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던 돌봄을 목격하다> by 남함페 태환
벌거 벗은 남자들 :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
• 이 프로젝트는 기존 남성 섹슈얼리티의 재탕이 아니라,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다.
• 편견과 왜곡, 위계와 대상화로 가득한 남성 섹슈얼리티의 실체를 고발하고 비판해야 한다.
• 그 자리를 더 나은 질문과 고민을 통과한 남성 섹슈얼리티의 탐구로 채워야 한다.
• 그러기 위해서는 남성의 내부고발, 실제적인 경험,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 이 글에는 인터넷 용어 또는 혐오 표현을 직접 인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차별과 혐오의 재생산이 아닌 비판에 그 목적이 있으며, 가급적 사용을 지양하려 노력하였음을 미리 밝힙니다.
보이지 않던 돌봄을 목격하다
2020년 9월의 셋째 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의 얼굴이 새하얬다. 퇴근하고 집에 온 아버지는 주차장 계단을 오르는 순간 어지러움이 몰려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잠시 쉬고 왔다고 했다. 그리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실 바닥에 고꾸라졌다. 형은 쓰러진 아버지를 일으켜 앉혔고, 나는 119에 전화를 걸었다. 구급 침대에 눕혀진 아버지는 아파트 1층에서 잠시 정신을 차렸다가 몇 마디 말을 하더니 다시 한번 의식을 잃었다. 인근 대학 병원 응급실에서는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손쓸 도리가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결국 지인의 지인을 통해 다른 대학 병원 응급실로 향했고, 아버지는 뇌출혈 수술을 무사히 받을 수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아버지의 수술 이후 한 달이라 하겠다. 중환자실에 계셨던 아버지는 회복세가 좋아 일반 병실로 금방 내려왔다. 처음엔 기뻤지만, 그 뒤가 가시밭길이었다. 어떤 이를 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거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사의 기로를 가로지르는 때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지만, 정작 생의 영역으로 돌아와 일상으로 회복하기까지 갖은 고생을 자진해 짊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이 길면 길수록 돌보는 사람의 활력은 바닥을 향해 추락한다.
어머니는 그 바닥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형제에게 간병인을 고용하는 대신 돌아가며 아버지를 돌보자고 했다. 형과 나는 교대로 저녁부터 새벽까지, 어머니는 매일 아침부터 낮까지 아버지 곁을 지켰다. 바로 그때 어머니의 돌봄을 목격했다. 아니 목격한 건 태어나는 순간부터였을 테니, 비로소 알아차렸다. 아버지에게 눈 한 번 못 떼는 시간이 지나면,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와 또 일을 했다. 이중 노동. 페미니즘 책에서 읽고 읽었던 그 이중 노동을 어머니가 하고 있었다.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이중 노동이란, 주로 집 밖의 임금노동과 집 안의 가사노동을 동시에 수행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물론 집의 안과 밖을 나누는 이분법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돌봄 노동을 수행하며 돈까지 벌어야 하는 여성들의 억압적 현실을 고발하는 용어로 주로 사용된다. 아버지와 함께 이불 가게를 운영하시던 어머니는 퇴근 후 집에서 가사노동까지 책임 진지 이미 오래였고, 아버지가 병상에 눕자 이제는 간병까지 해야 하는 다중 노동을 수행해야 했다. 병실에서 어머니의 돌봄 노동을 바라보며 나는 어렸을 적 어머니에게서 받았던 돌봄의 순간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돌봄의 장면과 기억
따뜻한 밥과 눈부신 햇살. 나에겐 돌봄이 그렇게 기억된다. 8~9살 즈음, 태권도 학원이 끝나고 울면서 집으로 달려갔다. 초등학교 고학년 형들과 피구 게임을 하고 싶었지만 거절당했던 억울함을 어머니에게 달려가 하소연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가슴팍에 폭 안아주며 등을 두들겨 줬고, 샤워하고 나오면 밥을 차려주겠다고 위로했다. 엉엉 울며 샤워를 끝마친 나는 부엌 식탁에 차려진 밥을 어머니와 함께 먹었다. 밥을 다 먹어갈 때 즈음, 내 머리에서 태권도 학원의 기억은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돌봄은 밥과 햇살이다. 따끈따끈한 밥과 어머니 등 뒤로 들이치던 부엌 창가의 금빛 햇살.
