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사채왕이 아니라 ‘고소왕’이라 불러야겠습니다
이제 그 남자를 새 별명으로 불러야겠습니다. 사채왕이 아니라 ‘고소왕’으로. 김상욱과 그 일당 김재민 전 무궁화신탁 대리는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 다섯 명을 모두 고소했습니다. 지난해 청구동새마을금고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의 발단이 된 김상욱 일당의 불법대출 사건. 약 2000개의 녹음파일과 문건들을 입수한 셜록은 지난 4월부터 20편의 기사로 사건의 전말을 밝혔습니다.(관련기사 : <새마을금고 뱅크런의 진실, ‘사채왕 리스트’에 있다>) 김상욱 일당은 ‘명의만 빌려주면 수천만 원을 주겠다’, ‘수백만 원씩 월세 수익을 보장하겠다’ 등 감언이설로 속여, 그들 명의로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수억 원의 대출을 내게 했습니다. 새마을금고 내부에선 전종남 당시 상무가 대출 실행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당연히(?) 그 돈은 명의자들의 통장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대출금은 김상욱 일당과 브로커들이 모두 뽑아가고, 명의자들에게는 한번 만져보지도 못한 수억 원의 빚만 남았습니다. “누가 피해자입니까? 저도 피해자입니다. 기자님, 누가 제 전화번호 알려줬습니까? 저는 1500억 원 불법 대출한 적도 없고요. 정확하게 어떤 라인을 타고 (연락을 해)왔는가 얘기를 해주세요.” ‘사채왕’ 김상욱은 반론을 요구하는 셜록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도 ‘피해자’라고. 전화를 끊어버린 그에게 재차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그는 “허위주장과 모함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강조하며, 만약 그들이 ‘아지트’처럼 쓰던 서울 신설동 카페 등으로 취재진이 찾아온다면 “건조물 침입 등으로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내가 피해자다’라는 말.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말입니다. 진짜 피해자들은 오히려 가족들이 알까봐, 자신도 공범으로 처벌받을까봐 전전긍긍 속앓이만 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수억 원의 빚더미만 남기고 인생을 박살내버린 주범은 오히려 자기가 피해자라고 합니다. 김상욱이 공범 김재민과 한 통화에서 그토록 칭찬하던 “검사 출신 고문변호사”는, 지난 4월 셜록의 보도가 시작되자 SNS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거액의 돈을 요구하던 공갈범의 거짓 진술만을 근거로 한 허위보도로, 형사고소, 민사소송 제기할 예정이고, 보도 내용의 사실여부에 관하여 상대방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고 사실인 양 퍼뜨리는 자격 없는 언론매체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검사 출신 고문변호사”는 정말 김상욱과 김재민을 대리해 셜록을 고소했습니다. 셜록 기자 다섯 명의 이름을 모두 고소장에 적어서. 셜록 기자들이 김상욱 일당에게 ▲개인정보보호법위반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명예훼손) ▲명예훼손 ▲모욕의 죄를 저질렀다고 줄줄이 늘어놨습니다. 새마을금고의 조사와, 경찰과 검찰의 수사와, 피해자들의 공통된 진술과, 무엇보다 범죄를 자백(?)한 김상욱 본인의 녹음파일 속 목소리가 모두 같은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오직 김상욱만은 자신이 피해자이고, 아무 죄가 없고, 억울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관련기사 : <“나는 무죄다” 사채왕 측, 법정서 20분간 억울함 호소>) 고소장을 접수했으니, 이제 경찰이 셜록 기자들을 괴롭혀줄 거라 기대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공권력을 이용한 사적 복수라. 영리하다고 할까요, 교활하다고 할까요. 김상욱이 고소장에 적어놓은 ‘명예훼손’이란 네 글자를 보니 참 기가 찹니다. 수많은 피해자들의 인생을 훼손하고, 시민의 상식을 훼손하고, 사회의 정의를 훼손한 자들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억울함을 주장하는 일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가소로운지. 애당초 그들에게, 훼손당할 명예나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들이 지금껏 무슨 명예로운 일을 했는지. 훼손될 명예조차 없는 이들이 명예훼손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네모난 동그라미’ 같은 형용모순입니다. 차라리 솔직히 말하는 건 어떨까요. 당신들이 당한 것은 명예훼손이 아니라 ‘범죄수익 훼손’이라고.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고, 금융기관을 속이고, 검은 돈을 주머니에 쓸어담는 짓을 더 이상 못 하게 된 것이 너무 아깝고 분하다고. 김상욱과 전종남 전 청구동새마을금고 상무 등은 지난 4월 셜록이 보도를 시작한 뒤 구속됐습니다. 