전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시민(citoyen)’ 으로 대하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의 분향소에는 늘 허리춤에 최루액을 꼽은 경찰들이 서성였고, 늘 유가족들과 분향소에 오는 사람들을 예의주시하곤 했다. 마치 ‘언제 범죄를 저질러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들’ 처럼 대한 것이다. 책임전가의 결과는 심판 특히 이태원 참사라는 전적이 있는 윤석열 정부는 이번에 일어난 화성 참사로 인해 다시 한 번 도마에 오를 것이다. 아니 올라야만 한다. 그리고 한국의 노동 정책, 산업안전 및 보건 정책, 이주민 정책, 규제 정책 등을 질타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질타를 통해 성역 없는 비판을 받아야만 하고 책임을 져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진상 규명을 통해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공통의 트라우마를 해결할 방책을 세워야 한다. 이는 윤석열 정부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숙제이고, 빠르게 돌아가는 참사의 시계를 멈출, 적어도 느리게 돌려놓을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다시 ‘사고-보상 프레임’과 ‘전쟁정치’로 참사의 피해자들과 사회 구성원들을 무책임하게 대한다면, 또 ‘조금 있으면 조용해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이 참사를 대한다면, 한국 사회는 또다시 언제 어디서 일어날 지 모르는 참사에 노출될 것이고, 국민들은 국가와 정부를 더욱 더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희생된 참사 앞에 부도덕하고 불성실하게 나선다면, 그리고 또다시 편가르기를 한다면 그것은 국가와 정부 차원에서 저지르는 ‘내란음모’ 라고 밖에 볼 수 없고, 구성원들이 ‘저항권’을 언제든지 발동해도 이상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참사 공화국’이라는 오명은 한국 사회의 평판을 저하시키고, 그러한 나라의 구성원이라는 것은 용납하기 쉽지 않은 모욕이기 때문이다. 국가와 정부의 실정 때문에 구성원들이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은 그 자체로 ‘내란’ 이다. 책임전가의 결과는 정권 심판이 될 것이다.
국가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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