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저… 베트남에선… 공부… 잘했어요” 사라진 공고생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16화]
3월 첫 등교일 공업고등학교 1학년 아이들의 눈에는 불안과 두려움 같은 게 있다. 이미 친구들에게 “공돌이 학교”, “양아치 우글거리는 곳” 등 온갖 혐오의 말을 몇 번씩 들었을 테니, 아이들의 위축된 눈빛은 오히려 자연스런 일이다. 아프지만 현실이 그렇다. 그런 만큼 첫 수업시간엔 일부러 힘찬 자기소개를 아이들에게 당부한다. 지난 봄날, 어느 1학년 교실 첫 국어수업에서 이정희(가명)는 열여섯 번째로 자기소개를 했다.“저는 ○○중학교에서 온 이정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한 갈래의 머리를 뒤로 단정히 묶은 정희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유난히 짧은 소개에 한 남학생이 짓궂게 물었다.“남친 있나?”아이들이 웃기 시작했다. 약 40개의 눈이 일제히 정희의 입으로 향했다. 정희는 대답하지 않고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느그들 첫날부터 너무한 거 아이가? 정희야, 그냥 대답 안 해도 된다잉.”나는 얼른 정희를 자리로 돌려보내려고 했다.“저는 몰라요.”갑자기 정희가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있다, 없다‘가 아니라 ‘모른다‘고 한 게 어색했지만, 요즘 아이들이 많이 쓰는 일명 ‘황당 어법‘으로 여겼다.“그래 정희야, 좋은 대답이다. 개인정보를 쉽게 알려주면 안 되는 기다.”직업계고는 목적에 따라 공업, 상업, 보건 계열 등으로 나뉘는데, 여학생이 공업 계열에 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흔하지 않아 쉽게 눈에 띄고, 그 탓에 더욱 놀림과 차별의 대상이 되곤 하는 여자 공고생 이정희를 그렇게 처음 만났다. 나는 자기소개를 마무리 한 뒤, 활동지를 나눠주고 작성하게 했다. <내가 원하는 수업>1. 나를 소개해보세요.2. 고등학교에 오기 전 지금까지 가장 좋았던 수업은 어느 선생님의 수업인가요?(교사명, 과목, 좋았던 이유)3. 어떤 수업이 싫은가요?4. 선생님께 바라는 점을 자유롭게 작성해주세요.(비밀 보장됨. 엄마, 담임선생님에게 말 안 함.)5. 꿈을 적어주세요.(취업, 대학, 전학, 기타)6. ○○공고에 온 이유는? 나는 주로 모둠 수업과 활동 수업을 많이 한다. 자존감 낮은 공고 아이들이 모둠 내에서는 모두 주인공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좋은 모둠 수업을 위해서는 먼저 아이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게 순서다.1학기 시작 3주차가 됐을 때, 정희 담임선생님이 나를 찾아왔다.“저희 반에 다문화 학생이 있는데, 국어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는 미달자가 아니길 바라는데.”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부모님 중 한 명이 외국인이어도, 고교에 올 정도가 되면 다들 소통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문화 학생이어도 조금만 노력하면 기초학력반, 일명 ‘나머지공부반‘에 배정되지 않았다.“근데, 걔가 한국말을 몰라요.”매주 세 시간씩 벌써 2주 수업을 마쳤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내 수업에서 발표를 한 번도 안 한 학생은 없었다. 근데, 한국말 모르는 학생이 있다니?“정희예요. 정희! 정희가 한국말을 몰라요. 쓰기는 전혀 안 되고, 말하기도 거의 안 돼요.”더 믿기 어려웠다. 정희는 이미 내 수업에서 세 차례나 발표를 했기 때문이다. 담임선생님 설명에 따르면 정희는 ‘중도입국자녀‘였다. 정희 어머니가 한국에 와서 결혼을 했고, 이듬해 열두 살인 정희를 베트남에서 데려왔다.그렇다 해도 정희는 벌써 고교 1학년, 입국한 지 5년이나 지났다. 한국 기준으로 따지면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한국어 교육을 어느 정도 받았을 터다. 내가 몰랐던 정희의 비밀은 이어졌다.“사실 정희는 열일곱 살이 아니에요. 이미 우리 학교에 2년 전에 입학했고, 두 번이나 휴학해서 지금 열아홉 살이에요.”학교 자체를 싫어하거나, 공고 ‘스펙‘을 지우려는 공고생은 보통 자퇴를 선택한다. 하지만 정희는 휴학을 했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두 번씩이나 말이다. 어떻게든 학업을 이어가고 싶다는 뜻이었다.난 첫 수업 때 정희가 쓴 ‘내가 원하는 수업’ 활동지를 꺼내 보았다. 이렇게 적혀 있었다. 1. 나를 소개해보세요.“저는 이정희입니다.”(2~5번은 모두 공란)6. ‘○○공고에 온 이유는?“잘 부탁드립니다.” 어떤 아이는 문장 한 줄 쓰는 걸 버거워 하고, 몇몇 아이는 아예 백지로 제출하기도 했다. 그래서 난 정희의 허전한 활동지에서 큰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다. 나의 실수다. 