그들의 여죄는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2024년 10월 경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창원 외 다른 피해 지역과 200억 원대 추가 불법대출 및 공범들을 밝혀냈다고 발표했습니다. 2022년 7월부터 2023년 3월까지 경남 창원과 경기 평택, 충남 당진 등 10여 곳에서 중고차 매매단지 등 106개 건물과 토지의 담보 가치를 부풀려 불법대출을 일으킨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경찰이 확인한 불법대출 933억 원 중 106억 원은 김상욱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전종남 전 상무는 고급 외제차 등 약 3억 40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아 챙겼다는 겁니다. 경찰은 나머지 대출금액도 명의를 제공한 피해자(경찰은 ‘허위 매수인’이라 표현했습니다)들에게 가지 않았음을 확인했습니다. 그 돈도 공범인 부동산 개발업자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셜록 기자들에게는 아직도 피해자들의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수사기관은 그들 역시 명의를 대여해주는 것으로 불법행위에 가담한 죄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빚은 빚대로 떠안고 벌은 벌대로 받게 된 그들은, 여전히 살 길을 찾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관련기사 : <“저 혼자 죽으란 말입니까”… ‘공범’이 된 사기피해자>) 그 와중에 김상욱은 ‘건강 악화’를 이유로 보석을 신청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그리고 “검사 출신 고문변호사”를 시켜, 언론사 셜록과 다섯 명의 셜록 기자들을 모두 고소했습니다. 예전에도 셜록을 고소하겠다고 으름장 놓는 사람들은 많았고 실제로 고소를 한 사람도 있었지만, 셜록의 모든 기자들을 한꺼번에 고소한 경우는 처음입니다. 지난 5월에 작성된 고소장을 10월에야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고소장에 줄줄이 적힌 기자들의 이름을 보며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영화 <내부자들>(2015년)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정치깡패 출신 공익제보자 안상구(이병헌)가 검사 우장훈(조승우)에게 묻는 말입니다. “정의? 대한민국에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 있기는 한가?” 셜록이 하는 일은 그 질문에 답하는 일입니다. 정의란 말이 좀 거창하다면, 보통 사람들에게는 ‘염치’나 ‘양심’, ‘선함’과 같은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그 마음. 옳은 것을 가까이 하고 그른 것을 물리치는 당연한 마음, 마땅히 사람답게 살려는 마음을 지키는 게 셜록의 일입니다.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프로젝트는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셜록은 바쁩니다. ‘바른 말’ 했다가 정신질환자로 몰려 해고된 신부 이야기(관련기사 : <‘정신질환’ 몰아서 신부 해고… 이것도 신의 뜻입니까>), ‘교수 엄마’가 만들어준 거짓 스펙으로 명문대에 입학한 가짜 대학생 이야기(관련기사 : <교수 엄마 덕에 ‘가짜스펙’… 고려대, 입학취소 안했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간이 녹아버린 스무 살 청년 이야기(관련기사 : <반도체 공장 취업한 고교생, 1년 만에 간이 녹았다>)로 셜록의 지면은 매일 뜨겁습니다. 고소 따위 신경 쓰지 말고, 월급 걱정도 하지 말고 셜록의 일을 더 오래, 더 잘 하라고 마음 모아주시는 분들 덕분입니다. 셜록의 친구(유료독자) ‘왓슨’. 셜록이 전하는 모든 이야기에는 셜록의 땀과 왓슨의 정성이 함께 녹아 있습니다. 또 셜록의 기사를 퍼뜨리며 함께 분노하고 감동하고 공감해준 수많은 시민들이 셜록이 가는 길을 든든히 떠받치고 있습니다. 영화 속 이병헌 배우가 이렇게 물었죠? 정의가 남아 있긴 하냐고. 저희는 압니다. 왓슨과 시민들이 셜록에게 보여준 그 ‘달달한 것’이 바로 정의입니다. 오늘도, 셜록은 셜록의 일을 합니다.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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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이 버린 목소리… “내가 불쌍해야 좋은 거지?”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19화]
