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낙검자 수용소 ‘몽키하우스’, 민주주의에서 빗겨 선 그 곳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김대용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공동대표 인터뷰   낙검자 수용소를 낮춰 부르는 말 '몽키하우스'는 미군들이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 단어에는 동양인에 대한 비하의 의미가 섞여있고, 이후 한국인들이 함께 사용했는데 여기엔 차벌과 낙인이 담겨 있지요. '성병관리소'는 공식 명칭이지만 이 건물을 통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맥락이 가려져 있어요. 그래서 성병관리소 철거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 곳을 보건소처럼 여겨 그렇게 주장합니다. 보건소 건물이라면 굳이 보존할 이유가 없다고요. 실제 성병관리소는 강제 감금시설로 개인적으로는 '수용'보다는 '감금'이 진실에 가깝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  '낙검자 수용소' 용어 사용에 대한 김대용 공동대표의 말  소요산 자락에 위치한 낙검자 수용소. 감금된 한국 여성들이 낙검자 수용소(성병관리소) 쇠창살 너머로 구조를 요청하는 모습이 원숭이 같다고 하여 미군들은 이곳을 '몽키하우스'라고 불렀다.   가만히 서있어도 절로 땀이 흐르는 무더운 여름이었습니다. 벌써 1년 하고도 반이 지난 작년 여름, 피스모모 사무국과 해외에서 방문한 활동가 몇몇이 동두천을 방문했습니다. 김대용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공동대표의 안내로 미군기지의 흔적들을 또렷하게 마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미군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된 기지촌 여성 노동자 윤금이씨가 살던 집, 그리고 그 옆에 들어선 한미우호의 광장이라는 역설과, 여전히 거대한 드론이 뜨고 내리는 미군 기지의 담벼락으로 뚝뚝 끊겨버린 땅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번듯한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 뒤뜰에 숨바꼭질하듯 자리한 낙검자 수용소(일명 몽키하우스)의 모습도요. 그리고 지금, 낙검자 수용소는 철거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더슬래시는 근 30년간 방치되어있던 낙검자 수용소를 철거하고 호텔을 세우겠다는 동두천시의 일방적인 계획에 맞서 100일이 넘게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김대용 공동대표의 이야기를 “캠프페이지” 기획으로 담습니다.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은 경기 북부에서 지속되고 있는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 기지촌 역사와 여성들의 인권침해 역사를 기록하고 보관하고자 2017년에 시작됐습니다. 김대용 공동대표는 2015년에 낙검자 수용소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 최희신 공동대표와 함께 낙검자 수용소의 존재와 기지촌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국가폭력의 실태를 알리고자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1965년부터 미국은 기지촌 여성에게 유행한 성병을 ‘관리 및 정화’하도록 한국 정부에 요청했는데요. 이에 한국정부는 기지촌 주변에 ‘성병관리소(낙검자 수용소)’를 설립했습니다. 당시 미군 기지촌 여성들은 강제로 실시된 성병 검사에서 탈락하거나, 검진을 기피하거나, 성병에 걸린 미군에게 지목되면 '낙검자'로 분류되어 완치될 때까지 낙검자 수용소에 감금되었습니다. 이 여성들에게는 미군 남성을 표준으로 한, 여성 기준치의 10배가 넘는 양의 페니실린이 강제로 투약되기도 했다고 알려집니다.  “동두천과 의정부, 파주 등 경기도만해도 여섯 곳이 있었어요. 부산이랑 군산에도 있었다고 하고요. 그러다가 쥐도 새도 없이 사라졌죠. ‘몽키하우스’가 유일하게 남은 곳이에요.”      동두천 낙검자 수용소는 1973년에 세워져 1996년에 폐쇄된 채 방치되었습니다. 소요산 등산로를 곁에 두고 있지만, 소요산이 개발되고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이 들어오기 전까지 소요산 주변 상가의 상인들이나 주민들도 그 존재를 알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동두천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대부분 몰랐죠.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난 곳에 위치해 있으니까요. 거기에 잡혀 온 여성들의 두려움은 상상하기도 어렵죠. 주변에 오래 거주한 주민들만 ‘양색시’들이 벌거벗고 건물 밖으로 뛰어내리는 모습을 봤다고들 해요.” 동두천시가 애써 외면하고자 했던 낙검자 수용소의 존재는 2023년 2월, 동두천시가 급하게 마련한 예산으로 낙검자 수용소 부지를 사들이면서 뜨거운 감자가 되었습니다. 