어른이 된 나의 하루를 샅샅이 뜯어보면, 돌봄으로 조립되어 있다. 흔히 돌봄이라 하면 사람들은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을 떠올리지만, 돌봄의 영역은 말과 행동의 경계를 넘나든다. 오늘 아침 집을 나서며 들었던 “잘 다녀와”는 나의 평온한 하루를 바라는 가족의 돌봄이다. 놓칠 뻔한 엘리베이터를 잡아준 이웃의 돌봄, 출근하자마자 커피 한 잔 사다 주는 동료의 돌봄, 퇴근하고 술 한 잔 같이 먹으며 일하는 건 괜찮냐는 친구의 돌봄. 나의 하루는 나를 아끼는 누군가의 돌봄으로 가득 차 있는 셈이다.
타인의 돌봄으로 가득 찬 나의 하루를 살펴보다 문득 나는 누구를 어떻게 돌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가장 첫 번째로 떠오르는 돌봄 대상은 부모다. 하루하루 건강이 달라지는 부모를 돌보는 것이 나의 의무이자 역할이다. 매일 아침 약을 드셔야 하는 아버지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피곤해하는 어머니. 나에겐 늘 그들의 낯빛과 걸음걸이가 눈에 밟힌다. 다음으로 애인. 요즘 애인은 아침 출근 전에 산책하며 강아지를 유치원에 등원시킨다. 나는 그런 애인의 건강과 출근길을 신경 쓴다. 간밤에 잠은 잘 잤는지, 출근에 늦지 않았는지, 걸렸던 감기는 다 나았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오후에 참석한 회의에서 함께 활동하는 동료의 안위를 걱정한다. 일이 너무 많지 않은 지나 개인적인 고민이 있지 않은지 뒤풀이 자리에서 속 얘기를 꺼내놓고 대신 빈 자리에 술을 채워넣는다.
나는 다른 이들을 어떻게 돌보고 있는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성, 청년, 아들, 친구, 동료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나에게 어떤 돌봄의 의무와 역할이 주어져 있을까? 일부의 나는 충분히 돌봄을 수행하고 있겠지만, 다른 일부의 나는 돌보는 자로서의 역할에 소홀하지 않나? 아니 애초에 돌봄의 필요성에 대해 마음 속 깊이 공감하고 있지 못 할 수도 있겠다.
돌봄을 바라보는 관점
우리 모두는 돌봄 받는다. 이렇게 확언할 수 있는 건, 그 누구도 혼자 사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가족, 친구, 사회로부터 돌봄은 수행된다. 그리고 받은 돌봄은 휘휘 돌고 돌아 다시 누군가에게 건네진다. 돌봄은 사회적이다. 일방향적이지 않고 순환적이다. 그래서 돌봄을 받는 존재라면 좋든 싫든 누구나 돌봄을 다시 수행하게 된다. 흔히들 얘기하는 ‘사회적 안전망’처럼, 돌봄도 우리 사회에 거미줄 같이 쫀쫀하게 존재한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많아서 목이 좀 칼칼하네” 하는 자기 돌봄이, 애인에게 하는 카톡 한 마디, “오늘 미세먼지가 심하니까 마스크 꼭 끼고 외출해요”로 이어진다. 나의 카톡을 확인한 애인이 멀리 떨어져 사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건강 챙기라는 애정 어린 말을 하고,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친구들과의 저녁 모임에서 요즘 같은 간절기에 건강 조심하자는 위로를 건넨다. 이렇듯 돌봄은 ‘나’로부터 시작해 끊임없이 누군가를 향해 전달되며 이어지고 또 확장된다.