며칠 뒤 정희 반의 수업에 들어가, 나는 일부러 천천히 출석을 불렀다. “16번, 이정희!”“네.”정희는 여유롭게 대답하고 책을 폈으며, 칠판을 바라봤다. 수업을 하는 동안 조심스럽게 정희를 살폈다. 내가 반 전체에게 질문을 하고 아이들이 일제히 대답을 하면 정희도 함께 입을 움직였다. 한 박자 느리게 말이다.모둠별 활동 때 정희는 말하기 대신, 정성스럽게 듣는 사람의 역할을 했다. 졸지도 않고, 딴짓을 하지도 않았다. 조심성 많은 조용한 아이로 보였다. 수업이 끝난 뒤 정희를 따로 불렀다. 정희의 눈을 똑바로 보고 천천히 말했다.“정희야, 샘하고 이야기 좀 할래? 이따가 교무실로 좀 온나.”망설이던 정희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꾸벅이며 짧게 “네”라고 답했다. 몇 시간 뒤 정희가 교무실로 왔다. 난 정희를 옆에 앉히고 다시 천천히 물었다.“정희야, 샘 말 얼마나 알아듣노?”“저는 머얼라요(몰라요).”정희는 자기를 바라보는 나보다 몇 배는 더 진지하게, 나의 눈빛, 표정, 몸짓을 뚫어질 듯이 살폈다. 목소리 톤에도 집중하는 듯했다. 상대방의 움직임에서 정보를 종합해 의중을 파악하는 듯했다. 내가 다시 물었다.“니, 내 말 알아듣나?”“저는 머얼라요(몰라요).”첫 수업 때의 정희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나와 교실의 아이들은 정희가 한국어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는 걸, 베트남에서 왔다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다. 그 후에도 쭉 이어진 정희의 침묵과 튀지 않는 조용한 행동, 그 모든 건 다문화가정 출신 아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진즉에 알아챈 정희의 본능적인 선택이었다.말은 통하지 않아도 차별은 통역 없이도 너무 쉽게 심장에 박힌다는 걸, 차별당하는 자들은 몸으로 안다. 수업 때마다 정희는 얼마나 답답했을까.“얼마나 알아 듣노? 60%? 70%?”베트남어를 모르는 나는 이 말을 한글로 종이에 적었다. 그런 다음 종이와 펜을 정희에게 내밀었다. 정희는 ‘아!’ 감탄사를 내뱉더니 “40%“라고 적었다. 숫자와 기호를 조합해 내 질문을 알아들은 것이다. 순간 내 가슴이 뻥 뚫린 듯했다.“오케이! 이해가 안 될 땐, ‘몰라요‘라고 말해야 된데이. 오케이?”“네.” 당시 학교의 큰 화두는 기초학력반 운영이었다. 쉽게 말해, 기초학력 테스트에서 떨어지는 학생이 없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정희에게 테스트 통과는 무척 중요했다. 무엇보다 국어(정희에겐 한국어) 과목 통과가 필요했다. 국어 테스트에서 탈락한다는 건, 정희에겐 ‘강제 커밍아웃’을 의미했다. 베트남 출신이란 걸 알리거나 감추는 건 정희가 선택할 문제였다. 정희는 알리고 싶어하지 않았다.정희는 자신이 아는 어휘와 손짓발짓을 모두 동원해 ‘국어 테스트에선 꼭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어 읽기·쓰기·듣기·말하기 모두를 힘겨워 하는데, 어떻게 시험의 장벽을 넘을 수 있을까.눈앞이 캄캄했다. 정희는 그런 나를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봤다. 미안하지만, 정희에게 고통스런 제안을 했다.“정희야, 일단 ‘읽기‘부터 잡자, 응? 시험까지 일주일 남았는데, ‘쓰기’ 시험까지 통과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야. 그렇게 하는 게 너한테도….”이야기에 집중하느라 난 정희가 베트남에서 온 아이라는 걸 순간 잊고 말았다. 그래도 내 말의 진정한 뜻을 알아주기를 바라며 잠시 정희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저는 머얼라요(몰라요).”처음부터 다시, 손짓발짓은 물론 눈빛과 입술 모양을 총동원해 정희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 말의 요지는 이랬다.‘국어 기초학력평가는 읽기와 쓰기를 테스트하는데, 하나라도 점수가 미달하면 탈락이다. 네가 당장 이걸 통과하는 건 무리다. 기초학력반으로 가서 ‘나머지공부‘를 하면 좀 어떤가. 거기에선 1:1 한국어 수업도 가능한데, 내가 도와주겠다. 당장은 힘들어도 한국에서 살아갈 너한테 꼭 필요한 수업이다. 읽기부터 시작하자. 절대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 하면 졸업 무렵엔 한국인 누구와도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을 거다. 그게 너한테 진정으로 필요한 게 아니겠냐.’한참을 떠들었더니 입은 물론 팔다리도 아팠다. 가만히 보고, 듣던 정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함께 읽기 테스트 통과를 목표로 노력하겠다는 한다는 걸 동의한 거다. 정희의 두 눈은 새로운 도전이 설렌다는 듯 반짝거렸다. 다음 날, 나는 ‘이정희 문해력 향상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일주일 뒤의 기초학력평가는 물론이고 그 후의 교육까지 염두했다. 