학교법인 신흥학원의 소유였던 이 부지는 휴양지로 설정되었던 탓에 20년 넘게 방치되었다가, 공시지가의 2배인 29억원에 매입되었는데요. 시유지로 매입하는 과정에서 절차상의 문제가 여럿 발견되었습니다. 지방재정이 20억원 이상 투자되는 사업은 예산 편성 전에 투자심사를 거쳐야 합니다. 보통 1년 이상 소요되고, 천재지변의 경우가 아니라면 다음 회계연도에 시행하는 것이 원칙입니다.1 하지만, 동두천시의회는 2023년 1월 임시의회에서 추가경정예산을 승인했고, 바로 다음 달에 낙검자 수용소 부지를 매입했습니다.2 투자심사의 경우 이해당사자가 심사에 참여하지 않아야 하는데,3 ‘옛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에 따르면 신흥학교 재단 교수 2명이 해당 투자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에 더해 지난 9월 6일에는 철거 예산(2억2000만 원)을 추가경정예산에 편성해 통과시켰습니다.  “그 때부터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한 거예요. 새벽에 그럴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4”  동두천시는 2023년 상반기에만 신흥학원 소유의 부지 세 곳을 총 157억원을 들여 매입하기로 결정했는데, 전·현직 의원 중 신흥학원 출신이 다수 있어 동두천시와 신흥학원의 특수관계가 의심되기도 합니다.5 이러한 맥락에서 김대용 공동대표는 낙검자 수용소를 두고 빗겨 난 결정들을 공정하게 되돌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낙검자 수용소 부지 매입 과정에서 부정은 없었는지 감사원이 조사해 달라는 취지의 공익감사 청구 서명 운동을 진행하면서요.6 낙검자 수용소 철거 여부를 놓고 실시된 시민여론조사 또한 편향된 것으로 밝혀졌는데요. 제대로 된 공론장이나 시민들이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소통도 시장과의 면담도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동두천시는 시민들의 의견을 힘으로 눌러왔어요. 주민들 안에도 권력에 승복하는 문화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고요. 도리어 시의 사업을 찬성하는 그룹들이 철거를 반대하는 시민들을 험담하고 있는 실정이에요.”   그림: 이동수    김대용 공동대표는 낙검자 수용소의 무조건 보존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지역의 개발을 위해 불편한 기억을 일방적으로 제거하는 것보다 그러한 불편함이 승화되는 민주적인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요. 오랜 기간 침묵으로 대체되었던 미군 위안부 여성들의 피해를 알리고, 그에 동조하며 직간접적으로 경제적인 이득을 취한 공동체와의 관계가 회복되며, 전쟁을 통해 만들어진 왜곡된 사회적 시선이 그대로 전시되는 그런 공간이 필요한 것이라고요.   “이걸 철거하냐 보존하냐 하는 과정에서 서로 숙의하는 과정, 시민들이 참여하는 과정이 지역 사회 민주주의를 위해서 굉장히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두천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주민들이 참여와 관심을 끌어내는 과정들을 통해 지역의 비전을 설정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고요. 보존과 개발이 같이 잘 이어질 수 있는 좋은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요.”           <주>   1)투자심사는 다음 회계연도부터 시행하는 투자사업을 대상으로 한다. 다만, 긴급히 국가시책사업을 추진하거나 연도 중에 사업을 시행하여야 할 특별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당해 회계연도 사업도 포함된다. 여기에는 천재지변에 의한 시설물 신축, 국비지원 사업으로 예산안 심의과정에 반영되거나, 지원대상이 당해 연도에 정해져 추진하는 사업 또는 이에 준하는 경우로 제한한다. 출처: 행정안전부(2024). 지방재정투자사업 심사 및 타당성 조사 매뉴얼. 16쪽 2)동두천시는 2022년 12월 13일부터 2023년 2월 6일까지, 감정평가 - 토지매입계획 내부승인 - 예산계획 수립 - 공유재산심의위원회 결정 - 투자심사위원회 결정 - 시의회 승인 – 매입 결정 과정을 석달 만에 벼락 치듯이 완료되었다. 출처: 양상현(2024년 10월 21일). 동두천 성병관리소 부지 매입 논란, 신흥학원 이해관계자 개입으로 법적 무효. 내외경제TV. https://www.nbntv.co.kr/news/a... 3)지방재정법 제37조의3 제6항과 제7항에서 지방자치단체의 투자심사를 할 때 ‘위원이 속한 기관이 해당 심의 대상 안건과 관련하여 용역·자문을 수행하는 등 이해관계가 있는 경우’에는 ‘해당 안건의 심의’에서 제척과 기피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출처: 상동 4)10월 13일 새벽 4시에 동두천시가 포크레인으로 몽키하우스를 기습 철거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활동가들과 시민들에 의해 저지되었다. 출처: 민성진(2024년 10월14일). '성병 관리소' 새벽 기습…시민들 "동두천 시장 나와라". 