코로나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언론은 ‘영 케어러’에 주목했다. 아픈 가족을 간병하거나 돌보는 청년을 일컫는 영 케어러는 2021년 5월, 아버지를 홀로 돌보다 끝내 방치하여 죽게 한 한 청년의 이야기를 기점으로 특히 더 주목받게 되었다. (“뇌출혈 아버지 방치한 ‘간병살인’ 청년 항소심서도 징역 4년”, 세계일보) 위기감을 느낀 정부와 지자체는 영 케어러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각종 지원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 가족 돌보는 ‘영 케어러 청년’ 900명 지원한다”, 조선일보)
영 케어러에 대한 사회 각계의 관심을 지켜보다 어느새 마음이 뾰족해졌다. 영 케어러에 대한 정책의 실효성이나 부족한 지원에 대한 거슬림이 아니다. 언론 보도와 각종 정책에 담겨있는 돌봄에 대한 시각이 매우 협소했다. 영 케어러 서사에는 ‘아픈 가족’이 기본으로 등장한다. 아픈 가족 - 청년 구조에서는 일상적 돌봄에 대한 논의가 낄 틈이 없다. 앞서 썼듯이, 우리의 일상은 누군가로부터의 돌봄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받은 돌봄을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돌려준다. 아픈 가족을 청년 개인이 돌봐야 하는 현실이 아니라, 평범한 누군가를 돌보려는 청년들의 능력이나 의지에 주목하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는 돌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아픈 사람을 간병하는 식의 너무 좁은 시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모성 얘기는 이제 그만
질문에 답하기 이전에 이 글에서 소개한 나의 이야기에도 비판받을 점들이 많다. 페미니즘 렌즈로 본다면 내가 돌봄을 인식하고 고민하게 된 이야기는 지나치게 어머니의 돌봄 노동을 낭만화하는 한계를 지니기 때문이다. . 결국엔 또 남성 화자가 여성(어머니)의 돌봄을 언급하며, 한국 남성 특유의 가부장적 권력을 드러내는 것 아닌가. 나이와 상관없이 멀쩡한 아들이 낮잠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어머니가 차려준 밥 얻어먹다 문득 어머니의 노고를 깨달았다는 식의 이야기는 이제 징글징글하게 느껴지리라. 여기에 더해 돌봄 노동의 당위성만을 호소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도 든다. 남성이 일상적으로 어떤 돌봄 노동을 수행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여전히 이 부분이 나에게는 자기성찰의 영역으로 남아있으며, 나의 짧은 식견이 드러나는 것 같아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다.
“남자 간호사들끼리 모여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버지 수발을 드는 딸은 볼 수 있지만 어머니 수발을 드는 아들은 많지 않다’는 사실을 경험한다.”
_간호사가 되기로 했다(*)/ 김진수 외
* 남자 간호사 14명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간호사라는 직업과 남성이라는 성별이 교차하는 의료 현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문장이 내가 이번 글의 주제를 돌봄으로 정하게 된 계기였다.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침묵할 수만은 없었다. 문장에서 확인할 수 있듯, 남성의 돌봄 노동은 여전히 요원하다. 보이지 않고 돈으로 매겨지지도 않는 돌봄 노동은 어째서 여태껏 남성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어떻게 하면 “돌봄은 주로 여성이 하는 것”이라는 여전한 사회적 관념을 깨고, 우리 모두의 책임과 역할을 논의할 수 있을까? 간병 수준으로 논의되고 있는 청년 세대의 돌봄 역할을 어떻게 일상적 돌봄의 영역까지 확장시킬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우리는 돌봄에 대해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써야 한다.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 어떻게 다른 이를 돌보는 것으로 연결되는지, 그 돌봄의 현장을 너무 당연시하지는 않는지 질문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돌봄의 주체이자 대상이니, 함께 고민하고 실천해나가면 좋겠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한 것처럼, 한 사람이 살아가려면 온 세상의 돌봄이 필요하니 말이다.
본 글은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 작성하여 미디어 플랫폼 '얼룩소'에 동시 연재되고 있습니다.
얼룩소 7화 원문 주소 : https://campaigns.do/discussions/792
코멘트
5돌보는 이들에게도, 어쩌면 돌보는 이들에게 더더욱 돌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더 널리 퍼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돌봄에 대한 이야기가 참 반갑습니다. 저는 성인이 된 후 한 복지관에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돌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각각 다양하고 근사했지만 공통된 건조한 줄거리가 있었어요. '어린 시절 남동생 뒷바라지를 하다가 결혼했더니 시부모의 아침을 차리고 있고, 평생 자녀를 키우다가 떠나 보내니 남편이 병을 얻었고, 남편을 간호하다 떠나 보내니 손자가 품에 안겨있더라' 라는 이야기. 자연스럽게 한 곳으로 돌봄의 역할이 몰리게 된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저조차 어린 시절 할머니 댁을 오가며 돌봄을 받았음에도요. 명절을 앞둔 지금, 우리의 더 잦은 대화로 '돌봄'이 충분히 존경 받으며 평등의 방향으로 변화하길 바랍니다.