학교에서는 ‘학습튜터‘ 제도를 활용해, 정규수업 시간에도 정희가 한국어를 공부하는 방안을 마련해보겠다고 했다. 정희만을 위한 첫 번째 국어수업. 나는 읽기 테스트 통과를 위해 여러 준비를 했다. 먼저 기출문제와 예상문제를 정리해 문제풀이 강의를 시작했다. 정희는 쓰기와 말하기는 잘 못했지만, 읽기는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 정도는 했다. 다만, 어휘력이 현저히 부족했다.“정희야, ‘직장(直腸)’ 아나?”“저는 머얼라요(몰라요).”“베트남어로 하면 ‘trực tràng’이야.”“알아요.”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는 구글 번역기와 네이버 파파고, 챗GPT를 활용했다. 단, 가급적 한국말로 설명하고 도저히 의사소통이 안 될 때는 번역기를 사용했다. 구체적인 상황까지 설명해서 정교하게 대화를 나눠야 할 때는 챗GPT를 이용했다.나는 시험 지문에서 ‘중심문장’ 찾는 방법과 문제에서 요구하는 것, 정답을 찾는 비법까지 설명했다. 마치 영어 단어를 암기하는 것처럼 한국어 어휘카드를 만들어 암기하도록 했고, 부정과 긍정 표현, 종결어미에 주목해 문장의 의미를 아는 법도 알려줬다. 접속 부사가 나올 경우에는 반드시 네모를 치고 문장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연습도 시켰다.10~20점 정도였던 정희의 읽기 점수는 이틀 만에 30점까지 올랐다. 합격 커트라인은 60점. 즉 20문제 중 12개를 맞춰야 읽기 테스트 통과였다. 더욱 서둘러야 했다. 나는 예상문제를 풀어오는 숙제를 내줬고, 정희는 빠짐없이 과제를 해왔다.마침내 일주일이 지나 시험 전날이 됐다. 마지막 문제집을 푼 뒤 정희가 한참을 망설이더니 더듬더듬 말했다.“선생님… 저… 베트남에선… 공부… 잘했어요.”정희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한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느낀 차별과 고독, 언어 장벽에 따른 학습 결손을 경험하면서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은 듯했다.“그래, 안다. 여기서도 잘하게 될 끼다. 걱정하지 마레이.”마침내 기초학력 진단평가 시험을 치는 날. 정희는 열심히 문제를 풀었다. 정희가 읽기 과목에서 받은 점수는 딱 60점. 일주일간의 벼락치기는 가까스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그렇다고 정희가 기초학력반을 벗어난 건 아니다. 쓰기 과목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희는 국어, 영어, 수학 모든 과목의 기초학력반에 편성됐다.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정희가 실패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우리는 작은 성공의 경험을 목표로 했으니,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정희와 나는 1:1 한국어 수업을 꾸준히 하기로 했으니까.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니까. 하지만, 우리의 도전은 허무하게 끝났다. 아니 시작도 못했다. 정희는 기초학력반 수업에 나오지 않았다. 다음주에도, 그 다음주에도 정희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정희 담임선생님에게 사정을 물었다.담임선생님은 정희 부모님께서 정희가 학교에 오래 남는 걸 원하지 않았다는 것과, 정희 역시 학교에 올 수 없는 처지가 됐다고 설명했다. 더 꼬치꼬치 묻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열아홉 살 정희가 또 휴학을 하나보다 여기고 나는 아쉬운 마음을 접었다.1학기가 끝날 무렵, 성적 처리를 하며 정희의 상황이 ‘무단결석‘에서 ‘자퇴‘로 바뀐 걸 알게 됐다. 대한민국 많은 사람들이 혐오하는 이 공고를 어떻게든 다니려고 두 차례나 휴학했던 ‘베트남 소녀’ 정희는, 그렇게 완전히 학교를 떠났다.학교의 누구도 정희가 왜 자퇴를 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백인이 아닌 외국인을 향한 차별이 한국어처럼 자연스럽게 통하고 공유되는 이 땅에서 정희는 강제 커밍아웃 되는 것이, 그것도 전 과목 ‘나머지공부‘로 밝혀지는 것이 죽을 만큼 싫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정말로 학교에 다닐 수 없는 말 못할 처지가 있을 수도 있고.공고에 입학한 남자아이들의 주눅 든 눈빛은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알고 있다는 자각의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공고에 다니는 여학생의 위축은 어느 정도일까? 세상이 공고에 다니는 여자아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떠올리면 쉽게 예측할 수 있다.정희가 왜 학교를 떠났는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나는 우리 사회가 ‘베트남 출신 여자 공고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따져보기로 했다. 구글 번역기로도 쉽게 알 수 없던 정희의 마음은 그때 비로소 이해될지도 모른다. 지한구 교사 longlong19@hanmail.net※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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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할머니가 공고에 보낸 ‘꼴찌를 위한 장학금’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15화]