너무 비참해서 기사에 넣지 못한 초등학교 6학년의 멘트가 있다.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프로젝트를 취재하던 지난 4월, 충북 청주시 유흥가에서 만난 열세 살 원복이(가명)의 이야기다. 당시 기사에서 밝힌 대로 원복이 부모님은 ‘사채왕’ 김상욱 일당에 속아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약 9억 원을 대출받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명의만 빌려줬다. 대출금 전부는 김상욱 일당이 가져갔으니까. 그 일로 원복이 부모님은 신용불량자가 됐다. 본 적도 만진 적도 없는 9억 원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학원에도 갈 수 없는 처지가 된 원복이는 부모님이 일하는 유흥주점 끄트머리에 설치된 작은 텐트에서 밤을 보낸다. 부모님이 일을 마치는 새벽에야 집에 돌아갈 수 있다.(관련기사 : 유흥주점 텐트에서 잠드는 아이.. “사채왕이 망친 삶”) 지난 4월 15일 새벽 2시, 여느 때처럼 원복이는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며 취재하는 나의 존재를 원복이는 알아차리고 말았다. “엄마, 저 아저씨 누구야? 왜 우리 뒤에서 따라오는 거야?”“서울에서 온 기자님이야. 엄마한테 취재할 게 있어서 왔어.” 원복이는 작게 엄마에게 말했다. “내가 저 기자님한테 불쌍하게 보여야 엄마한테 좋은 거지?” 당시 기사에 차마 넣을 수 없던 멘트와 원복이의 마음이 다시 생각난 건, 문해력이 의심되는 감사원의 짧은 통보문 때문이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4월부터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새마을금고의 불법·부실 대출과 피해자들의 삶을 다룬 기획이다. 특히 서울 청구동새마을금고 통폐합을 부른 ‘2023년 1500억 원대 불법대출’ 문제를 자세히 보도했다. 해당 불법대출의 규모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큰 것으로, 2023년 ‘뱅크런’ 사태의 시발점이기도 했다.(관련기사 : 새마을금고 뱅크런의 진실, ‘사채왕 리스트’에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 민생경제위원회와 시민단체 참여연대는 셜록 보도 직후인 지난 4월 23일, ‘행정안전부의 새마을금고 관리·감독 책임에 대한 감사를 촉구‘하는 공익감사 청구서를 감사원에 접수했다. 그로부터 약 3개월이 지난 7월 9일, 감사원은 “행정안전부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지 않고 종결 처리한다“는 취지의 통보문을 보내왔다. 한 대목은 이렇다. “행정안정부와 새마을금고중앙회는 상기감시시스템과 내부통제시스템을 회피하는 조직적·지능적 비위에 대해서는 2024년부터 종전에 비해 감사체계를 강화하여 대응하고 있습니다.” 2024년부터 새마을금고에 대한 감시 체계가 강화됐으니 감사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게 왜 엉뚱한 답변인지, 민변과 참여연대가 공익감사를 청구한 4월 23일로 돌아가 살펴보자.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은 그날 감사원 앞에서 연 기자회견을 통해 공익감사청구 이유를 밝혔다. “청구동새마을금고의 자산은 1800억 원입니다. 1500억 원이 불법 대출됐으면 사실상 자산의 거의 대부분을 사채왕(김상욱)에게 갖다 바친 것과 다름 없습니다. 이 와중에도 (새마을금고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가진 행정안전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청구동새마을금고의 불법대출은 2023년 6월 이전에 집중적으로 벌어졌다.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행정안전부는 그때 뭘 했는지, 혹시 직무유기는 없었는지 등을 살펴봐달라는 게 민변과 참여연대의 감사청구 취지다. 그런데 감사원은 “2024년부터 감사가 강화됐다“는, 핵심에서 벗어난 근거를 대며 감사를 거부했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새마을금고의 불법대출은 전국에서 발생하는 사회적인 문제“라며 “감사원은 스스로 본연의 책무를 버렸고, 행정안전부에게 책임 모면의 길을 열어줬다“고 반발했다. 이들의 지적대로 새마을금고에서 발생한 불법·비리 사건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작년에는 사채왕 김상욱 일당의 1500억 원대 불법 대출과 뱅크런 사태에 이어, 올 4월 총선 때는 양문석 후보(현 경기 안산시갑 국회의원)의 편법 대출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 8일에도 대구 지역 새마을금고 지점 세 곳이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역시 불법·부실 대출 의혹이 불거진 곳이다. 이쯤 되면 ‘비리의 온상 새마을금고‘라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문제는 이런 굴욕적인 지적이 거의 해마다 나왔다는 점이다. 아래의 기사 제목과 발행 날짜를 보자. “내부통제 어쩌나..뿔뿌리 금융이 비리백화점 된 이유” – <아주경제> 2023년 12월 6일정부, ‘비리온상’ 새마을금고 감독 강화한다지만… – <한국경제> 2022년 2월 27일새마을금고는 어쩌다 비리의 온상이 됐나 – <이데일리> 2020년 11월 10일 구글, 포털사이트에서 ‘새마음금고 비리‘를 검색하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관련 기사가 줄줄이 이어진다. 불법 대출부터 성추행, 임직원 비리, 횡령은 물론 ‘카드깡’ 내용도 나온다. 이중 위에서 언급한 2020년 11월 10일 자 <이데일리> 기사 한 대목을 보자. “서울의 한 (새마을)금고에서도 전·현직 임원들에게 주택담보대출을 해주면서 담보에 대한 감정평가도 하지 않고 정상금리보다 0.6%포인트 가량 낮은 이율로 대출을 해줬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전국 1300개 새마을금고에서 일어난 이 같은 특혜 대출은 최근 3년간 700억 원을 넘어선다.” 