세상을바꾸는시민언론민들레. https://www.mindlenews.com/new... 5)동두천시는 노인회관과 장애인회관을 짓겠다며 지난 1월 생연동과 보산동에 걸쳐 있는 신흥학원 소유 신흥유치원 부지(5필지 3,980㎡)를 42억8천만원에 매입했다. 2월에는 소요산을 관광지로 개발하겠다며 신흥학원 소유의 성병관리소 부지(상봉암동 3필지 6,406.8㎡)를 29억원에 매입했다. 그런데 동두천시는 5월26일 제3회 공유재산심의위원회를 열고 생연동 523-1 외 7필지 토지(6,131㎡)와 건물 4동(2,790.68㎡)을 86억원(공시지가의 2배)에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출처: 유종규(2023년 5월 26일).‘동두천시-신흥학원 특수관계?’ 86억에 또 부동산 매입. 경기북부시민신문.http://simin24.com/?doc=news/r...  6)김연정(2024년 11월6일). ‘흉가체험 명소’ 앞 5성급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진실탐사그룹셜록. https://campaigns.do/discussio...         /가연피스모모에서 평화와 저널리즘의 교차점을 모색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갈등전환, 평화저널리즘, 소통을 키워드로 저널리즘을 통한 평화세우기의 비전을 키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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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라면 까? - 12.3 비상계엄령이 원했던 생각하지 않는 군인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살면서 이 말 한 번쯤 안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요? 농담으로든 진담으로든,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많은 이들이 이 말을 듣고, 또 하곤 합니다. 좀 더 길게 풀어보자면 이런 식이죠. “하라면 하는 거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말이 많은 사람들은 욕을 먹게 됩니다. 방해되니까요. 일을 느리게 만드니까요. 자꾸만 딴지를 거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말이 많다는 건 곧 생각이 많다는 겁니다. 결국 저 따옴표 안의 말들은 “생각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해라”라는 뜻인 거죠. 우리는 이것을 ‘상명하복’으로 여기곤 합니다.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 군대의 작동 원리죠.  이를 증명하듯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12.3 내란 사태 당시의 방첩사 활동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위기 상황에 군인들은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강하게 생각한다.” 여 전 사령관은 거듭 강조합니다. “위기 상황이니까 1분, 2분, 10분, 20분 사이에 파바박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이 진짜 많다. 저희는 내려온 명령을 ‘맞나 틀리나’ 따지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여 전 사령관이 이끌던 방첩사의 중간 지휘관과 법무장교들은 달랐죠. 정성우 방첩사 1처장은 방첩사 요원들의 선관위 진입 및 서버 복사·압수 명령을 실행하기에 앞서 이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법무관들의 의견을 구했습니다. 7명의 영·위관급 법무관들이 절차적 위법성 문제를 제기하며 강력한 반대 의견을 제시했고, 이를 들은 정 처장은 현장의 부대원들에게 “절대 건물에 들어가지 말고 원거리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짧은 회의 덕분에 선관위 서버는 불법 유출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군인이 그러진 못했습니다. 조선일보가 취재한 707 특수임무단 및 1공수여단 부대원들의 인터뷰에는 하루아침에 계엄군이 되어버린 이들의 당혹감과 혼란, 두려움, 좌절감, 배신감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국회 구조도 파악하지 못한 채 착륙했고, 국회의원을 다 끌어내라는 명령을 받고 공황 상태에 빠졌다. … 명령이라 일단 따랐지만, 무장하지도 않은 민간인을 상대로 707이 이사카(샷건)까지 들고 쳐들어가는 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일부러 뛰지도않고 걸어 다녔다. (707 특임단 소속 A) 주변에서 ‘우리가 비무장 민간인을 상대하려고 이렇게 고생했느냐’ ‘군인을 그만두고 싶다’는 반응들이 나온다. (707 특임단 소속 B) 국회 보좌진이 군인들에게 “불법을 저지르지 말라” “국회에 진입하면 나중에 처벌될 것”이라고 했다. 