공고 기초학력반 국어수업 이야기를 다룬 지난 글 <칠판 글씨 못읽던 명호의 비밀… 학교가 학교다워졌다>공개 이후 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60대 중반의 할머니입니다. 밥이라도 편히 먹을 수 있도록 명호 학생에게 매달 용돈을 조금씩 보내주면 어떨까 해서 연락드립니다.” 매주 3~5만 원으로 주중 5일을 혼자 지낸다는 명호(17세, 가명)가 돈 걱정하지 않고 밥이라도 잘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공고생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받았다. 공고 이야기를 단편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대학생부터, 인터뷰를 요청하는 방송사까지, 그중에는 도움을 가장한 부적절한 접근도 있었다. 학교와 학생들에게 괜한 문제를 야기할 만한 접촉은 피하려 노력해왔다.‘세상에 공짜는 없다. 근데, 진심으로 명호를 응원하는 사람일 수도 있잖아? 아니지… 이상한 사람이면 명호에게 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잖아.’수업을 앞둔 쉬는 시간 10분, 나는 고심 끝에 ‘차단‘을 결심했다. 살면서 여러 번 겪어봤다. 갑자기 찾아온 큰 행운을 덥석 쥔 후, 실은 그것이 불운의 씨앗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일. 게다가 돈과 학생 문제는 더욱 신중해야 했다.수업 시작종과 함께 나는 행운의 메일을 머리에서 지웠다. 마침 명호가 속한 반의 2학기 첫 국어수업이었다.“자자, 활동지 피라(펴라).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오늘은 각자의 방학을 소개하는 수업을 할라 칸다. 먼저 샘 방학부터 소개할 테이까 화면 봐라잉.”올해 여름방학은 2주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 학교는 겨울에 대규모 공사가 예정돼 있어서 여름방학을 줄이고 겨울방학을 늘리기로 했다.나는 ‘선생님의 여름방학‘이라는 제목으로 만든 PPT 자료를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두 아들과 함께 한 등산, 자전거여행, 바다로 떠난 피서 이야기를 했다. 마지막엔 포항 구룡포 오징어축제에서 맨손으로 잡은 1미터짜리 방어 사진을 보여줬다. “와, 샘~ 대박이네요! 진짜 좋은 아빤데요.” 나는 의기양양하게 학생들을 바라봤다. 이어 학생들에게 활동지를 나눠줬다. <나의 방학을 소개해 봅시다>1. 가장 의미 있던 일2. 아쉬움이 남는 일3. 2학기 각오위의 세 가지 질문 중 한 가지 이상은 반드시 발표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 진짜로 말하기 싫은 사람은 “패스“를 외치면 특별히 한 번 봐드립니다. 아이들은 활동지를 작성했다. 가족과의 해외여행, 친구들과 다녀온 계곡, 학원에서 보낸 하루 등 아이들은 다양한 방학 이야기를 글과 말로 풀어냈다. 명호 차례가 다가왔다. 하지만 명호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이름을 크게 부르며 명호를 깨웠다.“우리 명호! 방학 잘 보냈나? 살이 좀 찐 것 같은디, 어데 여행은 댕기(다녀)왔나?”명호의 활동지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명호도 발표 함 해야 안 되긋나? 왜 아무것도 안 적었노?”명호는 겨울잠에서 덜 깬 곰마냥 눈을 비비며 말했다.“집에만 있었으니까요.”지난 글에서 말한 대로, 명호는 쓰기와 말하기에서 어려움을 겪는 상태로 공고에 입학했다. 그런 탓에 지난 1학기 동안 나에게 국어과목 기초학력 수업을 들었다.이 과정에서 명호의 시력이 칠판에 적힌 글씨를 못 볼 정도로 나쁘다는 것과, 그럼에도 안경을 맞출 수 없었던 형편이 드러났다. 학교는 명호에게 안경을 맞춰줬고, 집중적인 기초학력 수업을 통해 명호의 쓰기와 말하기 능력은 많이 좋아졌다. 그런데 2학기 시작하자마자 아무것도 적지 않은 텅 빈 활동지와 어떤 발표도 하지 않으려는 무기력한 명호를 보니, 맥이 풀리고 말았다.“명호야, 샘이 세 가지를 물었다 아이가. 뭐라도 말해야 하지 않긋나.”“저는 밖에 나가는 거 안 좋아해요. 만날 집에만 있어서 살 쪘어요.”뒤늦게야 내 질문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명호는 마음껏 집밖에 나갈 수 없는 처지였다. 주말에만 집에 온다는 엄마는 명호와 여가를 즐길 형편이 아니었다. 