이 기사는 새마을금고의 수백억 원대 특혜·불법 대출이 작년에만 벌어진 특별한 일이 아니란 걸 말해준다. 담보물 감정평가를 생략하거나 부풀리는 수법은 김상욱 일당이 했던 것과 동일하다. 이번엔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2013년으로 가보자. 2013년 6월 5일 자 YTN 보도의 제목은 ‘끊이지 않는 새마을금고 불법대출비리’. 이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담보물 감정금액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백억여 원을 불법 대출한 새마을금고 간부가 구속됐습니다. 다른 새마을 금고에서는 간부가 수년간 고객 돈 수억여 원을 빼돌린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는 등 새마을금고 비리가 끊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기사 내용을 보면, 2023년 서울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발생한 비리 내용과 거의 유사하다. 기사에는 이런 내용도 담겼다. “이처럼 잊을 만하면 불법 대출과 고객 돈 횡령이 발생하고 있지만,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해당 기사에서 새마을금고 중앙회 관계자는 재발 방지책이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일상 감사 상시 시스템을 고도화 시스템으로 개발해서 최근에 있는 감정사례라든가 공시지가에 의한 대비 과다감정이 되었다든가 그런 부분까지 같이 조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원이 최근 행정안전부에 대한 감사를 거부하면서 밝힌 이유와 흡사한 내용이 이미 2013년도 등장한 셈이다. 그럼에도 새마을금고의 불법과 비리는 이어졌고, 이번에도 행정안전부는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았다. 새마을금고가 ‘비리의 온상’, ‘불법 백화점’이 된 배경도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지적된다. 새마을금고는 제1금융권은 물론이고 상호금융기관 중에서도 유일하게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을 받지 않는다. 1960년대 서민들의 상호부조 형태로 출발한 새마을금고의 상위기관은 금융위원회가 아니라 금융과 거리가 먼 행정안전부(당시 총무처)다. 그때로부터 60년이 지나 새마을금고는 전국에 약 4000개 지점을 거느리고, 전체 예수금 295조 9000억 원(올해 5월 말 기준)을 가진 금융기관으로 성장했음에도 관리·감독 주체는 여전히 그대로다. 그러는 사이 새마을금고의 부정과 비리는 해마다 반복됐고, ‘사채왕’ 김상욱은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마치 개인 금고 이용하듯 돈을 빼갔다. 수많은 피해자 중 한 명이 원복이 부모님이고, 더 큰 피해자는 기꺼이 비참함을 연기하겠다는 초등학교 6학년 원복이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행정안전부에선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감사원은 아예 감사를 포기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원복이는 부모님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왜 자기는 다른 친구들처럼 학원에 갈 수 없는지, 기자가 왜 자신을 따라오는지, 다 알고 있었다. 심지어 부모님에게 보탬이 될까 싶어, 자신이 훨씬 비참하게 그려지길 바라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의 이런 상상력에 행정안전부는 정말 책임이 없을까? 감사원은 정말 행정안전부를 감사하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제1금융권처럼, 아니 최소한 농협, 수협, 신협처럼만 새마을금고가 관리·감독이 됐어도 원복이 부모님은 불법대출 피해자가 되지 않았을 거다. 책임자들이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별일 없이 살아가는 지금, 원복이 부모님은 오늘도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원복이는 올 여름도 유흥주점 텐트에서 보내는 중이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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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조치 했다고 새마을금고 면죄부? “엉뚱한 소리!”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18화]