비무장 시민을 마주한 부대원 일부는 ‘패닉’에 빠졌다. … 부대원들이 시민들에게 “제발 가까이 오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 민간인 상대로 작전을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당황했다. (1공수여단 소속 C) 버스에 탈 때까지도 도착지를 몰랐는데, 내리고 보니 국회였을 때 상부에 배신감이 들었다. … 국민들께 너무 죄송하고, 저희를 보고 놀란 시민들의 얼굴과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 실제 전쟁 상황이었으면 우리는 다 죽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우릴 그냥 쓰고 버리는 소모품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 (1공수여단 소속 D) 이들 계엄군을 이송하는 데 동원된 육군 특수작전항공단에서도 “조종사들이 자신들의 임무 수행 결과를 뉴스를 통해 확인하며 자괴감이 많이 들었다고 호소했다”라는 반응이 나왔죠.   이런 가운데 김현태 육군 특수전사령부 707 특수임무단장은 12월 9일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국민 여러분께 무거운 마음으로 깊이 사죄드린다”라면서, “부대원들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이용당한 가장 안타까운 피해자”라고 말했습니다. 김 단장은 자신이 무능하고 무책임한 지휘관이라며, 부대원들을 사지로 몰았다며, 부대원들이 많이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있다며 부대원들을 용서해달라고 간곡하게 청했습니다.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질 테니, 자신이 모든 죄를 짊어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요. 미워하고 원망하더라도 707 부대와 부대원들을 버리진 말아달라고요. 이상현 1공수여단장 역시 장병들이 불안해한다는 보고를 받았다면서 김 단장과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자신은 현장 지휘관으로서 책임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지만, 국민들은 장병들을 많이 위로하고 격려해달라고요. 비난하지 말고 끌어안아 달라고요.   이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부하들은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지휘관을 따른 죄뿐이다. 책임은 내게 있다.’ 이는 한편으로 지휘관으로서 응당 보여야 할 모습이겠지만, 그렇다고 정말 모든 책임이 그들에게서 그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아마 그럴 순 없을 겁니다. 달리 보면 그 지휘관들 역시 거대한 ‘상명하복’ 연쇄 고리의 일부였으니까요. 면죄부를 주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잘못된 판단으로 부대원들까지 위험에 처하게 만든 지휘관들은 마땅한 책임을 져야겠죠. 그렇지만 지휘관 몇 명을 처벌하는 걸로 끝내거나, 온 군대와 모든 군인을 악마화하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기 어려울 겁니다.  방첩사의 요원들이 적극적으로 명령의 ‘부당성’을 판단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세월호 유가족 사찰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대비 계엄령 검토가 문제가 되어 이루어진 ‘기무사 해체’로부터 비롯합니다. “당시 760명의 간부가 조직에서 쫓겨난 역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방첩사 요원들 사이엔 ‘법적 테두리 내에서 임무를 수행한다’는 조직문화가 자리 잡았다”, “두 번 다시 과오를 범하지 말자는 부대원들의 결기가 상당하다”라는 한 군 관계자의 말에 실마리가 보입니다. 이들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죠. 생각하지 않고 따른 명령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현 정부가 원했던 것이 ‘생각하지 않는’ 군인이었다는 점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이미 지난해 군인들이 ‘부당한 명령에 거부할 권한’과 관련한 정책을 폐기한 바 있죠. 문재인 정부 시기 만들어진 ‘군인복무기본정책서’에는 “상관의 명령이 위법한데도 불구하고 맹목적인 복종은 범죄”이며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됐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관련 내용을 모두 삭제했고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육군사관학교에서는 기무사 계엄문건 사태를 계기로 지난 정부에서 신설됐던 ‘헌법과 민주시민’ 수업을 올해 들어 없앤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민주사회에서의 민군관계, 헌법정신, 시민 불복종이나 운동에 있어서 군의 역할에 대해 가르쳤던 해당 수업은 ‘육사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군사법과 형법 등 법학 중심 수업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이 모든 게 일종의 예고편 혹은 복선이었다고 하면, 과한 해석일까요?  