명호에겐 자랑할 만한 아버지가 곁에 없었다.평일을 원룸에서 혼자 보내는 명호에게 방학은 멈춤의 시간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억지로 칠판을 바라보지 않아도 되며, 졸음을 쫓기 위해 허벅지를 꼬집지 않아도 되는 시간 말이다.사정을 알아보니 명호는 늦게까지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다, 새벽에 잠들어, 해가 중천일 때 눈을 떴다. 어른이 없는 집에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고, 밖에 나가면 돈을 써야 하니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움직이는 시간이 적으니 칼로리는 몸에 쌓였고, 불규칙한 식습관으로 체중은 더욱 불었다. 여름방학 딱 2주, 명호의 일상은 완전히 무너졌다.나는 황급히 다음 순서인 정호(가명)에게 발표를 넘겼다. 정호는 이 지역의 ‘강남’이라 불리는 곳에 사는 학생이다. 비교적 집안 형편도 좋다. 공고에 왔지만 내신 관리를 잘 해서 대학에 가는 게 정호의 목표다.“샘요, 저는 2번이랑 3번 같이 발표할라 카는데요, 2번은 학원 간다고 놀러를 못 가서 아쉽고요, 3번은 2학기에는 수행 평가를 더 열심히 해서 꼭 좋은 대학을 갈라 캐요.”정호의 방학은 학기 중 일과보다 치열했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학원가를 돌며 촘촘한 일정을 소화했다.“샘요. 학기 중에는 체육, 미술, 음악 같은 과목이라도 있어서 숨 좀 쉴 수 있는데, 방학 중에는 만날 국영수만 하니까 진짜 죽을 거 같았어요.”나는 정호와 명호를 번갈아 바라봤다. 정호는 공고라는 낙인을 지우거나 혹은 공고의 한계를 넘기 위해 방학을 활용했지만, 명호는 그 시간 동안 자기만의 굴에 갇혀버리고 말했다.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린 후 잠시 명호를 불렀다. “이놈아, 밖에 나가서 좀 뛰지 그랬노? 방학 중에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잠만 잤나?”“자고 일어나서 밥 챙기 먹고 그랬는데요.”사실 명호의 말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았다.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지난 3월 우리가 처음 만난 때로 돌아간 듯, 명호는 다시 중얼거리며 말을 얼버무렸다. 1학기 내내 지도했던 발음 교육은 전혀 쓸모가 없게 되었다.정호와 명호 사이, 방학의 격차. 방학이란 이름으로 아이를 방치한 건 아닌지 마음이 복잡했다. 교무실 자리로 돌아온 나는 다시 메일함을 열었다. 명호의 ‘키다리를 할머니’를 자처한 분은 메일의 끄트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필요하시면 명호 어머니와도 의논하시고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가만히 있으면 달라지는 것 없이 명호의 삶은 계속 그 자리에 머물 듯했다. 명호 어머니에게 연락해 키다리 할머니의 뜻을 전했다. 명호 어머니는 많이 망설였지만, 아들의 뜻을 따르겠다고 했다. 나는 다시 명호를 찾아갔다.“명호야, 누가 니 장학금 준다 카는데 받을래, 안 받을래?”“누가요?”‘꼴등‘을 해서 공고에 온 자신에게 누가 장학을 주겠느냐는 얼굴이었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비록 기초학력반이지만, 1학기 내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해 국어과목에서 1등을 했으니 장학금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명호에게 자부심을 불어넣었다.“카니까 명호야, 받을라카나 말라카나(받을 거니 말 거니). 어머니는 니 의견에 따르신다 카시던데, 니는 우짤래?”“전 괜찮아요.”“괜찮다는 말은 또 뭔 말이고! 받기 싫다는 말이가? 그라믄 치아뿌든지.”명호는 다른 사람의 호의에 쉽게 긍정의 표시를 못했다. 어떤 제안이든 “나쁘지 않아요”, “괜찮아요”, “그래도 될 걸요”라는 식으로 애매하게 말했다.“줘도 돼요. 샘.” 어법에 맞지 않는 어색한 표현이었지만, 어쨌든 긍정하는 대답이었다. 나는 메일을 보낸 분께 전화를 걸었다. 그분의 설명은 이랬다.“쓰신 글 잘 봤습니다. 아무리 학생이어도 밥값 포함해서 3~5만 원으로 한 주를 사는 건 너무 적은 거 같아서요. 먼저 생활이 돼야 공부를 할 거 아닙니까. 제가 조금이라도 보태고 싶은데, 얼마가 좋을까요?”“제가 어떻게 금액을 제시할 수 있겠습니꺼. 주시는 대로 절대로 허투로 안 쓰겠십니더.”나의 말에 키다리 할머니가 답했다.“5만 원씩 매주 보태주고 싶은데, 어떨까요? 잠깐 말고, 형편 되는 대로 한 1년은 주고 싶어요.”매주 5만 원, 월로 따지면 최소 20만 원이었다. 연으로 환산하면 약 240만 원. 보통 우리 학교는 장학금으로 학생 1인당 30~50만 원을 준다. 전교 1등에게 주는 장학금도 100만 원 넘는 경우는 흔치 않다.“그렇게 큰 돈을 저희가 어떻게 염치없이 받겠습니꺼? 조금만 주셔도 괜찮습니더.”마음속으로는 우리 명호를 위해서 큰 결심을 내려주셔서 감사하고, 은혜를 잊지 않겠다며 냉큼 말해버리고 싶었지만, 생각도 하기 전에 저 말이 먼저 나오고 말았다. 