감사원이 1500억 원대 새마을금고 불법대출 사건에 대해 행정안전부의 관리·감독 책임을 묻는 공익감사를 종결했다. 행안부가 ‘사후조치’를 했으니 감사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반쪽 검토 결과”라며 감사원의 종결처리 결정을 규탄했다. 이들은 지난 4월 23일 감사원에 행안부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사채왕’ 김상욱(52) 일당의 1500억 원대 청구동새마을금고 불법 대출이 발생했을 당시 행안부가 관리·감독 책임을 다했는지 조사해달라는 취지였다.(관련기사 : “사채왕 김상욱 하나에 휘둘리는 이게 나라입니까!”) 감사원은 감사 청구 취지에서 벗어난 답변을 내놨다. 감사원은 행안부가 새마을금고 불법대출 사건이 발생한 이후, 새마을금고중앙회 내규를 개정하는 등 사후조치를 했기 때문에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참여연대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감사원의) 결정을 인정할 수 없다. 이번 종결처리는 감사원이 문제의 핵심을 벗어난 답변으로 행안부가 책임을 회피하도록 해준 것”이라며 “감사원은 시민사회가 제기한 사안에 대해 분명하게 감사를 진행하라”고 촉구했다. “그야말로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이다. 1500억 원에 달하는 불법대출이 적발된 후에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재발 방지 대책을 강화했다고 해서 그 전에 관리·감독의 부실로 인한 사건까지 책임이 면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참여연대・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논평, 2024. 7. 17.) 참여연대 실행위원인 서성민 변호사도 “과거부터 있던 명확한 문제에 대해 관리・감독을 했는지 감사를 요청했는데, 감사원은 쟁점을 회피하는 식의 어이 없는 답변을 했다”고 비판했다. “종남이(전종남 전 청구동새마을금고 상무)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 ‘회장님(김상욱 본인 지칭) 새마을금고가 솔직히 규정이 어디 있습니까? 씨X. (대출) 나가면 다 나가는 거지.’” (2023. 6. 19. 김상욱 통화녹음)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사채왕’ 김상욱과 공범의 통화 음성파일 900여 건을 입수했다. 음성파일에는 김상욱이 청구동새마을금고를 마치 자신의 ‘개인 금고’처럼 사용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관련기사 : “청구동새마을금고는 사채왕 김상욱의 개인 금고다”) 김상욱은 전종남 전 청구동새마을금 상무와 짜고 불법대출을 실행했다. 그 여파로 지난해 청구동새마을금고는 문을 닫고 인근 새마을금고로 합병됐다. 이들 일당은 피해자를 속여 명의를 빌린 뒤, 상가 매매를 담보로 최대한도의 대출을 받았다. 심지어 감정평가사를 미리 섭외해 부동산 담보 가치를 부풀렸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행안부는 1500억 원대 새마을금고 불법대출 사건이 발생한 뒤 2023년 10월 새마을금고중앙회 내규를 개정했다. 70억 원 이상 PF대출에 대해서 중앙회의 사전검토를 거치도록 했다. 감정가격 과다 평가 방지를 위해 온라인 탁상감정서비스를 도입했고, 특정 법인에 연간 30%를 초과해 감정평가를 맡길 수 없도록 조치했다. “1500억 원 불법대출 사건은 대부분 2023년 6월 이전에 발생했다. 이런 반쪽짜리 검토 결과로 이번 공익감사 청구사항을 종결처리 해버리는 것은 행안부에게 책임을 모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감사원 스스로도 본연의 책무를 저버리는 일이다.”(참여연대・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논평, 2024. 7. 17.) 불법대출을 비롯한 새마을금고 관련 사건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적 문제로 지적됐다. 그럼에도 감사원은 새마을금고와 행안부에 적절한 감사를 한 적은 없었다. “새마을금고 불법대출 사건으로 다수의 금융소비자 피해가 발생했고, 심지어 비슷한 양상의 범죄가 전국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이 드러난 중대한 상황에 대하여 이번에야말로 행안부에게 과거의 관리·감독 부실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참여연대・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논평, 2024. 7. 17.) 참여연대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감사원의 종결처리 결정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 이들은 “감사원이 자체적으로라도 시민사회가 요청한 감사청구 내용에 대해 왜곡이나 책임 회피 없이 분명하게 감사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청구동새마을금고 불법대출의 주범인 김상욱과 전종남은 지난 5월 23일 구속기소 됐다. 이들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정경제범죄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지난 5일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김상욱은 “대출 과정에서 수수료만 일부 받았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했고, 전종남 역시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 대출”이었다고 항변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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