이번 내란 사태를 지켜보며, 아마 모든 군인은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는 것의 위험을 깊이 새겼을 겁니다. 이제는 방첩사뿐 아니라 707 특임대도, 1공수여단도, 다른 많은 부대들도 부당한 명령 앞에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겠죠. ‘몰라서 그랬다’라거나 ‘시키니 따랐을 뿐이다’라는 핑계도 더 이상 나올 수 없을 겁니다. 몰랐다는 이유로, 항명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되어버린 사태를 온 국민이 보았으니까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비상계엄 발표 직후, 전군 지휘관에게 관련 내용을 전파하며 “명령 불응시엔 항명죄가 된다”라고 언급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근거도 바로 그 항명죄에 있습니다. 군형법 제44조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사람은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이는 정당하지 않은 명령에 불복한 사람은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을 가능케 합니다. 실제로 대법원은 “군인이라도 위법한 명령에 대해선 복종할 의무가 없다”고 판시한 바 있죠. 정당한 명령인지 어떻게 아냐고요? 헌법과 법률,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양심을 준거로 삼아야겠죠. 너무 어려운 것 아니냐고요? 그러니 앞으로 더욱 강화해야죠. 전군을 대상으로 한 헌법과 법률 교육, 민주시민교육, 군인 기본권 교육, 그 밖에 진짜 ‘제복 입은 시민’을 키워낼 여러 방안까지요.  이것은 비단 군인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긴박했던 12월 3일 밤의 대치 상태를 둘러싸고 떠도는 많은 말들에서, 시민이기보다 군인인 사람들의 반응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군인에게 총기는 목숨인데 그 총기를 잡는 것은 총기 탈취이고, 이는 죽여달라는 행위나 다름없다. 저러다 죽어도 할 말 없다’라고 단언하는 댓글들을 보며 민간인과 군인, 전시와 평시도 구분하지 않고 “군복을 입지 않은 군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게 됐거든요. ‘제복 입은 시민’이 가능하기 위해선, 시민이 먼저 ‘군복만 벗은 군인’이 아니어야만 합니다.  바라건대, 이번 내란 사태는 결국 ‘생각하지 않는’ 상명하복의 연쇄 고리를 끊어낼 계기가 될 겁니다. 부당한 명령을 생각 없이 따른 이들에게 책임을 묻고, 위험을 무릅쓰고 부당한 명령에 불복한 이들을 보호하고, 그럼으로써 앞으로도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요. 그러다 보면 군인에게도 더 ‘안전한’ 군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군인도 그럴 수 있는 사회라면, 시민들도 그럴 수 있을 테고요. 그렇게 만들 의무가 이제 우리 시민들에게 있습니다.   <참고문헌> 「군형법」 고유찬·장윤. “"대북 작전으로 알고 나섰는데... 내려보니 국회였다"” (조선일보, 2024.12.06.) 김경준. “"계엄군 선관위 투입, 방첩사 법무장교 7명 모두 반대했다"” (한국일보, 2024.12.10.) 김명진. “'비상계엄' 지휘 김용현, 軍지휘관들에 "명령불응시 항명죄"” (조선일보, 2024.12.05.) 문재연. “육사, 올해부터 계엄에 대해 가르쳤던 '헌법과 민주시민' 수업 없앴다” (한국일보, 2024.12.10.)연합뉴스TV. “[특보/생중계] 김현태 특전사 제707 특수임무단 단장 기자회견|"707은 김용현에게 이용당한 피해자"” (2024.12.09.) 우태경. “"위법한 명령에 복종은 범죄"라 했던 국방부, 정권 바뀌니 내용 삭제” (한국일보. 2023.09.13.)윤예솔. “특수작전항공단 “영문도 모른 채 계엄군 이송, 자괴감”” (국민일보, 2024.12.09.) 차장희. “상관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계엄군, 처벌 대상?...대법원 판례 보니” (매일경제, 2024.12.07.) 최서인·양수민. “1공수여단장 "장병들 불안해한다, 국민이 안아달라"” (중앙일보, 2024.12.07.) 홍제표. “707단장 "우리는 김용현에게 이용당한 피해자"(종합)” (CBS노컷뉴스, 2024.12.09.) 홍지인·김정진. “여인형 "맞든 틀리든 군인은 명령 따라야…체포명단 기억안나"” (연합뉴스, 2024.12.07.)       /김엘림언론정보학과 북한학에 발을 담그고 미디어, 사회, 젠더, 통일, 평화 같은 것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평화를 더 배워보겠다며 시작한 국제정치학 공부 중에 전쟁과 젠더의 교차에 눈길이 머무르면서, 6.25 전쟁기 여성의 전쟁 경험을 연구했다. 피스모모 평화페미니즘 연구소와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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