혹시나 금액이 줄어들까 노심초사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사실, 명호가 졸업할 때까지 한 500만 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잘 의논해보시고 다시 연락 주세요. 꼭 밥값으로 쓰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선생님들이 제일 잘 아실 테니, 지원 방법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학교 의견에 따르겠습니다.”500만 원이면 명호가 3학년에 취업을 나갈 때까지 매월 20만 원씩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나는 전화기를 붙잡고 몇 번이나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전화를 끊고 교감선생님께 달려가 상황을 설명했다.학교는 키다리 할머니의 장학금을 정식으로 받아 잘 관리해, 매월 20만 원씩 명호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돈만 지급하는 게 아니라 명호가 스스로 소비 계획을 세우게 돕고, 학교는 여러 상담으로 학습과 생활이 잘 유지되도록 살필 예정이다. 사회적 자원과 관심이 1등 혹은 명문 학교로만 향하는 세상에서, 공고에 ‘꼴찌를 위한 장학금‘이 탄생하다니. 나와 여러 교사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 학교에는 공부 자체를 힘들어 하거나 공부에 집중할 여건이 안 되는 학생이 많다. 그런데도 꼴찌를 위한 관심과 배려가 부족했다는 반성도 나왔다.개학한 뒤 명호는 조금씩 규칙적인 생활을 몸에 익히고 있다. 아무도 없는 집 안에만 머물지 않아도 되고,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만나며 나름의 사회생활도 하고 있다. 무엇보다 학교에선 따뜻한 밥도 먹을 수 있다.살면서 한 번도 장학금을 받아보지 못한, 공고에 와서도 ‘나머지 공부’를 했던 명호는 9월부터 우리 학교의 장학생이 된다. 한 번이 아니라 졸업할 때까지 돌봄과 지원을 받는 장학생 말이다.얼굴 모르는 키다리 할머니 덕분에 명호에겐 학교를 다녀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고, 학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돌아보고 있다. 키다리 할머니가 보낸 메일의 한 대목을 요즘 자주 생각한다. “밥이라도 편히 먹을 수 있도록….” 학교 관련 뉴스에서 기분 좋은 소식을 접한 지가 언젠지 까마득하다. 대한민국 학교가 요 모양 요 꼴이 된 건 저런 돌봄과 연민의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한구 교사 longlong19@hanmail.net※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칠판 글씨 못읽던 명호의 비밀… 학교가 학교다워졌다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14화]
방과후 수업 출석부에는 학생 8명 이름이 적혔지만,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규수업과 학교 업무로 나도 많이 지친 탓이었을까. 텅 빈 교실과 주인 없는 책상을 보니 땡땡이 친 학생들에게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공업고등학교에서 무슨 방과후 수업이냐 싶겠지만, 우리 학교도 늦은 오후부터 관련 수업을 한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일반고에서는 국어 수업은 인기가 높다. 서울권의 명문 대학교에 가기 위해선 고전 읽기, 심화 국어 등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텅 빈 교실이 말해주듯, 내가 일하는 공고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내가 맡은 방과후 국어수업은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아이들이 꼭 들어야만 하는, 강제로 만들어진 수업이다. 사실 ‘방과후 수업’보다는 ‘기초학력반’이 정확한 표현이다. 상대적으로 학업성취도가 낮아 공고에 왔는데, 여기에서도 속칭 ‘나머지 공부’를 해야 하다니. 일부 짓궂은 학생들은 “띨띨이반”이라 놀리기도 한다. 자존감이 추락한 기초학력반 아이들은 어떻게든 수업을 빠지려 여러 방법을 동원하곤 한다. 7교시 내내 멀쩡하던 배를 움켜잡고 갑자기 병원에 간다거나, 집안에 제사가 있다며 수업을 빼달라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교사들은 벌점을 부과하겠다는 엄포와 학부모 상담을 거론하며 수업 참여를 유도하지만, 기초학력반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방과후 수업을 공친 다음 날, 교무실에서 한 선생님이 큰 목소리로 동료교사들을 불러 모았다. “샘들, 이거 저희 반 명호(가명)가 만든 쿠키입니더. 드셔 보이소. 진짜 맛있습니더.” 달콤하고 쌉싸름한 커피향이 더해진 쿠키 냄새가 교무실에 퍼졌다. 쿠키는 맛이 꽤 좋았다. “명호가 요리를 엄청 좋아합니더. 잘 먹었다고 수업시간에 칭찬해주면 좋아할 거라예.” 얼마 뒤 명호가 속한 반에서 수업을 하며 담임선생님의 부탁을 이행했다. 나는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명호 칭찬을 시작했다. “느그 반 담임 쌤이 교무실에서 쿠키를 돌렸는데, 그거 진짜 맛있더라! 어디서 살 수 있냐고 물으니까, 명호한테 물어보라 카시더라. 명호야, 그 쿠키 어디서 살 수 있노?” 이야기의 의도를 알아차린 아이들은 큰 소리로 화답했다. “명호가 직접 만들었어요. 실력 장난 아니지요?”“샘, 명호가 매주 빵이랑 쿠키도 만들어와요. 우리 반 매주 빵 먹어요.” 명호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명호에게 ‘칭찬 스티커’ 네 개를 붙여줬다. 아이들의 부러운 시선이 이어졌다. 고등학생들이 이런 걸 좋아할까 싶지만, 칭찬을 많이 받아보지 못한 우리 학교 아이들은 ‘칭찬 스티커’를 정말 사랑한다. 스티커 50개를 모으면 교장 선생님이 직접 문화상품권으로 교환을 해준다. “느그들도 빵 값 내야지? 박수!” 명호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일주일 후, 다시 방과후 수업 시간이 다가왔다. ‘오늘도 아무도 없으면 어쩌나.’ 2주 연속 수업을 못하면 담당 부서에서 문책이 나올 게 뻔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교실 불은 모두 꺼져 있었고, 아무도 없었다. 다시 속이 상했다. 교실 문을 닫고 나가려는데 한쪽 구석에서 인기척이 났다. “샘, 오늘 수업 안 해요?”“명… 명호가?! 니 거(거기) 있었나? 불이라도 켜두지. 샘은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고맙데이! 명호야!” 고함에 가까운 감사 표시에 명호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명호 한 명을 앉혀놓고 국어수업 2시간을 진행했다.  그 다음주 방과후 수업, 이번에도 학생은 명호 한 명이었다. 출석부에 적힌 학생 중 절반은 아예 학교에 오지 않았고, 세 명은 조퇴를 했다. 다시 명호 한 명을 상대로 2시간 수업을 진행했다. 중학교 수준 정도의 국어수업, 명호가 잘 따라와서 기분이 좋았다. “명호야, 대화의 원리 배웠제? 그중에서 관용의 격률이 뭔지 기억나나?”“관용의 격률은 내 탓으로 돌리는 거요.”“명호야, 8번의 답은?”“3번요.” 나는 잠시 수업을 멈추고 명호를 바라보았다. 까만 옷에 까만 얼굴, 머리는 며칠을 감지 않았는지 기름기가 흘렀다. 과묵하고 동글동글한 모습이 담임선생님 말대로 푸바오처럼 귀여웠다. ‘학력이 많이 부족하지 않은 것 같은데, 명호는 왜 여기 앉아 있을까? 기초학력이 부족해 이 반에 편성된 아이가 맞긴 한데….’ 어떤 영역의 학습이 부족한지 확인해봤다. 명호는 쓰기가 ‘0점’이었다. 서술형 6문제 중 4문제 이상을 풀어야 하는데, 명호는 한 문제도 풀지 못했다. 평소에 말이 없고 수업시간엔 엎드려 자는 일이 잦았지만, 명호는 읽기와 듣기는 잘 했다. 의도치 않게 1대1 수업이 된 상황, 이왕 이렇게 됐으니 명호에게 딱 맞는 공부를 가르쳐주고 싶었다. “명호야, 니 샘이랑 이야기 좀 할래?” 나는 수업을 멈추고 명호와 마주 앉았다. 명호는 어떤 질문을 해도 단답형으로 대답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했다. “명호야, 샘이 다음 시간부터 니만을 위한 국어수업을 할라 카는데, 어떤 수업을 해주꼬?”“….”“그럼 객관식으로 물어보꾸마.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문법, 문학, 맞춤법….”“맞춤법요.”“그래. 알았데이. 그럼 샘만 가지고 있는 맞춤법 문제 100개를 갖고 오께.” 표현을 잘 못하는 명호가 맞춤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으니, 나는 최선을 다해 수업 준비를 했다. 맞춤법 퀴즈도 만들고, 작은 선물도 준비했다. 아이가 원하는 수업을 해서 만족도를 높여주고 싶었다. 대신 문제만 푸는 것이 아니라 명호가 직접 설명할 기회를 줘서, 어떻게든 말을 많이 하게 하는 수업을 구상했다. 느리지만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명호와 나는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명호야, 근데 오늘 수업 마치고 뭐하노? 샘이랑 밥 무까(먹을까)?”“저 요리학원 가는데요.”“맞다. 니 요리 잘하제? 저번에 쿠키도 진짜 맛있었다. 집에서도 요리 마이(많이) 하나? 엄마가 정말 좋아하시겠다.”“엄마는 집에 5일에 한 번만 오세요. 거의 저 혼자 해무요(해먹어요).” 명호는 어머니와 둘이 원룸에서 살고 있었다. 엄마는 평일에는 서울에서 일하고 주말에만 내려온다고 했다. 엄마는 서울로 떠날 때마다 3만 원 또는 5만 원을 두고 가시는데, 명호는 그 돈으로 5일을 산다고 했다. 아침은 굶고, 점심은 학교 급식, 저녁은 사먹거나 돈이 떨어지면 라면을 먹는다고 했다. 명호의 말에 마음이 무거웠다. “자, 그라믄 다시 수업하자. 명호야, 칠판에 적힌 글자 한번 크게 읽어볼래?”“….”“명호야, 빨리 읽어야지.” 명호는 읽지 않았다. 눈을 찡그려가며 칠판의 글자를 읽기 위해 노력했지만, 읽지 못했다. “자, 그라믄 이 글자 읽어보까?” 나는 글씨를 조금 더 크게 썼다. 명호는 눈을 찡그린 채 칠판의 글씨를 보려 애썼다.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명호야… 언제부터 글자가 잘 안 보였노?”“중학교 2학년부터요.”“안경은… 왜 안 맞췄노?“ 명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듯했다. 아마 명호는 그동안 모든 수업에서 칠판의 글씨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더욱이 TV 화면으로 나오는 PPT 자료에선 글씨가 더 작아서 전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명호는 시력이 많이 나빴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불편했지만, 명호는 몸이 편한 방식으로 생활을 바꿨다. 어차피 잘 안 보이니 읽는 것을 포기하는 식으로 말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찾아온 시력 저하는 명호의 눈을 찌푸리게 만들었고, 곧 학습 포기로 이어졌다. 내 둘째 아들 역시 시력이 안 좋다. 5세 무렵 영유아 검진에서 심각한 난시와 약시가 있다는 걸 알았다. 의사는 “평생 잘 보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수년간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조금 나아졌지만, 나는 좀 더 일찍 발견하지 못한 걸 자책하며 오랫동안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명호에게 안경을 맞춰주고 싶었다. 교감 선생님, 방과후 부장님께 예산 편성을 요청했다. 다행히 학교는 예산을 마련해줬다. “잘생긴 선생님 얼굴이 그동안 흐릿하게 보있겠네! 샘이랑 내일 안경 맞추러 가제이.“ 명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경점에 가서 명호는 꽤 오랜 시간 눈 검사를 받았다. 안경 없이 살면서 눈을 작게 뜨는 습관이 생겼고, 이는 시력을 더 저하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명호는 여러 안경테를 써봤지만, 어떤 것이 좋다고 명확히 표현하진 않았다. 나는 “니가 제일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고르라”고 제안했다. “저는 사실 저게 마음에 드는데요.” 한참을 망설이던 명호가 가리킨 안경테는 15만 원이 넘었다. 사실 명호는 처음부터 그걸로 선택을 마쳤지만, 학교 지원금이 10만 원이라서 내색하지 않았던 거다. “명호야, 개안타(괜찮다)! 샘 돈 많다! 그걸로 해라!“ 나는 한껏 허세를 부렸다. 그럼에도 명호는 다른 안경을 선택했다. 한동안 명호와 나는 실랑이를 벌였다. 괜히 미안해서 그런지 명호는 자꾸 싼 안경테를 고집했다. 결국 안경점 사장님이 나섰다. “자가(쟤가) 처음에 고른 게 아(아이)들한테 인기가 가장 많습니더. 샘이 사주시는 안경이니 공부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특별히 5만 원 할인해드리겠습니더. 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들고 가이소.“ 안경을 맞추고 명호에게 얼만큼 세상이 밝아 보이느냐고 묻지 않았다. 우리는 예전처럼 1대1 방과후 수업을 이어갔다. 명호는 첫 수업을 제외하고 총 20차시에 해당되는 수업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착실히 들었다. 마지막 수업 시간에 밖에서 명호를 기다리던 친구가 교실로 들어왔다. “샘요, 명호가 국어 샘하고 약속했다고 안경 맞추고 완전 달라졌어요. 잠도 안 자고, 수업도 열심히 듣고 성적도 많이 올랐어요!” 나는 말없이 밖에서 명호를 기다려준 친구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세상의 어떤 사람들은 공고를 두고 “꼴등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라고 폄훼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 험한 세상에 꼴등을 위한 학교가 있다는 것이, 그 학교에서 나머지 공부를 묵묵히 완주한 학생이 있다는 것이, 교실 밖에서 기초학력이 부족한 친구를 기다려주는 아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명호는 1학기 마지막 국어과목 기초학력 평가에서 95점을 맞아 해당 학생 중에서 1등을 했다. 여전히 말하기와 쓰기는 어려워하지만, 예전보다 자신감도 생겼고 표정도 많이 밝아졌다. 학교가 비로소 학교다운 역할을 한 기분이다. 지한구 교사 longlong19@hanmail.net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교육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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